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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백남준을 찾아서 뉴욕 취재(2015.6.1-6.30)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초기 회화 및 조각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의 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인류역사상 문화적 보물을 다 긁어모은 곳이다. American Metropolitan Museum in NY is a place where one scratch all kind of collections in human history and as a cultural treasures broken English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에서 한 컷 

이집트신전, 아프리카 토템, 잉카제국상징물, 중국도자기, 로마조각상 동서양을 아우른다. 유럽 이탈리아 17세기 19세기 프랑스 인상파미술 미국위인의 초상화 20세기까지 다양하나 이 미술관 1872년에 세워졌다. 미국은 남북전쟁 끝나고 산업이 폭발할 때다. 맨해튼 인구급증하고 뉴욕의 부가 팽창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예술품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폭발했다. 이 미술관은 200만 점 소장하고 있다. 부속미술관 클로이스터 맨해튼 북쪽에 있다. 여기는 미국사람이 가장 많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 이 관은 주로 모네의 그림이 많다 

미국사람도 여기를 오지 않으면 촌놈이 된다. 1층 이집트 관 신전 스핑크스, 장신구, 그리스 로마 유물, 장식미술품은 하긴 예술품이란 머리를 가장 많이 쓰고 인간이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한 것이라 그래서 고귀한 것이다 작품이다 적어도 3일을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좌충우돌이다. 무기류나 악기류 등은이곳 만의 특징이다 인류학 박물관 역할도 한다. 동아시아관도 있다 일본·중국·한국 한국은 삼성에서 만들었는데 아직은 초라하다. 뉴욕 가서 여기를 보면 본전 뽑는 것이다 중략 <이현송저 뉴욕사람들 참조> 

Gustav Klimt I 'Serena Pulitzer Lederer' Oil on canvas 190.8*85.4cm 1899 

Beautiful and stylish, Serena Pulitzer Lederer was a star of turn-of-the-century Viennese society. For this portrait, commissioned by her husband, the industrialist August Lederer, Klimt employed soft, sinuous brushstrokes to present Serena as an apparition in white. "An upright flower, long-stemmed … like a black tulip," enthused one critic when the painting was shown in 1901 at the tenth exhibition of the Vienna Secession—a group founded by Klimt and other artists four years earlier, with the aim of putting the city at the forefront of the international art world. The Lederers subsequently formed the finest collection of Klimt’s work in private hands.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갤러리 800-830) 

마네의 그림은 지금 봐아 너무나 현대적이다 

세잔 자화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층 19-20세기 초기 회화 및 조각관(갤러리 800-830) 

오른쪽에 마네의 수련이 보인다 

엘 그레코 작품 메트로폴리탄에서 본 작품 중 가장 큰 감동을 받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층 유럽조각과 장식미술(갤러리 500-556) 

그리스 로마의 다양한 조각작품을 볼 수 있다 


고갱의 원시주의 화풍은 나이들수록 더욱 나를 매혹시킨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이탈리아 미래파 Umberto Boccioni 작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본 여성 관객 뉴욕에서는 이런 패션도 가능하다 

메트로폴리턴 미술관도 솔르위 같은 현대적 작가작품도 소개된다 

[뉴욕 맨해튼 현대미술관(MoMA) 입구 모습 

뉴욕현대미술관 입구 

모마(MoMA)는 더 현대적이며 19세기-20세기 가장 유명한 명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세잔, 마티스, 고갱, 달리, 루소, 고흐, 샤갈, 피카소, 로스코, 폴락 등등 현대미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신령하고 신선한 곳이다. 이곳에 오면 내가 정말 모던한 도시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인류문화사의 최고 예술품이 집중된 곳이다. 결론으로 말해서 이렇다 백남준의 말 중에 선진 속에 후진이 있고 후진 속에 선진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는 뭐하다 한국이 좋은 점이 있고 미국이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1977년 3일간 뉴욕이 정전되었을 때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1000개의 상점은 약탈되고 1000개 이상의 방화사건 등 광주와는 비교가 된다. 폭력성은 잠재하고 있다 이것은 뉴욕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역시 모마에서 이 작품을 빼놓을수 없겠죠

모마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정말 압권이다. 나는 피카소가 주는 그림의 위력에 완전히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모마에서 이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이 강력하게 내 마음에 들어온다 


좋은 작품은 절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인류전체가 그 주인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작품이란 위대한 것이고 놀라운 것이다 

초현주의자 마그리크 그는 눈을 세상을 보는 창문 제목이 또한 초현실주의적이다 The False Mirror 1928 


르네 마그리트의 이런 작품을 보면 정말 현대적이죠 현대인의 삶이 그야말로 초현실적으고 그려지고 있는데 이 사람이 코뮌니스트였다는 잘 모르죠 그는 현실을 그리되 현실을 그리지 않고 환상을 그리는 그런 미술의 또다른 세계를 실제로 펼쳐보인 천재급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의 작품은 주로 신비한 분위기와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데페이즈망 기법(dépaysement)으로 유명하죠. 

데페이즈망은 우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대상이나 상황을 이질적인 상황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페이(pays)는 원래 땅이나 장소를 말하는데 그 단어 앞에 데(dé, 해체하다)가 들어가니까 그 땅을(그 어떤 물체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장소로 옮겨놓는다(배치한다)는 뜻이 된다 

그날 오후 4시나 모마에 입장해 거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역시 바스키야다 


문화시대를 맞아 요즘 미술관이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부각되지요 시대의 변화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하려는 작품은 자코메티의 조각이 아니라 회화작품이다 정망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조각을 잘하면 회화도 잘 할수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같은 회화의 신선한 맛을 볼 수 있다 

앙소르 

앙소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화가다 인간의 위선과 과장 허세와 허영 그리고 삶의 축제가 변질되어 창조적이고 못하고 잘못하면 허무한 국면으로 흐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유사성의 표정과 가면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얼굴이 해골로 그려졌다는 것은 17세말 바니타스의 전통이다 

메레 오펜하임 '오브제-털로 된 아침식사' 1936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해진다 메레 오펜하임은 1936년 이 작품 하나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초현실주의는 친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면서 전복하기, 무의식이라는 또다른 세계를 통해 당시 1차대전의 발발과 파시즘의 대두를 비판했던 예술사조이다. 

메레 오펜하임의 이 작품은 모피로 만든 찻잔세트이다. 도대체 이게 뭔가? 모피로 대변되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보통 여성으로 대변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혼합해서 만든 이 오브제는 결코 약하지 않고, 그녀의 여성성 또한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는 역설을 표현한다. 

그녀의 모피 찻잔세트는 촉각적으로는 에로틱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만, 모피를 갖기 위한 과정의 폭력까지 집요하게 끄집어낼 수 있다. 모피 찻잔 속에는 다양한 이미지들과 폭력적인 남성성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여성성을 표현하면서 작가 자신의 주체성과 희망을 작게나마 엿보게 한다. 


유럽에서 큰 전쟁을 2번이나 일으킨 독일인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주의 기법으로 잘 드러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작품하나로 우리는 독일인의 무의식세계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독일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New Objectivity)의 대표적 작가 게오르그 그로츠(George Grosz)의 작품 '시인 막스 헤르만 나이서'(Poet Max Herrmann Neisse 1927년)이다 


세잔은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라는 새로운 발상법으로 서양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그의 사과그림을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물리적으로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림을 그림 속에 천연덕스럽게 그림으로써 그의 서양의 입체파의 원조가 되었다 

쿠닝을 보니까 정신이번쩍 났다 

<빨래하는 여인> 1888년도작품. 

인생을 살아가는데 빨래만큼 필수적인 것도 없다 박수근은 빨래터에서 그의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9가지 필수다 첫째 <밥> 문제 먹어야 하고 둘째 <잠> 문제 거처가 있어야 하고 세째 <옷> 문제 빨아야 하고 네째 <법> 문제 그 나라마다 다른 법을 지켜야 하고 다섯번째 <돈> 문제 ATM 여기저기에 보인다 여섯번째 <말>의 문제 소통이 되어야 하고 일곱번째는 <글>의 문제 뭔가를 남겨야 하고 여기에는 사진을 뺄 수 없다 여덟번째 만남의문제 전혀 예상하지 않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마지막 막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그 곳이 아니면 누리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새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미국미술이 세계최고라고 하지만 아직 고갱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폴락은 정말 천재인 화가죠 이런 작품의 색채나 구성이나 운동감 그리고 율동감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폴락은 이것마저도 다 버리고 오직 몸으로 그리는 액션페인팅에 도전해서 그야말로 우리시대 최고의 화가가 된 것이죠 절정의 포기야 말로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뉴욕의 지하철은 정말 지옥철이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로스코는 그런 황량함에서 현대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긇어주는 이런 매매모호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본 것이죠 


뒤샹 그는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은 전시장에 가져다놓는 개념을 현대미술에 도입해 서양미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여기서는 창조라는 것보다는 선택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완벽한 창조가 있을 수 없음을 은근슬쩍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작가에 대한 권위적 위상을 부수고 민주적인 사유를 도입한 셈이다 


한국산수화는 중국에서 독립해서 진경산수화가 나왔고 프랑스는 이탈리아 풍경화에서 독립하여 푸생을 거쳐 인상파화가가 나왔고 미국은 유럽의 풍경화에서 독립하여 이런 드넓은 공간의 독립적인 풍경화가 나온 것이죠 이 작품이야말로 미국미술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름은 Rufino Tamayo 1899-1991 


미술관에서 명화를 찍을 때 사진 속에 어떤 관객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작품과 관객의 분위가 맞으면 대 성공이다 이 작품은 그런 개념이 없이 막 찍은 것이다 


20세기에 입체주의 미술운동은 확실히 혁명이었다 피카소 작품 


마티스는 피카소에 비해 단순하지만 그 급수에서는 전혀 떨어지지 않죠 사실 피카소와 마티스는 라이벌관계인데 서로가 경쟁을 하다보니 프랑스20세기 미술을 더욱 풍요롭게 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서로에게 윈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모마 아트숍 마티스와 마그리트 보기 좋네요 예술가는 정말 위대하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보는 일인데 미술관을 나오는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다 입장료가 아무리 비싸도 마음으로 그 보상을 다 받았다는 표정이다 

모마에서 작가나오미와 한 컷 

뉴요커 나오미(작가 겸 전시기획자)는나의 아망트라고 할까 그녀와 함께 모마에서 한컷 이날 모마에 무료입장에 공로가 크다 임시 프레스카드를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다 아직 서류제툴 미비로 받지는 못했지만 

[05] 모마미술관 3층 오노요코특별전 


모마 오노요코전 이 여자는 정말 센 여자라 우리나라에서는 19금이죠 이 전시는 내일 다시 소개드리죠 백남준과 오노요코 시게코의 미묘한 삼각관계이면서 라이벌관계이기도 했죠

"1963년 일본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오래전부터 알던 옛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껴다 남준은 늘 조용히 나를 지지하고 내 편을 들어주어 어려울 때마다 정신적으로 의지한 내 마음 속 부처였다" - 오노요코 백남준 회고의 말 중에서 "When I first met Nam June Paik in 1963 in Japan I felt a closeness to him, like an old friend from a long time ago. Every time I was difficult in my heart, he is the one I rely with a heart. He who was always quiet was my Buddha. He gave me a hand when I was in difficult situation and he always supported my position -Ono Yoko


우리시대의 마녀 혹은 미녀 예술가 오노요코의 퍼포먼스사진 여기에 보면 역시 백남준이 같이 등장한다 아닌가 하여간 다른 사진에서 보면 백남준이 나온다 

Museum of Modern Art: ‘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 (through Sept. 7) In 1971, Yoko Ono gave herself an imaginary solo show at MoMA by means of a few cut-and-paste photographs and some strategically placed newspaper advertisements. More than 40 years later, the real thing has come to pass and it was worth the wait. Enhanced by films and a soundtrack, the show is largely archival, with lots of works on paper, including the 151 hand-typed note cards that, in 1964, became “Grapefruit: A Book of Instructions and Drawings,” and demonstrate how radical this artist’s early experiments with language and performance were. A 2015 sculpture rounds things out. Sure to put you off balance, it’s a reminder of what a wake-up-to-life call that art can be, a message that this underestimated artist has been delivering for years. 212-708-9400, moma.org. (Cotter) 


앤디워홀 오줌으로 만든 작품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오노요코 여자의몸에서 나오는 물로 기막힌 작품을 선보이고 있네요 이것은 노자사상의 메타포이다 물방울 하나로 바위를 뚫는다는 동양적 정서를 반영한 것 같다. 느리지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이야 말로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물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다. 상당히 에로틱하다는 면에서 현대적이다 자세히 보면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전시장 바닥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앤드워홀 오줌으로 만든 작품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오노요코 여자의몸에서 나오는 물로 기막힌 작품을 선보이고 있네요 


