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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사방천지에서 연주되는 그림 교향곡


  • [장 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검은 연꽃' 국제갤러리(K3)
     2016년 2월 2일부터 3월 27일까지

    오늘아침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내 컴퓨터 바탕화면 아이콘 순서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누가 내 컴퓨터에 몰래 들어와 자료를 보고 있다는 소린데 봤으면 티를 내지 말든지 너무 하네요 게다가 바탕하면 아이콘에 담긴 2개의 원고도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오늘저녁엔 절전모드로 전원을 끄지 않은 채 잠시 나갔다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니 "IP주소가 할당받지 못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컴퓨터 화면이 먹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KT에 다시 전화를 해서 겨우 복원시켜 놓았네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 외부와 차단시키는 일종의 '트릭'인가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당하며 산다. 지난 번에는 페북에서 또 이번에는 블로그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만 보장해주면 어떤 정권이라도 좋다. 구글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고 본다 구글에서 유목민으로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나오더니 지금은 아예 제거시켜버렸군요


    때로는 럭셔리한 것이 속을 확 풀어주기도 한다 매우 프랑스적 작품이네요 꿈 낭만 섬세한 감각의 환영 미학적 영성 400년 프랑스 로코코 문화의 축적에서 나오는 깊이가 보인다 

    장-미셸 오토니엘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존재의 상실과 부재,
    그리고 인간이 지니는 상처들을 주제로 다루어왔다. 그는 주로 유황, 왁스, 인과 같은 화려한 외형과 반대되는
    독특하고 역설적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을 작품에 활용해왔으며,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리를 주요 매체로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주요한 작품으로는 성 소수자들의 참여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상처와 아픔을 빨간 목걸이에 비유한 <상처-목걸이 (Le Collier-Cicatrice)>(1997), 개인의 사적인 역사를 반추하는 대상으로써 침대를 상정하여 이를 유리구슬로 제작한 <나의 침대 (Mon lit)>(2003)가 있다. 

    이후 2000년 후반에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보다 추상적이며 공간 내에 역동적인 형상을 구현한 유리조각 설치를 진행하였다. 이 시점부터 오토니엘은 거울유리구슬을 주재료로 다루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정신분석학 이론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욕망과 잠재의식에 대해 다룬 <라캉의 매듭 (Lacan’s Knot)>(2009) 연작들이 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당하며 산다. 지난 한주 페북에서 이번엔 블로그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만 보장해주면 어떤 정권이라도 좋다. 구글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고 본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3278.html

    국제갤러리 와인바에서 작가의 모습 질문을 하는 사람은 중앙일보 데일리 문소영 기자 작품의 품격이 높아지다“나의 작업에서 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의 숨은 의미나 상징은 매력적인 것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나에게 끊임없는 경이의 원천은 바로 ‘실재하는 것들’이다.” -장-미셸 오토니엘

    Jean-Michel Othoniel | Black Lotus (#1), 2015 | Ink on white gold leaf, lithographic monotype on canvas | 160 x 120 x 5 cm 이번 전시의 주제는 연꽃, 한국에 와서 본 연꽃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잡았단다

    흙탕물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은 신비하다. 보들레르는 연꽃의 원리를 악의 꽃이라고 불렀다. 이 작가(장 미셸 오토니엘 Jean Michel Othoniel)는 이번에 3번째 만나는데 전에보다 더 멋있어졌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큰 전시를 많이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오토니엘(검은 연꽃) 국제갤러리 2016.2.2-3.27 다른 색채들의 연꽃 연작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형상들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황금 연꽃 (Gold Lotus)>은 미국 보스턴 소재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정원과 샌프란시스코의 온실 식물원에 설치된 작품 <바람의 장미 (La Rose des vent)>와 맥을 같이한다. 조각 상단의 꽃 형상 유리조각이 바람에 따라 회전하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바람이라는 자연적인 요소를 작품에 적극 개입시킴으로써 자연 현상이 작품의 일부이자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그 외 공중에 설치되는 거울유리 작품 <푸른 매듭(Blue Knot)>과 <홍색연꽃 (Pink Lotus)>은 거울유리로 제작된
    유연한 곡선의 매듭 작품으로, 반사되는 빛으로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며 화려한 외형을 통해 인간의 시각적인 욕망을 반추한다. 동시에 이 작품들은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와 유리가 지닌 소재의 특징에 따라 강직함과 섬세한
    떨림을 동시에 환기시키는 복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오토니엘은 사적인 것을 넘어 관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즉, 보다 새롭고 추상적이며
    급진적인 면모를 지닌 다차원적인 작품들로 자신의 작업세계를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극단의 아름다움과 맞닿은 양가적인 면을 표현하였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시(詩)적인 단순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 <<Black Lotus>>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장-미셀 오토니엘의 발전된 예술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목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꽃 한송이 피어날 때 온 우주를 돌리는 에너지가 없으면 피어나지 못한다. 마치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처럼 그런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고통이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는 것이 아닌가

    특별히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하게 탐구되는‘꽃’을 주제로 하며,나아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꽃의 내면적인 의미와 상징을 심화시킨다.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준비를 위해여러 해 한국을 방문하며 연꽃이 상징적으로 지니는 다각적인 (문화적,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대표적인 전시작품인 <검은 연꽃(Black Lotus)>은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랭보의 ‘보이지 않는 찬란함’에서 영감을 받아 모순된 단어의 조합에 양가적인 가치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유리로 주조된 대형설치작품과 함께 금박을 입힌 캔버스 위에 석판화 잉크로 겹겹이 채색한 평면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검은 연꽃> 설치작품은 작가가 진행해 온 유리 구슬 조각들의 일환이지만, 기존의 유리가 아닌 산화처리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육중한 느낌을 전달한다. 또한 검은색, 보라색 등 어두운 색으로 채색됨으로써정화, 깨달음, 깨끗함과 같은 연꽃의 본래 가치들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특히 5점의 <검은 연꽃> 평면 작품은 서양의 캔버스와 검은 석판화 잉크를 활용하여 동양의 서예가 지니는 기운생동의 기질과 먹이 지니는 이미지 너머의 내면적인 부분, 곧 정신적인 측면을 나타내고자 시도한 작품이다 

    장 미셸 오토니엘 Jean Michel Othoniel) 2011년 전시 플라토 미술관에서

    http://bit.ly/nfCfru <기사제목 삶의 경이로움, 유리구슬로 읊는 시인>


    장-미셸 오토니엘은 1964년 프랑스의 중동부 생테티엔 (St. Étienne)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나일찍이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1989년 프랑스 파리-세르지 미디(École Nationale Supérieured’Arts, Cergy-Pontoise)를 졸업하였다. 1985년부터 조각과 설치, 미디어 작품으로 꾸준히 전시 활동을 하였으며,유황을 소재로 한 조각작품으로 1992년 독일카셀도큐멘타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서 수준 높은 유리가공 기술을 접한 이후 유리를 이용한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1990년대 후반부터 유리로 목걸이를 만드는 독창적인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왔다. 2005년 아트바젤의 ArtUnlimited 부문에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집단과 한 사회가 안고 살아가는 상처와 슬픔을 나타낸 작품 <눈물의배 (Le Bateau de larmes)>를 선보여 세계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11년 첫 회고전으로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My Wa

    [2016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2016년 9월1일부터 11월 20일까지
    [관련기사 뉴시스] 박현주기자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08_0013943284&cID=10701&pID=10700

    서울 기자 간담회가 광화문 달개비. 이번 비엔날레는 다니카와 신따로의 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따온 화성인의 말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를 주제로 한다. 

    < 미디어란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는 것이다> -총감독 백지숙 중남미 아프리카의 상상력을 보듬어안다 서울비엔날레 미디어시티가 바로 나다 우리다가 되려면 대중과 소통이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담론을 돌출시키거나 생산하는것이 시급한과제다 서울시립미술관 전공간을 전천후로 활용한다

    [2016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9월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이번 비엔날레 제목은 아래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왔다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 만유인력이란 /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전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관장] 취임 3개월 맞아 3월 18일(금) 
    서울관에서 언론간담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세계화 현대화을 위하 4대 중점과제’ 발표
    [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12214165&code=960202

    [목표]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한국 미술 시스템의 세계화, 한국 동시대 문화를 위한 중심 기관 [4대 중점과제] 1)공공 프로그램-연구를 통한 국내외 학술 연구 및 연계 확대 2)출판 기능 강화를 통한 한국 근·현대미술관련 국·영문 서적 국내외 보급 3)커뮤니케이션, 사업개발 체계화 및 4관 체재의 정체성 지지·개발  4) 고객관계관리 강화 및 소장품 고화질 디지털화 등 대국민 서비스 개선 

    마리관장 여러 번 손을 들었는데 결국 질문을 못 했군요. 본인이 너무 길게 말하니까 조금 답답하네요 질문이 많기도 했지만 나 말고도 시간이 없어서 질문은 못한 사람은 5명은 되는 것 같다 통역이 있기에 더 그런가 그런 점도 고려해야 하는데 내 질문은 간단하다 
    [일단 칭찬의 말을 관장이 말하는 1) 관객중심의 미술관 2) 미술담론생산에 사상가를 포함시킨다 대환영이다]   

