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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빌 비올라] 나는 시간을 명확한 물질로 본다

[빌 비올라(1951)]전 국제갤러리 2-3관에서 2015.03.05 - 2015.05.03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ch17 

2014년 파리 그랑팔레 전시 포스터 "나는 시간을 명확한 물질로 본다" - 빌 비올라 

큐레이터 제롬 뇌트르(Jerome Neutres) 는 “빌 비올라가 지난 40 년 간 다음의 세 가지 형이상학적질문들과 힘겹게 싸워왔다고 말한다 말한다. 즉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 인간조건 인생여정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이 주제이다. 그것을 비디오형식에 담았다.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물세례를 받는 종교적 숭고미도보인다. Bill Viola expresses his emotional and spiritual journey through great metaphysical themes – life, death and transfiguration 

빌 비올라는 그의 작품에서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시간의 심오한 특질들을 기록해왔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보고 듣는 행위를 통해 인식하도록 하였다. K2 전시장 1층에는 영적인 탄생의 변형을 주제로 다룬 다섯 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비올라는 텅 빈 경관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그리움과 시간의 경과에 대한 감각을 자아내며,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K2 전시장 2층에 전시된 <밤의 기도 Night Vigil>(2005/2009)에서는 빛과 어둠을 사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두 개의 나란히 놓인 스크린에는 한 쌍의 연인의 모습이 영사되는데 그들이 겪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 정신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진실된 사랑이라는 알레고리는 개인과 타자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튜브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Jg19GwNCJU0 


2014년 파리 그랑팔레 비올라 회고전 작품 중 하나 이 작가가 수중 환타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비올라 40년 작가 생활을 아주 짧은 몇 마디로 요약하다 [기자간담회] 창조는 인간에게도 있고 그 나름으로 동물에게도 있고 벌레에게도 있다 Bill Viola is one of the most famous representative of video art. A large body of his work, from 1977 to today, combining tables and monumental installations movement, is currently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at the Grand Palais. 

국제갤러리 빌 비올라 기자간담회 2015. 03.05 


비올라의 대한 첫 인상을 천진한 어린아이 백남준 과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의 부인과도 앙상블을 이루는 첨단과학인 미디어아트를 하는 분 같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심각하지 않는 철학자이고 부드러운 예언자이면서 흙과 공기, 물과 불의 연금술로 인간내면을 탐구하면서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조건의 출구를 찾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태어나지않은 영혼과도 소통을 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감정을 무한대로 키우면서 창조와 파괴 속에 변화, 재생, 승화를 추구하는 자아의 고립에서 초월하고 해탈하는 일면을 보인다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래면서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LEAVE SOMETHING BEHIND 뭔가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남겨야 한다 


선사 같은 작가, 흐르는 시간 속 영원 건지기 - LEAVE SOMETHING BEHIND 

빌 비올라 국제갤러리 2015.35-5.3 백남준의 인간미에 홀린 작가 동양에서 버린 가치관 다시 주워 현대미술의 새로운 영감을 준 작가 그는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그는 세속의 시대에 숭고한 성스러움을 그는 소음의 시대에 침묵과 선(禪)과 명상을 그는 고통의 시대에 축제와 낙관을 추구하는 작가다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서양인으로 드물게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고통이 있음으로 집착을 버리고 도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의 진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영상주인공은 연극배우도 있고 작품에 따라 다르다. 미술에서 퍼포먼스는 연기가 아니라 자아성찰이다. 

그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심각하지 않는 철학자이고 부드러운 예언자이면서 흙과 공기, 물과 불의 연금술로 인간내면을 탐구하면서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조건의 출구를 찾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태어나지않은 영혼과도 소통을 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감정을 무한대로 키우면서 창조와 파괴 속에 변화, 재생, 승화를 추구하는 자아의 고립에서 초월하고 해탈하는 일면을 보인다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래면서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LEAVE SOMETHING BEHIND 뭔가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남겨야 한다 

[비올라(1951-)가 백남준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 발췌] 


"제가 젊었을 때 그때 당시 막 비디오아트가 태동하던 시기인데 당시에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백남준 조수를 했거든요. 제 평생 그런 분은 처음 만나봤어요. 너무 에너지가 넘치고 정말 재미도 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였어요. 나이 든 분이나 젊은이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열린 분이시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최고의 분이셨어요. 백남준 선생의 경우 비디오아트를 창시자이시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쓰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면 그 자료(소스)도 주저없이 열어주었어요. He was grateful!! 여러 번 반복하다. 그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죠" 2015.03.06. 국제갤러리 비올라 인터뷰 중에서 


비올라 싱클 채널 이 여인은 우리시대의 성모마리아인가 심오한 카타르시스와 죽음 탄생 환생의 중요한 모멘트를 우리의 내면에 직면하거나 직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한다 

[빌 비올라 인터뷰 내용을 에세이 형식(2천자)으로 요약(피드백) 
_시간을 일방적으로 흘러가 돌아오지 않지만 나는 시간을 쌍방형적으로 흐르게 하고 싶다 

"70년대 선(禪)사상이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 동양에서 버린 것을 다시 줍다. 사물에 대한 다름과 함께 그 보이지 않는 깊이를 통찰하다. 그래서 내적 통로를 만들다. 그는 초고독 촬영 등 첨단의 장비를 씀에도 불구하고 비디오의 철학적 측면 느림의 미학을 주시한다. 그는 존 케이지처럼 정신적인 영적인 개념적인 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부적인 것에는 디테일하지만 전체적인 면을 항상 같이 보려고 하다. 

그는 시간을 물질과 재료 혹은 물감으로 생각했다는 면에서 백남준의 후예다. 시간을 작가의 의도대로 느리게도 빠르게도 하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빠른 것은 격정적이고 문명적인 것을 느끼게 하고 느린 것은 명상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감지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흥미롭다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 같은데 사실 그의 작품에는 시대정신이 그 어느 작품보다 강력하다. 비디오아트라는 것 그 자체의 재료가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장 느린 사랑이다. 다시 말해 명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빌 비올라의 너무나도 황홀하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러브스토리다. 저기 여인의 느리게 움직이는 손(섬섬옥수)에 얼마나 숭고하고 애틋하고 장엄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보라 감동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물질에 묶여 있으면 익사하기 쉽다. 거기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죽음의 직전과 대면해야 한다. 작가는 6살 동네 호수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삼촌이 그를 건져주었지만 그는 거기서 맛볼 황홀경 죽음 직전의 시간을 아주 어려서 이미 맛본 것이다 천국을 이미 갔다 온 셈이다 그걸 예술화한 것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갈 때까지 가 봤다. 물밑에서 가장 황홀하고 색감적이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마치 종교인들이 성령으 받은 것처럼 그는 그래서 항상 그 노스탤지어의 천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와서 저곳으로 가는데 우리의 삶이란 글 한 가운데 다. 탄생과 생성과 죽음에서 물과 불의 이미지가 가미되는데 물을 예를 들면 그것은 파괴와 죽음도 주지만 변화와 창조도 일으킨다. 물은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고 그것이 모든 창조와 상상력과 자극한다. 


