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남준유튜브

[백남준&사상계] <14강> 세기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백남준&사상계] <14강> 백남준과 프렌즈 새해, 첫날
Abstract and Keywords : 해저 속 깊이 잠수한 '사유자' 세기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https://www.youtube.com/watch?v=zQvGoNLeu48&t=14s 

[1] <백남준 외신기사 소개> 아래 백남준 첫 전시 13대 TV 모든 TV가 왜곡시킨 화면이다

Nam June Paik 13 distorted tv sets <My experimental TV is the first ART (?), in which the ‹perfect crime› is possible. 나의 실험 TV는 완전 범죄를 가능하게 한 최초의 예술 형식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아트를 예견하다. TV는 나에게 개성의 표현이 아니고 단지 물리적 음악일 뿐이다 <My TV is NOT the expression of my personality, but merely a ‹PHYSICAL MUSIC›>. [평] 백남준은 TV를 물리학(전자공학)으로 연주하는 악기로 보다.

[2]<1974년 TV정원 발표> 1977년 카셀에서 소개 1978년 퐁피두에서 소개 그래서 1982년 휘트니 회고전으로 이어지면서 성공하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위성 아트를 시도해 또다시 성공하다> Le jardin-télé se déplacera de la Dokumenta de Cassel (1977) à Beaubourg (1978), pour devenir le clou de la rétrospective Paik au Whitney Museum de New York, en 1982. Paik utilise la télévision pour se projeter dans le monde : ainsi Bonjour Monsieur Orwell, à Beaubourg en 1984, est l'une des premières tentatives de diffuser l'art par les canaux de l'information satellite [...]

해저 속 깊이 잠수한 '사유자' 아무도 그를 터치하지 못한다.

나비처럼, 빈배처럼 '영원한 지금'을 살아볼까 하노라 -장자
이 세상에 잘 놀면(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 하면) '영원한 지금' 속에 사는 것. 

<주관적 추상적 경제적 시간>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시간의 대한 주관적 관점도(하루=만년).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 정보사회에서 시간은 뭔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죠. 하나의 숙제다. 나비처럼, 빈배처럼 '영원한 지금'을 살아볼까 하노라.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잘 놀면 '영원한 지금(eternal now)' 속에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것. -장자 영원한 지금이 중요하다./[2] "현재가 유토피아다. 이게 핵심 포인트다(Jetzt ist:Utopia Das ist Wichtig)" -백남준 [] 지금 여기(Here and now)가 모든 시간과 공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백남준은 미래를 사유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재를 가장 사랑했다.

[백남준과 축제론] 플라톤은 춤의 교육적 차원을 강조했고, 니체는 춤 없는 하루는 낭비라고 생각했다. 시간, 공간, 예술, 열정, 이성은 철학적 과제 그렇지만 춤도 철학적 과제로 다르면 어떨까? 춤이 없는 혁명이 무효이고 춤이 없는 하루는 탕진이다. 올해에는 날마다 춤이 있는 나날이 되길. 바우하우스는 모든 수업에는 춤이 빠지지 않는다.

축제 "
정확한 정보 알게 돼 난 너무 행복해!" -완전 잘못 알고 있다가 제대로 알았을 때

[장자] '제물론' 사람, 사물, 자연, 기계도 같다. 백남준 생각도 그렇다. 과거 현대 미래도 같다. 시비와 판단에서 벗어나라. 대립구조과 사슬에서 벗어나라.  일체의 고정관념을 버려라 얽매임에서 벗어나라. 말, 글 그 자체도 의심하라. 문자주의에 빠지면 어리석다. -라캉, 장자, 루소. [라캉] 상징계 벗어나 '실재계'로 가라 (말, 나이 감옥 빠지지 마라, 있는 대로) 서양에서는 루소가 좀 그렇다.

비디오 철학자, 미디어 사상가로서의 백남준, 총체적 아티스트 혹은 총체적 피아노(예술가) 같다.

뇌졸중에도 낙관, 장난기 충만했던 백남준 조수였던 라파엘레 셜리 인터뷰

2015년 라파엘레 내가 뉴욕에 가서 만난 백남준 조수였던 작가

[남준 사려 깊은 지성인]- 백남준은 어떤 인물? 에피소드라도 하나 소개한다면?"백남준은 매우 지적(highly intelligent)이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동양과 서양, 과학과 종교와 예술을 큰 틀 안에서 연관시키는 사유를 했다. 그는 내가 만난 본 사람 중 마음의 스케일이 가장 컸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명상의 형태로 즐겼고, 레이저 빛 아래 어둠 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레이저 조각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른 조수도 그랬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특별했다. 그는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레이저 작품을 응시했다. 그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은 바로 레이저 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이거나 철학적 논제를 꺼낼 때였다. 머서(Mercer)가 옆 프린스(Prince) 가에는 '제리'라는 그의 단골집이 있었는데 우리도 매일 거기서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동물이나 여성에 대해 매우 유쾌한 유머와 조크를 던지며 우리를 즐겁게 해 줬다. 내가 그와 작업하는 동안 내내 그는 정말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친절했고 그의 장난기(playful mind)는 또한 뺄 수 없는 그의 단골메뉴였다.

<백남준 찾아 뉴욕 기행> 2015년 백남준 찾아서 뉴욕 이야기 하나, 백남준 찾아 뉴욕기행 하나 백남준 자취 찾으러 뉴욕, 오길 잘했다. 둘, 라파엘레 셜리와 인터뷰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0104

 

뇌졸중에도 낙관, 장난기 충만했던 백남준

[이제는 백남준을 이야기할 때다 21] 백남준 조수였던 라파엘레 셜리 인터뷰

www.ohmynews.com

자본의 종말은 오나 대안이 아직 없다

<예술가란 목숨을 잃을 위험에도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가는 사람이다>[1] 백남준, 푸코(철학자), 제만(큐레이터)은 깊은 바다만 돌아다니는 큰 고래들, 사유의 잠수자들(thought diver)이다. 그 누구도 감시하거나 조정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특히 백남준은 1962년 이런 말을 했다.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Creep into vagina of a live female whale)" 백남준 미셸 푸코 이들은 철학자이고 사유자들이다. 그런데 그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사유의 잠수자>들이다. 푸코는 스스로 아무도 볼 수 없는 깊은 바다에 잠수한 사유자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목격할 수 없는 너무나 깊은 바닷속에 잠수해 있기 때문에 고래처럼 누구에게도 조정당하지 않은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감시와 처벌 사회>에서 예외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백남준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정보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의 소유자였다. 백남준 왈 "좀 더 심오하고 일관적이고 일리가 있는 궤적을 따라" -이영철 글 중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Creep into vagina of a live female whale)"

<아무도 가지 않은 길>"나는 처음에 작곡가로 시작, 사실은 미학자 철학자 산문가"였죠. 그리고 행위예술은 했지만 배우는 아니었어요. 한 번도 배우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죠. 나는 심지어 수줍음을 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TV를 연구했죠. TV는 영화가나 화가의 분야이지만. 사실 난 이 두 분야에 흥미가 없었고 자격도 없었어요.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 보고 싶었던 것이에요" -백남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TV 화면에 자석을 가까이 대면 영상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모든 물리학 책에 그렇게 적혀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걸 해보지 않는 거예요" -백남준[2] 백해영갤러리(백남준&친구들) 기획 백남준 수요강좌(1강-12강) 겨울호(2020년 9월-12월까지) 강의집 가편집본. 사진 안 들어갔는데 384쪽이네요. // 그리고 올해 백남준 월요강좌(13강-24강) 봄호(2021년 1월-4월까지) 강의집이 나올 예정. 합쳐 총 24강(사진 넣으면 1000쪽 예정) 대학 1학기 강의 정도

[백남준&축제론] <10> "나의 환희는 거칠 게 없어라!" 2부 
[백남준&무어먼] <11> 칸딘스키, 추상색채론, 성의 음악 1부-2부
[백남준&한민족] <12> 세계적아니 가장 한국적 작가 1-2
[백남준&시간론] <13>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사나 1부-2부(7개 안 올라감)
[백남준&사상계] <14> 세기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
해저 속 깊이 잠수한 '사유자
[백남준&위성쇼] <15> I984-1986-1988-2000년 우주오페라 

[백남준&사이버] <16> 사이버(네틱스) 디지털 세상 
[백남준&사기론] <17> 교란미학자로서의 백남준

[비판 없이 창조 없다] 예리한 비판 없이 진정한 낙관주의는 불가능하다. 백남준의 웃음 속에 통렬한 (시대)의 비판정신이 서려있다. [백남준과 신명] 모든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창조자가 될 때 '신'이 된다. '신'바람이 난다!!
<==========>
[1] [백남준과 외국어 ] 중고시절 독어와 프랑스어를 배우는 기회 더 많으면 좋겠다 
[2] 조카(소라) 독일 뒤셀도르프 살 때 사진] [독일 초딩 1학년 A반 20여 명 정도군요. 68혁명이후 교육개혁 슈미트 수상 일화가 있다.

80년대 우리나라는 한 반에 보통 60명 정도가 되었죠. 독일은 초등학교 담임 4년제 한번 담임이 되면 졸업할 때까지 담임이다. 학생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평가해서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서다. 1981년 10월 26일 독일 뒤셀도르프 초등학교 Gemeind Grund Schule(Community Elementary School) 1학년 A반 아래는 유치원 사진]

[1][백남준과 강석희] 1967녀 뉴욕에서 새 소란 이후 1969년 백남준이 강석희(작곡가 전 서울대 음대 교수)에게 보낸 음악 포퍼먼스 콤포지션 악보

그리고 오른쪽은 1969년 9월 5일 백남준 보내준 악보(콤포지션)에 따라 퍼포먼스 진행 중 <피아노 위에서 정사>

[2] 전찬승과 차명희가 피아노 위로 올라가다. 남녀의 성적 행위 연출 이들의 행동에 따라 피아노가 연주되었다. 1967년 백남준의 퍼포먼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의 영향이다. 당시 한국 군사독재 시절 확실히 센세이션한 해프닝이었는데 논란이 많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그 이후 백남준과 강석희는 베를린에서 재회하다

[1] [백남준 성 해방을 주장하다] 성적 억압이 극심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귀족 여성들은 극심한 히스테리에 시달리다. 성을 자연스러운 생리로 보지 않고 강박적 윤리로 보는 영국식 사고가 낳은 사회적 질병이었다. 남성들 수난시대 성은 죽었다.

[2] 성의 예술화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만이 세계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뒤샹의 마지막 작품은 그걸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반쯤 정도만 성취했다. 백남준은 그것을 온전하게 완성시켰다고 보인다 뒤샹은 여성이 되려고 했지만 실패 그러나 백남준은 여성 그 자체가 되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되었다.
[3] "사실 돌이켜보면 백남준 작가만큼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 가득한 작업을 강렬하게 추구한 작가도 드물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비롯하여 많은 퍼포먼스가 이런 경향을 여과 없이 관철하고 있다" -백남준 연구가 전문가 김남수(전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 

[백남준과 사진작가 임영균]
[1] 1980년 뉴욕에 9년 유학, 백남준을 사진 찍겠다 결심. 뉴욕대 아르바이트하다가 뉴요커들 한국을 너무 모른다는 것 깨닫다. 임영균은 3년간 전화해 마침내 1983년 처음으로 어렵사리 백남준 자택을 방문해 백남준 초상화를 찍을 수 있었다고 백남준은 너무 수평적 인물사진이 별로 라며 약간 기울어진 구도를 만들어보자가 제안했고 그래서 아래와 같은 대단한 작품이 나왔단다. 이 사진은 1984년 새해 첫날 <뉴욕타임스> 예술섹션에 크게 실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진작품은 백남준의 기획.