    "본론으로 1993년 백남준은 당시 동네미술 수준인 한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해 뉴욕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열린 전시를 과천국립미술관에 순회전으로 수입해왔고 거기에 본인이 휘트니에서 받은 상금 3억을 투자했다 지금으로 평가하면 30억이 될 수도 있다 국립은 백남준이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나도록 첫해 사진전을 한 것 이외는 한번도 백남준 전시나 백남준 도록을 만든 적이 없다 일년의 500억을 쓰면서 그의 빚을 갚는다는 의미로 올해나 이후에 그에 대한 전시를 할 계획은 없는지?"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 관장을 대환영했다 그 이유는 학연 지연 등에서 벗어보다 보다 합리적으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인데 이번에 보니 소통에서 더 큰 장애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를 한다고 장을 열어놓고 질문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일단 소통하는 방식에서 합격점수를 줄 수가 없다

    [Hong Art Basel] 2016.03-24-26


    내가 아는 뉴욕 첼시에 있는 303갤러리(Booth 3C05)가 아트바젤홍콩에 출품했군요 Art|Basel Hong Kong Booth 3C05 Hong Kong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 March 24 - 26, 2016


    [사진 하태임작가]

    Edouard Malingue Gallery at Art Basel HK 2016

    우연히 알게된 에두아르 말랭그 갤러리 홍콩바젤참가 소식오다


    단색화의 풍격이 느껴지다

    학고재 부츠

    [김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2016년 3월 25일(금)-8월 14일(일) 

    김환기, 16-Ⅸ-73 _318, 1973, 코튼에 유채, 265x209cm 
    환기미술관은 2016년 3월 25일부터 8월 14일까지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展을 연다. 1950년대 초기에서 1970년대 말년에 걸친 유화, 드로잉, 과슈, 신문지·한지에 유채, 종이 콜라주 등 시대의 대표작 400여 점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로 2016년의 첫 특별전이다.

    천재 예술가의 탄생에 절대적 지지와 조력을 아끼지 않았고, 작가의 사후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여 그의 예술이 갖는 가치와 거장의 예술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한 김향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는 대표적인 유화작품과 더불어 미공개작을 포함한 순수하고 정감있는 수많은 드로잉과 과슈, 콜라주가 본관 1,2층에 나뉘어 전시된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기에 그린 작은 스케치의 작품에서부터 서울 성북동시절, 파리시대 작품에 이어 1970년대 전면점화가 탄생하기까지 다채로운 화면구성과 리듬감으로 시적인 감수성을 자아내는 점, 선, 면의 변조들을 드로잉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또한, 김환기의 즉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과슈(Gouache)를 함께 선보이면서 산, 달, 매화, 구름 등의 자연의 정서와 민족적 감흥을 일깨우는 화면구성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본관 3층은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의 집약체이며 그 여정의 기록이라 일컫는 대형점화點畵가 전시된다. 

    김환기 대형점화의 공간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열어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몽상의 세계로 이끌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정신적 탐험은 영혼의 메아리가 되어 감동을 부른다. 현실의 무게와 세상의 번잡함에 지친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숭고한 명상의 세계이다.입장료 1만원/5천원

    [임민욱개인전 '만일(萬一)의 약속']

    삼성플라토미술관에서 2015 12월 3일부터-2016 3월13일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i0bq 

    임민욱 작가   질의응답시간 그녀의 오브제가에는 질곡의 한바도 역사를 고비를 넘어서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담겨 있다 임민욱 작가에게 가장 충격을 준 3가지는 1979년 대통령의 죽음과 1983년 9개월간 진행된 이산가족 찾아주는 프로그램 그리고 1984년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오웰이라고 했는데 이산가족 작품을 사진을 못 찍었군요 
    임민욱(1968년생)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  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광주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07 에르메스 미술상, 2010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 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나는 언어 지역 혈연 국가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지워지고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볼 뿐이다. 예술이지향하는 미지의 장소는 기존의 의미부여와 상징차원의 순서나 질서를 뒤섞어 고귀한 것 하찮은 것 공존햐고 충돌하는 곳 이다 그것이 자율적 삶의 형태로 재발견하다... 애도는 오히려 현세의 고리를 끊어내 원한감정을 같은 것이 없는 삶을 만들기 위한 것 진정한 장례(통과의례)를 치룬 뒤에나 가능한 진정한 관계 맺기 궁극적인 안식을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임민욱작가

    "(광주비엔날레에서 온)대형 컨테이너 도어(문)를 쌓아 제작한 <시민의 문(아래작품)>의 열려진 문은 나에게 도래하지 않는 그 미지의 공동체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강고한 환대의 제스처로 보인다. 예술은 그렇게 만일을 약속할 수 있는 공동체구성원을 발명해내는 상상의 장소가 된다" -임민욱도록 김남시(이대 조형학부 교수) 글에서 굳게 닫혀 있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대조를 이룬다. 

    이번 임민욱 작가의 전시 제목의 '만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만의 하나(10000분의1)라는 뜻으로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고 실현가능성이 낮지만 그럼에도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겠죠. 원래 예술을 무목적이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예술에서는 만의 일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본에 의해 번역된 근대화가 들어온 지 100년 헬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니 격세지감이다. 서양의 인류학자는 서양에서는 근대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고 백남준은 서구의 나치즘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보는 근대화의 신화를 깨기 위해 요셉 보이스과 같은 패가 되어 근대화의 상징인 바이올린을 시체처럼 끌고 다니고 피아노를 개처럼 패고 부서 버리는 퍼포먼스를 죽은 날까지 계속했죠. 바로 인간의삶이 흐르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런 근대화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임민욱이다


    임민욱 작가 왼쪽 플라토미술관 
    임민욱 작가전시 2015. 21.01.2016.02.19. 삼성플라도미술관 맨 왼쪽이 임 작가다. 현대미술의 자료의 독창성 그가 설치한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우리시대의 뼈아픈 이야기는 굽이굽이 사연도 많다 그럼에도 그의 애니미즘에는 우리의 삶을 살려내는 강력한 힘을 작품 속에 깊이 품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공동창작의 새로운 방법으로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임민욱은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출판, 교육 등 전방위적 활동을 전개하며 자신만의 시선을 구축해왔다. 그는 한국 사회가 숨가쁜 도시근대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시간에 의해 마모된 삶과 기억을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영상으로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들과 신작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설치를 구성하는 작가의 미드 커리어 전시이다. <통일등고선>(2015)은 분단국가의 작가로서 남북분단과 이산가족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미 <절반의 가능성>(2012)에서부터 남북한 사람들의 눈물을 질문한 그는 이번 작품  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사유한다. 

    포처블 키퍼 운하리 작가 담고 싶은 서사를 오브제에 애니메이션 시키는 여성 작가 셋을 고르라고 하면 이불 양혜규 그리고 임민욱이 아닌가 싶다. 아차 손정은 작가도 들어간다. 일종의 애니미즘이다 다버려야할 물건에 새로운 혼과 기와 에너지가 들어가 새로 살아난다. < 만일(萬一)의 약속>(2015)은 1983년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흩어진 채로 사라지고 있는 한국의 디아스포라(흩어짐, 離散) 현상을  재조명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정착하지 못한 장소, 유목적인 오브제로 등장해왔던 컨테이너는 이번 전시에서 역설적 공간이 되었다. 로비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시민의 문>(2015)은 옆면이 생략되고 열려 있는 채 스피커 공간이 되었고,  <무제> (2015)에서는 분장실 거울이나 광고판 같은 표면으로 치환되어 길 위의 삶이 지닌  장소성을 드러낸다. 

    허공의 질주 <허공에의 질주>(2015)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이산가족찾기’ 촬영현장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 변형한 미디어 장치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 받은 애니미즘적 상상력의 산물이고 경계를 넘는 가능성의 세계를 재연한다.  사라짐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복원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해 온 임민욱은 라텍스,  스폰지, 촛농, 갑오징어 뼈와 같이 미술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재료들로 유기체적  존재들을 그려 왔다. 중력을 거슬러 흐름을 회복하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희구는 <포터블 키퍼>(2009-)에서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동시켜   흐름을 만들어 내는 프로펠러나, 창공을 가르고 비상하는 새의 깃털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더해진 소리, 조명, 온도 같은 청각적, 촉각적 요소들은 재료 자체의 물성을 넘어 슬픔과 같은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낸다. <손의 무게>(2010), <불의 절벽 3> (2012)은 죽어가는 자연과 파국적 정서를 열감지 카메라로 그려내면서 “촉각적    비젼”이라는 작가의 관점을 전달한다. 

    이 세상의 미디어 아닌 것은 없지만 그 다양한 미디어 속에 참으로 정직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물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할까요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 보다는 왜곡 구절시키는 화려한 화면들 속에 우리는 진실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방송미디어를 찍은 사람이 반신반인인데 이것을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임민욱은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양가적 시선으로 관찰하면서도 이를 미학적으로   재배치하여 사회 의식과 예술 간의 긴장을 탁월하게 조율해 온 작가이다. 광복    70주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개최하는 '만일(萬一)의 약속'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며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프로그램으로 ‘아티스트 토크’와 2015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가족>을 상영하는 ‘플라토 스크리닝’ 등이 준비된다.

