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혜규 '블라인드'

[양혜규] "화장지가 이런 예술품 되다니!"

[리뷰 양혜규] 미국 마이애미 '배스미술관(The Bass Museum of Art)' , 45일까지
<오마이뉴스본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5781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7번째 <MMCA 현대차시리즈 2020>에 서울과 베를린은 오가며 작업을 하는 양혜규(Haegue Yang 1971~) 작가가 선정됐다고 226일 발표했다. 오는 829일부터 2021117일까지 '서사, 여성성, 이주' 등 주제로 하는 작품 40여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공개된다. 작가는 독일 '슈테델슐레' 미대교수이기도 하다.

양혜규 I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Silo of Silence-Clicked Core)" 2017

특히 이번 전에는 10m에 달하는 움직이는 블라인드 조각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이 서울관 내 '서울박스'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 보일러 하우스'2017년 설치된 바 있다. 15년간 이어진 그녀의 '블라인드 시리즈' 중 최신작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2017년 말 작가 선정 직후부터 약 3년 간 미술관과 협업해 작가연구를 집약한 <가름과 묶음(2001-2020): 양혜규에 관한 글 선집>이 출간된다고 발표했다. 사실 그녀는 방대한 지식·정보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탐구해 이를 바탕으로 통찰력 깊고 통찰력 있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번 보도와 관련해 작년 12'아트바젤(마이애미)' 취재 중 방문한 양혜규 '마이애미 배스미술관(The Bass Museum of Art)' 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규모가 2015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보다 더 컸다. 내가 방문한 날, 마침 오프닝 행사가 있어 작가도 만났다. 아트바젤 관련자와 이곳 주요미술인사 등이 다 모였다. 45일까지 열린다.

"배스미술관"에서 열린 양혜규전 오프닝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이 공공미술관은 1964년 오스트리아출신 '존 배스'가 기증한 소장품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적 작가와 협력을 통해 수준 높은 기획력으로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전은 2012'프랑스문화예술훈장'을 받은 여기 관장 '실비아 카르만 큐비냐(S. Karman Cubiñá)'와 버클리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레일라니 린치(Leilani Lynch)'가 기획했다.

전시제목은 '불확실성의 원뿔(In the Cone of Uncertainty)', 미술관 자료에 보면 이 제목은 플로리다 남부 지역 날씨의 특징을 은유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므로 우리가 이에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불확실성의 원뿔'은 정보통신에서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변수를 선정할 때, 지식과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단일한 입력 값으로 결정하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전 세계를 혼란에 빠지게 한 '코로나19'도 결국 불확실성에서 온 것이 아닌가. 정보의 홍수시대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니 안타깝다. 결과적으로 이번 제목은 뭔가 앞을 내다본 셈이다.

작년 '뉴욕현대미술관' 4대륙 15곳에서 전시

배스미술관에서 오프닝행사에 참가한 양혜규 작가

'뉴욕타임스' '리스카치(Z. Lescaze)' 기자가 226일자로 이 전시기사를 썼다. 제목이 'An Artist Whose Muse Is Loneliness'. 이걸 직역하면 해석이 어색해 '자가격리(loneliness, the ability to make herself alone)에 능한 뮤즈 아티스트'라고 의역하면 어떨까싶다.

'자가격리'를 못했다면 작년 한 해 4대륙 15개 유수의 미술관 전시가 불가능했으리라. 기자가 그녀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작가가 작업을 위해 거기에만 파고드는 게 비난받을 일인가?'라며 되묻는다. 이 말은 남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격리시켜 작업에만 몰두하면 그게 가능하고, 그녀에게는 작업이 오히려 휴식과 놀이가 된다는 메시지다.

또 작가는 '고독은 거기에 빠지는 게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라는 뒤라스 말도 인용했다. 모 일간 인터뷰에서도 '혁명은 휴일을 모른다. 하지만 혁명은 명절이라는 휴일을 만든다. 위기는 쉴 줄을 모른다. 노숙자도, 사기꾼도 휴일을 모른다. 난 휴일이 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결론으로 말해 그녀는 지구 상 가장 왕성한 작업을 하면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에서 가장 초대를 많이 받는 작가라는 뜻이다. 현재 뉴욕 '구겐하임', 파리 '퐁피두', 런던 '테이트', '뮌헨 루드비히 미술관' 등에 그녀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1948년에 설립 국제현대미술잡지인 '아트리뷰(Art Review)' 세계미술인 랭킹에서 '36'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양혜규 작업의 키워드는 뭐가? 그건 아마도 그녀의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이라는 시리즈도 있지만, '연약한, 상처 받기 쉽고, 깨지기 쉬운(vulnerable)'것에 대한 애착이리라. 작가는 '다치기 쉬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도 예술가의 용기'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무시당하는 '동물'이나 하찮게 버려지는 '사물' 또 상처를 심하게 받는 '사람'이 다 그런 예이다.

'이상한 과일', 인종차별 언급

양혜규 I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 2012-2013

양혜규 작가는 전시 때 흔히 공간을 접고 포개고 나누고 중첩시키고, 확장시키는 걸 즐긴다. 이번 전은 어떻게 구성했는지 살펴보자. 1층에 들어서니 단골 메뉴인 '광원조각'이 보인다. 재료가 전구, 혼용지, 수채화, 금속고리, 코일케이블, 13가지다. 그녀 작품에서 제목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뭔가 사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이상한 과일'이다.

알아보니 역시 여기에 미국흑인들 처참한 역사가 녹아져있다. 흑인가수 '빌리 홀리데이(B. Holiday 1915-59)'1939년에 히트시킨 노래다. 가사는 하버드 MA 출신 미국시인 '아벨 미로폴(A. Meeropol)'이 썼다. 노예해방 이후에도 백인들 이를 인정하지 않고 흑인들을 린치하고 나무에 목을 매달아 교수형 시키는 끔찍한 사건을 고발한 내용이다.

