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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장 미셸 바스키아, 미국주류미술 전복

[장 미셸 바스키아(J.M Basquiat_1960-1988)] 2013.02.14-03.31 국제갤러리 2관(K2)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bit.ly/3h8SOR 

Jean-Michel Basquiat Julio Donoso/Sygma/TOPIC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eXjR-y0WH-I#! 

[작가소개] 장-미셸 바스키아는 1960년 12월 22일 미국 뉴욕주의 브룩클린에서 중산층 회계사이자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르트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그의 부모님은 바스키아가 7살 되던 해 이혼했다. 바스키아는 1988년 27세의 나이로 뉴욕 자택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요절하기까지 8 여 년의 짧은 작품 활동기간은 당시의 미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 미셸 바스키야 I '모나리자' 1983 

바스키야 I '무제' 1983 [사진출처] poulwebb.blogspot.kr/2011/02/jean-michel-basquiat-part-2.html 

만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바스키아는 15살 집을 나와 17살이 되던 해 당시 진보적인 대안학교, City As School을 그만두었고, 이후 그곳에서 만난 친구 제이콥 리즈 프로젝트의 낙서화가 알 디아즈와 함께 떠돌며 스프레이마커나 오일크레용을 사용해 뉴욕 소호 거리의 외벽에 사회적으로 저항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은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작품과 함께 늘 흔적을 남겨놓았고 이는 ‘세이모’ SAMO©(속어-Same Old Shit)라는 가상의 인물로 불려졌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Untitled (Hand Anatomy)' Acrylic, oilstick and paper collage on canvas with tied wood supports 152.4*52.4cm 1982 

이후 그들의 기지 넘치는 철학적 시 들로 이뤄진 문구들은 뉴욕 도시에 곳곳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비주류의 정서와 문화의 주요한 표현수단의 시발이 되었던 그래피티(Graffiti) 곧, 낙서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바스키아의 바램에 따라 도시를 캔버스 삼아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순간적인 상황에 따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향후 그래피티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바스키아는 미술 외에도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재능을 보였는데 디자이너로서 작품이미지를 티셔츠에 도안하여 판매하기도 하였고, 버려진 재료로 쥬얼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나아가 음악과 퍼포먼스를 행하는 밴드멤버로서 80년대 아티스트의 거점이 되었던 머드클럽, 클럽 57에서 활약했다.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New York) Six Crimee, 1982 Acrylic and oil stick on masonite 72 x 144 in.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The Scott D. F. Spiegel Collection 
[사진출처] 
http://www.moca.org/pc/viewArtWork.php?id=5 

국제갤러리는 오는 2월 14일 미국미술의 신표현주의 및 신 구상회화의 대표적인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전을 개최한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짧은 생애의 작품활동 시기에 따른 주요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지난 2006년에 이은 두번째 국제갤러리 개인전이다. 전시 참여작품들은 80년대 미국 팝아트의 부흥에 따른 대중적인 아이콘(예를 들면 당시 흑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음악가 찰리 파커, 야구선수 행크 아론)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으며, 시대적 하위문화의 정치적이고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Rusting red car in Kuau'Oil stieck and oil on canvas183*244cm 1984 

검은 피카소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바스키아의 천재성은 현대 회화의 대가(장 뒤뷔페, 싸이 톰블리, 그리고 재스퍼존스)들과 함께 거론 되기도 하였는데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들의 구성과 조합은 평론가들에게 탁월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의 작품 주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해부학의 도상들이 그려진 작품은 7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비장을 들어내야 했던 시절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그레이의 해부학'책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는 추후 전통적인 미술언어에 구애 받지 않은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작품언어에 근간이 되었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Old cars' Acrylic oilstick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22*120cm 1981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Procession' Acrylic and wood relief on wood 162*244cm 1986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Reok' Acrylic and oilstick on canvas 304*204cm 1985-1986 

[작품세계] 장-미셸 바스키아는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광기 어리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동시대의 중요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품 주제는 앞서 언급한대로 자전적 이야기, 흑인 영웅, 만화책, 해부학, 낙서, 낙서와 관련된 기호 및 상징뿐 아니라 금전적 가치, 인종주의, 죽음과 관련한 그만의 시적 문구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와 같은 주제들은 때때로 경계가 불분명하며 복합적이지만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기호, 문자, 인물, 등의 암시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Untitled(Hand Anatomy)' Acrylic, oilstick and paper collage on canvas with tied wood supports 152.4*52.4cm 1982 

