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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튜브

[백남준] '유라시아 시대', 목포-> 베를린/부산->런던

나의 예술적 고향(My Artistic Heimat) 백남준 개인전이 서울 이촌동 백해영 갤러리(관장 백해영) 주관으로 목포 오거리 문화센터에서6월 2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 기획은 백남준 독일시절에 정통한 김순준 BS 쿤스트라움 디렉터가 맡았다. 김 디렉터는 2014년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거의 같은 제목의 백남준 아카이브전을 주관한 바 있다.

<전시중간평가> 이번 목포전 백남준 전시는 작지만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구성 성공적이었다

1/ 김순주 선생 MBC 시민 아카데미에서 전시를 위한 특강이 있었고

2/ 전시 오프닝에서 바이올린 백남준 퍼포먼스 따라하기 있었고 

3/ 지난 5월 20일 목포 시립예술무용단 '나는 비트겐슈타인 읽지 않았다' 공연 있었고

4/ 6월 26일에는 목포시립교향악단 4중주(정헌 지휘자, 직접 지휘)가 예정이다.

5/ 이번 전시에 연관해 목포대에서 백남준 강의가 있을 것이고

6/ 아트상품 만들어 선물로 배포하였고

7/ 전시장 앞 가드닝 정비(파라솔 설치)예정 여러 모로 큰 성과를 냈다.

8/ 목포와 인근지역 행정-문화계 인사와 긴밀한 연대감 생겼다. 역시 백남준이라는 작가이기에 가능했다.

9/ 무엇보다 목포시장이 백남준을 좀 이해하게 되면서 맥락이 정보화마인드로 확 바꿨다. 목포시문화정책에도 변화 올 것 같다

백남준 나는 한번도 비트겐슈타인을 읽은 적이 없다 1998년

지금 목포는 문화도시 지정을 앞두고 오랜 침묵을 깨고 문화 힘으로, 스스로 서야 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바로 이럴 때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의 고급예술과 접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잘못하면 소외될 수 있는 지방도시에 큰 경사가 난 셈이다.

이번 전시장소 오거리 문화센터는 특별한 곳이다. 1898년 4월 목포 개항 후 가장 먼저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등본원사)이었다. 1904년 현 위치로 이전 목포에 남아있는 목조와 석조로 지운 가장 큰 일본 사찰이다.. 해방 후, 1946년부터 정광중학교로 이용되기도 했다. 법정스님이 이 학교에서 불교와 접했단다. 이 학교는 1948년 3월 1일 광주로 이전하다.

1957년부터는 목포중앙교회가 되었고 1980년에는 재야인사와 목사들 11차 회의를 한 곳 광주 518518 민주화운동 출원지다. 2007년 7월 3일 등록문화재 제340호 등록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변 주차타워 조성한다는 핑계로 철거 위기 놓였지만 식민지 시대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의 가치 있는 건축물이라고 시민들 목소리 높여 다행히 보존되었다.

백남준은 지방자치옹호자였다. 백남준이 살아있었다면 이번 목포전 너무 좋아했을 것이다. 1995년 한국에서 처음 광주비엔날레 열릴 때도 이 행사의 거의 홍보요원이었다. 인포 아트 특별전을 열어 당대 첨단 예술가를 다 초대했다. 백남준은 이곳 선사문화를 전자아트로 번역한 고인돌도 출품했다. 목포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이제 드디어 목포에 온 셈이다.

목포는 별칭이 많다. 예향, 맛의 도시, 낭만항구, 전남 근대문화유산 1번지, 그리고 남행열차의 종착점이자 이제는 대륙횡단열차의 출발역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도 이런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다채롭고 역동적인 이 도시는 언제나 사람 사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목포가 개항한 것은 1897년 10월 1 부산이나 인천보다 조금 늦었다. 일제감정기 곡창지대인 호남의 물산을 집결, 유통하기 위해 일본은 목포 개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개항이 되자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편 자치기관이 설치됐다.

 

<백남준,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미쳤다 소리 듣더라도 창조적으로 생각해야 돼!" -1999년 12월 17일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2000년 1월 1일 DMZ 2000 공연에 출품된 작품이다. 백남준 4번째 마지막 위성 아트. 2001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맞춰 로비에 영구 설치되다. 당시 87개국 위성으로 생중계되었다. DMZ 2000은 자신과 우리 한민족을 호랑이 비유해서 "나는 한 마리의 호랑이로서 서구에 진출하여 예술 현장에서 저들을 이기고 있으니(이 표현이 흥미롭다) 우리 민족도 <세계사의 유래가 없는 분단국의 처량한 신세를 청산하고 이제는 어엿한 통일국가로 나가야 한다>"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구 젊은 남녀의 현란한 춤에 이어 '금강에 살으리랏다'가 나오고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트레이시 비티엘로'가 괴성을 지르고 , 맹수 대결(호랑이 사자의 싸움에서 호랑이가 이긴다/동양이 서양을 이긴다는 비유)이나, 이념으로 분단된 철조망을 태우는 영상 등 45분으로 구성된 지 작품은 백남준의 특유한 기법으로 조각 조각 연속적으로 현란하게 반복되면서 상영된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어떤 내용인가요. 『북한에서 제작했던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비디오를 쓰면 좋을 것 같아.화면을 빠르게 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조절하면 지루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2000년이 되기 3분전에는 「금강에 살어리랏다」라는 노래를 시작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지. 미국의 성악가인 트레이시 비티엘로와 함께 한국가곡 「금강에 살으리랏다」를 열창할거야. 비티엘로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최근 소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했어』

20세기아트 전반기 20세기 후반기의 차이가 있다 전반기에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는 기존예술체계에 대한 <항의 거부 비판>이었다면, 후반기에 상황주의, 플럭서스는 기존예술체계에 대한 <실험 구축 유희>로 대응하다. 다다와 뉴다다의 차이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과제는 삶과 예술의 분단을 극복하고 삶과 예술의 통일이 과제이다. 정치만 분단과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도 마찬가지다. 요셉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것을 통해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분단을 없애고 이것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플럭서스의 예술혁명정신이기도 하다./한국은 인권을 세계에 수출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우리에게 세계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인권 사상 즉 '인내천'이라는 밑천이 있다. 캐나다에 있을 때 스페인 친구에게 인내천을 이야기 했더니 그런 혁명적인 인권사상이 있느냐고 놀라더라.

K-Religion인 동학, 노장과 공맹, 불교, 유불선과 기독교(기독교 신학 전공자)에 도통한 도올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종착역. 동학은 서양의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 거부하다. 동학은 신과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넘어서는 단계다. 수운은 신을 죽이기보다 신이 우주와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 천지인은 평등하게 하나다. 한울님(우주의 질서와 생명을 생성하는 존재일 뿐)과 부모님을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동학의 동경대전은 21세기 서학을 뒤엎는, 시대의 축을 바뀌는후천개벽시대를 여는, 새 시대 코리아를 밝힐 한민족의 바이블이다. 이런 경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모든 해답은 동학에 숨어있다. 동학의 페미니즘을 알려주는 말 "며느리가 하느님이다" 김구 선생도 동학신도로서 황해도 접주(한 지역의 총책임자)였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베이컨 회화론 베이컨의 형상은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한다”라고>

지금까지는 대체로 지각보다 감각을 더 중요시 여겼다. 그동안 지각에 비해서 감각을 비하되어왔다. 과거 여성적 가치가 비하됐듯, [아이스테시스[aisthesis])=들뢰즈의 용어 감각 또는 감각적 지각?)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아이스테시스’에 대한 이성의 우위라는 수천 년 묵은 도식을 뒤집는 극적 반전이다. 그에게 아이스테시스는 이성에 선행하여, 그 바탕에서 그것을 비로소 가능케 해주는 어떤 근원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들뢰즈 왈, 베이컨은 정형도 비정형도 아닌 기괴한 형상의 창조를 통해 구상성을 파괴. 그 결과 화폭에는 충격적 형상들이 발생하고, 이 형상은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한다”라고

한국인 백남준의 넘쳐나는 자신감이 주제인 작품 3가지 ‘목포전’에서 소개

걸음 위한 선 줄이 달린 바이올린 1979

백남준 퍼포먼스 할 때 무당처럼 신접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바이올린 박살을 내는 모습 모든 기가 합쳐져야 한다./백남준 서양의 고급문화 상징하는 예술적 성상인 바이올린에 끈으로 목을 감고 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백남준 나름 상징적으로 서양 주도 아트를 살해한 사건이다. 백남준 뉴욕에서 브루클린 넘어가는 다리를 지나가고 있다.