오노요코전시장 옆에 아트숍 여러가지 다양한 제품 특히 오노요코도록과 관련상품이 팔린다 사실 작가들이 모마같은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면 최고급 영어로 된 도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전시장 인산인해 개념미술가로서의 오노요코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텍스트아트 나는 잘 모르지만 거의 일본 단시와 같은 문장에 적혀있다 


오노요코의 전시장 풍경 모마에서 처음 전시인데 모마는 다른 메인전시장에서 전시된 작가는 절대 전시하지 않는다고 아이리스 선생님의 설명이다백남준도 이미 구겐하임에서 전시를 했기에 모마에서는 전시가 없었는데 사실 백남준은 모마가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여간 오노요코의 위상을 미국에서 백남준의 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후대에 평가를 할 때 백남준이 오노요코보다는 한수위인 것은 틀림없다 


체스와 엉덩이 춤 그림 이건 20세기 미술혁명의 진원지가 된다 바로 몸과 도박(아방가르드한 실험정신)이 중요하다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실험이다 사실 모든 그림을 결국 여성의 엉덩이와 버자이너를 그린 것이다 뒤샹의 변기는 또한 여성의 버자이너를 상징한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성행위를 말한다 요노요코의 똥파리가 천천히 지나가는 버자이너영상은 시케코의 버자이너페인팅보다 더 세다 19금이라 여기서는 생략한다 미국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없지만 ㅋㅋ 

모마 오노요코 특별전 도록과 아트상품 

모마 오노요코 전시장 나는 봉이김선달이다 


여기가 모마 6층 레스토랑인데 오늘 제가 내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난 곳이죠 그가 누군가 하면 백남준의 마지막 전시를 기획하고 그의 예술에 홀려 지금도 전세계에서 백남준 기획전을 열고 있는 아이리스 문 선생이죠 오늘 제가 아이리스님이 사주는 런치 및 디저트를 대접받았는데 그 메뉴가 사실 제가 처음 먹어보는 것이네요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냄새와 음식의 맛이 아닌가 싶네요 


뉴욕 일요일 정말 지축을 울리는 소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진통하는 하루 그야말로 축제의 도시 음악이 이어지니 어깨가 절로 움직여지는 그런 곳이더군요 사실 지나치게 소음이 심한 도시죠 존 케이지가 왜 소음이 음악이라고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되었습니다 지저분함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이상한 냄새는 사실 하루만 지나면 중독이 되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네요 내일모레 독일베를린에서 열리는 백남준국제세미나에 참가하시는 일정에도 시간을 내셨네요 백남준의 유작 <엄마>가 바로 이 선생님의 기획으로 성사가 되었죠 TV 내용 중 따님 3분도 나온다고 하네요 


백남준기획전을 국내외적으로 11번이나 하셨네요 오늘의 주인공 아이리스 문선생님이 모습이 드디어 나타났네요 저에게 사주신 특별요리가 뭔지도 먹어보네요 오늘을 조금 수줍은 모습이네요 사진실력이 없이 그녀의 외모를 따라가지 못하네요 

[뉴욕은 정치적 긴장이 전혀 없는 도시라 편하다] New York has a good atmosphere because there are no tension to give or form political power to the people 뉴욕이 좋은 점은 정치권력이 풍기는 긴장감이 전혀 없다. 표현의 자유에서 방해를 받는다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워싱턴보다 훨씬 뉴욕은 그냥 마음이 편하다. 보스턴처럼 고매하지 않다. 뉴욕은 원래 장사꾼의 도시다. 세계금융의 도시 월가가 있다. 이민자중 가장 많은 수가 먼저 발을 딛는 곳이다. 가장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산다. 뉴욕은 출판, 미디어, 광고, 패션, 예술 등이 산업을 지배한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권위 있는 신문이 있다. 미국부자들이 가장 많이 산다. 반면 빈민가는 믿을 수 없는 만큼 비참하다. 뉴욕시민 중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없다. 파리처럼 무단횡단은 다반사다. 

[구겐하임 오프닝 리셉션] 

구겐하임 미술관 입구 

[구게하임] 구겐하임과 모마 현대미술의 색감과 현대미의 집합소다. 여기는 현대미술이라 메트로폴리탄보다 마음이 가볍다 19세기이후 작가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구겐하임은 승천하는 이미지다. 상당히 종교적이다 .프랑크 로이드라이트가 설계했다 .백남준이 2000년 전시할 때 이 공간을 가장 창의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트 숍에 가면 인상파 등등 화집을 볼만하다. 작품에는 기부자가 많고 그 이름을 적혀 있다. 미술관은 개인이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공공관념 때문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이 미술관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올라가면서 보고 내려오면서 반추하듯 다시 그림을 보고 미로에 빠져 관객의 혼을 빼 놓는다 사실 그렇게 큰 미술관은 아닌데 상당히 매력이 있다 백남준이 여기서 전시를 할 때 그가 이 공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레이저 아트를 선보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이저가 단계별로 계단을 오르듯 그렇게 레어빛이 올라가는 효과를 주는 것이기에 관객의 혼을 빼놓기 좋기 때문이다 


백남준 회고전에 참가한 사람인 마이클은 지금 이 미술관의 시니어 메니저다 상당히 높은 직함이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인 라파엘레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백남준 때문에 이 동반자를 무려 뉴욕에서 4번이나 만났다 마이클이 그렇게 높은 책임자인줄은 몰랐다 그는 참으로 아주 조용한 사람인데 내면이 강해 보였다 

이불 작가의 작품 소품이지만 너무 좋다 

[구겐하임미술관 양혜규전 그룹전 중 백미]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보는 양혜규작품 여기서 가장 멋진다고 할까요 오감을 자극하는 그의 작품은 향기 소리 색의 착시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변화 그 창의적 열동성 등 이 사진을 무려 20장은 찍은 것 같네요 이불 반응이좋지만 양혜규는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았다 일본여학생에게 양혜규에 대해 설명하니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양혜규 정말 대단합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구겐하임을 백남준 이후 2번째로 점령했군요구겐하임미술관 양혜규 작품과 잘 맞는다 둘의 특징을 바로 관객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양혜규 작품을 각도를 다르게 해서 찍어보다 

세계10대작가에 속하는 도리스 살세도 전시(June 26–October 12, 2015)오프닝 리셉션에 초대받아 찍은 사진이다 미국 미술계인사와 처음 만나다 

구겐하임 오프닝 행사 

구겐하임 오프닝 행사에 선보인 칵테일 색이 너무 산뜻하고 예쁘다 간단한 막대빵과 함께 마신다 

http://www.guggenheim.org/new-york/exhibitions/on-view/doris-salcedo

이 날의 주인공은 도리스 살세도 그녀 작품은 매우 독특하다 저항적이면서 돌발적이고 현대문명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반성을 유도한다 오프닝 행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작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0위권에 속하는 데 한국에는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 This major retrospective will survey the searing, deeply poetic work of Doris Salcedo (b. 1958, Bogotá, Colombia). Over the past three decades, Salcedo's practice has addressed the traumatic history of modern-day Colombia, as well as wider legacies of suffering stemming from colonialism, racism, and other forms of social injustice. 



이런 오브제작품의 익명의 폭력성을 은유한다고 하니 그 해석이 그리 쉽지는 않네요. 중남미 작가답게 정치적 상황이 녹록하지 않겠지요. 이 작가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경직성이다. 가구에 콘크리트를 묻히고 있는 것은 살아있어야 하는 가구를 죽이는 정치적 악습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것 같다 상당히 예술적 감각이 있는 그래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가 그의 이름은 바로 <도리스 살세도> 직접 이 작품을 본 사람으로 더욱 그런 점을 느끼게 된다 

The Guggenheim’s presentation of Doris Salcedo will occupy four levels of the museum’s Tower galleries. It will feature the artist’s most significant series from the late 1980s to the present, as well as a video documenting her remarkable site-specific public projects and architectural interventions./ Doris Salcedois organiz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Doris Salcedo. Photo by Artforum. 

Doris Salcedo (Bogotá, 1958) studied Fine Arts at the Universidad Jorge Tadeo Lozano in Bogota and pursued graduate studies at New York University (1984). Between 1987 and 1988 directed the School of Fine Arts of the Institute of Fine Arts in Cali. She has been awarded grants by the Guggenheim Foundation and Penny Mc.Call. 

Her creation revolves around the serious problem of violence in Colombia and its devastating impact on the social fabric. Salcedo travels to the most deprived areas in Colombia and speaks with the families of those killed, adding these accounts to her works,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She often uses furniture in hes sculptures, removing its familiarity and giving them an air of unease and horror. 

One of her first creations is Atrabiliarias, a mural made up of women's shoes tucked into niches, covered by a thin translucent film. In another, Casa Viudas, the furniture are mourning the loss of their former occupants clinging to bones, the remains of a dress ... 

Sh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lombian artists in the contemporary international scene. Her works have been exhibited at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in New York, Tate Modern in London, the Pompidou Centre in Paris,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nd 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in Madrid , among others. 


뉴욕 미술계 인사들 

구겐하임미술관 오프닝 리셉션 장면 

구겐하임 큐레이터 부부 

구겐하임 수석 시니어 메니저 마이클 샤프 선생 

그의 집에 저역식사에 초대받아 그의 집을 방문하다 그의 생의 동반자는 백남준 조수를 6년간 한 미국작가 라파엘레다 두 분은 2000년 백남준 구겐하임 회고전에도 같이 참여했다 

[휘트니미국미술관] 여기서 드디어 백남준 작품을 만나다 


새로 이사간 신축한 휘트니미국미술관 파사드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작품 앞에서 한장의 사진을 찍어보다 휘트니미술관을 뉴욕 5번가 번화가 있다가 지금은 첼시지역으로 이전했다 

[미국 휘트니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주소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NY 10014 (212) 570-3600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뉴욕에 가면 이곳을 추천한다. 새로 이사 간 미국 휘트니미술관이다. 이사 간 이곳은 물론 중심가는 아니다. 우선 뉴욕허드슨 강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백남준 작품도 보고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어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 먹을 것도 많다. 새 미술관이라 분위기도 유쾌하다. 예술은 페스티벌이다. 여기는 바로 예술놀이터이자 삶의 생기를 얻는 문화발전소이기도 한다.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다. 주소 다시 확인 http://whitney.org/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책을 하나 사다 

[백남준일기] 백남준이 난해한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그의 미학 혹은 철학은 너무나 간단하다. 즉 모든 소통과 네트워킹이 상호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인간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고 상호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윈윈(상생)이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문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일상에서 삶의 축제를 촉발시키는 사람이다. 

Nam June Paik sometimes called difficult artist. But his aesthetic or philosophy is very simple and common. The most importing thing for him is that all communication and networking should be interactive with a mutual way. Why? When most people to be coexiste...nce in equality they are so happy and enjoyable. This is a kind of win-win, it is also a law of the universe. When we viewed from this side, He is a practicing democracy as a cultural way and he also is a animator who created the festival and feast in our daily life. Nam JunePaik parfois appelé artiste difficile. Mais son esthétique ou de la philosophie est très simple et commun. La chose la plus importatrice pour lui est que toutes les communications et les réseaux devraient être interactifs avec une façon mutuelle. Pourquoi? Quand la plupart des gens à être coexistence dans l'égalité, ils sont si heureux et agréable. Ceci est une sorte de gagnant-gagnant, il est aussi une loi de l'univers. Lorsque nous avons regardé de ce côté, il est pratiquer la démocratie comme un moyen culturel et il est aussi un animateur qui a créé le festival et fête dans notre vie quotidienne. 

백남준 TV자석 1965 

<TV자석>은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작품 1965년 그는 TV 화면을 새로운 캔버스로 본 것이다 새로 이사간 휘트니미술관에서 2015년 6월 20일 찍다 <Magnet TV> is a monumental work of Nam June Paik in 1965. He took TV screen as a new canvas. I took this photo on June 20, 2015 at New Whitney Museum moved. <Magnet TV> est une œuvre monumentale de Nam Juin Paik en 1965. Il a pris écran du téléviseur comme une nouvelle toile. Je pris cette photo le 20 Juin 2015 au Whitney Museum de New déplacé. 

Magnet TV is a work by Nam June Paik from 1965. In it Nam June Paik altered the flow of electron in the picture by applying a magnet to the TV set. "The magnet’s force of attraction hindered the cathode rays from filling the screen’s rectangular surface. This pushed the field of horizontal lines upward thus creating baffling forms within the magnet’s gravitational field. If the magnet maintained its position, the picture remained stable—apart from minimal changes caused by fluctuations in the flow of electricity. Moving the magnet caused endless variations of the forms." (Source: Edith Decker, Paik Video, Cologne, 1988, p. 60ff.) 