    통일등고선 2012-2015 한반도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조형적 실험과 과감한 상상력은 역시 임민욱 작가의 화풍이 드러난다 존재보다 소유, 소유보다 어필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자본의 스펙터클과 서치라이트의 사회에서 서술되지 않고 누락되고 외면당하는 숨겨진 서사는 매우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고 도전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예술적 장치로 다시소통할 수 있는 노력은 시도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실패의 가능성이 99%넘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임민욱 작가는 "예술가란 시시포스처럼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그 언덕에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돈을 던지며 그 언덕을 계속 오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체면을 구기는 얼굴(쪽)팔림 두려워하지 말고 가장 사적인 우리의 감정이 실은 전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의 문제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폭로시켜야 한다. 그런데 임민욱 작가는 이런 걸 시각언어(전단, 신문, 단파방송, 라디오, 비디오, TV생방송)로 재해석한다 그런 때 삶의 냄새와 흔적과 기억을 매우 중시한다.

    예술이란 사회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재는 온도계이기에 예술가는 기존의 언론미디어가 왜곡시키고 굴절시킨 것을 제자리로 돌려주는 예술미디어를 발명해야 한다 임민욱작가의 작품세계에 이런 일면이 보인다 작가는 사회의 몸에 손을 대고 그 온도를 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에는 seeing 보다 touching가 더 중요하다 임민욱 작가의 열감지 카메라는 이렇게 해서 발명된다 임민욱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공동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장-뤽 낭시(Jean-Luc Nancy, 1940~) 무위[無爲]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한다. 

    그 ‘관계’는 단순히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정한 조건이자 근거인 우리의 ‘자연적인’ 평등의 장소이며 소통의 장소다. 낭시는 그 장소를 ‘무위(無爲, desœuvrement) 지워지기 이전의 손을 대지 않은 공동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는 그 무위의 장소가 결코 어떤 구도, 목적, 기획, 프로그램에 따라 규정되거나 고정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정치적 투쟁이나 제도에 대한 개혁의 시도나 기존 사회 구조에 대한 변혁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윤리적, 총체적, 사회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개념적, 관념적 구도에도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시의 메시지는 사회가 동일성의 가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구조화되고 폐쇄적으로 될 때, 즉 사회 바깥에서의 지정될 수 없는 무위와의 관계를 망각할 때, 필연적으로 파탄의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다. 또한 그 무위의 관계가, 즉 궁극적으로 어떠한 존재 이유도 존재 목적도 어떠한 명확한 동일성의 근거도 갖고 있지 않은 유토피아적(또는 불가능한) 장소가 모든 사회의 중심에, 즉 현실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관계의 중심에 보이지 않게(또는 블랑쇼의 표현을 따르면, “밝힐 수 없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전시] 오프닝행사 프랑스 대통령 엘리제궁에서 2016년 3월 21일 늦은 6-8시 Elysee Laurent Grasso 22 March-30 April

    프랑스 대통령 엘리지궁

    자국의 작가 오프닝행사를 위해서 대통령궁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개념 예술가 로랑 그라소 '의 개인전_'엘리제'] 홍콩 에두아르 말리그 갤러리 이벤트, 전설, 초자연적인 현상 등 매혹적인 주제의 묘사로 진화, 역사적 과학문서에 대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 활용 우리의 시각은 개인적인 의식에 연결시키다 과거, 현재, 미래, 앞뒤로 현실과 허구 사이의 이동 믹스,  렌즈로 보는 대담하고 정교한세상을 본다.  


    [작가소개] 2008년에 권위 있는 마르셀 뒤샹 상을 수상 작가 로랑 그라소는 빌라 메디치, 로마와 ISCP, 뉴욕에서 레지던시를 개최했다. 2016 년에 그는 파리 13 지구에 영구 공공 설치 'SolarWind'를 선보이다 미국 MASS MoCA과 프랑스 퐁피두메츠 예정. 캐나다 몬트리올미술관, 바젤 쿤스트 하우스 Baselland, 파리 주드폼에서 개인전 (TASCHEN) 출판물이 나오고 소장처 파리 퐁피두 센터,도쿄모리미술관, 삼성리움 미술관등

    [정현 개인전 _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파리 팔레루아얄(왕궁) 정원에서 
    2016년 3월30일 - 6월12일 (75일간)] -조각_서있는 사람 (L'Homme Debout)] 침목 조각 50여점




    인간의 존엄은 서 있는 데 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ETRE Debout/To be standing(서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인간은 그 어떤 것 예컨대 금력이나 권력이나 사회적 경력(지위)에 대해 무릎을 꿇는다면 그때부터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파리 팔레루아얄정원(Jardin des Palais Royal)에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조각가 정현의 개인전을 오는 3월30일부터 6월1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 프랑스국가기념비센터, 그리고 팔레루아얄궁의 전시 승인 하에 현지에서는 파리 IBU 갤러리 디렉터 씨릴 에르멜과 국내에서는 학고재갤러리와 함께 진행을 했다.

    조각가 정현이 선택하고 사용하는 재료는 대부분 그 용도를 다한 것들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낡고 버려져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침목,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파쇄공 등의 재료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끌어낸다. 정현은 재료에 지나친 변형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재료와 조응하여 그 특성을 잃지 않도록 작업한다. 폐기 철물이 품고 있는 힘을 표면 밖으로 끌어내는 것에 주력한다.

    정현은 인체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통해 작품의 의미와 조형성을 탐구한다. 미완성품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인간의 삶과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 팔레루아얄정원에서 개최되는 이번 <서있는 사람>展에서는 정현의 침목 작품 50여 점이 출품된다. 작가는 90년대 후반부터 침목을 중요한 재료로 삼아왔다. 오랜 시간동안 철도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친 비바람을 맞은 이 재료를 작가는 전기톱과 도끼로 자르고 찍어내어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침목의 팍팍함과 나무결은 현대 사회를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을 나타내며 인체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나무 원재료의 질긴 추상성만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철도에 누워있었던 침목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팔레루아얄에서 작가로 인해 다시 일어섰다. 작가는 잘라낸 침목을 얼기설기 붙여 마치 작은 몸집에 품고 있던 인간의 존재가 거대한 실체로 다가오는 듯이 작은 군상을 만들어낸다.

    정현은 1956년 인천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어 프랑스 파리국립고등미술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베이징 금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김종영미술관,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소마미술관, 포항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2006 올해의 작가’, 제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대상에 이어 2014년에는 김세중조각상 본상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디오아티스트 이이남 <2016 파리아트페어> 3월 30일 4월3일까지 Stand E8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에 이이남 작가 그것을 작가나름의 새로운 관점으로 미디어아트로 번역하여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다 여기서 전투기기 꽃이 되는 것은 인류의 재앙이 비디오아트를 통해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한편의 미술작품감상] 

    로히어르 반 데르 베이던 여인초상 떡갈나무에 유채 47*32cm 1435-1440

    부친은 독일에서 기술연수(단기유학)를 받으러 갔던 때가 56년 백남준이 처음 독일유학을 간 해였는데 부친이 건강이 악화되어 57년에 귀국했고 그 이후에는 부친이 연수한 독일화학회사 BASF에서 매년 달력을 보내줬는데 거기에는 독일 르네상스 전후의 명화가 들어있었는데 인상적인 화가는 바로 '뒤러'와 '반 데르 베이던'였다

    나는 '뒤러' 자화상은 너무 무서워 싫어했고 반면 '반 데르 베이던'의 여인상은 좋았다. 그러니까 내 생애 처음으로 서양미술을 접한 셈이다. 그때가 1960년인 것 같다. 당시에도 독일인쇄술은 세계최고라 달력 속 명화는 마치 미술관에서 보는 것 같았다. 바로 아래 그림이다.

    [주재환 개인전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
     Joo Jaehwan 'Joo Jaehwan: Metamorphosis in the darkness'전시기간 : 2016년 3월 4일(금) - 4월 6일(수)전시장소 : 학고재갤러리 출 품 작 : 약 50여 점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i3wf

    주재환화백가 생각하는 작가는 2가지 유형 1) 사제형 2) 광대형 본인은 광대형인데 하나를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회화와 오브제를 병행한다. 이성과 질서와 규율보다는 이탈과 엽기와 탈선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일상을 낯설게 하고 경계를 파괴하는 방식이다 사회비판적이면서도 그것이 다는 아니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또한 시대를 통합적으로 보기도 한다

    주재환은 미술인 사이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한 작가로 오랫동안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그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 기회는 많지 않았다. 주재환은 예순이 다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가졌고 지금까지 그 숫자는 9회에 그친다. 본 전시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의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 동안 주재환 작품 세계에 대한 논의는 작품의 사회 비판적 주제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이루어졌다.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러한 맥락 속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본 전시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다.

    작가소개 주재환周在煥은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토박이로 재동국민학교, 휘문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 반 고흐(Van Gogh)에 반해 미술가로써 꿈을 키웠다. 당시 교사는 권영우(1926-2013)였다. 아직도 중학생 주재환을 기억하는 친구는 '너는 귀 언제 자를 것이냐'며 농을 던지곤 한다.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한학기만에 중퇴했다. 학교 등록금으로 더 많은 재료를 구해 작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이유였다.