우리는 지금 시간과 함께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위는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전혀 다르게 생사를 초월하는 영혼의 공간 이해해야 한다. 그 경계를 넘어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 위안과 변화를 맛보야 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피드백이 불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백남준의 노스탤지어로 다시 가져오고 싶다 시간을 쌍방향으로 다르고 싶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잘 모르지만 흐르는 시간과 또 다른 시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의 나의 평생 주제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창의적 활용하여 뭔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것은 다 창의적 능력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물과 식물 벌레까지도 말이다.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곳에서 뭔가 끊임없이 변화는 것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프레임의 시작은 작으나 깊이 들어가면 그 프레임을 자꾸 커진다.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자생적으로 뭔가 숨겨진 것을 발휘하면서 더 큰 프레임을 만든다. 물과 불 흙과 공기 4원소 이것은 세상을 파괴, 변화, 순화, 재생시킨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과 함께 인간의 자아고립을 초월하고 해탈하여 생로병사 같은 어떤 순화리듬을 만들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젠 마스터(禪師)'에게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유머감각과 자유로운 영혼 활기가 넘치고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깊고 따뜻한 아우리가 있는 분인데 한번에 내 작품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정보와 생각이 너무 많다고 꾸짖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어보는 생각도 배웠다. 

백남준은 "작가란 미래를 사유하는 자"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바로 그런 맥락이다. 나는 비디오아트 미래를 믿는다. 강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작은 개울이 모여 큰 천을 이루고 바다로 나아다슷 그리고 사라지듯 그런 가운데 뭔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낙원에 가면 이 세상의 모든 추억이 지워지는데 그 이전에 뭔가 남겨야 한다. 

예술이란 원시시대부터 있었고 지금도 역시 필요하다. 태어나지 안는 사람부터 이미 죽은 망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유한 속에 무한을 추구한다 뭔가 남겨야 한다 LEAVE SOMETHING (new) BEHIND 결론으로 말해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는 어려서 6살에 동네 호수에 빠졌는데 죽음 직전의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만약 그때 삼촌이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삶과 죽음이 기로에 서 있는 그 물속의 절대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슨 성령을 받은 것 같은 순간인가. 그는 거기서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엇의 세계가 있음을 온몸으로체험한 것이다 비올라는 불과 물의 연금술으로 만든 작품이 많은데 이런 정화의례를 통과한 인간의 삶이 한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인가 그는 확실히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 고통이 구원의 끄나플이 되고 죽음 직전이 인간에게 가장 황홀한 순간과 아름다운 영원을 열어주는 길임을 비디오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도 자신을 넘어서는 삶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유진상 평론가 식사 중에게 비올라에게 질문공세를 늦추지 않고 게속하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전시실에서 2015.02.03-04.19까지 
[전시시간]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8:00 (2월) 3월부터는 19:00까지 매주 월요일(휴관) 
[박현주기자 관련뉴스] www.ajunews.com/view/20150204082113337 

콜비츠 I '차에 치인 아이(Run Over)' 1910, 에칭, 24.8*31.7c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소장 


"흑백 대비에서 오는 명암의 극적이라고 할까. 비극과 가난과 슬픔을 드러내는 데는 판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18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살려고 태어나게 했는데 죽음을 먼저 맛보다니요.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데 동의한다.나는 인간이 어쩔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 콜비츠.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콜비츠 전 서울 북서울 미술관 사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참으로 반가운 전시다 콜비츠는 
개인적 정서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를 그린 작가다. 그녀는년 이세상에서 오갈데 없는 사람들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 따뜻한 여성과 뜨거운 모성의 무한정 가슴으로 그림이라는 큰 그릇에  담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의 전시를 연다.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친, 초기부터 말년까지 총 56점의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출품작은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 소재한 사키마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이루어졌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9 석판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년 7월 8일-1945년 4월 22일)은 독일 화가,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불행한 사람, 특히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이를 그림, 에칭, 리소그래피, 목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기반하지만 후기 작품들은 표현주의적인 경향도 있다.참여미술의 선각자로도 불린 콜비츠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독일가내 노동전 포스터_1906년 독일산업전시회)' 1905-1906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 같은 얼굴 휑한 얼굴 누렇게 뜬 얼굴 당시 여성노동자의 얼굴이네요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0대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의 판화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초기에는 에칭과 석판화를 주로 제작했으며 후에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의 영향을 받아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쳐 총 275점의 판화를 제작했고 대부분 흑백판화였다. 콜비츠는 사회참여적인 수단인 판화를 선택하여 자기 체험적인 고백과 시대를 담은 예술을 펼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어머니들)' 1921 

전시는 결혼 후 더욱 심화된 콜비츠의 사회의식과 전쟁을 겪으며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로서의 발언에 주목한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여성적 시선이 더해져 당대의 현실과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은 콜비츠 특유의 작가정신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수행했다는 점은 콜비츠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그의 작가적 의지는 더욱 강화되었기에 전쟁은 콜비츠 작품을 살펴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케테 콜비츠 I 콜비츠의 자화상 1934 

직접 보면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리얼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정말 심장에 강력한 파문이 일어나고 예술의 힘이 느껴진 그의 그림은 민중미술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머니즘의 승리하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무료 한번 가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군으로 분류하였다. 먼저 사진갤러리1에서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아들의 전사라는 역사적,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세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기이다. 전쟁 전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작가는 반전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5 외 

콜비츠 그는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역사서보다 독일의 과도기 고난의 시점을 감동도 전율의 시각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도무지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판화형식이 아니면 고발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해 가는 인간의 위대함도 같이 보여준다 이 전시는 절대로 빼놓지 마세요 북서울 시립미술관이 있어 북서울은 행복한 지역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고요 하나의 미술관은 100개의 수력발전소보다 더 위력이 있는 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음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와 부녀자의 대비되는 표정은 전쟁 이후의 비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주요 연작인 ‹전쟁 War›(1921~1922)은 케테 콜비츠 작품의 백미로, 작가 개인이 어머니로서 전쟁을 겪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모성애를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시기의 작업들이다.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는 콜비츠가 겪은 아픔과 절규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다. 뚜렷한 흑백대비의 목판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살아남은 자)' 1923 

당시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던 시대였나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는군요 참혹한 인간수난시대특히 하층민 땅의 사람들 농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그들에게는 살아남기만 해도 대단한 시대가 있었다
 

