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중요전시행사

[뉴욕 브루클린] 오픈스튜디오 ISCP 미술축제 방문

[뉴욕 브루클린] 오픈스튜디오 방문 ISCP 미술축제 현장 방문

뉴욕 브루클린, 오픈스튜디오 방문 ISCP 미술축제 현장 방문

지하철 입구는 가장 뉴욕적인 풍물 중 하나다 Belford Avenue station in the center of Williamsburg 윌리엄스버그는 바나 클럽 레스트랑이 모여있는 곳으로 브루클린 부흥에 큰 몫을 했다 여기에 메인스트리트는 벨포르 지하철 L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맨해튼 소호수준은 아니지만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근처에 브루클린 미술관을 가보면 좋을 것 같다 토요일은 무료다 나도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200 Eastern Pkwy(Washingway Avenue / Classon Avenue) www.brooklyn.museum.org 


6월 8일 월요일 오후 부모가 덴마크에서 온 뉴욕커 Elisa Jensen 에 초대받아 그의 작업실이 있는 488 Morgan Avenue를 방문하다예술가들과 영어대화에서는 전혀 막히지 않는다 

진짜 뉴욕의 새로운 모습 여기는 브루클린 여기서는 다양한 예술이 실험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스튜디오 오픈 행사에 참가했는데 작가의 숫자만 해도 서울의 100배는 되는 것 같다 이 작가 중 그중 하나다 모든 사람이 쉽게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곳 관객의 특징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 묻고 또 묻고 그러다가 좋은 대답이 나오면 그때부터 탄성이 터진다


브래드(작가)가 오래간만에 페북에 얼굴을 올렸네요 옆에서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만난 여성작가가 보이네요 이 작가가 남성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여성과는 100%다르다고 할까요 상당히 쿨하고 여류롭다 자신의 의도과 관계없이 한국여성은 역시 피해의식이 크다. 여성들이 자신감이 있어선지 남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상당히 관대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처럼 경계하는 걸 보기가 힘들다 

뉴욕 브루클린지역의 다양한 미술프로젝트가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 작가와 그 친구 

이것은 그냥말로 이동미술관이다 현대미술에서 모바일은 가장 핵심적 요소이 모바일아트라고 하던가. Bushwick Open Studios 행사중 하나다 


윌리엄스버그의 명성이 왜 생기는지 조금을 알 것 같다 스튜디오 오픈행사는 기존의 오프닝행사와 다른 무엇보다 축제감으로 넘친다 댄싱 향연 대화 방담 퍼포먼스 디자인 장식미술 건축 패션 등등 그 전시방식이 다양하다 

Bushwick OpenStudio 2015 

여기에 나도 참가하다 주변에 50여개의 갤러리가 있었군요 Bushwick Open Studio 2015 “This Brooklyn neighborhood has more than 50 galleries — as well as murals and other art hiding in plain sight — spread over roughly two miles.” – Joshua Barone, “Weekend Miser: An Art Festival in Bushwick” New York Times, 6/1/2015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과 친구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일단 뉴욕의 작가수는 우리의 100(?)배가 되는 것 같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이다. 깨지기 전 디카의 거의 마지막 사진들이다 

[09]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이야기 


여기서부터 윌리엄스버그가 시작된다. 이 미술동네에 들어서면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와인바 등등 고급스러운 공간들 그리고 많은 갤러리들이 자리잡고 있지요 내가 카메라가 없어서 다 찍을 수가 없다 오늘 브루클린 미술중심가 윌리엄스버그에 가서 뉴욕에 온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해튼의 첼시와 브루틀린의 윌리엄스버그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Northside Festival] 

NORTHSIDE FESTIVAL 윌리엄스버그 취제 그 분위기가 시간이갈수록 더 고조된다. 축제도 놀아본 사람이 놀아본다고 축제를 이상화하다가 이런 큰 축제가 오면 평소의 실력이 모아져 폭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부만 학습이 아니라 놀이도 학습니다 놀이는 공부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학습이다 


지금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을 맞아 축제감이 충만하게 넘친다 28도의 무더위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낮의 시간이 길어 충분히 노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일종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세탁하는 과정인데 이런 것은 한 사회구성원의 잠재한 아이디어와 숨겨진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 거리풍경과 스트리트 음악 인간의 창의석을 도와주는 것을 바로 어린시절의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보는 것 그리고 각별한 연애감정의 회복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축제는 그런 면에서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축제에는 자생적인 것과 조작적인 것이 있는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축제는 성공한다. 이런 축제에 대한 평가를 두고 볼 일이지만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것 같다. 사람들 얼굴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와 여유를 되찾고 내면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면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왼쪽은 예술가처럼 생격는데 자신의 작가는 아니고 친구 중 예술가가 많단다 헤어스타일 짱이다 Vaniche(오른쪽) 배우이고 음악가이다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을 맞아 거리에서 만난 아티스트 Vaniche(오른쪽) 배우이고 음악가인데 촬영 중 

FESTIVAL 윌리엄스버그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사진은 112 N 7st street에서 찍은 사진 경찰이 교통을 통제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폭력성이 드러나기는 힘든 것 같다. 참여자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관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상당한 수준의 축제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 주변이 이루말할 수 없이 시끄럽다 일종의 사운드아트 performance 주도하는 여자의 모습이다 어떤 카페에 들어가면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컴컴하다 일종의 분위기 조성인데 그 어둠만큼이나 대화의 목소리를 커지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얼굴에서 그 본능적인 몸짓과 숨겨두었던 언어가 튀어나오면서 인간은 점점 자유롭게 해당된다 거리에서 본 FREE YOUR MIMD라는 것이 그런 뜻인지 모른다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 중에 영화를 촬영하고 있네요 아니면 방송취재 중 거리의 축제 중에 이런 이색적 촬영장면을 보는 것은 축제와 잘 어울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미국사회에서 흑인문화가 과연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 나는 잘 모르지만 음악부분에서는 사실 흑인음악이 미국문화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백인들이 그렇게 엘비스플레스리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미국의 흑인음악에 대한 열등감에서 온 것이라라 

Victoria Brea 내가 승리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 여자 내 선글라스를 빼어가고 쓰고는 다시한번 찍으란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다르게 99%백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몸의 선이 섬세한 미인이다 한국제 선그라스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나 멋지다면서 내가 쓴 모습도 나쁘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안경을 벗으면 더 예쁘다 NORTHSIDE FESTIVAL 윌리엄스버그, 역시 아르헨티나사람들은 다르다 내가 처음에 그냥 슬쩍 사진을 찍으면서 어색해했는데 다시 한번사진을 찍으라는 사인을 보내는 나는 더욱 신이 나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아르헨티나 팀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내가 역시 최고연장자라 시니어 같이 나왔군요 맨가운데니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ㅋㅋ 어린애가 가장 예쁘네요 이 사람들이 하도 설처되니까 나는 벙 찐 얼굴이다 


아르헨티나 남자들 다들 미남이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천진한 아이처럼 좋아한다 오른쪽 2번째 남자는 설치작가로 이곳에 2블럭 지난 거리에 작품이 소개되고있다 이름은 FEDE SAENZ다 삶과 축제가 하나로 잘 어울려지는 한마당이다
 

윌리엄스버그 거리풍경 역시 미국의 영웅은 두 사람 워홀과 바스키야다 오른쪽 여성의 패션도 바스키야를 닮았다 


여기는 윌리엄스버그 안에 있는 맥캐런 공원(MacCarren Park) 여유로운 풍경이다 

오늘 브루클린 미술중심가 윌리엄스버그에 가서 뉴욕에 온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해튼의 첼시와 브루틀린의 윌리엄스버그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근방의 또 다른 공원풍경이다.' 

[03]백남준이야기_그의 흔적을 찾아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플랫인스티튜드 미대풍경] 

플랫 인스티튜드 메인 게이트이다 

이 미술대학의 캠퍼스는 미대답게 다양한 색채의 변주가 일어나고 있다 나무 아래 붉은 색조의 화초가 장식예술처럼 잘 관리되어 있다 

이 조형물의 용도를 알았다 바로 의자다 

[캐나다 스트렛퍼드 공원에서 찍은사진] 


공원 벤치 개인이 기부를 하면 이런 벤치가 생긴다 벤치에 시에서 기부자 명단을 새겨준다 잔지가 주는 행복은 그 어느 행복보다 크다 자연과 인간이 좋은 친구가 된다 

[캐나다 스트렛퍼드 갤러리 풍경] 

캐나다 스트렛퍼드 갤러리 입구 


내 마음에 가장 드는 작품 앞에서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둘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셋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하나 

[Exhibition scenes held in Gallery Stratford]_Jack Winn:Dark Matter Exhibition April 14 to July 12, 2015 


This solo exhibition by Stratford artist Jack Winn is comprised of large-scale structural impressionist paintings that use current mathematical theories in astrophysics and quantum chromodynamics to explore the deep mysteries of our universe, life, and time/infinity. The work depicts the beginnings of our universe, the mysterious forces of dark matter, and the miraculous existence of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 neutrinos. Winn uses a combination of automotive, oil, and acrylic paints to create a surface that appears both wet and dry. 

The viscosity of the automotive paint contrasts with the rich black oils, highlighting the play between neutrinos and dark matter as small dots of paint blink in and out like extinguishing and birthing stars. Referencing the mathematics underpinning nuclear fission, fusion, Pi, and M-Theory, this work grapples with the profound concepts of our creation and the reasons for our consciousness. 

Curated by Aidan Ware. “Seeking to understand our existence, to clutch our universe through lyrical mathematics – Winn’s paintings feel like visual poetry, touching the darkness of the unknown." ~ Aidan Ware, Director & Curator 

[Exhibition in Gallery Stratford] 재슨 슈바르트 인물사진전 Jason Schwartz Fragments
 
Jason Schwartz is an author and photographer Doors open at 6 p.m. Jason's talk takes place at 7 p.m.. 


Toronto-based Jason Schwartz is an author and photographer. He penned the book "The Ghosts That Haunt Us" and his photography exhibit, Portraits of Holocaust Survivors, has been seen all over North America. Most recently, his photography exhibit was at TheMUSEUM in Kitchener and Gallery Stratford.

홀로코스트 생존자(Holocaust Survivors)를 만나 그 주인공을 만나 증언을 듣고 그들을 사진 찍다 

[홈페이지] http://www.stratfordperthmuseum.ca/ 

[스트랫퍼드 대극장 앞] 

작가명 Sorel Etrog 작품명 Large Bull 1969 

Romanian born artist Sorel Etrog(born 1933) was a renowned contemporary sculptor, a member of the Order of Canada (1994) and the designer of the Genie Award... 


미국여고생인지 다른 도시 여고생인지 스트렛퍼드 대극장 앞을 견학하고 있다 

[02] 캐나다 연극도시 스트레트포드 시 한 가운데 흐르는 강 풍경 
-캐나다 스트렛퍼드 방문중 사진은 이 도시 한가운데 Avon River 호수공원

Avon River 근처의 고인의 가족이 기부하면 시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는 벤치를 이렇게 만들어준다주말에 열리는 작은 아트시장의 풍경이다 여기서는 주말마다 작은 미술시장에 열린다 


캐나다에서 만난 화가 Taffany Horrocks 그녀는 그림도 그리지만 주말에 직접 그림도 판매한다 I met by chance a painter Taffany Horrocks in Stafford city in Canada. Then she also sell directly her paintings outdoor art market every weekend. J'ai rencontré par hasard une peintre Taffany Horrocks à Stafford ville au Canada. Puis elle vend aussi directement ses peintures au marché de l'art en plein air chaque week-end. 내가 머무는 집 바로 옆에 호수공원 Avon River Stradford city 주위 풍경 지역작가가 직접 작품을 들고나와 작품을 팔기도 한다 


자연의 미를 최대로 살린 도시 스트랫퍼드 

자연과 문명의 조화 속에 질이 높은 삶의 스타일이 뭔지를 생각하게 하는 도시다 

자연의 풍요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도시 스트랫퍼드 

스트랫퍼드에서 흔히 보는 공원 바로 옆에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는 Avon River 가 있다 

캐나다 원주민 아트 갤러리 하나 문화인류학자가 보면 좋은 장소다 

캐나다 공항


뉴욕 한달 이상과 워싱턴에서 하루, 캐나다 등에서 10여일을 보내고 7월 4일 귀국 

40여일간 2015. 05.27-2015.07.05 이번 캐나다 토론토 밴쿠버 스트랫퍼드 그리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를 보고 서울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모든 분의 덕분이다 한국지인들과 아이리스선생님과 조미영선생님 미국친구에게도 안부 전합니다 이번에 가장 큰 소득은 미국인 작가들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된 점이다 그들에게 진정 감사한다. 특히 나에게 보름 간 잠자리를 제공한 로드니와 줄리엣에게 더욱 감사한다  I have just arrived at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n Seoul also greet to american friends Raphaele and Michael, Claudia, Naomi, Rodney, Juliet, Brad, Elisa, Chitin Lui, Frank, Samuel etc 

[뉴욕한복프로젝트] New York Hanbok Project "한복을 입고 뉴욕을 걷다" 프로젝트 
뉴욕한복프로젝트 사인아트 퍼포먼스 New York Hanbok Project Sign Art Performance 

New York Hanbok Project Sign Art Performance And I would like to walk to the street of New York wearing a hanbok with the traditional beauty of Korea 제가 퍼포머가 되고요 뉴욕에 가서 김세진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거주하는 집에 사는 작가나 유명작가의 사인을 제 한복에 받아오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그러니까 귀국 후 이 한복(두루마기)이 캔버스가 되고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5> 전 개최] 


김기라, <떠다니는 마을 Floating Village> 

2007 골드스미스 컬리지 파인아트 석사 졸업, 런던, 영국2002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환경조각과 석사 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2014 <가상 윤곽: Hung-Chih Peng&Kira Kim 2인전>, 아트이슈갤러리, 타이페이, 타이완2013 <Artist Lunchbox>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2012 <두개의 문> 김기라, 신학철 2인전, Gallery 157, 서울, 한국2010 <공동선_모든 산에 오르라!!> 두산아트센터, 서울, 한국2009 <Super Mega Factory> 국제갤러리, 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SBS문화재단 공동 주최/한국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 지원, 육성 [후보작가] 김기라(1974), 나현(1970), 오인환(1965), 하태범(1974)의 새로운 프로젝트, 사회에 대한 발언들 8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관 3, 4 전시실에서 개최하다 

10월 6일 ‘2015 올해의 작가’ 최종 1인 선정 및 시상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김정배)은 SBS문화재단(이사장 윤세영)과 공동 주최로 오는 8월 4일(화)부터 11월 1일(일)까지 <올해의 작가상 2015>전을 서울관에서 열린다. 




지난 3월 ‘올해의 작가상 2015’전 후보로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 작가가 선정되었다. 후보 작가들은 각 작가별로 나뉜 전시공간에 최근작을 포함한 새로운 작품을 전시한 후, 최종 심사를 거쳐 10월 6일 최종 1인이 ‘2015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다.


하태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Gaze on the Incident > 

2009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예술대학 조소학과 졸업(MFA), 독일200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2014 <White-시선>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한국2013 <대화법 - 협업프로젝트> 홍은예술창작센터, 서울, 한국  <WINDOW> 스페이스 15번지, 서울, 한국2012 <White-2012>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서울, 한국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전을 계승하여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새롭게 개편된 시상제도이다. 2012년부터 한국 작가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육성을 위해 SBS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하여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과천관에서 진행되었던 전시가 올해부터는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올해의 작가상’은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 운영을 위해 운영위원회, 추천위원단, 심사위원단을 각각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 미술계에 발전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해오고 있다. 


김기라 작가는 <떠다니는 마을>을 통해 불확실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현 작가는 서울의 도시 개발과 독일의 역사적 경험을 연결시킨 연구물 <바벨탑 프로젝트-난지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오인환 작가는 공간적 의미의 사각지대를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확장하기 위해 <사각지대 찾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하태범 작가는 사건/사고 현장을 전달하는 대중 매체와 이를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재해석하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선보인다. 

나현, <바벨탑 프로젝트-난지도 The Babel Tower Project-Nanjido> 

2005 옥스퍼드 대학교 인문학부 석사 졸업, 영국199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2014 <PRO-JECT>, LIG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나현 개인전>, E&C Gallery, 후쿠이, 일본2012 <A Song of Lorelei>, 갤러리정미소, 서울, 한국2011 <나현-보고서-민족에 관하여>, 성곡미술관, 서울, 한국 


이처럼 개성 있는 주제와 독자적인 표현력을 지닌 후보작가 4인의 전시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면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인환, <사각지대 찾기 Finding Blind Spot> 

뉴욕시립대학교 헌터컬리지 석사 졸업, 뉴욕, 미국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2014 <사각지대 찾기>,스페이스윌링앤딜링, 갤러리팩토리, 서울, 한국2012 <거리에서 글쓰기>, 신도리코문화공간, 서울, 한국 2009 <TRAnS>, 아트선재센터, 서울, 한국 

<올해의 작가상 2015>전의 후보 작가들은 SBS문화재단 창작 후원금(4천만원)으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전시기간 중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통해서 10월 6일 ‘2015 올해의 작가’ 1인으로 최종 선정된다. 또한 후보 작가 및 최종 수상자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현대미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SBS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을 통해 12월 중 방영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올해의 작가상’은 선정된 작가에게는 작품 창작의 동력을 불어넣고, 문화예술계에는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 및 담론을 이끌어내어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 서울관 Graphic Symphonial 2015.08.11-10.18서울관 


Graphic design exhibitions of Korea and Japan held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Seoul as a memorial 50th anniversary of diplomatic settlement right between Korea and Japan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 <交, 향 (Graphic Symphonia)>-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그리고 한·일 디자인 문화 50년 기념 <交, 향(Graphic Symphonia)> 전 112명의 대표작가 작품 400여점소개 심포지엄, 세미나, 창작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양국의 디자인 문화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 제공한다 

전시 제목 <交, 향>은 ‘서로 어우러져 진동한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출발, 한국과 일본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문화가 만나, 서로 어우러져 즐기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자는 화두로서 선택하였다. 이를 위하여 전시 외에 학술행사, 좌담, 워크숍 등을 진행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 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전시장은 한국과 일본의 1세대 디자이너 대표작을 비롯해 20세기 한·일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 섹션과 한·일 디자인 연대기 및 한국 디자인스튜디오의 역사와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아카이브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전시공간] 한국과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의 작품이 소개된다. 한국의 ‘권명광’, ‘김현’, ‘조영제’의 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와 마스코트 호돌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기업 디자인과 광고 포스터 등 현대적 디자인의 시작을 이끌었던 작업이 전시된다. 타이포그래피와 편집디자인 분야에서 한국의 현대적 그래픽디자인을 탄생시킨 ‘안상수’, ‘이상철’, ‘정병규’의 출판물과 작업들은 우리 문자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일본 그래픽디자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가메쿠라 유사쿠’, ‘나카무라 마코토’, ‘나가이 카즈마사’, ‘다나카 잇코’, ‘후쿠다 시게오’ 등의 작품도 소개된다. 1964년 도쿄 올림픽 포스터부터 상업광고에 이르는 일본 그래픽 1세대의 광범위한 작업과 스기우라 코헤이의 ‘만다라’ 시리즈 등 일본의 주요 출판물 약 60여권을 접할 수 있다. 


[두 번째 전시공간] 한·일 양국의 중견 디자이너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신진 디자이너까지 아우르는 그래픽 디자인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포스터, 잡지, 북디자인, 인포그래피, 패키지, 캘리그래피, 아이덴티티 그리고 영상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장르를 총망라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공간에서는 자일리톨 껌 패키지와 이세이 미야케의 <PLEATS PLEASE> 연작 포스터로 잘 알려진 ‘사토 타쿠’, 유니클로의 아트디렉팅으로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사하는 ‘사토 카시와’, 무지(MUJI) 아트디렉터로 잘 알려진 ‘하라 켄야’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시도로 그래픽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김영나’, ‘슬기와민’, ‘워크룸’ 등 한·일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역들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아카이브 공간] 한·일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의 연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그래픽 디자인 문화>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203 인포그래피연구소가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의 그래픽디자인 역사 50년을 사회문화와 더불어 살펴본 연대기, 한국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튜디오 문화에 대한 설문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피 그리고 한국의 스튜디오 문화를 이끌었던 대표 디자이너 10인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별히 전시장 출구에는 대형 플로터를 설치, 특정 시간마다 전시기념 10점의 포스터를 출력하여 관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학술행사와 워크숍] 한국과 일본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조망한다. 8월 12일 개최되는 디자인 심포지엄 <그래픽 심포니아>에는 김현, 슬기와민, 이재민, 나카가키 노부오, 오쿠무라 아키오, 하라켄야 등이 참여하여 한국과 일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9월 2일 개최될 <디자인 세미나>에서는 ‘디자인 교육’을 시작으로 10월 까지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의 미래’ 등을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디자인 상황을 심층적으로 돌아본다. 또한 8월 20일, 21일 양일 간 ‘의성어+의태어+음악+춤+캘리그라피+타이포그라피 실험’을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 창작 워크숍, 9월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 워크숍 ‘Think about tree'를 연다. 

[배수영_Take The Ego] 2015.08.13–2015.09.21 나무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 gallery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21-15 11:00am-6:00pm [매주 월요일 휴무] NaMu modern & contemporary, ㈜씨에이치이엔티 아래작품 Effloresce _ plastic bottle, LED, Mixed Media 2013 


[작가노트] 저는 ‘설치 미술’을 하는 작가. “평면에 부착되거나, 단독으로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오브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 설치 미술의 핵심이라 생각헌다. 공간 속에 오브제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 혹은 어떤 오브제를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어 탄생한 것이 ‘설치미술’ 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순간 소비되고 버려지는 소모품들,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되는 현대문명의 쓰레기들. 언젠가 제 역할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폐품들을 선택하여 ‘오브제’로서 작품으로 재탄생 시켜 새 생명을 부여하고자 했다. 선택된 이 폐품들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지만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전자제품, 그 안의 ‘전기회로’와 융합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된다.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찰, 그리고 주변을 채우고 있는 인간문제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날실과 씨실의 교차, 그 무수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천은 우리네 인간사를 보는 것만 같다. 베틀의 운동이라는 일정한 힘을 통해 날실과 씨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을 만들어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사 역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관계를 맺고 이 관계들이 모여 만든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룬다. 