[2] 사진가 임영균 1983년 여름 백남준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백남준은 때로는 인류학자 때로는 미래학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뉴욕 머서(MERCER) 스트리트 110번지 5층 자택(소호구역)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때 백남준이 한 말에는 이런 것이 있단다. 1) 앞으로 TV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온다 2) 난 인공위성을 가지고 작업을 할 거야(다음 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 3)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자동차를 발명하면서부터야 4) 헝가리 가봤어 우리말과 같은 게 많아. 우리말 '가슴'이 헝가리어로도 '가슴'이야. '굿'도 '굿'이라고 해. 한옥의 나무 냄새도 똑같아. 뉴욕타임스 읽느냐고 물으면서 난 매주 과학 전문기자가 쓴 이 신문 사이언스 섹션을 읽는다네.

[3] 그리고 백남준 자택에는 한자로 '몽(蒙)'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임영균은 백남준이 스미소니언 박물관 주최한 어떤 수상작을 보더니 "북송대 그림이랑 비슷하다"라고 해서 동양미술사 전공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 논평이 정확했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백남준 덕분에 뉴욕 록펠러 재단에서 예술기금도 받았단다. “

<이원홍 전 KBS 사장의 말 수정>
[1] 백남준은 과거나 현재 또 미래나 분명 한국사회에서 모티베이션(Motivation) 역할을 했다. 모티베이션 맨이란 우리사회의 모터 맨으로 동기와 자극을 유발하는 파워맨이라는 뜻이 된다. 백남준은 강렬한 성취욕이 있는 슈퍼 울트라 파워맨이었다. 사람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예술적 영감으로 일깨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했다 "창조적인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불가능한 상상을 성취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는 목적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다다익선(TV 피라미드, 세계미술사의 크게 기여한 규모가 가장 큰 기념물이자 세계문화유산)과 TV정원등이 그런 역할을 한 셈이다" -이원홍 전 KBS 사장

[1] 백남준 시대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 시대와 시간 딱 맞았다.
독일시대(1956-1963) 백남준 라인강의 기적(1955-1966) 시기에 살았기에 운이 좋았다. 당시 독일은 고속 성장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였다. 백남준 미국시대(1964-2006) 백남준 미국의 전성기에 살았다. 특히 60년대와 70년대 운이 좋았다 당시 미국은 달에 인류가 도착했고 잠시 케네디 시대였고 흑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으로 민권법이 통과(킹 목사)되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미국 평화운동과 반전운동의 기수인 히피가 있었다. 최고로 경제가 좋았고 세계로부터 선망을 받는 나라였다. 워홀과 바스키아가 있어 팝아트 낙서 아트 등 미술에서도 전성기였다. 미국이 그때는 꿈이 있었다. 백남준 무엇보다 일본과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68 혁명 한가운데 있었다.

[1] 백남준 카라얀 같은 구 음악을 싫어한 이유는 1965년 백남준의 단시에서 엿볼 수 있다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는 평범하다.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는 지루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다.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다. 바그너는 너무 길다. 돈은 너무 귀하다." 백남준 지나치게 귀족적이고 거품이 들어간 폼을 잡는 구음악을 거부반응을 일으키다. 그래서 신음악을 발명하다.

<백남준과 칭기즈칸과 기업경영>
[1] [백남준 그리고 톤유쿠트와 고전경영]
21세기는 확실하게 정착민(무역 장벽 성 쌓고 사는 사람들)이 유목민(Global Digital Nomad)에게 완전히 밀리다. 한민족이 매우 유리. "유럽왕조가 돌로 성을 쌓고 국가를 만들었다면, 투르크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쌓은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요,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8세기 유목민이 사라지는가 했지만 21세기 다시 유목민이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가 되었다. 백남준 1980년대 일본에 가서 공연할 때 보이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원래 고비사막은 초원이었다 "

[2]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아시아(칭기즈칸 등)가 60-70% 세계 지배, 유럽 30-40% 정도다. 또 세계사를 보면 유목민이 60-70% 세계 지배, 정주민 30-40% // 21세기 다시 아시아의 시대 혹은 유라시아의 시대(보이스 주장) 그리고 유목민(노마드) 시대가 되었다.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은 실력(실무능력)과 개척정신과 창의성이고, 정주민에게 중요한 미덕은 끈기 있는 성실함과 혈통(집안)과 위계질서의 확립이다.

[3]<2000년 '뉴욕타임스'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냐고 조사를 했는데 1위는 당연 칭기즈칸 2위는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다고>

칭기즈칸의 복위 1993년 작품

이영철 초대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아래 작품(칭기즈칸의 복위 1993년 작품)을 이 미술관에 소장했다는 것은 너무나 잘한 일. 그의 최고의 업적. 홍콩 등을 떠돌던 이 작품을 소장한 후 이 관장은 꿈속에서 백남준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푸른빛 도는 회색 자케 차림에 한 손에 지게를 하나 들고 미술관 로비에 들어왔다고 퍼포먼스를 하는데 백인여성이 필요하다며 미술관 밖으로 나갔는데 얕은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고 그 뒤를 따라갔다고 그래서 이관장 백남준에게 우리동네에는 없지만 미술관에 마침 한 명 있는데 괜찮으냐고 물으니 '상관없지'라고 답하며 백남준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유쾌한 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이 백남준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1] 제왕적 큐레이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인 제만(카셀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전시기획 이때부터 회화와 조각이 많이 축소되다)은 백남준을 개방적인 천재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백남준과 인연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런 말을 한 것인가. "하늘의 별들은 때가 되면 만나는데 지상의 스타들은 너무 바빠서 만나지도 못한다" -이영철 선생 글 중에서 <위> 1972년 카셀에서 제만 그는 태도를 처음으로 전시 주제로 삼다 동양적인 테마다.

[2] 백남준, 푸코, 제만은 깊은 바다만 돌아다니는 큰 고래들, 사유의 잠수자들이다. 그 누구도 감시하거나 조정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특히 백남준은 1962년 이런 말을 했다.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Creep into vagina of a live female whale)" 백남준 미셸 푸코 이들은 철학자이고 사유자들이다. 그런데 그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사유의 잠수자(thought diver)>들이다. 푸코는 스스로 아무도 볼 수 없는 깊은 바다에 잠수한 사유자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목격할 수 없는 너무나 깊은 바닷속에 잠수해 있기 때문에 고래처럼 누구에게도 조정당하지 않은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사회>에서 예외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백남준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정보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의 소유자였다. 백남준 왈 "좀 더 심오하고 일관적이고 일리가 있는 궤적을 따라" -이영철 글 중

[백남준&축제론] <10> "나의 환희는 거칠 게 없어라!" 2부 
[백남준&무어먼] <11> 칸딘스키, 추상색채론, 성의 음악 1부-2부
[백남준&한민족] <12> 세계적, 아니 가장 한국적 작가 1부-2부
[백남준&시간론] <13>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사나 1부-2부(7개 안 올라감)
[백남준&사상계] <14> 세기를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1부 2부 (9개)
[백남준&위성쇼] <15> I984-1986-1988-2000년 우주오페라 
[백남준&사이버] <16> 사이버(네틱스) 디지털 세상 
[백남준&사기론] <17> 교란 미학자로서 백남준

<2021 첫 시집 23년 전에 쓴 신년시

[1] <23년 전에 쓴 신년시> 풀잎에/맺힌 어린 이슬이/작은 꿈길이 되어/우리의 어깨를 떠미나니/그대의 빛나는 눈빛이/따사한 햇살이 되어/이 땅을 기름지게 하나니//동해 바다/파란 바람 가득 모아/큰 파도 일으키며/우리 혼에 불을 지피나니//새벽 동틀 녘/숨 고르는 나무들/저녁노을과 만나/희망찬 앞날을 키질하나니//꽃과 새가 재잘대고/빛으로 물줄기로 휘휘 돌아/이 터를 닦아 내리니/그대의 뜨거운 숨결이/아름다운 가락이 되어/원융회통의 개벽을 여나니. 1997. 1. 1

[2] "전자석 이용한 진폭의 발생은 전자선(禪)의 창조 가능케 했다" -백남준
[3] 백남준 어록 몇 개 1) 나의 '실험적 TV'는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 세계 최초의 예술작품이다. 2)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3) 전자석을 이용한 진폭의 발생은 전자 선(禪)의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 4)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는 전자기술을 인간화한 좋은 보기이다. 5)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거대한 기계의 도움으로 기계를 반대하기 위한 나 자신의 기계를 창조했다. 6)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다. 한국에 묻힐 것이다. 7)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은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찾는다. 세계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의 기능인데 두 시장은 이 문제를 100년 전부터 해결해 놓았다.

[1] 백남준 '태내기 자서전(1981년) 1931~1932년 판 '뉴욕타임스' 신문지 위에 백남준 글씨로 적은 작품이다. 백남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다 등장한다. 백남준이 태어나기 전(이런 발상법 창조적) 이미 뱃속에서 엄마와 나눈 가상이야기를 언급한 자서전이다. 비디오아트 창시자다운 기발한 발상이다.

그 내용은 위에서 보듯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남준이 "엄마 난 나중에 무엇일 될까? 하고 묻자 그의 엄마는 "넌 앞으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될 거야((Mother said, you will start a Video Art)"라고 내용이다. 난 이걸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 같다. 그의 재치가 대단하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단다. 남준이 엄마에게 "세금이 뭐야?"라고 물으니 엄마는 "갈취란다" 그의 유머감각이 빛난다.

이 작품은 1982년 12월 백남준이 자신의 독일 친구 디터 로젠크라츠(독일 브레멘 미술관 관장)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110일 전 1932년 실제 뉴욕 타임스 신문뭉치 위에 백남준이 낙서한 그라피티 아트다. 그는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골동품 수집가라고 주장했는데 오래된 잡지나 신문뭉치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신문뭉치 낙서는 백남준의 네거티브 공상과학이자 미래를 사유하는 예술가적 상상력이다. 당시 신문 제목과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뒤섞는 방식이라 흥미롭다. 이것을 창조적 허구로 어머니와 가상대화를 통해 체험하지 않은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4월 1 일 날짜의 신문으로 만우절의 알리바이를 적절히 활용했다.

1932년 4월 1일(모두 영문이다) "백남준은 자궁 속에서 어둡고 축축하고 무섭다고 느꼈다"라고 적고 있다. 이 낙서화는 뉴욕타임스는19324월 1일(금요일) 자 신문 위에 쓴 것이다. 오늘은 백남준 마이너스 110일째 태어나기 110일 전 백남준은 자궁 속에서 어둡고 축축하고 무섭다고 느꼈다.