백남준 정보 아티스트로 <무지가 공포(Ignorance=fear)>라는 말을 남겼다

걸음 위한 선 줄이 달린 바이올린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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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한 번도 비트겐슈타인 읽어본 적이 없어 1998년>. 나의 해석. 유럽에서는 비트겐슈타인, 20세기 플라톤으로 최고 철학자로 인정. 백남준은 그런 거 안 읽어도 돼 난 그보다 더 강력한 비디오아트를 통해 많은 철학 펼쳤다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2010-02-24 백남준이 그렇게 싫어하는 애국주의를 드물게 드러난 작품이다 / 한반도 호랑이는 살아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 백남준은 세계를 향해서 호랑이는 살아있다고 77개국 방송망을 통해서 외쳤다 그 역사적 순가이 갑자기 호랑이는 무엇이고 왜 호랑이라 살아있다고 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백남준은 느닷없이 사람들은 놀리기를 좋아하지만 이 호랑이 사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미래와 관련하여 남다른 배경이 있다. 백남준은 한민족을 호랑이에 비유한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호랑이는 전실 속 호랑이의 의인화된 모습과 함께 살아온 한민족은 그 자신이 호랑이와 동일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외지 사람들은 그 호라이가 세상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지만 밴두산에도 한라산에도 그리고 금강산에도 설악사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21세기에 다시 포효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백남준이 설명하는 호랑이는 바로 우리 한국인 자신이며 이제는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세계사에 우리의 존재를 분명히 알릴 때가 되었다고 일깨워준 것이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백남준이 새천년준비위원회가 마련한 밀레니엄 이벤트에서 선보인 비디오테이프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88서울올림픽에서 선보인 세계는 하나로 이후에 실로 10년만에 제작한 비디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작한 작품이라는 면에서 기념비적이다. 그리고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를 제시한 점에서 매우 뜻이 깊다. 그가 1984년 제작한 굿모닝이나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 1988년 세계는 하나로 이어 전세계 7개국에 중게된 이 작품은 백남준 특유의 비디오 이미지와 빠른 속도로 진해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테이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다큐 이미지와 백남준 자신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삽입되어 종전의 비디오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1999년 가을 어느 날 백남준은 뉴욕 소호의 집에서 나와 아애기를 나누던 중 1990년 북한에서 만든 화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이 말은 다시해석하면 한국인은 죽지 않았다는 숨겨진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 종전이 아니고 휴전 지구상에 공산주의는 거의 흔적이 없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2가지 체제가 유지되는 곳 그런데 백남준이 태어난 곳은 한반도 불가침의 비무장지대 이곳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호랑의 전실이 있다 이념의 껍질을 벗기고 아주 자연스러운 생태보고서가 되는 비무장지대 이런 정치적 의도 통일과 관련된 역사적 생태학적 의미가 함께 내포된 장소를 선정하여 밀레니엄 이벤트를 꾸몄다. 그것은 역시 자신의 뿌리와 관계가 있다. 그는 비디오구성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첫 장면은 서구의 젊은이들 현란한 춤을 추는 모습 금강에 살으리랏다 부르는 장면이이어지고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미국 소프라노 가수 드레이시 비티엘로가 괴성을 지르며 백남준의 다큐식 노래 부르기를 방해한다. 북의 맹수대결도 삽입되었다. 민화와 조선시대그림에 나오는 호랑이 글로벌 글로브가 삽입 불놀이 끝난다. 이것은 이념으로 분단된 철조망을 불태우는 의미를 갖는다. 45분 구성 백남준 이용우기획 방송해설은 백남준의 의도를 방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TV호랑이도 함께 전시하였다. 백남준식 애국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나는 한 마리 호랑이로서 서구에 진출하여 매체예술현장에서 저들이 이기도 호랑이들이 당하는 역사는 이제 종지부를 찍자고 제안한다. 미국 공영PBS ABC영국 BBC 참여하다. 백남준은 호랑이가 제대로 운다고 좋아하였다. 그의 21세기 소원을 이렇게 호랑이의 포효로 비유한 것이다

백남준의 우상 파괴 정신, 그의 예술에서 첫 스텝이다. 서구예술의 성상인 바이올린을 여지 없이 깨부수다. 여기 젊은 퍼포머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응용해서 액션 뮤직을 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안 읽어도 돼 난 문자언어보다 우수한 시각언어 비디오아트를 발명했다 비디오로 철학을 하면 돼 여기 사각형은 TV 화면을 보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4방의 TV는 동서남북 희로애락 등등 봄 여름가을 겨울 도 가능 물론 정답은 없다. 6개국어를 하고 세계적 석학과 토론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서구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 백남준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죠. 색동은 백남준의 색채론을 말하고 백남준에게 색(color)은 색(sex)이다. 그리고 시간이다. 봄에는 초록 여름에는 푸른 색 가을에는 낙엽색 겨울에는 흰색 이렇게 색은 시간을 말한다 백남준의 사고방식/

내 아버지가 친일파였다. 친일파도 그런 친일파 일수가 없지…” “비행기를 헌납하고 전쟁공채를 많이 사주고 했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몹시 싫어했다.”“나는 아버지와 얘기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아버지를 보니까 장사를 하려면 거짓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그나마 예술가가 된 것이다.” - 백남준 / 백남준 경기중 시절 좌익운동 당시 흔한 일 1946년 박정희의 형 박상희(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가 주도하는 대구사건 시위할 때 맨 앞에 서는 행동대장으로 참가. 박상희는 경찰 총에 죽었지만 백남준은 무사했다. 당시 백남준 14살이었다. 백남준 부친 이 문제로 골치를 앓다 백남준 홍콩으로 전학시키다.

백남준 1960년대 피아노를 부수더니 1970년 작품에서는 피아노를 불태우다 이것은 비디오 작품(전자오페라 II 1970년 작품 비디오 변주곡 8번째 작품, 7분 30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중 3악장이 연주된다 장면에서 베토벤 흉상이 흔들리고 그랜드 피아노가 불에 타버린다. 백남준 베토벤 작품을 아주 다르게 해석하다. 베토벤 숭배에 대한 하나의 도전일 수도 있다)이다. 비디오 신디사이저가 1969년에 발명 되어 가능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1971년 요코와 존 레논이 백남준 전시장에 와서 같이 찍은 것이다. 이런 전시가 가능했던 것을 아베의 공로도 크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에서 처음 TV 등장. 백남준에게 TV는 인터넷 시작이다. 그리고 30년 후 1993년 실용 인터넷 WWW가 나왔다> 백남준 1965년 작 자석 TV(뉴욕 휘트니 미술관) 에서 1995년 전자초고속도로 미국편(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 미술관)하는데 30년 걸렸다.

백남준과 무어먼 1971년 뉴욕 채널 13 WNET TV 스튜디오에서 녹호하는 모습. 일종의 TV의 인간화 TV와의 소통과 열애 사진 Peter Moore. 이 영상은 백남준 대표적 비디오 아트 글로벌 그루브(1973)에 사용되었다.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이 월인천장지곡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지만 백남준은 TV를 사용하지도 않고 빛으로 달의 모양을 조작한 <하늘에 별이 지구 위에 중국인보다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라(Imagine there are more Stars in the Sky than Chinese on Earth)>를 발표해 TV를 떠나 명암에 의한 빛의 효과를 묘사하기도 했다 <(1981) installation. Lake Placid '80 (1980) 3:49 min. Laser Video Space>

<백남준이 1999년 한국기자에게 설명한 구겐하임 전시 개념> 2020년 2월 11일-4월 26일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다 그런데 먼저 건강에 대해 물으니 『(마비됐던 왼손을 들어보이며) 며칠 후 왼쪽 눈수술을 한 번 더하고 시력도 회복하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요즘에는 지팡이 짚고 소호거리를 걸어다니며 점심식사하는 게 큰 낙이야. (부인을 가르키며) 저 사람이 내가 아파 병원에 있는 동안 비디오를 찍어두었는데 조만간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 발표할 거야』

-구겐하임 전시회를 맞는 소감도 특별하시겠어요.

『나이 예순일곱이 되가지고 큰 기회가 와서 아주 고맙게 생각해. 누구나 선망하는 휘트니미술관 전시(82년)에 이어 구겐하임에서 죽기 전에 데모 한 번 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 구상과 작품 선정은 끝나셨습니까.

(이번 전시핵심은 레이저를 이용한 설치작품 「Modulations in Synch(2000)」이다. 미술관 6층 천장에서 레이저를 1층 로툰다 바닥으로 폭포처럼 쏘아내리고 반대로 100여개의 TV 수상기가 깔린 로툰다 바닥에서도 레이저가 달팽이처럼 생긴 미술관 벽을 따라 올라간다. 달팽이형 내부구조를 추상적인 이미지의 레이저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이다. 『레이저의 환상적인 색깔이 초월자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해. 그 형상이 사선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라 이름을 「야곱의 사다리」라고 붙였어. 여기에 88년 서울올림픽 때 제작했던 우주오페라 「wrap around the World」에 사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국여자가 경쾌하게 북을 치는 소리가 배경으로 깔려』(동석한 매니저는 2월21일에 관객들이 참여하는 간단한 퍼포먼스도 선보인다고 귀띔했다)

비트겐슈타인 명언

1. 쓸모없는 문제에 관여하지 마라.

2.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3. 언어는 만물의 척도다.

4. 생각도 일종의 언어이다.

5. 말에는 음악이 깃들어 있다.

6.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7. 우리는 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싶어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아름답게만 간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8.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의 극복이 칭찬받을만한 것이고, 인생을 보람차게 만든다.

9. 마음속 용기야말로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작아도 점점 성장해서 거목이 되는 것이다.

10. 어떤 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도저히 손을 쓸 방도가 없다면 먼저 주변의 돌부터 움직여라.

11.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서 온다.

12. 철학자란 건강한 인식을 얻기 위해서 자기안에 박혀있는 다양한 사고의 오류를 고쳐야 하는 사람이다.

13. 반대되는 결론도 항상 함께 생각하라.

14.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고뇌하고 인내하는 능력을 누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15. 생활이 자꾸만 변화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물론, 그것은 습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6. 나는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단지 즐기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 사실만큼은 확신한다.

17.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에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철학자의 주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18. 자아성찰은 내 삶의 새로운 한 부분이어야 한다.

19. 의심은 믿음 이후에 온다.

20. 확실하다는 말로써 우리는 완전한 확신, 의심의 부재를 나타내며, 또한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의 그 믿음은 주관적 확실성임을 알아야한다.

21. 인간의 몸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훌륭한 그림이다.

22.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

23. 인생이 견딜 수 없게 되었을때, 우리는 상황이 변화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변화, 즉 자기자신의 태도를 바꿔야한다는 인식에는 거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24.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친숙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가는 것 중에 있다.

25. 나는 구두점을 많이 써서 읽는 속도를 늦춰보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쓴 글이 천천히 읽혀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읽는 것처럼 ...

