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보이스] 20세기문명 전반을 전복시키고 원시적인 것에서 생명을 구한 독일의 무당
혹은 문명에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연금술사
요셉 보이스의 상징 중 하나는 도끼
© Wikipedia 만물은 가변의 상태 속에 있다 - 요셉 보이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역사의 씻김굿판을 평생 벌리다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보이스와 같은 천재를 나치시대에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인종학살이 일어났다. 그런 역사적 교훈의 흔적이 보이스 작품 두루 볼 수 있다. 그래서 한 시대에 대해 고해를 하면서 치유하는 자의 모습이 강하다. 그는 독일인의 마음의 고향을 건드린 사람이다. 그는 모든 사람의 대학입학을 허가해야 한다고 해서 대학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고 나중에 대학강단에서 쫓겨나는 일도 발생한다.
그는 무료국제대학(FIU)을 설립하여 이 지상에서 교육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다.
우리나라의 반값등록금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보이스는 모두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은 대학등록금이 없는 나라다. 물론 일부 주에서 조금 받기는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급진적 문화민주주의 운동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FIU(Die Freie Internationale Universität)
키워드 :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개념미술-멀티플 오브제-예술은 삶-사회적 조각-죽은 토끼와 대화-네오다다
그의 어록: "민주주의는 재미있다" "사고하기 싫은 사람은 지구를 떠나거라" "만물은 가변상태 안에 있다"
[요셉 보이스(1921-1986)展-멀티플(The Multiples)] 소마미술관(방이동 88-2번지) 2011년 8월28일까지
www.somamuseum.org 02)425-1077 성인 9,000원 청소년(13-18세) 7,000원 어린이(4-12세) 5,000원
방이동에 있는 소마미술관 입구. 전시기획 김순주작가
© Leolook 관련 사이트 http://olpost.com/v/2523517
"Wenn Ihr alle meine Multiples habt, dann habt Ihr mich ganz.
너희 모두가 나의 멀티플을 가진다면, 너희는 나를 온전히 가진 것과 같다." - 요셉 보이스
요셉 보이스는 전후 유럽미술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며 그의 삶과 예술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어 오늘날 여전히 '보이스'라는 작가는 복잡한 인물로 남아있다. 2차원 내지 3차원 오브제를 에디션으로 남기는 것은 유럽의 멀티플 방식이었는데, 에디션이 붙은 작은 오브제, 대량 생산된 엽서들, 펠트, 나무, 유리병, 캔, 악기, 레코드, 필름, 비디오, 퍼포먼스에 연계된 오디오 테이프와 같은 레디메이드 오브제 등은 그의 일대기와 아이콘에 대한 암시적 상징이다. 보이스가 꿀벌이나 토끼 피, 펠트와 지방과 같이 범상치 않은 재료들을 작품에 사용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 추락사고 등에서 얻은 부상으로 시작된 치유와 탄생 개념, 그리고 그가 주장한 사회적 조각 이론에도 닿아 있다.
사회적 조각이란
그의 사회적 조각이론은 혼돈 속 비결정적 상태의 사물에 조각과정을 통해서 질서를 부여하는 개념이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는 보이스의 주장이 그의 조각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과정으로서의 조각이론은 유동적인 것으로, 화학반응, 발효, 부식, 증발 속에서 변화해간다. "만물은 가변 상태 안에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확대된 예술개념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신체 뿐 아니라 죽거나 살아있는 동물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 상처를 치유하려는 보이스의 퍼포먼스는 내면의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는 그를 신화 속 인물로 전설화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
서양문명을 깰 만발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요셉 보이스란 누구인가
제1전시실은 보이스라는 인물과 그의 작업관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구성된다. 2차대전 참전 중 얻은 화상의 흔적은 작가에게 이후 일생을 두고 줄곧 지속되는 치유행위의 근거가 된다.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추락한 크림반도에서 타타르인(Tartars)에 의해 펠트와 지방으로 치유된 경험은 보이스의 재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에게 있어서 펠트는 보호, 보온의 특성을 지닌 재료였으며,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지방은 혼돈과 영혼의 초월적 상태를 내포하고 있어서 에너지 즉 열의 상태에 따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재료였다. 이렇듯 그의 신화는 구원, 신비주의, 종교적 의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보이스의 작업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만화 패널을 공간 양쪽에 배열하고 작가의 드로잉 노트와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보이스의 내면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그라베광장 앞 보이스 추모전
Warteschlangen am letzten Tag der Ausstellung Joseph Beuys. Parallelprozesse in der Kunstsammlung am Grabbeplatz 그라베광장 앞에 요셉 보이스 추모전을 감상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늘어선 관객들
펠트와 토끼: 치유와 탄생
제2전시실의 중심은 보이스의 펠트 양복이다. 보이스는 예술에 있어서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며 1960년대부터 멀티플 작업을 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한 멀티플일 것이다. 퍼포먼스 'Action and Dead Mouse/Isolation Unit'(1970)에서 이 양복을 입었는데, 펠트의 보온성은 '영적인 따스함 혹은 진화의 시작' 개념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예술에 있어서 그 치유력과 사회적 기능을 믿었던 보이스의 철학은 이렇듯 작품의 소재에도 반영된다.