그가 물었다./엄마 세금이 뭐냐
엄마가 말했다/그건 갈취란다
백남준이 엄마에게 물었다/소비에트는 뭐야
엄마가 말했다/그들은 공산주의자란다
백남준이 또 물었다/그럼 루스벨트는 누구야
엄마가 말했다/그는 민주당원이란다
백남준이 중얼거렸다/루스벨트는 원자탄을 발명할 것이다
첫 번째 히로시마/백남준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사망 기사 없이/보이스는 11살/대공항
1983 X 100/1983년 부퍼탈의 주가 상승
[...]1932년 4월 9일 백남준 마이너스 109일
엄마에게 말했다/자궁 안에 너무 깜깜해요
엄마의 우유는 달콤하고 시큼해요
아빠는 어디 있나요/그는 운이 좋은 남자야
그렇지만 아주 조용한 사람이지
아빠는 너에게 말도 거의 안 할 거야
몇 명의 후처도 거느릴 거야
백남준/아니 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세상의 괴로움을 원하지 않아요
나를 그냥 작은 태아가 되게 해 주세요
제가 천국으로 바로 갈 수 있게
절 낙태해줄 수 있나요 **PS질문자 인격이 어떠야 하나요

[백남준과 도덕] 남을 해치지 않으면 돼. 도덕적 인격에 대해 적극적 결론을 내린 적은 없고 소극적 철학 하나가 있지. 남을 해치지 않으면 돼 그래서 난 아기를 낳지 못했다. 우리 보모가 우리한데 너 태어나고 싶니 물어본 적이 없잖아.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태어난 거야. 어찌 보면 폭력이지(사르트르의 생각 피투성) 이것이 인간존재의 출발에서 최고의 모순점이지. 1992년 8월 과천미술관에서 진행된 김용옥과 백남준의 대화 중에서

[1] 원효대사와 동시대 사람인 '의상대사' 일본에서 발견된 그의 영정

[백남준의 시간론과 의상의 시간론] 백남준의 시간론을 검색하다 '의상'선사의 이런 말도 보인다.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인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찰나의 순간이 곧 영원한 시간(겁)이다. 또 이런 말도.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먼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

[백남준과 몽골] 백남준의 몽골 코드(“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안’ 요소를 좋아한다”)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칭기즈칸의 복권’ <아래> 모니터를 가득 실은 채 자전거 탄 로봇의 모습을 각종 오브제와 비디오로 형상화한 ‘칭기즈칸의 복권’은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의 본질을 드러내다. 백남준은 65년 샬럿 무어먼과 유럽 순회 연주를 하던 중 독일 무대에서 칠판에 ‘황색 의자들’이라고 쓴 뒤 엉덩이를 까고 관객들에게 몽골 인종 특유의 신체 징후인 몽골반점을 들이댔다.

[1] [정주유목민 Stationary Nomad] 지금은 정주유목민 시대. 나는 필요하다면 움직이지 않고 정주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유목민들을 찾아내기를 원한다”는 질 들뢰즈의 바람에 부응했을까. 백남준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의 아이디어를 움직이는 ‘정주-유목민’의 개념을 고안한다. 유라시아를 횡단했던 몽골 제국의 교역로에서 착안한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 개념을 74년 제시하기도 했다.

[2] "현재가 유토피아다. 이게 핵심 포인트다(Jetzt ist:Utopia Das ist Wichtig)" -백남준 [평] 지금 여기가 모든 시간과 공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백남준은 미래를 사유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재를 가장 사랑했다.

[0] 다음 주 수요일 1월 6일 이만열 교수 특강 박지원 소설에 대해서 영어와 우리말로 이만열 교수와 함께 백해영 갤러리 13번째 백남준 강좌를 시작 아래 테이블 미니멀리스트 창시자 저드의 작품. 교수
그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견해 [비판 없이 창조 없다] 신랄한 비판 없이 진정한 낙관주의는 불가능하다. 백남준의 웃음 속에 통렬한 (시대)의 비판정신이 서려있다.>

[1] 이만열 백해영 갤러리 백남준 강좌 13번째 <백남준과 시간론> 우연찮게 이만열 교수가 마침 이곳을 방문하셔서 간단히 그의 근황과 소개를 들어보다. "미국정치는 여야를 떠나서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미국 정치 너무 걱정이 많이 된다고. 백남준에 대해서는 기술과 예술의 선순환적인 제3의 아트를 시도했다고 평하는군요.

[2] 어제 백해영갤러리에서 만난 이만열 교수 그의 명함이 흥미롭다. 미국의 정치를 보다 못해 드디어 대선에 출마하다. 출마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무능과 부패의 극치를 달린다고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 나선 것인가. 동아시아 문학 전공자다. 박지원의 한문소설 12편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예일대학교 그리고 대만대학교 동경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받다.

[3] 이만열 교수, 2011년 박지원 한문 고전소설 12편 영어로 번역하다. 2020년 연말 맞아 백해영 갤러리에 오시다. 이만열 교수 국적이 한국과 미국인데 한국인으로 최초 미국 대선에 나갔다고 그의 말에 의하면 민주당과 공화당 할 것 없이 부정부패와 사기 투성이 무능한 미국정치에 대한 경고장 보내다. 

[1] [백남준은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에서 한국의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다] 한민족이 통일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분단 상태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될 것인데 어떻게 서로에게 상처를 안 주면서 바람직한 방식으로 그리고 좋은 기회가 오면 그걸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해 통합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만열 교수

왜 미국과 유럽 전략가들이 지금 이 책(열하일기)을 찾을까?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왜 미국과 유럽 전략가들이 지금 이 책을 찾을까?

[0] 최고 명문가였지만, 조선시대 프리랜서의 창시자 박지원 그는 당시 주류이었지만 가능한 비주류로 도피 생활을 하다. 잠시 관직에 나가기도 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과거 조선이 명청 교체기의 실패한 역사를 발판 삼아 현실에 재적용, 재구성, 창조적 재창조해야 할 때인가 보다. 박지원 앞을 내다보는 외교술을 배위야 할 듯하다.

[1]<이만열 교수님이 보내준 박지원에 대한 자료> 위기 대한민국에서 과거 실학을 불러와 재구성하고 재발견하는 것은 필수 // “위기에 직면하는 대한민국에서 실학의 재발견 필수” 위기 에 직면 하는 대한민국에서 실학의 재발견 필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교수)

[2]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등 과감한 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지적 주체성을 설립을 권고하고 한국이 스스로 동시대 외국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할 자격을 기우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학자들은 또한 청나라가 만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더 이상 명나라의 맥을 따르지 않더라도 혹 한국에 적합한 청나라의 기술, 정책 또는 제도가 있다면 당연히 채택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그들은 이미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향수로 인해 조선이 신기술과 지정학적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청나라로부터 해롭거나 부적절한 영향은 될 수 있는 한 필요 없는 정책, 기술 및 제도를 피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이 학자들은 일본과 서방 국가에 대해서도 같은 경각심을 제시했습니다. 그 정신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 미국 문화, 기술, 정책 및 공공 기관의 많은 측면이 한국에 엄청난 가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혁신이 있습니다. 반미주의에서 미국의 최고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빛을 많이 잃었고 지배구조의 질과 문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 같은 미국인은 이점을 당연히 인정합니다. 현 한국인들이 현실을 스스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미국 사회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차 없이 거부해야 하며 오히려 항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만열 교수

[3] 한때 익숙했던 미국의 정치 및 학술 기관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는데 요즘 한국인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버드 교수들이 COVID19에 대한 비이성적 논쟁을 세우는 것과 미국 워싱턴 D.C.의 정치인들이 가장 저속한 수준에서 비열한 게임을 놀리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은 실망과 함께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 한국 지적 지도자들은 대부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그 매력적인 지식 공동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은퇴한 옛날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4]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지식인은 미국의 문화적 제도적 붕괴가 속도를 얻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피하고자 점점 뒤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서 가져온 콘텐츠를 읽고 한국 언론에 구차스럽게 반영되어가며 그들은 한때 극히 존경했던 미국인들의 말도 안 되는 발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반응을 자제하려고까지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 사회에 생긴 균열이 갈릴 수 없어요.

[5] 표면적인 형식적인 토론만 되는 분위기가 서울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 퇴화되는 지적문화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한때 굳게 신뢰하던 동맹국의 도덕적 붕괴로 한국마저 지배구조와 사회에 대한 신뢰가 뿌리까지 흔들리면서 한국이 막대한 문화적,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 조선의 존경받던 명나라(1368-1644)가 심각한 사회적 균열을 내면서 1600년대에 조선을 휩쓸었던 비슷한 문화적 실명(눈멀음)이 한국을 휩쓸었다. 그 결과 쇄국주의를 택하게 된 조선은 미래 발전에 대한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국면을 맞이했었다. 16세기 후반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군대를 파견한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한국전쟁 당시 동맹 관계를 맺은 비슷한 상황이었다. 양국은 피의 동맹국

[2] 명나라의 "대명률"법과 외교관습 철학사상, 교육적 및 문화적 규범은 한국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명나라가 17세기 전반에 정치적 내분, 퇴폐, 재정적 파산으로 어떻게 그리도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나라가 1644년 만주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만주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중국 내에서 자국을 갈라놓는 산적 군대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조선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문화적, 지정학적 지위를 재평가하고 자신의 전략을 재정립하기보다는 비참하게 망국으로 치닫는 명나라에 대한 향수에 다시 빠져들게 됩니다.

[3] 정복에 성공한 만주 세력은 한국으로부터 새로운 청나라를 인정하도록 강요했지만, 조선은 죽은 후 수세기 동안 마지막 황제 숭정 崇禎 연호를 계속 사용했고 서원 한국에서는 오늘날에도 그 연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개혁보다는 그 고귀한 전통을 지켰던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 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당성은 명나라의 잃어버린 중국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서 비롯된 ‘소중화 小中華’ 사상을 지켰어요. 그러한 감정적 지조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외국의 어떠한 영향에서도 벗어나고자 완고했던 조선은 국가 봉쇄를 선택했으며 그 결과로 진보적 과학기술에 뒤처졌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흡사한 반복적인 역사적 사고방식의 흔적을 봅니다.

[4] 전문가는 제거되고 아부하는 간신들만 들썩이는 미국 국무성과 흡사 기관들처럼 명문 하버드 대학교까지 다국적 은행과 제약 회사를 위한 천박한 홍보기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정치적 자유는 계속 약화되고 있으며 미국경제는 완전 초부유층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옛 조선처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변질된 미국에 대한 향수에 계속 젖어있었다.

[5] 명나라 후반과 청나라 초기의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명나라의 권위를 유지하며, 명나라의 몰락 이후에도 계속 좁고 편협적 견해를 중심으로 파벌을 성립했었다. 실학 實學모델(실용 학습) 어떠한 개혁과 해외 혁신 수용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명나라에 대한 애수와 향수가 국가 전체를 장악하고 있을 당시 18세기 한국의 지식인 몇 명이 새로운 철학적 전망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실학 (實學)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6] 즉 그들은 이미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향수로 인해 조선이 신기술과 지정학적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청나라로부터 해롭거나 부적절한 영향은 될 수 있는 한 필요 없는 정책, 기술 및 제도를 피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이 학자들은 일본과 서방 국가에 대해서도 같은 경각심을 제시했다.

[7] 그 정신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 미국 문화, 기술, 정책 및 공공 기관의 많은 측면이 한국에 엄청난 가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혁신이 있었다. 미국을 무조건 반대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미국이 빛을 많이 잃었고 지배구조의 질과 문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 같은 미국인은 이점을 당연히 인정한다. 현 한국인들이 현실을 스스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미국 사회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차 없이 거부해야 하며 오히려 항거하여야 할 것이다.

[8] 오늘날 일본, 독일,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 등은 모두 한국에 여러 모델과 전통을 공유 제공하고 있지만, 분명 한국에 부적절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한국이 미국이란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는 시기가 왔으며 더 나아가 미국에 대처한 한국은 어떠한 전략 위치 또는 격상을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스스로 확보하여야지 워싱턴 D.C의 신호나 허락만 기다리는 퇴보적이고 의존적 사고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할 때이다. 한국인들이 실학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할 때가 왔다. 과학적 원칙에 따라 한국인들의 외국 모델의 적합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2017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이 도시에서 갔을 때 인상적 전시 인공지능 아트다.