브론즈 조각 작품 ‹피에타 Pietà›(1937~1938)의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어머니는 콜비츠의 후기 작품을 지배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절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쟁 이전의 여성들이 억압받고 투쟁하는 계층으로 등장했던 반면, 전쟁 시기의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강조한 작업들이 주류를 이룬다. 격동기를 거친 작가의 자화상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어머니의 모습이 거의 동일시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케테 콜비츠 I 전쟁 5 과부 1922-23 '지원병들 1921-23, 목판, 35*49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인간의 고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인간을 고통만큼 위대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고통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환희의 세계는 과연 가능한가요 

사진갤러리2의 전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케테 콜비츠의 초기 에칭, 석판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작가의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주요 연작과 초기 대표작들을 비롯하여 여성 노동자의 초상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게르미날 Germinal› (1891)을 시작으로 가난의 추방이나 질병 퇴치와 같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연작으로 제작하였다. ‹직조공 봉기 A Weavers’ Rebellion›(1893~1897)는 비참한 직조공들의 상황과 이로인한 새로운 투쟁을 소재로 한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의 연극 ‹직조공들Die Weber›(1893)에서 비롯되었다. 

케테 콜비츠 I '기도 하는 소녀' 에칭 1892 

기도하는 소녀 감동이다 위선적 종교행위와 처절한 경건성 서로 다르다
 

전시에는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봉기에 앞선 직조공들의 회의 장면을 담은 ‹협의 Conspiracy› (1898)가 전시된다. 또 다른 대표 연작인 ‹농민전쟁 Peasants' War›(1901~1908)은 ‹직조공 봉기›보다 적극적인 혁명 의지를 담고 있다. 1840년 출간된 침머만(Wilhelm Zimmermann, 1807~1878)의 «대농민전쟁사개설»을 읽고 재구성한 판화 연작으로, 농민전쟁(1522~1525)을 소재로 제작했으나 역사적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검은 안나(Black Anna)’라는 모티브를 빌어 농민 혁명을 조형화한 것이다. 혁명적인 주제로 가득한 그녀의 1차 세계대전 이전 작품들에는 의례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과 귀족 등의 지배계층 대신에 억압당하는 피지배계층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전쟁 6 어머니들)' 1922-1923 목판 

모성의 절대적 경지는 신성이 되는 것인가. 땅의 사람들(암아하레스)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오직 뜨거운 포옹과 절대적 신뢰 그리고 형제애적 끈적끈적한 연대뿐인가요 

더불어 사진갤러리2에는 전시개최 배경과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이 전시를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작품을 대여해준 일본 사키마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연표를 제시하였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농민전쟁 5 폭발)' 1903 

몸부림으로서 절규 같은 삶을극명하게 보여주다. 

콜비츠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드러내는 뜻깊은 이번 전시가 격동기의 삶과 당대의 이슈에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작가의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룬 현실 참여 정신이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행사] 일반인 대상 <전시와 만나다> , 어린이 대상 <어린이 겨울방학 교실> 운영 *신청: 홈페이지-교육 / 문의 T. 2124-5276 *부문/작품수 판화, 조각 / 총 56점 도슨트 시간 1일 1회 / 오후 2시 * SeMA 도슨팅앱과 소책자를 통해 작품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관람료 무료 주최 및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전시문의 김혜진(02-2124-5269)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展] 소마올림픽미술관에서 2015.01.25(일)-2015.05.10(일) 

감자 심은 사람들 

이번 전시는 밀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보스턴미술관이 4년여에 걸쳐 연구하고 기획한 것으로 2014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과 일본 전시에서 무려 100만 명이 관람하는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밀레의 대표작이자 보스턴미술관 4대 걸작으로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감자 심는 사람>, <추수 중에 휴식(룻과보아스)>,<양치기 소녀>를 선보인다 본 전시는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됩니다. '밀레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회는 목요일'마다 작품 설명이 있다. 

씨 뿌리는 사람, 1850년. 미술 박물관, 보스턴. 

1849년 밀레는 '추수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를 그려 국가에 기증하였다. 파리 살롱에서는 같은 해에 '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양치기'(Shepherdess Sitting at the Edge of the Forest)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매우 작은 유화작으로 이전까지 그가 그려왔던 미화되고 목가적인 주제에서 보다 더 사실적이고 화가 개성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같은 해 6월 그는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파리의 교외인 바르비종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농민 화가로서 전원생활의 정경을 그렸다. 그는 가난에 쪼들렸으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1850년 밀레는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상시에게서, 그에게 작품을 그려주는 대가로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그는 다른 구매 희망자를 위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해에 파리 살롱에서 밀레는 '이삭 줍는 사람들'(Haymakers)와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과 함께 걸작이라 평가되는 3개의 작품들 중에 가장 초기 작품인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를 전시하게 된다. 

1850년에서 53년까지 밀레는 그가 가장 중요시했으며 가장 오랫동안 작업하게 된 작품 '추수하는 사람의 휴식시간'(Harvesters Resting)을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나 푸생과 같은 그의 개인적인 영웅 화가들에게 필적하기 위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밀레의 그림 인생에 있어 농부들의 일상만을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보다 사회적인 상황 자체를 상징적인 기법으로 나타내는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이 작품은 밀레가 날짜를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며, 파리 살롱에서 1853년 2위에 해당하는 메달을 수여받으면서 공식적인 명예를 쌓도록 도와준 작품이었다. 

양치기 소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앳된 얼굴의 소녀가 오른손엔 꼬챙이를, 왼손엔 양털 뭉치를 든 채 어딘가를 보고 있다. 양털에서 실을 뽑다 잠시 쉬고 있는 걸까? 새하얀 앞치마엔 한낮의 햇빛이 반사돼 아름답게 일렁이고, 그녀의 발 아래로는 섬세하게 묘사된 풀과 민들레가 바람에 나부낀다. 

이 작품은 밀레의 그림 중 가장 큰 인물화로 꼽힌다. 그렇기에 실제 그림을 보면 중심에 자리한 소녀의 모습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또 재미난 탄생의 비밀을 가졌다. 밀레가 젊은 시절 그린 역사화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위에 물감을 덧발라 그렸다는 점이다. 이런 연관성으로 그림 속 소녀에게선 당시의 신 또는 왕에게나 주어졌을 영웅성마저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한국일보 

[사진출처] http://www.milletseoul.com/exhibit/piece.php 

[파리 일상의 유혹_프랑스장식예술박물관특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5년 3월 29일까지 
http://www.paris2014.co.kr/pari/# 

전시장 입구 화려한 전시홍보물 

이런 악기는 언제 연주하는 것인지 궁금해지죠


높이 164cm, 넓이 140cm 에 달하는 크기의 이 하프는, 당시에 샤틀랭의하프를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지위를 인정 받을 수 있었던 18세기의 귀족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이 '시대의 보물'을 탐닉하게 했다. - 저택 내부를 장식하는 우아한 오브제로 각광받아, 당대 손꼽히는 장인인 샤틀랭의 하프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저택의 아틀리에를 마련해 모셔올 정도였다. 