[...] 뿐만 아니라, 원료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지녔다는 점과 그 형태 역시 선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천이 가진 가변성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나아가 삶의 모습, 그 흐름의 변천으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어 나갈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물체들을 사용하는 것은 비단, 폐품의 재탄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입체적인 물체를 평면 혹은 3차원의 공간에서 재배열, 재배치 함으로써 기존에 평면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국한되었던 회화의 무대를 뛰어넘어 열린 공간, 즉 생활공간으로 예술의 무대가 확장됨을 의미한다. 작가 오사카 예술대학 박사수료 

[이은경전_쉰 하나의 섬] 2015.08.11-08.20 갤러리 담 - 시적 동심의 섬 풍물을 그리다 
www.gallerydam.com 


[작가노트]섬은 몸으로의 통증이 된다. 그림은 섬이 되었다. 숱한 나날이 지나 간 흔적과 짧은 생각들의 외침으로 머릿속에 홀연하게 서 있다. 표현한다. 섬의 이미지로. 깊은 시름의 달이 박히는 푸른 풍광, 침잠하는 현실, 흔들리는 초록빛, 풀들을 눕게 하는 바람결, 뜨거움과 차가움을 삼킨 바다와 남겨진 섬들의 흐느낌이 들린다 
여수대학교 미술교육과 및 홍익대 대학원 졸업 

[1965년 베를린 K-456로봇] 'Unsinn du Siegst' 넌센스 당신이 승리자' 

1965년 베를린 K-456로봇 

West Berlin, Federal Republic of Germany (Western Germany). Title in German reads 'Unsinn du Siegst!' 

Various shots of June Paik and Charlotte Moorman giving performance of action music in Berlin street and in a small club. It is referred to as nonsense! Woman makes various noises on cello while Asian man operates two hand made robots, small crowd looking on. A girl is American. In a small club she makes noises by using cello and breaking or hitting various objects. She breaks glass, talks, whistles, etc. People looking on. Man assisting her blows a balloon and another man pours water over his head. (Comb. F.G.) 

Date found in the old record - 21/06/1965. 

24시 전시를 끝내고 나오면서 백남준 샬럿 정장을 하고 K-456로봇 발명품을 선보이다. 
[동영상자료] http://www.britishpathe.com/video/action-music-in-berlin 


백남준 33살 샬럿은 31살인가요 정말 미남이고 예쁠 때 보여준 2인 퍼포먼스 

기계공학이 세계최고인 독일에서 백남준 K-456로봇 발명품에 독일인들 놀라다 

Robot Opera, 1965 Paik and Moorman trying in vain to perform in front of the Brandenburg Gate in Berlin, 1965. (Photo, Jürgen  Müller-Schneck) 

사진 삼성리움미술관 

자동차(20세기 기계시대)의 종언과 컴퓨터(21세기 전자시대)의 시작을 알리다] <20세기의 조직숭배 문자숭배 소비숭배 자동차숭배 굿바이> 1997년 작품 20세기 기계자동차속도와 21세기전자고속도로의 속도는 게임이 안 된다 Photo copyright Samsung Museum of Art [It announced the End of the 20th century(machine age:car) and the beginning of 21st century(electronic age:computer) 백남준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20세기 자동차시대는 가고 21세기 SNS 컴퓨터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다


1997년 10년에 1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1997) / Skulptur Projekte Münster 1997 / Sculpture Projects Münster1997>가 뮌스터 베스트팔렌 미술관에서 열렸다. 백남준은 슐로브 광장에 음향장치가 장착된 32대의 자동차를 설치한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32 cars for the 20th century)>를 설치한다. 이 작품의 부제는 <모차르트 미사곡을 연주하라 황혼녘에서 밤 11시 30분 사람들이 불평할 때까지(Play Mozarts Reguim Quietly)> 그는 20세기 3가지 특징은 <조직폭력, 미디어, 자동차숭배>로서 모두 소비주의의 공통인자가 포함되어 있다 -김홍희 저 굿모닝 중에서 1997년 독일 뮌스터의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됐던 이 작품은 쇠와 중력,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20세기 문명의 종말을 선언한 작품이다. 작품의 구성은 1924년형 윌리 자동차로부터 1959년형 뷰익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발전사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는 자동차 32대로 되어 있다 

[56회 베니스비엔날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21세기 모든 미술은 베니스로 통한다. 이번에 밀라노 국제엑스포와 기간이 맞아떨어져 미술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두루 생활예술까지 다 즐길 수 있다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will run 9th May to 22nd November 2015. The exhibition takes place at the Giardini, the Arsenale and in various locations across the city of Venice. 


왼쭉부터 56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수상자 임흥순(IM Hueng-Soon) 외 El Anatsui, Susanne Ghez, Adrian Piper et Adelina Cuberyan von Furstenberg. PHOTO LUIGI COSTANTINI, AP 베니스비엔날레 수상자를 찍은 이 사진에 한국인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매우 유쾌하다 이것은 미술계에 노벨상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2등이지만 장르도 비디오아트라는 점이 재미있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즐거운 날이다 백남준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는 독일대표로 나가 독일국가관 상을 받은 것이다 

Accrochage Martial Raysse (Détail) au Palazzo Grassi. Crédits photo : Photo Arthus Boutin Pinault Collection © Martial Raysse by SIAE 2015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금상작가 'El Anatsui'의 작품을 보면 그는 정말 천재 중 천재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 그의 작품을 보면 정말 혼미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코카콜라 깡통으로 만든 것이 많다 그렇게 력서리하게 보일 수가 없다 현대예술은 다 버린 것을 모아 그것을 최고의 미학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의 국제전(본전시)에 참여한 한국의 임흥순(46)이 국내작가론 첨으로 '은사자상'을 받다(미술계에서 상다운 상은 처음) 올 베니스비엔날레 뭔가 터질 것 같았는데 결국 터졌군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임흥순이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소재로 국내와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 촬영한 95분 분량의 영화작품 '위로공단'이 9일(현지시간)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시상식에서 이같이 선정됐다고 전했다.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한국의 수상 이력으로는 국가관 전시에 참여해 전수천(1995), 강익중(1997), 이불(1999) 작가가 참여하던 해에 한국관이 3회 연속 특별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국가관이 아니라 본전시에 초청받은 국내 작가가 은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일보
 

[관련사이트] http://universes-in-universe.org/eng/bien/venice_biennale/2015 

[뉴욕타임스_베니스비엔날레 입문서(1895-2013) 비디오로 소개] 이런 기사를 보면 참 마음이 뿌듯하다. 베니스비엔날레역사의 골자를 단 몇 분만에 다 이해할 수 있다. 백남준이 왜 뉴욕타임스에 반했는지 알 수 있다 <iframe src="https://player.vimeo.com/video/126650715" width="500" height="281" frameborder="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iframe> 노란부분 클릭하면 화면보임 

Okwui Enwezor, director of the 2015 Venice Biennale 
[사진출처] http://uk.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3/december/05/okwui-enwezor-to-head-up-venice-biennale-2015/ 

[현재] -2015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총감독 -독일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디렉터 [경력] -1983년 뉴저지대학 정치학 전공 -1996년 제 2회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총감독 역임 -2002년 카셀 도큐멘타 11 총감독 역임 -2008년 제 7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역임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아예술위원회 위원 임명(임기4년) -2012년 파리 라 트리엔날레 수석큐레이터 역임 -하우스 데어 쿤스트(독일 뮌헨 소재) 디렉터(2011년 재직 중)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부총장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학장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전시소개 및 기자와 일문일답[1시간30분]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KfQO6bRyYXc#t=25 
56회 베니스비엔날레 갈 수 없는 처지라면 이것이라도 즐기면서 현장감을 느끼면 되겠죠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W6BauAgfyMU&feature=share 

뉴욕모마특별관(MoMA PS1) 임흥순 (베니스비엔날레은상수상자)전시소개
 
IM Heung-soon: Reincarnation On view May 3–August 24, 2015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egd5 

임흥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는 <위로공단>을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고, 사라져버린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또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머나먼 곳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이론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신념과 마음을 전달했다"이라고 말했다. 사진저작권 김창제 

- <위로공단>이 '세계의 모든 미래'라는 올해 비엔날레 주제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비엔날레는 세계 현대미술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베니스 같은 경우는 현대미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큰 전시를 생각하면서 작업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왔던 것은 로컬(local) 그 자체였다. 총감독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성향과 주제가 맞았다고 생각한다." 

-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로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과 대화한 적이 있나. 
"오쿠이가 수상 이후 파티에서 '축하한다, 너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 덕분에 이런 전시에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서 고맙다, 아시아의 노동 문제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임흥순 작가가 전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 

[경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152153285&code=960202 

지난 10일(현지시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본전시에 초청된 영화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46)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의 수상은 120년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에서 한국 작가 개인으로는 처음이다. 전수천(1995)·강익중(1997)·이불(1999)이 참여했던 한국관이 세 차례 특별언급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본전시는 비엔날레 총감독이 국적과 상관없이 작가 개인을 지명한다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임흥순 비디오 작품 <부활 환생 윤회> 모마분관에서 8월24일까지 전시. 아래 화면이 너무 아름답죠 가난을 정말 미학적으로 잘 표현했네요 The screen(above) express that the poverty is the most beautuful thing in the world in the way of the aesthetic view 

<위로공단>은 특히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다룬 95분짜리 장편영화다. 영화가 시각예술 범주에 들어가기는 해도, 통상 ‘미술’의 범위를 뛰어넘는 풍부한 내용과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임 작가는 “지금처럼 노동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이런 소재의 작품이 수상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보람 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비엔날레 현지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 
"베니스는 나도 처음이었다. 미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상당히 많이 관람한 듯하다. '95분짜리를 어떻게 보냐?'고 하시는데, 보는 사람들은 계속 보게 된다. 상대적인 것도 있다. 본 전시 전체가 총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배치가 중요하다. 

처음 봤을 때는 동선도 안 좋고 공간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처음 스타트(입구)에 들어서면 그곳이 한 번 쉴 틈이기도 했다. 기존 작품들은 이론적이면서 개념적인 반면에 (나의 작품은) 실질적이고 현실감을 살려주니까 관객들에게 조금 더 세게 전달해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앉으면 계속 보게 된다." 

- 전시 공간에는 몇 명 정도 들어가는가?
 
"20~30명 정도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다. 스크린도 상당히 크게 준비했다. 아마도 베니스 비엔날레 중 가장 큰 스크린인 듯했다." 

-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은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 개인적인 소감과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얘기해 달라. 
"개인적인 소감은 영광이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작업들 때문에 생각할 여유가 없다. 수상 의미는 20년 정도 지나서 생각해보고 싶다." 


가난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부끄러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사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난이 예술이 주는 영감은 엉청나다. 박수근이 그랬듯 그는 그 가난함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비디오아트에 탁월한 안목으로 잡아냈다 가난의 예술화는 작가에게 최고의 난제인데 임흥순은 그런 면을 잘 소화시켰고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설득시켰다 그래서 그의 이런 예술관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통한 것이다. 남이 다 버린 분야를 그는 예술화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험과 모험을 중시하는 남이 만든 길이 아닌 스스로 길을 만드었다는 면에서 아방가르드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IM Heung-soon’s work explores the ongoing process of modernization and globalization in Korea as seen through the eyes of older generations whose lives have spanned these momentous shifts. Where the artist’s prior work has concentrated on male roles in Korean society, Reincarnation (2015) centers on ...a group of women who were dancers in the ad-hoc entertainer community – referred to as the “foxhole circuit” – that performed for Korean troops during the Vietnam War 

[손정은교수] 오늘 내가 아주 좋아하는 대학 선배님을 모시고 "위로공단"을 보았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한마디로 "must see" 다큐멘터리임에도 줄곧 몰입감을 가지고 보았는데, 작가가 말하는 "미안함이 나의 창작의 힘"이 무슨뜻인지 알 것 같았다. "미안함"은 감상자인 나 또한 상영시간 내내 갖게되는 감정이었는데, 그것은 분노와 수치심이 결합된 죄의식이었다. 
... 
영화의 주인공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큰 상을 받은 감독이 아니라, 영화 속 한 명 한 명의 노동자였다. 나는 감독에게 두 가지를 매우 감사한다. 첫째는 유행과 상관없이 끈질기게 이러한 작품을 지속하기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둘째는 큰 상을 받아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한 노동자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나는 돈을 벌어서 공부를 하고싶다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 노동자에게 "공부"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학문한다는 것"을 동일시한것이 아닐까...생각했다. 그 외에도 느낀점이야 정말 많지만, 나는 저 영화를 대통령과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모마분관 귀국 하루 전 임흥순전을 보러갔는데 월화요일 휴관이라 아쉽게 보지 못하다 

The women featured in the film decamped for Tehran in search of the prosperity and sophistication the city represented in the 1970s. While most of the male troops returned to Korea after the war, these women emigrated permanently to Iran, marrying and starting families there. Through the two distinct channels that comprise the video, the artist investigates ways of conceiving a whole self in the context of constant cultural and geo-political disjunction by examining the memories and identities of these women who came to occupy two distinct worlds. Reincarnation forms another chapter in the artist’s larger project of addressing the painfully entrenched psychic and emotional scars left behind by processes of growth, and the necessary internal suppression of trauma that occurs in the aftermath of warfare. 

IM Heung-soon: Reincarnation is organized by Mia Locks, Assistant Curator, MoMA PS1. The exhibition is made possible by the MoMA PS1 Annual Exhibition F
und. 
http://www.momaps1.org/exhibitions/view/400
 [임흥순 그는 감독인가 작가인가 

[2015년 임흥순 베니스비엔날레 은상수상자와 관련된 기사] 

임흥순 I '사적인 박물관 II' 드라마영상. 아카이브1-5 중 하나. 촬영장소: 상갈그린공원 2011 ⓒ 백남준아트센터 ...
 

[TV는 인류학자, 주부들의 재탄생] 다음은 임흥순 작가의 '사적인 박물관 II'(위 이미지)를 감상해보자. 여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용인시와 수원시에 거주하는 발랄하고 유쾌한 주부들이다. 작가는 주부들과 함께 다섯 번의 워크숍을 거쳐 위 작품을 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텔레비전을 시청 만하는 입장이 아니라 드라마에 참여하는 위치로 주부들을 탈바꿈시켰다. 

임흥순 작가는 현지 조사, 직접 인터뷰 등을 통해 작품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해 옴니버스 형식의 비디오로 완성했다. 그렇게 사적인 인간(주부) 박물관을 영상에 담은 셈이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매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보다 자유롭고 독립된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은 불공평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백남준 
[이제는 백남준을 이야기할 때다 19] 최고 전성기에 최고 위기를 맞다(1994-1996)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epce 

로제타석(石)에 쓴 백남준 예술의 골자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이 로제타 석에 백남준 예술론이 요약되어 있다. 

백남준은 같은 해 로제타석(石) 형식에 영어·프랑스어·독어·일본어·한국어 5개 국어로 자신의 예술의 골자가 담긴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Ich mag das chaotische sibirisch-mongolische[독일어])"거나, "굿의 어원은 '얼' 즉 정신자체이니 미디어와 굿은 거의 같은 말이다[한국어]"거나 "의심할 여지없이 나의 몽골선조들은 이 문화로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Mes ancêtres mongols m'inspirent sans doute ce nomadisme culturel[프랑스어]" 등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그의 예술은 몽골전승의 굿과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고, 전자시대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라는 해석이다. 백남준에게 '미디어'란 중세개념으로 신과 교류하는 '매개체(meditator)' 혹은 '영매(靈媒)'를 뜻한다. 다시 말해 굿과 샤머니즘, 미디어와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게 아니라 같다는 설명이다. 

또 백남준이 이런 몽골의 샤머니즘에 열광하는 이유가 거기에 모든 예술의 원천이 되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굿에서도 보면 무당이 산자와 죽은 자마저도 소통시키는데 세상에 이렇게 원활할 '미디어'가 어디 있는가. 

이런 면에서 볼 때 백남준은 서양과학이 추방시킨 야생적 사고의 복원을 요구한다. 서구에서 끔찍한 나치 역사가 그에게 큰 각성을 주었으리라. 그래서 백남준은 야생적 사고와 원시적 상상력 결핍이 현대인의 비극은 낳는다고 봤고 이것은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레비스트로스와 같은 맥락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백남준 생일 7월 21일을 맞아 그의 2000년 작품 야곱의 사다리 페북에 포스팅]


Guggenheim Museum is posting his work Jacob's Ladder in 2000 on Facebook to celebrate the birthday of Nam June Paik Nam June Paik's artistic comrade and video artist and his wife Shigeko was dead in 23 July 2015 at 110 mercer street Soho in NewYork 

'백남준의 세계_서울전(The world of NJPaik in Seoul)' 2000.07.21-10.29 로댕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백남준 구겐하임 뉴욕전에서 삼성재단의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전시 


[보도자료]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삼성미술관이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백남준의 세계'(7.21~10.29)전은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창조적r인 매체로 활용하면서 작품과 관객간의 상호 소통성을 이룩한 백남준의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기념하고, 새 천년 신작으로 해외에서 호평받았던 레이저 작품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 기획전이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백남준의 새 천년 신작 레이저 아트에 다시 한 번 전 세계가 감동하고 있습니다.... 병마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백남준의 40년 예술 세계를 호암갤러리, 로댕갤러리에서 직접 만나 보십시오." 

총 40년에 달하는 예술적 창조의 기간동안 늘 혁명성을 구가하며 미술사의 전면에서 활약했던 백남준의 작품을 비디오 전사(前史), 비디오 시기, 후기 비디오 시기(레이저 작품)로 나누어 전시하는데, 100점의 출품작이 내용과 규모에 따라 레이저 작품은 로댕갤러리에서,비디오작품은 호암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된다. 

로댕갤러리에 상설 전시되어 있던 <지옥의 문>을 금속판으로 마감하고 그 위에 물과 거울을 이용하여 8m 높이의 지그재그형 레이저 설치물<야곱의 사다리>를 설치 하였다. 이 작품은 바닥으로부터 천장에 다다르기 위해 빛의 반사를 이용해서 힘겹게 사다리를 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지상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마련한 구원의 상징물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과 함께 전시장 중앙에 50대의 TV모니터와 함께 천장 스크린에 레이저 그래픽이 전시되는데,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소용돌이 패턴 사이에 주역의 괘를 그려 넣어 이 세계가 우주의 움직임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감미로움과 숭고함>이라는 작품이다. 

이 세 가지 구성요소가 한데 어울려 <<동시 변조>>라는 환상적인 전체 작품을 이루게 된다. 이 레이저 작품은 Norman Ballard와의 협력 외에도 삼성 레이저 연구팀의 지원을 받아 각종 장치 및 시스템을 보완하여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들보다 한층 완성도 있는 작품을 시연하게 된다. 


이 외에도 테크놀로지와 자연이 결합한 형태의 작품 <TV 정원> (1974/2000), <촛불 프로젝션>(1988/2000)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작품 창조에 동참할 수 있는 Interactive Art로서 <참여 TV>(1963/1998), <임의적 접근>(1963/2000)등이 국내 최초로 호암갤러리에서 공개된다. 

그리고 유년 시절을 보낸 한국에서부터 일본, 유럽, 미국 등을 거치면서 살아온 백남준의 다양한 시대들을 반영하고 있는 최근의 자서전적인 작품들인<보이스 프로젝션>(1990/2000)과 <몽고의 텐트>(1993)는 로댕갤러리에서 전시된다. 또한 비디오 아트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비디오 물고기>(1975/2000), <TV 시계>(1963/ 2000)를 비롯하여 <촛불 TV>(1975/2000),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 <TV 시계> (1963/2000), <TV 왕관>(1965/1998~9), <로봇 가족>(1986) 등과 함께 백남준 사상의 원류를 추적할 수 있는 기록 필름과 오디오 테이프, 사진, 포스터 등이 함께 전시된다. 

이번 '백남준의 세계'展은 티켓 1장으로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부모님과 함께 읽고, 풀어 보는 어린이 감상교재 등이 제공된다. 

이번 전시에는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렸던 백남준 최초의 개인전인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에 출품되었던 <조정된 피아노>(1958-63)가 추가되어 국내 최초로 호암갤러리에서 특별 공개된다.음악가였던 백남준이 피아노 연주대신 가시철사나 인형, 사진, 장난감,브레지어, 깨진 달걀 등 각종 잡동사니를 피아노에 부착한 작품으로,백남준의 초기 행위예술 작품이 오브제 형태로 기록된 독보적인 작품이다 

또한 백남준 자신도 손꼽는 걸작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짜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며>(1997/2000)도 추가로 공개되는데,이 작품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대표적 성과물인 자동차에 폐기 처분된TV모니터를 적재하고 모짜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한다. 이는 20세기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로댕갤러리 외부에 전시된다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비디오아티스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시게코여사의 영전에 조의] 

[뉴욕타임스 시게코여사 추모기사] http://www.nytimes.com/2015/07/28/arts/design/shigeko-kubota-a-creator-of-video-sculptures-dies-at-77.html?smid=fb-share&_r=0 

오노 요코가 고인이 된 시게코여사와 백남준에게 보낸 친필카드 ⓒ Iris Moon 

Nam June Paik's artistic comrade and video artist and his wife Shigeko was dead in 23 July 2015 in NewYork 구보타시게코 여사를 추모하며 인터뷰 기사(2012.7.19)를 하나 올립니다 내한한 구보타 시게코 여사 인터뷰 사진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인 구보다 시게코(75) 여사 2012년 7월 1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구보다 시게코 여사가 기자간담회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인 구보다 시게코 여사 

구보타시게코 여사를 추모하며 인터뷰 기사(2012.7.19)를 하나 올린다  2012년 7월 1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구보다 시게코 여사가 기자간담회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http://bit.ly/NMiqxO 

- 백남준이 살아온다면 하고 싶은 말은, 그의 80회 생일 소감은? 
"남준, 당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당신도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백남준 어머니는 점을 잘 보셨는데 백남준은 집 없이 부랑아처럼 세계를 돌아다닐 거라고 무당이 예언했는데 어느 정도 맞췄어요. 백남준은 TV를 가지고 전 세계를 집시처럼 돌아다녔어요. 백남준은 공장 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지금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너무나 좋은 이 집에 모셔져 있느니 여기가 정말 백남준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트센터 관계자분에게도 감사드리고 싶어요" 

- 백남준은 어떤 예술가였다고 생각하는지?
 
"나와 백남준은 우선 플럭서스(fluxus) 멤버이자 같은 예술적 동반자였죠. 나와 백남준은 이미 행위미술에 공감하여 어려운 시절을 같이 동고동락했어요. 플럭서스 운동이 결국은 비디오아트로 발전한 거예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백남준을 알았지만 처음 만난 것은 1964년 뉴욕에서고 거기서 슈아 아베도 만나 '456로봇'도 만들었어요. 비디오아트는 초반에는 그 TV자체가 이동하기 어렵고 무겁고 잘 망가져 정크아트(junk art)로 취급당했기도 했죠.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에 그것을 옮기느라 백남준이 고생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인정을 받지만 당시에는 백남준의 존재 자체를 거의 몰랐어요. 비디오아트가 저급예술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고급예술이에요. 그는 남이 가지 않은 예술을 개척한 선구자로 21세기의 문을 열었죠" 

- TV와 로봇에게 생명을 넣은 방식의 예술을 서구에서 어떻게 봤는지? 
"백남준은 기술의 인간화를 지향했고 예술의 휴머니즘을 중시했어요. 기술은 단지 도구로 볼 뿐이에요. 그는 낡은 것은 파괴하는 창조자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어요. TV정원이나 TV부처도 다 그런 정신을 발휘한 거죠. 하이테크를 그냥 도구로 이용했어요. 그리고 백남준은 샤머니즘 요소가 강했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적인 것에도 심취했죠. TV를 부수는 행위가 그에게는 어떻게 보면 수행이나 명상이었을 거예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급진적 사고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죠." 