<TV자석>은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작품 1965년 

가장 미국적인 작가 에드워드 후퍼(Edward Hooper, peintre de la solitude) 작품이다 

'America Is Hard to See' (through Sept. 27) With high ceilings, soft pine-plank floors and light-flooded windows and terraces, the galleries of the new Renzo Piano-designed Whitney Museum in the meatpacking district are as airy as 19th-century sailmakers’ lofts. Art feels at home in them, and the work in the museum’s top-to-bottom inaugural exhibition is homegrown. Culled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it mixes bookmarked favorites by Edward Hopper, Georgia O’Keeffe and Jasper Johns with objects and artists that the Whitney had all but forgotten or just brought in. As a vision of a larger America, the show is far from comprehensive; as a musing on the history of a particular New York institution over nearly a century, it is very fine, smartly detailed and superbly presented. 99 Gansevoort Street, at Washington Street, 212-570-3600, whitney.org. (Cotter) 

이 미술관은 야외놀이터가 있다 좋다 주변 멀리 바다도 바라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덕수궁에서 열린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에서도 소개되었다 

[뉴뮤지움 신미술관] 


뮤지움 처음 가보고 내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건축물 자체가 너무 창조적이다 주말마다 옥상에서 신나는 파티가 있죠. 사진에 거리명 Bowery Street 이름이 보이네요 http://www.newmuseum.org/ 235 Bowery New York, NY 10002 212.219.1222 

[Building] The New Museum, designed by Tokyo-based architects Kazuyo Sejima and Ryue Nishizawa/SANAA, is a seven-story, eight-level structure located at 235 Bowery between Stanton and Rivington Streets, at the origin of Prince Str...eet in New York City. 


The New Museum building is intended as a home for contemporary art and an incubator for new ideas, as well as an architectural contribution to New York’s urban landscape. Sejima and Nishizawa, who received the commission in 2002, have described the building as their response to the history and powerful personalities of both the New Museum and its storied site. “The Bowery was very gritty when we first visited it,” they have said. “We were a bit shocked, but we were also impressed that a fine art museum wanted to be there. In the end, the Bowery and the New Museum have a lot in common. 


Albert Oehlen
, Der vergiftete Asket [The Poisoned Ascetic], 1992. Silkscreen and acrylic on paper, 79 × 63 3/8 in (200.5 × 161 cm). Private collection.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Luhring Augustine, New York

'Albert Oehlen: Home and Garden' (through Sept. 13) This fantastic, overdue show skims too lightly over three decades of painting — from 1983 to 2011 — as the artists moved from Neo-Expressionist self-portraits to his latest abstractions, in which irony is replaced by a semblance of anguish. In between: some of the first (and best) forays into painting by computer, and a group of canvases whose sublime abandon obliterates elaborate computer-built images. 235 Bowery, at Prince Street, Lower East Side, 212-219-1222, newmuseum.org. (Smith) 


Both have a history of being very accepting, open, embracing of every idiosyncrasy in an unprejudiced manner. When we learned about the history of the New Museum we were flabbergasted by its attitude, which is very political, very focused on new ideas, fearless. The New Museum is a combination of elegant and urban. We were determined to make a building that felt like that.” Amidst a cluster of relatively small and mid-sized buildings of varying types and uses, the New Museum rises 175 feet above street level. As visitors approach on the Bowery or from the west along Prince Street, they encounter the building as a dramatic stack of seven rectangular boxes 

[프릭 컬렉션 이야기] 

이 박물관 외부 모습 

[맨해튼부자이야기]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사람들이 뉴욕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부자로 사는 곳이 티가 나지 않는다. 주변의 분위가 그렇게 조용하지만은 않고 번잡한곳 제복을 입은 수위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청소부터 자질구레한 수리 등 슈퍼마켓 식품 배달하는 사람 등등 관리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당연히 히스패닉다. 과거의 유럽의 귀족과 현대 뉴욕의 부자는 어떤 면에서 흡사하다. 외부수리는 엄격한 건축규제로 주로 내부수리를 많이 하고 가구를 자주 바꾼다. 주변에 5번가 명품점이 줄줄이 서 있다 그들의 생활은 잘 노출되지 않는다. 산책이나 산보를 갈 때만 보인다. 여기는 전혀 번잡한 점포가 없다. 당연하다. 배달시키면 된다. 이 근처 자녀들이 다니는 특수학원건물이 루브르 건물과 비슷하다. 이들에게 가장 관심거리는 미술품일수밖에 없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시아 불교미술, 일본 문물, 중국 도자기 한국의 고가구 등등 하여간 이들은 Honorary White이다 이런 부호 중 FRICK COLLECTION 이라고 수집한 명화를 가지고 개인의 저택을 박물관을 만들어 공개한다. 입장료를 받기에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보통 사람도 이 박물관에 들어가면 미국의 부호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여간 부자이면서 정말 부자로 사는 사람은 바로 미술을 컬렉션하거나 미술관계자와 인연을 맺으면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많기에 미국미술이 발달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예술재단을 만들어 미술창작자를 지원하기도 한다.
 

프릭 컬렉션 입구 

미국의 최고부호의 집을 바로 미술관이 되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 같다 

이 박물관 중앙 홀 

철강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이 40여년간 수집한 컬렉션이 전시된 곳으로 19세기 유럽건축양식으로 지워진 우아한 저택이 미술관이 되었다 프릭이 사후에 미술관이 되기를 바랬던 유언에 따라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다 마치 베르사유궁전의 축소판 같다.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상파 등 유럽작가 작품과 밀레 드가 휘슬리 등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화가의 베르메르의 장교와 웃는 소녀도 볼 수 있다 

최고부호 저택 인테리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이 갤러리 독일미술관 이이기] www.facebook.com/Neue.Galerie.New.York 


독일미술관 Neue Galerie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촌스러움을 보이다 그래서 자꾸 뒤떨어진다. 여기서 전시되고 있는 클림프전시는 서울에서 봤을 때보다 더 멋져보였다 

klimt's1907 gilded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at the Neue Galerie. Credit Librado Romero/The New York Times 

6월 20일 뉴욕 노이어갤러리에서 이 100년 전 작품을 봤을 때 전율이 왔다. 장식미술과 순수미술의 절묘한 교합이다. 당시 빈이라는 도시의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절감할 수 있었다 

Neue Galerie: ‘Gustav Klimt and Adele Bloch-Bauer: The Woman in Gold’ (through Sept. 7) With the spring release of the movie “Woman in Gold,” which is about the restitution of some Nazi-looted paintings by Gustav Klimt to their rightful heir, the most celebrated of those works, the predominantly golden “Adele Bloch-Bauer I” (1907), was brought back into the media spotlight after its 2006 purchase by Ronald S. Lauder for $135 million, then the highest price paid for a painting. This small show features the portrait along with eight other Klimts and an assortment of jewelry and decorative objects typifying the luxurious lifestyle of Adele and Ferdinand Bloch-Bauer, the art collectors who commissioned it. 1048 Fifth Avenue, at 86th Street, 212-628-6200, neuegalerie.org. (Johnson) 


이 작품을 NeueGalerie에서 보니 백년전 오스트리아미술 전성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장식문화와 순수회화의 결정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I saw this famous work of Klimt 100 years ago at the Neuer galerie the June 20, 2015 in NY. Then I had experience the big thrill. This work is exquisite bite of decorative arts and fine art. I felt desperately the erotic and sensual atmosphere of the city of Vienna at that time /Je l'ai vu ce fameux travail de Klimt il ya 100 ans chez Neuer galerie 20 Juin, 2015 NY. Puis je devais éprouver le grand frisson. Ce travail est bouchée exquise des arts décoratifs et des beaux-arts. Je me sentais désespérément l'atmosphère érotique et sensuel de la ville de Vienne à cette époque 

이 박물관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데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20세기 초반 독일과오스트리아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클림트와 쉴레 코코슈가 작품의 걸작을 여기서 감상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천만장자이자 컬렉터인 로널드 로데(Ronald Lauder) 전시기획자 서지 사바스키(Serge Sabarsky)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기존의 미술관과는 차별성을 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Neue Galerie: ‘Russian Modernism: Cross-Currents of German and Russian Art, 1907-1917’ (through Aug. 24) This lively, scattershot exhibition of about 70 paintings and works on paper forms an indispensable introduction to Russian modernism’s figurative beginnings and its ties to German Expressionism. That many of the Russians are unknown compensates for the unevenness of their work and for a selection of abstract pieces that feel tacked on. The German works, while outnumbered, look great. 1048 Fifth Avenue, at 86th Street, 212-628-6200, neuegalerie.org. (Smith 

러시아 추상주의와 독일이 표현주의가 상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두 가지 작품 

[뉴욕 쿠피-휴이트 디자인 미술관]
 

뉴욕 쿠피-휴이트 디자인 미술관 입구 

뉴욕디자인미술관 속에 전시된 작품 디자인인에서 색채의 역할의중요성을 보여준다 

가구와 프린트 텍스타일 도기 등 25만여점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 박물관으로 스미소니언 협회가 인수해 지금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촛대그림이 발굴되어 공개되기도 했다 이곳은 철강왕 카네기가 1901년 건축한 저택으로 맨해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원이 있고 이곳은 결혼식 이벤트 징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Guy Sorman) 박사부부 

나는 그 부부를 뉴욕 디자인미술관(위 미술관) 정문에서 만날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 못했다 인생은 필연이기보다는 우연이다 백남준의 우연의 미학과 나의 실수의 미학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통한다 세상에 이렇게 유쾌하고 지적이고 패션감각이 탁월하고 통찰력이 넘치는 보수주의자는 보기 힘들다 그는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유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윤리에서 온다고 본다 <노동에 대한 헌신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최고수준의 브랜드가치를 가진 것은 바로 <달항아리>로 보고 있다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번뜩이는 지성과 탁월한 유머감각이 넘친다 그의 결론은 그는 한국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를 이해해야 하기에 본의아니게 한국문화연구자가 되었다 그의 문화에 대한 견해는 우리도 모르는 장점과 단점을 꿰뚫고있다 

[브루클린미술관] 브루클리은 21세기 뉴욕미술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브루클린미술관과 지하철 

The Brooklyn Museum is an art museum located in the New York City borough of Brooklyn. At 560,000 square feet(52,000 m2), the museum is New York City's second largest in physical size and holds an art collection with roughly 1.5 million works. Located near the Prospect Heights, Crown Heights, Flatbush, and Park Slope neighborhoods of Brooklyn and founded in 1895, the Beaux-Arts building, designed by McKim, Mead and White, was planned to be the largest art museum in the world. 

브루클린미술관 입구 로댕 조각 

The museum initially struggled to maintain its building and collection, only to be revitalized in the late 20th-century, thanks to major renovations. Significant areas of the collection include antiquities, specifically their collection of Egyptian antiquities spanning over 3,000 years. African, Oceanic, and Japanese art make for notable antiquities collections as well. 

American art is heavily represented, starting at the Colonial period. Artists represented in the collection include Mark Rothko, Edward Hopper, Norman Rockwell, Winslow Homer, Edgar Degas, Georgia O'Keeffe, and Max Weber. The museum also has a "Memorial Sculpture Garden" which features salvaged architectural elements from throughout New York City. 

시카고의 '디너파티' 디카가 박살이 나서 스마트 폰으로 찍었더니 사진 질이 떨어진다 

이 작품은 여성주의 작가를 대변하는 시카고의 작품으로 브루클린미술관 최고의 소장품이다 

1970년부터 미국 서부에서는 주디 시카고와 미리엄 사피로가 주축이 되어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최초의 페미니스트 미술강좌가 개설되었다. 그녀들은 1973년 집 한 채를 빌려 각종 여성관련 이미지와 물품을 소재로 ‘여성의 집’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의 의식화 작업을 진행시켰다. 주디 시카고는 페미니즘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디는 1971~1979년 사이에 디자이너와 100여명의 여성자원자가 수놓기와 도자기 제조 등에 참여한 '디너파티'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페미니즘 미술사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된다. 

이 작품은 38개의 테이블을 이등변 삼각형이 되게 배치해 도자조각으로 된 열 세개 씩의 개별 접시, 냅킨, 장식용 식탁보, 잔, 포크, 나이프 등이 마련된 거대한 작품이다. 테이블 각 변은 14m, 높이는 15m로 각 자리마다 버지니아 울프, 사포 등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로부터 미국의 흑인 노예해방론자까지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룬 다양한 여성 명사들의 이름을 식탁보에 수놓았고, 나머지 999명의 여성의 이름은 자기 타일로 만든 바닥 마감재에 새겨넣었다. 식탁보 위의 접시는 여성의 음부를 꽃처럼 제작해 전시하면서 더 이상 수동적인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 주체적인 여성을 의미한다. 