26. 철학적 탐구는 인간생활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백남준 1988년 서구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말을 했다.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겠다" 아니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 읽은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아래사진>라는 작품을 아예 발표했다. 왜 그랬을까?

경제학자 '케인즈'도 그랬지만 "서양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모방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하고" 그만큼 비트겐슈타인은 서양사상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서양철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논해왔다. 그러다나, 칸트 때 겨우 인간의 본질을 논하면서 즉 주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언어라고 했다. 언어만이 세계를 인식하고 기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 읽은 적이 없다"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동양은 서양보다 훨씬 앞선 우주론 인간론을 이미 펼쳐왔다고 본 것이다. 나는 일반언어보다 'TV언어'로 더 많은 것이 이야기할 수 있다며 서양정신을 거부한 셈이다. 서구인들은 TV를 '바보상자'로 하찮게 여겼는데 백남준은 이걸 시작으로 '인터넷'을 만들었다. 서구의 딱딱하게 정해진 걸 싫어했다. 말랑말랑한 뇌처럼 유연하게 생각했다. 서구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풍자였다. 그럼에도 백남준은 서구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고로 인정받는 예술가였다.

2. <호랑이는 살아있다 2000년> 20세기 0.2%의 유대인이 30%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인류사에 기여했지만 21세기는 한국인이 그걸 할것이다. 한반도 호랑이는 죽은 것이 아니다 20년 전 예언 지금 실현 중. 그리고 60년 전 백남준 유라시아 시대 예언 이제는 목포에서 베를린으로 대륙기차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가라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

3. <줄 달린 바이올린 1979년> 서양 '음악신' 같은 바이올린 목에 줄을 매달아 1979년 독일 쾰른 거리에서 질질 끌고 다니다. 이건 카라얀을 보고 폼 잡는 구시대 음악이라고 조롱한것과 맥락이 같다.

백남준 따라하기 백남준 서양인이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문화적 성상인 바이올린 길에서 질질 끌고 다니다. 왜(?)

백남준의 자신감은 정말 알아줘야. 서양 '음악신' 목에 줄을 매달아 1979년 독일 쾰른에서 질질 끌고 다니다. 카라얀, 폼 잡는 구시대 음악이라고 조롱하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독일에서 유명한 미술사학자(미술사 박사. 브레멘 미술관장역임) '볼프 헤르겐라트' 그는 이 행위아트의 메시지를 알았다는 소리다.

이번 목포 백남준 전시를 참여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백남준은 정말 "센" 사람이다. 혹은 무서운 사람이다. 진짜 센 사람은 조용한 카리스마, 큰 사랑과 포용력이 있는 사람(?) 6개국어를 하는 백남준 서양의 석학들과 논쟁이 붙으면 재치 넘치는 유머로 녹타운 시킨다. 그런데 백남준에게 가장 대하기 힘든 서양의 지식인은 맑시스트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백남준은 '카라얀'을 너무 싫어했다. "너무 폼을 잡는다"고 말했다. 백남준 카라얀 음악을 '구음악(Alt Musik)'이라고 했고, 자신의 음악을 '신음악(Neue Musik)'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차이가 난다.

<소외될 수 있는 지방 미술에 세계 최고의 작가를 접할 기회가 제공되다>

이번 목포 백남준 전시(나의 예술적 고향 2021.5.7-2021.6.27 오거리 문화센터에서, 작년 백남준 서울전시의 목포 순회전이다)의 60% 백해영 갤러리 백해영 관장 덕분이다. 70을 앞두고 고향에 소개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이번 전시를 열다. 시청에서는 직접 지원한 것은 전시장 문제 확보에 도움을 주고 행정처리를 등 지원했다. 그리고 파버 카스터(독일 색연필 회사,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다) 등에도 협찬이 있었다. 오프닝 행사에 김종식 목포 시장과 관계자 등 참가하다. 그리고 82년부터 백남준과 같이 작업한 사진가 임영균 선생 등도 참가했다. 이번 전시 기획은 김순주 선생 독일통으로 특히 백남준 독일 시대 한국에서 최고의 권위자. 그동안 경험을 최대한 살려 작은 규모지만 멋진 전시개념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지호 도립미술관장도 오전에 다녀가셨다. 그리고 목포대 전성규 미술대학 학과장과 다른 교수 한 분도 참가했다.

백남준 1969-1970년 미국 상업방송에 들어가 일하면서 비디오 편집 기술도 배우고 동시에 상업성에 예술성을 결합시키다/|휘트니미술관이 편저한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 1950-2000)> 를 보면 "비디오아트는 60년대 미국의 반체제문화 속 세 가지 경향 즉 뉴 테크놀로지 통해 확장된 지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과 반전운동과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심에서 태어났다(쌍방소통)"고 적고 있다/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후 150,000달로 빚을 지게 되었다. 국가도 하기 힘든 일을 개인이 했기 때문이다 백남준 비행기 안에 빚을 어떻게 갚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

이번 목포 백남준 전 주제를 간단하게 말하면 2가지다. 첫 번째,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한반도 읽어본 적이 없다(아래 무지개 작품)> 작품에서는 우리는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 가장 위대한 (언어)철학자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 책 안 읽어도 아무 문제 없다. 이미 동양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노자, 장자 등 철학자, 사상가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서양인들 꿈도 못 꾸는 비디오 아트라는 시각언어로 이미 더 많은 것은 이야기했다.

2번째 <호랑이는 살아있다> 20세기 유대인(Jewish)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사상, 철학에서 크기 이바지했다. 0,2% 인구로 노벨상 30% 받았다, 그러나 이제 21세는 한국인이 그 역학을 할 것이다. 남북 화해를 통해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 타고 가면 모든 게 끝난다.

[르몽드] Joseph Beuys 100주년, 현대미술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Figure emblématique de l’art contemporain) 1986년 사망 보이스의 친구였던 Michael Ruetz가 미공개 이미지를 이번에 발표하다. <개인 보이스> 미국에 앤드워홀이 있다면 독일에는 요셉 보이스가 있다

빌 비올라가 본 그의 스승 백남준

[비올라(1951-) 2015년 봄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기자간담회에서 백남준에 대해 언급한 일부 내용을 소개. 백남준은 영업비밀도 다 공개하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소리겠죠.

"제가 젊었을 때 그때 당시 막 비디오아트가 태동하던 시기인데 당시에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백남준 조수를 했거든요. 제 평생 그런 분은 처음 봤어요. 너무 에너지 넘치고 정말 재미도 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였어요. 나이 든 분이나 젊은이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여시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최고의 분이셨죠.

백남준 선생의 경우 비디오아트를 창시자이시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쓰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면 그 자료(소스)도 주저없이 열어주었어요. He was grateful!! 여러 번 반복하다. 그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죠" 2015.03.06. 국제갤러리 비올라 인터뷰 중에서

백남준의 수제자 비올라는 성자처럼 영혼이 맑은 사람이었다. 비디오아트로 영상시를 쓰는 시인 같은 사람. 동업자인 아내를 보석처럼 여기는 그런 남성이었다.

비올라 왈 장자가 한 말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Birth is not a beginning, and death is not an end)"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카오스에 빠져있지만, 그런 장벽을 넘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함을 언급하기도 했죠.

그 역시 동서문명의 결합을 강조하다.

동양이 놓친 철학과 가치관과 정신적 유산을 가져와 서구의 첨단 예술에 접목한다. 서양이 소홀히 하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역경을 이겨내게 힘을 주는 영혼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며 유한 속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무한의 세계로 갈 수 있는지 묻는다. 2015년 3월 6일

 

"넥타이는 맬 수도 있지만 자를 수도 있다. 피아노는 연주할 수도 있지만 부술 수도 있다" - 백남준. 백남준에게 피아노는 악기만 아니라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TV이기도 했다. 1963년 백남준 부퍼탈 첫 전시에 총체 피아노 작품 이 갤러리 관장(예링, 당시 독일에서 유명한 건축가)이 백남준 작품을 연주해 보다.

[유라시아대륙철도] 서울 베를린 74만원, 익산에서 런던까지 10일11일 차비 95만 하나, "21세기 유라시아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백남준 60년 전 예언이다)" 백남준 I '코끼리 마차(Elephant Cart)' 혼합매체 293×633×153cm 1999-2001. 백남준아트센터소장 <유라시아 시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1]유라시아 길이 열리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일단 북으로 가는 길이 열려야 유라시아 길이 열린다. 백남준 1960년대부터 유라시아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우리의 기원은 페루까지 간다. 그리고 핀란드, 우랄 알타이, 헝가리, 시베리아, 훈족, 타타르, 몽골 그리고 한반도까지 하나임을 강조하다

[2] <유라시아를 상징하는 초원고속도로를 지나는 코끼리 형상화>이 작품의 백남준 메시지는 이제는 활발한 유라시아 교류를 하라는 것. TV 부처의 연장선 상의 작품이다. 긴밀한 동서 접촉 권유. 목포- 평양과 천진을 지나 혹은 부산-원산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중앙아시아 고비사막을 지난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바르사바와 베를린까지 가라고 권유하고 있다 <아래> 293×633×153cm 백남준 I '코끼리 마차(Elephant Cart)' 혼합매체 1999-2001. 백남준아트센터소장

[3] 초원 고속도로 고비사막(코끼리)을 지나 동서 문명을 13세기 초 칭기즈칸이 처음 시작했고 유라시아시대가 열렸고 지금은 전 세계 지구촌이 하나로 1초 안에 통할 수 있는 슈퍼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열렸다. 아래 작품은 또 하나의(제2의) 'TV부처'로 유라시아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킹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양이 서양을 이끌어가는 모습이다.지금 지방자치도 유라시아 철도 연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일이 걸림돌이다. 유럽은 대환영이다. 중국은 이에 대비해서 중동과 전국의 초고속기차와 도로를 만들고 있다. 중동에는 중국이 공짜로 고속도로를 만들어주고 있다.

