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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튜브

[백남준] 목포전시(2021.05.07-06.27), 대표작 해설 외

이번 목포전 백남준 전시는 작지만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구성 성공적

김순주 선생 MBC 시민 아카데미에서 전시를 위한 특강

전시 오프닝에서 바이올린 백남준 퍼포먼스 따라하기 있었고

지난 5월 20일 목포 시립예술무용단 '나는 비트겐슈타인 읽지 않았다' 공연 있었고

6월 26일에는 목포시립교향악단 4중주(정헌 지휘자, 직접 지휘)가 예정

번 전시에 연관해 목포대에서 백남준 강의가 있고

아트상품 만들어 선물로 배포

전시장 앞 가드닝 정비(파라솔 설치)예정 여러 모로 큰 성과를 내다.

목포와 인근지역 행정-문화계 인사와 긴밀한 연대감 생겼다. 역시 백남준이라는 작가이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목포시장이 백남준을 좀 이해하게 되면서 맥락이 정보화마인드로 확 바꿨다. 목포시문화정책에도 변화 올 것 같다

나의 예술적 고향(My Artistic Heimat) 백남준 개인전이 서울 이촌동 백해영 갤러리(관장 백해영) 주관으로 목포 오거리 문화센터에서 6월 2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 기획은 백남준 독일시절에 정통한 김순준 BS 쿤스트라움 디렉터가 맡았다. 김 디렉터는 2014년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거의 같은 제목의 백남준 아키이브전을 주관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 http://omn.kr/1tccf

 

목포가 '백남준의 예술적 고향' 다 되었네

'나의 예술적 고향' 백남준 전,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6월 27일까지

www.ohmynews.com

목포 오거리문화센터

지금 목포는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문화도시 지정을 앞두고 문화 힘으로, 스스로 서야 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바로 이럴 때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의 고급예술과 접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잘못하면 소외될 수 있는 지방도시에 큰 경사가 난 셈이다.
 
이번 전시장소 오거리 문화센터는 특별한 곳이다. 1898년 4월 목포 개항 후 가장 먼저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등본원사)이었다. 1904년 현위치로 이전 목포에 남아있는 목조와 석조로 지운 가장 큰 일본사찰이다. 해방 후, 1946년부터 정광중학교가 되었다. 법정스님이 청소년기 이 학교에서 불교와 접하다. 이 학교는 1948년 3월 1일 광주로 이전하다.
 
1957년부터는 목포중앙교회가 되었고 1980년에는 재야인사와 목사들 1차 회의를 한 곳 광주 518민주화운동 출원지다. 2007년 7월 3일 등록문화재 제340호 등록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변 주차타워 조성한다는 핑계로 철거위기 놓였지만, 식민시대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이라고 시민들 목소리 높여 다행이 보존되었다.
 
백남준은 지방자치옹호자였다. 백남준이 살아있었다면 이번 목포전 너무 좋아했을 것이다. 1995년 한국에서 처음 광주비엔날레 열릴 때도 이 행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거의 홍보요원이었다. 인포아트 특별전을 열어 세계 정보예술가를 다 초대했다. 백남준은 이곳 선사문화를 전자아트로 번역한 고인돌도 출품했다. 목포와 인연이 없었지만 이제 드디어 그의 작품을 싣고 여기 목포에 온 셈이다.

백남준 목포전(나의 예술적 고향 2021.5.6-6.27 백해영갤러리 기획) 중 특별공연(목포시립예술무용단)
https://www.youtube.com/watch?v=aHy-UZJC1MQ 

<백남준 "서구철학과 문화에 맹종마라!" 춤사위로 안무하다 서구의 벽을 넘는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다> 백남준 목포전(나의 예술적 고향 2021.5.6-6.27 백해영갤러리 기획) 중 특별공연(목포시립예술무용단) 제목 "나는 비트겐스타인을 읽지 않았다" 서양 문화에 주눅 들지 마라. 난 비디오아트 더 많은 걸 얘기 했어. 더 좋은 우리 것 많아! 걱정 마!

앞부분 박스 내용만 일단 참고 <목포시 오거리 문화 센터,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2021.05.07-06.27)' <참고> 목포 백남준 전시 5월 6일 시작해 2달간 열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는 백남준 전시가 5월 8일부터 시작해 4달간 열린다. <백남준 어록과 연표> seulsong.tistory.com/1341

 

[백남준&어록집] <16강> 남준파이크, 이렇게 말했다.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친구들> Abstract and Keywords : 위성아트로 우주적 '참여와 소통' 넓히다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어록집> Abstract and Keywords : Future is Now&현재가 유토피아 www.youtube.com/watch..

seulsong.tistory.com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대 회고전이 열린다. 5.8-10.3 <5개월간>

<추신> 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Lounge2&document_srl=4039303

 

SFMOMA 백남준 회고전 'Nam June Paik'(5/8-10/3) - Lounge - NYCultureBeat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5월 8일부터 10월 3일까지 백남준 회고전을 연다. 이 회고전은 2019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시작되어 암스테르담 스테델리크 뮤지엄을 거쳐서 미국 내에서 열리

www.nyculturebeat.com

[이번 전 개요] <목포시 오거리 문화 센터 열리는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2021.05.07-06.27)'

하나[ONE] [준비하는 데 1년 걸리다] 
[1] 이번 전시는 급조된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데 1년 걸리다.
1. 2020년 6월 백해영 갤러리에서 김순주 디렉터 기획으로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서울)>을 열었다
2. 2020년 8월부터 <백남준과 BTS> 전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전시 기획(백관장주변에 아랍국가 대사관이 많고 해서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다.
3. 그래서 우선 백남준을 제대로 알기 위해 백남준 공부 팀인 <백남준과 친구들(프렌즈)를 만들다. 2020년 9월부터 백남준 공부를 시작하다. 6개월간 월요강좌 <40강>을 열다. 강사: 김형순 오마이뉴스 백남준 연구기자. 유튜브 만들다. 백관장 40강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강하다.
4. 2021년 3월 백남준 공부를 마치다. 732쪽 공부 자료집(아래)이 나오다. 가능하다면 백남준 월요강좌 자료집 <목표 버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5. 2021년 5월 목포에서 백남준 전시를 열다 * 이런 자료집 목포 VERSION 기대

둘(TWO) [왜 백남준인가?]
1. 백 관장은 백남준 40강을 들은 후 이 작가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확신하다. 백남준 서울전의 연장으로 우선 고향이기도 한 목포전(일종의 투어 전)을 착안하다. 이를 성사시키려고 목포를 10번 이상 방문하다. 장소도 모색하다. 목포시장과 목포시 문화 행정가와 접촉으로 결국 이번에 거의 기부로 전시가 성사되다. 

셋(THREE) [왜 목포인가?]
백남준이 60년 전에 주창한 유라시아 전성시대를 맞아 남행열차의 종착역인 목포가 세계를 뻗어나가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다. 목포는 인재가 많이 나온 특별한 도시다. 근대문화유산도시이고 귀족풍의 호남에서 최고의 문화도시다. 음식문화가 가장 세련되고 풍부한 곳이다. 이곳 분들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다. 백남준의 예술적 세계와 접신(접촉)을 하면 분명 달라지고 전국에서도 가장 앞서는 문화 예술도시로 급부상할 것이다.

넷(FOUR), [정보 확장]
다만 목표의 그런 열망에도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 그리고 백남준이 1960년대 제시한 유라시아 비전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포에서 기차 <유라시아 > 대륙철도(목포-베를린)>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는 여정을 꿈꾸는 것이다. 세계에서 최고의 미감을 자랑하는 목포에서 아침을 먹고 <대륙철도>를 타고 베를린에 가는 것이다. 거기 베를린 현대미술관에서 세계적 미술 작품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비전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다섯(FIVE), [재정리] 
<1>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목포라는 작은 자루에 갇히지 않고 세계 뻗어나가는 비전 제시한다 <2>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코로나 시대에 목포시민의 자신감과 위대함을 깨닫는다 <3>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적 감성을 높여, 문화 도시로 지정받고 근대문화유산 도시의 동력과 에너지 준다 <4> 백남준 전을 통해 앞서가는 목포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 등 경제적 도움을 준다 <5> 백남준 전을 통해 사건 터져야 목포 역전에 유라시아 대륙철도 설치미술 등 가상 목포-베를린 승차권 타본다.

