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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튜브

[백남준&무어먼] <11강> 무어먼 공연 중 과노출로 검거

<주제: 정음 정양(음양조화) 여성과 남성 위상(?) 행복함(음양조화) 이루어지는 성해방?> 철학은 쉬운 것, 우주와 남녀의 음양 조화(원리)를 아는 게 철학이다. <유튜브 추가 예정>

철학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을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 음양 조화 백남준은 서양의 플러스와 동양의 마이너스가 잘 합쳐지면, 제로점 거기서 완벽한 세상 음양조화 그의 대표작 'TV정원' 자연(음) 반, 문명(양) 반 조화가 인류 문명이 나아갈 길로 봤다. 백남준 생태주의 철학 반영(?) 
1부) 인트로, 2부) 색채란 무엇인가? 백남준과 칸딘스키, 3부) 남녀를 음양(+/-) 조화론으로 해석 [[작성 중]]

[백남준&성] 칸딘스키, 추상 색채론, 무어먼과 액션 음악

TV 정원

<예언자, 미리 보는 견자(Voyant) 백남준> 50년 전에 이미 내다보다. TV 부처: 동양 지혜와 철학&서양의 과학과 하이테크 만나야. 이우환, 돌과 철의 관계망 생성 즉 음양 조화로운 세상 중요하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와 만남도 중요하다. 유라시아의 시대.

[[리뷰]] <인류학 안에서 모든 지식과 정보가 통섭이 되는 시대> 작가는 우주 만물을 통찰하고, 세계 인류와 대화하는 자다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유라시아 시대, 학문에서는 인류학 안에서 모든 지식-정보가 통섭

<인트로 1번> [백남준 상(Nam June Paik Award), 2년마다 상금 25,000 유로,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예술재단 North Rhine-Westphalia)이나 상을 받는 작가가 행복] 백남준의 5대 정신 1) 비주얼(visual)하게 생각 2) 사운드를 통해서 영감을 받는다 3) 하이테크를 최대로 활용 4)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혹은 비빔밥 5) 유머감각으로 엉킨 수수께끼를 푸는 센스로 경계를 허무는 모험 정신 등등

Nam June Paik Award. International Media Award of the Arts Foundation North Rhine-Westphalia // Thinking visually, being inspired by sound, experimenting with technology, either analogue or digital, breaking boundaries all with an enigmatic sense of humour – this is what we expect of the projects under consideration for the international media art prize the Nam June Paik Award and the corresponding Newcomer Award, both provided by Kunststiftung NRW.

<인트로 2번> 백남준은 재즈 찬양했다.  재즈는 흑인과 백인을 이어주는 첫 번째 끈이다. 재즈는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을 화해시키고 연결시키는 미디어 즉 네트워킹. 사실 미국 대중음악에서 백인이 흑인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백인들 엘리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것이다. 엘비스는 미국의 흑인 가수과 어깨를 나란히 했기에.
김기덕 감독은 1960년 12월 20일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가난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1950-1953) 전쟁 중 부상을 당했고 성격이 난폭했다고. 어머니는 거의 장님.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일 했다. 5년 동안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복음주의 신학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센터에서 일하다 -르몽드 김기덕 감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 다다. 백남준 작품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아 프랑스로 무조건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나다. 두 천재는 거의 동급이 되었다. 한 사람은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또 한 사람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물론 그 급이 다르지만 상으로만 보면 비슷하다.
<인트로 3번> Il se lance en parallèle dans la peinture et, après la lecture d’un article sur le pionnier de l’art vidéo, le Sud-Coréen Nam June Paik, part en 1990 pour Paris où il étudie les beaux-arts. 한국의 백남준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990년 파리로 떠나 미술 공부.

고인이 된 김기덕 감독

어려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김기덕 감독, 그러나 중간에 백남준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군요> 아래 르몽드 기사. 김기덕 감독은 1960년 12월 20일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가난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1950-1953) 부상을 입었고 성격은 난폭했다. 어머니는 거의 장님.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일 했다. 5년 동안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복음주의 신학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센터에서 참석[...]

<인트로 4번> [피카소와 백남준 차이] 피카소 페인팅은 정말 대단한 보물 같은 인류의 재산이다 그래서 소유적인 면이 강하다. 컬랙터 돈을 엄청나게 벌 수도 있다. 백남준은 개념미술가 비디오 철학자다. 그의 작품은 소유할 수 없다. 존재하는 작품이다. 세계문화유산 혹은 문화재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영원하게 빛난다. 예컨대 인터넷 같은 예언 말이다.

<인트로 5번> <굿의 예술화 추구한 백남준 아트> 연구는 한국인이 해야 -나의 주장
<긋으로 보는 백남준의 전자 아트 읽기> - 박정진(인류학자). 미국과 유럽 미술사가들이 백남준 연구에 한계점은 그들이 동양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지 않듯 백남준의 핵심 사상이 굿 미디어론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의 인류학으로 접근하기 할 수 있 수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백남준 연구는 한국인이 해야 한다. 백남준의 전자 굿에 대한 이해 없이 백남준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박정진의 백남준 연구는 돋보인다. <참고> 잭 구디(영국 인류학자)

"서구 중심주의 벗어나 전 세계 문명사를 치우침 없이 조명하다"라는 평가를 받다.