Basquiat : The Unknown Notebooks - Brooklyn Museum, New York. 2015 AT art shop in exhibition of J-M Basquiat

브루클린미술관 바스키아특별전 

Brooklyn Museum: 'Jean-Michel Basquiat: The Unknown Notebooks'(through Aug. 23) In this sparkling if sometimes arcane exhibition, the contents of eight notebooks, supplemented by several paintings and large drawings, trace the evolution of Basquiat’s loquacious pictorial style. Time spent with the catalog enhances the experience. 200 Eastern Parkway, at Prospect Park, 718-638-5000, brooklynmuseum.org. (Roberta Smith) 

바스키아특별전 아트숍 

지금 이 미술관에서는 바스키아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전시 아트숍에서 만난 젊은 커플 남자친구의 헤어스타일이 바스키아를 닮아 인상적이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 특별전 홍보포스터 4층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군요




바스키아는 사실 아방가르드 작가다 그런데 인기가 높은 아방가르드 참으로 드문 예이다 그의 장난기 어린 낙서화는 사실 기존의 회화를 조롱하는 정신에서 나왔는데 그는 심오한 철학적 내용도 아주 가벼운 낙서로 대체할 수 있었다는 점은 그의 예술의 가장 큰 미덕이 될 것이다 그는 사실 화가보다 시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는 시는 상당히 과격하고 제3세계적 관점도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감수성이 높은 어머니따라 모마에서 자주 다녔다고 하는데 그런 미적 교양이 그에게도 그의 창작에 좋은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1982년작 '유명(famous)'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던 장 미셸 바스키아 는 정말 유명인이 되고 싶었죠 거기에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 요절했네요 뉴욕 브루클린미술관 바스키아전 사진 Basquiat : The Unknown Notebooks - Brooklyn Museum, New York. 2015

[첼시미술특구 전시] 507 West 24th Street New York NY 10011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첼지지역 갤러리 디렉터 Kathryn Erdman 그녀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났는데 바로 나를 보고 명함을 주기에 사실 좀 당황했지만 그 명함을 보고 찾아갔더니 첼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고급갤러리다 나중에 다시 놀러오라고 한다 서울서 볼 때는 몰랐는데 상당한 미인이다 첼시지역 갤러리에 가면 정말 뉴욕커 중에서도 최고의 미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갤러리입구에서 


303갤러리 왼쪽에 내 친구인 이 갤러리의 공동디럭터인 캐터린이 보이고 뒤로 들어오는 남자는 버마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이 로드디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의 도록을 보니까 미국으로 치면 바스키야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다만 이 작가는 회화에서 퍼포먼스까지 접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이름은 AYE KO다 

첼시지역 이런 작품 괜찮네요 

첼시 전시 중 으뜸은 역시 이우환전이다 

첼시 페이스갤러리 이우환 전시사진 중 하나 

이우환의 단순미, 그 최고의 경지가 낳은 놀라운 위력한다 

이우환 단순미의 승리이다 

첼시미술동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내가 이들에게 잠시 이우환전에 대한 설명을 하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이제는 이우환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민활하다 페이스갤러리 이우환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돌과 철의 연애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연애스캔들이다 

첼시지역 또 다른 장면 산뜻한 이런 분위기 갤러리도 있군요 

첼시갤러리지역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산책로  전망대 여기에서는 첼시가 다 보인다 

첼시미술지역의 하이라인 파크(Chelsea High Line Park) 대성공


이 공원은 2009년 처음 개방된 곳으로 첼시미술구역 과 나란히 있다 2층이다 버려진 고가도로를 활용해 새로 공사비도 많이 들지 않고 재개발로 성공한 사례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가 성공의 원인이다 이런 것들은 과거 산업화의 사용되던 철도를 고친 것이다 이 다리는 1999년 하이라인 친구들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추진되었고 공원화의 타당성이 확인되면서 추진하게 되었단다 백남준 TV정원처럼 철길에 자연공원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것이다 일단 자동차가 없고 장사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야생식물과 대조를 이루는 철도가 잘 어울러진 것이다 허드슨강의 떨어지는 낙조도 감상할 수 있단다 동네공원과 다르다 규모는 작지만 아이디어가 좋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공사비 1억 5천 달러가 들었는데 그 효과는 20억 달러가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여간 과거 폐허가 된 산업화 흔적을 정보화문화시대에 잘 업그레이드시킨 사례다 


뉴욕 웨스트 첼시는 아직 좀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런데 미인이 사진 속에 들어가니 분위가 확 살아난다 


첼시에서 작가의 이름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찍은 사진 

첼시지역 갤러리지도 

[뉴욕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 참관기]
 거의 광적이고 카니벌수준이다 한마디로 잘 논다 

뉴욕 전시장 풍경 중 하나 

우리와 크게 다른 하나는 시니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술관객의 층이 어느 연령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골고루 퍼져있다는 증거다 One of features of audiences in art exhibition in NY and the Western country there are many seniors there 

오프닝행사가 카니발 같이 시끄럽고 요란하고 거의 광적이다 

[뉴욕 ART STDENTS LEAGUE 미대전] 

ART STDENTS LEAGUE 전시장 라우젠버그 작품앞에서 


[뉴욕의 명소] 

뉴욕에서 가장 럭셔리한 박물관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1109 5th avenue 

역시 부호가 많은 탓인가 보다 미국최대규묘의 유대인 박물관으로 그들의 종교 역사 문화를 들어볼 수 있다 고대이스라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만 7천점 소장품 이 박물관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금융계의 거물은 와버그의 개인저택이다 

컬럼버스서클에서 본 뉴욕 웨스트 거리 가운데 센트럴파크이 보인다 

센트럴 파크에서 찍은 사진 뒤로 라 플라자 호텔 등 고층빌딩이 보인다 

뉴욕 그랜드 센터럴 스테이션 

컬럼비아대학 

[About New School University of New York] 뉴욕에는 사회엘리트를 만드는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오바마 대통령 여기출신)과 세련된 현대지성을 만드는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36명 노벨상수상자배출) 그리고 서민을 위한 <뉴욕시립대학City University of New York> 그리고 매우 사상적으로 진보적이고 예술적으로 실험적인 <뉴 스쿨 대학 New School University of New York>이 있군요 뉴욕대와 붙어 있는 모양인데 처음 들었다. 이 대학은 철학에서 시작해 이제는 예술(음악과 미술)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대학이 되었다고 하네요 아래사진 뉴스쿨미대학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견학 사람없는 이른 시간에 

5번가 번화가 중 한 의상 부티크 White and Black 

[축제의 도시 뉴욕] 뉴욕은 어디를 가나 축제 판이다. 시도 때도 없다.New York is also the city where the festival takes place always. There is no time and no place. 어디나 관광객이 투성이다. 관광수입은 매년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4조, 이 도시는 런던, 파리, 로마의 장점을 합친 것 같다. 새로운 유행의 중심지 그 다양성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음식, 점포, 식품점, 이벤트의 분위기가 다양하다 영화나 광고 미디어에서 본 명소가 많다. 미국사람도 뉴욕에 오면 촌사람이 된다. 여기는 젊은 단기 체류가 많다. 한국학생은 디자인 패션 분야가 많은 것 같다. 뭔가 배우고 다양한 학원이 있다. 영어학원은 물론이고 서비스분야 그리고 전 세계 비즈니스맨이 와글와글하다. 새로운 돈과 꿈을 찾아서 뉴욕 찾는다. 부동산값이 날로 치솟는다. 미국영화나 영상이미지 미디어덕분이다. 

록펠러 센터 

Canal Street 근처인데 여기 2층 작업실에서는 고장난 TV 등 미디어아트 작품을 수리한다 

타임스스퀘어 

뉴욕에는 현대문화상징의 메카가 많다. 타임스스퀘어가 그렇다. 세계적 교차로 가장 번잡한 곳이다. 교통망의 중심지다. 뉴욕타임스가 여기에 있다. 서울의 시청광장과 조금 비슷하다. 과거 유흥업의 중심지 대중소비문화 진공청소기를 역할을 하다. 1920년 재즈의 시대를 열다. 포르노극장 성인용품 매춘부가 손님을 끌다. 점잖은 사람 갈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80-90 재개발로 전혀 달라졌다. 고충건물이 올라가고 사소한 범죄 엄격처벌 길모퉁이마다 경찰 배치했다 지역개발투자를 한다. 고급의류매장 하드록카페가 어디나 있다 화려한 점포 전시장이 즐비하다. 휘황찬란한 홍보전광판이 이 지역을 상징한다. 1년에 거두는 광고료가 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800억이다. 미디어 영화 등에 자주 노출되고 등장하는 곳이다. 이미지 홍보 시대 첨병이다. 여기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함께 뉴욕의 문화 상징 메카다. TV 등 미디어가 만든 최고의 환상이다.


'그리니치 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뉴욕대가 바로 옆에 있고 백남준 작업실도 멀지 않다 

여기는 반문화운동의 본거지였다고 하네요 지금은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점령해버렸다고 이곳은 재개발반대로 옛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여기는 20세기 초 예술가 작가 지식인과 보헤미안의 중심지 1950년 소위 비트세대는 전후 풍요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물질로부터 자유추구하는 문화운동이 일어난 곳동성애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용인된 곳이기도 하고 여기에 백남준 절친인 앨런 긴즈버그 등 문화히피들 포진 해 자생적 실험예술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여기서 동성애 자유를 위해 <소톤월 폭동>이 일어나고 6월말경 동성애 축제도 일어난다 지금은 뉴욕 중산층 고급 주거지가 되었고 하여간 여기는 전형적 비즈니스맨보다는 디지털 창조형 인간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소비문화는 일반적인 것과 차별화되는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단다


유니온 스퀘어 4번가 브로드웨이 만나는 곳이다 

사회적 중요한 이슈가 터질 때 목소리를 내는 곳이란다 19세기 중반 남북 전쟁 때 북국이 이곳에서 집결해 출정했으며 19세기 후반기 산업화시대 노동조합원이 이곳에 모여 파업을 선언하고 출정식을 했고 2001년 세계무역센터가 테러공격을 당했을 때 뉴욕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애도한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이 뉴욕에서 나를 가장 마음 편하게 하는 장소였다 여기는 상업행위가 금지되어 있단다. 그러나 매주 월수금토낮시가에는 직거래 장터가 열리는 곳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것이다 요리시범도 보이고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표정 얼굴 차림 행동 연애형태 인종패션 언제나 일상적 축제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한 지역이다. 스퀘어 광장이라는 것도 모르고 너무 피곤해 여기에 졸면서 앉아있었다 뉴욕에서 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주는 좋은 인상을 받은 곳이다 Union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상스가 좋다 특별한 볼일없이 하루종이 머물고 좋은 곳이다 의자에 하루종일 안자있어도 뭘하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할까 근처에 루스벨트 생가가 있었군요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여행갈 때 가이드책을 잘 골랴야 한다 여행자에게 강력추천하는 장소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 근처거리 

[여러 문제에도 뉴욕을 가장 매력적인 도시다] New York is the city where world citizens want to visit the most세계인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가 뉴욕이다. 뉴욕은 1990년대부터 번성 정보통시의 기술덕분이다. 1980년대 경제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은 남부와 해외로 이전하다. 정보와 기술을 다루는 중요기업은 뉴욕에 있다. 패션과 디자인분야는 프랑스를 능가한다. 낮은 임금에도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덕분에 부를 창출한다. 뉴욕은 저임금 임시직이 가장 흔하다. 미국도시중 소득불균형이 가장 높다. 과거뉴욕은 범죄율이 가장 높았으니 지금은 낮아졌다. 줄리아니 시장의 작은 범죄를 놓치지 않는 <깨진 유리창이론>으로 경찰이 급속하게 늘었다 다. 1990년대 경제부흥을 하면서 범죄자급속감소 경찰과 감시 카메라 어디에나 보인다. 하여간 뉴욕은 더럽고 시끄럽고 복잡하고 빈부차도 심하고 문제도 많고 하루 종일 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인에게 가장 매력적인 도시다 

펠탑이라고 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뉴욕은 네덜란드사람이 개척한 도시다] 뉴욕은 세계에서 장사 가장 잘하는 네덜란드사람이 개척한 도시다. 허드슨 강은 내륙운송의 출발점이다 철도와 함께 항공운동도 발달한다. 19세기중반 기근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쏟아져 들어온다. 이민자는 가장 힘들고 험한 일을 한다. 이것을 미국경제기적의 주요인이 된다. 걸어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20세기 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남부로부터 흑인 대량 유입된다. 1920년에 할렘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1930년대 대공황에도 흑인이 가장 선호하는 기착지가 된다. 거지가 살기 가장 좋은 곳도 뉴욕이다. 2차 대전이 미국을 살려준다. 군수물자로 돈을 번다. 1950년대 도시재개발 전설적인 호황을 맞는다. 70-80년대 다시 도시 공동화가 되었다가 1970년대 이후 이민법개정 다시 활기 아시아, 남미 이민자가 들어오면서다. 2000년 무역센터 테러당시 블룸버그 시장 경제 활력에 집중하다. 화려한 뉴욕 그냥 된 것이 아니다. 특히 유럽과 교류에서 지리적으로 굉장히 유리하다. 이런 점이 서부 어느 지역보다 경쟁력이 있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 근처 이탈리라 고급식품점 내부에 카페와 입식 식당도 있다 

[뉴욕은 거지도 살만하다] 누가 뉴욕을 찾나 뉴욕은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일에는 사무직과 전문직이 있는데 이민자들 1세대 자녀는 아메리카드림 좇아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중국인 음식점, 필리핀 여성 병원, 파키스탄 거리신문판매대 슈퍼 직원 동유럽 택시운전기사와 아파트수위가 많다. 중남미 출신은 가정부, 호텔청소, 한국인은 세탁소, 식품점, 손톱미용실 등등 한국인은 <델리> 편의점이면서 다양한 요리뷔페도 판다. 이민자의 출신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인종전시장이 된다. 뉴욕을 거지도 살만한 도시다 뉴요커들이 거리의 거지에게 도네이션을 잘 한다. 