<추신> 이번 목포 전에서 소개되는 2가지 대표작 해설


첫 번째: <난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1998년>
[작품 해설] 이 작품의 주제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는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 플라톤 이후에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 책 안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미 동양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노자, 장자 등 철학자, 사상가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서양인들 꿈도 못 꾸는 비디오 아트라는 시각언어로 이미 더 많은 것은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작품은 백남준의 TV 전자아트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색동은 또한 TV 모니터가 시작할 때 일어나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영상을 연상시킨다. 4대의 TV는 동서남북 춘하추동 우주만물의 기표이다


두 번째: <호랑이는 살아있다(The Tiger alive) 2000년>

'호랑이는 살아있다' 2000


20세기 유대인(Jewish)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사상, 철학에서 크기 기여했다. 0,2% 인구로 노벨상 30% 받았다, 그러나 이제 21세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21세기는 백남준이 60년 예언한 대로 유라시아 전성시대다.. 남북 화해를 통해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 타고 가면 모든 게 끝난다. 그렇게 될 때 한반도는 호랑이처럼 정말 세계를 호령할 수 있게 된다는 메시지다. 이 전시의 백남준이 주는 메시지다. 목포시민 여러분! 21세기는 한국인은 자신감을 가지고 한반도 호랑이처럼 분단의 자루에 갇혀있지 말고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emia to Korea) 1963년

2차대전 요셉 보이스가 추락한 그리미아 반도에서 한반도까지 연결해 지도 위에 그리다 여기에는 유라시아 개념이 들어간다 백남준과 보이스 60년 전에 이미 유라시아 전생시대가 온다고 예언하다. 미국과 서유럽의 시대는 가고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백남준은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대륙기차를 타고 더 멀리 뻗어나가라고 목포시민에게 강하게 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백남준 5가지 예언(테이트 모던 제작) www.youtube.com/watch?v=yMUJB5aFvdo

백남준 회고전(테이트 모던) 홍보를 위한 유튜브

[백남준 인터넷을 창안하다] 백남준 회고전(테이트 모던) 홍보를 위한 유튜브 자료에서 언급한 백남준의 5가지 예언 1. 1974년 '인터넷'을 예언했다. 2. '비디오 아트'를 예언하다. 3. TV정원을 통해 '환경위기' 예언했다 4. 'Global Media'를 예언했다 5. '스마트폰'을 예언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다.

그런데 한 까지가 빠졌다 6. 백남준 '1인 미디어 시대(유튜브)' 1973년에 예언하다(Someday, everyone will have their own TV channel -Nam June Paik 1973). <백남준 50년 전, 최저의 비용으로도,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가능하게 해 준 유튜브 전성시대를 예언하다>

백남준 1963년 첫 전시 10년 후 1973년에 1인 미디어 시대를 선포하다. 50년 전 그의 예언을 이제 유튜브 전성시대를 낳다. 여기서 포인트는 기존의 영상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데 지금은 정말 저비용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다. 보이스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라는 말을 가능하게 해 준 툴이자 장치가 되었다. 원자폭탄보다 위력이 강한 글로벌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내는 일방적(one way) 미디어 공세에 대항하는 방식을 창안하다

1973년 백남준이 만든 대표적 유튜브가 <글로벌 그루브>

1973년 글로벌 그루브(지구촌 대축제)

1973년 백남준이 만든 대표적 유튜브가 <글로벌 그루브다>다. 여기에 보면 서양 콘텐츠 50%, 동양 콘텐츠 50% 담겨 있다. 여기 메시지는 서양이 동양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서양인들 동양을 좀 공부하라고 야단을 쳤으니 놀라운 일이다. 백남준 1973년 유튜브(1인 미디어 시대)를 예언하다(Someday, everyone will have their own TV channel -1973)

백남준 왈, 왜 미국이 베트남에게 졌는가? 미국이 베트남을 너무 몰랐기에.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몽골, 프랑스를 이긴 나라다.

<백남준이 고민한 인류 구원의 길은 어느 정도 성취된 셈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예술가가 되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처음 TV로 하는 미술 전시를 열었을 때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30년 후, 인터넷이 되었기에 기념비적인 것이다. 가장 엽기적인 예술실험이 인류를 구원하다.

[백남준 1991-2006] ▲1991년 = 취리히 Kunsthaus Zürich `백남준 회고전'. ▲1992년 = 서울에서 춤의 해를 위한 백남준의 퍼포먼스 공연. 비디오 예술 30년 회고전(갤러리현대, 원화랑, 갤러리 미건) ▲1993년 =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황금사자상) 수상. 국현 휘트니 순회전 ▲1995년 = 후쿠오카 아시아문화상 수상. 미국 뉴욕 프랫 미술학교 학장 취임 강연.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백남준 95' 전시회 ▲1996년 =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 마비. 제5회 호암상 예술부문 수상. 제1회 '월간미술' 대상 수상. 독일 '포쿠스' 선정 '올해의 100대 예술가' ▲1998년 = 미국 프랫 미술대학 명예 미술학 박사. 일본 교토상 수상 ▲1999년 = 백남준 설치미술전(양평 바탕골 예술관) 미국 마이애미 예술가상.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석좌교수. '아트뉴스'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의 작가. 독일 경제지 '카피탈' 선정 '세계작가 100인' 가운데 8위 ▲2000년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 금관문화훈장.▲2001년 = 영국 '그로브 음악대 사전' 작곡가 혹은 음악가로 등재 ▲2004년 = 투병 후 첫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게 바침'. 독일 베를린에서 '글로벌 글로브 2004' ▲2005년 = '베를린에서 DMZ까지'(서울 올림픽미술관) 참가 ▲2006년 = 마이애미에서 타계. 용인에 '백남준 미술관' 착공

[참고] 오마이뉴스 기사 백남준과 독일  omn.kr/963e

 

독일은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적 고향

'나의 예술적 고향, 라인란트의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 9월 30일까지

www.ohmynews.com

위 전시는 김순주 기획,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백남준 아카이브전

백남준, 독일에서 주는 유명한 예술상 다 받다(괴테상 포함). 설명자 김순주 디렉터/

2007년 백남준 사후 추모 1주년 기념 때 독일에서 백남준 대대적으로 추모행사를 했다. 아래가 그것이다. 뒤셀도르프 시 전차(tram)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의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붙이고 다녔다. 이처럼 백남준을 독일 시민들에게 잘 알리는 방법이 있을까. 백남준은 독일에서 신격화되어 있다. 베토벤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다. 신과 싸우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신과 너무 맞서지 마라!(When too perfect, LIEBER GOTT BÖSE)" 아래 사진 아래에 적혀 있다.

백남준 서양의 고급문화 상징하는 예술적 성상인 바이올린에 끈으로 목을 감고 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백남준 나름 상징적으로 서양 주도 아트를 살해한 사건이다. 백남준 뉴욕에서 브루클린 넘어가는 다리를 지나가고 있다.

후반부 리뷰 자료 --->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 2021.05.07-06.27 목포시 오거리 문화 센터 
<왜 백남준 왜 목포> -이번 전시 준비하는데 1년이 걸리다.