르네상스는 여러 번 있었다. '잭 구디' 인류학자

<인트로 5번> 40년 간 백남준 줄기차게 비판해온 전 MIT 교수였던 '홍가이' 선생과 백남준의 전자기술자이면서 백남준 팩토리를 주관했던 '마크 파스팔'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

홍가이와 마크 파스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인트로 6번> 한국이나 중국에도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매년 태음력으로 칠월 칠석에 두 개의 별 '견우와 직녀' 만났다는 이야기다. 두 별이 한여름밤에 만나면 훼방꾼들이 보지 못하게 <구름>이 그들을 가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떠나야만 하는 연인을 축복하기 위해 단물 같은 <비>가 내린다. 그래서 동양에서 칠월 칠석의 밤이 젊은 남녀에 의해 경축되는 시간이 되었다 백남준 유명한 작품 <1984년 (1월 1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아이디어 여기서 온 것이다. 백남준의 말

<백남준과 한국인과 천문학> <천문학과 음양오행론 태극 사상> 고조선 고구려 등 오랫동안 북두칠성을 믿었다. 한국인의 신앙관에서 이것을 빼놓고 상상할 수 없다 조선이라는 한자의 자에서 보면 역시 북두칠성 한자가 들어가 있다. 흔히 우리의 어른들은 칠성님에게 빈다는 말을 한다. 대인은 천문을 통해 한 해를 통째로 보고 살았고, 현대인은 분주하게 하루하루 앞만 보고 산다. 한국은 천문학의 나라 모든 이야기는 별과 해와 달에서 기원한다 우리 민족의 원초적 하느님이다.

우리 문화는 모두가 이것과 즉 천문학과 관련이 되어 있다. 북두칠성에도 음양과 오행이 들어가 있다. 동의보감도 천문학을 의학으로 푼 책이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도 칠성각(칠성신)이 있다. 그만큼 이 신앙은 한국인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 우리에게 칠성신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는 신이기에 우리는 죽을 때 관 속에 칠성판을 둔다 http://blog.daum.net/skachstj/16457930

인류학에서는 원시종교와 고등 종교를 구분 않는다. High Art와 Low Art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 무교는 모든 종교의 원형. 우리나라 역사에서 무교가 망한 적은 없다. 왜 여성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불교 유교 선교(도교)는 몇 번씩 망했다. 백남준은 무교(샤머니즘)를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형으로 보다.

[본문] 백남준의 색채론: 
하나 <1> 색동의 현대화,  색채를 시간으로 보다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전시 윤미연 작가

[백남준 색동] 생동하는 생명이 움직이는 샤먼 색 요즘 백남준의 색동이 대박을 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버전의 색동을 개발하고 있다. 윤미연 작가가 역시 그렇다 [암 투병 중 색동색 환영을 보다] 가장 한국적 색인 색동, 그 현묘한 색이 연출하는 현란한 조형세계를 오랫동안 뜸 들인 후 드디어 출동시키다. 오브제들 춤을 추니 더욱 기운생동.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에도 스와치(Swatch) 재단의 스폰서를 받고 특별 초대전을 열 윤미연 작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녀 속에 잠재한 무한대 상상계. 그 속에 숨겨진 전혀 새로운 색채 언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유감없이 표출. 2019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에서 취재

둘 <2>, 백남준은 색채를 시간뿐만 아니라 성으로 보기도 하다. 이건 동양의 전통이다.
[예] 사람을 볼 때 선을 본다. 그 사람의 얼굴색을 본다. 거기서 에로스를 감지할 수 있다.

다음 백남준은 색깔을 색으로 보다 비디오에서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촬영한 영상이다 여기서 색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다 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컬러는 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함수(기능)이다 비디오아트에도 해당된다.

원문을 보면 (De la couleur dans la video vient de ce que la couleur est une fonction primaire du sexe 컬러는 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함수(기능)이다 비디오 아트에도 해당된다) 또 백남준의 맥루한, 맑스, 존 케이지, 마치우나스, 앤디 워홀, 슈톡하우젠, 스탕달, 발레리, 론 자아(에고)론, 돈에 대한 철학 등이 언급 [결론] 백남준은 소유적 미술을 비소유적 미술로 바뀌려고 했다. 무소유적인 음악적 미술로 바뀌려고 했다. 실제로 불가능할 수 있지만 앞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우선 백남준에게 색깔은 시간(역할)을 한다고 봤다. 모든 사물이 봄에는 그린과 푸른색이 되고, 여름에는 빨간색이 되고, 가을에는 그레이나 누런색이 되고 겨울은 흑백이 된다. 이렇듯 백남준은 색채와 시간(계절)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색깔은 시간을 의미한다(color=time) 그리고 동양사상을 설명하면서 색을 성으로 보다. 사람을 볼 때 색채가 중요하다. 안색을 보면 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남준 색채론 2 : 칸딘스키+백남준, 음악적 추상회화 창안
[칸딘스키] 안 보이는 시간-음악을 보이는 '색채와 미술(점·선·면)'로 표현

결론으로 음악적인 회화를 공감각 차원에서 새롭게 시도하다. 칸딘스키는 괴테의 색채론 창조적으로 활용해 전자 아트처럼 서양미술사에게 매우 파격적 추상화를 창시했다. 칸딘스키는 선과 색으로 진동과 울림 효과를 내면서 색채의 상징성과 정신성도 중시. 흔히 '회화적 작곡'이라고도 한다.

색채는 주관적인 ‘생리 색’으로부터 중간단계의 ‘물리 색’, 그리고 객관화된 ‘화학 색’의 3단계로 존재한다. 화학 색은 노랑·파랑·빨강·주황·녹색·보라의 6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이 6가지 색은 인간 내면과 각각의 방식으로 관련된다. 이를 괴테는 1809년 발표한 ‘정신과 영혼의 상징화를 위한 색상환’에서 지극히 심리적인 언어로 구분해 표현한다. 

괴테의 색채론

칸딘스키는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괴테의 *색채론 영감을 받다  발명하다. 괴테는 색채에 상징성 부여하다/칸딘스키는 초록색(COLOR)=바이올린(SOUND) 이런 방식으로 색과 음을 연관 연상 관계를 맺다. 이것을 상징적 추상화로 재해석해 그리다. 괴테 색채론에서 근거한 것으로 빛과 색채, 빛과 소리를 연결해 보려고 하다.