2017년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백남준과 인공지능 아트]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여기가 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와이파이가 된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와이파이가 가능했다. 단순히 보이는 공공미술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QR 코드 모션 캡처 motion capture 개념 도입 Andreas Bunte* 1970 Mettmann, lebt in Berlin 작가 안드레아스 분테 베를린 거주

Laboratory Life 2017, Skulptur Projekte 2017 재료 Material 16 mm films transferred to digital Video (colour, sound), between 2 and 3 min., accessed via posters with QR codes 위치 Locations → H1, Schlossplatz 46, 48143 Münster → VHS Münster, Aegidiistraße 3, 48143 Münster → Stadthaus I, Klemensstraße 10, 48143 Münster/ The app Laboratory Life App to scan the QR codes and stream the films can be downloaded at: apps.skulptur-projekte.de. / Production: Florian Koerner von Gustorf and Michael Weber (Schramm Film Koerner & Weber) in coproduction with Andreas Bunte, in coproduction with Andreas Bunte, funded by MEDIENBOARD BERLIN-BRANDENBURG • Props: Hagen Rissmann • Set design: Reinhild Blaschke • Set construction: Mark Stolte • Project management: Luisa Puschendorf • Performers: Chloe Pare-Anastasiadou, Jan Bockholt, Katja Brückner, Declan Clarke, Johannes von Dassel, Michael Homann, Ele Krekeler • Robot programming: Matthias Bartelt, Stefanie Spies • Motion capture: Marc de Lussanet • Poster photos: Florian Balze • Sound and audio mix: Adam Asnan • Camera and light equipment: FGV Schmidle, Berlin [] Andreas Bunte’s (* 1970 Mettmann; lives in Berlin) artistic interests focus on the interaction between technology, the human body, and architecture and the question of how this interplay shapes and determines our material and immaterial environment.

[백남준 북방 유라시아 초원(고속도로)의 유목전사] "21세기 예술 가운데 뇌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진다. [평] 세계사를 보면 유목민과 정착민 60-70% 역사 유목민이 주도하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유목문화가 사라지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다시 유목문화가 주도하다. 디지털 글로벌 노마드가 되지 않으면 세계를 호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미술을 하더라도 음악과 같은 미술을 해야 세계를 지배한다. 왜? 그 무거운 짐이 아닌 전자로 하는 미술 즉 음악과 같은 미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 백남준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살까? 잘 가지고 놀까? 시간과 음악 그리고 비디오아트와 연결하다 <<[노스탤지어] 극적 성공, 그 환희 순간을 상징하는 비유(?) 피드백이 뭔가? 비디오아트, 뭣보다 음악 즉 오감 총동원 시각, 촉각, 청각 등 다중예술 공감각.
<==========> https://www.youtube.com/watch?v=rDJpMq-teNM&t=3s
하나 [백남준 비디오, 뭣보다(above all) 음악=무게 없는 시간예술]

[1] 詩, 무엇보다 음악(사운드)이다. 그리고 그림(이미지)이다. 비디오아트, 무엇보다 음악(사운드)이다 .그리고 그림(이미지)이다. 백남준은 정지용 시에서 비디오아트 같은 사운드 요소와 비주얼한 요소가 많다며 좋아했다. 정지용의 노래 '향수'를 들으면 정말 비디오아트 같은 노래와 풍경이 그려지는가.

[비디오아트는 무엇보다 음악] 백남준 예술 철학과 통하는 [...] 아래는 그의 저서 <음악 선생님을 위하여> 중에서(1990년) 나오는 글이다 <<한예종 초대 총장 지낸 이강숙 명예교수 별세… 향년 84세 이분도 백남준 과다. [1] 서울대 음대 교육방식 싫어해 창조적 예술 학교 예종의 창시자 이강숙 선생님 12월 22일 돌아가심! 비디오아트에서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백남준 예술 철학과 통하는[...]

“나의 이름은 음악입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음악시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교의 교실에서 선생이라는 사람이 나를 속상하게 만듭니다. 음악시간에 나를 가르친다고 해놓고 나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은 나를/음악시간에 나를 가르친다고 해놓고 나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은 나를 속상하게 만듭니다. 나를 가르친다고 해놓고 ‘나 아닌 나’를 운반하는 그릇을 가르치고 있으니 거짓말하는 꼴이 아니고 뭐야? 나는 언제나 나야!

물론 내가 나타나는 방식은 여럿이야.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면 안 돼. 나는 어디까지나 나이니까. 나는 언제나 재료라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어. 장음계라는 재료라든가 단음계라는 재료로 나타나기도 하고 홀톤 스케일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12 음렬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거야. 평조나 우조를 통해서도 나타난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나타나는 재료가 달라진다고 해서 나를 나로 보지 않으려면 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돼!!!

[이강숙] 88 올림픽 때 전체 기획은 이어령 선생이 했고 음악은 내가 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재료였고 실제 요리한 것은 창의성, 상상력, 아이디어로 이를 융합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이어령] (88 서울 올림픽에서) 완벽하게 칭찬받은 게 음악이에요. 중국은 시각적으로 번쩍했지만 귀에 남는 것이 없어요. 이강숙 선생은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올림픽 관계자들과 많이 싸웠어요. 예술 앞에서는 친소관계 등에 의한 타협이 없었죠. 이강숙 선생은 대중의 안목보다는 전세계의 눈높이로 음악을 하려 했어요. 몇 개는 안될 뻔한 것을 이뤄냈고, 해서는 안되는 것은 막았죠. 음악에 관한 한 20년이 지난 것과 비교해봐도 월등히 앞섰어요"
[이어령] 인간의 삶은 원래 피벗 코드가 필요하다. 극단화, 양극화가 이원적 대립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개인을 봐도 100% 선악은 없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남자 그릴 때 여자의 요소를 넣은 것입니다. 성숙한 사회는 중간지대에서 뛰어넘는 것입니다. 적대적, 상대 배제는 미숙한 것입니다. 국민의 75%가 선진국 대열의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남을 인정하는 것,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포용과 여유 말이죠. 나아가 다양성과 긍정이 선진국으로 가는 힘입니다. 부정의 힘을 창조적인 것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문화입니다. 문화는 창조의 동의어죠 “

[이어령] 피봇 코드(Common pivot chord) 음악용어인데 일반적으로 정치나 사회용어로도 쓰인다. 인간(개인)이 100 % 선악이 없듯이 좌우가 없다. 인간의 사고에서 좌 속에 우가 있고 우 속에 좌가 있다는 생각을 말한다. 이건 동양정신의 근간이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평] 이걸 서구의 식민지 통치 이념으로 좌와 우(좌파와 우파, 심리학 박사나 광고쟁이 만든 말), 음과 양을 나눠 비지배인들 힘을 빼기 위한 분열-분단 통치방식으로 악용되다
[이강숙] <정치에도 피봇 화음 필요> 요즘 고민되는 것은 보수와 진보, 여야, 빈부, 유무식의 대결, 남과 북, 동과 서 등입니다. 현재 상황보다 품격이 나아지는 상태로 옮겨가려면 피벗 코드(pivot chord)의 가치를 국민 모두가 인정을 하는 문화적 기후의 창조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체와 전체의 중간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보수 마음속에 진보가 있고, 진보 속에 보수가 있는 것과 같이 피벗 코드가 확산돼 정치, 사회 현상에 중간지점이 넓어지면 개인의 존엄성, 즉 품격이 높아지고 결국 국격도 높아질 것입니다. 개체를 무시하는 전체도 안되고, 전체 없는 개인은 공허합니다. "

셋 [백남준 비디오아트 오감의 다원예술 그리고 신간:감각의 미술관]

[1] [감각의 미술관] 미술사학자 이지은 선생(서울대 시카고대학)의 탁월한 역작 <감각의 미술관>, 서양미술사 제대로 소화하다. 2012년 나왔다. 그는 현대미술을 음악으로 본다. 이지은 선생 베니스 만난 적이 있는데 나보고 내 책은 왜 이렇게 안 팔리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 놓는다. 그 답은 간단하다.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의 관객들 현대미술을 음악이나 촉각적 음파(Wave)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백남준 1960년대 미술을 음악이라고 봤다. 그리고 공간을 시간으로 봤다. 그런 관점을 동시대 미술조류를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상징시인 베를렌이 "무엇보다 음악이다" 이 예언이 맞다. 예술은 여성이지만 그중 음악은 특히 여성의 여성이다. 그래서 시대정신에 맞는다. 어떤 (현대)미술이든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착음이든 착시든 착란이든 그 어떤 소리가 들려야 한다. 들리는 시각이 되어야 한다.

[2] <감각의 미술관> [소제목] 다 의미심장하다. 1) 눈에서 온몸으로 2) 시간을 타고 움직이는 그림 3) 관객 시각 모독 4) 시각의 와해 5) 드러나는 몸:행위예술 6) 몸을 던져 회화를 파괴. 7) 인간의 몸이 붓이다. 8) 당신의 시선을 거부한다 9) 시선에 대한 역공격 신디 셔먼 10) 음악을 닮고 싶은 현대미술 11) 보이는 소리 12) 부릉거리는 것은 아름답다 소음 아트 13) 그 소리는 미술일까 14) 소리 미술의 탄생 사운드 아트 // 15) 미술이 음반으로 음악이 갤러리로 16) 촉각의 마법 터치가 중요 17) 촉각 시각과 경쟁하다 18) 매체 전면에 나서다. 19) 피부로 말하는 고통과 소통 20) 상처와 구멍을 예술화하다 21) 냄새를 맡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22) 후각과 미각은 사회적이다 23) 미술과 음식 혹은 와인 24) 먹는 미술관 25) 비일상적 체험 26) 관계 미술인가 유흥인가 27) 미술관의 냄새 테러 이불…

[3] <오감의 인간, 구멍 10개> [“사람의 몸에는 10개 정도의 구멍이 있다. 그 가운데 눈은 80%의 입력과 20%의 출력 기능을 갖는다. 귀는 98%를 입력하고 단 2%만을 출력한다. 그러나 이 2%가 매우 중요하다. 부끄러우면 귀가 빨개지는데 이것은 인간을 사회와 어울리게 하고 범죄에 빠져들지 않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고로 부끄럽다는 뜻의 한자 치(恥)는 귀(耳)와 마음(心)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귀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인데,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자율신경체계라는 의미에서 귀는 정직한 것이다. 개의 경우 귀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낸다(개의 귀는 또한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코는 100% 입력뿐이다. 입은 입력기관인 동시에 출력기관으로서 언제나 극도로 바쁘다. 그리고 가끔 토하기도 한다. 배꼽은 일생에 단 한번 어머니 뱃속에 있는 9개월 동안만 기능한다.(백남준 <인터액티브 아트 : 지난 20년의 역사와 앞으로의 20년> 중에서. 1995)] [9] 모자라는 정보와 지식을 가지면 모자라는 즉 편견이 많은 판단과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보와 지식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넷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1][백남준&시간론] 시간 가지고 놀다.

[1] 시간 주인으로 살기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4 백남준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La nostalgie est un feedfack au carré)' I 혼합 매체 빈티지 TV 캐비닛, 네온, 새시, 튜브, 레이저 프린트 캔버스, 러그, 프린트, 램프, 골동품 사진 앨범, 4.5 인치 KTV 모니터 3대, 소니 워치맨 1대, 소니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 1개, 백남준 레이저 디스크 1개 165.0 x 78.7 x 34.0 (cm) 백남준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1992년 그가 60이 되었을 때 한 말)"이라는 시적이고 상징적인 말을 통해 백남준은 먼 미래인 30세기를 내다보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전시 포스터

[2] 이 작품 제목에는 백남준의 시간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어 '노스탤지어와 피드백'이 들어있다. 난해하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전시를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한 적이 있다. 여기 보면 인간, 기계,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을 탐구했던 백남준의 열린 사고를 조명하는 데 집중하다. 백남준은 "백색소음은 최대치의 정보를 담고 있다"라는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의 주장을 여러 글에서 인용한다. -「노버트 위너와 마셜 매클루언」에서

[3] 백남준의 시간론에서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는 핵심어. 그리고 루트(뿌리 기호)의 시간이 중요하다. 백남준은 어려서 숨바꼭질하다가 유치원 친구인 이경희를 보고 갑자기 '춘'을 느꼈다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예술가로서 오감 등 성의 감각이 예민했음을 보여준 셈이다. 성의 시간이 인간이 그 무엇보다 제한된 사회적 간섭을 벗어날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의 노스탤지어가 아닌가 싶다.