샤를 르클레르크(Charles Leclercq) 1783년 작품. 유화 하프를 연주하는 엘리자베스 공주(Madame Élisabeth jouant de la harpe), 귀족의 거실에서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회화작품이다. 

18세기 귀부인의 작은 방인가요 그리고 의자와 그림이 있죠 

여기 의자는 <안락의자 '베르제르'> 귀족 저택의 벽난로 주변에 위치하여, 책을 읽거나 바느질 등 취미활동과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다. 


어느 시대나 음악이나 악기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겠죠 경제와 예술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 있죠. "배가 고프면 음악이 안 들리고 배가 부르면 음악이 배고프다" 귀족 의자 저택 사교 살롱 비치된 루이 16세 스타일 가구 조각한 나무장식에 도금 붙인 화려한 장식성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현대에 희소한 '옥색'이 특징이다 

18세기 프랑스 귀족부인의 부채네요 장식미술의 장르로 구분되기도 한다 

부채 Éventail 18세기 귀족 여자들의 패션은, 화려한 장식 하나 하나에 담긴 숙련된 장인들의 장시간에 걸친 노력과 기술의 산물 부채 하나에 상아·자개·진주모·레이스 등 다양하고 디테일한 장식 요소가 가미되어 복식만큼이나 화려한 로코코 양식을 보여준다. 

18세기 귀족들의 비데 화장실 

비데는 귀족 여성을 위한 위생 도구. 세척에 용이한 가죽과 파이앙스 재질로 제작, 향수와 비누 보관칸까지 내장하고 있다 

귀족계층의 남녀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작품명은 점심식사이다. 무슨 내용인지 다시 더 찾아봐야겠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수상자: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수상자: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사진출처 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22653749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시상식 2015. 1. 29. 오후 4시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 선정 - 하룬 미르자는 사운드 아트, 설치 미술, 퍼포먼스 등 분야 간 경계를 횡단하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자, 가장 적합하게 백남준의 유산을 현대화하여 계승하는 작가 - 백남준 추모 9주기인 2015년 1월 2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시상식 개최 (상금 $50,000 수여, 2015년 10월 22일 개인전 개최)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 국제예술상 심사위원회는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1977- )를 선정하였다. 시상식은 백남준 추모 9주기를 맞이하는 2015년 1월 29일(목) 4시에 열리며 하룬 미르자에게는 $50,000(한화 약 5,000만원)의 상금과 경기도 도지사상이 수여된다. 시상식 당일에는 수상자인 하룬 미르자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노부오 나카무라 CCA 기타큐슈 관장과의 아티스트 토크가 펼쳐지며, 2015년 10월에는 하룬 미르자의 개인전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룬 미르자 작품 

하룬 미르자 작품 

빛과 소리의 교묘한 조합을 보인다 심사위원: 마이크 스텁스 (Mike Stubbs, FACT 관장), 노부오 나카무라 (Nobuo Nakamura, CCA 기타큐슈 관장),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사무소 관장), 안규철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백남준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세계적일 때 가장 한국적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인간이다. 그에게로 가면 모든 세계관이 뒤집어진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_2015 랜덤 액세스] 2015년 1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2층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지향하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신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원했던 백남준의 바람을 구현하는 프로젝트 기획-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내 작가 10팀의 신작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전시 기간 중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백남준아트센터는 향후 2년마다 신진 작가들이 참여하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는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과 현대예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자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대가 제시하는 예술형식과 의미를 논의하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 5명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 각 큐레이터가 작품의 장르, 형식, 내용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기준으로 작가 2명을 추천하여, 총 10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예술가의 존재의미를 ‘미래를 사유하는 자’라고 규정했던 백남준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10팀의 작가들은 현재의 삶과 예술에 대해 특유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장르와 형식을 가로지르면서 끊임없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 

<랜덤 액세스>(임의 접속)은 디지털 사회의 정보접속 방식이자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 백남준의 예술 실험의 핵심을 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 전시의 제목으로 <랜덤 액세스>를 선택함으로써 현대예술을 구분 짓는 장르와 형식, 선입견을 배재한 채 실험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접속하는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규범화되고 상업화 되어가는 현대예술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작가들이 제시하는 예술언어를 관객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백남준아트센터는 한국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동시대 예술 담론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향후 <랜덤 액세스> 전시를 격년제로 열 예정이다. 

2015 랜덤 액세스》에 참여하는 작가는 김시원+윤지원+이수성, 김웅용,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박승원, 서영란, 양정욱, 오민, 이세옥, 차미혜, 최은진으로,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횡단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20세기 현대예술이 구축해온 형식과 이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그것을 새롭게 변주하는 경향을 지닌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2015 '랜덤액세스' 2015 5월31일까지 양정욱작품 노화라는 시간의 문제를 시각화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관점을 주제로 삼고있다 

김시원+윤지원+이수성은 <무제> 시리즈를 통해 기존의 ‘화이트 큐브’, ‘미술관’이라는 제도화된 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그 공간에 대한 탈주를 꾀했던 이전 세대 예술가들의 시도에 ‘작품’이라는 명제에 대한 질문을 추가한다. ‘예술 작품이 없는 전시장’을 구현하는 이들은 작품이 아닌 전시 공간을 전시하는 조명장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전시장 바닥을 더욱 균일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기존의 예술이 가졌던 형식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어디에나 있는 극장’을 의미하는 극단 이름처럼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건 자유로운 내러티브로 배우, 극장, 극단, 조명, 무대 등 연극의 모든 형식적인 요소들에 대해 질문하고 상황을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동명의 작품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공연할 예정이다. 김웅용은 <사방에 있는 천사: 알파와 오메가>에서 전통적인 영화와 연극의 형식을 레퍼런스로 두고 이를 전유한다. 그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의 사운드를 차용하여 사운드가 지닌 내용과 억양이 화면과 일치하지 않고 서로 어긋나고 미끄러지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2015년 1월 29일부터 6월 21일까지 백남준전 《TV는 TV다》] 백남준아트센터1층 
TV는 먹통이 아니고 말이 통하는 인간이다. TV는 총체적 삶이 담긴 인간의 몸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 풍경 

TV는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다 전시를 설명하는 안소현 큐레이터(미술관학 박사) 

백남준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클루언의 문장을 패러디하여 “미디어는 미디어다”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맥클루언은 미디어 자체가 의미전달에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백남준은 의미전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는 백남준의 주요 매체였던 텔레비전이 환경이 된 상황을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백남준 식 아날로그 영상 편집을 가능하게 했던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다양한 TV 조각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설치들, 그리고 백남준이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만든 영상들이 전시된다. 

