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코드를 사용한 백남준의 초기 퍼포먼스는 ‘문화적 테러리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남준은 파괴자다”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다” “유럽 사람들의 근원적 공포감을 비아냥거렸다(건드렸다)”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난 (유라시아)역사 인식과 (몽골코드)예술을 시사했다”는 평들이 나왔다 -경향신문
<김호동 지음, 돌베개 펴냄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지금 중국의 시대, 한국을 포함한 유라시아 시대가 오고 있다. ■ 문명권으로 이해하는 세계사
<저자 소개> 김호동(金浩東):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를 취득. 현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미국 스탠포드대학 출판부에서 ‘Holy War in China’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개정 영문판이 출간됨),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2002), 『몽골제국과 고려』(2007)가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유목사회의 구조』(1990),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공역, 1998),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 『라시드 앗 딘의 집사 1: 부족지』(2002), 『라시드 앗 딘의 집사 2: 칭기스 칸기』(2003), 『라시드 앗 딘의 집사 3: 칸의 후예들』(2005) 등이 있다.
여러 지역을 포괄하는 세계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지구상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시차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되는 시대에,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역사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은, 세계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지역, 민족, 국가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흔히 문명(권)이라고 부르는 보다 넓은 단위에 대한 통찰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문명과 문명의 연결과 통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근 ‘신(新) 세계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같은 연구 경향에서는 중앙유라시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가 요구된다.
이 책에서도 ‘실크로드와 유목제국’이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특정한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서, 유라시아 대륙, 더 나아가 아프로-유라시아라는 초광역적인 지역을 단위로 접근하고 있다. 동아시아라든가 중앙아시아, 심지어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별의 한계를 벗어나, 이 문명권에 관한 총체적 역사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은 세계의 역사를 모두 포괄하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모델’ 중의 하나이다.
세계사의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모델들은 아주 많은데, 이 책에서는 문명의 형성·발전·확산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모델을 추출해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전파론(傳播論, Diffusionism)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먼저 고도의 수준에 도달한 하나의 지역이 주변의 다른 지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를 변화시켜 나간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같은 주장은 원래 20세기 전반 인류학 분야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지만, 기술·이념·언어 등의 전파를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으로서 지금도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와 상반되는
또 하나의 모델은 진화론(進化論, Evolutionism)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각각의 사회와 문화가 독자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형성·발전해 나간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윈의 이론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 학설은 그러한 진화의 모델을 사회에 적용시킨 ‘사회적 진화론’, 그리고 사회와 문명이라는 단위가 시간을 종축으로 하여 일정한 단계들을 거쳐 발전해 간다고 하는 ‘사회발전 단계론’ 등으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계사의 실제적인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이 두 가지 모델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인류의 역사는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유형의 합성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곧 각 지역·문명이 독자적인 역사발전의 내재적 계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와도 단절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왔다고 보는 입장인데, 필자는 이러한 제3의 모델을 ‘교류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 실크로드에 관한 새로운 인식
이처럼 세계사를, 지구 위의 여러 지역과 문명들이 공간적으로 연관성을 맺고 시간적으로 계기적 발전을 이룩하는 총체적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실크로드’야말로 바로 그러한 연관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연구자냐 아니냐를 불문하고 이제까지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지나치리만큼 실크로드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본래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연결하던 내륙 교통로를 지칭하던 ‘실크로드’라는 말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북방의 초원 루트와 남방의 해양 루트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이제는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유효성을 의심케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실크로드의 상업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되었고, 이는 실크로드의 역사적 진상을 호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이제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바라볼 때 이 같은 실크로드 ‘과잉’에서 벗어나 그 세계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봐야 할 때이다.
예를 들어 제리 벤틀리(Jerry H. Bentley) 같은 학자는 서기 500년에서 1500년까지의 1000년을 ‘유라시아적 통합’이 이루어진 시기였고, 특히 1000~1500년의 기간은 ‘초(超)지역적 유목제국’이 주도하던 시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서구에 의한 소위 ‘근대적 세계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유목제국에 의해 구대륙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같은 통합은 기존의 ‘실크로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보다 근본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교류와 융합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 왜곡되어 온 유목민의 역사, 몽골제국이 이룬 ‘세계사의 탄생’
이 책에서 필자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유목민과 유목국가가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했음에도 그 부분이 지금까지 얼마나 경시되고 왜곡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유목민과 농경민은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 온 두 개의 수레바퀴였고, 그 어느 하나를 빼놓고는 세계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를 위시한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은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13세기 초에 건설된 몽골제국은 70년에 가까운 끊임없는 정복전쟁의 결과로, 유럽과 인도 일부를 제외하고 유라시아 대륙 거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그들은 점차 농경 문명의 후원자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역사상 전례 없는 광역적인 교통 네트워크를 만들어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문물이 교류하고 융합하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바로 그러한 ‘팍스 몽골리카’를 배경으로 ‘대여행의 시대’가 가능하게 되었고, 사신, 종교인, 상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남북을 종횡으로 누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몽골제국의 시대에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하는, 상세하고 정확한 ‘세계지도’가 처음으로 제작되었고, 각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한 ‘세계역사’가 처음으로 편찬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의외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가 비로소 하나의 실체로 온전하게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사의 탄생’이라 불릴 만하다. 물론 세계에 대한 당시의 지식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는 엉성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얼개를 갖추었다는 면에서 그 이전 시대에 비해 질적인 도약을 보여준 셈이다.
■ 몽골제국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역사
중앙유라시아는 세계사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지난 2000년 동안 언어·풍속·제도·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한반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한반도는 한편으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유라시아를 향해 열려 있었고, 북방의 채널을 통해 그곳의 문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한민족의 독자성과 지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반도와 중앙유라시아를 항상 대립적인 것으로 서술해 온 것이 사실이다. 북방 ‘오랑캐’와의 항쟁을 강조해 왔고,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는 외세에 굴복한 수치스러운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계사의 지난 궤적을 이해하고 현재의 국제적 상황의 원천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긴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확고부동하던 서양의 절대적 우위는 흔들리는 반면, 이슬람의 도전과 중국의 부상이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구미권·이슬람권·중화권과 같은 커다란 블록이 앞으로의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인도나 중남미 같은 변수도 존재할 것이다.
아무튼 문제는 한국이다. 개항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서구의 문명·과학·이념을 비판하고 거부한다고 해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으로 회귀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이슬람은 우리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긴 하지만 우리의 것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운 실체이다.
그 동안 우리의 역사는 지나칠 정도로 ‘중국 중심’ 혹은 ‘민족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다. 중앙유라시아와의 연관성은 한낱 에피소드로 치부되었지 우리 역사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편견을 벗어버려야 할 때다.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만주와 몽골을 거쳐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의 역사도 중앙유라시아와의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연관성 속에서 전개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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