    주재환은 이후 20년간 미술과 아무 상관 없는 다양한 직종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한 시절을 보냈다. 20대에는 피아노 외판원, 창경궁 아이스크림 장사꾼, 파출소 방범대원 등으로 일했다. 30대에 들어 민속학자 심우성을 도와 잡지사, 출판사 일을 시작했다. 독서생활, 삼성출판사, 미술과 생활, 출판문화연구소 , 미진사를 거쳤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사회 현실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덧붙여, 수더분하면서도 재치 있는 표정과 태도, 남을 널리 포용할 줄 아는 도량 역시 선물로 얻었다.

    주재환은 작가 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림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로 학림다방, 르네상스, 명동 은성, 송석 등 다방과 술집이 주로 모이는 장소였다. 대학교 선후배부터 미술평론가 이일, 시인 김수영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향으로 창작욕이 생겨 1970년대 초반에는 김인환이 하던 광화문 술집 쪽샘에서 작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주재환은 1979년 '현실과 발언' 의 결성 과정과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출품을 계기로 미술계라 불리는 곳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주로 당시 역사적, 정치적 주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그린 <몬드리안 호텔>(1980)과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0)는 지금껏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현실과 발언' 이후 주재환의 사회적 삶은 진보적 지식인, 작가, 활동가 등에 걸친 복잡한 것이었다. 쉽지 않았던 86년의 장준하 선생 새긴돌 건립일이나 90년의 4.19혁명 30주기 기념행사 준비 등이 그 예다. 이런 류의 재야쪽 공공적 일에 그는 많은 애정과 시간을 쏟았다.

    주재환은 1990년대 들어 역사, 정치가 아닌 자본 구조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이 무렵은 80년대적 민주화 운동의 가투식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던 때였다. 해외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국내에선 김영삼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다. 그의 90년대 작품은 변화한 사회를 80년대 작품과 다른 시각으로 포착, 비판한 것이다. <미제점 송가>, <짜장면 배달>, <쇼핑맨> 등이 90년대 대표작이다. 

    주재환은 2000년대에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그의 다양한 작업 방식에서 느끼는 해방감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2001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 2007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 개인전, 2003 제 50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2001년 제 10회 민족예술인상, 2002년 유네스코 프라이즈 특별상을 받았다.


    빛과 속도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 방식 : <짜장면 배달> (1998)

    짜장면 배달2003판화52x42.5cm  

    어둠의 공간은 또한 일상을 바삐 살아가는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서민의 삶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어둠은, 사회가 규정한 그들의 정체성이나 존재방식이 중지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실험될 수 있는-비록 일시적일 수는 있어도-자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밤의 어둠은 주재환의 1998년 유화 <짜장면 배달> (54x65cm)의 짜장면 배달원에게도 그런 가능성의 무대였다. 



    도로 위에서만큼 사회적 지위나 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운전자에 대한 정보가 없이도 차의 브랜드나 모델명에 따라 그 사람의 세속적 지위와 권세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낮과는 달리 밤의 어둠 속에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형체가 가려진다. 그래서 밤의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자신이 낮에 가졌던 정체성들로부터 자유로이 벗어나서 변신을 꿈꾸게 된다.

    주재환은 <짜장면 배달>에서 어둠 속을 날라갈듯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배달원과 바람에 휘 날리는 짜장 면발을 통해 삶의 팍팍함과 고됨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배달원은 그러한 삶의 무게에 눌리고 좌절된 모습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경쾌하게 치고 나가는 유희하는 자의 모습으로, 혹은 현실의 질서를 파괴하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주재환은 그 낯선 이면을 어둠과 함께 ‘속도’라는 요소를 통해 드러낸다. 사실, ‘속도’만큼 그의 작품(만들기)의 성격을 잘 묘사해 주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의 예술적 기질로 인해 그는 빠른 속도로 콜라주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는 그 집중의 순간으로부터 창조의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고 또한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그에게 ‘속도’는 다른 세계의 시간이고, 예술적 창조의 순간이며 자유의 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가 배달원을 표현할 때 ‘속도’의 짜릿함과 그 위험함이 만들어내는 ‘변신’의 가능성과 자유를 포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두운 도로를 위험천만하게 달리는 배달원의 모습은 거친 폭주족의 모습이나 불빛에 덤벼드는 불나방같이 위태위태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그는 유흥가의 네온사인이나 도로위의 불빛 행렬과 같은 현란한 빛과 넘쳐나는 동적인 에너지에 의해 어지럽고 기괴스럽게 보인다. 배달원은 어둠, 속도, 빛과 에너지, 이 모두의 총체인 듯하다. 대담하게 형태를 단순화한 주황색선(또는 색면)으로 표현된 배달원의 몸은, 흥분으로 인해 뿜어 나오는 에너지로 번개의 불빛이나 유령의 모습에 가깝다. 



    아웃라인이 없는 그의 몸은 배경과의 경계에 채도가 낮은 주황색이나 흰색을 칠해줌으로써 빛이 퍼지는 효과를 준다. 이는 어둠속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의 몸을 보는 주재환(또는 행인)의 시각적 경험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배경은 검정, 흰색, 보라색을 통해 오토바이의 속도나 도로면을 묘사하고 있고, 인물과 배경은 색면과 색면의 평면적 관계로 치환되면서 추상에 가까운 형상을 띄고 있다. 이렇게 화면 전체는, 어둠 속의 빛과 속도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감각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더군다나 배달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 바퀴위에서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형상이다. 또는 오토바이 바퀴는 괴기스럽게 그의 발과 다리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 오토바이 바퀴를 보면 바퀴라기보다는 돋보기안경을 쓴 외계인의 눈 같기도 하고 회전하는 원 안의 쉼표나 컵 안에 폭풍의 눈 같다. 

    이와 함께 빠른 속도로 인해 흩날리는 그의 짜장 면발은 마치 귀신의 머리칼이나 메기수염과 같다. 이러한 감각적 변신들 속에서, 밤 시간에도 일하기를 강요하는 현대의 광기에 의해 배달의 수단으로 전락한 자신의 몸을 자유의 몸으로 변신시킴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배달원을 발견한다면 과장이 될까? 기존의 규율을 무시하고 밤 도로를 멋대로 질주하는 배달원의 형상화에서 우리가 쾌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자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번 전시의 기획자 유혜종선생은 미국코넬대학교에서 민중미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왼쪽) 

    2000년 아트센터에서 선보인 '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은 이번에도 전시되는데, 예술의 본질이란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고 전복시키는 데' 있음을 상기시킨다. 서구문법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 없으면 창작의 거점을 찾기 어렵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을 길들이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바로 작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로 본다.

    또 2007년 '사루비아다방'에서는 불신사회의 기표인 감시카메라를 등장시키면서 'CCTV 작동중_잃어버린 밤'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화폐만 보고 달려가는 미술시장은 작품의 진가나 예술성은 볼 여유도 없이 가격상승에만 관심을 두고 있음을 꼬집었다.


    주재환 작가와 정재숙기자

    백남준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작가와 소통방식 러브샷 기자가 작가보다 더 작가같다 공개하기 뭐한 사진이지만 하도 유쾌해서 소개한다 ㅋㅋ


    [김정헌 선생 개인전] Art Space Pool(아트스페인스풀)에서 2016.3.17-4.10
    *대중교통 이용시*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나와 7022 버스타고 구기동서 내려 길 건너 파리바게뜨 왼쪽 길 직진 옷수선집 보이는 골목 왼쪽 언덕 김정헌과 김정헌개인전 생각의 그림, 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불패의 그냥 명작전 

    김정헌선생님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할 때 아르코에서 처음 뵈었는데 굉장히 미남이셨다 오늘 보니까 춤도 잘 추다 불편한 시대, 이해불가능한 헙법 유린의 시대 소통부재의 시대에 혁명이 뒷걸음질 친 그 자리에 "예술이 앞장 서서 잠든 양심을 일깨울 수 있을까 ?'


    관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의 출사


    이런 사진 잘 하면 예술사진 될 것 같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선생님 왼쪽에 보이네요


    김정헌작품 너와나의 호수적 관계는 우주의 빅뱅으로 태어났다 2014 '나는 너고 너는 나다'라는소리인가 


    오늘은 외국관객도 좀 보이는데 김정헌 선생의 작품은 생각의 density가 높다 오랫동안 생각한 것을 농축시켜 제목을 붙였다. 블랙 코미디 같아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그 뒷맛을 씁쓸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하다


    김정헌 I  산동네풍경 1978 여기서굵은 선은 긁어낸 것이다 

    김정헌 작가 70년대 말 작품들 그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80년대 게릴라시대에는 그런 방식을 많이 버리신 것 같다

    시인들의 만남

    오늘은 정말 시인들이 많이 왔다 신경림시인과 최영미 시인이 오래간만에 만났군요 민정기작가도 보이네요 또 뒤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시집을 낸 정희성 시인도 보이네요 시인이시기도 한 백기완선생도 오셨다

    "우리가 구원을 희망할 경우 희망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는 음성이 있다. 그렇지먼 우리에게 한순간이나마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은 무기력하기 그지없지먼 그러한 희망인 것이다 -아도르노

    김정헌선생님 전시 때 누군가 찍은 사진 


    작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장상을 받은 임흥순작가 진작 만났어야 했는데 오늘에야 겨우 대면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보고 싶었는데 참 반가웠다

    푸집한 뒷풀이 진짜 사람이 많다. 양쪽 방이 꽉 찼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초록빛 환영'_이숙자] 내일부터 2016년 3월 25일(금)-2016년 7월 17일(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전시실 약 60점의 작품 및 드로잉, 자료 등등

    이번 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사의 정립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인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한국화부문 세 번째 전시로, 지향 이숙자(芝鄕 李淑子, 1942~)의 반세기에 걸친 채색화의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채색화 작가의 개인전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해방 직후에는 채색화를 일본화와 동일시하는 왜곡된 인식과 친일작가논란 때문에, 채색화의 정통성이 인정된 이후에는 한국화 자체의 침체로 조명 받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숙자는 일관되게 현재까지 채색화의 정통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숙자는 홍익대에서 수학하며 천경...자(千鏡子, 1924~2015), 김기창(金基昶, 1913~2001), 그리고 박생광(朴生光, 1904~1985)과 같은 근대기 한국채색화의 맥을 이었던 대표적인 스승들에게 지도를 받았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 입선을 통해 데뷔한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세기 후반, ‘한국화’라는 단어가 탄생했던 그 시기, 이숙자는 이 신생단어의 개념과 특성 확립을 작가로서의 과제로 받아들였다.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미술사에서의 “채색화의 정통성 수립”은 현재까지 이숙자의 작품세계를 이끌고 있는 화두이다. 이를 위해 이숙자는 한국적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민예품부터 백두산까지 작업을 확장시켜 왔다.