1 <줄 달린 바이올린 1979> 서양 바이올린 목에 줄을 매달아 1979년 독일 쾰른 거리에서 질질 끌고 다니다. 백남준의 자신감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 장소: 1979년 독일 쾰른.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독일에서 유명한 미술사학자(미술사 박사. 브레멘 미술관장 역임) '볼프 헤르겐라트그는 이 행위 아트의 메시지를 알았다는 소리다.

백남준 전에서 중요한 건 관객 참여 누구나 바이올린 포퍼먼스를 할 수 있다

2 백남준은 60년대부터 서구 예술의 성상 중 하나인 바이올린도 여지없이 깨 버렸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길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여러 번 했다. 왜? 서구 주도의 미술을 판을 뒤엎기 위해서 그리고 서양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미술인 즉 <비디오 아트>을 위한 사전의 터 잡기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독주 1962년 백남준 60년대는 더 과격했다 바이올린을 아예 부셔버렸다

3. 백남준은 서구의 나치즘 같은 관념주의(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현실감이 떨어지고 역사의식이 흐릿해진다)를 깨기 위해서 액션과 몸 던지기를 중시했다. 백남준에게는 머리보다 가슴보다 온몸으로 던지는 행위가 우선이다.

4. 서양의 '음악 신'(서양의 성상) 같은 바이올린의 목에 줄을 달고 다닌 건서양미술의 죽음을 선언한 상징성을 띈다. 서양미술의 우월주의를 거부하고 동양의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는 의도도 보인다. 서양미술판에 전복시키고(동서미술의 경계를 넘어서 우위의 개념을 부정하고) 거기에 새로운 미술놀이터를 만들며 신나게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걸음을 위한 선 1979년  독일 미술사학자 헤르조겐라트 박사 촬영함 도시 쾰른

 

백남준 10주기(2016년)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지우 김창열 화백 바이올린 부수기

5, 카라얀, 폼 잡는 <구시대 음악>이라고 조롱하다. 그런데 이건 카라얀을 보고 폼 잡는 구시대 음악이라고 조롱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죠.

배남준이 싫어하는 <구음악> 카라얀 지휘 악기로 연주하다
백남준이 좋아하는 <신음악> 몸으로 연주하다

백남준은 '카라얀'을 너무 싫어했다. "너무 폼을 잡는다"고 말했다. 백남준 카라얀 음악을 '구음악(Alt Musik)'이라고 했고, 자신의 음악을 '신음악(Neue Musik)'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차이가 난다.

2020년 6월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서울)>를 열다 / 2020년 8월부터 <백남준과 BTS> 전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전시를 기획(백관장) 주변에 아랍국가 대사관이 많다 그래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고 우선 <백남준과 친구들(프렌즈)를 만들다 / 2020년 9월부터 백남준 공부를 시작하다. 6개월간 40강을 하다. 강사는 김형순 오마이뉴스 기자(백남준 연구기자) 2021년 3월 백남준 공부를 마치다 / 2021년 5월 목포에서 백남준 전시를 열다

 [왜 백남준] 이전 전시는 급조된 것이 아니라 작년 6월에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서울전)이 열린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보면서 백남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9월부터 백남준 강좌를 시작하다. 원래는 백남준과 BTS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열 기획을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 우선 백남준 공부를 하지고 의견을 모우다. 이에 동의 한 사람이 바로 백남준과 프렌즈이다. 그래서 김형순 백남준 전문기자와 함께 백남준 9월부터 40강을 시작하다. 그래서 중간에 좀 쉬는 시간도 있었지만 2021년 3월에 마무리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강의 자료집을 만들다. 백 관장은 40강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강하다. 이 자료집 목표 버전을 앞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백 관장은 백 관장은 백남준 거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고 백남준을 이해했고 그래서 백남준 꼭 열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과 친구들 공부한 내용을 총 정리하여 743쪽 책을 만들다. 그런 와중에 백해영갤러리 관장이 고향에 백남준 전시를 서울전의 연장으로 목포전을 일종의 투어 전을 착안했고 그동안 백관장 목표를 10번 이상 방문하다. 장소 모색 등 그리고 목포시장과 문화 행정가와 접촉으로 그래서 결국 이번에 목표에서 성사되다 결론적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익산 역 앞에 설치미술 <익산에서 런던까지>

[왜(?) 목포] 남행열차의 종착역인 목표는 특별한 도시다. 근대문화유산도시이고 귀족풍의 호남에서 최고의 문화도시이자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다. 백남준의 예술적 에너지와 접신을 하면 분명 달라지고 전국에서도 가장 문화예술적 급을 높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포는 다 좋은데 백남준 예술 정보가 부족하다. 그리고 백남준이 1960년대 제시한 유라시아 비전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포에서 출발해 지구 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침을 먹고 여기서 <유라시아 대륙철도>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 베를린 현대미술관에서 세계적 미술 작품을 하는 것이다. 그런 비전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자루에 갇힌 목포시민을 해방시키다.

1.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목포라는 작은 자루에 갇히지 않고 세계 뻗어나가는 비전 제시
2.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코로나 시대에 목포 시민의 자신감과 위대함을 깨닫게 하기
3.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적 감성을 높여, 문화 도시로 지정받고 근대문화유산 도시의 동력과 에너지 주기
4. 백남준 전을 통해 목포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 등 경제적 도움을 준다 
5. 백남준 전을 통해 사건 터져야 목포 역전에 유라시아 대륙철도 설치미술 등 가상 목포-베를린 승차권 타보기

이번 목포 전시에서 대표작은 2가지다. 첫 번째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한반도 읽어본 적이 없다> [작품 해설]이 작품의 주제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는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 가장 위대한 (언어) 철학자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 책 안 읽어도 아무 문제없다.

백남준 1998년 서구사회에 던진 말이다.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겠다" 아니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 읽은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이 작품에서는 우리는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 가장 위대한 (언어) 철학자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 책 안 읽어도 아무 문제없다. 이미 동양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노자, 장자 등 철학자, 사상가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서양인들 꿈도 못 꾸는 비디오 아트라는 시각언어로 이미 더 많은 것은 이야기했다. 

리움 미술관 근처에 있는 서울 이촌동 백해영 갤러리

경제학자 '케인즈'도 그랬지만 "서양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모방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하고" 그만큼 비트겐슈타인은 서양사상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서양철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논해왔다. 그러다나, 칸트 때 겨우 인간의 본질을 논하면서 즉 주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언어라고 했다. 언어만이 세계를 인식하고 기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 읽은 적이 없다"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동양은 서양보다 훨씬 앞선 우주론 인간론을 이미 펼쳐왔다고 본 것이다. 나는 비트겐슈타인 언어보다 'TV언어'로 더 많은 것이 이야기할 수 있다 서양철학을 거부한 셈이다. 서구인들은 TV를 '바보상자'로 하찮게 여겼는데 백남준은 이걸 시작으로 '인터넷'을 만들었다. 서구의 딱딱하게 정해진 걸 싫어했다. 말랑말랑한 뇌처럼 유연하게 생각했다. 서구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풍자였다. 그럼에도 백남준은 서구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고로 인정받는 예술가였다.

[참고] <동양이 서양보다 2000년 앞선 사례 많다. 그중 하나>

<이야기 하나>'여씨춘추'(중국 '여'씨라는 사람이 BC 239년에 만든 백과사전) 디드로, 몽테스키외 등이 만든 계몽파 백과사전을 만든다. 결론으로 동양은 서양보다 2000년 앞서다. 백남준 이걸 주제로 한 작품이 바로 여씨춘추 전자 조각이다. 일자천금은 여씨가 이 사전에서 한 자라도 틀린 내용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말한다. 자신이 만든 사전의 사실과 팩트에 자신감을 보이다.

<동양이 서양보다 2000년 앞선 사례가 많다 그중 또 하나, 백남준 작품에 나온다>  백남준 1989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혁명가 8명을 전자 요정(조각)으로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디드로(Diderot다 그는.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철학자다.