- 백남준이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뭘 할까? 
"백남준은 아직도 마이애미 집 근처 어딘가 해변에 있을 것 같아요. 백남준은 50대가 되어서야 귀향했는데 그때 선친 묘지에 갔어요. 그 주변에 무명무덤이 많았고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백남준은 무명무덤처럼 초야에 묻혀 사는 식이 아니라 내 옆에 카트린 이캄 작가도 같이 지내 알겠지만 파리나 뉴욕파티에 즐겨 참가하는 축제주의자였어요. 여러 곳을 두루 다니는 것이 그의 방식이고 세상을 사는 프레임이자 소통방식이었죠. 그가 지금 살아있어도 역시 그랬을 거예요." 

백남준 선생의 부인 구보다 시게코 여사가 암으로 투병하시다 2,3 일전 병원에서 백선생 곁으로 떠나신 듯합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플럭서스 멈버로서 주목받던 작가였지만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분이죠. 예전에 뉴욕작업실로 백선생님을 방문했을 때 한국정부가 백선생님을 위해 해준게 뭐있냐고 호되게 야단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고.. 후배들이 백선생님을 위해 더 노력할겁니다-김찬동 

제가 지난 6-7월 뉴욕에 갔을 때 시게코여사를 그렇게 한번 뵙고 싶었는데 도무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결국 영면하신 모양이군요 삼가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이제 백남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나도록 한국에서 백남준을 기리기 위해 한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시게코 여사도 그런 아쉬움 때문에 눈을 편히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게코 여사 한국미술계 사람들이 뉴욕 백남준자택을 방문했을 때 한국정부가 그동안 백남준을 위해서 해준 것이 뭐가 있나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고 하는데 하긴 한국에서 나온 백남준 도록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년이 10주년이나 국립현대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와 협업으로 그의 도록을 내고 그의 회고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큰 도록 스미소니언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테이트미술관 그리고 독일에서 나온 베니스비엔날레과 관련된 도록밖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 내용이 아주 빈약하다 그밖에 백남준의 <음악의전시_전자텔레비전>을 재현한 비엔나현대미술관(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 2009년 3월에 <백남준, 모든감각을위한음악(일명 MUMOK)>이라는제목의전시도록이 있는 것으로 안다 2...
007년 백남준1주년에 나온 국립현대미술관도록은 1963년 첫 전시에 관한 것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백남준에게 진 빚이 너무 많은데도 전혀 갚지 않고 있다 2013년 서울관 개관특별전할때 백남준이 한 코너에 달 TV 하나 소개되어 왜 국립에 백남준 작품이 없냐고 기자간담회에서 물으니까 백남준작가는 너무 큰 작가라 그 자료도 방대하고 그것을 담을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못한다는 대답만 나올 뿐 이제 대한 구체적 방안이 전혀 없다 국립백남준미술관이 없으면 국립미술관 안에라도 전시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시게코 인터뷰] 플럭서스 주소는 뉴욕 캐널 스트리트 159번지(159 Canal Street) 

Question: What happened when you came to New York in 1964? 
Kubota: George Maciunas came with a rented car and picked me and my friend Mieko Siomi up at Kennedy airport and took us directly to his loft on 159 Canal Street, which at the time was at the Fluxus center. That’s where I met everybody: Nam June Paik, Dick Higgens, George Brecht (who came from New Jersey), and many others, Joe Jones, Alison Knowles. All of us were poor and crazy. It was a most exciting time
.


[1982년과 2015년 33년의 차이] Difference between 1982 and 2015

33년만에 그의 작품을 통해 백남준을 뉴욕에서 만나다 

어저께 영국에서 공부한 이영미감독(2011년 작품 <사물의 비밀>로 데뷔)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백남준 영화를 연출해보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자신은 백남준의 열렬한 팬이란다 이감독과 나와 대화는 술술 넘어가는 술처럼 술술 잘 풀린다 7월 25일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시게코 섹슈얼 힐링 전시 장면 1997년 뉴욕 랑스 펑 갤러리 

http://www.medienkunstnetz.de/works/sexual-heeling/ 
http://www.heise.de/tp/artikel/3/3184/1.html 

Shigeko Kubota, «Sexual Heeling», 1997 
Sexual Heeling(Lance Fung Gallery, New York, 2000) | Photography © Shigeko Kubota



백남준과 시게코 지루한 힘든 투병생활이었다. 백남준은 왼쪽 몸을 못 쓰니 그는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Nam June Paik and his wife Shigeko in 1996. Nam June Paik was tedious and hard times. Nam June Paik did not move left part of his body so he would very much difficult ⓒ Richard Schulman 2000 

[Nam June Paik fell a sudden stroke in April Easter morning 1996 IN His house and STUDIO(SOHO 110 MERCER Street 5th floor NEAR NEW YORK UNIVERSITY) Because of overwork and too long plane ride] 

뉴욕 맨해튼 머서스트리트 110번지 5층 백남준의 집이자 작업실 

백남준은 1996년 4월 부활절 아침 초대받지 않는 손님 뇌졸중으로 그의 집이자 작업실인 머스 스트리트 110번지 5층에서 과로로 쓰러지다 이에 대한 부인 시게코의 상세한 증언을 여기에 옮기다. 1996년 3월 신시네티에 가겠다는 남준을 말렸다 그곳은 뉴욕보다 추웠다 지독히 추위를 타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존 케이지도 빙판에 넘어져 1달 이상 고생한 적이 있는 곳이다 "내 전시가 열리는데 어떻게 안가" 다행이 남준은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아이고 너무 춥네 추위 몸살이 왔다 그 피로가 가시기전 남준은 또...다시 호암상 수장으로 서울로 가야했다 

남준은 당뇨등 등 증세로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서서 전시장에서 쓰러져 잔 것도 결국 당뇨병에 그 원인이 있다 그는 단 것을 좋아했다 소변이 불편했다 하여간 다행이 별 사고 없이 남준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을 다녀온 다음날 1996년 4월 9일 머서 스트리트 5층에서 저녁 식사 갑자기 재치기 멈추지 않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구고든 바닥에 쓰러졌다 삽시간에 의식을 잃었다 왼쪽 반신을 마비시킨 뇌졸중이었다. 남준 정신 차려요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못했다. 4층에는 그의 조수인 본 매카바시가 살고 있었다. 주치의에게 연락해 앰뷸런스 불러 백남준 사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뉴욕대학 부속병원인 유태인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다 "그 외롭고 힘든 나날 가난의 터널 지나 이제 명성을 얻어 가는데 이렇게 쓰러지다니" 앰뷸런스 울고 응급실 울고 나는 엉엉울었다 좀 괜찮아질 거라는 간호사의 말에 거의 위로를 찾았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남준은 정신 차렸다. 핏기 없는 파리한 모습 남준은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걱정마 오늘이 부활절 나는 절대 죽지않을 거야" 일그러진 얼굴 평온 최악의 상태는 넘겼다 

일방병실 옮기자 백남준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남준은 말했다. "시게코 나 당장 나갈래 이런 곳에서 못 살아 병원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었다 절망적 상황 극단적 행동이 나온 것이다. 입원 다음날 새벽 5시에 한국인 조수 이정성씨에게 전화해 걸어 나를 빨리 퇴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소식에 이정성씨는 한숨에 달려왔다 새벽에 병원에서 퇴원을 허락할리없었다. 백남준은 뭘 그리 생각하는지 긴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는 말했다고 한다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서 생각해 내가 왜 이렇게 쓰러져야 하지 세상은 참 불공평해 신도 불공평하고..." 

한평생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분출하는 창작에 대한 영감과 열정으로 바쁜 그 자식을 낳고 키울 시간 없었던 그가 반갑지 않는 손님 불청객인 뇌졸중 이렇게 쓰러지다니 남준은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자신에게 닥친일이 믿을 수 없어 놀라고 슬퍼하 고절망했다 -나의 사랑 백남준 중에서 

[백남준에게 TV는 여성] 


백남준에게 TV는 여성이다 그에게 TV는 그래서 달이다. 그에게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옛날에는 달이 TV다. 프랑스어에서 TV는 여성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그래서 해의 미학이 아니라 달의 미학이다(MOON Sonata) For Nam June Paik TV is a woman so for him TV is a lunar 
백남준에게 TV는 자신의 예술을 연주하는 최고의 악기였다 For Nam June Paik TV was the best instrument to play his art /Pour Nam JunePaik TV était le meilleur instrument pour jouer de son art 

[1996-2005년 사이 백남준 작업실] 

Nam June Paik's Broome Street studio, NewYork 1999 

백남준 작업실 110 Mercer street, Canal street, Broome street & Greene street, Grand steet 에 있었다 아주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더 확인을 해 봐야 한다 Mercer street는 자택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이애미 공항에 공공미술관 작품을 설치한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마이애미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Nam June in his Mercer street loft 1999 Photo by Joe Huffman 

위는 스미소니언 전시 때 자료사진이고 아래는 백남준의 조수였던 라파엘레가 나에게 직접 준 사진이다 두 사진은 같은 장소 거의 같은 시기의 것인 것 같다 아마도 1999년 아래사진은 백남준 말년의 야심작 레이저아트에 대해서 논의하는 모습이다 

This is a picture which Paik's old assistant Raphaele gave me directly She was so young at that time


백남준은 정보수집의 천재적 능력과 노력, 정보수집의 장치를 만들어놓았다고 하네요. 심지어 한국신문도 많이 읽었다고 날마다 세계유명신문과 소통하고, 세계 1400명의 석학들 전문가들 연구자들(예컨대 나사의천문물리학자나 하버드대학의 생의학자 등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동서양 철학과 소통하고, 당시의 세계첨단의 모든 정보와 지식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단절된 문화를 네트워킹(연결)시키는 무당이었다 Everyday Paik communicated with the world famous newspapers and communicated with the 1400 world famous scholars and scientists and communicated with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y and communicated with all the information and knowledge at the time of the high-tech world, he was a shaman Networking the disconnected Culture 


여기는 백남준의 또 다른 작업실이다 Paik's Grand Street studios NewYork 1999 Photo by David Heald 

Park with TV Cello 2005 Photo by Jon Huffman 

백남준 돌아가기 1년전 사진 정말 힘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는 손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고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진이네요 아마 이때부터 미국뉴욕의 독립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선생님을 만나 마지막 작품 마지막 인터뷰 마지막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도 바로 그때쯤 나왔을 것이다 엄마라는 작품에 나오는 TV 컨텐츠에는 그래서 아이리스 문 선생님의 자녀분들이 주인공이다 

[백남준은 정말 맑시스트인가] 백남준은 진정한 맑시스트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이상적이고 평화적인 맑시스트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사 맑시스트를 엉터리라고 엄청나게 비판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보기에 백남준은 전혀 맑시스트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맑시스트인지 모른다. 이런 사실은 지금도 금기시되고 있고 내가 백남준을 공부하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하긴 경계가 전혀 없는 백남준에게 이런 문제는 정말 너무 하찮은 것이다 맑스가 권력과 재산을 공유하자고 했다면 백남준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자고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소셜 미디아 개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전자가 폭력적이라면 후자는 평화적이라는 면이 큰 차이점이다 정치와 문화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서 갈린다 

[베를린 백남준 국제세미나] 2015년 6월 30일 


베를린 백남준 국제세미나 독일에 백남준 전문가 다 모였군요 아이리스문선생님도 그리고 기획자 김순주 선생님 주제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미학에 집중되었군요 디터 다니엘스 교수(오른쪽에서 3번째)도 보인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인포아트 특별전] 때 소설가 김훈과 백남준의 1문1답 

[질문] 맑시즘으로부터 탈각해 나간 청년기의 정신 궤적이 궁금하다? 
[대답] 맑스는 제 청년기의 질환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맑시즘에 빠졌다. 나는 그런 이상하고도 강렬한 허영심이, 저뿐 아니라 지식인 전체를 향해서 어떻게 그렇게 밀려들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미신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인간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20세기 초 인텔리들은 ‘나는 피카소를 사랑한다’ 혹은 ‘나는 아인슈타인을 사랑한다’는 포즈만으로도 대중과 차별되는 정신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었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만으로도 그들은 귀족 행세를 할 수 있었다. 맑스는 내 청년기 때 지식인들에게 피카소나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존재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스탈린 대숙청의 광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도 우리는 그 광기의 본질을 헤아리지 않고, 여전히 맑시즘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귀족주의와 허영심이 기묘하게 결합된 심리 상태일 것이다. 그런 무지한 모순을 가능케 하는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백남준의 레이저 아트 삼요소 1997-2000 로댕미술관 삼각형 사각형 원형 이 안에 이 우주의 모든 과학 철학 문학 예술 종교가 다 들어있다 백남준은 이 작업을 할 때 한글창제의 원리에 쓰인 <천지인의 사상>을 도입했다 

[가장 세계적이기에 가장 한국적인 작가 백남준] 


백남준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세계적일 때 가장 한국적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인간이다. 그에게로 가면 모든 세계관이 뒤집어진다 

"카라얀이 너무 지겹고 / 마리아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고 / 그래서 로봇 오페라 로봇 오페라... " -백남준 자작시 "P.  Karajan is too boring and Maria Callas is too loud, So I love the Robot Opera, Robot Opera ..." - Paik's own verse/"Paul Karajan est trop ennuyeux et Maria Callas est trop criard, donc j'aime le Robot Opéra Robot Opéra ..." - propre vers de Paik 

이 시에 대해서 김수경 시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독일이 그토록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오케스트라를 조롱하고 오페라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마리아 칼라스를 시끄럽다고 한 예술가는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을 일종의 마니페스트(선언)이다. 이렇게 백남준은 서양예술의중심무대에서 서양예술의 권위를 꼬집으며 아방가르드 실험을 주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시인은 한국 그 어떤 정보 속에서도 이런 놀라운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했다.
[출처] http://newsletter.wooridul.co.kr/htmlcontents/736_200603.html 

[1] 2000년대를 시작하면 백남준이 선 보인 <호랑이는 살아있다>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Seoul> 2000 세종문화회관 1층로비 

This masterpiece video sculpture by Nam June Paik was broadcast to 87 countries via live satellite linking as a highlight at "DMZ 2000 : The Millennium Celebration which was held at the Imjingak outdoor stage at 0:00 am on Jan 1st 2000 Although he did not express such a kind of heart in common, this sculpture of installation work is included Paik's loving heart to Korea 

백남준은 천년의 세기가 바뀌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 그 전야를 넘어 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1월 1일 0:00 그 시간에 판문점 근교 임진각에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비디오아트(45분짜리)를 선보였다. 'DMZ 2000-새천년 통일기원'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나도 그 방송을 보는 순간 온몸에 찌릿찌릿했다. 그때 받은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드물게 백남준의 애국주의가 노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국공영방송 PBS 영국BBC주관 미국ABC 송신 미국 전역방송 전 세계 77개국 방송망을 탔다. 백남준이 전 세계를 향해 던지는 세계적 발언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한국적이다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밝다는 한국인은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메시지 담겨 있다 

이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내가 신화적 인물이 된 듯 하늘을 날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한민족의 생동감 넘치게 웅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TV첼로, 레이저아트, 퍼포먼스 등으로 함께 구성된 이 작품은 백남준이 '금강에 살어리랏다'의 노래로 시작한다. 새천년 전 지구적 평화와 공존, 한국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각오를 담겨있다. 

이 작품의 공동제작자로 되어 있은 이용우 미술평론가는 백남준은 한민족을 호랑이로 비유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한반도에 호랑이가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백남준은 그럼에도 한반도의 호랑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포효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단다. 한국은 20세기의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나와 21세기는 IT시대에 우뚝 설 거라는 메시지다. 

이 작품은 또한 새천년준비위원회 밀레니엄 이벤트 중 하나였다. 88올림픽 세계를 하나(Wrap around the world)로 1후 10연만 비디오작품으로 그것도 뇌졸중 쓰러진 후에 나온 작품이라 기념비적이다. 한민족의 용기와 비전 제시하는 것으로 21세기는 통일한국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기본의 세계적 보편주의와는 조금 다르다 또 여기에는 백두산 호랑이와 아프리카 사자 싸우는 백두산 호랑이가 이기는 북한 비디오도 들어갔다. 

애국주의를 그렇게 비판하던 백남준이 새천년에는 참았던 이 작품에서는 애국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 하나하나는 호랑이라고 말한다. 백남준은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도 한 마리의 호랑이로서 서구에 진출하여 매체예술현장에서 저들을 이기고 있으니 호랑이들이 당하는 역사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라고 

백남준의 이 작품이 TV를 통해서 1999년 12월 31일 방영되었을 받은 전율이 다시 떠오른다. 백남준이야말로 한반도 5000년 역사이래 세계를 호령한 진정한 호랑이였음을 나는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가 21세기 정보사회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의 유언 같은 예언을 우리가 잘 살려내야 할 것이다 

[백남준 세계최고 권력가 앞에서 전대미문의 해프닝을 보여준 그의 배짱은?] 
-문화칭기즈칸의 한 면모 어떤 의도이든 쉬운일 아니다 


1998년 6월 2일 김대중 전 대통령 방미에 맞춰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장에 백남준 부부와 그의 불편한 몸을 도울 장조카도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백남준은 클린턴 대통령 과 악수하다가 그의 면전에서 속옷을 입지 않은 채 멜빵 허리띠를 하지 않아 바지가 후루룩 흘러내려 하체가 노출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다. 보도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취재진에 잡혔다 

당시 클린턴 부인 다른 손님 들 얼마나 경악했겠는가 이것은 백남준이 몸이 불편해 생긴 단순한 실수였다고는 하는데 당시 이 상황을 두고 사람들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도 그렇다. 

우선 연이은 섹스스캔들로 부도덕한 클린턴을 비꼰 것이라는 설과 백남준의 전자초고속도로 아이디어를 클린턴이 훔쳐가 선고공약으로 도용해 이에 반발했다는 설과 끝으로 플럭서스 출신으로 백남준 미국대통령 같은 세계적 권력자 앞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기질과 배짱 제대로 보여준 예술퍼포먼스라는 설 등등이 분분했다. 

백남준의 이전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시 어느 기자는 백남준에게 전화을 걸어 무슨 의도냐고 묻기도 했는데 백남준 묵묵부답, 그의 플럭서스 동료들은 "브라보"를 외쳤고 시게코 여사는 백남준이 이런 말을 들었단다. "백악관 국빈만찬이라는 게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하는 기회인데 이왕 갔으면 해볼 것 다 해보아야지"라고 

[2009년 국제세미나 진중권교수 '백남준의 미디어미학'(10가지요약)] 


1. 비디아와 비디올로지(vediology)는 백남준의 예술적 신앙고백. 비디아videa는 플라톤의 이데아 idea유래. 
2. 비디올로지vediology는 도상학iconology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3. 구텐베르크 종이시대의 종언을 선언하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없으며 영상물과 비디오물이 있을 뿐이다. 
4. 백남준은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로 승부를 걸다 
5. TV는 모든 기술적 오작동을 통해 TV아트가 되었다 
6.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의 명제를 실천하다 
7. *랜덤 액세스(비정형-비연속-비결정 개척)-1963 선형성의 파괴 소음의 도입 관객의 참여 3요소를 담고 있다
8. 올드미디어의 아방가르드는 뉴미디어의 개척자이다 
9. 보들레르의 소리 색채 음향(공감각) 미학을 백남준은 미디어아트로 구현 
0. 백남준은 일단 알수 없는 길을 가는 가운데 작품이 완성된다. 창조적 우연성 "도(道 Tao)는 회로이다"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저자저
서 <미학 오딧세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미디어아트> 등과 역서 <컴퓨터 아트의 탄생> 등이 있다 

[종이통장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다] 


1968년 백남준의 종이 없는 사회에 대한 미니논문 For the Paperless society 

"21세기 예술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가진게 너무 많아 살 게 없기에 이제 보는 소비를 창조하는 것이다"-이제 사람들 더 이상 살 거 없어! 다 있으니까. 이럴 때는 뭔가 볼 거를 만들어야 해. 그게 바로 예술이야" -백남준


루벤스 시대의 뛰어난 화가는 임금 얼굴을 잘 그리는 것이고 현대에 오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거지. 결국 예술은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겠지.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던져주는 것, 사람들에게 무언가 할 거리,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거야. 요즈음을 보라고. 우리 주위에 어디하나 부족한 게 있냐고. 21세기는 살 물건이 없는 시대야. 뭐든지 다 있거든. 그러니까 무언가 할 것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거야. 예술가는 욕망의 창조자가 돼야 하는 거지."

