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기 재불작가의 탁월한 비디오 작품 <봉주르, 백남준> 1982년 백남준 예술론에 대해 다양하게 묻는다. 백남준의 사상의 광맥은 무궁무진하다. 아니 광활하다. 이 작품 옆에 김순기 작가가 프랑스 사상가이자 해체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데리다와 인터뷰 내용을 비디오아트로 만든 것이 같이 있다. 서로 비교해 보면 백남준이나 데리다나 다 대단한 사상가들이다.
백남준에게 묻는다. 중국과 몽골의 차이는 뭔가? 중국은 농경문화 정착민이 산다. 그래서 땅에 집착한다. 그러나 노마드는 땅에 집착하지 않는다. 백남준은 가장 오래된 문서는 바로 납세기록이라고 말한다. 글이란 결국 납세기록=사유재산을 말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이런 시대 이전을 동경한다. 그런 면에서 사상적으로 노마드를 계승한다. 그러나 백남준 디지털 노마드다. 정착민은 종이에 글로 기록하고, 노마드는 머릿속에 글 없이 기록하다. 우리나라 <창>은 후자에 속한다.
글의 음악이 아니라, 말의 음악인 것이다. 일종의 구술(암기)문화다.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유목적 예술인 셈이다. 가지고 다니는 데 있어 무게가 전혀 없다. 춤과 노래가 마찬가지다. 역시 백남준 탈영토(나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제국주의가 나온다. 21세기는 그럼 면에서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추신으로 프랑스에서 대학교수였던 김순기 작가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백남준에게 비트겐슈타인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가 했을 때 백남준은 이에 대해서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니 잘 모른다고 대답을 했다. 그 이유가 뭔가 그것을 1998년 백남준 작품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읽어 본 적이 없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 답은 아래와 같다. 백남준, "서구철학 맹종마라!" 이제는 '비디어 언어'로 읽어라!!
1989년작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해석이 많으나 분명한 건 '서구철학 맹신에 대한 경고'다. 서구에서 철학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20세기 플라톤은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현대서구철학의 대가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의 책을 안 읽어도 된다고 왜? 동양에는 그를 능가하는 사상가 많고 또 내가 창안한 비디오아트라는 시각언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기에.
이 대형설치물은 사방으로 TV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그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 만든 작업이라 디테일하게 할 수 없었다.
직사각형 테두리는 지직거리는 백남준 TV화면이 떠오른다. 사방은 '동서남북, 춘하추동' 등 우주의 순환계가 연상된다. 7개 컬러색동은 그의 색채론의 반영이다. 백남준에게 '색'은 시간과 성을 의미한다. '시간'으로 보는 건 계절마다 만물의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고, '성'으로 보는 건 그 에너지가 강력해 오색찬란한 전자 빛과 닮았기 때문이고 여성의 입술과 안색등은 여성의 성적 농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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