[4] <백남준 철학언어보다 사이버 언어 선호> 백남준의 시간론에서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는 핵심어. 그리고 루트(뿌리 기호)의 시간이 중요하다. 과거 철학자들 '성찰하는 사유'라는 말을 썼지만 백남준은 성찰이라는 말보다 컴퓨터 용어인 '피드백'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다. 사이버네틱스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이것은 백남준이 만든 상직성이 강한 전자학적 시(Electronic poem)로서 여기서 그의 시간 철학 중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역사의 역할이 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순간의 시간을 잡아 영원히 낚아 채 차별화된 시각적 세계관을 제시하려 한 것인가! 

[5] 나의 해석: 가장 먼 과거(노스탤지어)인 선사시대를 알아야 가장 먼 30세기 볼 수 있다(피드백)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강익중 2인전 할 때 백남준이 강익중에게 언급한 말)를 내다볼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가장 먼 과거를 알아야 가장 먼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6] 여기서 백남준이 '피드백'을 사용한 것은 '인쇄매체' 시대와 '전자매체(사이버네틱스)'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선사+역사+시사+후사, 통시적으로 봐야 30세기가 보인다 -

<시간의 흐름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시각화-구체화> 그래야 시간의 주인 될 수 있다.

[1]‘비선형적인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이 표현된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벽걸이 괘종시계 추의 움직임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동일한 시계추의 움직임이 다른 각도로 비치게 된다. 
[2]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 유물론자인 백남준 항상 시간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뭔가에 갇히는 것을 무지 싫어한 백남준 그는 시간에 예외가 아니다. 시간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갇히는 것보다 시간과 인간이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쌍방적 소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바로 그런 백남준의 시간에 대한 고민을 이런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그 작품이 바로 스위스 세계다.

스위스 시계

[3] 백남준이 평생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우리도 해야 하는 고민거리다. 인간-시간-공간(?) <천지인 사상> 무신론자인 백남준이 시간의 주인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뭔가에 갇히는 걸 무지 싫어한 백남준 그는 항상 시간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시간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갇히는 것보다 시간과 인간이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쌍방적 소통을 하고 싶어 했다.  바로 그런 백남준의 시간에 대한 고민을 이런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주다. 그 작품이 바로 스위스 세계다.

[4]  1988년 폐쇄회로 카메라가 벽걸이 괘종시계 추의 움직임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동일한 시계추의 움직임이 다른 각도로 비치게 된다. 폐쇄회로와 텔레비전이라는 장치 안에서 이미지와 실체의 순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시계의 동작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5] <시간은 시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백남준의 시간예술(time based art)] (1930년–1960년–1990년) 1960년대에 서서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1930년대는 심연처럼 멀어 보인다. 30년대 히틀러의 등장 30년이 지나 60년대 케네디 대통령(흑인 민권 루터 킹 목사)의 선거운동으로 마무리되었다. '1930~1960년' 그 사이를 스탈린, 집단농장,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한국, 베를린, 아이젠하워의 자주노선이 차지하고 있다. [2] 인쇄매체(1930~1960년)와 전자매체(1960~1990년)의 간격. 인쇄매체는 실제 일어난 일과 거의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전자매체는 그레타 가르보나 진저 로저스와 같은 할리우드식 버전에 국한되어 있다. 그런데 전자매체는 실제 할리우드식 버전을 넘어 비디오아트에 대한 자유로운 실험들을 시도하였다.

[1]<시대 따라 달라진 시간 개념-백남준>'인도의 시간(윤회), 그리스의 시간, 성서의 시간(심판과 구원), 뉴턴의 시간(시간=과학), 베르그송의 시간(지속의 시간), 깁스의 시간, 후설의 시간, 하이데거의 시간(시간=존재), 사르트르의 시간(시간=선택=창조), 케이지의 시간, 위너의 시간, 슈톡하우젠의 시간' 순,

[서양 철학자 시간론] 베르그송과 하이데거

[정리] 비디오는 시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예술? 시공간의 심포니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의 융합시간을 소유하려고 하면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없다. 시간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도취해야 한다. 이를 시로 노래한 사람이 바로 '보들레르'다. 그의 시 "취하라! 취하라! 취하라!" 바로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양혜규의 시간 사용법이다. 아무리 작업을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다.

[9] 보들레르 [프리랜서의 창시자] 보들레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19세기 중반에 당시 최고의 현대도시 파리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노래 하면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거리 산책자(Flaneur)였다. 댄디라는 뉴라이프스타일을 유행시키다. 발터 벤야민과 백남준의 스승이다] [프리랜서의 창시자 보들레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19세기 중반에 당시 최고의 현대도시 파리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노래 하면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거리 산책자(Flaneur)였다. 댄디라는 뉴라이프스타일을 유행시키다. 발터 벤야민과 백남준의 스승이다] 발터] 벤야민이 생존하고, 백남준이 살아있어 두 사람이 토론이 붙었다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 이미지 시대를 본격화 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보들레르의 제자들이다.

하이데거 “시간성이란, 있어 오면서 (과거), 마주하면서 (현재), 다가감(미래)이다.”

[1] [하이데거] 인간실존은 근본적으로 시간적하이데거<존재와 시간> 참된 시간(True Time) 4차원 특성; "미래 또는 과거의 것은 나름대로 현재로 이동합니다. 그러므로 3차원의 시간성에서 하이데거가 시간은 4차원이다. 백남준의 5차원 사기와 하이데거의 4차원 시간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이후로부터 시간과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 쓸데없이 헤맸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보기에 진정 중요한 철학의 주제는, 본질적으로 시간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가? 문제였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시간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시간성'으로 존재한다. 

베르그송, 지속으로서, 의식으로서의 시간은 내가 경험하는 '진짜' 시간, 체험이 배제된 기계적 시간은 형식에 불과. 시간의 흐름 속 생명 변화를 느낀다. 

[1] [베르그송] 제논의 역설에 대해 강의하던 중, 서양 철학이 이때까지 시간의 본성을 망각한 채 시간을 공간화해서 이해하지 않았나, 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베르그송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치환해서 측정하는 과학적, 물리적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식의 시간, 삶을 경험하는 방식으로서의 시간이 진정한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의식의 시간을 지속이라고 명명했다. '지속'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이 흐름에 따라 생명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으로서의 시간, 의식으로서의 시간은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진짜' 시간이지만, 체험이 배제된 기계적 시간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2]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 백남준에게 영향을 미치다. 비디오 아트는 현재를 지속시키거나 분열된 시점의 현재 그리고 사건 없는 시간자체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와 달리 내러티브에 종속되지 않는 순수한 시간 그 자체를 드러내려 시도한다. 시간을 기록하고 변형하는 비디오 아트에서 현재와 시간의 본질에 관한 물음은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비디오 초창기에는 기록과 동시에 투사되는 실시간성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오늘날 비디오에서는 분열되고 해체되며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비결정적인 불특정한 시간성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특성이 강화된 비디오 아트에서는 시간이 추상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3] 베르그송에 의하면 시간은 지속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현재는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또한 지속은 한 지점으로 분리되지 않는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과거를 이루는 기억들이 현재와 함께 하고 있다. 

[4] 시간개념을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시간은 지속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시간을 기록하고 변형하는 비디오 아트에서 현재와 시간의 본질에 관한 물음은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시대와 시간을 규정할 수 있어야 미래 시간을 내다볼 수 있다.

<백남준 시간론, 하나>[1] '성=시간=색채' 긴밀성.
[1] 백남준, 비디오 아트는 색이라고 했다. 즉 색은 성을 말한다. 동양의 전통이기도 하다. 순간적 성의 환희 그 순간이 영원하다는 소리인가. 아니 비디오아트에서 가장 짜릿하게 가장 격정적으로 맛볼 수 있다는 순간의 시간을 말하나. 순간이 영원이 되는 순간을 맛보는 것은 무엇보다 비디오아트에서 가능하다는 주장(?)

[2] 동양의 시간을 알아야 서양의 시간을 알 수 있고 남자의 시간을 알아야 여자의 시간을 알 수 있다. 시간을 알아야 공간을 알 수 있고 시간을 알아야 인간을 알 수 있다. 또 그 반대로도 적용된다. 백남준은 시간의 주인으로 살면서 시간을 잘 가지고 놀려고 했다.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데 가장 유용한 도구로 비디오아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3] 어떻게 시간의 주인 되고, 시간 가지고 잘 노나? 백남준은 시간을 음악으로 봤다. 흐르는 선율과 혹은 흐르는 은하수 같은 것을 봤다. 이 개념은 베르그송의 순수지속과 유사한 개념이다. 백남준의 현재를 과거로 혹은 미래로 과거를 현재로 미래로 되돌릴 수 있다고 봤다. 과거 현재 미래를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고 하나의 전체적 흐름 속에 본 것이다. 동양의 시간관 억겁이나 윤회나 광음(光陰)을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백남준 시간론, 둘 [과거/현재/미래 비빔밥]>
[1] 과거를 불러 현재에 재구성해 미래에 써먹다 예를 들면
최신 미디어인 TV와 신석기시대를 연결하는 방식 등등 백남준의 줌(zoom) 영상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같이 초대되어 서로 사이좋게 놀고 있는 셈이다. 시대의 비빔밥인 셈이다. 서구의 시간론과 다르다. 백남준은 비교적 서구 철학자 중에는 베르그송의 시간론(지속)과 통하는 것 같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아직 깨달음이 잘 오지 않는다.

[2] 그의 첨단 하이테크 예술은 샤머니즘과 통한다. 오래된 과거와 최신 미디어를 결합.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통한다. 선사시대와 30세기가 통한다] 백남준은 시간을 표시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지난 시대의 유물로 간주되는 예술-사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글도 여러 편 썼다. 오래된 과거와 최신 미디어를 결합시키는 것은 백남준의 특이한 시간개념이다. 백남준은 ‘오래된 과거’를 ‘미래적 방식’으로 불러내 ‘오래된 미래’로 만든다.

[3] 가령, 최신 미디어인 TV와 신석기시대를 연결하는 방식에서나, 또한 통신의 과거-현재-미래를 설명하는 맥락에서나. 통신의 미래가 도달하는 지점은 고대의 영적 소통방식인 샤먼(심령학)이다. 전신 Tele-Graphs, 전화 Tele-Phone, 텔레비전 Tele-vision, 텔레파시 Tele-Pathy. “나는 TV로 작업하면 할수록 신석기시대가 떠오른다”

[4] 백남준의 시간론은 한마디로 과거 현재 미래 뒤죽박죽 섞여있다. 인간의 시간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했다 시간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쉽게 말해서 가장 먼 과거 즉 선사시대를 알아야 가장 먼 미래 혹은 30세기를 내다볼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백남준의 천재성은 미술을 음악으로 그리려 했다는 점이고 공간예술을 시간철학으로 해석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백남준은 영원을 손에 쥐고,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평생 고민이었고 화두였다. 그러면서 비디오는 한번 찍히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2021 첫 시간> [백남준&사상계] <14> 해저 속 깊이 잠수한 '사유자' 혹은 세기를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비디오 철학자, 미디어 사상가로서의 백남준, 총체적 피아노(예술가) 같다.
[백남준&축제론] <10> "나의 환희는 거칠 게 없어라!" 2부

[백남준&무어먼] <11> 칸딘스키, 추상색채론, 성의 음악 1부-2부
[백남준&한민족] <12> 세계적, 아니 가장 한국적 작가 1-2
[백남준&시간론] <13>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사나 1부-2부(7개 안 올라감)
[백남준&사상계] <14> 세기를 넘어선 비디오 철학자 1부 2부 (9개)
[백남준&위성쇼] <15> I984-1986-1988-2000년 우주오페라

[백남준&사이버] <16> 사이버(네틱스) 디지털 세상 노마드시대
[백남준&사기론] <17> 교란자로서의 백남준

==시간론 리뷰 언급 안한 것 중심 2부==
[1] 내 작품은 그림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그것은 단지 시간예술입니다. (1962년 롤프 예를링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1962년. "우리가 비디오로 작업하기 전에는 색이 시간의 기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백남준(임의접속 정보) 1980년

[2] 백남준은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지도 그렇다고 과거와 미래로 도망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지간 여행을 권유한다.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총체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3]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사나 김훈: 당신의 작품은 공간성 안에 시간성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공간 안에 시간을 끌어들일 때 얻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백남준: 저는 비디오 예술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한 군데로 비벼서 엮어내려는 것입니다. 비디오라는 미디엄을 통하면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시간과 공간의 구획을 허물고 그 두 가지 범주를 엮어 놓을 때 새로운 자유의 마당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계와 기계적 장치들은 인간 쪽으로 가까워져서 인간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4] [백남준의 시간론과 의상의 시간론] 백남준의 시간론을 검색하다 '의상'선사의 이런 말도 보인다.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인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찰나의 순간이 곧 영원한 시간(겁)이다. 또 이런 말도.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먼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

[5] 백남준의 시간론은 5차원 예술 5차원 사기론: 시간도 역시 불가능한 되감기를 가능하다는 사기론 백남준 어긋난 시간을 말하다 백남준 움직이는 시간"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기 바란다. 눈을 4분의 3 감아라" -백남준

[6] 백남준은 시간을 잘게 나누는 방식의 예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흐름 그것을 통채로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을 자기마음대로 편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삶의 공기를 낯설게 호흡하는 거기에 최대의 쾌락과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다.