작품(판화) 위에 <여씨춘추> 한자가 보인다. 이 책은 BC 239년 중국 진나라 때 저자 <여불위>가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여씨춘추(여씨가 쓴 이 세상의 만들에 대해서 쓴 백과사전)'다.  

'디드로’ ‘여씨춘추(백과사전)'와 '일자천금'이라는 글짜가 보인다

이 작품을 보면 백과사전에 있어서는 아시아가 2000년을 앞섰다는 것이 백남준의 메시지다. 그리고 왼쪽에는 <일자천금>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일자천금은 어떻게 유해한 것인가? 저자는 "이 사전에서 하나의 글자라도 고칠 것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호언장담. 여기서 유래한 말이 바로 <일자천금>이다. 그만큼 저자 여불위는 이 사전 내용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 <진화/혁명/결의>(1989): 1989년에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작. 작가는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상징화하는 8명 인물 ‘전자 요정(La Fee Electronique)’으로 명명하다. 8개의 TV 로봇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판화 작업으로 재해석하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위해서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대표할 수 있는 8명의 계몽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였다.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장 폴 마라', '로베스피에르', '당통', '다비드', '디드로', '볼테르', '올랭프 드 구주', '루소',

<참고> 왼쪽부터 1) ‘장-폴 마라’ -‘암살’, 2) ‘로베스피에르’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3) ‘당통’ -‘웅변’ 4) '다비드’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5) '디드로’ -‘여씨춘추(유럽보다 2000년 전에 만든 중국 백과사전) '일자천금’, 6) ‘볼테르’ -‘이성과 자유’ 7) ‘구주’ -‘프랑스 여성’, 8 ) '루소' '노자 자연' 1989년 석판화

[참고] <동양이 서양보다 2000년 앞선 사례 많다. 그중 둘>

당대 유럽의 최고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송과 명나라의 '이학' 즉 성리학에서 서양의 '이성'이라는 말을 발명> 17세기-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운동은 공맹의 서적이 유럽에서 번역, 일어난 운동. 중국의 고전인 '대학'이 유럽에서는 1592년 처음 번역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이 아시아에 비해 문명이 많이 뒤떨어졌죠.

17세기에 나온 공자의 유교사상 라틴어로 쓰여 있다.

<위> 1687년 출간된 쿠플레의 저서인 <중국의 철학자 공자> 당시 중국의 공맹 사상은 독일 철학자 '칸트'에게도 영향 주다. 유럽이 아시아에서 비해서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2번째 작품] '호랑이는 살아있다(2000)' 작품 해설에 도움말, 해설은 물론 다양하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2000

<작품 해설 I> 20세기 유대인(Jewish)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사상, 철학에서 크기 이바지했다. 0,2% 인구로 노벨상 30% 받았다, 그러나 이제 21세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 화해를 통해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 타고 가면 모든 게 끝난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이번 백남준 목포 전시 결론이기도 하다. 목포시민 여러분! 21세기는 한국인은 자신감을 가지고 한반도의 호랑이처럼 분단의 자루에 갇혀있지 말고 세계로 나아가라!!

<백남준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imia to Korea)' 2차 대전 보이스 추락한 크리미아 반도부터 한반도까지 연결하는 지도를 드로잉 하다>1960년대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유라시아(한국과 독일)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백남준은 이렇게 60년 전에 유라시아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다. 지금은 목포에서 베를린을 수시로 오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니 오고 있다. 북한의 철도여행에 대해서도 남한 사람들 60% 이상이 찬성하는 시대가 되었다.

<작품 해설 II>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2000년 1월 1일 DMZ 2000 공연에 출품된 작품이다.
백남준 4번째 마지막 위성 아트다. 2001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맞춰 로비에 영구 설치되다. 당시 87개국 위성으로 생중계되었다. DMZ 2000은 자신과 우리 한민족을 호랑이 비유해서 "나는 한 마리의 호랑이로서 서구에 진출하여 예술 현장에서 저들을 이기고 있으니(이 표현이 흥미롭다) 우리 민족도 <세계사의 유래가 없는 분단국의 처량한 신세를 청산하고 이제는 어엿한 통일국가로 나가야 한다>"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구 젊은 남녀의 현란한 춤에 이어 '금강에 살으리랏다'가 나오고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트레이시 비티엘로'가 괴성을 지르고 , 맹수 대결(호랑이 사자의 싸움에서 호랑이가 이긴다/동양이 서양을 이긴다는 비유)이나, 이념으로 분단된 철조망을 태우는 영상 등 45분으로 구성된 지 작품은 백남준의 특유한 기법으로 조각조각 연속적으로 현란하게 반복되면서 상영된다.

[작품 해설 III]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백남준이 그렇게 싫어하는 애국주의를 드물게 드러난 작품이다.
한반도 호랑이는 살아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 백남준은 세계를 향해서 호랑이는 살아있다고 77개국 방송망을 통해서 외쳤다 그 역사적 순가이 갑자기 호랑이는 무엇이고 왜 호랑이라 살아있다고 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백남준은 느닷없이 사람들은 놀리기를 좋아하지만 이 호랑이 사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미래와 관련하여 남다른 배경이 있다. 백남준은 한민족을 호랑이에 비유한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호랑이는 전실 속 호랑이의 의인화된 모습과 함께 살아온 한민족은 그 자신이 호랑이와 동일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외지 사람들은 그 호라이가 세상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지만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그리고 금강산에도 설악사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21세기에 다시 포효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백남준이 설명하는 호랑이는 바로 우리 한국인 자신이며 이제는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세계사에 우리의 존재를 분명히 알릴 때가 되었다고 일깨워준 것이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백남준이 새천년준비위원회가 마련한 밀레니엄 이벤트에서 선보인 비디오테이프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88 서울 올림픽에서 선보인 세계는 하나로 이후에 실로 10년 만에 제작한 비디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작한 작품이라는 면에서 기념비적이다. 그리고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를 제시한 점에서 매우 뜻이 깊다.

그가 1984년 제작한 굿모닝이나 1986년 바이 바이 키플링 1988년 세계는 하나로 이어 전 세계 7개국에 중계된 이 작품은 백남준 특유의 비디오 이미지와 빠른 속도로 진해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테이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다큐 이미지와 백남준 자신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삽입되어 종전의 비디오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1999년 가을 어느 날 백남준은 뉴욕 소호의 집에서 나와 아애기를 나누던 중 1990년 북한에서 만든 화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이 말은 다시 해석하면 한국인은 죽지 않았다는 숨겨진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 종전이 아니고 휴전 지구 상에 공산주의는 거의 흔적이 없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2가지 체제가 유지되는 곳 그런데 백남준이 태어난 곳은 한반도 불가침의 비무장지대 이곳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호랑의 전실이 있다 이념의 껍질을 벗기고 아주 자연스러운 생태보고서가 되는 비무장지대 이런 정치적 의도 통일과 관련된 역사적 생태학적 의미가 함께 내포된 장소를 선정하여 밀레니엄 이벤트를 꾸몄다.

그것은 역시 자신의 뿌리와 관계가 있다. 그는 비디오 구성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첫 장면은 서구의 젊은이들 현란한 춤을 추는 모습 금강에 살으리랏다 부르는 장면이 이어지고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미국 소프라노 가수 드레이시 비티엘로 가 괴성을 지르며 백남준의 다큐식 노래 부르기를 방해한다. 북의 맹수 대결도 삽입되었다. 민화와 조선시대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 글로벌 글로브가 삽입 불놀이 끝난다. 이것은 이념으로 분단된 철조망을 불태우는 의미를 갖는다.

45분 구성 백남준 이용우 기획 방송 해설은 백남준의 의도를 방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TV호랑이도 함께 전시하였다. 백남준식 애국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나는 한 마리 호랑이로서 서구에 진출하여 매체예술 현장에서 저들이 이기도 호랑이들이 당하는 역사는 이제 종지부를 찍자고 제안한다.