1950년대부터 줄곧 펠트, 지방, 동(copper)과 같은 재료를 절연체, 전달체, 전도체, 변환체의 개념에서 작품에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고고학, 지형학, 인류학, 동물학, 신화, 역사, 본능, 의학, 에너지, 소통 등 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보호 혹은 방어적 개념의 펠트로 제작된 이 양복은 평범한 양복이 아니라 겸손한 재료로 만들어진 현대적 갑옷이라 할 수 있다. 긍휼의 대상인 인간의 육체(존재)가 제외된 빈껍데기 같지만 그럼에도 이 양복 안에는 영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이 양복은 단순한 양복이 아니며, 보이스에게 아트는 美(beauty)가 아니라 소통이자 자유에 관한 창조(creativity)임을 말해준다.
토끼와 대화하는 방
제4전시실은 토끼방으로 꾸며진다.
보이스의 작품에서 토끼는 드로잉이나 판화에도 등장하고 토끼 피가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퍼포먼스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구체적 내용은 작품에 따라 틀리지만 토끼는 생물학과 성별(양 이론), 동물의 직관력과 지능, 대지, 부활, 구원 등을 나타낸다. 전쟁은 보이스에게 자신의 신체,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퍼포먼스 영상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에서 보이스는 죽은 토끼를 안고 3시간 동안 들리지 않는 속삭임으로 토끼에게 자신의 드로잉을 설명한다. 작은 창문을 통해서만 보여진 샤머니즘적 퍼포먼스에서 그는 치유와 연금술을 상징하는 꿀과 금박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신을 토끼와 동일시하고 있다. 토끼는 굴속에서 태어나 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보이스에게는 탄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의 포퍼먼스를 보고 열광하는 관객
그는 이 퍼포먼스에 대해 "완고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더 잘 이해한다. 나는 토끼에게 그림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저 흝어 보는 일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는 순수한 정신, 정확한 해석에 연연하지 않는 정신은 모든 이에게 있다며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198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현무암 돌덩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7천 그루의 떡갈나무가 심어지는 것에 따라 조금씩 돌을 치우는 액션이었다. 이는 환경보호와 예술의 결합을 통해 지구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상징적 투쟁으로 해석되며, 예술가로서 파괴의 재건에 개입하고자 한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었다. 이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서 현무암 돌덩이에 토끼가 그려진 판화와 영상을 통해 선보인다.