[7] 우리는 색동옷을 때때옷이라고 한다. 때때옷이란 시간옷이다. 시간 옷을 색동옷이다. 고로 시간은 색깔이다. 백남준 생각이다. 색동옷 다시 말해 풍부한 시간으로 가득 찬 때때옷은 시간으로 넘친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빛의 음악적 파동을 통해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낯선 시간대로 미꾸러지는 도구다.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김남수 /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심령학(PSI) 즉 정신의 힘." -백남준.

<뒤죽박죽 주관적 시간 책을 아무 페이지나 읽듯이 그렇게 시간을>

[1] 신화적 태고의 시간과 근대적 테크노 세계다 가 하나로 합쳐지는 결정적 순간이다. 태고와 현대를 연결하고 신화와 하이테크 화해시키고 동서양 대등해지는 세상의 시간이 바로 백남준의 세계가 잘 보인다(김남수). "알프스 산에 가서 삼국지나 읽어야겠소" -백남준. 시간의 독재적인 흐름으로부터 나와 자유와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과 열등의식이 없는 비대칭 구조 관점에서 세계가 평등하다는 큰 그림으로 그리다.

[2] <주관적 추상적 시간>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시간의 대한 주관적 관점도 있다.(하루=만년) /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 정보사회에서 시간은 무엇인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죠. 시간: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도구, 창조적 재미를 만드는 도구(?) 찰나=영원(나의 생각) 나비처럼, 빈 배처럼 '영원한 지금'을 살아볼까 하노라 -장자. 이 세상에 잘 놀면(자신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면) '영원한 지금' 속에 사는 것.

[3] [우리나라는 60년 전 궁핍함으로 보릿고개를 이겨내려 애쓰고 있을 때 백남준은 해외에서 치열하게 사유했다. 또 그는 영원히 연주가 불가능한 기발한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 복합적인 시공간의 심포니였다. 전후무후한 일이다. 이 세상과 우주의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동시에 펼쳐 전개하고자 했으니 그게 가능할까? 그가 남긴 가장 쉬운 글을 소개한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을 되감기 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녹음기에는 '빨리감기-되감기-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육영식 미술평론가]

<<오늘의 주제로 돌아오다>>>
[1] 백남준 사상적(철학적) 계보학] 동양(한국)1) 선불교 경향 예를 들면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
2) 남성적 공자보다는 여성적 노자장자 쪽  
3) 역사서 <사기> 사기로 보다 인정하지 않다. 승리자의 기록으로 보다.
4)
몽골코드: [4-1] 몽골 코드뿐만 아니라 백남준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전시회다. 첫 전시회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마네킹과 욕조를 오브제로 활용해 토막 살인사건을 재현한 전시 장면을 담은 사진은 초기 백남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다. [4-2] 백남준의 몽골코드(“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안’ 요소를 좋아한다”)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칭기즈칸의 복권’ <아래> 모니터를 가득 실은 채 자전거 탄 로봇의 모습을 각종 오브제와 비디오로 형상화한 ‘칭기즈칸의 복권’은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의 본질을 드러내다 [4-3] 백남준은 65년 샬럿 무어먼과 유럽 순회 연주를 하던 중 독일 무대에서 칠판에 ‘황색 의자들’이라고 쓴 뒤 엉덩이를 까고 관객들에게 몽골 인종 특유의 신체 징후인 몽골반점을 들이댔다. 5) 유목민 기마민족 찬양
6) 삼국사기를 거부하다. 대신 삼국유사 찬양 여기에는 한국의 환상과 예술적 상상력이 그득하다. 
7) 
한민족의 혈통이 페루까지 연결시키다 당연히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핀란드 헝가리 다 연결시키다. 훈족 스키타이 다 연결시키다. 단군(제사장 스키타이)을 역사적 인물로 보다


<서양 편>
들뢰즈 유목주의& 탈영토주의 
02) 베르그송 시간론 동의 03) 사르트르의 실천적 실존론 참여 철학04) 니체의 우상파괴주의 동의 05) 맥루안 미디어 이론 동조:맥루한 미디어론?  백남준·맥루한: 미디어의 확장과 융합 질문: 미디어에서 확장이 중요한가? 대답: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모든 기술은 인간 기능(function)을 확장시킨다"라고 말했죠. 의복은 피부의 확장이고,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이고, 컴퓨터는 두뇌의 확장이고, 전기는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그래서 매체(미디어) 기술은 감각기능의 확장이다. 책은 눈의 확장, 라디오와 전화는 귀의 확장, 텔레비전과 영화는 눈과 귀의 확장이다. 책을 시각매체, 라디오를 청각매체, TV를 시청각 매체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보충자료> seulsong.tistory.com/693

그의 저서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미디어(매체)에 따라 인식방법이 다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자와 청각장애자의 경우처럼 시각매체인 책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청각매체인 라디오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마치 코끼리 인식에 있어서 시각장애자와 청각장애자의 차이를 보면, 시각에 의존하는 청각장애자의 코끼리상은 실제 모습과 비슷하겠지만 시각이 가려진 채 청각과 촉각 등에만 의존하는 시각장애자의 코끼리상은 실제와 멀어진 모습이다.

 

[백남준] '맥루한' 미디어 확장론, +플러스

[질문1] 미디어(Media)란 뭔가? 아주 쉽게 말하면 중간(Middle)에서 match maker peace maker 역할을 하는 것.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고인돌은 결국 그 당시 소통을 원활하기 하려고 비는 혹은 제사를 지내는

seulsong.tistory.com

질문: '미디어는 메시지다' & '미디어는 마사지'란? -TV를 마사지하라 대답: 맥루한은 또 미디어는 메시지이고 마시지라고 했는데 이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은 좋은 나쁘든 그 속에는 그 미디어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마사지라고 했는데 이제 미디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즐거운 마시지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불쾌한 마시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바람직한 미디어는 <엄마의 약손 같은 미디어> 아닌가 싶다.

이런 뉘앙스는 기계를 의인화해 인격과 인간성을 불어 넣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요즘 흔히 쓰는 '터치(마사지) 폰'도 이런 개념에서 나왔으리라. 기계마저 예술이 된다면 그 세상은 분명 아름답다. 하긴 백남준은 이뿐만 아니라 TV로 새와 물고기와 정원도 만들었다.

질문: 맥루한은 미디어를 구분했나? 맥루한: 매체 간에 놓여 있는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감각기관의 수에 따라 뜨거운(hot) 매체와 차가운(cool) 매체로 구분했다. 맥루한은 언어학자답게 히틀러를 독일영웅으로 만든 보다 집중적인 라디오는 '뜨거운 미디어'로, 산만한 TV는 '차가운 미디어'라고 명명하며 미디어를 분류했다. 또 그는 인류역사를 '구어 문화·필사 문화·인쇄문화·전자 문화'로 구분하면서 전자시대에는 지구촌이 미디어로 하나의 부족이나 공동체가 되는 시대가 된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뜨거운 매체(Hot media)는 정보 전달량이 풍부하고 사용자의 낮은 참여 요구: 라디오, 영화, 서적, 사진, 신문, 잡지 그리고 차가운 매체(Cool media)는 정보 전달량이 부족하고 수용자의 높은 참여 요구 직관적, 감성적: 전화, TV, 만화 등등 Any hot medium allows of less participation than a cool one, as a lecture makes for less participation than a seminar, and a book for less than a dialogue. 김형: 이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질문: 비디오아트에서 미디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나?
김형: 그것을 바로 네트워크겠죠. <자연과 인간-인간과 인간-인간과 우주의 연결> 같은 것 네트워킹은 인류가 같이 가야 하는 공존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시간-공간 사이의 연결]
05) 수학자 니버 이론에 찬양 06) 발터 벤야민 대중 예술론 찬성
07) 보들레르는 그의 비디오아트 다원예술의 영감을 준 스승이다.
08)
존 케이지는 당연히 그의 최대의 스승, 백남준은 존 케이지 이전과 존 케이지 이후로 구별한다.
09)
파스칼의 섬세정신과 기하학 정신의 비빔밥에 동의
10) 맑스의 코뮌 정신은 백남준 예술의 기반이다
11) 프로이트의 성에 대한 해석에 일부 동의.
12)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당연히 그의 야생주의 사상과 일치하다 서구 우월주의 거부하다. 등등등]

[
백남준 예술적 계보학] 
1) 백남준 시각예술가임에도 공간과 미술보다는 시간과 음악에 더 많은 관심과 경향성 보이다.
2)
전 지구적 문제에 관심이 높다.
3)
남성적인 피카소보다는 남성 여성 다 있는 뒤샹적이고 그 보다는 자신은 완전히 여성적인 예술경향을 보이다. 더 나아가 어머니 숭배까지 발전.
4)
남성적 전쟁주의를 반대하다 여성적 평화주의에 절대 찬성하다.
5)
진선미의 순서를 전복시키다. 최고가 미이고 그다음이 선이고 그리고 진이다 칸트 순수이성비판은 ''에 대한 주제, 실천이성비판은 ''에 대한 주제, 판단력 이성 비판은 ''에 대한 주제다. 쇤베르크 무조음악에 지지. 노자의 무위자연 우연성 비결정성 등에 취향 음양에서 당연히 음이 우선이다. 셔머니즘에서 여성이 완전 주도자다. 여기서 남성 끼지 못한다. 제사는 반대다.]

<백남준 지적 경향>
[1] 백남준은 예술 사상가로서의 선구적 사유자 -옥영식 미술평론가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예술가가 아니라. 세기의 문명과 문화전반을 인문학적으로 명쾌하게 꿰뚫고 통찰하는 미래를 전망한 예술사상가에 가깝다. 백남준을
공부하면 서양미술사 서양문명사 동양문화사 중국사상사, 동양철학 선불교 등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칭기즈칸과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등등 인물을 통해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특히 서양현대미술가들 선구자들이 항상 등장한다. 그만큼 백남준 예술의 철학과 사상계는 높고 깊고 넓다. 한국역사에서 창조적 인물사는 물론이고 한국역사의 중요문서인 삼국유사마저 거꾸로 백남준을 통해서 다시 배운다. 백남준의 핵심어인 노스탤지어와 피드백이라는 것이 뭔지 깨닫게 된다.