미국 공영 PBS ABC영국 BBC 참여하다. 백남준은 호랑이가 제대로 운다고 좋아하였다. 그의 21세기 소원을 이렇게 호랑이의 포효로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서양인들 꿈도 못 꾸는 비디오 아트라는 시각언어로 이미 더 많은 것은 이야기했다. 백남준은 'TV'를 'INTERNET'으로 바꾸다. 그래서 온 인류가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쌍방소통을 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수학과 철학에 능통 최고의 언어철학자 사상가 지금은 들뢰즈가 더 인정 받다>일각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정치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그 스스로가 자신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고 많은 방면에서 노동자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도덕적 성찰이 없다는 이유로 과학적 방법을 혐오하였으며, 음악 취향은 보수적이었고, 핵무기의 사용에 반대하였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를 존경한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거의 이론을 복사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오토 바이닝거처럼 비트겐슈타인도 민족성과 성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1930년대 초반 기록된 MS 154와 같은 노트에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자책하는 여러 문구가 적혀 있다.  

최고의 예술가와 최고의 철학자 비교

다시 <비트겐슈타인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로 돌아가서 백남준과 같은 재불화가 김순기 인터뷰 참고

백남준의 후배 작가 김순기(비디오 아티스트) 작품에도 비트겐슈타인 이야기가 나온다. 김순기 작가는 유명인과 인터뷰해서 그걸 영상작품을 남기는 작가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교수를 오랫동안 했고 비트겐슈타인 관심이 많아 그를 연구했다. 그래서 백남준과 1982년 뉴욕 인터뷰에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백남준에게 물었다 

 

[백남준] 김순기, 탁월한 비디오 <봉주르, 백남준>

김순기 재불작가의 탁월한 비디오 작품 <봉주르, 백남준> 1982년 백남준 예술론에 대해 다양하게 묻는다. 백남준의 사상의 광맥은 무궁무진하다. 아니 광활하다. 이 작품 옆에 김순기 작가가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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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도 백남준은 난 그를 잘 모른다고 하면서 대답했다. 이 말은 백남준의 1998년 작품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아도 나는 서양인들 꿈에도 생각 못하는 비디오 TV언어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올과 백남준의 만남 1992년>1992년(백남준 회갑기념 서울 방문) '도올'과 인터뷰, 폭소 터지다
- <백남준 왈,  유럽 가보니까 다 쓰레기야>

1992년

[백남준] 1992년(백남준 회갑기념 서울 방문) '도올'과 인터뷰, 폭소 터지다 II <"유럽 가보니까 다 쓰레기야" -백남준> [1992년 백남준과 김용옥 인터뷰 중 일부 내용] "내가 가서 보니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인상파도 독일의 작곡가들도 다 쓰레기야" - 백남준 김용옥 인터뷰 중에서 1992년

우린 역사를 너무 잘 못 봐 선진이다 후진이다. 이런 거 없는 거야 선진이라는데 가보면 후진도 있고 후진이라는데 가보면 선진도 있지. 내가 일본 가 보니까 일본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더라고. 그냥 우리랑 똑같았어. 난 여태까지 일본 무서워해본 적 없거든 일본에서 음악공부 좀 하다가 질력이 나서... 진짜 음악 공부해 봐야겠다고 본고장으로 가자해서 경박한 나라는 안 가고 독일 찾아갔거든 그래서 독일에 가서 보니깐 작곡가들이라는데 전부 엉터리들이었어. 그것뿐이 아니야 미술도 그래. 난 예술에 그 유명한 그림들 일본 놈들이 근사하게 인쇄해놓은 것으로만 봤잖아.

그래서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동경했지 그런데 직접 가 보니깐 허름한 캔버스 위에 나달 나달하는 페인트 형편없더라고 뭐 인상파다 르네상스 예술이다. 루벤스다 하는 것 직접 보니깐 형편이 없었던 비싸다고 하니깐 대단하게 보였던 거야 난 정말 실망했고 이따위 것 가지고 내게 그렇게도 동경했던가 하구 말이야. 박물관에 멍하니 앉아있었어.

작곡가도 말이야 그 대단한 독일이라는데 쓸 만한 몸에 4-5명밖에 안 되더라고 4-5명 정도는 탑이었어. 그러나 나머지는 어차피 쓰레기 아냐 그러니깐 난 용기가 나더라고. 우선 4-5명밖에는 안 되는가 내가 낄 자리도 아직 많겠고 생각이 들었고 또 못 겨도 어차피 시원찮은 놈들뿐인데 그 시원찮은 놈들 속에 내 시원찮은 이름 하나 더 끼어 넣는 들 죄송할 게 없잖아. 피차 마찬가진데 그래서 난 곧바로 작곡 행세를 해버린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 굵게 놀았지 그러니까 내가 독일에서 작곡가가 된 것으로 훌륭한 작곡가 때문이 아니라 나쁜 작곡가들이 하도 많아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뿐이지

아래 사진 <WULF HERZOGENRATH> Video still from Nam June Paik’s contribution to Karl Stockhausen’s Originale performances, filmed by Wolfgang Ramsbott 1961. Courtesy Kunsthalle Bremen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In May 1999 the American magazine ARTnews included Nam June Paik in its list of the century’s 25 most influential artists, alongside Picasso, Duchamp and Rauschenberg. / Time and motion, sound and action, structure and shock all featured in the innovative output of these artists, who included such diverse figures as the architect Stefan Wewerka, the sculptor Christo, the Argentinean composer Mauricio Kagel, the writer Hans G. Helms, the ‘labyr artist’ Arthus C. Caspari, the musician Gottfried M. Koenig, the gallerist Haro Lauhaus, the restorer Wolfgang Hahn and the publisher Ernst Brücher. Their vision of a new Gesamtkunstwerk also embraced film and electronic developments in the field of acoustics – so it seemed only logical for Paik to make the transition to visual electronic art, where he set about introducing into the realms of visual art his experience of a new electronic audio world where sounds could be endlessly manipulated.

<인터뷰 중 일부>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뭔가?

<백남준이 고민한 인류 구원의 길은 어느 정도 성취된 셈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예술가가 되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처음 TV로 하는 미술 전시를 열었을 때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30년 후, 인터넷이 되었기에 기념비적인 것이다. 가장 엽기적인 예술실험이 인류를 구원하다.

예술 용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면 납득할까? 얼어붙은 삶을 깨우는 가장 효과적 자극제 // 우리가 예술로 얻을 수 있는 것 [1] 심미안 [2] 카타르시스 [3] 감각 확장 [4] 욕망 이해 [5] 창조력과 상상력 키우기 [6] 삶의 질과 행복 높이기 [7] 통찰력으로 미래 내다보기 [8] 시대정신 파악하기 [9] 고차원 다차원으로 살기

"예술, 그게 일상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백남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착안했나? 지금은 어찌 되었든 인터넷과 SNS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호주머니 속에 늘 백남준이 있다.

<정보사회의 패러다임은 네트워크> WGBH (보스턴) : 1969년 백남준의 TV 이미지를 거칠게 찌그러지게 하거나 왜곡시키거나 혹은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익살스러운 모험을 통해 대중방송 속에 깊은 사유를 유발하는 개념 방송을 뒤섞어 보려고 했다 (What '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WGBH(Boston) : Nam June Paik's wild morphing of the television image, and antic adventures in narrative story-telling (What'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백남준은 민주주의에 대립하는 TV를, 문화민주화와 정보와 지식시대를 가장 빠르게 전파하는 INTERNET으로 바꿔 세상을 뒤집고 동서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하나 되게 해 미래를 멀리 내다본(visionary) 작가가 되었다>

1. <백남준은 민주주의에 대립하는 TV를, 문화민주화와 정보와 지식시대를 가장 빠르게 전파하는 INTERNET으로 바꿔 세상을 뒤집고 동서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하나 되게 해 미래를 멀리 내다본(visionary) 작가가 되었다>

2. 백남준은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려고 그들의 성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서구적 우월주의나 과학주의라는 우상에 테러를 가한 (바이러스) '해커'였다. 백남준은 서양 예술가의 혼을 빼놓고 대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피드백'과 '랜덤 액세스'라는 기괴한 노이즈 방식을 도입했다. 동시에 백남준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미술로 음악을 하고 음악으로 미술을 하는)" 융합적 회통 사상을 첨단의 TV 전자 아트로 실현함으로써 세계 미술 혁명의 기린아가 되다.