요셉 보이스가 출연한 영화〈딜링어〉포스터. 실크스크린 1974. 저작권자 김순주. 그는 깽판 중에 깽판이다. 그는 진정한 신이다. 니체의 후손이다. 깽판의 깽판은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FLUXUS 퍼포먼스 - "사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구를 떠나라" - 요셉 보이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코요테 III'(1984)는 코요테의 괴성을 모방하는 보이스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백남준의 공동 퍼포먼스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코요테,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 한다'(1973)는 에너지 촉매작용의 상징인 펠트를 뒤집어 쓴 보이스가 미국 인디언이 숭배대상으로 삼았지만 미국인들에 의해 멸종된 코요테와 3일간 뉴욕의 한 화랑에서 동고동락한 퍼포먼스였다. 이렇게 코요테를 소재로 삼아 자연적이며 원시적인 것에서 생명을 구한 보이스의 토템적 신념은 문명이 자연과 공생해야 할 필연적 관계임을 시사하고 있으며 환경보호에 적극적인 사회적 행동가로서의 그의 행보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그의 활동을 전시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박윤정
보이스 따라하기
[작가소개] Joseph Beuys (May 12 1921 Krefeld–January 23 1986 Düsseldorf) was a German performance artist, sculptor, installation artist, graphic artist, art theorist and pedagogue of art. His extensive work is grounded in concepts of humanism, social philosophy and anthroposophy; it culminates in his "extended definition of art" and the idea of social sculpture as a gesamtkunstwerk, for which he claimed a creative, participatory role in shaping society and politics. His career was characterized by passionate, even acrimonious public debate, but he is now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rtists of the 20th century http://en.wikipedia.org/wiki/Joseph_Beuys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입구
Virgin (Jungfrau), April 4, 1979 / June 23, 1979. Chalk, tempera, wood, and soap on blackboard, 33 1/16 x 49 5/16 inches (84.2 x 125.3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94.4264. © 2009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VG Bild-Kunst, Bonn
Beuys’s public discussions—lectures on politics, aesthetics, metaphysics, and social relations that often served as catalysts for other work—exemplify his role as artist, teacher, and activist. One such discussion was held in Vienna on April 4, 1979, at the Galerie Nächst St. Stephan, where Beuys had been invited to speak in the context of a debate surrounding the use of Vienna’s Palais Lichtenstein as a museum for modern art. Earlier that same year, the gallery had given Beuys the opportunity to create an installation entitled Basic Room–Wet Laundry, a manifestation of his provocative contention that the baroque palace was as useful for hanging wet laundry as it was for displaying art. The April 4 discussion grew directly from that project. During the discussion, Beuys referred to a chalk drawing on a blackboard that showed the chemical formula for making soap. Using the soap-making process as a metaphor for social relations and its colloidal character as an analogy for the stages of fetal development, he then spoke of the cyclical nature of feminine cleansing, associating virginity and motherhood with cleanliness and impurity respectively. The lecture also related back to the notion of washing as “the traditional domain of women” presented in Basic Room–Wet Laundry. These themes were further brought to bear upon the machinations and politics of the art world, which the artist viewed with contempt. The installation Virgin, April 4, 1979, is a kind of “representation” of that lecture, and utilized the essential elements that comprised this cycle of works—soap, blackboard, a table and chair, and the single light bulb.
In the summer of that same year, Beuys made Virgin Basic–Wet Room Laundry for a major exhibition at the Vienna Secession. A further iteration of the previous two installations and lectures, this was to have been the grandest presentation of the subject of the Virgin. However, Beuys decided to isolate some (though not all) of the elements of the piece as independent objects after a vandal had damaged the work; Virgin, April 4, 1979/June 23, 1979, consists solely of the blackboard from the Vienna installation. Beuys reworked the imagery to evoke more painterly results, which he achieved by rubbing soap directly onto the surface in broad circular movements. The dual date refers to both that of the original idea—in this case, back to the April 4 discussion—and the date the piece was constituted as a self-contained object, rather than referring to the date of its actual creation, a practice occasionally used by Beuys to underscore his belief that “thinking=art.” - Matthew Drutt
사회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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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구사회를 깽판 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 Wikipedia
Joseph Beuys
F.I.U. Blackboards, 1977-1979 Blackboards, chalk, pail, water and rags
each blackboard: 63 x 47 1/2 x 5/8 in. (160 x 120.7 x 1.6 cm); bucket: 12 1/2"h x 11 1/4" dia.
