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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천경자&프리다] 다르지만, 파란만장 닮아

I 천경자 프리다

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천경자는 삶의 시련이 정점에 달해 있을 때 그녀는 광주 역전에 있는 뱀집 관찰하고 1달 간 뱀을 그렸다. 천경자는 4명의 자녀를 두었고, 첫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처가 있는 두번째 남편과의 갈등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개인사가 결코 평탄치 않았다.그녀는 인생을 스스로 '슬픈 전설'이라고 할 정도였다 1974년 그녀가 재직하던 홍익대 교수를 그만두고 남태평양과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를 스케치북 하나만 들고 30년간 20여 개의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녀의 수필집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였다. 그녀는 낭만적 열정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으로 고갱처럼 살았다. 천경자의 기구한 운명의 슬픔 프리다를 떠올린다. 프리다는 야말로 불행의 연속 6살 때 소아마비 18살때 교통사고 21살이 많은 난봉꾼 리베라와 결혼 그리고 이혼 다시 결혼 등 하여간 천경자는 말년에 자식처럼 작품을 모두 서울시립에 기증하고 말년에 딸이 사는 뉴욕에서 고독하게 사망했다

II 김수영과 박인환 생존에 사이가 안 좋았다.

두 사람은 5살 차이다. 박인환이 시대의 질곡 속에 속이 터져 죽었고(1956년 천재 시인 이상 추모일 맞아 3일간 계속 술을 마시다가 사망, 그는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과음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수영은 저항시를 쓰며 시대의 불의에 맞서 올곧게 살려다 마포 아현동에서 과음을 하고 귀가 중에 버스에 치여 죽었다. 이 두 순교자 같은 시인 그런데 다시 보니 정말 미남들이군요. 김수영 박인환 두 시인이 같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있으면 둘이 다 죽는다. 김수영은 박인환(서구적 이미지, 낭만적 취향, 도시적 감상)을 경박한 시인이라고 투덜거렸지만 역설적으로 박인환이 있었기에 김수영도 빛나는 것이 아닌가. 김수영이 없이 박인환만 있어도 뭔가 허전하다. 근데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네요.

III 니체(1844년생)는 보들레르(1822년생)

니체는 보들레르의 악의 미학을 철학적 언어로 번역해 유럽의 새로운 패로다임을 바꾼 위대한 사상가가 아닌가 싶다.> 시인은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다. 아무도 쓰지 않은 처음 쓰는 것이기에 창조가 된다. 기본의 문법과 기존의 글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키거나 해체시키지 못하면 새로운 언어가 발명되지 않는다. 보들레르를 능가하는 시인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백남준은 서양시에서 그 문법을 파괴하려고 했던 보들레르처럼 서양음악언어를 파괴하기 위해서 별의 별 일을 다하다. 맨 먼저 한 것이 피아노를 부서버리는 것이고 바이올린을 길에서 질질 끌고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절힌 친구 슈톡하우젠이 전자 음악을 창안했듯 행위음악을 작안했다 백남준이 작곡을 하면 그의 동료인 샬럿 무어먼(그녀는 존 게이지가 작곡한 행위아트를 많이 연주하다)이 이 곡을 연주했다 백남준은 그녀가 사망한 90대 초까지 이런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가 완벽하게 성공한 것은 어느 정도는 서양음악사에서 성공한 셈이다. 그것의 연장으로 비디어아트를 개척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