백남준 작업실 맨해튼 머서 스트리트 110번지 파사드 110 Mercer street soho area Manhatten NY Nam June Paik's studio 

뉴욕 지하철에 음악이 흘러 위로가 되지만 지저분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100년이 넘은 뉴욕 지하철 뉴욕의 또다른 얼굴 New York subway that has 100 years history, This is another real face of New York 여기서 치하철을 타 보면 충격이다 라고 어느 뉴욕에 대한 책을 쓴 저자는 말한다 우선 소음이 엄청 심하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낸다고 누구는 표현하고 있다 마치 철공장 같다. 그러나 뉴욕지하철은 뉴욕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한다. 누구는 이렇게 적고 있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그렇단다 지상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다르게 지하는 어둡고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혼잡하다 뉴욕이야기를 하면서 어느날 N라인을 타고 가다가 지하철이 멈춰 자총지종물으니 기관사말이 열차한칸에청소년 무기를 갖지고 타 경찰이 올때까지 기다리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그런데 여기사람들 아무도 불만이나 항의가 없다고 그런면에서 뉴욕도 느린도시하고 적고 있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뉴욕지하철이 최고인것은 24시간 운행을 한다는 것 갓난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야하는 초보주부들 정말 오르내리기힘든데 전혀 불만이 없다 쥐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마시오 표어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하철은 뉴욕의 자랑이고 가장 빠른 소통의 도구로 나의 뉴욕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갈때 그 속도감은 정말 빠르다 

[1997-2002년까지 백남준 조수 라파엘레] 라파엘레가 너무 바빠서 실제적인 인터뷰가 되지 못하고 내가 질문을 보냈는데 내가 녹음을 해서 풀어보고 안 되는 부분은 영어듣기 능통한 자에게 도움을 받는 식으로 하려 했는데 라파엘레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보내준 질문에 직접 답을 문장으로 쓰는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나도 동의했다. 파라엘레가 숙부가 사경을 헤매 지난번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다녀오고 지난번에는 개인전이 있고 해서 올 때까지 인터뷰 답신을 못 받았다. 이번 주까지는 보내줄 것 같다. 


인터뷰 내용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백남준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겪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녀에게 백남준은 여자를 너무 좋아하지 않나요 했더니 정말 그렇다며 라파엘레가 조수를 할 때 그녀의 나이는 28-29살 그래서 자신을 보고 남자친구와 아슬아슬한 비키니입고 바닷가에 수영 다녀오라고 한 이야기를 들여주며 웃는다. 라파엘레는 사실 백남준의 조수를 하고 난 후 작품세계가 확연히 달라졌다 초기작품을 보면 누구나 그렇듯 예쁘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인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지금 그녀의 작품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원융합일의 세계 원효의 세계를 닮았다. 거기에다 백남준의 레이저 아트 조수로 참여하면서 터득한 비디오아트와 레이저아트를 접목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사인아트나 네온아트가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날 찍은 사진 인터뷰 문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논의하다

[백남준조수(1997-2002) 한 라파엘레 인터뷰 HS interview of Raphaele Shirley] 

-Tell me about you ? What do you do to preserve his work ? 
I work with CTLui from CTL Electronics Inc to restore Nam June Paik's art works. We find back-up equipment for his works, mainly CRT TV which are very hard to find. We also make and repair CRT TVs. Very often we install new CRTs into the original case art works. We also look for LCD screens that are 4x3 aspect ratio when there are no CRTs available. We also problem solve larger problems such as computer programming for large TV walls as well as finding all the parts and hardware needed to run his art works. We give advice to museums and private collectors about the best way to conserve his art works. We have also given presentations in specialized conferences on our work. I also work with other technicians for neon, fluorescent and other specialized art work repairs. [참고]The Cathode Ray Tube (CRT) is a vacuum tube containing an electron gun (a source of electrons) and a fluorescent screen, with internal or external means to accelerate and deflect the electron beam, used to create images in the form of light emitted from the fluorescent screen. The image may represent electrical waveforms (oscilloscope), pictures (television, computer monitor), radar targets and others 

1996-2002 백남준과 작업을 같이하고 있는 라파엘레 

-When first meet Nam June Paik ?
 
I first met Nam June as I was living in the same building as him at 537 Broadway/110 Mercer. I was friends and working with many people in the building and still today keep strong relations with the artist community of that building complex. The building was found by George Maciunas and he brought in artists such as Nam June Paik, Shigeko, Io, Yoshi Wada, Simone Forte and Elaine Summers. I moved in there in 1993 from France and then began collaborating and working with the group. 

-What is your specialty ?
 
My specialty is fine arts. I have training in drawing, painting, photography and video. I have also learned the specialization of lasers for light art installation for the purpose of making Nam June's laser pieces. I have also founded several art collectives in New York such as "New York International Fringe Festival", "Perpetual Art Machine" to name a few. 

-With Nam June what job?
 
"My first jobs with Nam June were to help him and the studio build the laser sculptures for the Solomon R. Guggenheim Retrospective "The World's of Nam June Paik". I started working with him in 1997. He was in the very early phases of development of his laser works, starting with "Triangle", then "Circle" then "Square". As time went on I had more responsibilities and was the main assistant to develop the "Jacob's Ladder" with his collaborator Norman Ballard. We performed many tests from small scale to large scale and had many meetings with engineers and technicians to figure out all the problems for this epic art work. I also was his main assistant for the design and installation of the "Olympic Park Water screen" 

-Where ? 
"The main hub of operation for my work for Nam June was 143 Green street in Soho. 

-How did you be chosen his assistant ?
 
"I had been working with another artist in the building of 110 Mercer by the name of Frances Whitney. She was making multi-media art works and worked with Norman Ballard. He then introduced me to the rest of Nam June Paik studio with whom he was working. I got along very well with all the team and felt I had found my place and favorite people. I think they liked me too! 

백남준의 조수를 6년간 한 미국작가 라파엘레 

-What do you do with M. Lee ?
 
"We worked together for the installation of the "World's of Nam June Paik" in New York, Seoul and Bilbao. Also for general studio work with Nam June, MR Lee was often in New York and our main contact in Korea and the most important technician for Nam June. Now, Mr Lee and I don't often work directly together but we are always consulting each other to solve hard problems with the Nam June Paik art works preservation that is ongoing. 

-How was Nam June ? What personage ? Do you have a episode about him ? He has his own habit ?
 
"Nam June was highly intelligent, with a very universal mind. He was always thinking the in largest terms associating East and West, science religion and art at once. He had one of the most comprehensive minds I have ever met. He enjoyed his art works as a form of meditation, spending many hours in front of his Laser sculptures, in the dark with just the light of the lasers and drinking his coffee. Those were very privileged times where I was alone with Nam June and maybe other studio assistants, sitting for several hours in front of the lasers in almost complete silence. Just breaking the silence to speak about maybe philosophy or laser technical questions. He loved to go to the same place everyday for lunch which was "Jerry's" on Prince street so we would all eat lunch with him and he would joke about certain things talking about animals or women in very funny ways. He had a very playful mind and was extremely kind to me for the entire period of my working with him. 

-Explain to me shortly about three Nam June's studio? 
"He had 3 studios in Ny in addition to his home. These were places where different art works were being made. In Greene Street working on his laser works, in Broome street his Robots, on Grand street more flat art, a previously more active studio before my time working with him. 

-He was a son of the most rich family in Korea nevertheless he was very poor in New York. BUT HE IS OPTIMISTIC ? 
"Yes, characteristic of great minds and great people, he was not affected so much by everyday problems. But he did worry alot an often was thinking of others to make sure they were happy and didn't become burdened by his decisions. He was very altruistic. He did have moments of depression as well but in general I would say he was extremely upbeat! 

-He has a many girlfriend. What relation with women ?
 
"I only saw him with Shigeko his wife! I am unfamiliar with other stories but I know he liked women in general very much. 

백남준 조수를 6년간한 미국작가 라파엘레 백남준과 레이저아트 작업을 하면서 찍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소중한 사진을 공개하다 American artist Raphaele who was Nam June Paik's assistant for six years. She showed me the precious photos never to open to anyone. She took these pictures when she was worked during his laser work with Nam June 

-He emphasized on networking between East and West. He see the same thing human-nature-machine. And he also sometimes talked confused hybrid ? How do you think ? 
"Well it is true sometimes he was hard to follow, either because of his <free-association> thinking but also because his English pronunciation was not so good sometimes and then he had problems speaking if he was tired due to his stroke. (I met him after his stroke so he was paralyzed in one side his body for the rest of his life). He understood the need to drive technology towards humanization. 

-In interest era, he also called a visionary a provider of good idea of E-superhighway and I-phone or SNS ? Your opinion ?
 
"He had the same prophetic vision as people like Arthur C Clarke, Marshall McLuhan and George Orwell. This is again a characteristic of great minds, who can see the progression of things in the future by understanding the great subtleties of the present. 

-Nam J had a good friends You met who among his friends. For example, C. Moorman, John Cage etc. 
"Unfortunately those were both passed away when I started working with Nam June but I was able to meet Yoko Ono and Christo and Jean Claude. I also was able to meet many interesting curators and museum directors thanks to his work around the world. 

-Have you ever visited South Korea in order to exhibit the art laser in Korea ? 
"Yes I have been to Korea about 8 times all for Nam June Laser project. 
First for a few times in 2000 for the installation of the "World's of Nam June Paik" at the Ho-AM museum and Rodin gallery and then again several times in 2001 for the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of the Olympic Park Waterscreen and then again in 2012 for the re-opening of the Olympic Waterscreen and showing of images documentation for the Olympic Park Waterscreen development in the Olympic Park Museum SOMA. 

-I'd like to know about how Nam June Paik could overcome his uncomfortable body ?
 
"Nam June was a very optimistic person, so I think he managed as he could with his physical condition. He found new solutions to be creative using pastel drawing and paintings his main medium. Also with all his assistants he could just speak with us and tell us what he wanted and then we could realize his ideas! SO his assistants were like his arms and legs and tools for him to realize his projects!


-He was interested in humanization of machine and humanism in art. What is your idea ? 
Yes. Nam June's vantage point is amazing since he comes originally from philosophy and music background which gives much depth and richness to fine art practice. 
I think many new media artists have forgotten Nam June's message which is that machines should be made to opposite and that technology should be used for the expression of the human not the domination of the machine. His talent of bringing the human and technology together is rarely seen today. His philosophical perspective on art gives to the art experience a depth which is far greater than "art for art sake" but instead art is for the expression of complex ideas in a direct and simple as possible, in this way he really links easter philosophy(simplicity, poetry and oneness) with wester philosophy(intellectualism) 

-He was genius because he seek at the same time a primitive shaman and high tech e-science. Your opinion ?
 
Yes . HE really had universal thought and was a prophet in that he understood the trajectory of technology and civilization. He could have instead of an artist! Or a philosopher, or like Bruce Namuman stated " 
"The True Artist Helps the World by Revealing Mystic Truths," 
in that sense, according to Bruce Nauman he was a true artist bringing shamanistic understanding to our every day life. 

-NJ was mischief(rascal) playing TV as a toy ?
 
Yes he had a very very playful spirit, almost to make some people mad because he did not respect the rules of society always. He came to America as a free man who could play with this new society without the restrictions of his original culture. Also he brought to America the energy of technological invention. As many Koreans were creating the great tech companies in Korea as Samsung LG etc, Nma June used his countries new discoveries as a giant toy or paint brush to play with in front of the western audience. 

-Among his TV work What you like ?
 
Probably my favorite piece is Neon Buddha. Nam june Paik Art Center Yongin Korea Dec. 2010 It is graceful and super technological but at the same time modest and expresses Nam June's interest in the marriage of technology and art/philosophy/hamanity. Of course his video "Hand and Face," 1961 which is so minimal and incredibly powerful and simple. I love his "TV Buddha" which still make me ask questions and of course "one candle" and "Electronic Superhighway"! But it is hard to list favorites... I also love many of his performance pieces and also interactive pieces such as "Random Access", "Tv Cello" 

-In contemporary art, why NJ is important ?
 