[4] 백남준과 유라시아 60년 전인 60년대부터 시작, 문화의 통로

[백남준과 유라시아 60년 전인 60년대부터 시작, 문화의 통로로 생각하다 1993년 베니스에서 작품으로 발표 그리고 또 30년이 지났다] 1993년 백남준 자르디니 숲에 만든 백남준의 통로는 '아시아로 가는 길'을 뜻한다. -이경희 여사. 프랑스 기자(Alison Sarah Jacques)와 백남준의 인터뷰에서 가져온 글이다. *세기말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것은 20세기(산업시대)가 가고 21세기(정보시대) 새로운 세기가 온다는 말이다.

[5] [백남준 한반도와 유라시아 네트워킹 철도 시대를 60년 전부터 시도] 1963년 백남준과 보이스와 함께 유라시아 지도를 그리다. 보이스 2차대전 조종사로 전투 중 러시아 우알 알타 지역 크리미아 반도 근처 추락해 유목민 타타르 족과 극적으로 살아난다. 그들이 지극정성으로 보이스를 치료했기에 그때부터 보이스 유라시아와 샤머니즘을 그의 예술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다. 백남준과 함께. 시베리아 철도 고속도로를 상상하다. 6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 이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철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보이스와 백남준>1. 보이스는 1959년, 처음 백남준을 데뷔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게 바침'에서 봤고 2. 1961년, '제로 그룹(Zero Group)' 오프닝 파티에서 백남준의 성 Paik를 불렸다. 3.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에 나타나 부수려고 준비한 피아노를 먼저 부수고 있었다. 백남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6] 몽골제국이 13세기 초, 세계를 지배한 건 가장 빠른 말로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칭기즈 칸부터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까지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역참(驛站制)'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몽골 전국에 역참이 1519곳에 이르렀고, 말(나귀) 5만여 마리, 소 9000마리, 배 6000척 수레 4,000량, 등을 대기해두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네트워크를 창출.

[7] 파미르고원을 넘어 실크로드를 왕래하는 상인의 증가는 물론이고 유럽의 선교사, 여행가들이 속속 동방세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세계지도가 나오고, 대 여행시대를 열리고, 세계사가 쓰였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백남준은 몽골제국이 이렇게 동서 교류의 통해 최초로 '지구촌'을 실현했고, 또한 시베리아에서 네팔, 한국, 라플라드(핀란드), 페루 등을 누비며 '초원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예술을 접근했기에 이렇게 '비저너리' 아티스트로서 내일을 멀리 보는 'TV(Tele 멀리, Vision 보다)전자아트'를 발명할 수 있었다.

60년 전 백남준 유라시아 시대 예언 남행열차 출발점 목포에서 유럽 베를린까지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1984년 일본에서 2인전 지성과 우정의 네트워크 작업 그리고 유라시아 문화의 소통과 (초원에서 전자)까지 고속도로 교류 개념 창출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다

<백남준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emia to Korea)' 2차대전 보이스 추락한 크리미아 반도부터 한반도까지 연결하는 지도를 드로잉하다>1960년대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유라시아(한국과 독일)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백남준은 이렇게 60년 전에 유라시아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다. 지금은 목포에서 베를린을 수시로 오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니 오고 있다. 북한의 철도여행에 대해서도 남한사람들 60% 이상이 찬성하는 시대가 되었다.

1969년 백남준 전시에 오노요코와 존 레논이 방문하다

Main Channel Matrix," 1993-1996 장소: James Cohan Gallery 291 GRAND STREET 뉴욕 NY 10002 65개의 TV 세트로 구성되다. // 음악과 작곡을 공부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작품 같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누구보다 먼저 시도하다. 백남준의 70년대부터 영상모음이 뒤섞여 있다 This video examines Nam June Paik's iconic work "Main Channel Matrix." "Main Channel Matrix," 1993-1996 is a monumental videowall composed of 65 television sets that play Paik’s seminal 1973 video broadcast "Global Groove" on continuous, splicing loop. With this work, Paik combined compositional design and video imagery to create a radical manifesto on the nature of global communication in a media saturated world

<백남준이 고민한 인류구원의 길은 어느 정도 성취된 셈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예술가가 되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처음 TV로 하는 미술 전시를 열었을 때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30년 후, 인터넷이 되었기에 기념비적인 것이다. 가장 엽기적인 예술실험이 인류를 구원하다.

백남준과 보이스의 첫 만남 II

<요셉 보이스 탄생 100주년 기념전 뒤셀도르프 베스트팔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2021년 3월 27일부터 8월 15일까지> „Jeder Mensch ist ein Künstler“ Kosmopolitische Übungen mit Joseph Beuys 27.3. - 15.8.2021 요셉 보이스는 기인이기도 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유럽에서 최고의 작가로 아니 세계에서 백남준과 함께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 앤디워홀이 있다면 독일에는 요셉 보이스가 있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예술가 한 시대의 통로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몬드리안. 창의성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마티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호퍼. 테크닉에는 그림에서 그 어떤 부분보다 더 많은 감성이 필요하다. - 브라크.

르네상스 1. 초기 르네상스(피렌체) 2. 북유럽 르네상스(에이크, 브뤼헐, 독일 뒤러 동동) 3.르네상스 4. 전성기 르네상스. 5. 베네치아 르네상스 6. 매너리즘/백남준 보이스 유라시아 작가의 상징 둘은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상생의 관계였다. 서로에게 득이 되지 해가 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 / 1984.5.31 도쿄

요셉 보이스 심플한 오브제 작품이지만 감동적이다. 인류의 시원에 대한 추적이라고 할까.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유토피아(die Utopia) 유라시아(der Eurasien) 평화의 실현(die Beschaffung des Friedens) 상처(die Wunde) 치유(die Heilerung) 죽은 토끼(der tote Hase) 지방(das Fett) 펠트(der Filz) 등/요셉 보이스의 이 사진을 찾다가 딴곳으로 가다. 선사 시대의 선진 문명에 대한 노스탤지어. 독일 뮌헨 시립 미술관(신관 현대미술) 소장품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아래처럼 상호 유사한 테마를 많이 활용하다. 유라시아와 노마드적 삶, 동서의 교류와 소통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의 말기 작품인 〈20세기 종말〉(1983-1985)은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동일한 제목의 네 가지 버전이 뮌헨과 베를린, 뒤셀도르프와 런던에 있다. 다시 말해, 뮌헨 신미술관의 44개 현무암, 베를린 함부르크 역 동시대 미술관의 21개 현무암,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의 5개 현무암은 1983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31개 현무암은 1985년 완성되었다. 본 연구는 이 네개의 버전들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압도적이며 보이스가 두 번이나 직접 설치에 참여했던 뮌헨 신미술관의 〈20세기 종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선 작품의 실제를 이루는 현무암은 지표로 솟아나온 용암의 액체가 차갑게 응고된 고체 상태로 변환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보이스는 일찍이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세계와 아일랜드의 화산지형을 통해 현무암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된다. 제7회 카셀 도큐멘타의 〈7,000 떡갈나무〉 프로젝트의 경우, 수백 년 동안 생존할 떡갈나무 옆의 현무암은 죽음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생명의 상태로 전환되며, 〈연골결합〉(1982)의 스케치가 보여주듯 현무암 상부의 몸체에서 잘라낸 화분 모양의 원추형은 축축한 점토와 온기를 지닌 펠트를 통해 다시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1983년 뒤셀도르프 슈멜아 갤러리에 처음 소개되었던 〈20세기 종말〉은 산업사회와 물질문명으로 황폐화된 20세기의 심각한 위기를 일깨우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죽은 상태의 현무암은 상부의 원형 마개를 통해 다시 생명을 부여받는 낙관론적인 관점에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슈멜아 갤러리의 〈20세기 종말〉은 1984년 뮌헨 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2년부터는 뮌헨 신미술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전시공간의 변화는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새로운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그 흔적이 사라진 축축한 점토와 따스한 펠트의 성향은 원작의 유기적인 생명감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20세기 종말〉뿐 아니라 보이스의 많은 작품들이 안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백남준 1964년 11월 2일 뉴욕 영화

제작 극장에서 <영화를 위한 선> 연기를 하고 있다. 손가락은 스크린에 고정투사시키고 있다. Paiking performing <Zen for Film> [평] 서양의 기술(영화제작)을 동양의 선으로 재해석하다. 빛을 통해 손가락으로 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다.

1967년 2월 9일 뉴욕에서 공연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Opera Sextronique)' 소동 샬럿 체포 사건 이후의 사진이다. 67.10.22 New York Judson gallery

백남준의 서울 찬가, V-MATRIX 로 만든 서울 랩소디에 대한 이야기

'세계는 하나다'라는 백남준의 일관된 주제가 담겨 있다. 차별과 위계를 넘어 막힘과 경계가 없는 융합과 상생의 세계로 파카소나 뒤샹의 오브제 콜라주를 대체하는 시공간의 넘어서는 전자 Main Channel Matrix 콜라주를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통해 전자풍경화를 벽화형식으로 연출되다. 서진석 선생의 말씀도 타임 콜라주로 본 이 작품 해설도 참조하시면 좋겠네요

인터페이스로 미술의 영역을 확장한 백남준의 선구적 실험은 후배작가들에게 많은 영감과 자극을 주는 것인가? 《2020 백남준기념관 토크 시리즈》 2강. 〈보이스 복스〉로부터 백남준의 정신을 이야기하다 대담: 이대형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와 강이연 작가/Royal College of Art 객원교수

백남준기념관에서 마련한 온라인 강연 프로그램 《2020 백남준기념관 토크 시리즈》를 만나보세요. 서울시립미술관과 백남준문화재단이 함께 준비한 이번 프로그램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3회에 걸쳐 구성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이대형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의 ‘〈보이스 복스〉로부터 백남준의 정신을 이야기하다’입니다.