"화장지가 이런 멋진 예술품 되다니!"

양혜규의 "(롤 세트)종이화장지" 2016. "예측 힘든 연대의 좌표(Coordinates of Speculative Solidarity)" 2019[뒷면]

2층으로 가는 길에 '예측 힘든 이곳 기후를 어떻게 잡을까?' 하는?' 이곳 사람의 염원이 현실과 환상을 뒤섞인 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2'로비갤러리'에 들어서면 노동집약적이고 실험성 높은 공예품이 전시되어있다. 다채롭고 컬러풀하고 예쁘다. 또한 여성적이다. 소위 '비미술적 재료' 즉 버린 캔(Can)이나 화장지 롤 세트를 활용한 것이다.

화장지가 저렇게 멋진 예술품이 되다니! 하고 있는데 나와 생각이 같은 미국여성이 나타났다. 여기 직원 같다. 내게 미소 진 얼굴로 다가와 "일상품이 이런 놀라운 작품이 되니 대단하지 않냐!"며 말을 건다. 나도 "미술은 변형의 눈속임 아니냐!"고 맞장구쳤다

작가가 수공예품에 관심이 있는 건 회화와 공예의 위계를 없애야 한다는 바우하우스의 영향도 보이지만 그녀 어머니(김미순)의 영향이 더 커 보인다. 그녀 어머니는 교사, 소설가, 노동운동가였다고 뉴욕타임스기사에 소개됐다. 어머니가 공장에서 활동하면서도 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모녀는 2000년 공동집필한 에세이 '묵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삶의 향연' 유발하는 '복싱발레'

양혜규 I "복싱발레(Boxing Ballet)" 2013-2015

이제 2'리버만 갤러리'로 가보자. 양혜규의 아이콘인 '복싱발레'는 그녀의 '소리 나는 조각(Sonic Figures)' 시리즈 중 하나다. 바우하우스 출신 조각가이자 무용창작가인 '슐레머(O. Schlemmer, 1888-1943)'3부작 발레'를 의인화한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복싱발레는 소리(sound)와 움직임(movement) 요소를 더 역동적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점이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바람 도는 궤도(Windy-orbit)'도 위 사진 왼쪽에 보인다. 이건 선풍기, 악기, 여러 개 머리를 가진 기계의 합작이다. 선풍기가 천천히 회전할 때 청아한 소리가 나고 바람이 일어나 춤추는 형상처럼 보인다. 제목이 '발레'이듯 감상에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여기서는 관객이 작품을 가지고 신나게 잘 놀수록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된다.

'혁명가' 이야기 담긴 '붉은 블라인드 시리즈'

양혜규 I "(붉은) 끊어진 산악미로(Red Broken Mountainous Labyrinth)" 2008

다시 2층에 대칭 이루는 2개의 '레드 블라인드'를 보자. 대형작품이다. 하나는 '그리운 멜랑콜리(Yearning Melancholy)', 레지스탕스 출신 프랑스소설가 '뒤라스'의 정치적 유년기를 다룬 것이고, 또 하나는 '끊어진 산악미로'라는 제목으로 식민시대 한국혁명가 '김산'2살 아래 미국여성기자 '님 웨일스(N. Wales)'와의 사연을 다룬 것이다. 두 작품 같은 듯 다르다.

이 시리즈에는 시각·청각·후각 등 공감각이 총출동된다. , 온도, 향신료, 소리의 파동, 찬란한 불빛 등 종횡무진 종잡기 힘들 정도로 관객을 두루 자극한다. 은유적이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업화시대와 수공업시대 장면이 혼재돼 있다. 드럼세트 등이 설치돼 있어 즉흥 연주도 가능하다. 여기서 관객들이 상상하고 축출해 낼 수 있는 서사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작곡가 '윤이상'과 작가의 아버지

양혜규 I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이상(A Chronology of Conflicted Dispersion-Duras and Yun)" 2018

끝으로 위에 언급한 '뒤라스'(1914)와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이 기술된 연대기를 소개한다. 제목은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 뒤라스와 윤이상)'. 작가가 주관적 관점으로 두 사람의 생애를 교차 편집한 텍스트 아트다. 연대기형식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들은 삶을 파헤치면 귀에 솔깃한 사연이 더 많을 것 같다.

이들은 국적, 성격, 성별 상관없이 결코 평탄치 않았던 식민주의와 냉전시대를 살았다. 작가는 두 사람을 이형 조합시켰다. 작년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이미 소개됐다. 여기 주인공 윤이상은 세계적 작곡가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정치적으로 풀지 못한 난제처럼 보인다.

이걸 읽다보면 윤이상이 1963년 북한 평양 근처 강서대묘의 고분벽화 사신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옥중에서 작곡했다는 '영상'(Image 1968)이라는 어떤 작품인지 관심이 간다. 연주자도 힘들어 하는 곡이란다. 하여간 그는 당시 남한당국에 체포된 후에 스트라빈스키,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인 200명 석방요구 서명으로 겨우 5년 만에 감옥살이에서 풀려난다.

하여간 관객이 그녀 작품을 잘 이해하려면 엄청난 학구파가 돼야 한다. 그 배경이 그렇게 단순치 않다. 그녀 작품은 우리도 모르게 지구촌 이슈. 예컨대 난민, 이주, 환경, 인권, 민주주의 등과 연결돼있다. 미술관을 나와서야 알아차린다. 그래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하여간 미술이란 결국 오늘날의 서사를 시대정신에 맞게 조형적으로 시각화하는 게 아닌가싶다.

덧붙이는 글 | 양혜규 작가 홈페이지 http://www.heikejung.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