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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공간에 쌓인 억겁의 시간들, 장엄한 물결로 파도치다!

[칸디다회퍼Candida Höfer(1944-)전] 국제갤러리에서 2011.11.25-12.25 www.kukjegallery.com 
- 공간에 쌓인 억겁의 시간들, 장엄한 물결로 파도치다! 

칸디다 회퍼 I 'Neues Museum Berlin 9' C-print 183*141cm 2009. 국제갤러리 어시스턴트디렉터 전민경(右) 

국제갤러리는 11월 25일부터 한 달간 세계적인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 2005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2009년에 제작된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노이에미술관 시리즈 12점과 2010년에 제작된 수도원 시리즈 일부가 별도로 소개된다. 

회퍼 I 'Neues Museum Berlin 9' C-print 183*141cm 2009 

이 시리즈의 피사체가 된 노이에미술관은 199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프레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틸러의 설계로 1841년부터 1859년까지 총 18년간에 걸쳐 완공된 프러시안 건축 양식의 기념비적 건축물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심하게 파괴되어 60여 년간 폐허로 남겨져 있었으나 1997년 복원 설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영국 건축가 데이빗 치퍼필드에 의해 복원, 보수된 이후 2009년에 본격적으로 재개관하였다. 본래적인 건물의 건축 양식과 수차례에 걸친 전쟁을 비롯, 구 동서독 체제가 남긴 상흔을 담고 있는 미술관의 면모를 이번 칸디다 회퍼의 노이에미술관 연작을 통해 역사적인 공간의 변천사 및 현존하는 유물론적 관점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서점, 카페테리아, 미술관, 사무실, 동물원, 도서관 등 다양한 공공 장소의 내부가 되어왔다. 공적 공간의 건축학적 관심을 주요 화두로 구상적 평면성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시각적 명료성은 작품의 캡션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작품 속 공간이나 건물, 위치, 그리고 촬영 날짜만이 간결하게 명시되어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완결된 이미지적 소통과 화면 너머의 작가의 함축된 태도를 읽어볼 수 있다. 

회퍼 I 'Neues Museum Berlin 9' C-print 183*141cm 2009 

"나는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곳에 놓여진 사물들로 인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공간과 사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담아내고 싶다" - 칸디다 회퍼, 2000 

작가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는 여타 기술적인 요소에 비하여 평면, 그 자체로서 시각적 탐구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의도적으로 피사체가 된 공간 내부의 오브제와 환경은 그들이 자리한 장소와 진열 방식이 갖는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모와 축적을 보여준다. 칸디다 회퍼는 사진이라는 공간에 그 공간에 어딘가에 묻어 있는 시간과 축적된 흔적과 사람의 냄새와 역사의 뒷이야기 공간의 분위기 등을 농축되어 있다. 


[작가 소개]현재 쾰른에 거주 및 활동하고 있는 칸디다 회퍼는 1944년 독일 북동부 에버스발데에서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베르너 회퍼와 쾰른 오페라하우스의 수석무용수 엘프리드 슈어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종전의 혼란 속에서 파괴된 건물들과 재건축 과정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쾰른 소재의 사진아뜰리에에서 1년간 어시스턴트로 경험을 쌓은 후 1964년 쾰른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이후 1968년부터 인물 및 광고 사진가로 활동하였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는 함부르크 소재의 베르너 보켈버그 스튜디오에서 실용 사진을 배우고 난 뒤, 1973년 당시 걸출한 예술가들의 교류 및 실험적 창작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전후 독일의 문화적 메카,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입학하였다. 작가는 덴마크 출신 영화제작자인 올레 존에게 3년간 영화학도로서 수학한 후, 독일 최초로 사진학과가 개설되던 1976년 초기 교수로 임명된 베른트 베허를 스승으로 본격적으로 사진을 전공하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등과 함께 베허 학파의 첫 세대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작가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칼츠루에 조형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꾸준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진행 중이다.



칸디다 회퍼는 1975년 뒤셀도르프 콘라드피셔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적인 전시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 전시 및 활동으로는 2006년 루브르미술관 내부를 촬영하여 동 미술관내에서 열린 개인전 외 그녀의 첫 미국 개인전인 부재의 건축이 노턴미술관에서 열렸으며, 이후 바젤 및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토론토의 파워플랜트, 최근의 볼티모어미술관과 카네기미술관 등에서 약 40여 년간 총 10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그중 근래의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하자면 2009년부터 금년 1월까지 작가가 40여 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들 중 엄선된 작품들이 건축 스튜디오 쿠엔 말베치와의 협업을 통해 Projects: Done이라는 전시명으로 순회 전시가 진행되었고, 2004년부터 2007년 동안 개념미술작가 온 카와라의 날짜기록회화들이 소장된 곳곳을 여행하며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200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출신의 회화 및 설치작가 마틴 키펜베르거와 함께 대표작가로 참가하였으며, 그밖에도 2002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가 기획한 카셀 도큐멘타 11, 2001년 뮤제드 보자르의 커미션 작품으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 12점이 있는 미술관 및 소장처를 방문 및 촬영한 시리즈가 있다. 


현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게티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하버드대학 미술관을 포함하여 스페인 안달루시아 아트센터, 파리 국립도서관, 퐁피두현대미술센터, 베를린 국립미술관,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 뉘른베르크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2점의 노이에미술관 시리즈는 2009년에 재개관한 독일 베를린의 유서깊은 장소로서, 회퍼가 촬영한 총 여덟 곳의 전시장 내부를 보여준다. 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변화하거나 소멸되는 사회적 습관들을 대표하는 장소이며 작품이 전시된 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이다. 이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이후 더해진 보수 및 복원의 흔적이 건물 고유의 건축 양식, 호화로웠던 장식의 역사, 고대 이집트, 선사 및 중세 이전의 유물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시 작품들 중 대표적인 Neues Museum Berlin XII, Neues Museum Berlin VII, Neues Museum Berlin IX 는 미술관 북서쪽에 위치한 8각형의 돔으로 이루어진 홀(North Dome Hall)을 촬영한 것으로서, 기원전 1340년대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 두상이 홀 중앙에 위치하여 있고, 반구형태의 문 벽감에 헤라클레스와 안드로메다 같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의 모습과 돔의 상층부에는 신과 성스러운 동물들이 어우러진 창세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외에도 Neues Museum Berlin VI와 Neues Museum Berlin XIII는 South Dome Hall과 프레스코 천장화가 그려진 예배당 형태의 Medieval Hall에서 촬영되었고, 각기 적색과 황금색 벽돌을 사용한 곳으로서 공간의 돔 장식과 고대 로마시대에 유래를 둔 벨라리움(Velarium, 천막 지붕)이 있던 장소로 유래된다. 


이렇듯 작가는 건물의 미학적 측면보다는 자체적 기능에 기반한 유형학적인 면을 통해 함축된 내부 공간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장면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인간의 부재’와 ‘공간의 연출’을 평면적으로 해석한 이번 전시작품들은 작가가 현대 문화에 담긴 다양한 표상들에 접근하는 방식을 목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