TV 영상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편집기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전《TV는 ...TV다 (TV is TV)》­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의 2015년 첫 번째 백남준전,­ 마셜 맥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백남준이 패러디하여 만든 작품 "미디어는 미디어"를 재해석하여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강조하려 하였던 백남준을 바라본 전시, ­ 백남준의 주요 텔레비전 작품과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네 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집중적이고 분석적으로 백남준과 TV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이끌어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단순한 정보의 수신장치를 넘어, 감각적 실험의 도구, 실시간 개입의 통로, 로봇과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다가가는 방송 환경이었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에서는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백남준아트센터의 다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TV의 속성을 크게 ‘실험’, ‘라이브와 재생’, ‘신체’, ‘방송’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TV 촛불 

[1]실험(TV as Experiment) 백남준은 실험 TV 시리즈를 통해 자석이나 전류, 음향신호 등을 이용하여 화면을 변형하며 다채롭고 역동적인 컬러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백남준이 실험 TV 시리즈에서 찾아낸 화면변형의 기본적인 방식은 그가 일본의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개발한 아날로그 합성장치인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 특유의 캔디 컬러와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의 제작 원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실험 TV들과 더불어 2011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슈야 아베와 함께 그 기능을 복원한 비디오 신디사이저 및 원래의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든 영상들을 전시한다. 전시 작품: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참여TV>, <닉슨 TV>, <왕관 TV> 등 

TV 벽걸이 퐁텐블로 

[2] 라이브와 재생(TV as Live & Play) 백남준은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TV를 만드는 것을 꿈꾸었는데,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이 참여할 수 있고, 영상의 내용을 변형할 수 있는 작품들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로 종교적인 구도자가 대중매체의 화면을 응시하는 <TV 부처>, 시간의 흐름을 공간 속에 복제하여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스위스 시계>와 같은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 작품: <TV 부처>, <스위스 시계> 

TV <스위스 시계> 

TV 샹들리에 

[3] 신체(TV as Body) 백남준에게 텔레비전은 그 자체로 신체의 기관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거나, 사람의 신체처럼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모니터를 이용하여 로봇이나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또 그 악기가 내는 소리를 시각화하여 다시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TV가 마치 인간의 몸처럼 기능하는 물리적, 전자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백남준전 <TV는 TV다>에는 백남준이 평생의 협업자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표작 <TV 첼로>, 그리고 앤틱 TV 모니터와 라디오를 이용해서 만든 아트센터의 대표적인 소장품 <슈베르트>, <밥 호프>, <찰리 채플린> 등이 전시 된다. 전시 작품: <밥 호프>, <찰리 채플린>, <슈베르트> 등 

TV 첼로 1999 

[4]방송(TV as Broadcasting)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서양의 영화잡지들을 뒤적이며 낯선 문화를 접하는 희열을 느꼈던 백남준은 다양한 문화를 먼 곳까지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TV 전파의 힘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방송이 필요하다고 느낀 백남준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안방까지 전달하기 위해 여러 방송국과 협력하여 방송용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였다. 백남준의 이 방송 작품들은 4시간 동안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신디사이저 합성 영상을 내보내는 <비디오 코뮨>부터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시청한 위성 오페라 삼부작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채널들로 이루어져 있다. 

TV 물고기 

백남준 연대기 총정리 

기자에 질문에 답하는 박만우 관장 

한국 프랑스 수교 130(2015-2016)주년을 맞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특별전이 열린다고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알려주네요 프랑스 문화부 장관 한국계 꽃 장관이 역할도 크겠네요 사진은 전 루브르 미술관 관장 앙리 루와레트(Henri Loyrette) 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집행위원장이 되다 


한불 외교관계 수립 130주년(1886~2016)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지난 2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프랑스 측 집행위원장인 앙리 루와레트씨와의 간담회가 있었다. 

[백남준타계 10주년_한불수교 130주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2016년 4월 7일부터 '백남준 회고전' 
-한국출신 문화부 꽃(Fleur) 장관의 역할기대 

현재 프랑스 파리 루이 뷔통재단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의 TV 로댕 

백남준을 프랑스인으로 가장 잘 이해한 <장 폴 파르지에>가 1981년 영어로 된 대담영상이다 백남준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회화에서 색채는 공간의 기능이지만 비디오아트에서는 색채는 시간의 기능을 가진다" 그밖에도 그는 말한 동양에서 "색(color)이 왜 성(sex)인가" 등등의 문제를 맥루한 미디어이론과 자신의 시공간개념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다 매우 천재적인 발상이다.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유튜브보기]https://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아래는 장 폴 파르지에 쓴 백남준 평전 첫페이지 PAIK NAM JUNE (1932-2006) Né à Séoul le 20 juillet 1932, l'artiste coréen Nam June Paik débarque en Europe en 1956, proclamant : « Yellow peril, c'est moi ! » Comme il le fera ...toute sa vie, il mêle plusieurs langues en un sabir digne du Joyce de Finnegans Wake, dont il est un disciple à travers le joycien John Cage, son véritable maître. Au moment où il lance ce cri de guerre, Paik ignore encore qu'il va inventer une des rares formes d'expression radicalement nouvelles du xxe siècle : l'art vidéo. 

1. Invention de la télévision abstraite Paik se veut et se croit musicien d'avant-garde. Ayant étudié le piano en Corée et soutenu une thèse sur Schönberg à Tōkyō (1956), il vient à Munich travailler auprès de Stockhausen la musique électroacoustique. C'est alors qu'il rejoint Fluxus – un groupe d'artistes qui se réclame de Dada pour mieux réagir aux ruines morales laissées par la Seconde Guerre mondiale. 