Gift of Frayda and Ronald Feldman in Honor of James T. Demetrion, 2002
Joseph Beuys
Memory of My Youth in the Mountains, (1977)
Tallow, wax, wood, metal, oil, and carpenter's rule
40 3/4 x 63 1/4 x 44 5/8 in. (103.5 x 160.7 x 113.2 cm)
Holenia Purchase Fund in Memory of Joseph H. Hirshhorn and Joseph H. Hirshhorn Purchase Fund, 1996
(1947) and (1970s). Pencil on four sheets of paper on painted wood panel, Overall sheet: 11 7/8 x 38 5/8" (30.2 x 98.2 cm). with painted frame: 31 1/2 x 45 1/2" (80 x 115.6 cm). Gift of Agnes Gund and Jo Carole and Ronald S. Lauder. © 2011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VG Bild-Kunst, Bonn
1948-81. Glass, wood, and metal display case containing (left to right):
Untitled, 1974: stamped board, wooden blocks with pencil and ink, wooden boxes with honeycomb, and white tin can with asphalt; Untitled, c. 1964: bacon rind, fabric, and rubber band; Sheep (Schaf), 1948: brass; Disc (Scheibe), 1976: cardboard and oil paint; Untitled, 1972-81: fat, wax, and copper doorstop, in five parts; Untitled, 1958-59: plastic, fat, pencil, and tuning fork; Kings Head (Königskopf), 1962: zinc plate and stone; Tram (Strassenbahn), c. 1956-57: sticky foil, linen, oil paint, and pencil in a shoe box; Concert Mönchengladbach (Konzert Mönchengladbach), 1970: cassette player in leather case, 79 x 91 1/2 x 26 1/2" (200.7 x 232.4 x 67.3 cm). Gift of Maja Oeri and Hans Bodenmann. © 2011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VG Bild-Kunst, Bonn
Joseph Beuys (German, 1921 - 1986) Suit of Clothes, 1970 Grey felt AMAM 1972.48
Joseph Beuys (Germany, b.1921, d.1986) ©Joseph Beuys/Bild-Kunst. Licensed by VISCOPY, Sydney.
Joseph Beuys (Germany, b.1921, d.1986) ©Joseph Beuys/Bild-Kunst. Licensed by VISCOPY, Sydney.
Photograph gelatin silver photograph 30.9 x 22.1cm image; 40.5 x 30.5cm sheet Mervyn Horton Bequest Fund 2002 Photographer: Werner Krüger
Joseph Beuys (Germany, b.1921, d.1986) ©Joseph Beuys/Bild-Kunst. Licensed by VISCOPY, Sydney
http://collection.artgallery.nsw.gov.au/collection/search.do?keyword-0=Beuys_Joseph&field-0=simpleSearchObject&searchMode=simple&images=true
http://www.bonnefanten.nl/nl/hedendaagse_kunst/collectie/highlights 그의 작품 중에는 '당 독재를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How the dictationship of the Parties can be overcome 1971)'도 있지만 그런 제목처럼 그는 현실정치에도 깊이 참여했다.
Joseph Beuys, Das Ende des 20. Jahrhunderts, 1982-83, Sammlung Marx © VG Bild-Kunst, Bonn 2009, Foto: Thomas Bruns, Berlin http://www.hamburgerbahnhof.de/text.php?id=96&lang=en
Joseph Beuys German (Krefeld, Germany 1921 - 1986 Düsseldorf, Germany)
Two Fräuleins with Shining Bread, from the portfolio "décollage 5, happenings pieces musical scores", 1966
Multiple Strategies: Beuys, Maciunas, Fluxus Feb 24 2007 — Jun 10 2007 Busch-Reisinger Museum
Flux Year Box 2, late 1960s, Various Artists (George Maciunas, editor and designer), Harvard Art Museums/Fogg Museum. More. Multiple Strategies stages a dialogue between the work of German artist Joseph Beuys and that of the international avant-garde group Fluxus, in particular its principal designer and impresario George Maciunas. Although their approaches were not necessarily compatible, both Beuys and Fluxus sought to erase the boundaries between art and life.