[2] <예술가란 목숨을 잃을 위험에도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가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에 작곡가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미학자 철학자 산문가"였죠. 그리고 행위예술은 했지만 배우는 아니었어요. 한 번도 배우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죠. 나는 심지어 수줍음을 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TV를 연구했죠. TV는 영화가나 화가의 분야이지만. 사실 난 이 두 분야에 흥미가 없었고 자격도 없었어요.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 보고 싶었던 것이에요" -백남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TV화면에 자석을 가까이 대면 영상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모든 물리학 책에 그렇게 적혀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걸 해보지 않는 거예요" -백남준

[3] 예술가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앞을 내다보는 능력 그리고 '산호호흡기'이기도 하다. 시인이나 예술가는 한 사회의 산소가 부족할 때 맨 먼저 기침을 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예술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통이 안 되는 숨 막히는 공간에 가면 그곳에 가서 송곳으로 구멍을 내는 사람이 백남준이다

[4] 백남준과 장자와 좀 통한다:
천지가 나와 같이 살고 만물이 나와 하나다> 원융회통, 음양조화 물아일체다.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살며 만물이 나와 하나이다(*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바로 그런 세계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남은 남끼리 북은 북끼리가 아니다 같이 따로 하나다. 융합과 공존과 평화와 통일의 정신이다. 그런 그가 소음과 침묵에도 리듬과 하모니가 있다고 믿으며 동양의 무사상을 서양음악으로 섭취한 존 케이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출처, 莊子 內篇 2. 齊物論(제물론)]

[5] 우리나라는 60년전 궁핍함으로 보릿고개를 이겨내려 애쓰고 있을 때 백남준은 해외에서 치열하게 사유했다. 또 그는 영원히 연주가 불가능한 기발한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 복합적인 시공간의 심포니였다. 전후무후한 일이다. 이 세상과 우주의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동시에 펼쳐 전개하고자 했으니 그게 가능할까? 그가 남긴 가장 쉬운 글을 소개한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을 되감기 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녹음기에는 '빨리감기-되감기-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 뿐이다" -육영식 미술평론가

[6] 백남준 1966년 미래예견, "TV와 영화의 모든 기술에 대혁신이 일어날 것이고, 전자음약의 영역은 전자 오페라의 등장과 함께 없어질 것이다. 회화와 조각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견되며, 인터미디아아트(복합매체예술) 점점 더 중요하게 대두하고 결국 책이 없는 문학과 종이가 없는 시가 등장할 것이다" [평] 전후무후한 미래예술의 예견

[7] 해원상생이라는 말에는 한국인에게 한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해원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한은 한국인의 무의식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원한으로 만들기 보다는 승화하는 방식이 바로 해원상생이라는 해법이다. 백남준은 당연히 해원상생파다. 한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나면 신을 얻는다. 즉 신명 혹은 한자어로 흥이라고 쓰기도 한다.그런데 여기서 신으로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멋(문화예술의 꽃으로 피어나야)이 되어야 완전히 열매(르네상스)를 맺게 되는 것이다.] 

[8] 단군신화 곰과 범 여성의 인내성이 결국 승리하다. 남성의 공격성이 승리하지 못한다. 세계문명사를 봐도 그렇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승리한 것은 결국 문명에서 여성이 승리한다는 메타포이다.

<백남준과 김훈 인터뷰> 당신 예술에서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명제를 전제하나?
[1] <백남준> 그것도 저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1년, 2년을 겨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술의 시대성·정치성·민족성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팔자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팔자가 좋지 않아서,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더구나 저처럼 돈 없는 예술가는 메시지를 주업으로 하는 영화 시장과 대항할 수 없지요. 메시지가 담긴 예술은 저에게는 쑥스럽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더 본격적인 것들, 더 고귀한 것들을 추구하려 합니다. 저는 예술에서의 ‘의미’를 탈각하려는 세계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입니다

[2] 김훈: 당신의 작품들은 공간성 안에 시간성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공간 안에 시간을 끌어들일 때 얻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백남준: 저는 비디오 예술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한 군데로 비벼서 엮어내려는 것입니다. 비디오라는 미디엄을 통하면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시간과 공간의 구획을 허물고 그 두 가지 범주를 엮어 놓을 때 새로운 자유의 마당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계와 기계적 장치들은 인간 쪽으로 가까워져서 인간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백남준와 풍류도와 계보학>
[1] 백남준&풍류도 [백남준과 한국의 가무강신][가무강신 소원성취(歌舞降神 所願成就) : 노래와 춤으로 신과 인간이 교감(네트워크)을 가능하게 하다 샤머니즘의 기원(?)] 한국의 3대 종교 불교, 유교, 최근 기독교 밑바닥에는 샤머니즘이 있다. 이 샤머니즘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뿌리는 어디서 오는가? 국가적 제천의식(부여, 동맹, 삼한, 예, 읍주 등 부족 연합 국가 시절 종교의식 제천도)에서 온 것이다 그것이 축소 되고 축소된 것이다라는 설이 있다 여기서 보면 공통점은 일주일간 먹고 마시고 가무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무강신 소원성취라는 말이 나오고. 확실히 '풍류도' 있다. 백남준 최치원의 후손

[참고] [백남준과 화랑도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신라 태백산맥에 가려 중국문화가 고구려나 백제처럼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자 전화위복 독창적 화랑도(이런 제도는 주변국 어느 나라에도 없다)가 생겼다. 3대 풍월도가 있었다. 1) 상마이도의(相磨以道義 종교적 수양: 도의로써 서로 연마한다) 2)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예술적 수양: 노래와 춤을 통해 아름다운 감정을 기른다) 3) 유오산수(遊娛山水 유희적 수양: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며 심신을 단련한다)

<백남준이 주는 교훈 교육과 정치>
[1] [백남준과 교육] 한국 산업화, 교육열로 어느 정도 성공. 1) 경제적 측면 기술모방(조립) 열심히 따라가다 2)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입시 교육(정답 교육) 위주였다. 그러나 여기에 한계점에 봉착하다. 창의적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면에서 맥을 못 쓴다. 여기에는 기초 인문 과학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철학 부재의 교육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고교에서 철학이 수학과 함께 필수과목이다. [백남준과 조선시대] 조선의 공자의 나라가 아니라, 역성혁명가 맹자의 나라였고 성리학의 나라였다. 정도전의 나라였다. 신하가 왕에게 "아니 되옵니다!" 흔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불가능한 일.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문사철(법 언어와 수사의 텍스트 세계)보다는 시서화(경험과 상상력의 이미지 세계)의 시대를 지향. 백남준 한국교육 창의성] 우리나라 입시공부는 공부가 아니고 기술이다. 대학을 잘 들어가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입시를 위해서 독서를 하지 말하고 한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이다. 백남준 과목을 설치하라. 고등학교에 [창조=신] 모든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창조자가 될 때 '신'이 된다. '신'바람이 난다!! 지난 축제론의 연장선

[2] [백남준과 정치] 정치는 정(政)이다. 바르게 수평과 수직을 조화롭게 잘 조절해야 한다. 좋은 POLITICS는 아름다운 POETRY 포함되어야 완벽해진다. 예술사상가로서의 선구적 사유자 -옥영식 미술평론가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예술가가 아니라. 세기의 문명과 문화전반을 인문학적으로 명쾌하게 꿰뚫고 통찰하는 미래를 전망한 예술사상가에 가깝다. 

[3] [백남준과 사회] 우리나라는 60년전 궁핍함으로 보릿고개를 이겨내려 애쓰고 있을 때 백남준은 해외에서 치열하게 사유했다. 또 그는 영원히 연주가 불가능한 기발한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 복합적인 시공간의 심포니였다. 전후무후한 일이다. 이 세상과 우주의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동시에 펼쳐 전개하고자 했으니 그게 가능할까? 그가 남긴 가장 쉬운 글을 소개한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을 되감기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녹음기에는 '빨리감기-되감기-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육영식 미술평론가

[4] [백남준과 미래사회] 1966년 미래예견, "TV와 영화의 모든 기술에 대혁신이 일어날 것이고, 전자음약의 영역은 전자 오페라의 등장과 함께 없어질 것이다. 회화와 조각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견되며, 인터미디아아트(복합매체예술) 점점 더 중요하게 대두하고 결국 책이 없는 문학과 종이가 없는 시가 등장할 것이다" [평] 전후무후한 미래예술의 예견 물질에서 상극(수극화)을 상생(수생화)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물질만 아니라 문명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삶이란 결국 살린다는 뜻이다.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물이 나무를 만들고 나무는 불을 만든다) 물이 불이 되다. 일종의 연금술 이것은 예술의 원리이기도 하다. 음양의 원리

[5] [백남준과 제정일치] 祭천행사=祭사장=통치자 그러나 제사장에서 정치인이 독립해 나오다. 진정한 제사장이라면 제사장이 정치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제사장은 드물다. 지금 프란시스코 교황이 세계를 통치한다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진정한 제사장이 거의 없었다는 면에서 정치가가 등장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영고(迎鼓)>추수감사절 같은 제천의식. 鼓는 장고의 고자다. 북을 쳐 사람들을 모아들인 것인가? 고대 부여가 아직 전국적인 지배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지방의 부족적인 자치력이 온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비단 민속적인 행사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통합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행사였다. 또한 형옥을 판결하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는 것은 오늘날 국경일에 죄수들을 특사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동제(洞祭)와 그 시기나 내용·성격 등에서 유사점이 많이 보존되고 있다

[6] [백남준과 해원상생(르네상스)] 해원상생이라는 말에는 한국인에게 한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해원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한은 한국인의 무의식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원한으로 만들기 보다는 승화하는 방식이 바로 해원상생이라는 해법이다. 백남준은 당연히 해원상생파다. 한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나면 신을 얻는다. 즉 신명 혹은 한자어로 흥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신으로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멋(문화예술의 꽃으로 피어나야)이 되어야 완전히 열매(르네상스)를 맺다.

[7] [백남준과 한반도] 자루에 갇혀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국수주의자나 애국주의자."한국에서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세계주의가 늘 패배하는 나라에서는 문화의 시야가 좁아진다. 이제는 군사독재도 사라졌으니 한번 모두가 뭉쳐 뛰어볼만 하지 않은가.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자꾸 뻗어나가야 한다" -백남준 90년대 초 [평] 국수주의자와 국제주의자의 대결

[8] [예술가는 하나의 '독립정부'] 68혁명이 낳은 표어 중 하나로 '권력은 상상력에서'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권력은 창조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예술가는 하나의 독립정부다. 그 권력은 무궁무진하다. 백남준은 이 땅을 다 팔아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첨단하이테크아트의 황제가 되었고 문화 칭기즈칸이 되었다.]

[9] 예술사상가로서의 선구적 사유자 -옥영식 미술평론가의 백남준평가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예술가가 아니라. 세기의 문명과 문화전반을 인문학적으로 명쾌하게 꿰뚫고 통찰하는 미래를 전망한 예술사상가에 가깝다. 백남준 총서 2권을 통해 새삼스레 한 천재가 남기고 간 정신적 유산의 귀중함을 알겠다. 특히 작가자신이 직접 35년간 써온 미발표 에세이 편지 악보 팸플릿 기사 인터뷰 시나리오를 정리한 말에서 크리스토를 읽으면서 그의 전모가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여러 칭호가 그냥 이뤄진 게 아님을 분명하다. 그는 무음악을 추구했던 현대음악 작곡가, 비디오아트 창시자, 네오 아방가르드 플럭서스의 주역, 아베와 비디오 합성기 발명자 최초의 상업네트워크 방송망을 이용해 네트워크 아트와 지구 상의 도시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위상아트의 선구자다. 그의 예술은 인간과 비인간(자연, 기술, 대상)을 비위계적으로 통합하여 21세기 예술의 선구자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양 선구자: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자크라캉과 프랑스혁명> 
[1] <야만시대와 문명시대의 구분을 없애 버리다> - 선사시대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나서(?) 20세기 최고의 지성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선사시대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나서 브라질 아마존에 가서 원시림을 경험하고 나서 야만시대와 문명시대의 구분을 없애 버리다. 선사시대가 21세기보다 더 선진적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1981년 한국에 왔을 때 사진

[2] [백남준과 라캉] 라캉이 말하는 <과거의 재구성>.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가 가능한 경지를 말한다. 그런가요? 주체가 자신의 역사를 완전히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오늘 새로운 사람으로 산다는 뜻인가요? /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개연성 있는 서사담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때로 필요하다. 백남준은 과거의 유럽과 현재의 아시아를 재구성한다.

