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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나는 무신론자이고 맑시스트에 가깝다

<1991년 1월호 음악잡지 '객석' 인터뷰> 아래 인터뷰를 보면 백남준은 자신이 무신론자이고 맑시스트에 가깝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바보 맑시스트가 많은데 나는 그런 맑시스트는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맑스는 증기기관차가 나왔던 시대인물인데 그의 이론은 1920년 정도까지만 어느 정도 유효했다 그런데 이 이론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바보죠. 시대에 안 맞아요. 그래서 난 그 낡은 사상을 버리지 않고 새로 고쳐 썼어요(재생). 그게 바로 인터넷(TV Commune)이죠. 이것이 백남준의 맑스에 대한 생각의 핵심이다. <아래> Jage bis juin Ende des Kapitalismus '자본주의가 없어지는 그날까지'라는 독일어 표어가 보인다.

황필호 박사 : 그럼 선생님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까?백남준 : 난 점진적인 차이(gradual change)는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서양사상의 두 줄기는 희랍사상과 히브리 사상인데, 히브리 사상은 동양사상과 꼭 같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나더러 동양의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요. 이 쪽에 사는 동양인과 저 쪽에 사는 동양인이란 뜻이지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른바 한국적인 것의 허상과 경제의 실상을 주장하셨는데요, 선생님은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 종교는 없어요. 맑시스트입니다.
: 맑시스트라고요?
: 그럼요, 제일 가깝지요.
: 무슨 뜻입니까?
: 난 바보 맑시스트는 아니에요.
: 맑시스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맑스에 대해서 최소한 네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자나 경제학자로서의 맑스, 둘째는 혁명가로서의 맑스, 셋째는 유사 종교가로서의 맑스, 넷째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맑스가 잇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의미의 맑시스트 입니까?
: 내가 맑스를 배운 다음에 장사하지 않고 예술 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웃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맑스한테 큰 은혜를 입었지요.
 : 무슨 뜻입니까?
 : 난 약은 놈이니까 홍콩으로 도망쳤어요. 화려한 망명이었지요. 그리곤 미국으로 가버렸어요. 미국에선 맑스의 얘기를 해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히려 맑시스트가 돈은 더 벌어요. 그런데 고지식한 나의 친구 세명은 북한으로 갔어요. 그 땐 친구들에겐 두 가지 길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남로당계로 숙청 당하는 길이었고, 하나는 김일성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기는 길이었지요. 어쨌든 그들은 일생을 망쳤지만, 시련을 위해서 일했지요. 그런데 그때 도망친 겁쟁이인 내가 일을 더 했어요. 그래서 인생이란 끝이 없어요.

: 그래서요?
: 맑스는 똑똑했지만 맑시스트는 바보라고 나는 생각해요. 맑스는 증기기관차가 나왔던 18세기의 이론가지요. 그 후에 석유가 나오고 가솔린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왔어요. 그런데 옛날의 맑스를 아직도 그래도 외우는 놈이 있어요. 그건 세상의 천치바보지요.
: 그렇다면...
: 맑시스트는 바보지만, 그렇다고 맑스에게 배울 것이 하나도 없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당시 기계혁명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욱 가난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소위 비평적 시각에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복귀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이 바로 맑스입니다. 그의 이론이 증기기관차가 사라진 1920년까지는 어느 정도 가치(merit)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 정치철학에서도 경제학자로서의 맑스가 실패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붕괴필연성은 결국 중산층의 대두를 그가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에리히 프롬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맑스는 아직도 강세를 떨치고 있으면, 레닌이 주장하는 혁명가로서의 맑스도 완전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하는 맑스는 경제학자로서의 맑스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요.
: 정치학자들도 이젠 동구라파를 보고 맑스를 말하지 않아요. 학질을 떼었으니까요.
: 그래서 요즘 동구의 철학 교수들은 전부 실업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마르크시즘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없어서요.
: 그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이지요. 그러나 우리 플럭서스 중에서는 두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가 나왔어요. 하나는 리투아니아 대통령이고, 또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가장 유명한 레지스탕스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360번 체포를 당했는데 따귀 한 대 맞지 않았대요. 동구라파도 인권은 보장되어 있어요. 하여간, 이 친구가 60~70년대에 뉴욕에서 살면서 먹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지요.

<추신> 사실 히브리 사상이나 기독교 사상은 전혀 서구적인 사상이 아니고 중동의 사상이고 동양의 사상이다. 그래서 우리와 잘 맞는다. 동서의 문화에서 차이가 크지만 동시에 차이가 크지 않다. 물론 헬레니즘은 서양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백남준의 의견이기도 하지만 그 타당성이 매우 높다. 히브리 사상의 꽃은 평화사상이고 또한 약자보호법 사상이다. 이것은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서양의 사상은 플라톤 이후 이분법이 주류다. 여기에는 그 해답이 없다. 끝없는 전쟁이 있을 뿐이다. 물론 동양도 전쟁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서양과 다른 점은 동양에는 대안이 있고 서양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 사상을 하나의 비빔밥으로 만들어 인터넷 아트로 결합시킨 것이다. 결국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여성적인 것이고 또한 아시아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원효와 화쟁사상이나 원융합일 사상 같은 것이다. 이런 사상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예수의 이웃사랑나 불교의 자비사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종교사상은 너무나 많이 변절되고 왜곡이 되어 사람들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나 자비라는 이제 완전히 죽어버렸다. 차라리 에로스나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더 호소력이 있다

<추신> 백남준는 서구에 내놓으라는 지성인들과 만났을 때 한번도 기가 꺾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버거운 대상은 리얼 맑시스트였다고... 왜 그랬을까? 리얼 맑시스트의 3 가지 조건이 있다. 1. 무신론자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정말 철저해야 한다. 2. 최고의 지성인이어야 한다. 당대 최고급 정보와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3. 무소유주의자여야 한다. 맑스는 개인의 소유를 부정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거의 밥 먹고 사는 정도의 사람들이다. 이 3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 리얼 맑시스트는 신과 맞서는 신과 유사한 이상주의적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드물겠지만 그래서 백남준이 이들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한 것이다 <추신> 이들이 불가능성한 것은 추구했다는 면에서 존경했다는 의미고 여기서 무소유주의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재능과 지성과 능력이 제로로 될 때까지 남(인류)에게 돌려준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사르트르가 그런 예로 적절할 것 같다.

<추신> <TV 아트의 특징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 상품화하기가 어려운 그러나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의 체질에 맞는다. 공동재산을 이상으로 하는 코뮌주의와 통한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비디오는 작품의 독점에 바탕을 둔 체제로 작동하는 예술 세계에서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으로 이루어진 예술세계에서 말이다.” -백남준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