백남준의 작품 〈보이스 복스(Beuys Vox)〉는 백남준이 자신의 동료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추모하는 뜻을 담은 기념비적 기록물들을 모은 아카이브 성격의 작품입니다. 동료를 향한 백남준의 애정과 찬사가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보이스 복스〉를 생각해 보며, 자신의 비전을 세상과 함께 나누려는 그의 예술정신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백남준의 예술실천 방법과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 백남준기념관은 세계적인 현대 예술가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의 성장기를 보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조성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운영시설입니다.

La bêtise est une structure de la pensée comme telle : elle n'est pas une manière de se tromper, elle exprime en droit le non-sens dans la pensée 어리석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에서 논센스(비상식)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들뢰즈

2013년 백남준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미술관 전시 화보 뉴욕타임스 기사 백남준 전시는 어렵지 않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어린아이가 전시장에서 누워 춤을 춘다. 오늘은 어린이 날. 전자빛이 자연빛보다 더 환상적이다.

샤머니즘은 치병굿과 살풀이굿을 통해 일체의 얽매임과 억압에서 벗어나 환희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동력화이다. 거기에 태어남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의 세계까지 다 포함한다. 여기에는 신화적 서사 리드미컬한 선율과 하나로 어울어져 인류문화의 높은 가치와 그 정당성을 일깨워준다.

<요셉 보이스와 샤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는 독일에서 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샤머니즘으로 갔을까 서구의 탈주술주의, 과학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는 결국 나치즘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고 수많은 인종학살이라는 참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귀로 듣는 미술'이라는 면에서 칸딘스키와 백남준은 같다. 칸딘스키는 그걸 추상미술로 백남준 그걸 비디오아트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예술, 그게 일상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백남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착안했나? 지금은 어찌되었든 인터넷과 SNS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호주머니 속에 늘 백남준이 있다.

고조선 '홍익'사상(스키타이 단군)과 동학의 '인내천' 사상(대석학 수운, 도올 선생과 학문의 수준이 비슷하다. 아니 더 높다)은 결론이 같다. 네 옆이 앉아있는 인간이 살아있는,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다. 동학의 페미니즘 "베틀을 짜는 여기 며느리가 바로 하느님이다"

백남준은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려고 그들의 성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서구적 우월주의나 과학주의라는 우상에 테러를 가한 (바이러스) '해커'였다. 백남준은 서양 예술가의 혼을 빼놓고 대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피드백'과 '랜덤 액세스'라는 기괴한 노이즈 방식을 도입했다. 동시에 백남준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미술로 음악을 하고 음악으로 미술을 하는)" 융합적 회통 사상을 첨단의 TV 전자 아트로 실현함으로써 세계 미술 혁명의 기린아가 되다.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 TV를 결국 30년(1963-1993)만에 인터넷으로 바꿔버렸다. 일방형 불통(먹통)의 상징인 'TV'를, 쌍방형 '소통'의 상징인 'INTERNET'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가 없는 인터렉티브 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인류가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세상(코뮌 공동체)에 대한 백남준식 유토피아를 구현한 셈이다.

[이번 전 개요] <목포시 오거리 문화 센터열리는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2021.05.07-06.27)' / 목포 백남준 전시 5월 6일 시작해 2달간 열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는 백남준 전시가 5월 8일부터 시작해 4달간 열린다.

하나[ONE] [준비하는 데 1년 걸리다]

[1] 이번 전시는 급조된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데 1년 걸리다.

1. 2020년 6월 백해영 갤러리에서 <백남준 나의 예술적 고향(서울) 김순주 디렉터기획>를 열었다

2. 2020년 8월부터 <백남준과 BTS> 전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전시 기획(백관장) 주변에 아랍국가 대사관이 많고 해서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다.

3. 그래서 우선 백남준을 제대로 알기 위해 백남준 공부 팀인 <백남준과 친구들(프렌즈)를 만들다. 2020년 9월부터 백남준 공부를 시작하다. 6개월간 월요강좌 40강하다. 강사: 김형순 오마이뉴스 백남준 연구기자. 유튜브 만들다. 백관장 40강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강하다.

4. 2021년 3월 백남준 공부를 마치다. 732쪽 공부 자료집(아래)이 나오다. 가능하다면 백남준 월요강좌 자료집 <목표 버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5. 2021년 5월 목포에서 백남준 전시를 열다 * 이런 자료집 목포 VERSION 기대

둘(TWO) [왜 백남준인가?]

1. 백 관장은 백남준 40강을 들은 후 이 작가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확신하다. 백남준 서울전의 연장으로 우선 고향이기도 한 목포전(일종의 투어전)을) 착안하다. 이를 성사시키려고 목포를 10번 이상 방문하다. 장소도 모색하다. 목포시장과 목포시 문화 행정가와 접촉으로 결국 이번에 거의 자비로 전시가 성사되다

셋(THREE) [왜 목포인가?]

백남준이 60년 전에 주창한 유라시아 전성시대를 맞아 남행열차의 종착역인 목포가 세계를 뻗어나가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다. 목포는 인재가 많이 나온 특별한 도시다. 근대문화유산도시이고 귀족풍의 호남에서 최고의 문화도시다. 음식문화가 가장 세련되고 풍부한 곳이다. 이곳 분들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다. 백남준의 예술적 세계와 접신을 하면 분명 달라지고 전국에서도 가장 앞서는 문화 예술도시로 급부상할 것이다.

넷(FOUR), [정보확장]

다만 목표의 그런 열망에도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리고 백남준이 1960년대 제시한 유라시아 비전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포에서 기차 <유라시아< 대륙철도(목포-베를린)>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는 여정을 꿈꾸는 것이다. 세계에서 최고의 미감을 자랑하는 목포에서 아침을 먹고 <대륙철도>를 타고 베를린에 가는 것이다. 거기 베를린 현대미술관에서 세계적 미술 작품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비전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다섯(FIVE), [재정리]

<1>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목포라는 작은 자루에 갇히지 않고 세계 뻗어나가는 비전 제시한다 <2>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코로나 시대에 목포시민의 자신감과 위대함을 깨닫는다 <3> 백남준 전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적 감성을 높여, 문화 도시로 지정받고 근대문화유산 도시의 동력과 에너지 준다 <4> 백남준 전을 통해 앞서가는 목포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 등 경제적 도움을 준다 <5> 백남준 전을 통해 사건 터져야 목포 역전에 유라시아 대륙철도 설치미술 등 가상 목포-베를린 승차권 타본다.

<추신> 이번 목포 전에서 소개되는 2가지 대표작 해설

첫 번째: <난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1998년>

[작품해설] 이 작품의 주제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는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 플라톤 이후에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 책 안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미 동양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노자, 장자 등 철학자, 사상가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서양인들 꿈도 못 꾸는 비디오 아트라는 시각언어로 이미 더 많은 것은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호랑이는 살아있다(The Tiger alive) 2000년>

20세기 유대인(Jewish)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사상, 철학에서 크기 이바지했다. 0,2% 인구로 노벨상 30% 받았다, 그러나 이제 21세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21세기는 백남준이 60년 예언한 대로 유라시아 전성시대다.. 남북 화해를 통해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 타고 가면 모든 게 끝난다. 이 전시의 백남준이 주는 메시지다. 목포시민 여러분! 21세기는 한국인은 자신감을 가지고 한반도의 호랑이처럼 분단의 자루에 갇혀있지 말고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2007년 백남준 사후 추모 1주년 기념 때 독일에서 백남준 대대적으로 추모행사를 했다. 아래가 그것이다. 뒤셀도르프 시 전차(tram)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다녔다. 이처럼 백남준을 독일시민들에게 잘 알리는 방법이 있을까. 백남준은 독일에서 신격화되어 있다. 베토벤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다. 신과 싸우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신과 너무 맞서지 마라!(When too perfect, LIEBER GOTT BÖSE)" 아래 사진 아래에 적혀 있다.

현존하는 최고철학자 'J. 하버마스(독일)'가 인류의 난제인 원활한 소통(과 시민참여)의 대안으로 제창한 '공론장이론(public sphere)'이 있다면, 백남준은 '비디오 공동시장(1970)' 즉 인터넷을 주창하다. 결국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같은 것.

하버드대학 경제학(학부)과 대학원 경영학과 출신인 백남준 조카 켄이 말하는 그의 삼촌 백남준 이야기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제작> Ken Hakuta describes the experience of growing up with his uncle, the artist Nam June Paik, who was at the vanguard of video, sculpture, and performance art. He shares unique insight into a large group of works by Paik, who experimented with ways to distort the images on television screens, created robots from miscellaneous found objects, and even made artwork from Hakuta’s broken childhood toys.
http://omn.kr/963e

 

독일은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적 고향

'나의 예술적 고향, 라인란트의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 9월 30일까지

www.ohmynews.com

The Future is Now -Nam June Paik. "미래(Future)의 시점에서 현재(Now)의 역사를 쓰는 것이 예술이다" -백남준. 가장 먼 과거를 볼 수 있어야 가장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선사시대를 알아야 30세기를 볼 수 있다. 백남준 과거 미래 현재를 비빔밥처럼 뒤섞어 놓았다. 시간의 예술가로서 그 스펙트럼은 매우 깊고 넓고 높다.