3.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 TV를 결국 30년(1963-1993)만에 인터넷으로 바꿔버렸다. 일방형 불통(먹통)의 상징인 'TV'를, 쌍방형 '소통'의 상징인 'INTERNET'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가 없는 인터렉티브 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인류가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세상(코뮌 공동체)에 대한 백남준식 유토피아를 구현한 셈이다.

<정보사회의 패러다임은 네트워크>

1. WGBH (보스턴) : 1969년 백남준의 TV 이미지를 거칠게 찌그러지게 하거나 왜곡시키거나 혹은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익살스러운 모험을 통해 대중방송 속에 깊은 사유를 유발하는 개념 방송을 뒤섞어 보려고 했다 (What '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WGBH(Boston) : Nam June Paik's wild morphing of the television image, and antic adventures in narrative story-telling (What'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2. 백남준 예술은 평생 미국 등 전쟁 주의자(20세기 모든 전쟁은 미국과 관련이 있다. 베트남 전, 중동 전 등등)에게 <신호 방해>를 랜덤 액세스 방식으로 보냈다. 그것을 백남준은 피드백 바이러스(feedback virus)하고 명했다. 인류평화를 위해 (전쟁 방해) 해커를 자처한 셈이다.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인터넷 발명도 그런 연장선 상에 있다. 지금 코로나는 바로 세계전쟁 나기 전 사전 경고다.

3. 가짜 뉴스의 홍수시대 속 미디어가 망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1%의 진짜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도 자신의 정보와 지식은 학자들과 달리 뉴욕타임스, 슈피겔 등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 과학섹션뉴스를 읽으면 과학에 대한 교양을 쌓을 수 있다고 예컨대 좋은 기사의 장점은 책 100권 분량도 잘 요약된 하나의 기사를 통해서 많은 정보와 지식과 Fact를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하나 <백남준 연구 참고 도서> 추가 예정
1, 백남준 관련 단행본. 김홍희 저, '백남준 Happening Video Art', 디자인 하우스, 1999. 김홍희 저, '백남준과 그의 예술', 디자인 하우스, 1992  김홍희 저, '비디오 아트', 디자인 하우스, 1992. 김홍희 저, '백남준', 디자인 하우스, 1999. 김욱동 저, '포스트모더니즘과 예술', 청하, 1991. 방근택 저,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미술세계, 1989. 안병욱, ' 행복한 만남, 16세의 鬼才少年: 백남준. 비디오 때. 비디오 땅', 국립현대', 미술관, 1992. 이용우 저,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동아일보. 서울, 1999 2. 정기 간행물. 최일남, '백남준과 비디오 예술의 미학', 신동아, 1984. 8월호, 작곡가로서의 백남준, 문화사상, 1984, 2월호 

둘 <아래는 그냥 참고사항>
1993년 백남준 이탈리아 미모의 여성과 퍼포먼스, 여기 한국의 삿갓(antenna of information or Internet)과 한국의 나무 지게(communicaition or transportation)가 등장한다.

1993년 백남준 스키타이 단군 앞에서 세계 최고의 미인과 포퍼먼스 일종의 굿판이다. 백남준은 1963년부터 1993년까지 모든 전시에서 굿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굿은 현대화하면 지구촌 축제가 된다. 1963년에는 소대리가 등장했고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에는 최고의 미모를 갖춘 이탈리아 여성을 북방 몽골족 일파인 타타르 로봇(스키타이 단군)에게 재물 sacrifice로 바치다. 아래 심사 위원 전원일치로 황금사자상(독일제)을 받다

백남준 1993년 베니스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와 퍼포먼스를 하다 백남준 지금 봐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참 난도 높은 예술을 한 셈이다 www.youtube.com/watch?v=TfJ1Ka9FqMc

셋 백남준 비디오 아트 음악은 무정부적이다. 굿이 무정부주의적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건드리지 못한다.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들으면 마치 굿판 같아 정신 차리기 힘들다. 고단수 고사기 노이즈 마케팅이다. 특히 서양인들 얼을 빼놓는다. 그 사이에 몽골 군인처럼 문화적으로 쳐들어가도 방어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양의 신비함에 넋을 놓는다. 백남준 음악을 계속 듣고 있으면 몸에서 전기처럼 에너지가 품어 나온다. 한국 무속의 무서운 신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접도 가능해진다. 메타 엑스트라 엑스터시를 맛보는 것이다. 절정의 쾌감이다 라캉이 말하는 주이상스 그러나 그것에도 어둠이 없지는 않다. 그 어둔 노스탤지어가 다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

백남준 광주비엔날레 인터뷰(예술만큼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좋은 것은 없다)
www.youtube.com/watch?v=eFsk7J0zBU0

예술만큼 상처를 치유하는데 좋은 것은 없다. -백남준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 좋아한 이유다. 광주의 상처를 예술로 얼싸안다. 백남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위해 너무 헌신적이 다보다 1996년 쓰러지다

베니스는 엘리트 미술만 하지만 광주는 엘리트 미술과 민중 미술이 합쳐하는 행사라 아시아의 민속 미술 등 다양해서 베니스보다 더 중요해요 많이 오셔서 돈을 많이 쓰시고 가세요 -백남준

<1964-1993><1964-1993>화보

1. <1964년> 맨 위에 백남준(N. J. PAIK)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1964년 9월 백남준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참가 이동 극장(Moving Theater 지금으로 말하면 유튜브) NO2 방 안 천장에 종이 걸개 걸어놓다

<1964년> 백남준 1964년 11월 2일 뉴욕 영화 제작 극장에서 <영화를 위한 선> 연기를 하고 있다. 손가락은 스크린에 고정 투사시키고 있다. Paiking performing <Zen for Film> [평] 서양의 기술(영화 제작)을 동양의 선으로 재해석하다. 빛을 통해 손가락으로 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다.

백남준 1965년 7월 7일 , 뉴욕 저드슨 홀에서

2. <1965년> 백남준 1965년 7월 7일 , 뉴욕 저드슨 홀에서, 제3회 아방가르드 예술 페스티벌의 하나로 무대 이동이라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65년 8월 26일

<1965년>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 반전 퍼포먼스 1965년 8월 26일 뉴욕 제3회 아방가르드 아트 페스티벌에서

3. <1966년>1966년 4월 22일 뉴욕 Filmmakers Cinematheque 극장에서 <로버트 브리어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 on the theme by Robert Breer)>을 연주

샬럿 무어먼 1967년(34살) 경찰에 연행

4. <1967년>데이비드 부르동(David Bourdon 1967년 샬럿을 보호하다) 미술평론가 아트 저널리스트가 쓴 앤디 워홀1967년 백남준과 과다노출 연주로 샬럿 무어먼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부르동(영어 발음으로 버던)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The arrest of Charotte Moorman at the filmmakers Cinematheque Feb. 9 1967. She is being assisted by Art Critic David Bourdon 1967년 2월 9일 뉴욕에서 공연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Opera Sextronique)' 소동 샬럿 체포 사건 이후의 사진이다. 67.10.22 New York Judson gallery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부르동(David Bourdon)이 쓴 저서 <앤디 워홀>
1972년 뉴욕

5. <1972년> 선언 Manipulations 뉴욕

백남준 TV 화면 일그러지게 하다(일종의 화면 조롱 DISTORTING). 그는 처음부터 TV 화면 해커였고 내부로 침투한 교란자였고 기존의 모든 전자 시스템을 사전 조율하는 사기꾼이었다. 그러다가 TV-비디오-인터넷-유튜브 되다.