괴테는 색의 특성을 구별하면서 빨강은 정열과 흥분, 파랑은 수축과 차분함 등 색들에 상징적이고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다. 색이 감각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지각에 바탕을 둔 괴테의 색채론은 당시의 자연철학의 특징인 ‘우주에 대한 이중적 개념’과 일치한 면을 보였다.

이처럼 괴테는 ‘정신과 육체, 영혼과 육체, 신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내포한 자연의 기계론적 개념’을 거부하고, “색채는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이고, 인간의 감각과 연관되었다”고 인정했던 반면, 뉴턴은 “색채는 관찰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대상으로 단색(單色) 광선들의 결합 유무와 그 정도에 따라 생성된다”고 여겼다. 

[에피소드] 서구에서 열린 세계 아동 그림대회에서 비발디 4계절을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는 것. 한국 어린이들 당황했고, 칸딘스키를 이해했다면 (공감각 미술을 알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칸딘스키는 음악을 미술로 그리는 거의 첫 화가였고 그래서 추상화가 잉태되었죠. 그래서 음악과 미술이 넘나드는(CROSS OVER) 공감각[시각과 청각 등을 같이 느끼다]이 중요. 그렇게 공감각 미술이 등장하죠. 칸디스키와 파울 클레가 이런 시도를 한 셈.  
www.youtube.com/watch?v=2xDnxkzQtdI

<칸딘스키&백남준> 칸딘스키 보이지 않는 음악을 가시적인 추상화 컬러로 재구성해 표현. 그래서 음악적 (추상) 회화를 창시. 백남준 전자 빛(전자 붓)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보이지 않는 사운드로  비디오 아트 창시

백남준의 계보학 1) 라우센버그 White Painting, 존 케이지 4분 33초 무음과 잡음을 현대음악으로 확장, 백남준 노이즈 전자 페인팅, 2) 보들레르 공감각 상징 시학(괴테의 영감을 받은) 점·선·면 칸딘스키 음악적 추상화-백남준 전자 추상 아트

[결론] 백남준은 남성적 미술을 여성적 미술로 바뀌다 그래서 혁명이다. 즉 이미지(눈 남자들 시각에 엄청 예민하다)를 소리(귀 여자들 청각에 엄청 예민하다)로 바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이다. 폴 베를렌은 "무엇보다 음악(De la musique)" 이 말이 좀 이해가 된다. 음악은 여성이다. 

칸딘스키 1933년 작품 '파울 클레'에 영향을 주다

진정한 전시란 뭔가?: 전시에 미술보다 음악이다 코로나 시대에 좋은 전시가 오히려 필요하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압축해서 인류학적인 풍경. 이런 관찰을 계속하다 보면 뭔가 보일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인류문명의 단초가 될 수 있다.예술은 필수불가결(Bon travail. L'art c'est necessaaire)"

백남준의 첫 전시 모습은 <소대가리-음악의 전시>까지. 여기서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칸딘스키, 음계를 색채와 선점면으로 표현한 추상화가 백남준 아트와 통한다

뉴턴에서 시작한 괴테 *색채론을 발전하고 그걸 응용한 칸딘스키(음악적 요소를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그리고 백남준 이것을 (전자 추상)으로 바꾸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감각 미술 계열이라는 점. 괴테 왈 “시인으로서 내가 이룩한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자만하고 있지 않아 […] 그러나 금세기 중에 난해한 학문인 ‘색채론’ 나는 스스로 적잖이 자랑스러워.” 『괴테고백』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적 추상을 통해 보이게 하는 그림의 전통을 칸딘스키가 새롭게 시도하다. 칸딘스키 바우하우스 교수를 하면서 이런 시도를 더욱 확장하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백남준 전자 추상에도 영향을 주다.

소리나는 오브제 바우하우스 계보가 보인다 양혜규

양혜규 작품을 보면 칸딘스키 추상화를 100년이 지난 지금, 최고 정점으로 끌어올린 인상을 줍니다. 그의 음악적 회화를 백 배 천 배 그 이상 업그레이드시켜 21세기형 설치미술 풍경화로 탈바꿈

이런 작품들은 악보(음계)를 그린 것 같다. 회화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미로를 헤매는 불쌍하고 처참한 인생 여정을 조금 압축해서 상징적으로 그린 것인가. 파울 클레는 7살부터 바이올린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다. 어딘지 작품 속에서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바우하우스 뒤셀도르프 교수 초빙 그러나 나치 시절 퇴폐 미술가로 분류가 되어 102점 작품이 몰수. "나는 이 세상의 언어로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때문이다. 일반인보다 창조의 핵심이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파울 클레

파울 글레 음계를 색채로 표현하다 그러다가 추상화가 등장하다

보이지 않는 걸 노래하는 시로 쓰려면 (빛깔-소리-향기로 묘사하는) '상징시'가 필요하듯,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그림으로 그리려면 (점-선-면으로 그리는)'추상화'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이는 미술로 변형시키다. 둘의 공통점은 공감각. 전자 추상 아트로 시간 예술로 탈바꿈시킨 것이 바로 백남준이다.
[백남준 혁명] IMAGE(이미지=SIGHT) -> SOUND(사운드) 
백남준 첫 전시가 음악의 전시(EXPOSITIO OF MUSIC)다.  이미지를 추방하고 사운드를 영접하는 전시 "나의 TV는 물리학적 음악 -백남준"  게다가  TV=악기로 보다.
백남준은 '이미지(Image)'를 '사운드(Sound)'로 코드 변경하다] 우리는 이미지를 중시하는가 사운드를 중시하는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서양은 언어가 존재의 집이 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존재 속에 언어가 있다. 서양은 세계 속에 존재하고 우리는 존재 속에 세계가 있다고 본다. 자연은 진화하고 언어는 문화 한다. 신바람은 오르고 내리고 혹은 신바람이 난다(수평). 신바람은 우주가 하나로 공명하는 것을 말하다. 우리는 신바람과 풍류도 그리고 기운생동을 중시한다.