"컴퓨터문화가 점점 증대되면 인간의 할 일이 없어진다. 생산은 많아지는데, 소비는 한정된다. 여태까지는 이런 잉여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젠 전쟁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삶의 이기의 모든 것이 포화되어 버린다. 냉장고도 다 사버리고 ,자동차도 다 사버리고, 이제 이런 건 20년이면 끝난다. 피시도 얼마 못 가서 다 팔아먹고 새로 팔아먹기가 어렵게 된다. 무슨 지랄을 해 본들 인간의 소유는 한정이 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란 뭐냐? 폭력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소비를 조장시키는 일이다. 전쟁이나 공해로 연결되지 않는 인간의 소비를 돋아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의 임무는 어떻게 하면 소비를 창안하느냐? 하는 것이다

[백남준전 베이징 카파아트뮤지움 2009년 4월 5일부터 5월 3일까지] 


백남준전 베이징 카파아트뮤지움 2009년 4월 5일부터 5월 3일까지 아래 작품 백남준 I 'W3' 이 작품을 보면 WWW주소의 원조가 백남준임을 알 수 있다. 가변설치 64개 TV모니터 1994. 백남준은 이 작품을 1초당 다섯 프레임 머물게 한 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속도로 세팅해 관객이 화면을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있다고 백남준의 전자기술자 이정성씨는 전한다 

슈빙이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판공가이 학장님이 중국 주요 귀빈를 모셔주셨고. 매우 잘 어울렸던 설치였다 재미 독립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문인희)이 기획으로 성사된 백남준 전으로 슈빙도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이소자끼의 건축물에 잘 어울리는 전시공간도 등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 

뉴욕에서 거주하는 문인희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돌아가시기 1년전부터 그와 함께 전시와 퍼포먼스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백남준 관련 전시를 11번이나 성사시켰다 백남준의 죽기 전에 중국전을 열망했는데 그것도 실현이 된 셈이다 


톱으로 피아노를 세 조각으로 잘라라 첫 번째 조각을 무솔리니처럼 매달아라 두 번째 조각을 히틀러처럼 태워버려라 변호사 없이 검사만 있는 인민재판으로 세 번째 조각의 운명을 결정하라 백남준 <미국 바가텔> 1962년 


백남준 1963년 지금부터 52년전에 첫 전시에서 전시장을 무질서의 도가니로 만들어놓고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 서구인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서구적 수직적 전시방식에서 관객이 작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참여적 수평적 전시방식을 도입했으니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전시장의 주인공은 관객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작가중심의 서구기존예술의 죽음을 선언한 셈이다 네 잔혹한 우월감에 빠져있는 서구미술판에 소리소문없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이죠 


백남준 1963년 첫 전시에서 피아노와 TV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특이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고 부수기도 하고(넥타이는 맬 수도 있지만 자를 수도 있고 뭐 이런 식의 사고방식) TV처럼 조작하기도 하고 오브제아트로 만들 수도 있고 조각으로 만들어 서구인들을 극단의 카오스 혼비백산에 빠지게 해놓고 너무나 좋아했다 그 당시에도 피아노가 비쌀 텐데 대단한 배포다 TV는 거의 집값 정도 되었을까 하여간 당시에는 상당히 비싼 것 어떻게 보면 호화판 전시다 기존의 서구인이 가지고 있는 전시개념을 뒤집어놓았다 그래서 백남준은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기서 피아노는 연주하는 하나의 기능에서 수천가지 역할을 하는 total 혹은 integral piano로 거듭나게 된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Art is not 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not Art -M.Duchamp 
예술을 끊임없이 예술을 무한대로 부정하는 것이다 뒤샹 백남준은 이런 점의 영향을 받다 반예술 플럭서스가 그렇죠 예술은 매스게임이 아니고 페스티벌이다 -백남준 Art is not a mass game, but a festival -NamJunePaik 백남준 그 자체가 미디어였다 -빌 비올라 NamJune Paik was a media itself -Bill Viola TV의 네트워킹은 노자가 말하는 도(道)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같은 것이다 -백남준 Networking in TV is like a Tao(道) of Lao-tzu or is like a Buddhist ties or Global ties -Nam JunePaik [백남준의 유머] 백남준은 유머를 통해서 그 시대가 풀기어려운 진지함의 수수께끼를 풀었나갔다 그가 보여준 최고의 역설이다 [일문일답] 기자: 당신에게 퍼포먼스는 뭔가 ? 
백남준: 축소된 우리 인생을 즉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안토니가우디展] 2015년 7월 31일(금) ~ 11월 1일(일) 8/31, 10/26휴관 오전 11시– 오후 8시(티켓판매 / 입장마감 오후 7시)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 3전시실일반 및 단체 문의 :02-837-6611, 070-4191-2200 www.antonigaudi.co.kr 


스페인 인간문화재 안토니 가우디가 스페인을 살려내는군요 문화인의 힘이다 

"곡선은 신의 선이고, 직선은 인간의 선이다" -안토니 가우디 


위대한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1852-1926)(가우디 악센트 주의, 출생연도/사망연도와 원문이름표기는 함께 가야함)를 조망하는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안토니가우디>이 오는 7 31일부터 11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열린다. 건축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장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이번전시는 탁월한 미적 감각과 독창적 양식으로 세계 건축과 예술, 디자인분야의 새로운 장을 연 가우디의 건축 도면, 디자인 도면,스케치,캐스트,가구,장식,당대의 기록 사진,멀티미디어, 건축물 모형 등300여점이 선보인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An Epic of Liberation Lee Quede]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f2v2 덕수궁미술관에서 2015년 7월 22일부터 11월1일까지 무료 

덕수궁미술관 입구 


이쾌대 전시 기자간담회 작품설명회 Press Conference 


이쾌대 작가의 자화상 Self-portrait of the artist wearing a hanbok(Korea Traditional Clothes) 큐레이터 김예진 작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박사급이다 


이쾌대는 한국적 서양화를 추구하다 그가 월북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그는 분단이 이렇게 오래가지 않고 곧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이쾌대 작품 

이쾌대의 대부분 작품은 아내에게 바치는 그림 모델도 다 아내이다 The couple 91.2*76cm 1930s Most of his(Lee Que de) work is a tribute to his wife And his modele in painting is his wife/La plupart de son (Lee Que de) peinture est un hommage à sa femme et son modele dans la peinture est sa femme 

군상-해방고지(Many human figures-The space of liberation) 1948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당시로는 여성의 가슴을 노출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당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그림이다 그는 당시 일본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했기에 일본화풍에 또한 많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To evoke Delacroix's Liberty Leading the People, but at that time is not so easy to work exposing women's breasts so it is quite innovative and progressive picture/Pour évoquer la Liberté de Delacroix guidant le peuple, mais que ce temps-la est pas si facile à travailler exposer les seins des femmes ainsi c'est tout à fait novateur et image progressive 

이쾌대(Lee Que de 1913-1965) 소녀상 45.7*38.3cm 1940s What a beautiful girl 


회화에 있어서의 박진감과 진취성 등을 역동적인 화필로 잘 표현하다 서양화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다 The advancement of the initiative(enterprise) in the painting is well represented in dynamic paintbrush This painting did not completely depart from the Western painting style. At any rate he was looking for a visionary eyes and significantly ahead of its time/L'avancement de l'initiative (entreprise) dans la peinture est bien représenté dans pinceau dynamique Cette peinture n'a pas complètement écarter du style de la peinture occidentale. En tout cas, il a été à la recherche d'un regard visionnaire et nettement en avance sur son temps 


군상-해방고지(Many human figures-The space of liberation) 부분화 인간사슬 형태를 통해 인류애 인간연대감 등을 표현했다고 할까 고통스러운 인간군상의 모습은 무슨 메시지인가 This work(Many human figures-The space of liberation) looks like to draw a love for humanity as a form of human chain So I felt human solidarity/Ce travail (Beaucoup de mondes-L'espace de libération) ressemble à dessiner un amour pour l'humanité comme une forme de chaîne humaine Donc, je me suis senti la solidarité humaine 

[프리다 칼로-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2015년 6월 6일(토)-9월 4일(금) 소마미술관 제 1-5전시실(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출품작 회화, 드로잉, 사진, 장신구 등 총 100여점 


여성의 우주적 대지성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
 2015.06.26(금) - 2015.10.04(일)  시간 10:00-20:00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제6전시실  홈페이지 http://www.modigliani.co.kr 서울경제 문의 1588-2618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Modigliani’s 1918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his last lover who killed herself two days after his death, is also part of the exhibition. It’s on loan from the Israel Museum in Jerusalem. 

이번 전의 포스터로 쓰인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를 보면 잔느가 무언중에 남편에게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잔느는 이렇게 그의 뮤즈가 되어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랑했고, 예술가로서 신뢰와 존경을 보냈다 

관객이 상당하다 


모딜리아니처럼 여성의 내면에 흐르는 잔잔한 표정과 내밀한 욕망까지 담아 여성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세속의 성모마리아처럼 신비하게 그린 화가는 드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면서 가장 여성스럽게 그렸다는 점이다. 

모딜리아니의 많은 여인의 초상화 중 역시 잔느의 것이 최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기에 헌신을 다했을 것이다. 그는 또한 그녀의 예민한 감성뿐만 아니라 미세한 숨소리도 놓치지 않았고 따뜻한 촉감까지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대표적 '에콜 드 파리'파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다.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를 비롯하여 브랑쿠시, 후안 그리스, 키슬링, 디에고 리베라, 샤임 수틴, 후지타 쓰구하루가 그들이다. 그는 이렇게 그들과 교류하며 코즈모폴리턴의 관점에서 세계미술계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어쩐지 어색하고 균형감도 없어 보인다. 기우뚱함, 무기력함, 눈을 그리다 만 것 같은 낯설고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잘못하면 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을 만함에도 모딜리아니가 이렇게 '데포르마시옹(변용 혹은 왜곡)'을 사용한 건 그 어느 작가도 흉내 내지 못할 인간내면에 잠재한 아름다운 영혼과 상처받기 쉬운 심성과 섬세하고 고귀한 감성 등을 담기 위한 그의 미학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를 두고 기념비적인 선이니, 그리스 조각 같다느니, 무표정의 아름다움이니 하지만 이는 모딜리아니가 아방가르드 작가로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창적 재해석으로 인물과 사물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려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전시장 아트숍 


'에콜 드 파리(L'Ecole de Paris)'는 '파리파'라는 뜻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파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화가들이 많았는데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약한 외국화가를 총칭하는 말이다. 

1900년 스페인의 피카소를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루마니아의 조각가 브랑쿠시, 네덜란드의 반 동겐, 독일의 에른스트, 스페인의 후안 그리스와 미로, 폴란드의 키슬링,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리투아니아의 샤임 수틴, 일본의 후지타 쓰구하루가 그들이다 

[광복70주년기념] 북한 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015.7.21-9.29 
[오마이뉴스 전시관련 포토뉴스] http://omn.kr/eo72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 프로젝트 전시 기자 간담회 press conference예술을 통한 남북의 소통을 중진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김홍희 관장은 말한다 Kim Hong hee the director of Seoul Museum of Art says " 
This exhibition is aimed to communicate through the art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으로 만든 피아노 이 피아노로 통일을 노래하다 Piano made of barbed wire as a symbol of division, with the piano one are playing the reunification of korea 

권하윤작가 디엠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3D등 다양한 기법의 영상 작업을 선보여온권하윤(b 1981)은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이다.북한이 자신들의 체제선전을 위해 DMZ 내에 세운 기정동 마을을 다룬애니메이션 영상작업 <선전마을>(2014)에 이어 3D 가상현실 기법을이용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DMZ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489년>을 이번 전시에서 프리미어 상영한다. 권하윤은 2014년 봄파주에서 머물면서 DMZ 수색대 출신의 군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기억으로 바탕으로 <489년>을 만들었다. 물리적 선 보다 심리적인 가상의선으로서의 DMZ가 더 강력히 존재하고, 그 가상의 선은 다시 실재를 더압박하는 현실의 아이러니 앞에 작가는 360도로 가상공간을 체험할 수있도록 24대의 카메라를 사용한 3D 가상현실 매체를 선택했다. 이 3D가상현실은 보는 이의 능동적이며 민주적인 시각적 자유를 허락함으로써더욱 더 정치적 도구화가 되어가는 DMZ 공간의 혼재성을 효과적으로담아내는 매체가 된다. 

전소정 작품 

북한출신으로 남한으로 내려온 남자피아니스트 와 남한출신 여자피아니스트가 같이 협연하는 모습 우리민요가 나온다 남남북녀의 만남이 아니지만 그런 형상이다 

전소정(1982년생)은 영상, 드로잉, 오브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이용하고 연극, 영화, 문학 등의 타 예술 장르의 특성을 미술에 접합해서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다.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먼저 온 미래>는탈북 피아니스트와 남한의 피아니스트가 만나 제약을 둔 음악적 대화와협의의 과정을 거쳐 함께 연주를 해내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이다. 여기서제약이라는 지점이 전소정에게 중요한데, 음(音)에 의해서 청각 외에특정한 색채 감각이 일어나는 공감각적 현상인 색청(colored hearing)현상을 이용해 관념적인 남과 북의 색과 음을 연결시키고 그것을 서로에게 
작동하는 제약으로 상정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회 체제가 다른 곳에서예술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과연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대립을예술가의 예술적 상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실험을시도한다. 

이용백 작품 

총과 꽃, 죽은 물고기를 먹는 물고기, 새의 깃털과 B-2폭격기. 이용백은 특유의 직설과 병치를 통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의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이다. 그 강렬한 이미지들은 실재와 가상, 구원과 좌절, 전쟁과 평화와 같은 작가의 묵직한 메시지들을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전달한다. 

이미지와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물음들을 당대의 정치 사회적인 주제로 연결시켜내는 집요함이야말로 그가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면서도 그 자체에 함몰되지 않는 이유다. 분단과 전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용백의 <입벌린 백두산>은 치아의 본을 뜨는 원리를 이용한 설치작품으로 2개의 백두산이 서로 마주보며 두 개이면서 하나를 이룬다. 

새의 깃털과 후추로 이루어진 B-2 스텔스 폭격기의 그림자가 결합된 <우리에게 희망은 언제나 넘쳐나>, 작가 자신이 소장한 총으로 쏘아 부서지는 지구본과 잡담의 소음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긴장감을 담은 영상작품 <지구는 어떻게 자전하는가>를 통해 일상화된 전쟁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 유화_로날드 드 그로엔 컬렉션(North Korea painting Ronald de GroenCollection) 

이밖에도 네덜란드 컬렉터 로날드 드 그로엔가 수집한 정형화된 북한 회화50여점 소개한다 로날드 드 그로엔 컬렉션은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이념과 사상의 변화, 그리고 조선화와의 관계를 읽어낼 수 있는 선전화 계열의 유화가 주를 이룬다. 컬렉션은 1960년부터 2010년까지의 만수대창작사, 함흥창작사, 신의주창작사 등 중앙과 지역 창작사의 작품을 갖추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 고르게 소개 될 예정이다. 북한 유화는 1950년대 소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유화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나, 점차 민족적 감성과 정서에 부합하는 미술의 강조로 작가들은 북한식 유화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에 작품은 밝고 맑음, 선명함과 간결성, 함축과 집중을 구현하는 동시에 북한의 감성과 정서를 토대로 한 작품 제작을 추구한다. 그 결과 작가들은 우리 민족의 얼굴과 체형을 관찰하여 작품에 그대로 표현하며, 우리 생활 정서와 환경을 소재로 삼으며, 사회의 사상과 이념을 내포하여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미술관자료 


2013년 북한에 다녀온 영국사진작가 NICK DANZIGER가 북한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북한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실상을 찍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In 2013 British photographer NICK DANZIGER went to the North Korea. He explained the difficult situation of North Korea in spite of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to interfere, He said He tried to take a reality in NorthKorea 

영국사진작가 NICK DANZIGER작품 2013 women's hair salon in NorthKorea 남북 어디나 여성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같다 

영국의 사진가 닉 댄지거NICK DANZIGER(b.1958)는 2013년 북한에서 보낸 3주간의워크숍의 결과물로 평양을 비롯해 남포, 원산, 사리원 등 북한 지역을방문하여 북한 주민들과 그들의 사소한 일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그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의 사진 속에는 어부, 무용가, 교사, 돌고래트레이너와 같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담겨있고, 평양의 지하철, 거리,미장원,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남포의 해변, 미곡의 협동 농장, 송도원의리조트 등의 다양한 풍경들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마가렛 버크-화이트와크리스 마커, 1970년대 구보타 히로지 등의 사진들처럼, 외국의 사진가들은인류애에 대한 사진가 특유의 호기심으로 북한을 기록해왔다. 닉 댄지거의사진도 그들의 연장선에 있으며 서구 사회에 폐쇄적이고 신비스러운 나라로알려진 북한 사회의 이면을 개개인의 삶의 풍경들을 통해 들춰내고 있다.
 

강익중 (IK-JOONG KANG)금수강산 혼합매체 가변 2015 Geumsugangsan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5 Artist IK-JOONG KANG has been working mainly inNew York 

수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듯이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우리 나라의강산을 일컫는 말이다… 자연 산천에는 남과 북이 존재하지 않듯이, 쉼 없이이어진 남북의 모든 산들을 생각하며 먹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진 3인치작품들로 지름 7미터 반원을 병풍처럼 세운다. 그 산을 배경으로 임진강을형상화한 강물 위에 달항아리들이 흐르는 이 작품은 단절과 경계를 넘어하나가 될 강과 산을 꿈꾸는 강익중(b.1960)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와 동시에 작품 후면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지지대들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감옥 처럼답답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동엽 개인전 Lee Dong-youb Solo Exhibition]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2015년 7월 17일(금) - 8월 23(일) 02-720-1524~6 회화 15점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ez8h 


학고재에서는 2015년 7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이동엽(부산, 1946-2013)의 개인전을 연다. 이동엽은 단색화 시발(始發)에 영향을 준 현대 회화 작가다. 첫 단색화 전시로 일컬어지는 1975년 일본 동경화랑, '한국 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이동엽, 허황, 서승원, 권영우, 박서보)' 전시에 참여했으며 이우환이 가장 아꼈던 작가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는 이동엽의 <사이> 연작 15점을 선보인다. 이동엽은 1970년대부터 약 50여 년 간 백색의 단색화를 꾸준히 제작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사이> 연작을 선보였다. 동양화를 그릴 때 쓰는 넓은 평 붓으로 흰색 바탕 위에 하얀 붓질을 반복하여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겹침과 스며듦을 담아냈다. 작가는 정신성의 구현을 위해 물질감을 가능한 배제하고 구도(求道)하듯이 무수한 붓질을 되풀이한다. 그에게 있어 흰색은 자연이 환원된 색이며, 의식의 여백이자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그리다가 만 그의 그림은 프랑스화단에서는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하네요 이런 화풍은 호남풍이라기보다는 영남풍이 아닌가 싶네요 절대적으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는 부산사람이기에 모든 단색화가 결국은 다 바다를 그린 것이다


학고재 이동엽 전시장에서 한컷 


이동엽은 제1회 앙데팡당전, 동경화랑 '한국 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 등 한국 현대 미술사에 남은 전시에 참여, 그 업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동경도국립근대미술관 (동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호암미술관 (용인) 등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있다. 2014년 아트아시아퍼시픽 잡지에서 미술비평가 로버트 라일즈의 '백색 넘어서: 오늘의 단색화 읽기'를 게재하며 주요 작가로 언급,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동엽전] 2015년 7월17일부터 8월 23일까지 학고재본관에서 


Lee Dong-youb Hakgojae Gallery cordially invites you to Lee Dongyoub’s solo exhibition from 17th of July to 23rd of August, 2015. Twenty artworks that were personally given to Hakgojae Gallery during artist’s lifetime will be on view, making this exhibition particularly more meaningful. Lee Dongyoub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critical artists who founded Korean abstract painting movement, Dansaekhwa. The artist is also known to be a favorite student of Lee Ufan, and had participated in a group show entitled Five Korean Artists, Five Kinds of White at Tokyo Gallery in May 1975, in which often credited as an exhibition where it introduced Dansaekhwa for the first time to the public. 


Since the 1970s, Lee Dongyoub created white surfaced monochrome paintings for over fifty years until his death in 2013. For Lee, the color white, is a void for consciousness and a vessel for thought. In the 1980s, the artist began to show his Between series paintings where he used wide brushes that were usually used in oriental paintings creating wide white brushstrokes on white backgrounds. Lee repeated countless brushstrokes to exclude materiality and realize spirituality like a truth-seeker. 


Lee Dongyoub left his achievements in Korean modern art history by participating in numerous significant exhibitions including the first Independants Exhibition. His artworks are now part of prestigious public collections at Tokyo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Japan),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and Ho-Am Art Museum (Yong-in, Korea). Lee is receiving global attention he was stated to be a significant artist in an article entitled “Beyond White: Reading Tansaekhwa Today” by an art critic, Robert Liles, published in ArtAsiaPacific magazine in 2014. 

[캔버스 위에 찰리 채플린 레이몽 사비냑(Raymond Savignac)]_20세기 가장 위대한 포스터아티스트 기획전 
상상마당에서 2015년 8월 30까지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비주얼 스캔들(visual scandal)>전 캔버스 위에 찰리 채플린 레이몽 사비냑 Raymond Savignac 20세기 가장 위대한 포스터아티스트 기획전 홍보광고물이 일종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예술이 되다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비주얼 스캔들(visual scandal)>전 캔버스 위에 찰리 패플린 레이몽 사비냑(Raymond Savignac) 20세기 가장 위대한 포스터아티스트 기획전 "포스터는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손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포스터아트는 사람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찬라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 -사비냑( Raymond Savignac) 


1971년 프랑스의 정치상황은 아무리 신문을 읽어도 알 수 없는 시대였다는 것을 풍자한 그의 포스터 요즘 한국과 상황과 비슷했군요 아무리 신문을 읽어도 세상사를 알 수 없자 머리자체가 신문이되고 말았네요 

A: 나라와 시대가 달라도 정치란 게 비슷비슷하지요. 전 신문의 정치면을 아예 안 읽습니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다 거짓말이 되니까요. 정치가의 동의어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동서고금이 그랬으니 앞으로도 쭈욱 그러겠죠. 