--> <진화/혁명/결의>(1989): 1989년에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작. 작가는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상징화하는 8명 인물 ‘전자 요정(La Fee Electronique)’으로 명명하다. 8개의 TV 로봇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판화 작업으로 재해석하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위해서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대표할 수 있는 8명의 계몽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였다.

1977년 백남준 샬럿 무어먼 반전 시위 및 퍼포먼스

5. <1977년> 샬럿 무어먼 반전 시위 및 퍼포먼스, 1967년 섹스트로니크 10주년을 맞아 백남준과 무어먼 2차 대전 시 가장 격전지였던 솔로몬 군도 과달카날에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을 연주하고 있다 1977년이다. Charotte Moorman playing Guadalcanal Requiem in Solomon Islands in 1977

1977년 백남준 샬럿 무어먼 반전 시위 및 퍼포먼스

<이 특별한 소리 콜라주 작품에서 백남준은 인류가 전쟁을 하는 것은 결국 상호 문화적 지식이 부족하고 정보의 결핍으로 오해를 낳고 그래서 갈등이 발생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Guadalcanal Requiem - Nam June Paik with Charlotte Moorman 1977, re-edited 1979, 28:33 min, color, sound

One of Paik's most overtly political and poignant statements, Guadalcanal Requiem is a performance/documentary collage that confronts history, time, cultural memory and mythology on the site of one of World War II's most devastating battles. Guadalcanal in the Solomon Islands is the iconic setting upon which Paik inscribes symbolic gestures and performances. Scenes of Charlotte Moorman performing with her cello, interviews with American and Japanese veterans and Solomon Islanders, and archival footage of the battle are juxtaposed, synthesized, layered, colorized and otherwise electronically manipulated. The imagery is haunting and often surreal: Charlotte Moorman crawls along the beach in a G.I. uniform with a cello strapped to her back, plays a Beuys felt cello, and performs while concealed in a body bag. The subtext of this extraordinary collage is Paik's assertion that global conflict arises as a result of cultural miscommunication.

Guest: Bob Edwards. Cinematographer: Steve Mason. Narrator: Russell Connor. Location Director: Frank Pilleggi. Sound Effects: Laurie Spiegel. Camera: Bill Viola, Michael Pursche, Peter Hardy, Richard Maude, Graham Hellett. Produced by the TV Lab at WNET/ Thirteen.

1977년 뉴욕

6. <1977년> 백남준 1977년 5월 19일 뉴욕에서 일본 작가 '사이토 다카코(196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무사시노 미술 대학 시각전달 디자인과, 미국 보스턴 미술관 부속학교, 투하츠 대학을 졸업했으며, 미술기자로 도 일했다)'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 백남준은 한 번도 기독교 용어인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백남준에게 있어 모든 게 몸의 움직임 혹은 실천(Praxis=Practice)이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사진

7.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마르코폴로와 몽골텐트가 보인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몽골텐트

 

SFMOMA 백남준 회고전 'Nam June Paik'(5/8-10/3) - Lounge - NYCultureBeat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5월 8일부터 10월 3일까지 백남준 회고전을 연다. 이 회고전은 2019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시작되어 암스테르담 스테델리크 뮤지엄을 거쳐서 미국 내에서 열리

www.nyculturebeat.com

[들뢰즈는 지구 상의 모든 종류의 중심부(중심주의)를 붕괴시키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서 알 수 있다. 예술이 없었다면 그 다른 세계의 풍경은 달나라의 풍경만큼이나 영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술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 즉 자신의 세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증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들뢰즈(프루스트와 기호들) 중에서 "중심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다"

백남준 월요강좌(20강 1부 2부 총 40개) 자료집 732쪽(검토용) 3권 다시 출력

1965년 독일 여름

<백남준이 고민한 인류 구원의 길은 어느 정도 성취된 셈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예술가가 되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처음 TV로 하는 미술 전시를 열었을 때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30년 후, 인터넷이 되었기에 기념비적인 것이다. 가장 엽기적인 예술실험이 인류를 구원하다 “저희는 이곳에서 과학이 아닌 예술을 합니다(공대생).” -저희는 기술을 물감 삼아, 과학을 캔버스 삼아 실험적이고 창의적 미래 미술을 합니다(미대생)

“아직도 예술과 과학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 대학은 오래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해왔습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예술가는 어떤 기술을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지식과 예술을 생활에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각자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디자인 랩 소속(Sotirious kotsopoulos) 연구원은 공대라 할지라도, 과학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당연한 흐름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 대학은 최근에도 디자인 전공을 만들고, 석사과정에 IDM(Integrate design managemet)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공대 내 구성원들에게 예술적 소양을 겸비시켜주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새하얀 실험복이 걸려있는 옷걸이 행거, 동물의 사체가 보관된 각양각색의 유리병, 세포를 확대한 화면이 연결된 전자 현미경. 얼핏 보면 과학자의 실험실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SVA(School of Visual Arts)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술 수업이 진행되는 작업실의 정경이다.

백남준과 보이스의 첫 만남 I, 1961년 여름 뒤셀도르프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의 말기 작품인 〈20세기 종말〉(1983-1985)은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동일한 제목의 네 가지 버전이 뮌헨과 베를린, 뒤셀도르프와 런던에 있다. 다시 말해, 뮌헨 신미술관의 44개 현무암, 베를린 함부르크 역 동시대 미술관의 21개 현무암,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의 5개 현무암은 1983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31개 현무암은 1985년 완성되었다. 본 연구는 이 네 개의 버전들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압도적이며 보이스가 두 번이나 직접 설치에 참여했던 뮌헨 신미술관의 〈20세기 종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선사 시대의 선진 문명에 대한 노스탤지어. 독일 뮌헨 시립 미술관(신관 현대미술) 소장품

우선 작품의 실제를 이루는 현무암은 지표로 솟아 나온 용암의 액체가 차갑게 응고된 고체 상태로 변환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보이스는 일찍이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세계와 아일랜드의 화산지형을 통해 현무암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된다. 제7회 카셀 도큐멘타의 〈7,000 떡갈나무〉 프로젝트의 경우, 수백 년 동안 생존할 떡갈나무 옆의 현무암은 죽음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생명의 상태로 전환되며, 〈연골 결합〉(1982)의 스케치가 보여주듯 현무암 상부의 몸체에서 잘라낸 화분 모양의 원추형은 축축한 점토와 온기를 지닌 펠트를 통해 다시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1983년 뒤셀도르프 슈멜아 갤러리에 처음 소개되었던 〈20세기 종말〉은 산업사회와 물질문명으로 황폐화된 20세기의 심각한 위기를 일깨우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죽은 상태의 현무암은 상부의 원형 마개를 통해 다시 생명을 부여받는 낙관론적인 관점에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슈멜아 갤러리의 〈20세기 종말〉은 1984년 뮌헨 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2년부터는 뮌헨 신미술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전시공간의 변화는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새로운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그 흔적이 사라진 축축한 점토와 따스한 펠트의 성향은 원작의 유기적인 생명감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20세기 종말〉뿐 아니라 보이스의 많은 작품들이 안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귀로 듣는 미술'이라는 면에서 칸딘스키와 백남준은 같다. 칸딘스키는 그걸 추상미술로 백남준 그걸 비디오 아트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예술, 그게 일상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백남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착안했나? 지금은 어찌 되었든 인터넷과 SNS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호주머니 속에 늘 백남준이 있다

비음악적 원천으로부터 다양한 소리의 합성을 만드는 음악적 콜라주 역시 비논리적 구성 자체가 요구하는 등 새로운 미학은 마련했다.