2018년 11월 6일 국회도서관 백남준 TV는 물리적 음악이다. 김형순, 김순주, 김찬동, 이지호

철학은 쉬운 것, 우주와 남녀의 음양 원리를 아는 게 철학이다. 철학을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 음양 조화가 중요한 게 여기서 나온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잘 합쳐지면, 제로점(완벽한 세상)이 나온다.

백남준은 남성적 미술을 여성적 미술로 바뀌려 했다 그래서 혁명이다. 즉 이미지(눈, 남자들 시각에 엄청 예민하다)를 사운드(귀, 여자들 청각에 엄청 예민하다)로 바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이다. 폴 베를렌은 "무엇보다 음악(De la musique avant toute chose)" 이 말이 좀 이해가 된다. 음악은 여성이다. 무엇보다 예술은 여성, 그런 면에서 상징주의 시인들 Baudelaire, Mallarme, Rimbaud, Verlaine 등과 상통

<음양의 조화는 남녀의 사랑 원리가 같다> 동서고금[동양(東)과 서양(西), 선사시대(古)와 21세기-30세기(今]을 통시적으로 봐야(수평 수직으로 봐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밭 전(田 경작 Culture) 문화의 원형에는 수평과 수직이 있다. 모든 철자는 수평과 수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은 수평과 수직을 잘 잡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은 원래 추상이다. 인간만이 추상을 통해 진화된 사고를 할 수 있다.

인간은 수평과 수직 모양을 한 밭을 잘 갈아야 곡식을 얻듯 인간은 여자가 애를 안 낳으면 생존할 수 없다. 멸종한다. 그래서 여성이 인류의 MATRIX(근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원시 모계사회로 가야. 노자의 위대함은 이런 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나는 남성 위주의 공자보다 여성 위주의 노자를 한 수 위로 본다.

남성들은 대부분 먹통인데 여성은 귀가 발달했다. 왜 남성이 "사랑한다" "예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육아를 할 때 아이의 우는 소리를 바로 알아듣고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빨리 해결해줘야 하기에. 남자 사냥 기질 본능이다.  그림을 보다가 음악이 들리면 현대미술을 잘 감상하는 것이다. 칸딘스키부터 백남준까지 그렇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백남준 미술의 코드를 바꾼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면 불안하지 않다. 왜 그런가. 한문의 어원을 보면 알 수 있다> 불안(不安)은 미안(未安)해 하지 않을 때 온다. 그래서 불안하다. 반성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안(安)을 직역하면 집에 여자가 있다는 의미, 그래서 집(나라, 지구촌)에 여성성(생명 보살핌과 평화정신)이 없으면 불안하다. 불안(不安)과 미안(未安)과 편안(便安)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미안해야 불안이 없어지고 편안해진다"

노자는 2500년 전에 생명의 본질인 연약함, 유연함 등의 여성성의 가치를 최고로 찬양하다. 여성에게 행복한 나라 만들기, 여성의 성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 스코틀랜드는 중고와 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모든 여성들에게 생리대 무료로 제공한다. 혁명적 법이 통과. '생리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다.

[평] 백남준의 1962년 퍼포먼스(앨리슨 놀즈를 위한 세레나데(Serenade fur Alison)에서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 존재로 그녀들의 생리혈은 보호-찬양받아야 한다는 퍼포먼스를 벌린 적이 있다

 

여기서 본문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oKG_1JndAdA 

<1964년> 독일 생활 7년 청산, 뉴욕으로   

1964년 이야기하기 전에 1962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YP를 위한 심포니 1962년 작품

[백남준 아트센터] 2013년 1년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열린 백남준 전시 제목 부드러운 교란 도록에 나오는 자료사진. 백남준 1962년 10명 남자가 나와서 하는 심포니 퍼포먼스,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백남준 왜 이런 극단적 방식을 취했을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이 너무나 극단적 관념에 찌들고 그 감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그래서 백남준도 극단적 방식을 취하다. 시게코 여사도 같은 종류의 퍼포먼스를 했다. 인간이 관념에 노예가 되어 끔쩍도 안 한다. 피아노 퍼포먼스를 보면 여러 번 반복. 왜 끔쩍도 안 한다. 남여차원

백남준의 5개 심포니 자품

다시 말해 <극단적 관념주의 추방굿>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가 백남준에게는 너무나 시급했던 과제였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 했다. 백남준 육체(대상 종속됨)가 아니라 신체(주체 정체성)를 표현하다.

<백남준과 뒤샹 그리고 쿠르베>

<서양미술사와 누드 아트> 누드를 안 그린 화가는 화가가 아니다 하나,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 백남준의 토플리스 이전에 이전의 뒤샹의 유명한 작품 샘이 있고 그것 이전에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이 있다. 서양의 미술사는 누드의 역사다.  백남준과 뒤샹의 차이는 백남준은 100% 여성이 되려고 했고 뒤샹은 50% 여성이 되려고 했다 <오마이뉴스>  http://omn.kr/1gybp

 

남성용 변기가 '현대미술'의 상징이 된 이유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레디메이드' 창안 등 그의 작품세계 경험할 기회

www.ohmynews.com

<본론> 세기의 예술적 파트너, 백남준과 살렷 무어먼

-예술이라는 이름의 외설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보장의 갈등

기계적인 사회일수록 시(은유)를 쓰고 음악(소리)을 들어야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 철학은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심신의 균형이 온다. 말씀 이전에 소리 즉 자연이다. -박정진 <백남준의 소리 미학(sound art)>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추신 "샬럿 무어먼 없었더라면 난 음악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가 첼로를 연주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섹스와 연결된 적이 없었던 음악을 이제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남준

<사진> 로봇 'K-456'과 함께 1964년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이 찍은 사진.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피터 무어(Peter Moore) 백남준 평생 예술적 파트너 샬럿 무어먼. 1964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나다. 불행하게도 57세 요절하다. 후반에 암 투병으로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나오기도 했다. 백남준 무어먼 의료보험이 없어 어려울 때 여러 번 치료를 대신 내주다.