B:
 인생 사는게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치는 더더욱 그런 것 같고요 캐나다 아줌마하고 이야기할 때도 정치에 대한 비하가 심했습니다 정치기사는 하루만에 쓰레기가 되지만 문화기사는 한해가 지나도 보석이 될 수 있으니 문화부에 일하는 사람으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비주얼 스캔들(visual scandal)>전 캔버스 위에 찰리 채플린 레이몽 사비냑 Raymond Savignac 20세기 가장 위대한 포스터아티스트 기획전 홍보광고물이 일종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예술이 되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인상파전 폴 뒤랑-뤼엘 컬렉션전] Discovering the Impressionists: Paul Durand-Ruel and the New Painting June 24, 2015 - September 13, 2015 

아래 베르트 모리조 <화장하는 여인> “Woman at Her Toilette” (1875-80) by Berthe Morisot Credit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http://www.philamuseum.org/exhibitions/813.html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초기 회화 및 조각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의 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인류역사상 문화적 보물을 다 긁어모은 곳이다. American Metropolitan Museum in NY is a place where one scratch all kind of collections in human history and as a cultural treasures broken English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에서 한 컷 

이집트신전, 아프리카 토템, 잉카제국상징물, 중국도자기, 로마조각상 동서양을 아우른다. 유럽 이탈리아 17세기 19세기 프랑스 인상파미술 미국위인의 초상화 20세기까지 다양하나 이 미술관 1872년에 세워졌다. 미국은 남북전쟁 끝나고 산업이 폭발할 때다. 맨해튼 인구급증하고 뉴욕의 부가 팽창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예술품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폭발했다. 이 미술관은 200만 점 소장하고 있다. 부속미술관 클로이스터 맨해튼 북쪽에 있다. 여기는 미국사람이 가장 많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 이 관은 주로 모네의 그림이 많다 

미국사람도 여기를 오지 않으면 촌놈이 된다. 1층 이집트 관 신전 스핑크스, 장신구, 그리스 로마 유물, 장식미술품은 하긴 예술품이란 머리를 가장 많이 쓰고 인간이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한 것이라 그래서 고귀한 것이다 작품이다 적어도 3일을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좌충우돌이다. 무기류나 악기류 등은이곳 만의 특징이다 인류학 박물관 역할도 한다. 동아시아관도 있다 일본·중국·한국 한국은 삼성에서 만들었는데 아직은 초라하다. 뉴욕 가서 여기를 보면 본전 뽑는 것이다 중략 <이현송저 뉴욕사람들 참조> 

Gustav Klimt I 'Serena Pulitzer Lederer' Oil on canvas 190.8*85.4cm 1899 

Beautiful and stylish, Serena Pulitzer Lederer was a star of turn-of-the-century Viennese society. For this portrait, commissioned by her husband, the industrialist August Lederer, Klimt employed soft, sinuous brushstrokes to present Serena as an apparition in white. "An upright flower, long-stemmed … like a black tulip," enthused one critic when the painting was shown in 1901 at the tenth exhibition of the Vienna Secession—a group founded by Klimt and other artists four years earlier, with the aim of putting the city at the forefront of the international art world. The Lederers subsequently formed the finest collection of Klimt’s work in private hands.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갤러리 800-830) 

마네의 그림은 지금 봐아 너무나 현대적이다 

세잔 자화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갤러리 800-830) 

오른쪽에 마네의 수련이 보인다 

엘 그레코 작품 메트로폴리탄에서 본 작품 중 가장 큰 감동을 받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층 유럽조각과 장식미술(갤러리 500-556) 

그리스 로마의 다양한 조각작품을 볼 수 있다 


고갱의 원시주의 화풍은 나이들수록 더욱 나를 매혹시킨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이탈리아 미래파 Umberto Boccioni 작품 

마네의 그림은 회화의 평면성에 충실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본 여성 관객 뉴욕에서는 이런 패션도 가능하다 

메트로폴리턴 미술관도 솔르위 같은 현대적 작가작품도 소개된다 

[뉴욕 맨해튼 현대미술관(MoMA) 입구 모습 

뉴욕현대미술관 입구 

모마(MoMA)는 더 현대적이며 19세기-20세기 가장 유명한 명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세잔, 마티스, 고갱, 달리, 루소, 고흐, 샤갈, 피카소, 로스코, 폴락 등등 현대미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신령하고 신선한 곳이다. 이곳에 오면 내가 정말 모던한 도시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인류문화사의 최고 예술품이 집중된 곳이다. 결론으로 말해서 이렇다 백남준의 말 중에 선진 속에 후진이 있고 후진 속에 선진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는 뭐하다 한국이 좋은 점이 있고 미국이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1977년 3일간 뉴욕이 정전되었을 때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1000개의 상점은 약탈되고 1000개 이상의 방화사건 등 광주와는 비교가 된다. 폭력성은 잠재하고 있다 이것은 뉴욕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역시 모마에서 이 작품을 빼놓을수 없겠죠

모마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정말 압권이다. 나는 피카소가 주는 그림의 위력에 완전히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모마에서 이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이 강력하게 내 마음에 들어온다 


좋은 작품은 절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인류전체가 그 주인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작품이란 위대한 것이고 놀라운 것이다 

초현주의자 마그리크 그는 눈을 세상을 보는 창문 제목이 또한 초현실주의적이다 The False Mirror 1928 


르네 마그리트의 이런 작품을 보면 정말 현대적이죠 현대인의 삶이 그야말로 초현실적으고 그려지고 있는데 이 사람이 코뮌니스트였다는 잘 모르죠 그는 현실을 그리되 현실을 그리지 않고 환상을 그리는 그런 미술의 또다른 세계를 실제로 펼쳐보인 천재급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의 작품은 주로 신비한 분위기와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데페이즈망 기법(dépaysement)으로 유명하죠. 

데페이즈망은 우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대상이나 상황을 이질적인 상황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페이(pays)는 원래 땅이나 장소를 말하는데 그 단어 앞에 데(dé, 해체하다)가 들어가니까 그 땅을(그 어떤 물체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장소로 옮겨놓는다(배치한다)는 뜻이 된다 

그날 오후 4시나 모마에 입장해 거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역시 바스키야다 

잭슨 폴락의 가을을 보니까 죽어도 좋다 싶었다 



문화시대를 맞아 요즘 미술관이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부각되지요 시대의 변화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하려는 작품은 자코메티의 조각이 아니라 회화작품이다 정망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조각을 잘하면 회화도 잘 할수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같은 회화의 신선한 맛을 볼 수 있다 

앙소르 

앙소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화가다 인간의 위선과 과장 허세와 허영 그리고 삶의 축제가 변질되어 창조적이고 못하고 잘못하면 허무한 국면으로 흐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유사성의 표정과 가면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얼굴이 해골로 그려졌다는 것은 17세말 바니타스의 전통이다 

메레 오펜하임 '오브제-털로 된 아침식사' 1936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해진다 메레 오펜하임은 1936년 이 작품 하나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초현실주의는 친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면서 전복하기, 무의식이라는 또다른 세계를 통해 당시 1차대전의 발발과 파시즘의 대두를 비판했던 예술사조이다. 

메레 오펜하임의 이 작품은 모피로 만든 찻잔세트이다. 도대체 이게 뭔가? 모피로 대변되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보통 여성으로 대변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혼합해서 만든 이 오브제는 결코 약하지 않고, 그녀의 여성성 또한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는 역설을 표현한다. 

그녀의 모피 찻잔세트는 촉각적으로는 에로틱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만, 모피를 갖기 위한 과정의 폭력까지 집요하게 끄집어낼 수 있다. 모피 찻잔 속에는 다양한 이미지들과 폭력적인 남성성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여성성을 표현하면서 작가 자신의 주체성과 희망을 작게나마 엿보게 한다. 


유럽에서 큰 전쟁을 2번이나 일으킨 독일인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주의 기법으로 잘 드러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작품하나로 우리는 독일인의 무의식세계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독일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New Objectivity)의 대표적 작가 게오르그 그로츠(George Grosz)의 작품 '시인 막스 헤르만 나이서'(Poet Max Herrmann Neisse 1927년)이다 


세잔은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라는 새로운 발상법으로 서양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그의 사과그림을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물리적으로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림을 그림 속에 천연덕스럽게 그림으로써 그의 서양의 입체파의 원조가 되었다 

쿠닝을 보니까 정신이번쩍 났다 

<빨래하는 여인> 1888년도작품. 

인생을 살아가는데 빨래만큼 필수적인 것도 없다 박수근은 빨래터에서 그의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9가지 필수다 첫째 <밥> 문제 먹어야 하고 둘째 <잠> 문제 거처가 있어야 하고 세째 <옷> 문제 빨아야 하고 네째 <법> 문제 그 나라마다 다른 법을 지켜야 하고 다섯번째 <돈> 문제 ATM 여기저기에 보인다 여섯번째 <말>의 문제 소통이 되어야 하고 일곱번째는 <글>의 문제 뭔가를 남겨야 하고 여기에는 사진을 뺄 수 없다 여덟번째 만남의문제 전혀 예상하지 않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마지막 막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그 곳이 아니면 누리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새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미국미술이 세계최고라고 하지만 아직 고갱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폴락은 정말 천재인 화가죠 이런 작품의 색채나 구성이나 운동감 그리고 율동감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폴락은 이것마저도 다 버리고 오직 몸으로 그리는 액션페인팅에 도전해서 그야말로 우리시대 최고의 화가가 된 것이죠 절정의 포기야 말로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피카소도 그릴 수 없는 미국의 황량한 힘의 세계와 그 파워플의 비우티플을 보여준다 


뉴욕의 지하철은 정말 지옥철이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로스코는 그런 황량함에서 현대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긇어주는 이런 매매모호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본 것이죠 


뒤샹 그는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은 전시장에 가져다놓는 개념을 현대미술에 도입해 서양미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여기서는 창조라는 것보다는 선택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완벽한 창조가 있을 수 없음을 은근슬쩍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작가에 대한 권위적 위상을 부수고 민주적인 사유를 도입한 셈이다 


한국산수화는 중국에서 독립해서 진경산수화가 나왔고 프랑스는 이탈리아 풍경화에서 독립하여 푸생을 거쳐 인상파화가가 나왔고 미국은 유럽의 풍경화에서 독립하여 이런 드넓은 공간의 독립적인 풍경화가 나온 것이죠 이 작품이야말로 미국미술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름은 Rufino Tamayo 1899-1991 


미술관에서 명화를 찍을 때 사진 속에 어떤 관객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작품과 관객의 분위가 맞으면 대 성공이다 이 작품은 그런 개념이 없이 막 찍은 것이다 


20세기에 입체주의 미술운동은 확실히 혁명이었다 피카소 작품 


마티스는 피카소에 비해 단순하지만 그 급수에서는 전혀 떨어지지 않죠 사실 피카소와 마티스는 라이벌관계인데 서로가 경쟁을 하다보니 프랑스20세기 미술을 더욱 풍요롭게 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서로에게 윈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모마 아트숍 마티스와 마그리트 보기 좋네요 예술가는 정말 위대하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보는 일인데 미술관을 나오는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다 입장료가 아무리 비싸도 마음으로 그 보상을 다 받았다는 표정이다 

모마에서 작가나오미와 한 컷 

뉴요커 나오미(작가 겸 전시기획자)는나의 아망트라고 할까 그녀와 함께 모마에서 한컷 이날 모마에 무료입장에 공로가 크다 임시 프레스카드를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다 아직 서류제툴 미비로 받지는 못했지만 

[05] 모마미술관 3층 오노요코특별전 


모마 오노요코전 이 여자는 정말 센 여자라 우리나라에서는 19금이죠 이 전시는 내일 다시 소개드리죠 백남준과 오노요코 시게코의 미묘한 삼각관계이면서 라이벌관계이기도 했죠

"1963년 일본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오래전부터 알던 옛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껴다 남준은 늘 조용히 나를 지지하고 내 편을 들어주어 어려울 때마다 정신적으로 의지한 내 마음 속 부처였다" - 오노요코 백남준 회고의 말 중에서 "When I first met Nam June Paik in 1963 in Japan I felt a closeness to him, like an old friend from a long time ago. Every time I was difficult in my heart, he is the one I rely with a heart. He who was always quiet was my Buddha. He gave me a hand when I was in difficult situation and he always supported my position -Ono Yoko


우리시대의 마녀 혹은 미녀 예술가 오노요코의 퍼포먼스사진 여기에 보면 역시 백남준이 같이 등장한다 아닌가 하여간 다른 사진에서 보면 백남준이 나온다 

Museum of Modern Art: ‘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 (through Sept. 7) In 1971, Yoko Ono gave herself an imaginary solo show at MoMA by means of a few cut-and-paste photographs and some strategically placed newspaper advertisements. More than 40 years later, the real thing has come to pass and it was worth the wait. Enhanced by films and a soundtrack, the show is largely archival, with lots of works on paper, including the 151 hand-typed note cards that, in 1964, became “Grapefruit: A Book of Instructions and Drawings,” and demonstrate how radical this artist’s early experiments with language and performance were. A 2015 sculpture rounds things out. Sure to put you off balance, it’s a reminder of what a wake-up-to-life call that art can be, a message that this underestimated artist has been delivering for years. 212-708-9400, moma.org. (Cotter) 


앤디워홀 오줌으로 만든 작품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오노요코 여자의몸에서 나오는 물로 기막힌 작품을 선보이고 있네요 이것은 노자사상의 메타포이다 물방울 하나로 바위를 뚫는다는 동양적 정서를 반영한 것 같다. 느리지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이야 말로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물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다. 상당히 에로틱하다는 면에서 현대적이다 자세히 보면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전시장 바닥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앤드워홀 오줌으로 만든 작품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오노요코 여자의몸에서 나오는 물로 기막힌 작품을 선보이고 있네요 


오노요코전시장 옆에 아트숍 여러가지 다양한 제품 특히 오노요코도록과 관련상품이 팔린다 사실 작가들이 모마같은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면 최고급 영어로 된 도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전시장 인산인해 개념미술가로서의 오노요코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텍스트아트 나는 잘 모르지만 거의 일본 단시와 같은 문장에 적혀있다 


오노요코의 전시장 풍경 모마에서 처음 전시인데 모마는 다른 메인전시장에서 전시된 작가는 절대 전시하지 않는다고 아이리스 선생님의 설명이다백남준도 이미 구겐하임에서 전시를 했기에 모마에서는 전시가 없었는데 사실 백남준은 모마가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여간 오노요코의 위상을 미국에서 백남준의 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후대에 평가를 할 때 백남준이 오노요코보다는 한수위인 것은 틀림없다 


체스와 엉덩이 춤 그림 이건 20세기 미술혁명의 진원지가 된다 바로 몸과 도박(아방가르드한 실험정신)이 중요하다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실험이다 사실 모든 그림을 결국 여성의 엉덩이와 버자이너를 그린 것이다 뒤샹의 변기는 또한 여성의 버자이너를 상징한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성행위를 말한다 요노요코의 똥파리가 천천히 지나가는 버자이너영상은 시케코의 버자이너페인팅보다 더 세다 19금이라 여기서는 생략한다 미국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없지만 ㅋㅋ 

모마 오노요코 특별전 도록과 아트상품 

모마 오노요코 전시장 나는 봉이김선달이다 


여기가 모마 6층 레스토랑인데 오늘 제가 내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난 곳이죠 그가 누군가 하면 백남준의 마지막 전시를 기획하고 그의 예술에 홀려 지금도 전세계에서 백남준 기획전을 열고 있는 아이리스 문 선생이죠 오늘 제가 아이리스님이 사주는 런치 및 디저트를 대접받았는데 그 메뉴가 사실 제가 처음 먹어보는 것이네요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냄새와 음식의 맛이 아닌가 싶네요 


뉴욕 일요일 정말 지축을 울리는 소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진통하는 하루 그야말로 축제의 도시 음악이 이어지니 어깨가 절로 움직여지는 그런 곳이더군요 사실 지나치게 소음이 심한 도시죠 존 케이지가 왜 소음이 음악이라고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되었습니다 지저분함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이상한 냄새는 사실 하루만 지나면 중독이 되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네요 내일모레 독일베를린에서 열리는 백남준국제세미나에 참가하시는 일정에도 시간을 내셨네요 백남준의 유작 <엄마>가 바로 이 선생님의 기획으로 성사가 되었죠 TV 내용 중 따님 3분도 나온다고 하네요 


백남준기획전을 국내외적으로 11번이나 하셨네요 오늘의 주인공 아이리스 문선생님이 모습이 드디어 나타났네요 저에게 사주신 특별요리가 뭔지도 먹어보네요 오늘을 조금 수줍은 모습이네요 사진실력이 없이 그녀의 외모를 따라가지 못하네요 

[뉴욕은 정치적 긴장이 전혀 없는 도시라 편하다] New York has a good atmosphere because there are no tension to give or form political power to the people 뉴욕이 좋은 점은 정치권력이 풍기는 긴장감이 전혀 없다. 표현의 자유에서 방해를 받는다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워싱턴보다 훨씬 뉴욕은 그냥 마음이 편하다. 보스턴처럼 고매하지 않다. 뉴욕은 원래 장사꾼의 도시다. 세계금융의 도시 월가가 있다. 이민자중 가장 많은 수가 먼저 발을 딛는 곳이다. 가장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산다. 뉴욕은 출판, 미디어, 광고, 패션, 예술 등이 산업을 지배한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권위 있는 신문이 있다. 미국부자들이 가장 많이 산다. 반면 빈민가는 믿을 수 없는 만큼 비참하다. 뉴욕시민 중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없다. 파리처럼 무단횡단은 다반사다. 

[구겐하임 오프닝 리셉션] 

구겐하임 미술관 입구 

[구게하임] 구겐하임과 모마 현대미술의 색감과 현대미의 집합소다. 여기는 현대미술이라 메트로폴리탄보다 마음이 가볍다 19세기이후 작가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구겐하임은 승천하는 이미지다. 상당히 종교적이다 .프랑크 로이드라이트가 설계했다 .백남준이 2000년 전시할 때 이 공간을 가장 창의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트 숍에 가면 인상파 등등 화집을 볼만하다. 작품에는 기부자가 많고 그 이름을 적혀 있다. 미술관은 개인이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공공관념 때문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이 미술관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올라가면서 보고 내려오면서 반추하듯 다시 그림을 보고 미로에 빠져 관객의 혼을 빼 놓는다 사실 그렇게 큰 미술관은 아닌데 상당히 매력이 있다 백남준이 여기서 전시를 할 때 그가 이 공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레이저 아트를 선보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이저가 단계별로 계단을 오르듯 그렇게 레어빛이 올라가는 효과를 주는 것이기에 관객의 혼을 빼놓기 좋기 때문이다 


백남준 회고전에 참가한 사람인 마이클은 지금 이 미술관의 시니어 메니저다 상당히 높은 직함이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인 라파엘레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백남준 때문에 이 동반자를 무려 뉴욕에서 4번이나 만났다 마이클이 그렇게 높은 책임자인줄은 몰랐다 그는 참으로 아주 조용한 사람인데 내면이 강해 보였다 

이불 작가의 작품 소품이지만 너무 좋다 

[구겐하임미술관 양혜규전 그룹전 중 백미]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보는 양혜규작품 여기서 가장 멋진다고 할까요 오감을 자극하는 그의 작품은 향기 소리 색의 착시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변화 그 창의적 열동성 등 이 사진을 무려 20장은 찍은 것 같네요 이불 반응이좋지만 양혜규는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았다 일본여학생에게 양혜규에 대해 설명하니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양혜규 정말 대단합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구겐하임을 백남준 이후 2번째로 점령했군요구겐하임미술관 양혜규 작품과 잘 맞는다 둘의 특징을 바로 관객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양혜규 작품을 각도를 다르게 해서 찍어보다 

세계10대작가에 속하는 도리스 살세도 전시(June 26–October 12, 2015)오프닝 리셉션에 초대받아 찍은 사진이다 미국 미술계인사와 처음 만나다 

구겐하임 오프닝 행사 

구겐하임 오프닝 행사에 선보인 칵테일 색이 너무 산뜻하고 예쁘다 간단한 막대빵과 함께 마신다 

http://www.guggenheim.org/new-york/exhibitions/on-view/doris-salcedo

이 날의 주인공은 도리스 살세도 그녀 작품은 매우 독특하다 저항적이면서 돌발적이고 현대문명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반성을 유도한다 오프닝 행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작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0위권에 속하는 데 한국에는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 This major retrospective will survey the searing, deeply poetic work of Doris Salcedo (b. 1958, Bogotá, Colombia). Over the past three decades, Salcedo's practice has addressed the traumatic history of modern-day Colombia, as well as wider legacies of suffering stemming from colonialism, racism, and other forms of social injustice. 



이런 오브제작품의 익명의 폭력성을 은유한다고 하니 그 해석이 그리 쉽지는 않네요. 중남미 작가답게 정치적 상황이 녹록하지 않겠지요. 이 작가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경직성이다. 가구에 콘크리트를 묻히고 있는 것은 살아있어야 하는 가구를 죽이는 정치적 악습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것 같다 상당히 예술적 감각이 있는 그래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가 그의 이름은 바로 <도리스 살세도> 직접 이 작품을 본 사람으로 더욱 그런 점을 느끼게 된다 

The Guggenheim’s presentation of Doris Salcedo will occupy four levels of the museum’s Tower galleries. It will feature the artist’s most significant series from the late 1980s to the present, as well as a video documenting her remarkable site-specific public projects and architectural interventions./ Doris Salcedois organiz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Doris Salcedo. Photo by Artforum. 

Doris Salcedo (Bogotá, 1958) studied Fine Arts at the Universidad Jorge Tadeo Lozano in Bogota and pursued graduate studies at New York University (1984). Between 1987 and 1988 directed the School of Fine Arts of the Institute of Fine Arts in Cali. She has been awarded grants by the Guggenheim Foundation and Penny Mc.Call. 

Her creation revolves around the serious problem of violence in Colombia and its devastating impact on the social fabric. Salcedo travels to the most deprived areas in Colombia and speaks with the families of those killed, adding these accounts to her works,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She often uses furniture in hes sculptures, removing its familiarity and giving them an air of unease and horror. 

One of her first creations is Atrabiliarias, a mural made up of women's shoes tucked into niches, covered by a thin translucent film. In another, Casa Viudas, the furniture are mourning the loss of their former occupants clinging to bones, the remains of a dress ... 

Sh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lombian artists in the contemporary international scene. Her works have been exhibited at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in New York, Tate Modern in London, the Pompidou Centre in Paris,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nd 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in Madrid , among others. 


뉴욕 미술계 인사들 

구겐하임미술관 오프닝 리셉션 장면 

구겐하임 큐레이터 부부 

구겐하임 수석 시니어 메니저 마이클 샤프 선생 

그의 집에 저역식사에 초대받아 그의 집을 방문하다 그의 생의 동반자는 백남준 조수를 6년간 한 미국작가 라파엘레다 두 분은 2000년 백남준 구겐하임 회고전에도 같이 참여했다 

[휘트니미국미술관] 여기서 드디어 백남준 작품을 만나다 


새로 이사간 신축한 휘트니미국미술관 파사드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작품 앞에서 한장의 사진을 찍어보다 휘트니미술관을 뉴욕 5번가 번화가 있다가 지금은 첼시지역으로 이전했다 

[미국 휘트니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주소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NY 10014 (212) 570-3600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뉴욕에 가면 이곳을 추천한다. 새로 이사 간 미국 휘트니미술관이다. 이사 간 이곳은 물론 중심가는 아니다. 우선 뉴욕허드슨 강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백남준 작품도 보고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어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 먹을 것도 많다. 새 미술관이라 분위기도 유쾌하다. 예술은 페스티벌이다. 여기는 바로 예술놀이터이자 삶의 생기를 얻는 문화발전소이기도 한다.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다. 주소 다시 확인 http://whitney.org/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책을 하나 사다 

[백남준일기] 백남준이 난해한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그의 미학 혹은 철학은 너무나 간단하다. 즉 모든 소통과 네트워킹이 상호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인간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고 상호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윈윈(상생)이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문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일상에서 삶의 축제를 촉발시키는 사람이다. 

Nam June Paik sometimes called difficult artist. But his aesthetic or philosophy is very simple and common. The most importing thing for him is that all communication and networking should be interactive with a mutual way. Why? When most people to be coexiste...nce in equality they are so happy and enjoyable. This is a kind of win-win, it is also a law of the universe. When we viewed from this side, He is a practicing democracy as a cultural way and he also is a animator who created the festival and feast in our daily life. Nam JunePaik parfois appelé artiste difficile. Mais son esthétique ou de la philosophie est très simple et commun. La chose la plus importatrice pour lui est que toutes les communications et les réseaux devraient être interactifs avec une façon mutuelle. Pourquoi? Quand la plupart des gens à être coexistence dans l'égalité, ils sont si heureux et agréable. Ceci est une sorte de gagnant-gagnant, il est aussi une loi de l'univers. Lorsque nous avons regardé de ce côté, il est pratiquer la démocratie comme un moyen culturel et il est aussi un animateur qui a créé le festival et fête dans notre vie quotidienne. 

백남준 TV자석 1965 

<TV자석>은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작품 1965년 그는 TV 화면을 새로운 캔버스로 본 것이다 새로 이사간 휘트니미술관에서 2015년 6월 20일 찍다 <Magnet TV> is a monumental work of Nam June Paik in 1965. He took TV screen as a new canvas. I took this photo on June 20, 2015 at New Whitney Museum moved. <Magnet TV> est une œuvre monumentale de Nam Juin Paik en 1965. Il a pris écran du téléviseur comme une nouvelle toile. Je pris cette photo le 20 Juin 2015 au Whitney Museum de New déplacé. 