    이숙자의 작업은 ‘민예품’, ‘보리밭’, ‘소’, ‘한글’, ‘백두산’과 같은 한국적인 소재들과 ‘이브’시리즈로 크게 구분된다. 이 전시에서는 이러한 소재의 특성에 주목하고 전시구성에 반영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표면적인 소재 자체가 한국성의 표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와 같은 “내면적 기호”로서의 한국성을 전시를 통해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향(芝鄕) 이숙자(Lee Sook-Ja, 1942~) 홈페이지 http://www.leesookja.com 서울 생. 2006년 파리 전에서 '문화적 대사건(UN EVENEMENT CULTUREL)'이라고 호평을 받음. 남편은 문학평론가 구중서[학력] 196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71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1 제 14회 '이숙자 작품전' 선화랑 초대, 선화랑(서울). 2006 제 19회 '이숙자' 에버아트갤러리(EVERARTS GALLERY) 파리 프랑스. 2006 제 20회 '이숙자-이브의 보리밭' EBS SPACE 초대(서울). 2007 제 21회 '이숙자 개인전' 선화랑 초대(서울)[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선재미술관, 고려대박물관, 홍익대박물관, 원자력연구소, 인터콘티넨탈호텔, 대한항공, 주택공사, LG본사 등 [저서] '한국근현대동양화 연구', 미술문화원(1989). '이숙자-이브의 보리밭', 도서출판 나남(1991) [수상] 1972 제21회 국전 특선수상. 1978 제1회 중앙미술 대전 장려상수상. 1979 제28회 국전 특선수상. 1980 제29회 국전 대상수상. 1980 제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수상. 1994 제5회 석주 미술상수상

    [문성식전] 얄궂은 세계 두산갤러리에서 2016.03.09-04.02까지 


    우리시대의 풍속화 젊은 연인들의 사랑하는 방식 노인소외 사회적 갈등과 대립 그리고 여성이 발언권이나 표현에 있어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문성식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최상철 전] 그림손갤러리에서 2016.02.24.-03.07


    아래 그림은 실에다 검은 아크릴 물감에 묻혀서 그 실을 던져서 그린 그림이라고 하네요 작가의 온몸을 투사한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정말 시간과 자신과 사투를 벌리며 온몸으로 그린 그림이군요 오토바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파워풀한 운동감이 느껴집니다 그림 이전의 그림 시원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하시네요


    [SeMA Blue 2016 서울바벨]
     서울시립미술관 본관1층 2016.01.19-04.05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fsi5


    불통의 시대 그보다 더 불통스러운 장치를 통해 작은 소통의 숨구멍을 열어보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둠전 같은 전시다 결국은 미디어소통이 주제다. 작품명 중에 게이 등등도 등장하는 것은 결국 그런 부류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불통이라는 소리다


    부부사이에 미디어는 자식이다. 자식이 일종의 매개자가 되어 부부를 연결시킨다. 정부와 국민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미디어다 그런데 요즘 미디어는 전혀 작동이 되지 않는 정부과 국민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지 못한다. 거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지나치게 편향되었거나 형편없이 편협하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첨단의 도시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는 이런상황에서 불소통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런 예술을 통해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의 을지로 창신동 종로 청량리 이태원 합정 등에서 사는 미디어에서 나오지 않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술이 정말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소통의 활로 그 가능서을 열어준다. 


    신은진 기획자의 말에 약간 덧붙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술은 정치사회적 경제적 흐름과 맥을 같이해 왔다 대공항이후 전위예술이 등장하고 1960년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68혁명과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후 세계미술의 지형도는 그런 위기위기를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담아왔다 한국도 IMF이후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지금같이 숨막히는 불통의 시대에 어찌보면 이런 전시는 작은 숨통을 열어주는 하나의 작은 시도인지 모른다"


    "억" 전혀 모르는 70명의 청년 중 청년 작가들(앙팡 테리블)이 서울시립미술관 1층을 랜덤액세스하게 채우고 있다 전적으로 관객이 주인이 되는 이걸 누구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냥 각자가 본 대로 생각하면 그게 답이다 절대 정답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전시다


    전시라는게 원래 황당하지만 여기선 입을 다물게 한다 미디어가 정말 많아졌다 회화에서 뉴미디어아트까지 걷잡을 수 없이 다양한 목소리가 폭발한다 철옹성같은제도권예술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창조란 언제나 무질서 속에 잉태하고 예술이란 원래 무목적에서 나온다. 이런 전시를 보고 나면 어지러운데 그런데 그 중에서 뭔가 하나라도 건지면 그것은 대성공이다 비전형 비선형 무목적 무작위 즉 랜덤 액서스다 


    서울의 삶의 이면이 그 어느 언론미디어보다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서울에서 작가적 삶만큼 치열하고 팍팍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미술의 모세혈관같은 이런 젊은작가들의 유기적이고 독립적인 행보를 시립미술관에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나] 
    백남준 작고 10주기 추모전_백남준
    ,
    서울에서(Nam June Paik: When He was in Seoul] 
    2016.01.28-04.03 갤러리현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4) AT Gallery Hyundai in Seoul 이번 전시는 1990.7.30~8.20까지 열렸던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늑대의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의 신 버전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fu1a


    이번 갤러리현대(본관과 신관 2곳에서)에서 무시무시하게 어마어마한 백남준 전시를 하고 있다. 혹시 시간이 되면 가봐도 좋을 것 같다. 국립을 보고 오다가 잠시 ... 바로 옆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절대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나 내용에서 최고급이다

    특히 로봇시리즈에서 샬럿 무어먼과 존 케이지가 등장한 것을 보고 놀랐고 특히 경이로운 것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그의 콜라주 작품 잡동사니 벽 (Junk Wall)은 정말 볼만하다 이번에 백남준 국제심포지엄을 맞아 방문한 독일의 백남준 조수였던 백남준의 뒤셀도르프 제자이기도 한 요헨 자우에라커가 직접 설치했다고 한다

    [추신]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95년에 독일 폴프스버그미술관 (Kunstmuseum Wolfsburg) 에 설치했던 작품으로 이 전시 이후 처음으로 다시 갤러리현대에서 재연하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소통이란 이렇게 아찔할 정도로 이루기 힘든 것이지만 그럼에도 가능한 것이다

    백남준의 90년대 초 TV 로봇 혹은 비디오 조각 시리즈에서 자주 발견되었던 오브제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각적 조형성을 파괴한 채 대형 설치 작업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에 Junk Wall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백남준선생이 현장에서 설치를 주도하던 2분짜리 동영상이 함께 전시된다

    백남준의 스케일을 볼 수 있는 작품 이 작품의 주제는 금방 알 수 있죠 가운데 우리나라의 가마가 나오죠 코끼리도 보이고요 유통 교통 통신 소통 네트워크 인드라망연결 등등이 그 주제죠 실제로 보면 굉장히 규모가 큽니다 동서양의 교통통신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네요 제목 잡동사니 벽(Junk Wall) 1995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퍼포펀스<늑대 걸음으로>를 행하는 중인 백남준 갤러리현대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에 고국 한국에서 행한 활동과 남긴 작품 그리고 그러한 유산들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전시를 마련한다. 
    [갤러리현대 백남준 추모굿 백남준 서울에서 전시(NJP When He was in Seoul) 2016.1.28-4.3] 백남준 늑대걸음으로 살살 서구의 미술계를 쳐들어가 그들은 다 쓸어버리겠다는 소리 같은데 열등감 제로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평화적인 방식이겠죠!!