La première composition fluxiste de Paik, la Sonate no 1 pour violon solo, consiste à briser sur un pupitre un violon, devant l'auditoire. Sa seconde œuvre remarquable, dans le même désordre d'idées, se présente, en mars 1963 à la Galerie Parnass de Wuppertal, comme un orchestre de treize téléviseurs déréglés. Au lieu de diffuser des images, ils exhibent des zébrures, provoquées par l'injection d'une fréquence sonore dans leur tube cathodique. « J'ai inventé la télévision abstraite », déclare fièrement celui que l'on n'allait bientôt plus nommer que « le pape de l'art vidéo 

En 1964, Nam June Paik part pour New York, afin d'être plus près du cœur de Fluxus, qu'incarne le Lituanien George Maciunas (1931-1978). Ayant entre-temps abandonné la musique (non sans s'être autoproclamé « le plus mauvais pianiste du monde »), Paik invente au Japon, avec l'ingénieur Shuya Abe, un des premiers synthétiseurs vidéo (1969-1970). Avec cet instrument, il colorie et déforme les images des caméras, les modifiant parfois en les soumettant aux paramètres des sons. Commence alors pour lui une carrière de défricheur de form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백남준, 굿의 예술화 현대화 실험]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bksi 사진 ⓒ 최재영 


"초기 행위음악에서 플럭서스 해프닝을 거쳐 비디오 아트에 이르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상적 통찰과 상상적 미학 실험의 산물이며, 소통과 참여라는 그의 진취적 예술이념 역시 자신의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동양정신과 깊게 맞닿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샤마니즘은, 백남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 이승과 저승의 소통과 조화를 신봉하는 샤마니즘적 사유방식에 대한 참조, 그 문화적 기능과 의미에 대한 숙고를 통해 대중 소통, 관객 참여, 나아가 전 지구적 문화교류를 추구하는 상호성의 예술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무속과 해프...닝, 샤마니즘적 ‘마술’과비디오 ‘미술’, 구체적으로는 샤마니즘과 백남준 예술의 유추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첨단의 테크노 문화와 고전 동양사상 사이의 동질성과 차이를 인식하고백남준 작업에 나타나는 아시아성 또는 한국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샤마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영험적 초자연 세계와 물질적 자연세계,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체적 기능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인간 주체와 자연 대상의 소통을 증진시킨다는 유사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업으로 새로운 영상미학을 제시한 백남준의 매체실험을 신화를 전수·재현하는 샤먼적 행위의 실천에 비견할 수 있는 한편, 샤머니즘을 문화의 차이를 넘어 교감의 형식과 가능성을 추구하는 백남준 예술의 은유로 파악할 수 있다. 

백남준은 샤머니즘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해석하고, 한국의 선조를 샤머니즘 신화에 결부시킴으로써 몽골, 우랄알타이계의 아시아 정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1963년 자신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효시가 되는 역사적인 전시회인 <음악의 전람회>(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에 방금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황소머리를 내걸어 주위를 경악시킨 샤먼적 행위 역시 유럽의 아방가르드화단에 자신의 뿌리를 알리는 일종의 인종적, 민족적 선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중앙아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타타르 족의 보살핌으로 회생한 후 샤머니즘에 경도된 요셉 보이스에게 분신과 같은 혈육애를 느끼고, 그가 죽은 후 추모굿(1990년 현대화랑)을 열어준 백남준의 정서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홍희의 굿모닝 미스터 백 중에서 


대가집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라난 백남준에게 굿판과 같이 떠들썩하고 혼란스러운 해프닝은, 존 케이지와의 인연이 ‘운명적’이듯, 어쩌면 백남준을 위한 운명적 장르였는지 모른다. 백남준은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으로 만들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당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액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24시간 해프닝이 된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 그것도 그녀의 예술이 된다. (중략)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춤춘다. 그 리듬은 중국 아악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리듬은 싱코페이션이 있는 삼박자로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거의 3박자, 5박자가 되던 것은 결국 나의 예술은 한국의 미술, 그 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보이스 추모굿 장면 중 처음 보는 것 사진출처 갤러리현대 

그러면 무속 신앙을 물려받고 무당의 제식에 익숙한 백남준은 자신이 택한 예술 장르, 해프닝과 비디오 아트를 통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그것은 결국 무속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해프닝은 전통예술개념을 부정하는 인터미디어와 비고정성 개념으로 참여 이상을 실현한다. 미술과 연극의 인터미디어이자, 시간과 공간의 비고정적 환경인 해프닝 환경에서 관객의 역할은 수동적 감상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전환되며, 자신을 ‘지금 여기’의 미학적 요소로 상정한다. 비디오 역시 해프닝으로부터 이 두 개념을 전수받고 있지만, 매체의 특성상 이 두 개념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즉, 비디오는 인터미디어의 총화로서, 회화적 이미지와 조각적 오브제,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중간형태일 뿐 아니라, 예술과 기술,예술과 유흥 사이에 위치하며 우리의 인생과 생활에 개입한다. 

비디오 이미지는 또한 전자적 운동으로전개되는 이미지의 흐름이 비고정적 이중 장면을 창출하고, 그 이중 장면의 이중성이 특수한 양태로 보는 이의 지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피드백 미캐니즘으로 생물학적 차원의 관객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객 참여 이슈는 비디오를 대중문화, 대중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렇게 관객 참여로 상호연결되는 해프닝과 비디오는 라이브 아트, 즉 예술과 인생의 통합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인생 장르적 반예술 실천으로 전통재현예술의 위상을 훼손시킨다. 

보이스추모굿에서와 같이 굿과 퍼포먼스의 결합이 시도되기도 한다. 해프닝과 굿판의 유사성을 비교해보면 백남준 예술이 얼마나 샤머니즘 전통과 결부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해프닝은 집단참여 예술로서, 굿은 민중적 기복이나 집단정화를 위한 사회적퍼포먼스로서 소통과 참여의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해프닝의 능동적 관객처럼, 굿판의 구경꾼은 제관으로 뽑혀 신내림과 접신의 엑스터시를 경험하며 행사의 일원이 된다. 


또한 무복, 무악, 무화, 무가, 무극, 무담, 무언 등의 총체적 문화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굿은 음악, 미술, 연극 등 다장르 사이에존재하는 인터미디어로서의 해프닝 형식과 유사하며, 굿판의 현장성과 장소성은 시공적으로 비결정적인 해프닝의 현장미학에 비견될 수 있다. 이처럼 해프닝과 굿은 관객참여 양상, 인터미디어 형식, 비결정성의 미학에서 공유점을 갖는데, 바로 이러한 점들이 관객을 분리시키고 각본에 의존하며 타장르들을 위계적으로 종합하는 연극, 오페라와 같은 전통공연예술과 다른 점이다. 