He was really the first to bring electronic and TV technology-on a large scale- to art. In general his work is still very current(not old or outdated). The philosophical questions he was asking through his work are eternal questions, trying to solve the enigma of life(and death) so forever relevant. No one has surpassed him in bringing alive technology and even though now he uses old technology(CRT TV, magnetic tape, etc.) the presence of the art work is incredibly vibrant so not feeling vintage but still ahead of its time. 

-In NJ's art, eroticism is important, why people know few ?
 
He shared same opinion as Marcel Duchamp that most things aren't serious but eroticism is! But it is all over his work but not a dominant part, just part of life like also important issues such as overpopulation, nature, human activities(olympics/spirits) as well as music("Good morning Mr Orwell"). I think he was interested in many aspects of life in which this was one-You are interested in new inventions. NJ is same.

-He is a destructor in order to make new one, for me you are a kind a civilization critic ? What's about that?
 
Nam June did not want to play by the rules of society or was bending them, as a part of the Fluxus movement tradition, and his great freedom made it possible, by going against the current, to find new ideas using the new everyday technology(TV tape) but also old technology such as violin cello and piano, transgressing their use in performative pieces( (TV Cello, Prepared Piano). For me in my work I am trying to bring back into the discussion ideas that we take for granted, important makers of civilization through time such as the "arena" center of public life and performance, copernican representation of the world(earth at center) or Light circle( notion of Totality in buddhism) or the notion of paradise in medieval painting but also minimal art as seen in the 60s and then contemporary installation and new media art. Contemporary art is so market driven and seeking to shock or dazzle that we have forgotten maybe an old thread of civilization going back to the ancient Greeks or the Egyptians or Sumerians. I am trying to find the common thread between civilizations of all times, to find some kind of social, cultural and philosophical absolute.(To be continued)


[라파엘레 작가 및 작품세계] Who is Raphaele Shirley 

라파엘레 전시 Raphaele Shirley May 20 2010 Chealsea Art Museum 

Raphaele Shirley is a French-American multi-media artist. She lives and works in New York City. She studied fine arts at the Beaux Arts of Aix-en-Provence, France and then moved to NYC in 1993. Her practice ranges from light art, sound, public art, social interventions, collaborative works and performance. 

Some of her collaborations include Perpetual Art Machine [PAM], an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and online web co...mmunity, founded in 2005, of over 2000 members. In 1998 she co-founded The New York International Fringe Festival, the largest theater festival in the US. She was video pioneer Nam June Paik’s assistant from 1997-2002, where she developed his monumental laser works, including the 75-foot waterfall Jacob’s Ladder for the S.R.Guggenheim museum in New York, Bilbao and Seoul and the 30 meter- wide, award winning, Laser Waterscreen‚ permanent on the lake of the Olympic Park of Seoul Korea. She built upon her experience with Nam June Paik and developed her own series of site-specific works, including a commission in Norway in 2009, Jewels of Kvinesdal, a 30’ wide stainless steel, a xenon sky-beam viewable from 15 kilometers around. Another public art-work, commissioned in 2010, Shooting Stair for Dorfman Projects, Long Island, NY, is a water and laser light sculpture set outdoors. Her piece‚ Light Shot on a Bender, combining LED lights and water was presented in the Bring to Light festival in 2011 in Greenpoint, NY. She recently completed a 60-foot diameter light spiral for the Flint Public Art Project in Flint, Michigan. 


Her work has been shown in venues such as the Museum of Moving Image, S.R. Guggenheim, Chelsea Art Museum and Post Masters Gallery in New York, the NCCA Moscow, 2nd Moscow Biennial and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at the Museum of Modern Art, Linz, Austria and Art Basel/ Miami 2006. She participated in 2009 and 2010 in the artist residency/sail boat expedition to the Arctic Circle, Norway with the Farm Foundation, “The Arctic Circle” Residency directed by Aaron O’Conner. 

[라파엘레 네온아트 잠못 이루는 뉴욕의 밤] Raphaele's leon art 
bring to light | sleepless night(nuit blanche) in new york 


뉴욕을 밣히는 밤의 눈 


[라파엘레의 작품세계] 장소특정적 빅 스케일의 작품


레이저워터 스크린 ⓒ Courtesy of Raphaele Shirley 라파엘레저작권

제1전시실의 가장 큰 특징은 백남준 작가가 조각, 대형설치를 위해 만들었던 60여 점의 아이디어 드로잉 작품들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는 점이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그래서 테크니션들과 공동 작업을 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 두 명의 테크니션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들을 소마미술관에서 작품화했다. 대부분 설치에 필요한 설계 드로잉으로 연필과 크레파스로 이뤄진 작품들이다.

눈에 띄는 작품은 올림픽공원 내 레이저워터 스크린 설계도이다. 레이저 색깔, 위치, 모양의 지시를 담은 이 드로잉은 실제 미술관 근처에 설치된 레이저워터의 작업 설명서이다. 작품보수설명서도 주목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미디어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설치물의 수명이 다하면 작품이 망가지게 된다. 이를 예측한 백남준 선생은 그에 대한 보수 설명서를 남겼는데, 이것 역시 작품화됐다.

My work takes root in questions of space and scale, time past and future, engaging themes of dystopias, utopias, and the problematic of hopefacing the human experience. Drawing from elements of the everyday (man-made objects and constructions), as well as natural phenomena (wind, water and light) my work undertakes a portraiture of the possible, of paralleluniverses and sites of transformation. 

Components of chance are central to my process; they grant my work access to a primalenergy and a fertile space of possibilities. It is important for me to approachart in a freehanded manner. I tread lightly in my attempt to harness theephemeral, fusing minimalist aesthetics with the power of new media and attempting to leave ample room for the unexpected. 

[백남준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는 전자아트에서 레이저아트로 전환]
 여기서 라파엘레 큰 역할 


두 작품은 10년간 차이를 두고 있는데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레이저아트 60년대부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과학적 현실화가 힘들어 그저 상상력 속에서 가지고 있다고 2000년부터는 특히 뇌출혈로 쓰러지고 난 다음 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비약적 삶의 양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레이저아트는 예수의 승천을 연상시킨다. 아니면 약은 야곱같은 도약하는 인간상을 동일시일 수도 있다 백남준이 힐체어에 앉아있으니 얼마나 하늘로 날고 싶겠는가 Nam June Paik, One Candle 1979-1992, © Estate of Nam June Paik, Museum für Moderne Kunst, Frankfurt am Main, Axel Schneider, Frankfurt am Main./ Nam June Paik in collaboration with Norman Ballard, Laser Cone, 2001/2010, © Estate of Nam June Paik and Norman Ballard, Photographed by Stefan Arendt, LVR / Medienzentrum Düsseldorf. 

백남준의 펜 낙서가 너무 귀엽고 재미있다. 그의 장난기 넘치는 체질과 자유분방한 취향과 부처의 불심과 하늘의 천심과 어린아이의 동심과 시인의 시정(full of poesy)이 차고 넘치네요 그런데 인용구를 보니까 서양철학의 대가들 플라톤, 어거스틴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피노자가의 인용문 등등이 다 등장한다 

[라파엘레 등 4인전-방화와 초토] Ventana244 갤러리에서 2015.05.15-06.21까지 
http://www.ventana244.org/current.html 윌리엄스버그 전시 중 하나 


[CURRENT EXHIBIT_Torched & Scorched 방화와 초토] at Ventana244 artgallery May15 – June 21,2015 / Below is a artwork of Raphaele Shirley / 244 North 6 th street in Williamsburg  Viewing hours: Thursday 5-7PM, Friday 2-7PM, Saturday and Sunday 1–6PM /244 N 6th Street Brooklyn, NY 11211 (T) 718 753 7363 / info@ventana244.org ventana244.org 

백남준작품 복원전문가 라파엘레 전시가 열리고 있는 Ventana244 갤러리 입구 라파엘레의 작품이 보이죠 그의 작품은 원형인데 그 안에 사인아트 전자아트가 포함되어 있고요 그녀는 동양의 완벽한 세계인 원형을 다르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원형이 완전한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을 하면서 동양에서는 완전하기 위해서 완전하면 안 되는 그런 모순이 있다고 하니까 그 말에 대해서 동의하네요


Amazing Light Circle (notion of Totality in Buddhism or notion of empty fullness in Lao's style) of Raphaele Shirley 불교의 원용합일의 개념 아니면 노자의 텅빈 충만의 정신을 라이트 아트로 잘 표현해 멋지다


라파엘레 작품인데 제가 작품에 대해서 전혀 묻지를 못했네요 얼핏보면 단순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많은 손길이 간 작품이죠 기본적으로 전자아트를 알아야 하고요 원융합일 같은 동양의 사상도 담겨 있고 생경한 색채에 황당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4인전 전시제목이 <방화와 초토화> 엄청나네요 일종의 전복인데요 미술이 전복이 아니면 미술이 아니죠 예술은 방화범이고 이 세상을 초토화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라파엘레의 원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을 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This is Raphaele's work I did not ask about his work at all. Her work is simple at first glance, but a closer look there are quite a lot of touch is necessary to know the basic idea of electronic art and oriental fusion also contains such a member. The absurd atmosphere to produce a color unfamiliar one to think that so many people to this fourth exhibition title <Torched & Scorched> art is a really fabulous sort of upset. The ...art fails to do these things it is not the art. Thus art as a arsonist who upset and devastated was born to this world. In that respect Raphaele's work bring us to go back to the beginning and to think back to the origin of life


[On Rodney Dickson's painting] 


나는 내 작품으로 내 자신에게 충격과 쇼크를 주고 싶다" -로드니 딕슨 
I would like to be shocked or surprised by my work -Rodney Dickson 

그는 뉴욕에서 나에게 보름간 잠자리를 제공해준 빅토르 위고의 이미지를 가진 추상표현주의 작가다. 1956년 생인 그가 뉴욕에 거주한 것은 16년 사실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내가 보름간 살필 결과에 의하며 그의 작업방식은 긴 정적 침묵 뒤에 . 거침없이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지는 폭포수 물결처럼 그렇게 작업을 한다. 폭포수가 마구 쏟아지는 그런 방식이다. 규정도 없이 어떤 관념도 없다. 그냥 그 순간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거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강박이 있다. 창조와 파괴의 그 무한대의 연속 속에 우연히 얻어지는 그 무엇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며 그러나 작가는 그 결정적 순간을 기다릴 줄 안다. 그런 방식이 그의 고유성·정체성·천재성이다/"나는 남에게 쇼크나 충격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쇼크와 충격을 주기를 원한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그의 치열성은 엿본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만큼 그는 깊은 자아의 세계 속에 몰입하거나 침잔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때로는 실패가 성공이라고 믿음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작업과 싸움에서 이기려고 한다. 그 결과와 관계없이 그에게 그런 면에서 그에게 포기란 없다. 실험의 중단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원하는 작업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향해서 질주하다 거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최대로 아껴 쓰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그림에만 몰두한다. 외출을 가능한 삼가면서 말이다. 그가 인생을 사용하는 법은 카프라가 말하는 비누처럼 비누가 없어질 때까지 그것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는 물감은 아낌없이 쓴다. 그의 물감은 레이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당연히 마티에르가 아주 두꺼울 수밖에 없다. 작업을 할 때 보면 물감이 그의 얼굴을 뒤덮을 정도다. 그런데 그는 기존의 페인팅과 반대다. 그야말로 뉴 페인팅이다. 그것은 바로 더덕더덕 붙어있는 물감을 긁어내면서 나오는 빛, 그는 거기에서 그림의 환희를 발견한다. 일종의 빛의 창조인데 외광파 인상주의 빛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다. 그런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하는 독창적 방식이다. /그는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이미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버마 등에서 전시를 하거나 레지던스를 경험한 바 있다. 그는 동양여성의 은근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색채를 대하는 방식은 색채의 유용이 아니라 색채의 무화이다. 색채를 더했다가 그것을 끝나는 것이 색채를 또 뺀다. 즉 플러스의 미학으로 끝나지 않고 동양의 마이너스 미학을 도입한다. /그는 색채를 두껍게 칠하고 나서 하나씩 빼나간다. 그런 면에서 동양적이다. 색채를 더해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색채의 빼기를 통해서 빛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그는 그리고 매우 순정적이다 한국의 단색화처럼 그는 동양에서 말하는 구도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자기단련(discipline) 방식이다. 물질이 정신으로 변화면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서 무한대의 환희를 맛본다. 이것은 그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의 회화가 주는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욕심을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정신적 가치를 가장 높은 곳에 둔다는 말이다. 자신만의 회화의 길을 걸어가는 어찌 보면 구도자 같다. 혁명가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뉴욕에서도 16년간 브루클린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장소성은 그의 예술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그는 영어권 작가지만 잉글랜드 출신이 아니고 아일랜드 작가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역사적 상처가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참으로 말로 다 못한 힘든 비참한 역사가 있다. /그의 색채에 대한 감각에는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의 유래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그 말 못한 역사적 비극에서 유래한다. 예술을 그렇다고 폭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적으로 그런 점을 주제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한다. 자기만의 순수한 정신적 치열성이 보인다. 그만큼 인고하는 자세 무겁고 신중하다. 과거 미국에서도 같은 백인이면서도 아일랜드인을 별도의 인종을 분류했고 그들이 삶의 기둥으로 삼는 가톨릭은 증오했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폭행과 살인도 가했다 영국이 과거에 아이랜드인을 박해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일랜드인을 배척하는 정당도 나왔고 그 정당에서는 대통령후보까지 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가 잉글랜드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한 역사를 알기에 작가는 보다 더 보편적인 휴머니스트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는 그는 주변의 고통당하는 소외된 사람들 흑인이나 소수민족 아시아인들에 대해서 더 가까이 접근하려 한다. 그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는 친구가 많다. 그만큼 인간친화력이 강력하다. 