[만화-낙서-해부학도상] 바스키아는 어렸을 적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어했는데 특히 어린이 만화 속에 반영된 정치적 상황의 이면을 그려냈다. 이는 사회적 현상의 이면의 것들, 예를 들어 스포츠가 정치적인 선전 목적으로 이용되고 대중문화의 도상은 인종차별주의 혹은 제도의 모순된 상징들에 관한 것이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MP' Acrylic and Xerox collage on canvas 218*173cm 1984 

그 외에도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해부학도상의 이미지는 바스키아의 유년기 일화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7살 때 사고로 비장을 제거한 경험 이후 다양한 해부학 서적들을 탐독했고 그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과 폴리쳐의 예술적 해부학의 내장 기관 드로잉 이미지들을 향후 회화에 차용했다. 이 비장(Spleen)이라는 단어는 종종 그 자신을 나타내는 의미로 등장한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Embittered' collage, pencil and painting on wood 125.7*184.2cm 1986 

SAMO(세이모)라는 은어를 이름 삼아 뉴욕도시를 돌며 낙서미술을 행해왔던 그는 이를 대중적인 시 또는 개념미술의 형태로 인식했다. 바스키아의 낙서에 대한 정의는 지하철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는 훨씬 폭넓었고, 1980-81년 보다 광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진행해왔다. 특히 작가 싸이 톰블리(Cy Twombly)의 영향은 낙서 같은 외관으로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해부학 외에도 풍부한 낙서이미지를 위해 아프리카의 암벽미술, 도식이미지자료집 등 여러 참고문헌에서 자신의 시각어휘를 풍부하게 해줄 기호와 상징, 표식의 공급원을 찾았다.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Untitled' Acrylic and oilstick on canvas 170*175cm 1981 

[자전적 이야기] 바스키아는 1977년-79년에는 SAMO라는 이름으로, 1980년부터 왕관기호와 저작권의 의미를 뜻하는 공증의 기호를 사용한다. 이 왕관이 상징하는 의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존경과 찬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후에 바스키아만의 고유의 기호 곧 날인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 예로 이번 전시작품 중 자동차와 비행기가 그려진 위 작품은 붉은 십자가의 구급차와 비행기들이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묘사되어 그의 유년시절 교통사고에 대한 암시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브룩클린에 위치한 라구아디아 공항과 케네디 국제 공항에서 착륙을 암시하는 비행기 역시 단순하게 표현되었고, 'AAAAA'라는 반복적인 이니셜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와 바스키아의 첫 번째 영웅인 흑인야구선수 행크 아론의 성'Aron'의 첫 글자의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나아가 이미지 중심에 위치한 망치는 당시 전설적인 야구선수 행크 아론이 홈런을 치는 모습에서 비롯된 별명 '망치질하는 행크(Hammering Hank)'를 암시한다. 


바스키아의 '머리(Head, 1983)' 오윤의 '새벽(1984)' 

시대적 문맥이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장-미셸 바스키아와 오륜 서로 닮은 구석이 많네요. 갑자기 1980년대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같은 시기에 죽은 한국의 오윤과 미국의 바스키아가 서로 만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유사점을 발견하고 '바로 이거야!'라고 맞장구를 쳤을까 아니면 차분히 서로 다른 점을 견주었을까?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I 'Untitled' Acrylic paper collage and oilstick on canvas 162*244cm 1981 

['검은 피카소'의 순수와 열정] 특히 8년간의 짧은 예술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해부학 도상들이 화폭에 넘쳐난다. 그가 일곱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 비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어머니가 건네준 책이 `그래이 아나토미(그래이의 해부학으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가 있음)`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화폭에는 인체를 해부한 이미지들과 화살표, 글자와 기호들이 넘쳐난다. 그가 보수적인 뉴욕 화단에 단번에 진입한 것은 거리의 그림들을 화폭에 옮겨오면서 새로운 회화 양식이 표출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감한 색채와 구도, 시대의 정서는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news.mk.co.kr/v3/view.php?no=115503&year=2013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