60년 전 백남준 유라시아 전성시대 예언 이번에는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전시장 아이들 그림 그려서 제출하면 나중에 상도 준다 파베르 카스텔 협찬

1971 뉴욕

다비드와 마라: 1989년 프랑스 정부는 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 전시를 의뢰했다. 그는 마라, 다비드, 볼테르 등 혁명과 관련된 8명의 인물을 선정해 TV로봇으로 재탄생시켰고, ‘전자 요정(La Fee Electronique)’이라는 제목으로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중 ‘다비드와 마라’가 전시돼 있다./‘로베스피에르’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이런 말은 천재만 할 수 있다. 서양의 혁명은 궁극적으로 실패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촛불시위는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다. 여기서도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할 수 있음을 예언하다/'다비드’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1989년 어려운 주제다/

왼쪽부터 1) ‘장-폴 마라’ -‘암살’, 2) ‘로베스피에르’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3) ‘당통’ -‘웅변’ 4) '다비드’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5) '디드로’ -‘여씨춘추(유럽보다 2000년 전에 만든 중국 백과사전) '일자천금’, 6) ‘볼테르’ -‘이성과 자유’ 7) ‘구주’ -‘프랑스여성’, 8 ) '루소' '노자자연'

<진화/ 혁명/ 결의>(1989)는 1989년에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작. 작가는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상징화하는 8명의 인물 ‘전자요정(La Fee Electronique)’으로 명명하다. 8개의 TV로봇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판화 작업으로 재해석하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위해서 프랑스혁명을 기념하고 대표할 수 있는 8명의 계몽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였다.

10대 사진찍기와 고궁산책, 20대 프랑스 및 유럽 사상과 문학, 실존주의 시대 30대 시(보들레르와 김수영)와 민중(동학)사관, 40대 여행과 문화유산답사, 구조주의 시대 50대 현대미술, 60대 백남준 예술: 나는 만 50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남에게 잘 보이는 '그럴듯한(vraisemblable)' 삶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잘 보이는 '그러한(vrai)' 삶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물론 리스크도 많다. 후회는 없다. 그러다 보니 후반기 현대미술과 백남준을 만나다.

백남준 프랑스 혁명 200주년 시리즈(8명 혁명가, 의인화한 전자요정) 작품을 하면서 디드로 등장시키다. 작품위에 한자가 보인다. <여씨 춘추>는 중국에서 BC 239에 만든 백과사전이다. 그리고 <일자천금>에는 그 사연이 있다. 여기서 백남준은 백과사전에 있어서는 아시아가 2000년을 앞섰다는 메시지다

중국 진나라때 백과사전 '여씨춘추'를 편찬한 저자 <여불위>다. 그는 "이 사전에서 하나의 글자라도 고칠 것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호언장담. 여기서 유래한 말. 그만큼 저자는 이 사전 내용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인 1989년 프랑스 정부가 백남준에게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의뢰했다 그래서 나온 것인 프랑스 혁명가 시리즈다. 여기에 디드로도 포함된다. 백남준 여기서 프랑스의 백과사전파가 18세기에 나왔는데 중국 BC 239에 이미 만들었다는 문구를 디디로 작품 속에 포함시키다.

<작성중>196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2020년에 미국 대중음악 빌보드 순위에서 1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 대중문화에서 한국은 미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되었다 백남준 예언도 그와 유사하다. 2000년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에서 예언이 20년이 지난 지금 보면 적중한 셈이다. 백남준 60년 전에 유라시아 전성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거의 현실화되고 있다. 목표에서 베를린 유라시아 대륙기차 타고 가는 시대 멀지 않다.

1 백남준 삼원소 레이저아트 백남준 아트센터 소장품. 대단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알게 된 백남준 설치 기술자 라파엘레 셜리 작가도 이 작품을 설치할 때 참여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레이저 아티스트 노먼 밸러드(Norman Ballard)도 참가했다. 한국에 온 적이 있다. "레이저는 당신의 눈을 어루만지는 새로운 방법, 당신의 망막을 애무하는 멋진 방법이다" -백남준 1989년. 구겐하임 전시 때 동시변조(Modulation in Sync)와 함께 전시된 작품이다. 미술은 형과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삼각형 사각형 원형이 나오고 빨강 파랑 초록이 나온다. 백남준은 레이저아트를 포스트비디오라고 칭하면서 말년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2백남준은 이미지 정치가로 볼 수도 있다. 피드백, 노이즈 그리고 고등사기술, 랜덤 액세스, 교란술 그리고 해커 정신으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텔레비전>을 쌍방형 텔레비전을 만들다. 그러다가 나온 게 바로 비디오이고 인터넷이다. 백남준은 TV를 제일 먼저 예술화했듯, 인터넷을 제일 먼저 예술화하다. <아래 백남준 WWW, 인터넷을 오브제로 전자예술화하다 1994년 작>

1993년 백남준 베니스 출품작 칭기즈칸

백남준 칭기즈칸 존경 왜 동서의 소통과 물류의 길을 열었기에 다만 칭기즈칸의 무력을 사용했다는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백남준은 문화라는 평화의 방식으로 접근하다. 결국 인터넷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1993년 백남준 베니스 출품작 칭기즈칸

3백남준의 유토피아는 선사시대처럼 사유재산이 없는 공동체인가보다. 그래서 전자 부처가 되려고 했는가

비디오 아트의 목적은 TV 및 이미지의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백남준. The purpose of video art is to liberate people from the tyranny of TV and its images"

.4<하늘을 나는 물고기> 누워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Die Installation „Fish Flies on Sky“ von Nam June Paik im Museum Kunstpalast Düsseldorf © Ken Hakuta, Nam June Paik Estate, Foto: Christian Imhoff https://www.theartstory.org/artist/paik-nam-june/artworks/?fbclid=IwAR0LJ0OnAO2RnV1FbuyOnLRrs74GcpwyE1Vu29wKuqr8k1ZXwcCxDv9wQq4 

 

Nam June Paik Artworks & Famous Art

Important art by Nam June Paik with artwork analysis, influences, achievement, and overall contribution to the arts.

www.theartstory.org

5 https://www.tate.org.uk/tate-etc/issue-21-spring-2011/when-future-was-now?fbclid=IwAR3-3QzHKNBkhsTyJbbSSjzRA881GqSL-gUIivzf-veJJyDHz3_-R-Uri_Q
독일 백남준 전문가 미술사학박사, 헤르조겐라트(아래) 기고문 -테이트모던

 

When the future was now: Nam June Paik – Tate Etc | Tate

TATE ETC issue 21, Spring 2011: Wulf Herzogenrath on Nam June Paik

www.tate.org.uk

<1970년 백남준> Video artist Nam June Paik, 1970. Signed by Jack Mitchell.
7 http://seulsong.egloos.com/m/3843786?fbclid=IwAR34IdJo2y5j1EnM-0rXYKPAtbc1Q_viT4x7uP8cwQXdn5Mc6oH2eiIX4mw

 

백남준 독일(뒤셀도르프)전 2010.09.11-11.21

Ausstellung 11.09.2010 - 21.11.2010 Ausstellungsflügel Nam June PaikInitiiert und entwickelt von museum kunst palast, Düsseldorf, und Tate Liverpool. 백남준 회고전 2010년 9월11일부터11월 21일까지 그리고 영국 테이트 리버풀로 이

seulsong.egloos.com

8 https://www.youtube.com/watch?v=ESNRZ48vheo

9백남준 다수의 관련 사진과 작품을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search?rlz=1C2YKST_koKR855KR855&q=d%C3%BCsseldorf%20stiftung%20museum%20kunstpalast%20nam%20june&tbm=isch&source=univ&sa=X&ved=2ahUKEwirj7-G9M3kAhWQy4sBHWT9D_wQsAR6BAgJEAE&biw=1600&bih=767&fbclid=IwAR1S_83OA93O1GsE8I5IGOIzSij0F-T1MpqnVGEhO0qy9wYUZfBmgUQev88 

 

düsseldorf stiftung museum kunstpalast nam june - Google 검색

Kunstpalast, Düsseldorf, 독일... artsandculture.google.com

www.google.com

10 '바이 바이 키플링'에서 '제국TV' 안에서 얼굴을 내민 백남준. 1985-1986. 차도르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건 동서 문화의 불통으로 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이슬람문화권을 옹호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고, 이슬람문화권의 여성의 억압에 대한 항의일 수도 있다. 제국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전자 텔레토피아의 제국이겠죠.

11 왜 예술가는 샤먼이어야 하나? 샤먼만이 최고의 에너지와 상상력(산자가 죽은 자와도 만나는 하는 match maker)을 갖추고 있다. 신과 소통하는 자다. 더 나아가 현대예술가가 되려면 과학(기술)과 예술도 연결시켜야 한다. 결론으로 예술가는 주술과 기술과 예술을 삼위일체로 묶어내는 사람이다.

12 백남준은 전 세계를 연결하려고 했다 그것을 bridge art라고 한다. 그래서 백남준이 특히 '무봉탑'을 좋아했다. 탑도 경계가 없는 탑을 좋아했다.

13 '여씨춘추'(중국 '여'씨라는 사람이 BC 239년에 만든 백과사전) 서구에서는 디드로, 몽테스키외 등이 계몽파 백과사전을 만든다. 결론으로 동양은 서양보다 2000년 앞서다. 백남준 이걸 주제로 한 작품이 바로 여씨춘추 전자조각이다. '일자천금'은 여씨가 이 사전에서 한 자라도 틀린 내용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말한다. 자신이 만든 사전의 사실과 팩트에 자신감 보이다.

14 [백남준 랩소디(rhapsody)] 백남준의 전자아트는 일종의 광시곡(狂詩曲)이었다. TV로 하는 비디오아트는 말도 안 되는 미친(BIZARRE) 시각적(VISUAL) 작곡이었다. 그럼에도 시적 영감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넘쳐났다.