<백남준은 남성과 여성을 굳이 구별하지 않고 그 경계를 없애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한 성의 아트를 추구하다. 그럼 면에서 매우 선각적 페미니즘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국립 교양악단 단원

백남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환상적인 예술파트너 샬럿 무어먼  뉴욕 명문 음악학교 줄리아드에서 졸업 65년까지 미국 국립 교양악단 단원으로 첼로를 연주했다. 그러나 65년 이후 완전히 거기서 떠나다. 학창 시절 미스 진에 뽑힐 정도로 외모도 빼어났다. 천재 예술가답게 57세에 요절하다. 

백남준이 65 어떻게 미국 뉴욕에 정착하게 됐는지 알아보자. 백남준이 뉴욕에 도착한 1964년 미국은 인종 분리를 끝내는 '시민권법'이 제정되어 민주주의가 더 고조되는 시기였다. 1년 전 문화예술계에선 전위예술의 총집합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이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에 의해 출범됐다. 1964년부터 달 착률 1969년까지 「미국은 최고 전성기」 「팝아트 전성기」

샬럿 무어먼은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맞아 그 위상을 높이려 두루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존 케이지'와 '슈톡하우젠(독일 전자음악 작곡가)'이 백남준을 중요인물로 천거하자 그를 초대키로 한 것이다. 백남준은 1961년 독일에서 공연한 '괴짜들' 중 '머리를 위한 선' 등으로 이미 확고한 명성

1965년 액션음악 Action Music/ 액션 페인팅의 영향도 보인다

<참고> 백남준 비디오 철학자 www.furtherfield.org/nam-june-paik-video-philosopher/

 

Nam June Paik – Video Philosopher - Furtherfield

Lynn Hershman Leeson interviews Nam June Paik. A historical interview between acknowledged pioneers of video and media arts. First published by Artweek, April 1980 Electronic Art and posted here on Furtherfield to celebrate the upcoming publication of Hers

www.furtherfield.org

무어먼은 백남준을 초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케네디 공항으로 나갔다. 그때가 백남준이 32살, 샬럿은 31살이었다. 그녀는 그를 크게 환영하며 극진하게 대우했다. 하긴 이런 미인의 간청을 어떤 남자가 거절하겠는가.

백남준은 생동감 넘치는 뉴욕에 매료되어 1달 간만 머물려다 정착한다. 하긴 시대를 꿰뚫고 있었던 그가 뉴욕이 세계문화의 중심지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게다가 1963년엔 케이지로부터 미국 초청을 받았고, 독일에서 만난 플럭서스 동지인 마치우나스, 카프로, G. 브레히트, B. 패터슨, 라몽트 영, 엘리슨 놀즈 등도 지원했다. 백남준과 주변의 사람들 독일의 예술파트너인 마리 바우어 마이스터는 백남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둘 <2> 샬럿 무어먼과 백남준 액션 뮤직, 토플리스가 된 이유 

1965년 베를린

현대인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몸이 신체(주체가 되는 것)가 되지 않고, 육체(대상이 되는 것)가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몸(대상적인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주체적인 것)로 하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그런 면에서 경험(사실)보다 몸으로 하는 체험(사건)이 더 중요하다.

1965년 베를린

Action Music In Berlin (1965) 남준 무어먼 퍼포먼스 관객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한다.

샬롯 무어만 같은 위대한 전위예술가가 없었다면 백남준도 없었다. 두 사람은 환상적인 예술적 파트너였다. 샬럿 무어먼 토플리스의 창시자다 1964년 이후 유럽 투어를 많이 했다 1965년 5월 파리 미국 문화원에서 <표현의 자유 페스티벌> 드레스를 안 가져와 공연장에서 비닐 옷을 입고 연주하다. 그래서 topless artist 1966년 독일에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사전 리허설을 했다 1967년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에 이어 뉴욕 영화제작가 극장에서 2월 9일 III 단계 옷을 벗는 퍼포먼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하다가 뉴욕경찰에 체포되다. 1968년 도발적-저항적 학생혁명이 유럽을 뒤덮다 시대 흐름이 있었다. 혁명이 있었는데 당시는 모든 것이 상당히 이었다

1967년 2월 9일 뉴욕에서 공연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Opera Sextronique)' 소동 샬럿 체포 사건 이후의 사진이다. 67.10.22 New York Judson gallery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전자 비키니를 입고 하는 1막  연주가 끝나고 2막이 시작되고 샬럿이 가슴을 드러내자 사복경찰 3명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그녀의 상반신을 코트로 덮고 즉각 경찰서로 끌고 갔다. 이 공연의 작곡가이자 제작자인 백남준도 연행됐으나 공연장에 양복 차림으로 점잖게 앉아 있어 훈방 조치됐고, 샬럿도 나중 풀려났지만 외설혐의로 재판에 붙여졌다.

미국 법원은 이 해프닝이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백남준의 말을 받아들여 샬럿에게 유예 판결이 내리자, 뉴욕 예술계는 환호하며 이 법적 투쟁의 두 승자를 축하해줬다. 그 이후 그녀는 '토플리스 첼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 분야의 아이콘으로 행위예술의 '잔 다르크' 아니 '자유의 여신'이 되었다.

미리 신고한 이 공연, 주최 측도 경찰이 음란한 공연으로 볼 수도 있기에 200명 사람만을 엄선해 초대장을 보냈고 일반인은 입장을 금했다. 그 순서는 1막 '전자 비키니', 2막 '상의벗기', 3막 '하의벗기', 4막 '누드' 순으로 연주하기였다.