Magnet TV is a work by Nam June Paik from 1965. In it Nam June Paik altered the flow of electron in the picture by applying a magnet to the TV set. "The magnet’s force of attraction hindered the cathode rays from filling the screen’s rectangular surface. This pushed the field of horizontal lines upward thus creating baffling forms within the magnet’s gravitational field. If the magnet maintained its position, the picture remained stable—apart from minimal changes caused by fluctuations in the flow of electricity. Moving the magnet caused endless variations of the forms." (Source: Edith Decker, Paik Video, Cologne, 1988, p. 60ff.) 



<TV자석>은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작품 1965년 

가장 미국적인 작가 에드워드 후퍼(Edward Hooper, peintre de la solitude) 작품이다 

'America Is Hard to See' (through Sept. 27) With high ceilings, soft pine-plank floors and light-flooded windows and terraces, the galleries of the new Renzo Piano-designed Whitney Museum in the meatpacking district are as airy as 19th-century sailmakers’ lofts. Art feels at home in them, and the work in the museum’s top-to-bottom inaugural exhibition is homegrown. Culled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it mixes bookmarked favorites by Edward Hopper, Georgia O’Keeffe and Jasper Johns with objects and artists that the Whitney had all but forgotten or just brought in. As a vision of a larger America, the show is far from comprehensive; as a musing on the history of a particular New York institution over nearly a century, it is very fine, smartly detailed and superbly presented. 99 Gansevoort Street, at Washington Street, 212-570-3600, whitney.org. (Cotter) 

이 미술관은 야외놀이터가 있다 좋다 주변 멀리 바다도 바라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덕수궁에서 열린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에서도 소개되었다 

[뉴뮤지움 신미술관] 


뮤지움 처음 가보고 내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건축물 자체가 너무 창조적이다 주말마다 옥상에서 신나는 파티가 있죠. 사진에 거리명 Bowery Street 이름이 보이네요 http://www.newmuseum.org/ 235 Bowery New York, NY 10002 212.219.1222 

[Building] The New Museum, designed by Tokyo-based architects Kazuyo Sejima and Ryue Nishizawa/SANAA, is a seven-story, eight-level structure located at 235 Bowery between Stanton and Rivington Streets, at the origin of Prince Str...eet in New York City. 


The New Museum building is intended as a home for contemporary art and an incubator for new ideas, as well as an architectural contribution to New York’s urban landscape. Sejima and Nishizawa, who received the commission in 2002, have described the building as their response to the history and powerful personalities of both the New Museum and its storied site. “The Bowery was very gritty when we first visited it,” they have said. “We were a bit shocked, but we were also impressed that a fine art museum wanted to be there. In the end, the Bowery and the New Museum have a lot in common. 


Albert Oehlen
, Der vergiftete Asket [The Poisoned Ascetic], 1992. Silkscreen and acrylic on paper, 79 × 63 3/8 in (200.5 × 161 cm). Private collection.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Luhring Augustine, New York

'Albert Oehlen: Home and Garden' (through Sept. 13) This fantastic, overdue show skims too lightly over three decades of painting — from 1983 to 2011 — as the artists moved from Neo-Expressionist self-portraits to his latest abstractions, in which irony is replaced by a semblance of anguish. In between: some of the first (and best) forays into painting by computer, and a group of canvases whose sublime abandon obliterates elaborate computer-built images. 235 Bowery, at Prince Street, Lower East Side, 212-219-1222, newmuseum.org. (Smith) 


Both have a history of being very accepting, open, embracing of every idiosyncrasy in an unprejudiced manner. When we learned about the history of the New Museum we were flabbergasted by its attitude, which is very political, very focused on new ideas, fearless. The New Museum is a combination of elegant and urban. We were determined to make a building that felt like that.” Amidst a cluster of relatively small and mid-sized buildings of varying types and uses, the New Museum rises 175 feet above street level. As visitors approach on the Bowery or from the west along Prince Street, they encounter the building as a dramatic stack of seven rectangular boxes 

[프릭 컬렉션 이야기] 

이 박물관 외부 모습 

[맨해튼부자이야기]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사람들이 뉴욕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부자로 사는 곳이 티가 나지 않는다. 주변의 분위가 그렇게 조용하지만은 않고 번잡한곳 제복을 입은 수위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청소부터 자질구레한 수리 등 슈퍼마켓 식품 배달하는 사람 등등 관리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당연히 히스패닉다. 과거의 유럽의 귀족과 현대 뉴욕의 부자는 어떤 면에서 흡사하다. 외부수리는 엄격한 건축규제로 주로 내부수리를 많이 하고 가구를 자주 바꾼다. 주변에 5번가 명품점이 줄줄이 서 있다 그들의 생활은 잘 노출되지 않는다. 산책이나 산보를 갈 때만 보인다. 여기는 전혀 번잡한 점포가 없다. 당연하다. 배달시키면 된다. 이 근처 자녀들이 다니는 특수학원건물이 루브르 건물과 비슷하다. 이들에게 가장 관심거리는 미술품일수밖에 없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시아 불교미술, 일본 문물, 중국 도자기 한국의 고가구 등등 하여간 이들은 Honorary White이다 이런 부호 중 FRICK COLLECTION 이라고 수집한 명화를 가지고 개인의 저택을 박물관을 만들어 공개한다. 입장료를 받기에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보통 사람도 이 박물관에 들어가면 미국의 부호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여간 부자이면서 정말 부자로 사는 사람은 바로 미술을 컬렉션하거나 미술관계자와 인연을 맺으면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많기에 미국미술이 발달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예술재단을 만들어 미술창작자를 지원하기도 한다.
 

프릭 컬렉션 입구 

미국의 최고부호의 집을 바로 미술관이 되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 같다 

이 박물관 중앙 홀 

철강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이 40여년간 수집한 컬렉션이 전시된 곳으로 19세기 유럽건축양식으로 지워진 우아한 저택이 미술관이 되었다 프릭이 사후에 미술관이 되기를 바랬던 유언에 따라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다 마치 베르사유궁전의 축소판 같다.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상파 등 유럽작가 작품과 밀레 드가 휘슬리 등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화가의 베르메르의 장교와 웃는 소녀도 볼 수 있다 

최고부호 저택 인테리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이 갤러리 독일미술관 이이기] www.facebook.com/Neue.Galerie.New.York 


독일미술관 Neue Galerie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촌스러움을 보이다 그래서 자꾸 뒤떨어진다. 여기서 전시되고 있는 클림프전시는 서울에서 봤을 때보다 더 멋져보였다 

klimt's1907 gilded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at the Neue Galerie. Credit Librado Romero/The New York Times 

6월 20일 뉴욕 노이어갤러리에서 이 100년 전 작품을 봤을 때 전율이 왔다. 장식미술과 순수미술의 절묘한 교합이다. 당시 빈이라는 도시의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절감할 수 있었다 

Neue Galerie: ‘Gustav Klimt and Adele Bloch-Bauer: The Woman in Gold’ (through Sept. 7) With the spring release of the movie “Woman in Gold,” which is about the restitution of some Nazi-looted paintings by Gustav Klimt to their rightful heir, the most celebrated of those works, the predominantly golden “Adele Bloch-Bauer I” (1907), was brought back into the media spotlight after its 2006 purchase by Ronald S. Lauder for $135 million, then the highest price paid for a painting. This small show features the portrait along with eight other Klimts and an assortment of jewelry and decorative objects typifying the luxurious lifestyle of Adele and Ferdinand Bloch-Bauer, the art collectors who commissioned it. 1048 Fifth Avenue, at 86th Street, 212-628-6200, neuegalerie.org. (Johnson) 


이 작품을 NeueGalerie에서 보니 백년전 오스트리아미술 전성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장식문화와 순수회화의 결정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I saw this famous work of Klimt 100 years ago at the Neuer galerie the June 20, 2015 in NY. Then I had experience the big thrill. This work is exquisite bite of decorative arts and fine art. I felt desperately the erotic and sensual atmosphere of the city of Vienna at that time /Je l'ai vu ce fameux travail de Klimt il ya 100 ans chez Neuer galerie 20 Juin, 2015 NY. Puis je devais éprouver le grand frisson. Ce travail est bouchée exquise des arts décoratifs et des beaux-arts. Je me sentais désespérément l'atmosphère érotique et sensuel de la ville de Vienne à cette époque 

이 박물관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데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20세기 초반 독일과오스트리아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클림트와 쉴레 코코슈가 작품의 걸작을 여기서 감상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천만장자이자 컬렉터인 로널드 로데(Ronald Lauder) 전시기획자 서지 사바스키(Serge Sabarsky)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기존의 미술관과는 차별성을 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Neue Galerie: ‘Russian Modernism: Cross-Currents of German and Russian Art, 1907-1917’ (through Aug. 24) This lively, scattershot exhibition of about 70 paintings and works on paper forms an indispensable introduction to Russian modernism’s figurative beginnings and its ties to German Expressionism. That many of the Russians are unknown compensates for the unevenness of their work and for a selection of abstract pieces that feel tacked on. The German works, while outnumbered, look great. 1048 Fifth Avenue, at 86th Street, 212-628-6200, neuegalerie.org. (Smith 

러시아 추상주의와 독일이 표현주의가 상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두 가지 작품 

[뉴욕 쿠피-휴이트 디자인 미술관]
 

뉴욕 쿠피-휴이트 디자인 미술관 입구 

뉴욕디자인미술관 속에 전시된 작품 디자인인에서 색채의 역할의중요성을 보여준다 

가구와 프린트 텍스타일 도기 등 25만여점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 박물관으로 스미소니언 협회가 인수해 지금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촛대그림이 발굴되어 공개되기도 했다 이곳은 철강왕 카네기가 1901년 건축한 저택으로 맨해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원이 있고 이곳은 결혼식 이벤트 징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Guy Sorman) 박사부부 

나는 그 부부를 뉴욕 디자인미술관(위 미술관) 정문에서 만날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 못했다 인생은 필연이기보다는 우연이다 백남준의 우연의 미학과 나의 실수의 미학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통한다 세상에 이렇게 유쾌하고 지적이고 패션감각이 탁월하고 통찰력이 넘치는 보수주의자는 보기 힘들다 그는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유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윤리에서 온다고 본다 <노동에 대한 헌신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최고수준의 브랜드가치를 가진 것은 바로 <달항아리>로 보고 있다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번뜩이는 지성과 탁월한 유머감각이 넘친다 그의 결론은 그는 한국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를 이해해야 하기에 본의아니게 한국문화연구자가 되었다 그의 문화에 대한 견해는 우리도 모르는 장점과 단점을 꿰뚫고있다 

[브루클린미술관] 브루클리은 21세기 뉴욕미술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브루클린미술관과 지하철 

The Brooklyn Museum is an art museum located in the New York City borough of Brooklyn. At 560,000 square feet(52,000 m2), the museum is New York City's second largest in physical size and holds an art collection with roughly 1.5 million works. Located near the Prospect Heights, Crown Heights, Flatbush, and Park Slope neighborhoods of Brooklyn and founded in 1895, the Beaux-Arts building, designed by McKim, Mead and White, was planned to be the largest art museum in the world. 

브루클린미술관 입구 로댕 조각 

The museum initially struggled to maintain its building and collection, only to be revitalized in the late 20th-century, thanks to major renovations. Significant areas of the collection include antiquities, specifically their collection of Egyptian antiquities spanning over 3,000 years. African, Oceanic, and Japanese art make for notable antiquities collections as well. 

American art is heavily represented, starting at the Colonial period. Artists represented in the collection include Mark Rothko, Edward Hopper, Norman Rockwell, Winslow Homer, Edgar Degas, Georgia O'Keeffe, and Max Weber. The museum also has a "Memorial Sculpture Garden" which features salvaged architectural elements from throughout New York City. 

시카고의 '디너파티' 디카가 박살이 나서 스마트 폰으로 찍었더니 사진 질이 떨어진다 

이 작품은 여성주의 작가를 대변하는 시카고의 작품으로 브루클린미술관 최고의 소장품이다 

1970년부터 미국 서부에서는 주디 시카고와 미리엄 사피로가 주축이 되어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최초의 페미니스트 미술강좌가 개설되었다. 그녀들은 1973년 집 한 채를 빌려 각종 여성관련 이미지와 물품을 소재로 ‘여성의 집’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의 의식화 작업을 진행시켰다. 주디 시카고는 페미니즘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디는 1971~1979년 사이에 디자이너와 100여명의 여성자원자가 수놓기와 도자기 제조 등에 참여한 '디너파티'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페미니즘 미술사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된다. 

이 작품은 38개의 테이블을 이등변 삼각형이 되게 배치해 도자조각으로 된 열 세개 씩의 개별 접시, 냅킨, 장식용 식탁보, 잔, 포크, 나이프 등이 마련된 거대한 작품이다. 테이블 각 변은 14m, 높이는 15m로 각 자리마다 버지니아 울프, 사포 등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로부터 미국의 흑인 노예해방론자까지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룬 다양한 여성 명사들의 이름을 식탁보에 수놓았고, 나머지 999명의 여성의 이름은 자기 타일로 만든 바닥 마감재에 새겨넣었다. 식탁보 위의 접시는 여성의 음부를 꽃처럼 제작해 전시하면서 더 이상 수동적인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 주체적인 여성을 의미한다. 

브루클린미술관 바스키아특별전 

Brooklyn Museum: 'Jean-Michel Basquiat: The Unknown Notebooks'(through Aug. 23) In this sparkling if sometimes arcane exhibition, the contents of eight notebooks, supplemented by several paintings and large drawings, trace the evolution of Basquiat’s loquacious pictorial style. Time spent with the catalog enhances the experience. 200 Eastern Parkway, at Prospect Park, 718-638-5000, brooklynmuseum.org. (Roberta Smith) 

바스키아특별전 아트숍 

지금 이 미술관에서는 바스키아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전시 아트숍에서 만난 젊은 커플 남자친구의 헤어스타일이 바스키아를 닮아 인상적이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 특별전 홍보포스터 4층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군요



[첼시미술특구 전시]
 507 West 24th Street New York NY 10011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첼지지역 갤러리 디렉터 Kathryn Erdman 그녀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났는데 바로 나를 보고 명함을 주기에 사실 좀 당황했지만 그 명함을 보고 찾아갔더니 첼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고급갤러리다 나중에 다시 놀러오라고 한다 서울서 볼 때는 몰랐는데 상당한 미인이다 첼시지역 갤러리에 가면 정말 뉴욕커 중에서도 최고의 미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갤러리입구에서 


303갤러리 왼쪽에 내 친구인 이 갤러리의 공동디럭터인 캐터린이 보이고 뒤로 들어오는 남자는 버마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이 로드디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의 도록을 보니까 미국으로 치면 바스키야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다만 이 작가는 회화에서 퍼포먼스까지 접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이름은 AYE KO다 

첼시지역 이런 작품 괜찮네요 

첼시 전시 중 으뜸은 역시 이우환전이다 

첼시 페이스갤러리 이우환 전시사진 중 하나 

이우환의 단순미, 그 최고의 경지가 낳은 놀라운 위력한다 

이우환 단순미의 승리이다 

첼시미술동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내가 이들에게 잠시 이우환전에 대한 설명을 하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이제는 이우환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민활하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돌과 철의 연애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연애스캔들이다 

첼시지역 또 다른 장면 산뜻한 이런 분위기 갤러리도 있군요 

첼시갤러리지역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산책로  전망대 여기에서는 첼시가 다 보인다 

첼시미술지역의 하이라인 파크(Chelsea High Line Park) 대성공


이 공원은 2009년 처음 개방된 곳으로 첼시미술구역 과 나란히 있다 2층이다 버려진 고가도로를 활용해 새로 공사비도 많이 들지 않고 재개발로 성공한 사례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가 성공의 원인이다 이런 것들은 과거 산업화의 사용되던 철도를 고친 것이다 이 다리는 1999년 하이라인 친구들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추진되었고 공원화의 타당성이 확인되면서 추진하게 되었단다 백남준 TV정원처럼 철길에 자연공원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것이다 일단 자동차가 없고 장사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야생식물과 대조를 이루는 철도가 잘 어울러진 것이다 허드슨강의 떨어지는 낙조도 감상할 수 있단다 동네공원과 다르다 규모는 작지만 아이디어가 좋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공사비 1억 5천 달러가 들었는데 그 효과는 20억 달러가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여간 과거 폐허가 된 산업화 흔적을 정보화문화시대에 잘 업그레이드시킨 사례다 


뉴욕 웨스트 첼시는 아직 좀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런데 미인이 사진 속에 들어가니 분위가 확 살아난다 


첼시에서 작가의 이름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찍은 사진 

첼시지역 갤러리지도 

[뉴욕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 참관기]
 거의 광적이고 카니벌수준이다 한마디로 잘 논다 

뉴욕 전시장 풍경 중 하나 

우리와 크게 다른 하나는 시니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술관객의 층이 어느 연령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골고루 퍼져있다는 증거다 One of features of audiences in art exhibition in NY and the Western country there are many seniors there 

오프닝행사가 카니발 같이 시끄럽고 요란하고 거의 광적이다 

[뉴욕 ART STDENTS LEAGUE 미대전] 

ART STDENTS LEAGUE 전시장 라우젠버그 작품앞에서 

[뉴욕공공도서관 일반인 개방] 관광특구로 장소를 개방하고 미국의 도서문화의 선진성을 자랑한다 

뉴욕공공도서관 입구 

이 도서관 앞에는 2개의 사자상이 있는데 세계 공황 때에는 각각 Patience(인내)와 Fortitude(불굴의 정신)라는 두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당시 뉴욕 시민들에게 이 두 가지 자질이 필요했음을 반영한다 


뉴욕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3개의 중앙 도서관과 함께 뉴욕 시내 곳곳에 크고 작은 80개의 지점 도서관이 있으며, 연구 목적으로 공개된 4개의 연구 도서관이 있다. 

또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보 공개나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개최하여 뉴욕의 종합적인 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 기능한다. 구텐베르크 성경과 카포티의 초고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장서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미국대통령 초상화도 보인다 

명칭에 ‘공립’이라 표현되어 있으나, 설립 주체가 뉴욕시가 아닌 독립 법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은 민간기부로 이루어져 운영되고 있다. 무료 이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뉴욕시에 거주하고 근무하는 이들을 회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역사를 보면 19세기의 뉴욕에는 2개의 도서관이 있었는데, 애스터 도서관과 레녹스 도서관이었다. 1886년 뉴욕 주지사였던 새뮤얼 J. 틸던은 두 도서관을 통합하여 서민을 위한 도서관 설립을 제안하였다. 1911년에 본관이 준공하였고, 이후 앤드루 카네기 등의 인사들이 기부를 하여 뉴욕 각 지역에 도서관 지점을 확장하게 되었다. 1980년에는 대폭적인 확장을 하게 되는데, 현재 본관은 인문 연구 도서관으로 만들고 있다. 정문 앞에 설치된 두 개의 사자상은 모체가 된 두 개의 도서관의 이름을 따 각각 Astor, Lenox의 이름이 있다. 

[뉴욕의 명소] 

뉴욕에서 가장 럭셔리한 박물관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1109 5th avenue 

역시 부호가 많은 탓인가 보다 미국최대규묘의 유대인 박물관으로 그들의 종교 역사 문화를 들어볼 수 있다 고대이스라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만 7천점 소장품 이 박물관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금융계의 거물은 와버그의 개인저택이다 

컬럼버스서클에서 본 뉴욕 웨스트 거리 가운데 센트럴파크이 보인다 

센트럴 파크에서 찍은 사진 뒤로 라 플라자 호텔 등 고층빌딩이 보인다 

뉴욕 그랜드 센터럴 스테이션 

컬럼비아대학 

[About New School University of New York] 뉴욕에는 사회엘리트를 만드는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오바마 대통령 여기출신)과 세련된 현대지성을 만드는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36명 노벨상수상자배출) 그리고 서민을 위한 <뉴욕시립대학City University of New York> 그리고 매우 사상적으로 진보적이고 예술적으로 실험적인 <뉴 스쿨 대학 New School University of New York>이 있군요 뉴욕대와 붙어 있는 모양인데 처음 들었다. 이 대학은 철학에서 시작해 이제는 예술(음악과 미술)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대학이 되었다고 하네요 아래사진 뉴스쿨미대학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견학 사람없는 이른 시간에 

5번가 번화가 중 한 의상 부티크 White and Black 

[축제의 도시 뉴욕] 뉴욕은 어디를 가나 축제 판이다. 시도 때도 없다.New York is also the city where the festival takes place always. There is no time and no place. 어디나 관광객이 투성이다. 관광수입은 매년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4조, 이 도시는 런던, 파리, 로마의 장점을 합친 것 같다. 새로운 유행의 중심지 그 다양성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음식, 점포, 식품점, 이벤트의 분위기가 다양하다 영화나 광고 미디어에서 본 명소가 많다. 미국사람도 뉴욕에 오면 촌사람이 된다. 여기는 젊은 단기 체류가 많다. 한국학생은 디자인 패션 분야가 많은 것 같다. 뭔가 배우고 다양한 학원이 있다. 영어학원은 물론이고 서비스분야 그리고 전 세계 비즈니스맨이 와글와글하다. 새로운 돈과 꿈을 찾아서 뉴욕 찾는다. 부동산값이 날로 치솟는다. 미국영화나 영상이미지 미디어덕분이다. 

록펠러 센터 

Canal Street 근처인데 여기 2층 작업실에서는 고장난 TV 등 미디어아트 작품을 수리한다 

타임스스퀘어 

뉴욕에는 현대문화상징의 메카가 많다. 타임스스퀘어가 그렇다. 세계적 교차로 가장 번잡한 곳이다. 교통망의 중심지다. 뉴욕타임스가 여기에 있다. 서울의 시청광장과 조금 비슷하다. 과거 유흥업의 중심지 대중소비문화 진공청소기를 역할을 하다. 1920년 재즈의 시대를 열다. 포르노극장 성인용품 매춘부가 손님을 끌다. 점잖은 사람 갈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80-90 재개발로 전혀 달라졌다. 고충건물이 올라가고 사소한 범죄 엄격처벌 길모퉁이마다 경찰 배치했다 지역개발투자를 한다. 고급의류매장 하드록카페가 어디나 있다 화려한 점포 전시장이 즐비하다. 휘황찬란한 홍보전광판이 이 지역을 상징한다. 1년에 거두는 광고료가 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800억이다. 미디어 영화 등에 자주 노출되고 등장하는 곳이다. 이미지 홍보 시대 첨병이다. 여기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함께 뉴욕의 문화 상징 메카다. TV 등 미디어가 만든 최고의 환상이다.