15 백남준 'TV 촛불' 문명의 기원(불의 발견)을 초로 연주하다

16 김수영 시인도 꽤 좋아한 프랑스 시인 '쥘 쉬페르비엘'. 쥘은 초를 '불의 뾰족함' 이라고 묘사하다. 백남준은 이 주제를 'TV 촛불'로 전자아트화하다. 초(불)는 문명의 기원이다.

17 1973년 백남준이 만든 대표적 유튜브가 <글로벌 그루브다>다. 여기에 보면 서양 콘텐츠 50%, 동양 콘텐츠 50% 담겨 있다. 여기 메시지는 서양이 동양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서양인들 동양을 좀 공부하라고 야단을 쳤으니 놀라운 일이다. 백남준 1973년 유튜브(1인미디어시대)를 예언하다. 백남준 왈, 왜 미국이 베트남에게 졌는가? 미국이 베트남을 너무 몰랐기에.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몽골, 프랑스를 이긴 나라다.

18 나는 김해 김씨다. 그래서 북방 스키타이(흉노의 후손)다. 신라를 통일(물론 한반도 반쪽 통일)한 문무왕은 바다 속 무덤인 문무왕비 첫 줄에 이렇게 새겨 놓았다. "나의 조상은 몽골 스키타이(흉노)다"

19 우리에게는 최신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백남준' 유전자가 있다.

20
백남준 전 세계 '동과 서'(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없애다(crossover between East and West). 이제 우리는 남과 북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 시대 사명이다
21 '사이버네틱스와 인터미디어 미학'이 담긴 자신의 <예술 골자>를 백남준은 아래와 같이 요약하다.

"1) 카타르시스(혹은 쌍방적 피드백), 2) 순간의 환희, 3) 모든 감각의 만족, 4) 전인격 총체적 개입, 5) 극도의 전자적 충동, 6) 두뇌의 전기자기 진동, 7) 직접 접촉 예술, 8 전자와 생리학의 시뮬레이션, 9)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 10) 정신의 사이버네틱스, 11) 인공지능신진대사, 12) 다매체 다방향 상응주의(Correspondence) 등등."

그는 확실하게 '전자적 축제주의자'이면서 '감각적 쾌락주의자'다. 백남준은 1948년에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니버가 발명한 사이버네틱스[사이버세상])라는 실험적 인식론을 수학적, 생리학적, 과학적 기술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사유를 유도하는 시대의 패러다임과 가상 디지털 세상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수정하는 지식 방편이 될 수 있음 내비치다

22 20세기는 우리가 '전쟁, 가난, 식민, 독재'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예술적 재능과 예능적 재주를 다 발휘하지 못했다. 21세기 인터넷 유튜브 시대 이제는 한국은 세계에서 최고의 문화국가, '가무(entertainment)국가'가 될 것이다. 봉준호, BTS 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백남준은 그런 가능성이 전무한 20세기에 이미 그런 천재성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이제 21세기, 우리는 백남준을 배경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면 된다. 1960년대 우리가 어떻게 21세기 지금과 같이 대중예술에서 미국과 경쟁국이 될 수 있다고 믿었겠나!

23 16세기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백남준 정보화 시대의 맥락에 맞게 전자아트로 재해석하다. 하나의 고정된 천장화가 아래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수천 가지 Variation 변주곡으로 연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다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현재 전시중이다.

24 
One of the first truly global artists, Paik (1932–2006) foresaw the importance of mass media and new technologies, coining the phrase ‘electronic superhighway’ in 1974 to predict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an internet age. The exhibition will celebrate his multidisciplinary and collaborative practice that encompassed art, music, performance and technology, all in dialogue with philosophies and traditions from both Eastern and Western cultures. // Paik’s innovative, irreverent and entertaining works were informed by his musical background and his vision of an interconnected future

25 “Nam June Paik is famous for being the historic father of video art, but his groundbreaking and contemporary influence is even more based on his crossover between all media,” said Rudolf Frieling, curator of media arts at SFMOMA. “Paik’s radical visual and musical aesthetic has a natural home here on the West Coast as a place for global connectivity.”

26
학문이란 폭넓은 관심에서 깊이도 생긴다. 서양에서는 1960년대에야 비로소 동학과 비슷한 수준의 인권사상과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러셀은 북경대에 와 <서양철학> 강좌를 하면서 아시아는 정신문화가 풍부하기에 서양의 과학만 잘 소화한다면 동양이 서양에 앞설 수밖에 없다고 예언하다. 전에는 서양인들 철학이라는 말을 썼지만, 러셀은 처음으로 철학이라고 하지 않고 <서양철학>이라는 말을 썼다, 이런 표현은 바로 서양인으로서 동양철학을 인정한 것이다.

27 전화위복은 모든 종교의 미덕이다. 패자부활은 모든 설화의 신묘한 역설이다. 약자의 궁극적 승리가 모든 민담의 주제다.

28 백남준 40강(실제 20강 1부-2부) 유튜브 지워져 다시 정리. 작년 9월부터 올 2월까지 한 것. 장소: 백해영 갤러리. 어제 오늘 다시 올리다. 더 수정 해야. 4강 <백남준과 인터뷰>가 빠지다. 다시 올려야. 백남준 전문가 7명(미국인[라파엘레 셜리 백남준 조수를 7년 한 작가] 1명, 프랑스인[장 폴 파르지에] 1명, 시게코 1명, 한국인[김홍희, 이영철 등] 5명)과 한 인터뷰 내용 정리한 것. https://www.youtube.com/user/seulsong/videos

 

김형순 Hyung-soon KIM

'오마이뉴스' 미술부 시민기자. 백남준 집중 취재

www.youtube.com

29 "자연에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것" -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프랑스 인류학자의 생태론
30 문화는 물, 가스, 전기와 같이 동급의 공공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자크 랑. Culture should be provided as a public service, such as water, gas and electricity. -Jack Lang

31 요셉 보이스 탄생 100주년, 그는 정치생태학자, 치유(무당) 주술사, 활기찬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령, 인간의 야수성과 어리석음을 잡아내는 포수,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묻는 사람 등등

32 최치원이 말하는 '현묘지도(玄妙之道)' 현(기:삼라만상의 기운생동)+묘(이:우주만물의 원리)의 조화
33 
<프랑스 '리베라시옹(Liberation)' 신문과 백남준 인터뷰> -1983.12.31<질문> 이번 전시(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의도는?<대답>"TV는 미술시장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예술만큼 훌륭한 미디어가 없어요. 그러나 TV는 예술을 이용할 줄 모릅니다. 잘 알다시피 오늘날 고급 예술과 록 음악 같은 대중 예술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여러 연애물을 소개하는 버라이어티쇼 방송조차 이 둘은 적절하게 혼합하지 못하지요. 제가 그걸 하렵니다" - 백남준, 프랑스 리베라시옹 신문과 인터뷰

34자본주의의 핵심은 (무자비한) 소유, 불교의 핵심은 자비(무소유), 그 반대는 무자비(지옥), 무자비 경영, 한국 대학생들 실력이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절대 아니다.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경영 경쟁 때문에. 그러면서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니 대학생들 자살을 하지. OECD 한국은 자살률 세계에서 최고... <신자유주의>는 내가(무자비한 울트라 부자들) 돈을 벌기 위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도 ... 정부는 간섭하지 마, 예수 왈 부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천국에 못 간다. 백남준 왈, -1000%로 만족하자!!35 36 37 38 39 40

41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미국 대통령(클린턴) 앞에서 바지를 벗은 백남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96년 삼성 호암상을 받고 그러나 그런 상에 개의치 않고 백남준이 오히려 삼성과 좀 멀어졌고 삼성은 크게 실망했다. 백남준 자신의 부친은 이건희 회장보다 과장해서 100배는 더 부자였고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싸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2000년구겐하임 회고전에서 구겐하임이 너무 많은 장소사용비를 요구해 자금 부족으로 허덕일 때 삼성에서 TV를 제공해주는 일로 다시 관계가 회복된 것 같다. 백남준은 그 보답으로 구겐하임 순회전을 서울(삼성로댕미술관)에서 열어줬다42[예술가란 돈에 지배를 받지 않은 드문 종자(괴짜)들이다] 돈을 나눠주거나 뿌리는 포퍼먼스 중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

43 Nam June Paik Big Shoulder 1998, mixed media, antique cabinets, televisions, laser disc player and laser disc, (233.7 x 264.2 x 45.7 cm)Signed "Paik" lower right.44 45 46 47 48 49 50

 

51 Paik Nam-june's video installation "Stag" (1996) was sold for a record price for the artist at Seoul Auction's 22nd Hong Kong sale, Sunday. / Yonhap 52 백남준 파스텔 톤에 컬러풀하고 아주 경쾌한 작품(Paik,_Pythagoras)

53 백남준 파스텔 톤에 컬러풀하고 아주 경쾌한 작품(Paik,_Pythagoras) 54 이 사이트 들어가면 백남준 작품을 충분히 볼 수 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29aqcgc1xnh17fykn459grmc-wpengine.netdna-ssl.com/emg-review/wp-content/uploads/sites/15/2017/01/Conte_et_al_Fig.1.jpg&imgrefurl=https://resources.culturalheritage.org/emg-review/volume-two-2011-2012/conte/&tbnid=NU_R_lOMZeLT3M&vet=1&docid=7W11NPC1WhIz_M&w=1305&h=2100&hl=en&source=sh/x/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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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마셜 매클루언 같은 문명비평가부터 데이비드 보위 같은 가수까지 전 세계 수많은 인사가 그의 친구였다. 백남준이 연하장을 보내는 이는 1000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스타였다.” 그리고 “비디오 아티스트라고만 정의하기엔 너무도 ‘큰’ 예술가이다” -백남준문화재단 대표 김홍희 선생! 오늘이 생신인가요 축하드립니다. [추가] 오른쪽(이지 라이더(Easy Rider)’, 1995년작 동서의 교류의 중요성과 21세기 유목적 노마드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56 미래를 내다본 예술가는 획기적인 방식의 전혀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다 the visionary experimental artist who bridged art, music, performance, and technology in groundbreaking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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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LF HERZOGENRATH> Video still from Nam June Paik’s contribution to Karl Stockhausen’s Originale performances, filmed by Wolfgang Ramsbott 1961. Courtesy Kunsthalle Bremen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In May 1999 the American magazine ARTnews included Nam June Paik in its list of the century’s 25 most influential artists, alongside Picasso, Duchamp and Rauschenberg. / Time and motion, sound and action, structure and shock all featured in the innovative output of these artists, who included such diverse figures as the architect Stefan Wewerka, the sculptor Christo, the Argentinean composer Mauricio Kagel, the writer Hans G. Helms, the ‘labyr artist’ Arthus C. Caspari, the musician Gottfried M. Koenig, the gallerist Haro Lauhaus, the restorer Wolfgang Hahn and the publisher Ernst Brücher. Their vision of a new Gesamtkunstwerk also embraced film and electronic developments in the field of acoustics – so it seemed only logical for Paik to make the transition to visual electronic art, where he set about introducing into the realms of visual art his experience of a new electronic audio world where sounds could be endlessly manipulated.