    백남준의 굿은 그냥 굿이 아니고 전통(시원의 세계)과 포스트모던과 첨단과학의 정신을 융합한 전자굿이죠 선시시대와 첨단문명은 사실 거리는 멀지만 결국은 하나죠 생명의 원천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고 볼 수 있죠 거기에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소통(미디어)의 극락이죠 그래서 신(神)마저도 통하는 신통의 세계 이것을 우리는 영어로 meta-communication 혹은 super-communication이라고 하죠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와 백남준 선생 사이의 각별했던 우정을 바탕 삼아 그가 한국에 남긴 주요한 작품들만을 선보이고자 한다. 특히 1990년 여름,백남준 선생이 평생의 친구였던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며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행한진혼굿퍼포먼스<늑대 걸음으로>와 관련된 오브제들과 기록들을 26년만에 꺼내놓음으로써 백남준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1분유머] 굿을 하기 전 뭔가를 잘라내죠 이건 백남준의 예술의 핵심 중 하나인 '단(斷)의 철학'이다 즉 익숙하고 낡은 것과의 이별 그것과의 단절을 뜻한다. 그가 근대의 상징인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부서 버리는 것도 일종의 단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파괴 없이 창조가 없다고 과거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자르지 않고는 미래의 비전은 없기 때문이다

    백남준 굿판이 기존의 굿판과 다른 점은 바로 그의 굿판에는 서구근대주의 몰락과 해체를 의미하는 <쓰러진 피아노>와 독불장군 같은 못 말리는 독재자를 쌍방향인 비디오아트를 통해서 순진한 애장난감으로 만든 <전자TV>가 새로운 오브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20세기에 올드 뮤직(Alte Musik)의 시대는 가고 뉴 뮤직(Neue Musik)의 시대가 온 것처럼 <동네 굿판>을 <세계 굿판>으로 바꾼 것이고 또한 전통한국 굿판을 현대화 세계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올드 굿판이 아니고 뉴 굿판이고 즉 <전자굿판>이다.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샤머니즘이 가지는 메타 커뮤니케이션의 초능력과 첨단하이테크의 상징인 피아노와 TV가 굿판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담은 21세기적 관점이 통하는 뉴 샤머니즘, 동양문화의 알맹이에 서양문화의 상징코드 2개로 비빕밥(인터미디어)이 된 것이다. 


    백남준의 예술론을 요약한 "예술은 페스티벌이지요, 쉽게 말하면 잔치예요.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쟁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어요. 나의 예술 철학은 관념을 무너뜨리자는 거지요. 수직이 아닌 귀납이에요. 획일성을 막기 위해 자유스런 작업을 하죠.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참고 1) 피아노와 TV는 서구에서 문화예술과 하이테크놀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2가지 표상이다. 참고 2) 메타 커뮤니케이션: 산 자와 죽은 자도 소통시키는 굿판의 능력 *사진저작권 현대갤러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멋진 미소를 짓기 위해서다 백남준 이 사진에는 그의 지성과 함께 작가로서의 자신감과 여백이 흐르는 여유로움을 보여줘서 좋다. 열등감제로 인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멋진 미소다


    백남준의 이런 굿을 앞으로 백년 후 천년 후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압도 하고 천지인을 하나의 세계로 융합하는 그야말로 동서고금이 하나로 통합되는 말이 필요없는 그 몸짓과 소리와 호흡과 파장의 음악이 넘치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로 넘치지 않은가 그 말입니다 여기서는 그야말로 카오스와 코스모스가가 하나이고 원시와 문명이 하나이고 그런 것의 경계가 필요 없는 절체절명의 억겁(영원한 현재)입니다

    백남준 서구의 근대주의(계몽주의포함)를 상징하는 바이올린을 (개처럼) 질질끌고 다닌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강력합니다 황색재앙은 바로 나다를 행위예술화한 것이죠 먼저 독일에서 했고 이것은 미국판 맨해튼과 부르클린 사이의 다리에서 역시 열등감 제로인간다운 예술입니다

    [왜 독일인이 백남준을 좋아했나]너무나 비참한 1차 대전 후 절대 전쟁이 안 이어날지 생각했는데 또 2차 대전이 일어나서 독일인들은 스스로 놀라기도 했는데 그래서 독일인들은 3차 대전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남준이 와서 그들에게 새로운 예술바람을 일으켰고 결국 백남준 때문에 3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죠 독일사람들 한숨돌리다 그래서 그들은 백남준에게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그를 결정적으로 존종하게 되었죠. 게다가 백남준의 패거리 중 하나인 보이스를 만나 그의 예술운동은 더욱 확고해졌죠.

    장 폴 파르지에가 만든 그의 영상작품에서 모자의 의미가 뭔지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이 나온다. 그것은 첫째 그의 부친이 대사업가로 그의 공장에서 모자도 만들고 양복지도 만들고 한복도 만들고 2번째는 여기서 그의 모자는 그의 친구 요셉 보이스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백남준은 이 영상((백의 마술Play It Again Nam) 을 보고 물론 대만족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하네요 이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당신이 만든 하나의 fiction(예술품)이라고 답했다는 군요 역시 백남준다운 말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 백남준 생애에 대해 책 100권(?) 읽은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폼잡는 예술을 거부한 백남준 그러나 여기에는 프랑스의 영상예술가 장 폴 파르지에의 연출력이 작용하고 있다 백남준 50년 생애를 총정리하는 늑대걸음이라는 다큐영상자료를 만들 때 백남준의 연기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아래 내용은 테이프는 다시 돌릴 수 있지만 인생은 다시 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매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소리죠

    이번에 심포지엄에 참가한 미국테크니션들은 백남준에 대한 뜨거운 오마주를 담아 사진을 찍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네요 정말 그 긴장감은 장난이 아닙니다 이분의 이름은 마크 파스팔, 백남준의 제1차 전성기인 1988년부터 1992년에 백남준과 같이 작업을 했지요

    이우환 선생 장폴파르지에가 만든 백남준 50년 생애영상(백의 마술Play It Again Nam )를 보고 있다 외국의 미술가사전에 한국화가를 찾아보면 2사람밖에 안 나온다 백남준과 이우환 두사람은 기질의 차이가 있다 백남준은 말이고 이우환은 소다 하나는 유목적이고 하나는 농경적이다 누가 우월 열등을 떠나 하여간 이우환에게 백남준은 너무나 큰 작가이다

    오늘 갤러리현대 프랑스의 백남준 연구가 장 폴 파르지에 오셨군요 제가 심포지엄 때문에 못 뵈었군요 이분은 파리제8대학에서 백남준비디오론에 강연하고 계시죠 지금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한국 미술대학에서 백남준비디오론 강좌는 전무하죠 전에 백남준아트센터 세미나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한 적은 있는데... 인터뷰하다

    "백남준은 천재이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다 나의 아버지 같은 어머니다" ㅋㅋㅋ 나는 할 말을 잃었다 <NJ he is for me, "My Mother"/NJ il est pour moi "Ma Mère">
    오늘 갤러리현대에서 장 폴 파르지에(프랑스영상작가 및 전 소르본교수 백남준전문가)와 미니인터뷰를 하다 "당신에게 백남준은 누구냐"고 물으니 청천벽력과 같은 대답이 나온다. "백남준은 천재이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다 나의 아버지 같은 어머니다" ㅋㅋㅋ 나는 할 말을 잃었다 <NJ he is for me, "My Mother"/NJ il est pour moi "Ma Mère">

    장 폴 파르지에게 왜 백남준이 서구에서 유명한가 라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백남준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유머감각이 넘치고 항상 웃는다

    <야생적 사고>를 주장한 세계적인 석학 레비-스트로스와 백남준의 차이가 뭔가를 물으니 그(장 폴 파르지에)의 답은 언제나 간단하다. 레비-스토로스는 야생적 사고를 이론으로 펼쳤지만 백남준 그것은 온몸으로 실천했다

    백남준 연구가 장 폴 파르지에 이분도 백남준 과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유머감각이 넘친다

    백남준의 전자굿이 전통적 굿과 다른 점이 뭐냐고 물으니 백남준은 그의 굿에서 모든 음악을 쇼팽 모차르트 쇤베르크 한국의 전통음악이 다 뒤섞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음악을 이미지로 바꾸는 것을 좋아했다

    장 폴 파르지에게 백남준과 디지털 노마드를 역설한 자크 아탈리와 다른 점이 뭔가를 묻자 둘은 비교가 안된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그의 이론이 왔다갔다 했지만 백남준은 일관성있게(continuity/continuité) 유목적인 삶을 추구하고 실천했다

    인터뷰의 결론 백남준은 내일은 아름다울 것이다 라고 했는데 당신의 소견은

    "백남준은 변증법적으로 미디어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는 미디어를 역할을 하는 예술이 필요하다" Il faut jouer enversement avec les média pour ne pas être le jouet de médias dialectique We have to play enversement with the media to not be the media toy dialectic -Jean Paul Fargier

    백남준 TV촛불 비디오아트는 소멸의 미학이다 촛불이 꺼지면(소멸하면) 다시 불을 붙여줘야 한다. 백남준은 작품을 죽을 때까지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끝까지 수리를 해줘야 하고 보살피고 전선을 점검해 줘야 하고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으면 바로 소멸해버리는 사실은 상당히 까다로운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회화하고는 전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회화는 끝이 있지만 비디오아트는 끝이 없다 비디오아트는 참 까다로운 애인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본다고 괴테(나의 파우스트) 아인슈타인 뉴턴 그리고 시계 여기서 시계는 백남준의 시간중심예술(time-based art)을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89년부터 1991년 사이 제작되어 스위치 취리히의 쿤스트하우스 및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92년 전시된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 13점 중 <예술>이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12가지 문제점을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민족주의, 영혼성, 건강, 예술, 교육, 교통, 통신 그리고 연구와 개발이라고 진단하였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자서전’을추가하여 기술과 예술이 접목된 현대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그는 이 요술상자와 같은 파우스트 시리즈를 통해이미 그가 뭉개버린 대중의 우상이며 요술상자였던 TV의 목소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고 간다. 화려한 외관이 상징하는 것은 장식으로서의 요술상자가 아니라 비디오 아트가 시작된 1963년부터 28년이 흐른1991년까지 백남준 목소리의 총체적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야간비행