'그리니치 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뉴욕대가 바로 옆에 있고 백남준 작업실도 멀지 않다 

여기는 반문화운동의 본거지였다고 하네요 지금은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점령해버렸다고 이곳은 재개발반대로 옛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여기는 20세기 초 예술가 작가 지식인과 보헤미안의 중심지 1950년 소위 비트세대는 전후 풍요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물질로부터 자유추구하는 문화운동이 일어난 곳동성애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용인된 곳이기도 하고 여기에 백남준 절친인 앨런 긴즈버그 등 문화히피들 포진 해 자생적 실험예술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여기서 동성애 자유를 위해 <소톤월 폭동>이 일어나고 6월말경 동성애 축제도 일어난다 지금은 뉴욕 중산층 고급 주거지가 되었고 하여간 여기는 전형적 비즈니스맨보다는 디지털 창조형 인간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소비문화는 일반적인 것과 차별화되는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단다


유니온 스퀘어 4번가 브로드웨이 만나는 곳이다 

사회적 중요한 이슈가 터질 때 목소리를 내는 곳이란다 19세기 중반 남북 전쟁 때 북국이 이곳에서 집결해 출정했으며 19세기 후반기 산업화시대 노동조합원이 이곳에 모여 파업을 선언하고 출정식을 했고 2001년 세계무역센터가 테러공격을 당했을 때 뉴욕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애도한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이 뉴욕에서 나를 가장 마음 편하게 하는 장소였다 여기는 상업행위가 금지되어 있단다. 그러나 매주 월수금토낮시가에는 직거래 장터가 열리는 곳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것이다 요리시범도 보이고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표정 얼굴 차림 행동 연애형태 인종패션 언제나 일상적 축제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한 지역이다. 스퀘어 광장이라는 것도 모르고 너무 피곤해 여기에 졸면서 앉아있었다 뉴욕에서 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주는 좋은 인상을 받은 곳이다 Union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상스가 좋다 특별한 볼일없이 하루종이 머물고 좋은 곳이다 의자에 하루종일 안자있어도 뭘하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할까 근처에 루스벨트 생가가 있었군요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여행갈 때 가이드책을 잘 골랴야 한다 여행자에게 강력추천하는 장소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 근처거리 

[여러 문제에도 뉴욕을 가장 매력적인 도시다] New York is the city where world citizens want to visit the most세계인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가 뉴욕이다. 뉴욕은 1990년대부터 번성 정보통시의 기술덕분이다. 1980년대 경제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은 남부와 해외로 이전하다. 정보와 기술을 다루는 중요기업은 뉴욕에 있다. 패션과 디자인분야는 프랑스를 능가한다. 낮은 임금에도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덕분에 부를 창출한다. 뉴욕은 저임금 임시직이 가장 흔하다. 미국도시중 소득불균형이 가장 높다. 과거뉴욕은 범죄율이 가장 높았으니 지금은 낮아졌다. 줄리아니 시장의 작은 범죄를 놓치지 않는 <깨진 유리창이론>으로 경찰이 급속하게 늘었다 다. 1990년대 경제부흥을 하면서 범죄자급속감소 경찰과 감시 카메라 어디에나 보인다. 하여간 뉴욕은 더럽고 시끄럽고 복잡하고 빈부차도 심하고 문제도 많고 하루 종일 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인에게 가장 매력적인 도시다 

펠탑이라고 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뉴욕은 네덜란드사람이 개척한 도시다] 뉴욕은 세계에서 장사 가장 잘하는 네덜란드사람이 개척한 도시다. 허드슨 강은 내륙운송의 출발점이다 철도와 함께 항공운동도 발달한다. 19세기중반 기근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쏟아져 들어온다. 이민자는 가장 힘들고 험한 일을 한다. 이것을 미국경제기적의 주요인이 된다. 걸어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20세기 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남부로부터 흑인 대량 유입된다. 1920년에 할렘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1930년대 대공황에도 흑인이 가장 선호하는 기착지가 된다. 거지가 살기 가장 좋은 곳도 뉴욕이다. 2차 대전이 미국을 살려준다. 군수물자로 돈을 번다. 1950년대 도시재개발 전설적인 호황을 맞는다. 70-80년대 다시 도시 공동화가 되었다가 1970년대 이후 이민법개정 다시 활기 아시아, 남미 이민자가 들어오면서다. 2000년 무역센터 테러당시 블룸버그 시장 경제 활력에 집중하다. 화려한 뉴욕 그냥 된 것이 아니다. 특히 유럽과 교류에서 지리적으로 굉장히 유리하다. 이런 점이 서부 어느 지역보다 경쟁력이 있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 근처 이탈리라 고급식품점 내부에 카페와 입식 식당도 있다 

[뉴욕은 거지도 살만하다] 누가 뉴욕을 찾나 뉴욕은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일에는 사무직과 전문직이 있는데 이민자들 1세대 자녀는 아메리카드림 좇아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중국인 음식점, 필리핀 여성 병원, 파키스탄 거리신문판매대 슈퍼 직원 동유럽 택시운전기사와 아파트수위가 많다. 중남미 출신은 가정부, 호텔청소, 한국인은 세탁소, 식품점, 손톱미용실 등등 한국인은 <델리> 편의점이면서 다양한 요리뷔페도 판다. 이민자의 출신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인종전시장이 된다. 뉴욕을 거지도 살만한 도시다 뉴요커들이 거리의 거지에게 도네이션을 잘 한다. 

백남준 작업실 맨해튼 머서 스트리트 110번지 파사드 110 Mercer street soho area Manhatten NY Nam June Paik's studio 

뉴욕 지하철에 음악이 흘러 위로가 되지만 지저분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100년이 넘은 뉴욕 지하철 뉴욕의 또다른 얼굴 New York subway that has 100 years history, This is another real face of New York 여기서 치하철을 타 보면 충격이다 라고 어느 뉴욕에 대한 책을 쓴 저자는 말한다 우선 소음이 엄청 심하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낸다고 누구는 표현하고 있다 마치 철공장 같다. 그러나 뉴욕지하철은 뉴욕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한다. 누구는 이렇게 적고 있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그렇단다 지상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다르게 지하는 어둡고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혼잡하다 뉴욕이야기를 하면서 어느날 N라인을 타고 가다가 지하철이 멈춰 자총지종물으니 기관사말이 열차한칸에청소년 무기를 갖지고 타 경찰이 올때까지 기다리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그런데 여기사람들 아무도 불만이나 항의가 없다고 그런면에서 뉴욕도 느린도시하고 적고 있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뉴욕지하철이 최고인것은 24시간 운행을 한다는 것 갓난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야하는 초보주부들 정말 오르내리기힘든데 전혀 불만이 없다 쥐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마시오 표어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하철은 뉴욕의 자랑이고 가장 빠른 소통의 도구로 나의 뉴욕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갈때 그 속도감은 정말 빠르다

[백남준 작품 '전자초고속도로', '엄마'를 보려 '워싱턴 DC'에 갔으나 일정이 빠뜻해 못 보다] 

미국 아메리카 아트 갤러리 여기 백남준 작품이 있다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he Artistic Journey of Yasuo Kuniyoshi'(Through Aug. 30) The first American survey in decades of the Japanese-American painter emphasizes his efforts of the 1920s, distinguished by their singular synthesis of American folk art, Asian art and European modernism. But throughout it reveals an artist open to influence yet always true to his own sensibility whose his life, art and times fuse with instructive clarity. Unfortunately the show will not travel. Eighth Street, at F Street, Washington, D.C., 202-633-7970, americanart.si.edu. (Smith) 

워싱턴 DC 모범적이고 넉넉하고 히지만 뉴욕보다 심심하다
 

여기는 워싱턴 DC 미국국기가 어울린다 

미국의 팔만대장경 아카이브 박물관 

워싱턴자연사박물관 

워싱턴 유니온 스테이션 외부입구 Washington Union Station 

워싱턴 지하철 모습 

위싱턴유니온스테이션 내부 모습 

미국의 팔만대장경 아카이브 박물관 뒷면 

독립운동에 기여한 프랑스 라파이에트 장군 동상 

백악관은 규모는 참으로 작다 미국은 역시 민주주의 국가다 

[1997-2002년까지 백남준 조수 라파엘레] 라파엘레가 너무 바빠서 실제적인 인터뷰가 되지 못하고 내가 질문을 보냈는데 내가 녹음을 해서 풀어보고 안 되는 부분은 영어듣기 능통한 자에게 도움을 받는 식으로 하려 했는데 라파엘레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보내준 질문에 직접 답을 문장으로 쓰는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나도 동의했다. 파라엘레가 숙부가 사경을 헤매 지난번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다녀오고 지난번에는 개인전이 있고 해서 올 때까지 인터뷰 답신을 못 받았다. 이번 주까지는 보내줄 것 같다. 


인터뷰 내용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백남준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겪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녀에게 백남준은 여자를 너무 좋아하지 않나요 했더니 정말 그렇다며 라파엘레가 조수를 할 때 그녀의 나이는 28-29살 그래서 자신을 보고 남자친구와 아슬아슬한 비키니입고 바닷가에 수영 다녀오라고 한 이야기를 들여주며 웃는다. 라파엘레는 사실 백남준의 조수를 하고 난 후 작품세계가 확연히 달라졌다 초기작품을 보면 누구나 그렇듯 예쁘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인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지금 그녀의 작품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원융합일의 세계 원효의 세계를 닮았다. 거기에다 백남준의 레이저 아트 조수로 참여하면서 터득한 비디오아트와 레이저아트를 접목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사인아트나 네온아트가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날 찍은 사진 인터뷰 문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논의하다

[백남준조수(1997-2002) 한 라파엘레 인터뷰 HS interview of Raphaele Shirley] 

-Tell me about you ? What do you do to preserve his work ? 
I work with CTLui from CTL Electronics Inc to restore Nam June Paik's art works. We find back-up equipment for his works, mainly CRT TV which are very hard to find. We also make and repair CRT TVs. Very often we install new CRTs into the original case art works. We also look for LCD screens that are 4x3 aspect ratio when there are no CRTs available. We also problem solve larger problems such as computer programming for large TV walls as well as finding all the parts and hardware needed to run his art works. We give advice to museums and private collectors about the best way to conserve his art works. We have also given presentations in specialized conferences on our work. I also work with other technicians for neon, fluorescent and other specialized art work repairs. [참고]The Cathode Ray Tube (CRT) is a vacuum tube containing an electron gun (a source of electrons) and a fluorescent screen, with internal or external means to accelerate and deflect the electron beam, used to create images in the form of light emitted from the fluorescent screen. The image may represent electrical waveforms (oscilloscope), pictures (television, computer monitor), radar targets and others 

1996-2002 백남준과 작업을 같이하고 있는 라파엘레 

-When first meet Nam June Paik ?
 
I first met Nam June as I was living in the same building as him at 537 Broadway/110 Mercer. I was friends and working with many people in the building and still today keep strong relations with the artist community of that building complex. The building was found by George Maciunas and he brought in artists such as Nam June Paik, Shigeko, Io, Yoshi Wada, Simone Forte and Elaine Summers. I moved in there in 1993 from France and then began collaborating and working with the group. 

-What is your specialty ?
 
My specialty is fine arts. I have training in drawing, painting, photography and video. I have also learned the specialization of lasers for light art installation for the purpose of making Nam June's laser pieces. I have also founded several art collectives in New York such as "New York International Fringe Festival", "Perpetual Art Machine" to name a few. 

-With Nam June what job?
 
"My first jobs with Nam June were to help him and the studio build the laser sculptures for the Solomon R. Guggenheim Retrospective "The World's of Nam June Paik". I started working with him in 1997. He was in the very early phases of development of his laser works, starting with "Triangle", then "Circle" then "Square". As time went on I had more responsibilities and was the main assistant to develop the "Jacob's Ladder" with his collaborator Norman Ballard. We performed many tests from small scale to large scale and had many meetings with engineers and technicians to figure out all the problems for this epic art work. I also was his main assistant for the design and installation of the "Olympic Park Water screen" 

-Where ? 
"The main hub of operation for my work for Nam June was 143 Green street in Soho. 

-How did you be chosen his assistant ?
 
"I had been working with another artist in the building of 110 Mercer by the name of Frances Whitney. She was making multi-media art works and worked with Norman Ballard. He then introduced me to the rest of Nam June Paik studio with whom he was working. I got along very well with all the team and felt I had found my place and favorite people. I think they liked me too! 

백남준의 조수를 6년간 한 미국작가 라파엘레 

-What do you do with M. Lee ?
 
"We worked together for the installation of the "World's of Nam June Paik" in New York, Seoul and Bilbao. Also for general studio work with Nam June, MR Lee was often in New York and our main contact in Korea and the most important technician for Nam June. Now, Mr Lee and I don't often work directly together but we are always consulting each other to solve hard problems with the Nam June Paik art works preservation that is ongoing. 

-How was Nam June ? What personage ? Do you have a episode about him ? He has his own habit ?
 
"Nam June was highly intelligent, with a very universal mind. He was always thinking the in largest terms associating East and West, science religion and art at once. He had one of the most comprehensive minds I have ever met. He enjoyed his art works as a form of meditation, spending many hours in front of his Laser sculptures, in the dark with just the light of the lasers and drinking his coffee. Those were very privileged times where I was alone with Nam June and maybe other studio assistants, sitting for several hours in front of the lasers in almost complete silence. Just breaking the silence to speak about maybe philosophy or laser technical questions. He loved to go to the same place everyday for lunch which was "Jerry's" on Prince street so we would all eat lunch with him and he would joke about certain things talking about animals or women in very funny ways. He had a very playful mind and was extremely kind to me for the entire period of my working with him. 

-Explain to me shortly about three Nam June's studio? 
"He had 3 studios in Ny in addition to his home. These were places where different art works were being made. In Greene Street working on his laser works, in Broome street his Robots, on Grand street more flat art, a previously more active studio before my time working with him. 

-He was a son of the most rich family in Korea nevertheless he was very poor in New York. BUT HE IS OPTIMISTIC ? 
"Yes, characteristic of great minds and great people, he was not affected so much by everyday problems. But he did worry alot an often was thinking of others to make sure they were happy and didn't become burdened by his decisions. He was very altruistic. He did have moments of depression as well but in general I would say he was extremely upbeat! 

-He has a many girlfriend. What relation with women ?
 
"I only saw him with Shigeko his wife! I am unfamiliar with other stories but I know he liked women in general very much. 

백남준 조수를 6년간한 미국작가 라파엘레 백남준과 레이저아트 작업을 하면서 찍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소중한 사진을 공개하다 American artist Raphaele who was Nam June Paik's assistant for six years. She showed me the precious photos never to open to anyone. She took these pictures when she was worked during his laser work with Nam June 

-He emphasized on networking between East and West. He see the same thing human-nature-machine. And he also sometimes talked confused hybrid ? How do you think ? 
"Well it is true sometimes he was hard to follow, either because of his <free-association> thinking but also because his English pronunciation was not so good sometimes and then he had problems speaking if he was tired due to his stroke. (I met him after his stroke so he was paralyzed in one side his body for the rest of his life). He understood the need to drive technology towards humanization. 

-In interest era, he also called a visionary a provider of good idea of E-superhighway and I-phone or SNS ? Your opinion ?
 
"He had the same prophetic vision as people like Arthur C Clarke, Marshall McLuhan and George Orwell. This is again a characteristic of great minds, who can see the progression of things in the future by understanding the great subtleties of the present. 

-Nam J had a good friends You met who among his friends. For example, C. Moorman, John Cage etc. 
"Unfortunately those were both passed away when I started working with Nam June but I was able to meet Yoko Ono and Christo and Jean Claude. I also was able to meet many interesting curators and museum directors thanks to his work around the world. 

-Have you ever visited South Korea in order to exhibit the art laser in Korea ? 
"Yes I have been to Korea about 8 times all for Nam June Laser project. 
First for a few times in 2000 for the installation of the "World's of Nam June Paik" at the Ho-AM museum and Rodin gallery and then again several times in 2001 for the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of the Olympic Park Waterscreen and then again in 2012 for the re-opening of the Olympic Waterscreen and showing of images documentation for the Olympic Park Waterscreen development in the Olympic Park Museum SOMA. 

-I'd like to know about how Nam June Paik could overcome his uncomfortable body ?
 
"Nam June was a very optimistic person, so I think he managed as he could with his physical condition. He found new solutions to be creative using pastel drawing and paintings his main medium. Also with all his assistants he could just speak with us and tell us what he wanted and then we could realize his ideas! SO his assistants were like his arms and legs and tools for him to realize his projects!


-He was interested in humanization of machine and humanism in art. What is your idea ? 
Yes. Nam June's vantage point is amazing since he comes originally from philosophy and music background which gives much depth and richness to fine art practice. 
I think many new media artists have forgotten Nam June's message which is that machines should be made to opposite and that technology should be used for the expression of the human not the domination of the machine. His talent of bringing the human and technology together is rarely seen today. His philosophical perspective on art gives to the art experience a depth which is far greater than "art for art sake" but instead art is for the expression of complex ideas in a direct and simple as possible, in this way he really links easter philosophy(simplicity, poetry and oneness) with wester philosophy(intellectualism) 

-He was genius because he seek at the same time a primitive shaman and high tech e-science. Your opinion ?
 
Yes . HE really had universal thought and was a prophet in that he understood the trajectory of technology and civilization. He could have instead of an artist! Or a philosopher, or like Bruce Namuman stated " 
"The True Artist Helps the World by Revealing Mystic Truths," 
in that sense, according to Bruce Nauman he was a true artist bringing shamanistic understanding to our every day life. 

-NJ was mischief(rascal) playing TV as a toy ?
 
Yes he had a very very playful spirit, almost to make some people mad because he did not respect the rules of society always. He came to America as a free man who could play with this new society without the restrictions of his original culture. Also he brought to America the energy of technological invention. As many Koreans were creating the great tech companies in Korea as Samsung LG etc, Nma June used his countries new discoveries as a giant toy or paint brush to play with in front of the western audience. 

-Among his TV work What you like ?
 
Probably my favorite piece is Neon Buddha. Nam june Paik Art Center Yongin Korea Dec. 2010 It is graceful and super technological but at the same time modest and expresses Nam June's interest in the marriage of technology and art/philosophy/hamanity. Of course his video "Hand and Face," 1961 which is so minimal and incredibly powerful and simple. I love his "TV Buddha" which still make me ask questions and of course "one candle" and "Electronic Superhighway"! But it is hard to list favorites... I also love many of his performance pieces and also interactive pieces such as "Random Access", "Tv Cello" 

-In contemporary art, why NJ is important ?
 
He was really the first to bring electronic and TV technology-on a large scale- to art. In general his work is still very current(not old or outdated). The philosophical questions he was asking through his work are eternal questions, trying to solve the enigma of life(and death) so forever relevant. No one has surpassed him in bringing alive technology and even though now he uses old technology(CRT TV, magnetic tape, etc.) the presence of the art work is incredibly vibrant so not feeling vintage but still ahead of its time. 

-In NJ's art, eroticism is important, why people know few ?
 
He shared same opinion as Marcel Duchamp that most things aren't serious but eroticism is! But it is all over his work but not a dominant part, just part of life like also important issues such as overpopulation, nature, human activities(olympics/spirits) as well as music("Good morning Mr Orwell"). I think he was interested in many aspects of life in which this was one-You are interested in new inventions. NJ is same.

-He is a destructor in order to make new one, for me you are a kind a civilization critic ? What's about that?
 
Nam June did not want to play by the rules of society or was bending them, as a part of the Fluxus movement tradition, and his great freedom made it possible, by going against the current, to find new ideas using the new everyday technology(TV tape) but also old technology such as violin cello and piano, transgressing their use in performative pieces( (TV Cello, Prepared Piano). For me in my work I am trying to bring back into the discussion ideas that we take for granted, important makers of civilization through time such as the "arena" center of public life and performance, copernican representation of the world(earth at center) or Light circle( notion of Totality in buddhism) or the notion of paradise in medieval painting but also minimal art as seen in the 60s and then contemporary installation and new media art. Contemporary art is so market driven and seeking to shock or dazzle that we have forgotten maybe an old thread of civilization going back to the ancient Greeks or the Egyptians or Sumerians. I am trying to find the common thread between civilizations of all times, to find some kind of social, cultural and philosophical absolute.(To be continued)


[라파엘레 작가 및 작품세계] Who is Raphaele Shirley 

라파엘레 전시 Raphaele Shirley May 20 2010 Chealsea Art Museum 

Raphaele Shirley is a French-American multi-media artist. She lives and works in New York City. She studied fine arts at the Beaux Arts of Aix-en-Provence, France and then moved to NYC in 1993. Her practice ranges from light art, sound, public art, social interventions, collaborative works and performance. 

Some of her collaborations include Perpetual Art Machine [PAM], an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and online web co...mmunity, founded in 2005, of over 2000 members. In 1998 she co-founded The New York International Fringe Festival, the largest theater festival in the US. She was video pioneer Nam June Paik’s assistant from 1997-2002, where she developed his monumental laser works, including the 75-foot waterfall Jacob’s Ladder for the S.R.Guggenheim museum in New York, Bilbao and Seoul and the 30 meter- wide, award winning, Laser Waterscreen‚ permanent on the lake of the Olympic Park of Seoul Korea. She built upon her experience with Nam June Paik and developed her own series of site-specific works, including a commission in Norway in 2009, Jewels of Kvinesdal, a 30’ wide stainless steel, a xenon sky-beam viewable from 15 kilometers around. Another public art-work, commissioned in 2010, Shooting Stair for Dorfman Projects, Long Island, NY, is a water and laser light sculpture set outdoors. Her piece‚ Light Shot on a Bender, combining LED lights and water was presented in the Bring to Light festival in 2011 in Greenpoint, NY. She recently completed a 60-foot diameter light spiral for the Flint Public Art Project in Flint, Michigan. 

Her work has been shown in venues such as the Museum of Moving Image, S.R. Guggenheim, Chelsea Art Museum and Post Masters Gallery in New York, the NCCA Moscow, 2nd Moscow Biennial and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at the Museum of Modern Art, Linz, Austria and Art Basel/ Miami 2006. She participated in 2009 and 2010 in the artist residency/sail boat expedition to the Arctic Circle, Norway with the Farm Foundation, “The Arctic Circle” Residency directed by Aaron O’Conner. 

[라파엘레 네온아트 잠못 이루는 뉴욕의 밤] Raphaele's leon art 
bring to light | sleepless night(nuit blanche) in new york 


뉴욕을 밣히는 밤의 눈 


[라파엘레의 작품세계] 장소특정적 빅 스케일의 작품 


My work takes root in questions of space and scale, time past and future, engaging themes of dystopias, utopias, and the problematic of hopefacing the human experience. Drawing from elements of the everyday (man-made objects and constructions), as well as natural phenomena (wind, water and light) my work undertakes a portraiture of the possible, of paralleluniverses and sites of transformation. 

Components of chance are central to my process; they grant my work access to a primalenergy and a fertile space of possibilities. It is important for me to approachart in a freehanded manner. I tread lightly in my attempt to harness theephemeral, fusing minimalist aesthetics with the power of new media and attempting to leave ample room for the unexpected. 