The production of multiples played a key role in these efforts, mediating between the creation of objects and a growing emphasis on artistic process and action unfolding in real time. Ignoring traditional aesthetic criteria and frequently emphasizing the observer’s direct participation, these works often demanded a radical reconsider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its viewer. Organized thematically around a set of concerns common to both bodies of work, the exhibition examines the role of the printed or object multiple in these artists’ pursuit of an expanded notion of what art could and should be. Nearly 200 works, drawn from the significant holdings of Beuys and Fluxus in the permanent collections of the Busch-Reisinger Museum and the Fogg Museum respectively, are on display. Organized by Jacob Proctor, Ruth V S Lauer Curatorial Assistant, Print Department, Fogg Museum, and PhD candidate, History of Art and Architecture, Harvard University. A brochure accompanies this exhibition
Joseph Beuys, Cora-Tee, 1975 © VG Bild-Kunst, Bonn 2010 Copyright © 2009 President and Fellows of Harvard College
Zwei Fräulein mit leuchtendem Brot, aus "dé-coll/age/5, happenings stücke partituren"
Series: dé-coll/age/5, happenings stücke partituren
Multiple chocolate, typewritten text, oil paint, graphite, on off-white wove paper, metal paper clip
irregular: 66.8 x 20.8 x 1.5 cm Signed: in graphite at u.r.: Joseph Beuys
Harvard Art Museums/Busch-Reisinger Museum, The Willy and Charlotte Reber Collection, Edmée Busch Greenough Fund, 1995.211.1 Busch-Reisinger Museum
Joseph Beuys, La Rivoluzione siamo noi, 1972 © VG Bild-Kunst, Bonn 2010
Joseph Beuys – The Multiples
Thanks to the Beuys-Foundation Ulbricht, which was integrated into the Kunstmuseum’s collections in the mid-1980s, the Museum disposes over an extensive collection of Multiples by Joseph Beuys. Supplemented by purchases in later years, the collection today consists of a good 450 objects, postcards, printed graphics, posters, videos, records, etc. which were all made between 1965 and 1986, the year Joseph Beuys died.
Extremely diverse in nature with respect to the media used, the Multiples reflect in a complex manner the entire work, with which they are closely connected in terms of content and form. Sometimes they bear relevance to the early drawings or spectacular actions of the artist, sometimes however, they suffuse the artist’s thoughts with a specific pictorial form – such as is the case, for example with the Capri-Battery. Seen as a whole, the works outline the panorama of his creations and in doing so, confirm his statement If you have all of my Multiples, then you have all of me. Even though this is doubtlessly true, still the significance of the Multiples extends even further. As reasonably priced objects issued in a certain limited edition, they served the purpose of carrying his thoughts and actions out into society and to allow them to become effective there. Thus, the Multiples may be understood as homeopathic doses, which aimed to serve the rehabilitation and the healing of what in Beuys’s view, was the sick body of society.
Josef Beuys, show your wound (Zeige Deine Wunde), 1974/75
http://www.lenbachhaus.de/cms/index.php?id=24&L=1
Sealed Letter (1967) Beuys, Joseph felt, string, wax seal, 26 x 11 x 11 cm Donated by the Peter und Irene Ludwig Stiftung, Aachen, 1989
Joseph Beuys (1921-1986) The Pack (das Rudel), 1969, VW Bus Baujahr 61, 24 Schlitten, jeder ausgestattet mit Fett, Filzdecke, Gurten und Stablampe, ca. 200 x 400 x 1000 Inv. Nr. P1995/1 A
Die Arbeit The Pack (das Rudel) ist das zentrale Werk des Raumes in der Neuen Galerie, den Joseph Beuys 1976 im Erdgeschoß des Hauses installierte. Sie nimmt nahezu die gesamte Länge des Raumes ein. Der alte VW-Bus mit geöffneter Heckklappe steht den 22 neuen Schlitten gegenüber, die hinter ihm aufgestellt sind. Ein Schlitten befindet sich im Bus, ein weiterer lehnt an das Heck und stellt so eine Verbindung zwischen dem Fahrzeug und den anderen Schlitten dar. Die Schlitten stehen in drei Reihen längs, der Fahrtrichtung des Busses entgegengesetzt. Sie zeigen in Richtung Eingangshalle, aus dem Museum heraus, während der Bus in Richtung rechter Raumecke aufgestellt ist. Auf jedem Schlitten befinden sich die für Joseph Beuys charakteristischen Materialien Fett und Filz, sowie eine Stablampe.
Die Installation verweist auf die Biographie von Joseph Beuys. Er stürzte 1943 während eines Einsatzes auf der Krim mit dem Flugzeug ab und wurde nach eigenen Angaben von einheimischen Nomaden aufgefunden und mit einem Schlitten in ihr Zeltlager gebracht, wo er mit Filzdecken gewärmt und mit Fett ernährt wurde. Auf diese Weise wurde sein Leben gerettet. Die entgegen gesetzten Bewegungsrichtungen des Busses und der Schlitten stehen auch für zwei unterschiedlichen Lebensformen: die der Naturvölker und die der westlichen, technologisierten Welt.