    백남준은 모든 사물이 combine(융합/상호작용)할 때 디지털이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진이 너무 많은데 내일 다시 하죠

    백남준의 추상표현주의 그림 그런데 여기도 아래를 보면 TV는 있습니다

    현대미술이 이렇게 추상화된 것은 인상파에서 시작한다. 증기기관차가 생기면서 모든 대상을 절대 정지상태로 볼 수 없다. 모네의 그림에서 보듯 그렇게 흔들린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말이다

    노이즈음악 같은 노이즈 아트가 될 수밖에 없다 칸딘스키도 그의 그림 속에 러시아혁명의 소란과 속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림에 음악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백남준은 그의 TV그림에 엄청난 초고속도로가 들어가기에 노이지가 안 생기면 이상한 것이다. 칸딘스키보다 더 노골적인 음악 피아노부스는 소리 등 잡음이 들어간다

    이런 작품은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유목민의 그런 유동성과 mobile 그리고 fast moving 즉 21세기의 속도귀신이 붙은 현대의 풍경화가 담긴 것이다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남자와 여자 샬럿 무어먼과 존 케이지 백남준의 로봇에는 사랑과 우정의 철학이 있다 그는 인간가 기계와 자연을 한 가족으로 본다. 그의 로봇은 바로 인간 그 자체인 셈이다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샬럿 무어먼 비디오 작업이 크게 진척되었던 1970년대 들어 무어맨은백남준의 실험적 작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TV Bra for living sculpture)를비롯 <TV첼로>(TV Chello), <TV침대>(TV Bed)  1980년대의 대형 설치(Installation) 개념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들은 거의 공동 연구와 연주를 가졌다. 

    그녀의 실험적 예술과 정신이 없었더라면 백남준의 작업은 그토록 완벽한 전위적 체험의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1990,백남준은 동갑내기 예술적 동지에 대한사랑과 우정의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완성한다.


    존 케이지 

    플럭서스 정신의 핵심인 콘서트 형식의 퍼포먼스는 존 케이지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백남준은 케이지가 소음의 개념을 음악에 끌어들인 것에서 더 나아가 행위 자체를 음악성의 소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행위 음악의 출발은 바로 케이지로부터였다. 백남준이 그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았던 부분도 창작성을 고정된 인식으로부터 구출해 내는 자율정신이었다. 케이지는 그에게 평생에 걸쳐 정신적 스승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를 상징하는 TV 조각을 완성한다



    [미국사진작가 피터 무어가 찍은 백남준 샬럿 관련사진]

    하늘이 내린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 파트너 샬럿 무어먼의 여성적 매력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잡아낸 피터 무어(Peter Moore)

    1957년 완전누드로 연주하다 결찰에 체포되는 샬럿 무어먼

    백남준 선생 노마드로 전세계를 누비던 그가 쓰러졌을 때 너무나 심정적으로 괴로웠을 텐데 그는 6개월만에 그 고통을 다 극복하고 다시 재기했는데 여기서 보니 그의 강력한 재기의지를 읽을 수 있네요 1996년 작품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백남준 재기제작" 

    백남준 쓰러지고 나서 쓴 텍스트 아트인 것 같네요 1996년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을 생략하고 응용해서 바로 '웃는 집안에 많은 복이 깃든다'는 뜻인가요 현대화랑 전시 중이다 [1분유머] 백남준은 천재적 사기의 예술가였다. 왜냐하면 서구인에게 한 번도 서구인들에게 거부감과 상처도 주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자부심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유머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유머는 최고의 지성이다. 
    서구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비꼬고 꼬집을 때도 그들의 웃기면서 했기에 그들은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전혀 불쾌감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의 천재성이다. 사기를 쳐도 제대로 친 것이다 나를 자랑하면서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고도의 사기술이다

    [백남준 독일에서 주는 모든 미술상을 다 받다 나중에는 괴테상까지 받다]

    백남준은 1989년 2회 '쿠르트 슈비터스(K. Schwitters)'상, 1991년 '고슬리 황제반지(Goslar Kaiser Ring)'상,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독일대표) '황금사자상', 1997년 '괴테 상', 1998년 독일 구겐하임개관(1997년) 후 '토머스 크렌스(T. Krens)'상, 2001년 8회 '빌헬름 렘브루크(W. Lehmbruck)'상 등 독일 최고예술상은 다 휩쓸었다.
    이는 그가 독일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징표다. 백남준은 명실공이 독일'명예이주예술가'였다. 그래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는 그가 독일대표미술가로 나갔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에서 베토벤처럼 존경을 받았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많지만 최근 취재한 독일작가 '알프레드 하르트' 씨의 대담에도... 그 단초가 보인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인기가 높은 건, 알다시피 2차 대전 이전은 프랑스가 세계미술을,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했다. 독일은 변방이었는데 70년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백남준이 혜성처럼 나타나 소리와 영상을 뒤섞는 '전자아트'를 창안해 독일미술을 세계적 위상으로 끌어올려 '아트스타'가 되었다. 그는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을 뒤바꾼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한 '다빈치' 같은 예술가였다" 

    내가 생각할 때 백남준이 독일에게 환영을 받은 건 바로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전쟁의 가해자라는 피해의식으로 굉장한 심적 압박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주체할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때 천개 손도 모자란다는 '천수관음보살'처럼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해방감과 통렬한 웃음을 선물하며 새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리라.

    [백남준전_'전자초고속도로'] 영국화이트채플갤러리(whitechapelgallery) 2016.01.29-05.15까지 
    Electronic Superhighway (2016-1966) Arranged in reverse chronological order 

    백남준 인터넷 꿈(1994) 결국 그 소원이 이루어졌네요 Nam June Paik, Internet Dream (1994), video sculpture, 287 x 380 x 80 cm. ZKM | Collection © (2008)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Photo: Steffen Harms 
    지구촌 사람들 1초안에 모두 다 만나게 하는 소통방식

    A major exhibition bringing together over 100 works to show the impact of computer and Internet technologies on artists from the mid-1960s to the present day. The exhibition title is taken from a term coined in 1974 by South Korean video art pioneer Nam June Paik, who foresaw the potential of global connections through technology. Arranged in reverse chronological order, Electronic Superhighway begins with works made at the arrival of the new millennium, and ends with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EAT), an iconic, artistic moment that took place in 1966. Key moments in the history of art and the Internet emerge as the exhibition travels back in time. "문제는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데 있지 않고 테크놀로지에 있다. 나는 기술예측이나 미래학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다. 거기는 우리와 같은 예술가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여러가지 정보를 대중들에게 적절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이다. 그러나 단지 안테나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출력(Output)의 능력, 테크놀로지를 인간화하는 능력을 또한 갖고 있다" - 백남준

    *백남준 작고 10주기[셋]

    백남준 테크니션 3인에게 듣는다/묻는다 _백남준 비디오조각 보전과 뉴미디어아트의 미래] [백남준문화재단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비디오아트 태동기부터 20여년 넘게 백남준과 함께했던 기술 협업자 3명<미국의 마크 파스팔 미국의 폴 개린 그리고 한국의 이정성 테크니션

    2016년 1월 27일(수)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서울시립미술관 SeMA Hall 사회: 박노암 세종문화회관 전문위원 강사: -Mark Patsfall 신시네티 교수 전 칼 솔웨이 화랑 백남준 테크니션 -Paul Garrin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전자기술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에 참가 -이정성 마트 마스터 대표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백남준 전자기술 테크니션 질의자: 김정화(카이스트교수) 서진석(백남준아트센터관장) Gao Peng(북경금일미술관관장)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이미 초대를 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이 초대자들은 백남준 작품 보존과 나아가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될 예정이다

    추신 [백남준 작고 10주년]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이래 백남준 작고 10주년을 맞아 그의 독일과 미국과 한국의 테크니션 거의 다 서울에 모이다 1 전자전기설치(한국 이정성), 2 TV조각을 위한 구조공학(미국 마크 파스팔), 3 비디오 영상편집(미국 폴 게린), 4 유럽의 작품제작설치(독일 요흔 샤유어라커), 5 레이저아트의 공동작업(미국 노만 발라드) 2차모임 1월 18일 재능문화센터

    [관련기사] http://hankookilbo.com/v/4743dc62a0ad4c08bcf4ba31bd41932d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 2016_0127 - 2016_0128 국제 심포지엄_듣는다2016_0127_수요일_01:30pm~05:30pm_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워크숍_묻는다2016_0128_목요일_02:00pm~05:00pm_재능문화센터(JCC)