그만큼 그는 마음의 부자다. 고통을 감당하는 인내력이 탁월하다. 그는 큰 덩치는 어울리지 않게 매우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고 그러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에 대한 연민과 관심이 높다. 그들과 연대하는 쉼 없는 노력을 기울린다. 그런 면에 뉴욕의 브루클린이라는 정소성이 그에게 잘 맞는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인간애가 보여준다. 그는 뉴욕에서 브루클린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재즈음악 같은 그곳의 서정과 서러움도 담보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영국인이라는 점도 또한 그의 그런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민족간의 갈등과 긴장의 경계선도 넘어선다. /나는 아직 그에 대한 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이 모네인지 마네인지 아니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그에 대한 정보가 절대나 부족하다. 인터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모네인 것 같은데 아직 확인을 못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천진난만함과 여성적 면모를 과감하게 떨쳐내는 장치가 있다. 그것을 바로 오토바이다. 그의 느린 성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런 속도감을 해소한다. 그는 삶에 대한 성찰을 하는 느린 요소와 일본 오토바이 즐기는 스피드광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앉아서 명상을 하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답답함을 오토바이의 질주하는 속도감을 풀어내는 것인가. 작업과 스트레스를 때로 해소하는 것인가./그의 이중성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있다 그는 작품은 회화이면서 조각이다. 그래서 뉴페인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순된 요소가 여기저기 보인다. 천진성과 용감성 페인팅과 오토바이 즉흥성과 지속성 등이 언제나 공존한다./그의 추상표현은 빠름과 느림이 동시에 있어 기묘한 리듬과과 고저장단이 있다. 숭고한 분위기지만 천진난만하다. 색채에는 밝으면서 어둡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동경하나 실은 매우 심각하고 무겁다 하긴 예술가만큼 이런 저런 모순과 이중성이 많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는 추상화를 통해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우주만물에 대한 그의 미학적 속내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는 우주를 노래하고 인간을 찬양하는 보편성과 함께 그의 색채에는 확실히 폴락이 창안한 액션페인팅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냥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온몸을 밀어붙이거나 집어넣는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에는 그의 육체가 들어간다. 육감이 들어가고 육성이 들어간다. 실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의 색채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는 기진맥진할 때까지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다. 그 극점에 달해 쓰러지면 다시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관객의 반응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우직하게 뚝심이 많은 작가다. 그는 스스로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고흐의 별밤을 21세기의 회화로 번역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뉴욕적이면서 또한 뉴욕적이지 않다. 그는 서양적인 면이 강하지만 그보다 때로는 동양적인 면모가 커 보이기도 한다. 그는 북미의 작가이지만 뉴욕에 도시적 지성에만 자신의 혼을 빼앗기지 않고 그는 여전히 아일랜드 그 초원의 서정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믄 그는 그 아일랜드 나이브한 목동 같다. 그의 멘탈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서정과 천진함 그리고 관용과 강인함이 넘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이다 

[백남준 작품과 자료사진들]
 


낙서는 선시시대 인류의 삶은 보여주는 그림양식이다 그런 면에서 회화의 근간이 되고 모든 예술의 시작하는 곳이다 백남준의 낙서화 거기에는 백남준 어린 시절의 장난기도 섞여 있고 낙서의 도시 그리고 장미셸 바스키아 회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뉴욕의 분위기 그리고 사인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게 되는 것은 그가 몸이 불편하게 되면서다. 그 당시 백남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페인팅은 이런 낙서뿐 그런데 그의 낙서는 기존의 낙서화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것을 바로 그가 그의 낙서화에서 신문을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런 시도는 그의 1963년 첫 전시부터 시도된 것이다 그것은 한 시대의 모든 정보가 담긴 그 캔버스인 신문에 낙서함으로 그의 낙서화는 바스키아 등과 다른 즉 정보아트의 창시자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It is not too difficult to justify Kant's music with Cage's philosophy" -Nam June 

Paik and John Cage planning the video <A Tributen to John cage > New York september 1 1971nPhoto by Peter Moore (c) Estator Of Peter Moore /VAGA, NYC 서양인으로 동양을 잘 이해한 존 케이지, 동양인으로 서양을 잘 이해한 백남준 두 사람은 자제지간으로 만났지만 20세기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21세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의 포문을 열었다 


Nam June Paik sitting by a Chrismas tree possibly listening to the radio behind him about 1951-1954 in Japan 백남준 10대모습 천재소년의 강한 인상을 준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예민한 예술가 그는 그의 멘토 존 케이지의 소음이 최고의 음악이라는 말에 큰 자극을 받아 noise art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NamJune Paik <Charlotte Moorman Room> 1993 Installed at XLV Venice Biennale1993 백남준의 샬럿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맥루언과 백남준은 미디어가 몸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완전히 일치하다 

[뉴욕후기] 내가 뉴욕에서 보는 길에서 서서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수많은 뉴요커를 보고 저것은 지금 당장은 경쟁력이 있어 보이나 그 창조력이 고갈될 수 있다고 본다 백남준이 말한대로 뜸들여 익힌 것은 이제 세상에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했는데 나는 22세기에는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바로 가장 뜸을 잘 들인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음식은 세계에서 최고의 고급음식이다 서양인이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정말 그 수준이 높다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문명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고 거기에 창의적인 인간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치는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Staff members catalog objects at the NamJune Paik Archive a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사후 백남준 소호작업실에서 나온 7트럭 분량의 아카이브는 미국미술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정리중이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다 쓰레기통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백남준유머] 우리나라에는 너무 선비(양반)가 많아 입뻥긋하기가 어렵다 

백남준은 선배벌되는 사람에게 반말을 많이 해 주변사람으로부터 그의 누이로부터도 비축을 샀다 그에게 어떤 윤리적 위계질서가 별 의미가 없었기에 체면치레를 싫어한 것이다. 그래서 누이가 그에게 물었다 왜 너는 어른에게 반말을 하느냐고 백남준 왈 존댓말을 하면 소통에 방해를 받는다고 그냥 반말이 훨씬 소통의 잘 된다고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백남준이 또 싫어한 것은 지식인 척하는 사람 예술가인척 하는 사람이었었는데 여기서 선비가 많다는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을 풍자한 말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존댓말사용으로 엄청나게 언어소통의 방해를 받아 문화발전이 늦어지고 있음을 꼬집은 말 같다 

[] 뉴욕을 겪은 후 나온 생각들, 가끔은 캐나다이야기도 나온다 

김세진 작가가 기획한 한복 퍼포먼스 중 만난 미국인 미술애호가 

[나이가 드니까] 남의 생각이 아니고 나의 생각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것의 밑바탕에는 항상 백남준의 예술관이 작용한다 As times go by, I start out my own and original thoughts that was quite different from others. These thoughts always was influenced and based on Nam June Paik's imagination/
Comme les temps passent, je commence mes propres pensées originales qui sont tout à fait différent des autres. Ces pensées a toujours été influencé et reposent sur l'imagination de Nam June Paik 

[나의 미학적 신념] 과오와 실수가 창조와 상상을 낳는다 이것은 백남준이 말하는 우연의 예술과도 상통한다. 

'This is my aesthetic conviction' Creation and imagination depends on mistakes and errors in art and in everyday life. My conviction equivalenced Nam June Paik's belief that all art created just by accident. 'Ceci est ma conviction esthétique' Création et imagination dépend de fautes et erreurs dans l'art et dans la vie quotidienne. Ma conviction equivalenced la croyance de Nam June Paik que tout art créée juste par accident 


[미술에서] 착시(trompe l'oeil)없이 창조적 세계를 나올 수 없듯이 상상력의 세계에서 실수 없이 창조력은 안 나온다 Just there is no creation without optical illusion(trompe l'oeil) in art, there is no creation without mistakes in imagination or in thinking. Juste comme il n'y a pas de création sans illusion d'optique (trompe l'oeil) dans l'art, il n'y a pas de création sans erreurs dans l'imagination ou de la pensée 

[실수는] 나에게 예술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모든 나의 독창적 사고는 바로 오독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의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서 나온다 결론으로 내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실수만큼 창의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Many mistakes in everyday life bring me the gift of Art. All my creative thinking comes from just misreading or committing a mistake. And all my happiness always comes from mistakes rather than from the intended I was awaked through my life experience that there is no creative thing by mistake. This is my conclusion what I am sure. Beaucoup d'erreurs dans la vie quotidienne m'apporte le don de l'art. Toute ma pensée créative vient juste d'une mauvaise lecture ou de commettre une erreur. Et tout mon bonheur toujours est des erreurs plutôt que de la destination. Je fus réveillé par mon expérience de vie qu'il n'y a pas chose créative par erreur. Ceci est ma conclusion que je suis sûr.
 

전시장에서 젊은 작가 클라우디아를 우연히 만나다 

[뉴욕일기] 젊은 층이 차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공간의 소유화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의 문제 이제는 시간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간은 또한 여유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건물의 사는 사람에게 바닥면적보다 천장높이가 더 중요하다 과거 왕족이나 귀족의 저택을 보면 유럽건축이 그렇지만 바닥면적보다 천장높이를 더 중시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권려을 상징하기대 했다 

창의성과 공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파트 천장이 낮은 한 것은 20층을 지울 때 적어도 아파트 2층은 더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감옥살이 마당이 없고 테라스가 적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마음조차 옹졸해질 수 있다 흙냄새 새소리 비오는 소리 하늘을 볼 수 없고 낙엽을 밟을 수 없고 시골마당의 풍요러움을 전무하다 그럼에도 그 유용성 때문에 한국인은 선호한다 

우리가 골목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세대인데 과연 행복지수가 높아졌는가 모두가 다 비슷해지는 몰개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여자들은 같은 외모로 수술을 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한옥이나 양옥은 한상 열려있다 뉴욕에서 보니까 옆집사람에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인사를 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것보다 훨씬 못해도 네트워킹은 살아있다.입구에 마당을 아니지만 작은 공간 테라스 같은 것이 있다 

[뉴욕후기] 뉴욕커의 삶의 스타일은 경제적 가치보다 문화적 가치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축제와 향연의 삶을 그들의 지상목표로 삼는다 옷이나 집이나 차나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렇듯한 지위나 명성이나 물질에는 우리보다 훨씬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사진에는 뉴욕의 정확한 거리명 (BROOME STREET GREENE ST)이 함께 찍혀 있어 좋네요 이 근처에 어느 갤러리에서 처음 오프닝 행사를 본 것 같다 

[New York review] The life style of New Yorker gives a much higher score cultural value than the economic value. Therefore they considered festival and feast the most important thing in everyday life and they have big targets for festival and feast in their own ways. So they did not much attention to clothes, house, car or a... plausible position, reputation, rich materials that we envy much. 

[New York Review] Le style de vie des New-Yorkais donne une valeur culturelle score beaucoup plus élevé que la valeur économique. Par conséquent, ils considéré festival et fête la chose la plus importante dans la vie de tous les jours et ils ont de grands objectifs pour festival et fête à leur manière. Donc, ils ne l'ont pas beaucoup d'attention aux vêtements, maison, voiture ou une position plausible, la réputation, des matériaux riches que nous envions beaucoup.
 


뉴욕이든 서울이든 꽃집은 언제 어디서 봐도 좋다


남준이야기_그의 흔적을 찾아서 

라파엘레 백남준의 조수생활 6년간하다 백남준작품 복원전문가이면서 작가다 프랑스어도 완벽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녀와 인터뷰 약속을 했다. 시게코를 만날수 있도록 연결해 보겠다고 한다 시게코를 잘아는 친구를 통해서 

1968년부터 사용한 비디오복원실 45 Murry Street 입구 

백남준의 흔적을 찾아서 45 Murry street in Manhattan 
45 Murry Street 


비디오복원 작업스튜디오에 걸려 있는 백남준작품 여기는 바로 백남준 TV아트 등을 복원하는 곳이다 45 Murry Street in Manhatten 

비디오복원실의 다양한 모습 

Chi Tien Lui(오른쪽) 

당신은 어떻게 백남준을 만났는가 PACKED: how you met Nam June Paik ? Chi Tien Lui(1960년 미국도착): Yes, Nam June Paik came one day to my shop with a camera that had a terrible picture. I said I'd fix it for him. We became friends, and he would call me when he needed help for an installation. I still have some equipment here that belonged to him, as he had no storage space to keep it. 