[3] [백남준과 1989년 프랑스혁명가 시리즈] 서양 민주주의는 대항해시대 맞아 동양 유학에서 배운 것이다. 프랑스 백과사전파(루소, 디드로) 영국(홉스)의 '사회계약론' 공맹사상에서 배워온 것) 백남준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에 이 사실을 온 천하에 공개하다. 프랑스 백과사전보다 2000년 전에 중국에는 이미 백과사전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여씨춘추다.

<유목민과 정주민 그리고 정주 유목민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1] “나는 필요하다면 움직이지 않고 정주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유목민들을 찾아내기를 원한다”는 질 들뢰즈의 바람에 부응했을까. 백남준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의 아이디어를 움직이는 ‘정주-유목민’의 개념을 고안한다. 유라시아를 횡단했던 몽골 제국의 교역로에서 착안한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 개념을 74년 제시하기도 했다. 첫 전시회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마네킹과 욕조를 오브제로 활용해 토막 살인사건을 재현한 전시 장면을 담은 사진은 초기 백남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다.

[2] [백남준 북방 유라시아 초원(고속도로)의 유목전사] "21세기 예술 가운데 뇌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진다. [평] 세계사를 보면 유목민과 정착민 70% 역사 유목민이 주도하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유목문화가 사라지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다시 유목문화가 주도하다. 디지털 글로벌 노마드가 되지 않으면 세계를 호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미술을 하더라도 음악과 같은 미술을 해야 세계를 지배한다. 왜? 그 무거운 짐이 아닌 전자로 하는 미술 즉 음악과 같은 미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세계사에서 유목민 70% 세계 지배, 정주민 30% 세계 지배 / 마찬가지로 세계사에서 아시아 70% 세계 지배 유럽이 30% 세계 지배, 그러나 지금은 구미 세계 지배 그러나 21세기 유라시아 시대에는 뒤집어진다. 그런가 아닌가? [2] 자민족 애국주의도 때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일 수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려고 했던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정점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3] 진정 강한 사람은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 그랬다. 그는 서구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다 욕을 먹다.

[2] 동양과 서양의 구분하기 확대하면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등등 확대된다.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수였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아 뉴욕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유명해지면서 대학 강좌 신청을 폭주하자 3개국 이상 하는 학생만 강좌신청을 받아줬다고. 그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하긴 영원한 방랑자였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인을 이렇다고 틀에 박힌 것으로 <낙인찍는 것> [5] 백남준은 중국의 <사기> 등 역사서를 믿지 않았다. 승자의 기록만 남고 패자의 기록은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3] 한국은 이래, 인도는 이래 등등 근거 없는 것을 내면화하게 한다. 유럽이 아시아의 범위를 정해준다. 권력이 범위를 정해준다. 모든 기준을 우리의 기준을 하지 않고 서양의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본질은 조정하는 것이다. 왜 동양이냐 말도 안 된다. 서양에서 보니까 동양이죠 이게 오리엔탈리즘이다. 극동 말도 안 된다. 우리가 보면 서양은 동양이다.

<백남준과 여성시대>
[1] [백남준과 여성주의] 전쟁 시에는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일상 시에는 여성들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돈은 남자가 번다고 하지만 자식을 먹고 살리는 키우고 돌보는 것은 모든 것이 여성의 몫이다. 그래서 그 짐이 무거운 것이다. 결국 여성이 애를 낳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역할이다. 그래서 살림(사람을 살린다)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력발전소(태음여왕시대:평화시대)->화력(태양대왕시대: 전쟁시대) 발전소->원자력 발전소(환경위기, 코로나시대).

[2] <백남준과 여성주의, 곰과 단군신화> 단군신화 곰과 범 여성의 인내성이 결국 승리하다. 남성의 공격성이 승리하지 못한다. 세계문명사를 봐도 그렇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승리한 것은 결국 문명에서 여성이 승리한다는 메타포이다. 백남준과 음악, 무소유주의와 평화] 예술에서 무엇보다 '음악(머리 속에 가지고 다닌다)'이다. 철학에서 무엇보다 양이 아니고 '음(달 여성주의 평화주의 인류공존주의)'이다 [문화의 기적] 문화는 기본이 음(비영리)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기적처럼 무한대 플러스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주체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3] 백남준: 노자(여성적)와 공자(남성적) <노자 쪽> ''-해원 - ''-바람 -신명의 에너지를 멋 예술로 승화되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창조할 때 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축제는 창조에서 온다.] [4] 피카소: 남성중심, 뒤샹: 남성반 여성반, 백남준: 여성중심/God Father & Great Mother / God Good Gut] [5] 과거에는 에로티시즘(색의 기운생동)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했는데 현대에 와선 삶 전체와 연관시킨다. 우리 몸속에 정신과 영혼이 담겨진 것이다. 하긴 생명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진화할 수 없고 멸종할 것이다] 백남준 데스마스크 1993년에 베니스 출품작 중 하나이다. 시간이 주제다.

[시간론] 추가사항
[1] <13 강좌 리뷰> [백남준&시간론] <"어떻게 시간의 주인으로 마음대로 가지고 사나" 백남준의 5차원 예술 5차원 사기론: 시간도 역시 불가능한 되감기를 가능하다는 사기론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비켜 보기 바란다. 눈을 4분의 3 감아라 -백남준 백남준 어긋난 시간을 말하다. 백남준은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지도 그렇다고 과거와 미래로 도망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지간 여행을 권유한다.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총체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현존과 무한의 시간 문제(피드백)에 대한 공식인가? 간단하지만 난해?

[2] 내 작품은 그림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예술입니다. (1962년 롤프 예를링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1962년) 백남준은 시간을 잘게 나누는 방식의 예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흐름 그것을 통째로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삶의 공기를 낯설게 호흡하는 거기에 최대의 쾌락과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다.

[3] [주관적 시간]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시간의 대한 주관적 관점도 있다.(하루가 만년 절대적이고 주관적 시간)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 정보사회에서 시간은 무엇인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죠. 시간: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도구, 창조적 재미를 만드는 도구(?) 찰나=영원(나의 생각)]

[4] 알프스 산에 가서 삼국지를 읽어야겠소" -백남준. 백남준의 평생 관심은 동과 서를 연결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만나게 하려 한다. 유럽의 유명산과 중국의 유명고전소설도 연결시키다. 유라시아적 관점이다.]

[5]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되었어. 존 케이지를 만나기 전 해인 1957년이 내게는 기원전(B.C) 1년이 되지” 존 케이지를 만나고 자신의 인생과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을 겪게 된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 대한 오마주(Homage a John Cage)’를 초연하고, 이를 계기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만나게 된다. 1961년, 백남준은 플럭서스(Fluxus,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 기존의 권위에 반대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독일 현대미술 운동) 운동의 창시자를 만나 요셉 보이스와 함께 독일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K456 포퍼먼스 준비하는 백남준 사진 폴 게린]

[백남준 몽골텐트(The Mongolian Tent) 250*500cm 1993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이다. 텐트 안에는 중생들이 일체의 소유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는 부처가 있다. 이 작품의 재료:Felt tent, brone masks, empty TV monotors hay, candle, Buddha figure 뮌스터미술관소장 © LWL Museum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백남준 출품작 지금 뮌스터 시립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다. 그곳을 2017년 방문했을 때 그 안을 들여다보니 옆 데스마스크를 본 것 같다. 그리고 TV 부처가 안에 들어가 있었다

[1] 백남준 인류구원의 비상구나 관문으로 모든 것을 털고 가는 무소유적 삶의 양식인 유목사회를 제시하다. 여기에 쓰인 재료는 역시 원시적 생명력을 강력하게 풍기는 오브제가 주 재료가 된다. 백남준 새로운 뉴미디어의 등장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유목적 디지털 세계를 논하다. 동시에 워홀과 리히터와 폴케는 반대로 개인성을 더 강조하다.

[2] 미술전문지 편집장 클라우디아 미킬리스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네요. "Claudia Miklis(Head of Press and Public Relations) "When I look at the tent, I hear Mongoilian nomade riding across steppes. Dust is kicked up, the smell of earth, sheep and grass penetrates my nose. It is fascinating how Paik succeeded in breathing so much life into his work, even through the subject matter is 'death'"]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시리즈 여시춘추

[전자요정] <리뷰> 백남준은 로봇 루소를 만들면서 직접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자 사회계약론자인 룻소보다 2300년 전 사람 <노자>를 생각하다. 백남준 I '전자 요정_진화·혁명·결의'석판화 1989. 8명의 혁명가 왼쪽부터 '장 폴 마라', '루소', '올랭프 드 구주', '당통', '디드로', '자크 루이 다비드', '로베스피에르', '볼테르'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중 당통 

당통 1989 실제 작품 전자로봇 //백남준 이 작품 하면서 서양사의 문제를 지적하다. 당통 아무리 혁명이라고 하지만 폭력을 써도 되느냐고 호통을 치다. 프랑스 대혁명은 서양사의 최고 사건으로 서양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의 세계 민주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빚지고 있다. 그럼에도 백남준은 이를 호통치다. 우리나라는 2016-2017년 촛불로 백남준이 알려준 비폭력 시위에 성공하다.

[기타 단신] [미국의 맹정] 20세기는 타임지 편집장 Henry Luce는 미국의 시대다라고 선언하다. 그래서 인가. 20세기 중남미와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주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나라에 권위주의 정권을 세우다. 그런가 아닌가? 미국 철학 실용주의 근본적 기조는 유용성이다. 실용주의는 남북전쟁에서 나온 것이다. 남부는 농업 위주 노예가 필요했고, 북부는 상공업 위주이기에 노동자 필요했기에 노예 해방을 주장한 것이다. 미국인은 14%만이 여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 해외여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 대해서 너무나 무식하다. 다른 외국어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일종의 고립주의, 민주당보다 공화당이 더 여기에 속한다. 

[기타 단신] [문준용 작가] <The Artist-Son of South Korea’s President Was Criticized for Funding His Latest Show with Corona Relief. How’s the Actual Art?> 문준용 작가 서울시 문화재단 기금(1400만 원)을 받았다. 그래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기금을 받은 사람은 46명 문준용 작가는 그중 하나다. 이번 전시에 대한 외신 기사다 그런데 실제 작품의 수준은 어떤가 하고 묻고 있네요 [평] 그의 아버지가 검찰총장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안인데 그의 아버지는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 결국 욕을 먹게 된 것이다. 아들은 사려 깊게 이 점을 생각해야 했었다. 작품은 상당한 수준. 역으로 문준용 작가가 더 알려질 수 도 있다. www.newsbreak.com/news/2131783114188/the-artist-son-of-south-koreas-president-was-criticized-for-funding-his-latest-show-with-corona-relief-hows-the-actual-art?s=ws_fb&fbclid=IwAR3d56fZ9Dc6TgmKVh2NUMCELvVX3yz_d7zCqTmmfsn6DxyXV4ODZVjoG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