해프닝과 굿의 이러한 양식적 유추를 통해 비디오 아트와 샤머니즘의 매체적 환유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해프닝의 비결정성미학이나 인터미디어 양식이 비디오 아트로 연장되고, 관객 참여 이슈가 비디오에서는 기억을 담보하는 생태학적 차원의 참여나 사용자 친숙형의 인터페이스 미캐니즘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나 가상현실의 발전이 미디어를 영매靈媒 현상으로 파생시키는 현 테크노 문화에서 비디오와 샤머니즘은 매체와 영매의 동일한 어원을 환기시키듯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은 “매체는 중세 신학적 개념으로 신과의 교접을 의미한다. 굿의 기원,무당의 액소시즘은 얼, 몽고말로 영혼을 의미하는 얼이다. 얼은 미디어와의 유사어이며, 미디어는 굿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1990년 7월 20일 뒤로 삼성TV가 보이고 한국인의 생명줄인 쌀을 뿌리고 있다 죽은 영혼를 달래고 새로 부활하라는 메시지다 

굿과 해프닝, 샤머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소위 주객체의 인터액티비티 개념으로 상호연결되는데, 장르적으로 보면 해프닝, 비디오 아트, 무속굿은 모두가 시간성에 기초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미학적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해프닝, 비디오 아트, 굿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일반적 의미의 시간 장르가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잡아두거나 역류시키는 특수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그것은 마치 꿈의 시간처럼 비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맥락적인, 우리를 공리적인 좌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비합리적인 시간성으로 그것이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 경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백남준은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과 함께 동시성, 통시성을 담보하는 해프닝, 비디오의 시간성에 주목하면서 현재 속에서 ‘생’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생방송 예술의 의미를 강조한다. “생예술은 인간의 불가항력적 요소들을 그대로 반영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같이 우연과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탄생, 죽음 같은 중요한 일은 일생 단 한번 일어나듯, 생예술의 의미는 그것이 똑같이 되풀이 될 수 없다는 일회성에 있다" 
"Das Kapital Raum 1970-1977" and passes it on permanent loan to the National Gallery. But it is there to stay? 26/02/2015, by Julia Voss Auf dem Höhepunkt seines Ruhms: Joseph Beuys bei der Einrichtung des „Kapitals“ im Zentralpavillon der Biennale, Venedig 1980 © ZANNI/RCS/CONTRASTO/laif 


부산 시립미술관 옆에 그의 미술관이 생겼다 "예술적 삶은 일상에 자극을 주고 울림을 주는 외로운 길"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 '돌'이다. 수십억년의 시간의 덩어리랄까. '철'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철판'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졌다" 자연(돌)과 문명(철판)의 만남과 조응이 그의 일관된 주제이다 청바지에 재킷을 입은 이우환 모습 보기가 좋다 

<쉬어 가는 코너> 고양이를 주인공(뮤즈)로 삼아 다시 그린 서양명화 


Vinci, Monet Rembrandt, Dalí... Aucun grand peintre n'est épargné. Svetlana Petrova aime son chat. A tel point qu'elle l'incruste, depuis 2008, dans tous les grands chefs-d'œuvre de la peinture. Sans exception. En voici un petit avant-goût. Les fans découvriront le reste sur le site qui lui est consacré. Et en septembre 2015, un livre publié par la maison d'édition Penguin Random House, sera consacré aux chefs-d'œuvre de Zarathustra. Ici dans "La naissance de Vénus", de Sandro Botticelli. (Svetlana Petrova & Zarathustra the Cat) Publié le 30-03-2015 à 16h43 

[사진출처] http://tempsreel.nouvelobs.com/galeries-photos/photo/20150330.OBS5981/photos-de-botticelli-a-monet-le-chat-muse.html#js-img-1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고양이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d'Eugène Delacroix a tout à coup une autre allure.(Svetlana Petrova & Zarathustra the Cat) Publié le 30-03-2015 à 16h43 par Elena Fusco 
[사진출처] http://tempsreel.nouvelobs.com/galeries-photos/photo/20150330.OBS5981/photos-de-botticelli-a-monet-le-chat-muse.html#js-img-1 

[뉴욕 지역 전시소개] 뉴욕 타임스 4월 2일까지 
www.nytimes.com/2015/03/27/arts/design/museum-gallery-listings-for-march-27-april-2.html?_r=0 

류보린(刘勃麟) 전 

Crédit photo : ⓒ Liu Bolin / Courtesy Galerie Paris-Beijing 

42세의 류보린刘勃麟 작가의 퍼포먼스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투명인간) 이번 전시의 제목인 타겟은 바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을 파괴하지 않게 하는 것을 타겟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오토부터 카라바조까지]전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에서 2015년 3월 27일부터 7월 20일까지 
[사진출처] http://www.lefigaro.fr/culture/2015/03/20/03004-20150320ARTFIG00338-liu-bolin-prend-paris-pour-cible.php 


[사진출처] http://www.giotto-caravage.com/fr/home-giotto-fr 
[카라바조 영문] http://en.wikipedia.org/wiki/Caravaggio 


리처드 세라전 가고시안 런던 Richard Serra 11 October – 28 February 2015, Gagosian Britannia St, London; 11 October – 22 November 2014, Gagosian Davies St, London Richartd Serra Ramble 2014 (c) the artist Gagosian Gallery LONDON 

[사진출처] http://artreview.com/reviews/jan_feb_2015_review_richard_serra/ 


거리가 바로 전시장이 되는군요 이런 풍경은 다다익선이다 

이성자 금성 캔버스에 유채 114*80.2 cm 1963 


예술의 일상화가 요즘 더 절실해 보인다 우리의 삶이 그만큼 여유와 리듬과 색채가 없기 때문이다

Die Null bleibt in Bewegung: „Kinetische Scheibe“ von Günther Uecker 


못으로 입체적인 작업을 하는 독일 작가 귄터 워커 학고재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프랑스 쇼베에 있는 3만6천년이 된 고대문화유산 동굴벽화] 


프랑스 쇼베에 있는 3만6천년이 된 고대문화유산 동굴벽화 복구 여기에는 총 1000 점의 그림과 말 등 동물화 425점을 볼 수 있다 피카소그림보다더 생생하네요 Le projet a représenté un investissement de 55 millions d'euros. Près de 350 000 visiteurs sont attendus. Crédit photo : AFP / JEFF PACHOUD

[사진출처] http://www.lexpress.fr/diaporama/diapo-photo/culture/en-images-la-replique-de-la-grotte-de-chauvet-inauguree-ce-vendredi_1669992.html?p=3&hc_location=ufi#content_diapo 

[뉴욕 303 갤러리 전시_Jeppe Hein All We Need Is Inside] 


303 GALLERY 507 W 24 Street New York April 16 - May 30, 2015 Thursday April 16, 6-8 p.m. 
http://www.303gallery.com/ 


Spieglein, Spieglein an der Wand (group) April 18 - June 13, 2015 

Kunstverein Wiesen, Germany www.kunstverein-wiesen.de 

[루브르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케 섬의 승리의 여신상)> 완전 복구] 
-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케 섬의 승리의 여신상)> <모나리자> <비너스>와 함께 3대 대표작 


La "Victoire de Samothrace" restaurée, au Louvre. La "Victoire de Samothrace" restaurée, au Louvre. RMN/PHILIPPE FUZEAU 

Chest forward and widely spread wings, the Winged Victory regained its place at the top of the monumental staircase Daru Louvre in Paris. Ten months were needed to get to the statue of white marble radiance. An exhibition accompanies the return of this masterpiece of the Hellenistic era, one of the icons to which rush visitors to the Parisian establishment, with the Mona Lisa and the Venus de Millo Juro