58 "비디오 아트의 목적은 TV 및 이미지의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백남준. The purpose of video art is to liberate people from the tyranny of TV and its images" '일방형 소통시대(one way communication 라디오, TV 시대)'에는 가짜뉴스가 없다. 일방형이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쌍방향 소통시대(two way communication 인터넷, 유튜브 시대)'에는 가짜뉴스가 대 유행어다. 왜냐하면 정보와 지식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왜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가짜 뉴스라는 말이 별로 없었을까 일방적 소통방식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 이후에는 가짜 뉴스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되었다 왜 쌍방적 소통양식이라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의 독점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59 Inter-Media, 서로 상이한 예술 매체와 오브제의 결합
Inter-Face, 서로 상이한 천지인 인간, 자연, 기술(기계) , 동물, 우주의 결합
Inter-Net 복잡다단한 전 세계 정보와 지식의 결합
Inter-Philo 서양(현대)철학에 동양 노장사상, 선불교, 주역, 샤머니즘 결합
이런 운동은 60년대 태동, 결국 90년대 인터넷 등장, 21세 정보사회 열다 여기서 3인방 등장 백남준, 보이스, 존 케이지

60 백남준에게 피드백(feedback)이란? 그것은 사물을 원래 있었던 제 자리로 돌려놓는다. 시대로 치면 선사시대로 돌아간다는 뜻인가? 백남준의 유명한 말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는 이걸 이렇게 풀어본다. 가장 먼 과거(선사시대)를 알아야 가장 먼 미래(예컨대 앞으로 1천 후인 30세기)를 볼(예언할) 수 있다.

61 앤디 워홀 <TV 199달러> 캔버스에 유화 62*49인치 1960년. 당시 가격인가요. 워홀 TV가 처음 나왔을 때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하루 종일의 삶은 하루 종일의 텔레비전과 같다" -앤디 워홀. 60년대 일기 /TV는 바보상자 그러나 INTERNET은 바보상자라는 말이 없다. 왜 쌍방형이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혁명이다. 다만 시뮬라크르라시대라, 백남준도 가짜뉴스 경계했다. 그가 본 미디어의 5가지 특징: 1 sex(3S정책 우민화) 2 violence(폭력 미화 혹은 포장화 정책) 3 greed(탐욕) 4 vanity(허영) 5 deception(속임수)

62 비디오 아트의 목적은 TV 및 이미지의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백남준. The purpose of video art is to liberate people from the tyranny of TV and its images" 63 요셉 보이스 탄생 100주년, 그는 정치생태학자, 치유(무당) 주술사, 활기찬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령, 인간의 야수성과 어리석음을 잡아내는 포수,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묻는 사람 등등 64 <프랑스 '리베라시옹(Liberation)' 신문과 백남준 인터뷰> -1983.12.31

<질문> 이번 전시(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의도는?<대답>"TV는 미술시장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예술만큼 훌륭한 미디어가 없어요. 그러나 TV는 예술을 이용할 줄 모릅니다. 잘 알다시피 오늘날 고급 예술과 록 음악 같은 대중 예술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여러 연애물을 소개하는 버라이어티쇼 방송조차 이 둘은 적절하게 혼합하지 못하지요. 제가 그걸 하렵니다" - 백남준, 프랑스 리베라시옹 신문과 인터뷰 65 1. 존 케이지에게서 뭘 배웠나? 백: 그는 모든 것이 음악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런 자유에의 용기(Courage to be free)를 배웠다

2. 당신 뒤샹의 영향이 있나요? 백: 그렇다 모든 정보는 순환되어야 한다. 핑퐁처럼 왔다갔다 해야 한다.

3. 당신의 나라는? 백: 우리나라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다. 칭기즈칸은 여러 나라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동과 서의 정보와 물류의 교류자이기도 했다. 마르코 폴로처럼 말이다.

4. 당신이 사전에 기록될 때 어떤 내용 좋겠나 백: "미친 한국인"이면 좋겠다

5. 당신 TV 봅니까 집에 TV가 있습니까? 백: 나는 집에 TV가 없어 안 본다.

66 1988년 위성아트 할 때 BTS가 없어 외국작가, 엔터테이터와 작업을 하다. 아래사진 Sakamoto(세계적 작곡가), Bowie, LaL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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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을 17년인가 따라다니다 결혼한 시게코 사실 시게코가 암이 걸리지 않았으면 백남준은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가 의료보험이 없어 그녀와 결혼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에 대한 마음은 지극했다.

시게코 이야기라면…. 플럭서스 커플이자 비디오아트 커플이기도 한 시게코와 나는 음과 양, 달과 해, 그리고 요철凹凸이었지. 우리가 젊을 때 시게코는 내게 최고의 연인이었어. 내가 늙으니 시게코는 최고의 어머니 그리고 부처가 되었지. 그러다 내가 아프니까 시게코가 바빠. 손이 천 개 달린 부처님처럼 바빠. 천수관음처럼 말이야.

68 왜 그(백남준)는 ‘극단성’에 관심을 보였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나의 몽골 유전자 때문"이라고 선사시대 (우리 조상이기도 한) 우랄・알타이 쪽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 한반도, 네팔, 라플란드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녔거든. 나는 그런 무모함에 와 닿기 위해서 예술작업을 하는 거야

69 어느 날 제(임영균)가 선생님께 “첨단 과학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물었더니 선생님은 “예술가도 과학자만큼 공부해야 한다. 항상 뉴욕타임스의 과학 세션을 공부한다” 라고 하셨죠. 늘 시대를 앞서가려던 백 선생님이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어느 수준까지 작품을 발전시켰을지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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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도시를 산책하는 것을 가장 먼저 문화적 행위로 규정한 철학자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스승인 보들레르가 먼저 발명한 것이다. 벤야민을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이를 가리켜 산책자(만보객 flaneur)라고 하는데 이는 철학적 사유와 연관되어 진다. 산책을 자시고 생각한 것을 요약 정리하는데 최고의 특효약이다. 그냥 걷는데 아니고 산책에 사색을 더하는 행위다. 도시의 공간에는 온갖 자극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한 시각적 자극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군중의 일원이면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산책을 말한다.

71 "첼로 탄생 6 백 년 만에 처음으로 내 몸이 첼로 역할을 했지" -백남준의 신음악 개념. 신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몸을 악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72  http://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5/5651?fbclid=IwAR1CUIdZcyFVdXx1Pp-AMXl_JEy8dEeTIeS4_xSzSriKIw9QcdPdlsCyfko 

 

안녕히 오세요, 백남준!

기술과 미술, 동양과 서양, 대중 예술과 아방가르드, 사람과 기계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물며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 20세기 초에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

happy.designhouse.co.kr

73 백남준이 극단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몽골 유전자 때문이다

74 <1978년 뒤셀도르프 미대, 보이스(보이지 않지만 백남준과 함께) 마치우나스 추모> 우리시대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괴짜다. 보이스는 독일의 기인이자, 괴짜였다. 그래야 재미 없는 세상에 숨 막히는 감옥살이에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활력과 생기 그리고 숨통을 열어준다. 한국에는 이런 기인과 괴짜가 사라졌다. 삭막한 세상을 사는 것이다 내가 직접 본 한국의 괴짜 중 한 사람 들라고 하면 역시 시인 천상병 그는 서울대 상대 다니다가 시인으로 데뷔했는데 그때부터 서울대를 버리다. 그에게 시인보다 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천상병의 만남에서 그는 아내와 밤일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옆에 주무시는 장모 때문에 오래간만에 생각이 난 이 일을 망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물고기(Real Fish)/생방송 물고기(Live Fish) 1982-1999

실제물고기(Real Fish)/생방송 물고기(Live Fish) 1982-1999 가변크기 흑백 필코 TV모니터 그리고 케이스 1개 어항 1개 폐쇄회로 카메라 1대 살아있는 물고기 <해설> 실제물고기(Real Fish)/생방송 물고기(Live Fish)는 가상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가 갈수록 포개지게 될 미디어 환경을 상징하는 것이다. 비디오라는 매체의 환경이 <시간의 함수>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백남준은 이 같은 작품을 통해 실시간이나 현재성의 역설을 탐색하였다. 백남준은 전자매체로는 <시간의 매개변수>를 조작할 수 있으나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에 또 다른 축을 더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사건-매개-관람이라는 세 축간의 어긋나는 시간성, 존재와 부재, 실제와 환영, 리얼과 라이브를 겹치면서 상충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 백남준 아트센터 소장품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