[백남준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는 전자아트에서 레이저아트로 전환]
 여기서 라파엘레 큰 역할 


두 작품은 10년간 차이를 두고 있는데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레이저아트 60년대부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과학적 현실화가 힘들어 그저 상상력 속에서 가지고 있다고 2000년부터는 특히 뇌출혈로 쓰러지고 난 다음 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비약적 삶의 양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레이저아트는 예수의 승천을 연상시킨다. 아니면 약은 야곱같은 도약하는 인간상을 동일시일 수도 있다 백남준이 힐체어에 앉아있으니 얼마나 하늘로 날고 싶겠는가 Nam June Paik, One Candle 1979-1992, © Estate of Nam June Paik, Museum für Moderne Kunst, Frankfurt am Main, Axel Schneider, Frankfurt am Main./ Nam June Paik in collaboration with Norman Ballard, Laser Cone, 2001/2010, © Estate of Nam June Paik and Norman Ballard, Photographed by Stefan Arendt, LVR / Medienzentrum Düsseldorf. 

백남준의 펜 낙서가 너무 귀엽고 재미있다. 그의 장난기 넘치는 체질과 자유분방한 취향과 부처의 불심과 하늘의 천심과 어린아이의 동심과 시인의 시정(full of poesy)이 차고 넘치네요 그런데 인용구를 보니까 서양철학의 대가들 플라톤, 어거스틴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피노자가의 인용문 등등이 다 등장한다 

[라파엘레 등 4인전-방화와 초토] Ventana244 갤러리에서 2015.05.15-06.21까지 
http://www.ventana244.org/current.html 윌리엄스버그 전시 중 하나 


[CURRENT EXHIBIT_Torched & Scorched 방화와 초토] at Ventana244 artgallery May15 – June 21,2015 / Below is a artwork of Raphaele Shirley / 244 North 6 th street in Williamsburg  Viewing hours: Thursday 5-7PM, Friday 2-7PM, Saturday and Sunday 1–6PM /244 N 6th Street Brooklyn, NY 11211 (T) 718 753 7363 / info@ventana244.org ventana244.org 

백남준작품 복원전문가 라파엘레 전시가 열리고 있는 Ventana244 갤러리 입구 라파엘레의 작품이 보이죠 그의 작품은 원형인데 그 안에 사인아트 전자아트가 포함되어 있고요 그녀는 동양의 완벽한 세계인 원형을 다르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원형이 완전한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을 하면서 동양에서는 완전하기 위해서 완전하면 안 되는 그런 모순이 있다고 하니까 그 말에 대해서 동의하네요 


라파엘레 작품인데 제가 작품에 대해서 전혀 묻지를 못했네요 얼핏보면 단순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많은 손길이 간 작품이죠 기본적으로 전자아트를 알아야 하고요 원융합일 같은 동양의 사상도 담겨 있고 생경한 색채에 황당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4인전 전시제목이 <방화와 초토화> 엄청나네요 일종의 전복인데요 미술이 전복이 아니면 미술이 아니죠 예술은 방화범이고 이 세상을 초토화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라파엘레의 원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을 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This is Raphaele's work I did not ask about his work at all. Her work is simple at first glance, but a closer look there are quite a lot of touch is necessary to know the basic idea of electronic art and oriental fusion also contains such a member. The absurd atmosphere to produce a color unfamiliar one to think that so many people to this fourth exhibition title <Torched & Scorched> art is a really fabulous sort of upset. The ...art fails to do these things it is not the art. Thus art as a arsonist who upset and devastated was born to this world. In that respect Raphaele's work bring us to go back to the beginning and to think back to the origin of life


[On Rodney Dickson's painting]

나는 내 작품으로 내 자신에게 충격과 쇼크를 주고 싶다" -로드니 딕슨 
I would like to be shocked or surprised by my work -Rodney Dickson 

그는 뉴욕에서 나에게 보름간 잠자리를 제공해준 빅토르 위고의 이미지를 가진 추상표현주의 작가다. 1956년 생인 그가 뉴욕에 거주한 것은 16년 사실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내가 보름간 살필 결과에 의하며 그의 작업방식은 긴 정적 침묵 뒤에 . 거침없이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지는 폭포수 물결처럼 그렇게 작업을 한다. 폭포수가 마구 쏟아지는 그런 방식이다. 규정도 없이 어떤 관념도 없다. 그냥 그 순간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거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강박이 있다. 창조와 파괴의 그 무한대의 연속 속에 우연히 얻어지는 그 무엇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며 그러나 작가는 그 결정적 순간을 기다릴 줄 안다. 그런 방식이 그의 고유성·정체성·천재성이다/"나는 남에게 쇼크나 충격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쇼크와 충격을 주기를 원한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그의 치열성은 엿본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만큼 그는 깊은 자아의 세계 속에 몰입하거나 침잔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때로는 실패가 성공이라고 믿음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작업과 싸움에서 이기려고 한다. 그 결과와 관계없이 그에게 그런 면에서 그에게 포기란 없다. 실험의 중단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원하는 작업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향해서 질주하다 거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최대로 아껴 쓰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그림에만 몰두한다. 외출을 가능한 삼가면서 말이다. 그가 인생을 사용하는 법은 카프라가 말하는 비누처럼 비누가 없어질 때까지 그것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는 물감은 아낌없이 쓴다. 그의 물감은 레이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당연히 마티에르가 아주 두꺼울 수밖에 없다. 작업을 할 때 보면 물감이 그의 얼굴을 뒤덮을 정도다. 그런데 그는 기존의 페인팅과 반대다. 그야말로 뉴 페인팅이다. 그것은 바로 더덕더덕 붙어있는 물감을 긁어내면서 나오는 빛, 그는 거기에서 그림의 환희를 발견한다. 일종의 빛의 창조인데 외광파 인상주의 빛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다. 그런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하는 독창적 방식이다. /그는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이미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버마 등에서 전시를 하거나 레지던스를 경험한 바 있다. 그는 동양여성의 은근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색채를 대하는 방식은 색채의 유용이 아니라 색채의 무화이다. 색채를 더했다가 그것을 끝나는 것이 색채를 또 뺀다. 즉 플러스의 미학으로 끝나지 않고 동양의 마이너스 미학을 도입한다. /그는 색채를 두껍게 칠하고 나서 하나씩 빼나간다. 그런 면에서 동양적이다. 색채를 더해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색채의 빼기를 통해서 빛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그는 그리고 매우 순정적이다 한국의 단색화처럼 그는 동양에서 말하는 구도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자기단련(discipline) 방식이다. 물질이 정신으로 변화면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서 무한대의 환희를 맛본다. 이것은 그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의 회화가 주는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욕심을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정신적 가치를 가장 높은 곳에 둔다는 말이다. 자신만의 회화의 길을 걸어가는 어찌 보면 구도자 같다. 혁명가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뉴욕에서도 16년간 브루클린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장소성은 그의 예술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그는 영어권 작가지만 잉글랜드 출신이 아니고 아일랜드 작가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역사적 상처가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참으로 말로 다 못한 힘든 비참한 역사가 있다. /그의 색채에 대한 감각에는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의 유래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그 말 못한 역사적 비극에서 유래한다. 예술을 그렇다고 폭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적으로 그런 점을 주제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한다. 자기만의 순수한 정신적 치열성이 보인다. 그만큼 인고하는 자세 무겁고 신중하다. 과거 미국에서도 같은 백인이면서도 아일랜드인을 별도의 인종을 분류했고 그들이 삶의 기둥으로 삼는 가톨릭은 증오했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폭행과 살인도 가했다 영국이 과거에 아이랜드인을 박해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일랜드인을 배척하는 정당도 나왔고 그 정당에서는 대통령후보까지 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가 잉글랜드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한 역사를 알기에 작가는 보다 더 보편적인 휴머니스트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는 그는 주변의 고통당하는 소외된 사람들 흑인이나 소수민족 아시아인들에 대해서 더 가까이 접근하려 한다. 그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는 친구가 많다. 그만큼 인간친화력이 강력하다. 

그만큼 그는 마음의 부자다. 고통을 감당하는 인내력이 탁월하다. 그는 큰 덩치는 어울리지 않게 매우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고 그러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에 대한 연민과 관심이 높다. 그들과 연대하는 쉼 없는 노력을 기울린다. 그런 면에 뉴욕의 브루클린이라는 정소성이 그에게 잘 맞는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인간애가 보여준다. 그는 뉴욕에서 브루클린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재즈음악 같은 그곳의 서정과 서러움도 담보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영국인이라는 점도 또한 그의 그런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민족간의 갈등과 긴장의 경계선도 넘어선다. /나는 아직 그에 대한 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이 모네인지 마네인지 아니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그에 대한 정보가 절대나 부족하다. 인터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모네인 것 같은데 아직 확인을 못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천진난만함과 여성적 면모를 과감하게 떨쳐내는 장치가 있다. 그것을 바로 오토바이다. 그의 느린 성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런 속도감을 해소한다. 그는 삶에 대한 성찰을 하는 느린 요소와 일본 오토바이 즐기는 스피드광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앉아서 명상을 하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답답함을 오토바이의 질주하는 속도감을 풀어내는 것인가. 작업과 스트레스를 때로 해소하는 것인가./그의 이중성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있다 그는 작품은 회화이면서 조각이다. 그래서 뉴페인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순된 요소가 여기저기 보인다. 천진성과 용감성 페인팅과 오토바이 즉흥성과 지속성 등이 언제나 공존한다./그의 추상표현은 빠름과 느림이 동시에 있어 기묘한 리듬과과 고저장단이 있다. 숭고한 분위기지만 천진난만하다. 색채에는 밝으면서 어둡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동경하나 실은 매우 심각하고 무겁다 하긴 예술가만큼 이런 저런 모순과 이중성이 많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는 추상화를 통해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우주만물에 대한 그의 미학적 속내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는 우주를 노래하고 인간을 찬양하는 보편성과 함께 그의 색채에는 확실히 폴락이 창안한 액션페인팅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냥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온몸을 밀어붙이거나 집어넣는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에는 그의 육체가 들어간다. 육감이 들어가고 육성이 들어간다. 실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의 색채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는 기진맥진할 때까지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다. 그 극점에 달해 쓰러지면 다시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관객의 반응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우직하게 뚝심이 많은 작가다. 그는 스스로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고흐의 별밤을 21세기의 회화로 번역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뉴욕적이면서 또한 뉴욕적이지 않다. 그는 서양적인 면이 강하지만 그보다 때로는 동양적인 면모가 커 보이기도 한다. 그는 북미의 작가이지만 뉴욕에 도시적 지성에만 자신의 혼을 빼앗기지 않고 그는 여전히 아일랜드 그 초원의 서정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믄 그는 그 아일랜드 나이브한 목동 같다. 그의 멘탈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서정과 천진함 그리고 관용과 강인함이 넘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이다 

[백남준 작품과 자료사진들]
 


낙서는 선시시대 인류의 삶은 보여주는 그림양식이다 그런 면에서 회화의 근간이 되고 모든 예술의 시작하는 곳이다 백남준의 낙서화 거기에는 백남준 어린 시절의 장난기도 섞여 있고 낙서의 도시 그리고 장미셸 바스키아 회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뉴욕의 분위기 그리고 사인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게 되는 것은 그가 몸이 불편하게 되면서다. 그 당시 백남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페인팅은 이런 낙서뿐 그런데 그의 낙서는 기존의 낙서화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것을 바로 그가 그의 낙서화에서 신문을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런 시도는 그의 1963년 첫 전시부터 시도된 것이다 그것은 한 시대의 모든 정보가 담긴 그 캔버스인 신문에 낙서함으로 그의 낙서화는 바스키아 등과 다른 즉 정보아트의 창시자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It is not too difficult to justify Kant's music with Cage's philosophy" -Nam June 

Paik and John Cage planning the video <A Tributen to John cage > New York september 1 1971nPhoto by Peter Moore (c) Estator Of Peter Moore /VAGA, NYC 서양인으로 동양을 잘 이해한 존 케이지, 동양인으로 서양을 잘 이해한 백남준 두 사람은 자제지간으로 만났지만 20세기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21세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의 포문을 열었다 


Nam June Paik sitting by a Chrismas tree possibly listening to the radio behind him about 1951-1954 in Japan 백남준 10대모습 천재소년의 강한 인상을 준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예민한 예술가 그는 그의 멘토 존 케이지의 소음이 최고의 음악이라는 말에 큰 자극을 받아 noise art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NamJune Paik <Charlotte Moorman Room> 1993 Installed at XLV Venice Biennale1993 백남준의 샬럿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맥루언과 백남준은 미디어가 몸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완전히 일치하다 

[뉴욕후기] 내가 뉴욕에서 보는 길에서 서서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수많은 뉴요커를 보고 저것은 지금 당장은 경쟁력이 있어 보이나 그 창조력이 고갈될 수 있다고 본다 백남준이 말한대로 뜸들여 익힌 것은 이제 세상에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했는데 나는 22세기에는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바로 가장 뜸을 잘 들인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음식은 세계에서 최고의 고급음식이다 서양인이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정말 그 수준이 높다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문명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고 거기에 창의적인 인간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치는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Staff members catalog objects at the NamJune Paik Archive a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사후 백남준 소호작업실에서 나온 7트럭 분량의 아카이브는 미국미술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정리중이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다 쓰레기통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백남준유머] 우리나라에는 너무 선비(양반)가 많아 입뻥긋하기가 어렵다 

백남준은 선배벌되는 사람에게 반말을 많이 해 주변사람으로부터 그의 누이로부터도 비축을 샀다 그에게 어떤 윤리적 위계질서가 별 의미가 없었기에 체면치레를 싫어한 것이다. 그래서 누이가 그에게 물었다 왜 너는 어른에게 반말을 하느냐고 백남준 왈 존댓말을 하면 소통에 방해를 받는다고 그냥 반말이 훨씬 소통의 잘 된다고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백남준이 또 싫어한 것은 지식인 척하는 사람 예술가인척 하는 사람이었었는데 여기서 선비가 많다는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을 풍자한 말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존댓말사용으로 엄청나게 언어소통의 방해를 받아 문화발전이 늦어지고 있음을 꼬집은 말 같다 

[] 뉴욕을 겪은 후 나온 생각들, 가끔은 캐나다이야기도 나온다 

김세진 작가가 기획한 한복 퍼포먼스 중 만난 미국인 미술애호가 

[나이가 드니까] 남의 생각이 아니고 나의 생각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것의 밑바탕에는 항상 백남준의 예술관이 작용한다 As times go by, I start out my own and original thoughts that was quite different from others. These thoughts always was influenced and based on Nam June Paik's imagination/
Comme les temps passent, je commence mes propres pensées originales qui sont tout à fait différent des autres. Ces pensées a toujours été influencé et reposent sur l'imagination de Nam June Paik 

[나의 미학적 신념] 과오와 실수가 창조와 상상을 낳는다 이것은 백남준이 말하는 우연의 예술과도 상통한다. 

'This is my aesthetic conviction' Creation and imagination depends on mistakes and errors in art and in everyday life. My conviction equivalenced Nam June Paik's belief that all art created just by accident. 'Ceci est ma conviction esthétique' Création et imagination dépend de fautes et erreurs dans l'art et dans la vie quotidienne. Ma conviction equivalenced la croyance de Nam June Paik que tout art créée juste par accident 


[미술에서] 착시(trompe l'oeil)없이 창조적 세계를 나올 수 없듯이 상상력의 세계에서 실수 없이 창조력은 안 나온다 Just there is no creation without optical illusion(trompe l'oeil) in art, there is no creation without mistakes in imagination or in thinking. Juste comme il n'y a pas de création sans illusion d'optique (trompe l'oeil) dans l'art, il n'y a pas de création sans erreurs dans l'imagination ou de la pensée 

[실수는] 나에게 예술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모든 나의 독창적 사고는 바로 오독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의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서 나온다 결론으로 내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실수만큼 창의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Many mistakes in everyday life bring me the gift of Art. All my creative thinking comes from just misreading or committing a mistake. And all my happiness always comes from mistakes rather than from the intended I was awaked through my life experience that there is no creative thing by mistake. This is my conclusion what I am sure. Beaucoup d'erreurs dans la vie quotidienne m'apporte le don de l'art. Toute ma pensée créative vient juste d'une mauvaise lecture ou de commettre une erreur. Et tout mon bonheur toujours est des erreurs plutôt que de la destination. Je fus réveillé par mon expérience de vie qu'il n'y a pas chose créative par erreur. Ceci est ma conclusion que je suis sûr.
 

전시장에서 젊은 작가 클라우디아를 우연히 만나다 

[뉴욕일기] 젊은 층이 차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공간의 소유화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의 문제 이제는 시간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간은 또한 여유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건물의 사는 사람에게 바닥면적보다 천장높이가 더 중요하다 과거 왕족이나 귀족의 저택을 보면 유럽건축이 그렇지만 바닥면적보다 천장높이를 더 중시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권려을 상징하기대 했다 

창의성과 공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파트 천장이 낮은 한 것은 20층을 지울 때 적어도 아파트 2층은 더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감옥살이 마당이 없고 테라스가 적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마음조차 옹졸해질 수 있다 흙냄새 새소리 비오는 소리 하늘을 볼 수 없고 낙엽을 밟을 수 없고 시골마당의 풍요러움을 전무하다 그럼에도 그 유용성 때문에 한국인은 선호한다 

우리가 골목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세대인데 과연 행복지수가 높아졌는가 모두가 다 비슷해지는 몰개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여자들은 같은 외모로 수술을 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한옥이나 양옥은 한상 열려있다 뉴욕에서 보니까 옆집사람에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인사를 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것보다 훨씬 못해도 네트워킹은 살아있다.입구에 마당을 아니지만 작은 공간 테라스 같은 것이 있다 

[뉴욕후기] 뉴욕커의 삶의 스타일은 경제적 가치보다 문화적 가치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축제와 향연의 삶을 그들의 지상목표로 삼는다 옷이나 집이나 차나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렇듯한 지위나 명성이나 물질에는 우리보다 훨씬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사진에는 뉴욕의 정확한 거리명 (BROOME STREET GREENE ST)이 함께 찍혀 있어 좋네요 이 근처에 어느 갤러리에서 처음 오프닝 행사를 본 것 같다 

[New York review] The life style of New Yorker gives a much higher score cultural value than the economic value. Therefore they considered festival and feast the most important thing in everyday life and they have big targets for festival and feast in their own ways. So they did not much attention to clothes, house, car or a... plausible position, reputation, rich materials that we envy much. 

[New York Review] Le style de vie des New-Yorkais donne une valeur culturelle score beaucoup plus élevé que la valeur économique. Par conséquent, ils considéré festival et fête la chose la plus importante dans la vie de tous les jours et ils ont de grands objectifs pour festival et fête à leur manière. Donc, ils ne l'ont pas beaucoup d'attention aux vêtements, maison, voiture ou une position plausible, la réputation, des matériaux riches que nous envions beaucoup.
 


뉴욕이든 서울이든 꽃집은 언제 어디서 봐도 좋다


남준이야기_그의 흔적을 찾아서 

라파엘레 백남준의 조수생활 6년간하다 백남준작품 복원전문가이면서 작가다 프랑스어도 완벽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녀와 인터뷰 약속을 했다. 시게코를 만날수 있도록 연결해 보겠다고 한다 시게코를 잘아는 친구를 통해서 

1968년부터 사용한 비디오복원실 45 Murry Street 입구 

백남준의 흔적을 찾아서 45 Murry street in Manhattan 
45 Murry Street 


비디오복원 작업스튜디오에 걸려 있는 백남준작품 여기는 바로 백남준 TV아트 등을 복원하는 곳이다 45 Murry Street in Manhatten 

비디오복원실의 다양한 모습 

Chi Tien Lui(오른쪽) 

당신은 어떻게 백남준을 만났는가 PACKED: how you met Nam June Paik ? Chi Tien Lui(1960년 미국도착): Yes, Nam June Paik came one day to my shop with a camera that had a terrible picture. I said I'd fix it for him. We became friends, and he would call me when he needed help for an installation. I still have some equipment here that belonged to him, as he had no storage space to keep it. 

Nam June Paik was using colorizers that a Japanese engineer had built for him. At that time video was only in ...black and white. When people saw that you could put a black and white signal in a box and get something in colour out of it, they all liked it. It was very psychedelic because the colour isn't real. Back then everybody got stoned and liked psychedelics (laughs). So I built a hundred colorizers and sold them. Everybody was buying them. After that my business really took off. When your business is going well, you begin to become careless and to think that whatever you'll do it will work. Several times the business really plummeted. It stabilized when I moved to the present location. But today, with the introduction of new electronics, the business of video servicing is gone. A DVD player costs 40 dollars. Why would you want to repair it if a new one costs less than the price to repair it? 

PACKED: How do you continue your activities? 
Chi Tien Lui: I continue my activities with videotape transfers because you still need the old machines to do it. Not everyone has a collection of old machines and knows how to maintain them the way I do. That is why I moved to working on tape transfers and also to taking care of some of Nam June Paik’s works that are part of museum collections. 

PACKED: When did you start working with museums? 
Chi Tien Lui: About 5 years ago I went to a meeting at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5 where all the museums were talking very theoretically about how to save Nam June's artworks. I raised my hand and said "you know, I could extend Nam June's life". Because I knew him and worked with him, I know what he did. That is how I started picking up that business. At the moment I'm working on replacing 450 TVs from The Chase Video Matrix6 for the J.P. Morgan Chase collection7. I'm also working with the Whitney8 and the Guggenheim museums9. I am retired but I like this type of work. I am glad that Nam June extends my life too (laughs). Most people don't realize that Nam June Paik’s artworks require heavy maintenance. Can you imagine 450 TVs going on and off everyday? Maintaining a video wall is almost like painting a bridge. When you have finished painting it, you can do it all over again from the beginning. 

작업실에 걸려 있는 백남준 작품 

1984년 일본공연 때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하다 The two men's friendship is forever 

백남준 스튜디오 Mercer Street 근처 책방에서 백남준 책을 찾았지만 없었다 

백남준 스튜디오 근처 책방 백남준 책은 없고 그의 절친 보이스와 책만 있네요 그래서 하나 사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싑지 않은 책이다 

여기가 백남준작업실 하나인 110 Mercer Street 

여기가 백남준작업실 하나인 110 Mercer Street 중간에 라파엘레와 잘못 헤어져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 시게코여사가 여기 사는 것으로 안다 가난한 백남준이 이 집을 사게 된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다음에 소개한다 

맨해튼이야기 


작은 공간에서 아주 멋진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뉴욕의 매력이다 


맨해튼 중심가 한국식당에서 이혜원 교수(전시기획자)가 찍어준 사진 


뉴욕 맨해턴 거리 활기차다 


BH전자상가 근처 


Lavazza 식료품점 서양음식에서 치즈는 예술이다 여기가 뉴욕 고급이탈리아식품 Lavazza 본점 이런 곳은 서울에서 볼 수 없다 관광객에게 강력 추천한다 아이쇼핑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