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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뭉크] 인상파 완성 고흐, 표현파 선구 뭉크

진보적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뭉크, 그는 니체의 열렬한 팬이었다.

오늘은 노동절 그는 노동자 운동을 항상 지지하는 반골적 기질이 넘치는 문화계 인사였다. 아래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뭉크 미술관 입구 사진이 보이네요. 20세기 초 독일을 대표하는 미술유파인 표현주의 미술 독일에 키르히너와 같은 대가 많지만 그러나 벌써 그 이전에 표현주의 높은 미적 경지을 열어준 선구자는 어찌 보면 뭉크다.

서양미술사에서 인상파의 끝자락 고흐가 인상파를 벗어나면서 그를 이어간 위대한 화가가 바로 뭉크이다. 미술의 주도권이 여전히 프랑스가 독점하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술의 중심을 북구로 그리고 독일로 넘어가는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 바로 뭉크다.

뭉크에게 여자란 어떤 존재인가?

뭉크에게 여자는 너무나 달콤한 사랑의 쾌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보다 더 격렬한 죽음의 고통을 주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여자가 아니라 해골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징후를 보였다. 21세기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감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랑의 주도는 남성의 전유물이었었다 이제 여성이 사랑을 주도하는 사회가 오고 있음의 반증이기도 했다. 뭉크는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확실하게 다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졌나보다.

뭉크,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무의식 속 잠재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그를 짓누르게 될 가혹한 운명과 같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먼저 그가 5세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9년 후에는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왔다. 엄격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뭉크가 파리에서 유학 중인 1889년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