Nam June Paik was using colorizers that a Japanese engineer had built for him. At that time video was only in ...black and white. When people saw that you could put a black and white signal in a box and get something in colour out of it, they all liked it. It was very psychedelic because the colour isn't real. Back then everybody got stoned and liked psychedelics (laughs). So I built a hundred colorizers and sold them. Everybody was buying them. After that my business really took off. When your business is going well, you begin to become careless and to think that whatever you'll do it will work. Several times the business really plummeted. It stabilized when I moved to the present location. But today, with the introduction of new electronics, the business of video servicing is gone. A DVD player costs 40 dollars. Why would you want to repair it if a new one costs less than the price to repair it? 

PACKED: How do you continue your activities? 
Chi Tien Lui: I continue my activities with videotape transfers because you still need the old machines to do it. Not everyone has a collection of old machines and knows how to maintain them the way I do. That is why I moved to working on tape transfers and also to taking care of some of Nam June Paik’s works that are part of museum collections. 

PACKED: When did you start working with museums? 
Chi Tien Lui: About 5 years ago I went to a meeting at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5 where all the museums were talking very theoretically about how to save Nam June's artworks. I raised my hand and said "you know, I could extend Nam June's life". Because I knew him and worked with him, I know what he did. That is how I started picking up that business. At the moment I'm working on replacing 450 TVs from The Chase Video Matrix6 for the J.P. Morgan Chase collection7. I'm also working with the Whitney8 and the Guggenheim museums9. I am retired but I like this type of work. I am glad that Nam June extends my life too (laughs). Most people don't realize that Nam June Paik’s artworks require heavy maintenance. Can you imagine 450 TVs going on and off everyday? Maintaining a video wall is almost like painting a bridge. When you have finished painting it, you can do it all over again from the beginning. 

작업실에 걸려 있는 백남준 작품 

1984년 일본공연 때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하다 The two men's friendship is forever 

백남준 스튜디오 Mercer Street 근처 책방에서 백남준 책을 찾았지만 없었다 

백남준 스튜디오 근처 책방 백남준 책은 없고 그의 절친 보이스와 책만 있네요 그래서 하나 사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싑지 않은 책이다 

여기가 백남준작업실 하나인 110 Mercer Street 

여기가 백남준작업실 하나인 110 Mercer Street 중간에 라파엘레와 잘못 헤어져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 시게코여사가 여기 사는 것으로 안다 가난한 백남준이 이 집을 사게 된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다음에 소개한다 

맨해튼이야기 


작은 공간에서 아주 멋진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뉴욕의 매력이다 


맨해튼 중심가 한국식당에서 이혜원 교수(전시기획자)가 찍어준 사진 


뉴욕 맨해턴 거리 활기차다 


BH전자상가 근처 


Lavazza 식료품점 서양음식에서 치즈는 예술이다 여기가 뉴욕 고급이탈리아식품 Lavazza 본점 이런 곳은 서울에서 볼 수 없다 관광객에게 강력 추천한다 아이쇼핑도 가능하다 

브루클린이야기 


지하철 입구는 가장 뉴욕적인 풍물 중 하나다 Belford Avenue station in the center of Williamsburg 윌리엄스버그는 바나 클럽 레스트랑이 모여있는 곳으로 브루클린 부흥에 큰 몫을 했다 여기에 메인스트리트는 벨포르 지하철 L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맨해튼 소호수준은 아니지만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근처에 브루클린 미술관을 가보면 좋을 것 같다 토요일은 무료다 나도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200 Eastern Pkwy(Washingway Avenue / Classon Avenue) www.brooklyn.museum.org 


6월 8일 월요일 오후 부모가 덴마크에서 온 뉴욕커 Elisa Jensen 에 초대받아 그의 작업실이 있는 488 Morgan Avenue를 방문하다예술가들과 영어대화에서는 전혀 막히지 않는다 


진짜 뉴욕의 새로운 모습 여기는 브루클린 여기서는 다양한 예술이 실험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스튜디오 오픈 행사에 참가했는데 작가의 숫자만 해도 서울의 100배는 되는 것 같다 이 작가 중 그중 하나다 모든 사람이 쉽게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곳 관객의 특징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 묻고 또 묻고 그러다가 좋은 대답이 나오면 그때부터 탄성이 터진다


브래드(작가)가 오래간만에 페북에 얼굴을 올렸네요 옆에서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만난 여성작가가 보이네요 이 작가가 남성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여성과는 100%다르다고 할까요 상당히 쿨하고 여류롭다 자신의 의도과 관계없이 한국여성은 역시 피해의식이 크다. 여성들이 자신감이 있어선지 남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상당히 관대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처럼 경계하는 걸 보기가 힘들다 

뉴욕 브루클린지역의 다양한 미술프로젝트가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 작가와 그 친구 

이것은 그냥말로 이동미술관이다 현대미술에서 모바일은 가장 핵심적 요소이 모바일아트라고 하던가. Bushwick Open Studios 행사중 하나다 


윌리엄스버그의 명성이 왜 생기는지 조금을 알 것 같다 스튜디오 오픈행사는 기존의 오프닝행사와 다른 무엇보다 축제감으로 넘친다 댄싱 향연 대화 방담 퍼포먼스 디자인 장식미술 건축 패션 등등 그 전시방식이 다양하다 

Bushwick OpenStudio 2015 

여기에 나도 참가하다 주변에 50여개의 갤러리가 있었군요 Bushwick Open Studio 2015 “This Brooklyn neighborhood has more than 50 galleries — as well as murals and other art hiding in plain sight — spread over roughly two miles.” – Joshua Barone, “Weekend Miser: An Art Festival in Bushwick” New York Times, 6/1/2015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과 친구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일단 뉴욕의 작가수는 우리의 100(?)배가 되는 것 같다 


브래드와 브루클린 부시위크(Bushwick)스튜디오 오픈행사에 갔을 때 어느 작가의 작업실이다. 깨지기 전 디카의 거의 마지막 사진들이다 

[09]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이야기 


여기서부터 윌리엄스버그가 시작된다. 이 미술동네에 들어서면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와인바 등등 고급스러운 공간들 그리고 많은 갤러리들이 자리잡고 있지요 내가 카메라가 없어서 다 찍을 수가 없다 오늘 브루클린 미술중심가 윌리엄스버그에 가서 뉴욕에 온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해튼의 첼시와 브루틀린의 윌리엄스버그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NORTHSIDE FESTIVAL 윌리엄스버그 취제 그 분위기가 시간이갈수록 더 고조된다. 축제도 놀아본 사람이 놀아본다고 축제를 이상화하다가 이런 큰 축제가 오면 평소의 실력이 모아져 폭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부만 학습이 아니라 놀이도 학습니다 놀이는 공부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학습이다 

지금 윌리엄스버그 NORTHSIDE FESTIVAL을 맞아 축제감이 충만하게 넘친다 28도의 무더위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낮의 시간이 길어 충분히 노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일종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세탁하는 과정인데 이런 것은 한 사회구성원의 잠재한 아이디어와 숨겨진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03]백남준이야기_그의 흔적을 찾아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플랫인스티튜드 미대풍경] 

플랫 인스티튜드 메인 게이트이다 

이 미술대학의 캠퍼스는 미대답게 다양한 색채의 변주가 일어나고 있다 나무 아래 붉은 색조의 화초가 장식예술처럼 잘 관리되어 있다 

이 조형물의 용도를 알았다 바로 의자다 

[캐나다 스트렛퍼드 공원에서 찍은사진] 


공원 벤치 개인이 기부를 하면 이런 벤치가 생긴다 벤치에 시에서 기부자 명단을 새겨준다 잔지가 주는 행복은 그 어느 행복보다 크다 자연과 인간이 좋은 친구가 된다 

[캐나다 스트렛퍼드 갤러리 풍경] 


내 마음에 가장 드는 작품 앞에서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둘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셋 


갤러리 스트렛퍼드 Gallery Stratford 주변의 공공미술 하나 

[Exhibition scenes held in Gallery Stratford]_Jack Winn:Dark Matter Exhibition April 14 to July 12, 2015 


This solo exhibition by Stratford artist Jack Winn is comprised of large-scale structural impressionist paintings that use current mathematical theories in astrophysics and quantum chromodynamics to explore the deep mysteries of our universe, life, and time/infinity. The work depicts the beginnings of our universe, the mysterious forces of dark matter, and the miraculous existence of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 neutrinos. Winn uses a combination of automotive, oil, and acrylic paints to create a surface that appears both wet and dry. 

The viscosity of the automotive paint contrasts with the rich black oils, highlighting the play between neutrinos and dark matter as small dots of paint blink in and out like extinguishing and birthing stars. Referencing the mathematics underpinning nuclear fission, fusion, Pi, and M-Theory, this work grapples with the profound concepts of our creation and the reasons for our consciousness. 

Curated by Aidan Ware. “Seeking to understand our existence, to clutch our universe through lyrical mathematics – Winn’s paintings feel like visual poetry, touching the darkness of the unknown." ~ Aidan Ware, Director & Curator


[스트랫퍼드 대극장 앞] 

작가명 Sorel Etrog 작품명 Large Bull 1969 

Romanian born artist Sorel Etrog(born 1933) was a renowned contemporary sculptor, a member of the Order of Canada (1994) and the designer of the Genie Award... 


미국여고생인지 다른 도시 여고생인지 스트렛퍼드 대극장 앞을 견학하고 있다 

[02] 캐나다 연극도시 스트레트포드 시 한 가운데 흐르는 강 풍경 
-캐나다 스트렛퍼드 방문중 사진은 이 도시 한가운데 Avon River 호수공원


Avon River 근처의 고인의 가족이 기부하면 시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는 벤치를 이렇게 만들어준다주말에 열리는 작은 아트시장의 풍경이다 여기서는 주말마다 작은 미술시장에 열린다 


캐나다에서 만난 화가 Taffany Horrocks 그녀는 그림도 그리지만 주말에 직접 그림도 판매한다 I met by chance a painter Taffany Horrocks in Stafford city in Canada. Then she also sell directly her paintings outdoor art market every weekend. J'ai rencontré par hasard une peintre Taffany Horrocks à Stafford ville au Canada. Puis elle vend aussi directement ses peintures au marché de l'art en plein air chaque week-end. 내가 머무는 집 바로 옆에 호수공원 Avon River Stradford city 주위 풍경 지역작가가 직접 작품을 들고나와 작품을 팔기도 한다 

캐나다 원주민 아트 갤러리 하나 문화인류학자가 보면 좋은 장소다 


뉴욕 한달 이상과 워싱턴에서 하루, 캐나다 등에서 10여일을 보내고 7월 4일 귀국 

40여일간 2015. 05.27-2015.07.05 이번 캐나다 토론토 밴쿠버 스트랫퍼드 그리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를 보고 서울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모든 분의 덕분이다 한국지인들과 아이리스선생님과 조미영선생님 미국친구에게도 안부 전합니다 이번에 가장 큰 소득은 미국인 작가들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된 점이다 그들에게 진정 감사한다. 특히 나에게 보름 간 잠자리를 제공한 로드니와 줄리엣에게 더욱 감사한다  I have just arrived at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n Seoul also greet to american friends Raphaele and Michael, Claudia, Naomi, Rodney, Juliet, Brad, Elisa, Chitin Lui, Frank, Samuel etc 

<쉬어가는 코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쉬어가는 코너> 홍상수 감독의 영화 


홍상수 기존의 영화의 룰을 깨다 자유롭게 시간의 흐름을 재구성하고 인물의 재배치 권위있는 스위스 르카르노 영화제에서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리다>로 큰 상을 받았군요 

Now, beyond what any film director said the unbearable fragility over the damaged lives and love stories in the infinity of possible they incubate, which plays a very beautiful face the other holds the broken record in the fine way of extreme delicacy, what characters to amend their conduct, for a start of the unconscious, at the option of situations they do not suspect have already traversed both in the flesh of the actor and the eye of the beholder. And, mute the game of differences and repetitions, slowly imposes the serene and persistent note of a virtuous form of elevation, as if Hong blew our ears this belief that takes the place of moral filmmaker: if all that remains is transformed, it is always somewhere to improve. 

[김대중 6주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간다"(2009년 1월7일) -The more I think of life it is more beautiful and the history always be going to progress in the future/Plus je pense à la vie c'est plus belle et l'histoire toujours est en train de progresser au futur -KIM Dae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