"«Pre-freudian hypocrisy». Why is sex a predominant theme in art and literature prohibited only in music? How long can New Music afford to be sixty years behind the times and still claim to be a srious art? The purge of sex under the excuse of being «serious» exactly undermines the so-called «seriousness» of music as a classical art, ranking with literature and painting. Music history needs its D.H. Lawrence its Sigmund Freud". 백남준은 이 문제에 대해 위 영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음악사에는 D.H. 로렌스나 프로이트의 정신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백남준 "난 검은 옷을 차려입고 음악을 연주하는 성이 제거된 남녀의 고인돌 같은 분위기를 휘저어놓고 싶었다" 소회 밝히다.

백남준과 같이 공연하던 샬럿 무어먼 경찰에 체포되는 사진 백남준은 이렇게 청교도 전통으로 성에 강박관념이 심한 미국 사회의 촌스러움을 걷어낸다.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난 검은 옷을 차려입고 음악을 연주하는 성이 제거된 남녀의 고인돌 같은 분위기를 휘저어놓고 싶었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백남준의 성 철학(에로티시즘)은 생사의 넘어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자 인간이 추구할 행복의 근간으로 봤다. 프로이트 등의 영향이 있었다. <아래 영문 참고>. 백남준 serious를 매우 싫어하다. 백남준이 이런 해프닝을 도발한 건 성적 억압을 일삼는 기존 사회의 통념을 깨는 예술적 교란이라 할 수 있다.

빈털터리인 백남준은 더 적극적으로 변호사 비용을 얻기 위해 1968년 뉴욕 타운 홀에서 '재판 기금 모금 연주회'를 열었고, 백남준은 누이를 통해 알게 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씨를 뉴욕까지 불러내 연주하게 했다. 황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복을 입고 연주했는데 샬럿은 비키니를 입고 자루를 들락날락해 적잖은 충격

백남준 성에 대한 철학(성해방)  -윤리문제냐 생리문제냐, 외설이냐 예술의 자유냐 논쟁

1967년 2월 9일 뉴욕에서 공연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Opera Sextronique)' 소동 샬럿 체포 사건 이후의 사진이다. 67.10.22 New York Judson gallery

[백남준 아트센터] 2013년 1년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열린 백남준 전시 제목 <부드러운 교란> 도록에 나오는 자료다. 이 전시 당시 백남준 아트 센터 <이유진> 큐레이터가 전시를 맡았다. 여기 도록은 그저 평범한 도록이라기보다는 거의 박사학위 수준의 논문이다. 백남준 10대와 1960년대 살럿 무어먼 성과 액션 음악을 주제에 관한 여러 자료가 집약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작품이 나왔는지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더 좋은 자료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도록은 한글과 영문으로 되어 있고. 백남준 연구자에게는 필독서이다. 제대로 읽으려면 인내심 필요하다. 67년 5월 11일 백남준의 기획하고 살렷 무어먼이 연주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가 유죄라는 밀턴 셜렉 판사는 판결문이다. 옳든 그르든 이 정도의 판견문을 쓸 수 있다면 그는 판사 자격은 있는 사람이다. 긴 법정투쟁 끝에 결국 선거 유예 판결을 받기는 했다.

1967년 섹스트로니트 사건에 대한 유죄라는 밀턴 셜렉 판사의 판결문

왜 이런 '성'을 주제로 한 연주로 1965년 '첼로 소나타 1번'에서는 '성인용'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유명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은 1966년 독일 아헨에서 초연된 바 있었다. 그때도 샬럿은 물론 누드였다. 그러나 1967년 뉴욕에서 반응은 전혀 달랐다.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외설과 예술의 자유 논쟁으로 확대되어 미국 예술계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다. 샬럿이 법정에 서자, 애가 탄 백남준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미국 예술가뿐 아니라 프랑스 시인인 '장 자크 르벨(J. J. Level)'에까지 편지를 보내 뉴욕주지사에게 그녀의 사면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마침 '르벨'로부터 긍정적 반응이 오자 백남준은 전 세계 유명 전위작가와 예술비평가들도 백남준에게 지지를 보냈다.

1978년 파리 나의 소장품

<사람들은 백남준 액션 뮤직에서 오해하는 점이 있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육체'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신체'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것의 차이는 뭔가? 육체는 다른 사람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신체는 자신의 주체성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1967년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스캔들 이후 큰 홍역을 치르고 그것이 수습된 후에 무어맨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서 성을 음악에 도입하려 했던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어 존 케이지도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지 못한 요소였지. 그는 가능하면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지. 우리의 이러한 의도는 케이지 개념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정통 케이지 파들이 질투를 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 -1968년 6월 14일 백남준이 무어먼에게 보낸 편지 글 중에서 발췌. 위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백남준 포스터

1972년 샬럿 무어먼, 백남준의 최고 뮤즈. 무어먼, 백남준보다 더 대단한 예술가. From January 18 through 23, 1972, cellist Charlotte Moorman and artist Nam June Paik performed Concerto for TV Cello and Videotape and TV Bed at the Everson Museum of Art. For Concerto, Moorman played the video cello, an instrument designed by Paik and constructed out of television monitors, and for TV Bed she played a traditional cello while lying atop an installation of monitors resembling a bed.  이때가 미국의 전성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풍성. 시러큐스, 뉴욕

서양미술사, 터부 깨는 자, 인상파 총사령관 마네 가장 유명

당시 부르주의 사회의 위선을 폭로하다. 예술사를 보면 대부분 예술가는 시대를 더 먼저 더 빨리 사는 사람이다 게다가 기존의 사회적 터부를 건드리고 당시의 신화와 룰을 깨는 사람이기에 악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악평으로 예술가들은 세계적 스타가 된다. 백남준도 뉴욕에서 그랬다. 이에 대한 백남준 식 대처방식이 뭔지 알려준다 그의 성의 미술에 대한 당시 미국 사회의 잣대는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다>


모든 인간은 남녀의 성관계로 태어난 존재다. 

