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내가 완벽하게 남이 될 때(be for others) 그게 바로 실존이고 그때 황홀경의 극치를 맛본다고 했는데 샤먼의 강신무가 바로 그런 경지가 아닌가>
강신무는 무녀(Shaman)가 신을 초대하는 춤(feast of dance)이다. 중매자(mediator)인 무녀가 불러온 신(Artistic inspiration)을 인간이 만나면 그의 몸에 신령이 감전(telepathy) 돼 신내림(incarnation)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내는 모든 말과 소리(sound)와 절규하는 몸부림도 하나의 예술(performance)이 된다. 여기서 내가 내 안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항하는 실존(Existance)이 된다. 여기서 황홀함(extasy)의 절정을 맛본다.
사르트르는 내가 아닌 자로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자로 존재하지 않는 때(I am always, what I am not, and I am not always what I am) 황홀하다고 했는데 그와 유사한 것이다. 백남준이 좋아했던 문장인데 백남준은 이것을 이런 공식으로 바꾸다 A=-A 백남준 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도추(道樞)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창조의 소통 공간을 최대로 확보한 상태에 도달한다 * 원문 Je suis ce que je ne suis pas, je ne suis pas ce que je s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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