파리의 20구 가장 변두리인데 여기에 낙서골목(데누아이에 낙서거리 Rue Dénoyez)이 있군요 파리의 모습에 활력을 줄 수도 있는데 지금 이 자리가 다시 공공주택과 탁아소가 들어설 예정이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겠군요 아래사진 3월 31일 이 자리가 그대로 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술가들이 모이다 Le 31 mars à Paris, un rassemblement en soutien aux artistes de cette rue du XXe arrondissement. (Photo Marie Magnin)


[사진출처] http://www.liberation.fr/culture/2015/04/07/rue-denoyez-le-graff-ne-coule-plus-de-source_1236580?hc_location=ufi 

[서울 셀렉션 서점 방문]  종로구 사간동 105-2 출판문화회관 지하 1층 전화 02-734-9564] 
여기에 가면 영문으로 된 한국문화관련 도서를 기증받을 수도 있다 방문을 권하다 


서울 셀렉션이라는 서점이 있죠 영어로 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판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갔다고 무료로 기증하는 책도 받았다 맨앞에 2권이 기증받은 책이고 그 위 왼쪽도 역시 무료로 기증받았고요 오른쪽 책(한국의 한복)은 제가 10% 할인받아서 샀다 이 서점에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서울 셀렉션은 이렇게 한국문화를 영어로 번역한 책을 팝니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105-2 출판문화회관 지하 1층 전화 02-734-9564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 할 일이 너무 많다. 유럽에서는 한복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한국식 기모노라고 표기하기도 하는데 정말 답답한 일이다 한복이 색감이 없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죠 그림에도 흰색을 좋아하는 것은 흰색을 능가하는 색이 없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단순하면서 품위있는 물론 검은 색도 매우 섹시하고 우아한 색이지만 이영희 패션디자이너는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에 크게 기여하다 

[왜 덴마크는 세게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가]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cot9 

[유튜브_요나스] https://www.youtube.com/watch?v=9hDJnP-ZRQU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에 나오는 덴마크 학생(요나스와 빅토로)을 한국에 초대하다. 그들에게 덴마크에 인생학교 졸업한 그들에게 묻다 

질문: 당신은 정말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하느냐? 당신은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 반 동안 대학에 안 가는가 빅토르: 이 탐색의 시간에 더 성숙할 수 있고 더 중요한 것이 뭔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지금 당장 대학을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빅토르(Viktor Vase Frandsen) 

질문: 당신은 정말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하느냐? 당신은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 반 동안 대학에 안 가는가? 요나스*: 덴마크에서는 네가 얼마나 출세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뭘 가장 잘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지 고민 중이란다 * 요나스(Jonas No Sjølund): 덴마크에 인생학교(정치 분야) 졸업한 학생 비영어권 토론대회에서 1등한 학생이다. 

질문 : 2년 반 동안 대학을 가지 않는 질문을 하자. 요나스(Jonas No Sjølund): "덴마크에서는 네가 얼마나 출세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튜브_빅토르] https://www.youtube.com/watch?v=VoMGsSdopHU 

덴마크에서는 네가 얼마나 출세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덴마크에 인생학교 졸업한 학생 비영어권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한 정치 인생학교 출신의 요나스(Jonas No Sjølund)[중앙]와 기독교 인생학교 출신의 빅토르(Viktor Vase Frandsen)[오른쪽] 이 두 학생은 현재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2년 반동안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을 하고 있단다. 사실 인간이 행복해지는 첫 걸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덴마크에서 이런 인생학교가 자리를 잡는데 150년이 걸렸다고 하니 이제는 완전히 자리가 잡혔다고 한다. 이런 교육의 초석을 놓은 사람은 덴마크 시민대학의 아버지 니콜라이 그룬트비(N
icolaj Grundtvig 1789-1872)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인생학교를 해본적이 없고 이제 걸음마단계라고 할까요. 혁신학교 틈새학교 대안학교 꿈틀학교 쉼표학교, 방과후학교 등을 막 시도하려고 하죠 우리의 현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삶과 유리된 교육) 지금은 교육을 국가가 독점하는 시대에 발생하는 도시폐교 등의 폐단을 망가지는 도시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수도 있다 

덴마크와 한국 행복지수 1위와 41위의 차이는 뭔가 복지는 국가주도로 행복은 민간주도하여 국가 민간 가정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되는데 덴마크는 그런 점에서 성공적이다 (개인주도) 지식(입시)교육과 삶을 위한 인간교육의 차이: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한국교육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대학(상위단계)이 갑이 되고 유치원초중고(하위단계)는 을이 되는 종속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 


학교는 있는데 교육이 없고 공부는 있는데 독서는 방해하는 방식이다 행복사회가 되려면 먼저 시민사회의 기초를 단단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피를 가장 많이 흘렸다 그리고 역시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독서교육일 것이다 책을 읽고 서로 비교하며 표현하는 교육훈련이 요구된다.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에선 말하기 교육을 대학에서는 글쓰기 교육을 가장 중요시한단다 홍대앞 등에서 본 한국여성에 대해서 원더플을 연발하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HAPPY FEW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르게 말하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소리다. 아니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의무사항이라고 강권하지만 인간은 그 노예근성 때문에 도무지 행복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행복의 시작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데서 시작한다. 여기 덴마크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 반 동안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탐색하기 위해서란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진정 행복한 것인지를 고민하기 위해서란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전혀 빨리 우리청소년의 선택은 거의 강제적이고 찰나적이다. 그러니 그 판단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내 인생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결정하는 데는 사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신중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가장 행복할까를 결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오연호 대표기자가 쓴 덴마크 표 행복의 길에 대해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가>는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덴마크 <인생학교> 학생들의 행복한 모습 사진저작권 오마이뉴스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우선 궁극적으로 모든 면에서 독립적 인간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예술가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는데 사람의 철학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 기준을 다를 수 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 중 아주 접근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우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사실 남에게 친절하기보다 자신에게 친절하기가 더 힘들다 이것 하나만 실천해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올 4월부터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교자유학년제 오디세이 학교>의 교육철학이 1) 넘나들며 배우기(Learning across borders) 2) 실행하며 배우기(Learning by doing) 3) 교사와 학생이 쌍방적으로 배우기(Learning by interaction) 4) 몸으로 배우기(Physical Learning)인데 이것은 50년 전 백남준이 제시한 예술철학(동서의 경계 없는 예술/액션뮤직으로 표현하는 예술/쌍방향 인터렉티브 아트/몸을 통해서 하는 Performance나 몸 철학을 근거로 하는 예술)과 너무나 똑같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