1982년 휘트니미술관 회고전 18주년

모든 인간은 남녀의 성관계로 태어난 존재다. 그런데 왜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는가.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은 성의 문제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의 문제로 보기에 거기에 대해 도덕적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인간의 소대변 같은 생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죽는다. 아니 하루도 못 산다. 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성적으로 방탕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영국의 청교도식은 이를 너무 종교적으로 본다. 그래서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의 1967년 누드 퍼포먼스가 제재를 받은 것이다. 아니 재판을 받게 된다.

미국은 영국의 억압적이고 촌스런 청도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이렇게 청교도 전통으로 성에 강박관념이 심한 미국 사회의 촌스러움을 걷어낸다.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난 검은 옷을 차려입고 음악을 연주하는 성이 제거된 남녀의 고인돌 같은 분위기를 휘저어놓고 싶었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백남준이 이런 해프닝을 도발한 건 성적 억압을 일상화하는 기존 사회의 통념을 깨는 예술적 교란이라 할 수 있다/

에로티시즘(색의 기운생동)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했는데 현대에 와선 삶 전체와 연관시킨다. 우리 몸속에 정신과 영혼이 담겨진 것이다. 하긴 생명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진화할 수 없고 멸종할 것이다.
11월 <춤> 지는 백남준 특집을 게재하였는데, 백남준은 송정숙 서울신문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악평 같은 거, 내가 일생동안 악평 오죽 보았어요. 미국에서는 이제 악평 같은 거 받음 받을수록 예술가가 자라지요, 달리나 피카소는 일생을 그걸로 성장했으니까요, 나도 콘서트 하다가 노출 때문에 경찰에도 가고, 피아노 파괴했다고 파괴주의자라고 얻어맞았지만 그거 개의하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거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돼요, 그러니까 이번도 신념 가지고 했으니까 부정적으로 나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운명이니까. 저절로 깨닫도록 기다려야지. 그렇잖아요?”

에로티시즘(색정 혹은 색의 기운생동)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했는데 현대에 와선 삶 전체와 연관시킨다. 우리 몸속에 정신과 영혼이 담겨진 것이다. 하긴 생명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진화할 수 없고 멸종할 것이다.

에로티시즘(색정 혹은 색의 기운생동)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했는데 현대에 와선 삶 전체와 연관시킨다. 우리 몸속에 정신과 영혼이 담겨진 것이다. 하긴 생명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진화할 수 없고 멸종할 것이다.

1978년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

<위 사진> 백남준 1978년 뒤셀도르프 미술 대학교수 취임하면서 첫 공개수업 때 퍼포먼스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은 “성은 죽었다(Il n'y a pas de rapports sexuels)”라고 선언하다. 인간이 성적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소리다. 특히 여성이 그렇다는 소리인가. 백남준과 통한다(?). 여성이 성적으로 행복해야 인류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백남준(?) 백남준이 성 해방을 강조한 건 자본 비판과 관련이 있다.  진정한 성적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임을 선언하다. 자본은 인간의 최고 행복 중 으뜸인 성의 환희를 파괴시켰다는 것. 성이 자본에 의해 소비상품으로 팔려나가고 있음을 꼬집다. 모든 정치혁명 뒤에는 늘 따라오는 것이 성 혁명이다. 정치 억압만큼 성적 억압은 비례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문제 중 하나는 성적 행복지수가 높지 않다 스트레스와 과로와 소외 심하다. 몇 주전 캐나다 일간지 라 프레스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미국의 동유럽 문화를 연구하는 여성 인류학자가 발표한 최근 논문에 의하면, 동구 여성들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보다 과거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성적으로 훨씬 더 행복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평]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 남성에게 성적으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흥업이 발달할 뿐.

이와 생각이 비슷한 멕시코 시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옥타비오 파스'(노벨문학상 수상자) 시의 일부는 이렇다. "수천 년 전에 생의 도둑에게 빼앗겼던 우리들의 재산을 되찾으려는 듯이 둘을 옷을 벗고 키스했다. 뒤엉킨 두 알몸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하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 둘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성이 자본에 정복당하지 않았던 선사시대로 돌아가자는 소리로 들린다.

"사실 돌이켜보면 백남준 작가만큼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 가득한 작업을 강렬하게 추구한 작가도 드물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비롯하여 많은 퍼포먼스가 이런 경향을 여과 없이 관철하고 있다" -백남준 연구가 전문가 김남수(전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

백남준이 이런 해프닝을 도발한 건 성적 억압을 일상화하는 기존 사회의 통념을 깨는 예술적 교란

[라캉과 바티이유의 성 해석] 위에서 라캉은 성은 죽었다를 소개했지만, 미국 여성 인류학자 사회주의권 여성이 더 성적으로 행복했다. 연구 보고서 발표했다. 백남준&바타이유: 이 이런 해프닝을 도발한 건 성적 억압을 일삼는 기존 사회의 통념을 깨는 예술적 교란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문필가 'G. 바타이유(1897-1962)'도 "성(에로티시즘)은 죽음 속에서도 삶을 찬양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지만 성 혹은 에로티시즘은 생사의 넘어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자 인간이 추구할 행복의 근간이 아닌가

[일화] 시게코에서 백남준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는 깔깔 대면서 섹스를 잘하는 남자라고 대답하다. [평] 왜 그럴까? 백남준은 열등감 제로 인간이기 때문. 그의 자부심은 전 우주적이다. 그는 가난하고 작업비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지만 그 외에는 어떤 스트레스도 없었다.