<정보사회의 패러다임은 네트워크다> WGBH (보스턴) : 1969년 백남준의 TV 이미지를 거칠게 찌그러지게 하거나 왜곡시키거나 혹은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익살스러운 모험을 통해 대중방송 속에 깊은 사유를 유발하는 개념 방송을 뒤섞어 보려고 했다 (What '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WGBH(Boston) : Nam June Paik's wild morphing of the television image, and antic adventures in narrative story-telling (What's Happening, Mr. Silver?, Nine Heroes)

<백남준은 민주주의에 대립하는 TV를, 문화민주화와 정보와 지식시대를 가장 빠르게 전파하는 INTERNET으로 바꿔 세상을 뒤집고 동서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하나 되게 해 미래를 미리 내다본(visionary) 작가가 되었다>

백남준은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려고 그들의 성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서구적 우월주의나 과학주의라는 우상에 테러를 가한 (바이러스) '해커'였다. 백남준은 서양 예술가의 혼을 빼놓고 대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피드백'과 '랜덤 액세스'라는 기괴한 노이즈 방식을 도입했다. 동시에 백남준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미술로 음악을 하고 음악으로 미술을 하는)" 융합적 회통 사상을 첨단의 TV 전자 아트로 실현함으로써 세계 미술 혁명의 기린아가 되다.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 TV를 결국 30년(1963-1993)만에 인터넷으로 바꿔버렸다. 일방형 불통(먹통)의 상징인 'TV'를, 쌍방형 '소통'의 상징인 'INTERNET'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가 없는 인터렉티브 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인류가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세상(코뮌 공동체)에 대한 백남준식 유토피아를 구현한 셈이다.

고조선 '홍익'사상(스키타이 단군)과 동학의 '인내천' 사상(대석학 수운, 도올 선생과 학문의 수준이 비슷하다. 아니 더 높다)은 결론이 같다. 네 옆이 앉아있는 인간이 살아있는,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다. 동학의 페미니즘 "베틀을 짜는 여기 며느리가 바로 하느님이다"/<에티카>, 필연적으로 기쁨의 윤리학이 될 수밖에 없다. 오직 기쁨만이 가치가 있으며, 오직 기쁨만이 능동과 능동의 지복에 가까이 있고 또 우리를 가까이 가게 만든다. -들뢰즈

가짜 뉴스의 홍수시대 속 미디어가 망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1%의 진짜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도 자신의 정보와 지식은 학자들과 달리 뉴욕타임스, 슈피겔 등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 과학섹션뉴스를 읽으면 과학에 대한 교양을 쌓을 수 있다고 예컨대 좋은 기사의 장점은 책 100권 분량도 잘 요약된 하나의 기사를 통해서 많은 정보와 지식과 Fact를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 50년 전, 최저의 비용으로도,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가능하게 해 준 유튜브 전성시대를 예언하다> 백남준 1963년 첫 전시 10년 후 1973년에 1인 미디어 시대를 선포하다. 50년 전 그의 예언을 이제 유튜브 전성시대를 낳다. 여기서 포인트는 기존의 영상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데 지금은 정말 저비용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다. 보이스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라는 말을 가능하게 해 준 툴이자 장치가 되었다. 원자폭탄보다 위력이 강한 글로벌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내는 일방적(one way) 미디어 공세에 대항하는 방식을 창안하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1984년 일본에서 2인 전 지성과 우정의 네트워크 작업 그리고 유라시아 문화의 소통과 (초원에서 전자)까지 고속도로 교류 개념 창출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다.

요셉 보이스 심플한 오브제 작품이지만 감동적이다. 인류의 시원에 대한 추적이라고 할까.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유토피아(die Utopia) 유라시아(der Eurasien) 평화의 실현(die Beschaffung des Friedens) 상처(die Wunde) 치유(die Heilerung) 죽은 토끼(der tote Hase) 지방(das Fett) 펠트(der Filz) 등

More Art for Everyone 날마다 더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하여

스위스 취리히 Kunsthaus Zürich 미술관 입구에 적혀 있는 이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문화의 민주화를 위한 선언문 같다. More Art for Everyone 날마다 더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하여...

<1991년 백남준 스위스 취리히 미술도시 수준을 높이려고 자신의 전시를 Kunsthaus Zürich(4번째 사진 파우스트 연작)에서 열다> 스위스 취리히 여기에 도착하니 정말 아벤트의 나라다. 저녁의 나라 이렇게 햇빛이 부족한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 극복하려다 보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인간 마음을 치료하는데 예술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유럽의 재미 중 하나는 골목 구경 만한 것이 없다. 유럽은 중세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신인상파 점묘화도 볼 수 있다 백남준 독일보다 미술 수준이 떨어지는 스위스에서 자신의 유명한 연작 <파우스트>을 전시함으로써 이곳 미술 수준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리다. 백남준은 유럽의 도시에서 문화적 편차를 줄이는데도 기여하다.

백남준 예술은 평생 미국 등 전쟁 주의자(20세기 모든 전쟁은 미국과 관련이 있다. 베트남 전, 중동 전 등등)에게 <신호 방해>를 랜덤 액세스 방식으로 보냈다. 그것을 백남준은 피드백 바이러스(feedback virus)하고 명했다. 인류평화를 위해 (전쟁 방해) 해커를 자처한 셈이다.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인터넷 발명도 그런 연장선 상에 있다. 지금 코로나는 바로 세계전쟁 나기 전 사전 경고

전 세계 흩어진 백남준 작품 아트 테크니션과 엔지니어 서울에 백남준 타계 10주년에 다 모이다. 일본 아베 빠졌군요.

백남준은 독일에서 주는 모든 미술상을 다 받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괴테상

1966년 4월 22일 뉴욕 Filmmakers Cinematheque 극장에서 <로버트 브리어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 on the theme by Robert Breer)>을 연주

백남준 작곡: 첫 작품 '나의 만가(My First Composition)', 1946년 그리고 '향수(A Song-Nostalgia)' 1948년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하다. 난 한국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문화상인이다" -백남준

백남준 작곡 1955년부터 1957년 사이 <현악 4중주> 동경에서 작업을 시작하여 뮌헨에 와서 작곡을 완성하였다.

백남준 TV 화면 일그러지게 하다(일종의 화면 조롱 DISTORTING). 그는 처음부터 TV 화면 해커였고 내부로 침투한 교란자였고 기존의 모든 전자 시스템을 사전 조율하는 사기꾼이었다. 그러다가 TV-비디오-인터넷-유튜브 되다.

--> <진화/혁명/결의>(1989): 1989년에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작. 작가는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상징화하는 8명 인물 ‘전자 요정(La Fee Electronique)’으로 명명하다. 8개의 TV 로봇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판화 작업으로 재해석하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위해서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대표할 수 있는 8명의 계몽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였다.

다비드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 마라 ‘암살'

최고의 예술가와 최고의 철학자 비교 // 신화의 귀환: 신주술의 시대 -노소영.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그랬다. 주술(정령[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하는 기술)과 예술(과학으로 하는 기술)을 같은 말이 붙였다.

‘ 구주 ’는 ‘프랑스여성’
다비드 ’는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이번 피카소 전에 한국 학살(Massacre en Corée) 처음으로 소개. 그런데 여기서 누가 누구를 학살한 건가? 미군이 한국 민간인을 그런 것. 그런가 아닌가? 확인 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기간: 2021년 5월 1일~8월 29일,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주최: 예술의 전당, 센터 뮤지엄 랩, 주관: (주)비채 아트 뮤지엄, 후원: 주한 프랑스 대사관, 주한 스페인 대사관, 전시작품: 약 110여 점 (유화, 조각, 세라믹, 판화 등) 오늘 프레스 2시 놓치다. 내일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