소마미술관 요셉 보이스전 포스터
The installation refers to the biography of Joseph Beuys. He fell in 1943 during an application on the Crimea by the airplane and was discovered according to own information by local nomads and was brought with a sledge in her tent camp where he was warmed with felt covers and was nourished with fat. In this manner his life was saved. The opposite movement directions of the coach and the sledges stand also for two different life forms: those of the primitive races and those of the western, technology world
© 2010 Museumslandschaft Hessen Kassel (www.museum-kassel.de)
Die Museumslandschaft Hessen Kassel ist eine Einrichtung des Landes Hessen
Joseph Beuys (1921–1986) 'Crucifixion' 1962/1963, Wood, bottles, electrical cable, wire, paper, oil, plaster, nails, needles, 42,5 x 19 x 15 cm, © VG Bild-Kunst, Bonn 2006
An entirely earnest attempt to come to terms with the historical and current sense content of the theme, this installation calls to mind the traditional structure of the crucifixion group with the figures of Mary and John.
Beuys’ total renunciation of realistic, figural representation imbues the object-relics with a metaphorical significance. Thus the nails and the needles on the cross allude to the tools of Christ’s suffering and to physical and mental pain in general. Not only do the three blood-red crosses introduce the theme of the cross, they also refer, as do the two blood containers, to the symbolism associated with blood as a life-giving fluid – in a life that is inseparably linked with suffering.
The fragmented words on the scrap of newspaper unite concepts from the world of finance with the term »guilt« written on the bottle on the right and with the engagement announcement on the left-hand bottle, as a sign of love and the ideas of guilt and retribution. The metaphorical character of the objective aspects even encompasses the traces of use visible on the materials themselves, which serve not only as a mantle of protection but as a cloak of distance and disremembrance as well.
The artist brings the past to light, distilling it down to the timeless context of life and guilt, blood and suffering, life and death. [ KvM ]
Sammlung Marx: Joseph Beuys, Das Ende des 20. Jahrhunderts, 1982 - 83, 21 Basaltsteine, Filz, Tonerde, Steinbock, Brechstange, Maße variieren nach Aufbau
© VG BILD-KUNST, Bonn, Foto: Jens Ziehe
http://www.polomuseale.firenze.it/inv1890/inventario.asp?autn=Beuys%20Joseph
백남준이 호형호재한 요셉 보이스
Anzai Shigeo I '백남준, 요셉 보이스, Sogetsu Kaikan' 1984년 6월 2일 도쿄 1984 jpartmuseum/g_gen
Anzai Shigeo I '백남준, 요셉 보이스, Sogetsu Kaikan' 1984년 6월 2일 도쿄 1984 jpartmuseum/g_gen
"내 인생의 하나의 행운은 존 케이지가 완전히 성공하기 전에 그리고 요셉 보이스가 거의 무명일 때 만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경시대 금세기 두 거장과 동지로서 동등한 교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백남준
백남준 I '요셉 보이스' TV조각
"보이즈는 5분마다 걸려오는 모든 전화에 자신이 직접 응답해주는 철학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즐겨 행한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 패전국에다가 갑자기 경제대국이 되어 버린 불안한 독일사회에 누군가는 인간의 소리를 전달하는 어리석은 아저씨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보이스였다 " - 백남준
2011년 8월에 소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서로 만나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사간동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벌린 요셉 보이스 추모굿 퍼포먼스. © 최재영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1986년에 서울에서 공동 퍼포먼스를 하기를 약속했으나 아쉽게도 보이스가 먼저 서거하는 바람에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를 아쉬워 해 백남준은 그의 혈육 같은 보이스의 망령을 달래기 위해 서울에서 갤러리현대에서 요셉 보이스를 위한 굿을 공연했다.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의 상징인 모자에 삽으로 흙은 떠 뿌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 추모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적절했다 백남준의 고향이고 무속신앙이 아직도 문화의 이름으로 보전되어 있는 곳 언젠가는 한판 벌여져야할 운명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백남준의 지극한 팬이자 후원자인 언론인 영화인인 장 폴 파지에가 프랑스에서 날아와 전 장면을 녹화했다 "백남준의 그 치열한 삶과 예술(이용우저) 중에서
장 폴 파지에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왜 백남준을 좋아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모두가 백남준이다"라고 친근감이 가는 매력적 인간이었다.
요셉 보이스 작품 소장자 '환경을 사랑해달라'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1/08/25/0904000000AKR20110825127200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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