뉴욕구겐하임 미술관 살렷무아만 추모공연을 하다 2000년 

[[[백남준 평생 죽을 때까지 '퍼포먼스' 한 이유]]]  굿 맛보기  '신문명 전자 굿'

-백남준은 전통 굿과 다르다 '신문명 전자 굿'/삶(신체)은 앎(숫자와 문자)으로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남준 죽을 때까지 퍼포먼스를 지속했다 2004년 뉴욕

도대체 굿이란 뭔가? 백남준은 왜 굿에 미쳤나? 굿이란? 그 시대의 귀신을 추방하고 그 시대에 필요한 신명(대안)을 불러오는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 시대 마을(도시) 공동체 테두리를 넘어, 지구촌의 귀신은 뭔가? 당연히 코로나다. 굿쟁이는 죽은 자와도 원활하게 소통하는 자로, 하늘과 통화를 해서 왜 이렇게 코로나가 생겼는지 물어보면, 하늘에서 그 대답을 해주면 그 메시지를 가지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처방전을 내는 사람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21세기에는 바로 예술가의 몫인 셈이다. 백남준은 바로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백남준이 20세기 후반기에 하늘에 물었을 때 그 답은 바로 '인터넷'을 만들어 온 인류가 원활하게 소통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답을 준 것이다. 백남준은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굿판은 서양의 전위예술보다 더 전위적이다. 왜, 전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초토화시키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적일 정도로 혼란하다. 게다가 소통의 범위가 서양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산 자만 아니라 죽은 자도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도) 와서 같이 소통을 하면서 전시를 보라고 초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미처 서양인들이 못 미치는 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모든 귀신아! 다 여기에 와서 내가 펼쳐놓은 전시 굿판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1990년 갤러리현대(서울)

<굿이란 모순된 사회 속 대안 창출 공동체> 아래는 백남준이 첫 전시에서 피아노 위에 굿판을 벌인 것이다. 서양미술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그걸 다시 초토화시킨 것이다. 이런 판을 갈아엎어 버리겠다는 백남준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첫 전시의 부제가 (서양미술 터줏대감) 추방(Expel)이다.

굿이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건강한 생각과 구체적 방안으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결심하고 각오를 다지는 자리다. 여기서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절대 평등의 위치에서 같이 노는 것이고 굿을 끝내고 나서 음식은 다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 신명을 체험하고 다시 삶의 기운과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굿이란 무엇보다 식사와 제사가 하나 되는 곳에서 삶의 멋과 신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신명(神明) 유년의 기억 난타의 기질이 되살아나다. 제의 음악을 장죽을 물고 대야, 요강, 주발, 머리를 치다. 굿이란 무엇보다 기와 에너지를 되살리게 하는 예식이자 통과의례다.

1990년 갤러리현대(서울)

굿은 왜?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경험)과 죽은 자와 만나는 소통 통한 해방(경험)/앞으로 태어날 아이와도 만나게 한다. 전시는 왜? 전시 감상 후에 새로운 세계와 남다른 시선의 지평 넓히기 위하여/퍼포먼스는 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얻고, 몸을 통해 관념 세계 부수기 위해 였다.

"샤머니즘, 미신 아니라 인간 종교의 원형" -백남준

백남준은 무교(샤머니즘)를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형으로 보다. "굿은 나에게 모든 예술의 원초적 근원이다" 백남준이 그의 부인에게 한 말이다. "To Nam June Paik the shamanistic ritual of Good is the primitive source of art. 백남준은 돈에 놀아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가지고 놀았다. 돈을 가지고 놀 때 진정으로 광대이고 그런 사람만이 정말 잘 놀 수 있다. 가장 잘 놀 줄 아는 그 그래서 천재(?) 천재란 바로 축제를 잘 일으키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샤머니즘은 흔히 원시종교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구적 관점이다 샤머니즘은 한국 예술의 원형이다 무당은 문명의 이기인 철재 칼과 하늘과 소통하는 북과 방울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인 만다라로 무장하고 있다. 한국은 북방계 80% 남방계가 20% 북방계는 몽골계로 기민 민족이고 아주 역동적이다. 샤머니즘은 북방계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도약 무(전투 신명이 나는 칼춤) 같은 춤에 능하다. 신통(神通 신과 통하는 소통 Super communication)은 신앙이다 불통은 불신이다 그런 면에서 통신(通神 신과 통하는 통화)은 통신(通信)이다

<전시란 무엇인가?> 동시대 미술에서 전시는 Something happens. 페인팅 전시로는 뭔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최고 예술이 퍼포먼스다. 최근 2017년과 2019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이 다 퍼포먼스인 이유. 뭔가 일어나야 전시가 된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재미를 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불충분하다. 그 이상의 <관객의 삶을 바꾸는 경지>까지 가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과 무어먼은 선구적이다. 해프닝은 또한 우리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고 고정관념을 깬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또한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우상을 깨기 위해서 평생 죽을 때까지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지속했다

1986년 백남준 '바이비이 키플링' 동서문화를 소개하는 위성아트 여기서 한국의 굿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다

그때만 아니라 1980년대 초 뉴욕 퍼포먼스 공연할 때도 관객을 매우 중시했다. 그는 그들이 나의 작업을 이해하기는 난해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러나 난 문화 소비자의 진정성 혹은 진리를 신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그렇게 대중에게 성큼 다가가 문턱 높았던 예술 감상의 벽을 허물었다.

인류학적 관점, <원시종교와 고등 종교를 구분할 필요 없다> 원시종교와 고등 종교를 구분할 필요 없다. High Art와 Low Art를 구분하기 힘들다. 무교는 모든 종교의 원형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무교가 망한 적은 없다. 왜 여성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불교 유교 선교(도교)는 몇 번씩 망했으나 무속인 셔먼 무당은 망한 적이 없다. [결론] <백남준 60년 전부터 퍼포먼스 아트 줄기차게 2017년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은 다 퍼포먼스아트 이것은 사고팔고도 할 수 없다.> 무중력 무소유 아트의 승리다. 비엔날레 정신이 바로 사고팔고 하는 예술 반대 허나 잘 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