    명 사회자 김노암 선생과 이번 국제 심포지엄 첫번째 발표자 마크 파스팔교수 백남준 솔웨이갤러리 테크니션

    주변 이들에 대한 이런 신의와 우정이야말로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죠. 이제 우리는 그의 업적을 지켜야 합니다.”(마크 파스팔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1932∼2006) 타계 10주기(29일)를 앞두고 ‘백남준의 동료들’이 마주앉았다.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열린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 파스팔 교수 등은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고 백남준 작품세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소장자, 관리자의 재량과 섬세한 대비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1986년 칼 솔웨이 갤러리의 후원으로 신시내티에 들어선 ‘백남준 공장(Paik’s Factory)’에서 숱한 작업을 함께 해온 파스팔 교수는 당시 이곳이 “백남준의 창의성으로 쉼 없이 굴러가는 예술 공방이었다”며 “프로젝트가 하나뿐인 경우는 거의 없었고, 겨울이 와 마이애미로 떠날 때면 언제나 그는 다음 작업에 대한 열두 개쯤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갔다”고 회고했다. -한국일보 기사중

    전설적인 레이저 아티스트 노만 밸러드(백남준의 친구이고 2000년 밀레니엄 구겐하임회고전 때 레이저 설치 총 책임자 그 역시 작가다)와 맨 오른쪽 독일의 백남준 테크니션 Jochen Saueracker 오늘 이정선 선생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이후 백남준 테크니션 패밀리가 총 집합했다고 하네요 미국의 폴개린 그리고 마크 파스팔교수 백남준 솔웨이갤러리 테크니션

    오늘 국제심포지엄 최고 주인공은 역시 이정성선생 세 분이 다 미국 한국 독일의 백남준 테크니션 백남준 선생 장례식을 제외하면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슈아 아베를 뺀 나머지 중요한 백남준의 파트너들이 모두 모인 소중한 자리였다. 공식적으로 발제자로 초빙된 이정성, 마크 파스팔, 폴 게린, 선생들 외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이번주 1월 29일 백남준 추모행사에 참석코자 한국을 방문한 요흔 샤우어라커, 노만 발라드 선생도 참석하였다. 백남준 선생은 전자전기설치(이정성), TV조각을 위한 구조공학(마크 파스팔), 비디오 영상편집(폴 게린), 유럽의 작품제작설치(요흔 샤유어라커), 레이저아트의 공동작업(노만 발라드) 등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열등감 제로 인간 백남준만이 연출할 수 있는 백만불짜리 미소네요 이런 미소를 짓기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죠 자신의 공공작품 앞에서 매우 만족해하는 표정이네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혁명 자석TV [1분유머] 백남준은 천재적 사기의 예술가였다. 왜냐하면 서구인에게 한 번도 서구인들에게 거부감과 상처도 주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자부심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유머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유머는 최고의 지성이다. 서구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비꼬고 꼬집을 때도 그들의 웃기면서 했기에 그들은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전혀 불쾌감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의 천재성이다. 사기를 쳐도 제대로 친 것이다 나를 자랑하면서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고도의 사기술이다

    이 사진은 더 폼 난다 열등감 제로인간을 너무나 잘 보여주다 한국에서는 못 본 작품이죠 프로펠러가  생텍쥐페리가 쓴 소설 <야간비행>을 이렇게 TV조각으로 형상화

    1984년 30여년 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나오는 장면 지금봐도 너무 포스트모던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멋진 미소를 짓기 위해서다 백남준 이 사진에는 그의 지성과 함께 작가로서의 자신감과 여백이 흐르는 여유로움을 보여줘서 좋다. 열등감제로 인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멋진 미소다

    1990년대 초 백남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그의 창조력과 상상력은 폭발

    1994년 작품 신시내티 백남준팩터리에서 만든 작품

    1990년 프랑크푸르트 도이치 모스트 뮤지엄에서 의뢰한 Pres-bell-man

    백남준 I '해와 달과 별'. LA아트페어 출품작. 신시내티 칼 솔웨이 갤러리의 '백남준 팩터리'에서 만든 작품으로 마크 파스팔마크 교수 강연 중 찍은 사진. 사진저작권 Mark Patsfall 1989년부터 1992년 백남준 60대 전후 최고전성기의 작품들 주제가 주로 우주공학(해달별 혹은 화성 등등)이고 동시에 한국의 입체적 건축과 거북선 등등 발명품 
    1
    990년대 작품 동대문


    1990년대 물고기 이야기 작품 작성 중인 백남준


    신시내티 작업실에서 백남준 모습


    1993년 뉴저지 트렌턴 에서 만든 작품 모습


    백남준 전성기 신시내티 백남준 팩토리에서 많은 로봇작품과 TV조각


    신시내티 백남준 팩터리에 만든 전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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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2년과 1993년에 발표한 백남준 거북선 


    1990년대 시카고 아트페어에 출품한 백남준 전자조각

    <백남준 21세기 전자부처>

    백남준의 천만불짜리 미소 사실 돈으로 계산이 안 된다 그의 64회 생일날 축하


    작성중인 Ampere 1990년대 초


    28일오후 2시부터는 재능문화센터(JCC)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여기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백남준 작품을 소장갤러리 관계자, 컬렉터, 애호가, 작가, 학생이 모여 백남준의 작품의 보전을 위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비디오작품은 언제나 고장이 나게 되어 있어 부품은 계속 교체돼야 한다는 걸 전제하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좀 더 장기적 보전방식을 고민해야 하고 백남준 작품의 창의성과 그 아이디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 '요헨 자우에라커' 의견에 거의 동의했다. 다만 작품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라야(case by case)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포지엄 참가자 기념사진 촬영


    심포지엄 참가자 기념사진 촬영


    이번 국제심포지엄으로 30년간 백남준 조수로 국제적 협조자로 일한 테크니션 5인이 다 모였다. 한국 '이정성' 아트마스터대표(전자공학), 미국 신시내티에서 '백남준 공장' 작업한 '마크 파스팔마크' 교수(TV공학), '폴 게린' 작가(비디오편집), 독일에서 조수였던 '요헨 샤유어라커'(유럽담당), 백남준 레이저 작업에 협업한 '노만 발라드'(레이저)가 그들이다.


    국립미술관 백남준 관련 담당자 두 분 오셨는데 다다익선과 관련된 이야기하다가 오늘 나한테 혼났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참고... 나중에는 전기세가 많이 나가서 없애자는 의견도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그게 말이 되는지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문화의식이 그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추신] 백남준 1993년 동네축구같은 동네미술을 하는 한국의 미술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보다 세계미술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위해서 1993년 뉴욕 휘트니미술관비엔날레에서 받은 상금 3억을 투입해 서울국립미술관(당시과천)에서 휘트니비엔날레미술관 순회전을 열었지요 그러니 국립미술관이 개인에게 3억을 빚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리고 백남준이 타계한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1년에 500억 예산을 쓰는 국립미술관이 10년간 백남준 도록 하나 백남준 전시하나 한 적이 없으니 이게 말이 되는가...

    1993년 3억이면 지금으로 치면 몇억인데 그것 갚은 생각은 안하고 백남준작품유지비가 많이 들어 없애야 하다는 의견에 마치 동조하는 것 같은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뿐 다른 무슨생각을 하겠어요

    그리고 국립에서 백남준전시하면 수많은 우수인력과 고급영어로 번역도 할 수 있고 저작권에 얼마나 수월합니까 나같이 개인도 하는데 말입니다 나같은 사람은 저작권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백남준 작고 10주기[넷] 故백남준추모10주기 '유토피안레이저 TV 테이션(Utopian Laser TV Station']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1월 29일 금요일부터 31일요일까지

    백남준과 춤 분야에서 궁합 100% 머스 커닝햄   백남준식 미디어 활용법에서 출발한 추모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며 각계의 추모의 뜻을 라이브로 전달할 예정이다. 백남준이 1966년에 꿈꾸었던 방송 채널을 2016년 방식으로 재해석한《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은 인터넷 네트워킹을 통해 구성한 온라인 라이브 추모식과 백남준의 싱글채널 비디오 스크리닝 및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의 백남준 헌정 사운드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멋진 미소를 짓기 위해서다 백남준 이 사진에는 그의 지성과 함께 작가로서의 자신감과 여백이 흐르는 여유로움을 보여줘서 좋다. 열등감제로 인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멋진 미소다

    *백남준 작고 10주기[다섯] [백남준 10주기추모전]  서울서소문 본관 서울시립미술관 3층에서 2016.6.14-7.31일까지 -백남준과 플럭서스 관련 자료 문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을 전시하고 -백남준 지인들 인터뷰를 바탕으로 백남준의 예술세계 다른 면모를 리서치해 재조명(그의 예술적 동지인 플럭서스 활동소개

    옛 백남준 자택

    중간에 7 20일 탄생일에는 심포지엄과 플럭서스 퍼포먼스 개최  백남준 작고 10주년을 맞아 서울시에서 과거 백남준의 자택자리 약 3천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옛터가 다 사라지고 그 중 한 모퉁이 50여 평이 되는 백남준 자택 자리 한옥으로 된 음식점 건물(동대문구 창신동 197-33) 서울시가 매입해서 '백남준 기념관'으로 만들어 그의 생일인 7 20일 개막할 예정이고, 그 기념관에서 영상자료, 관련자료,

    백남준 자화상 달마도(Self-Portrait Dharma Wheel) 158*126*149cm 소형마차 엔틱 TV상장 모니터 1998년 작 서울시립미술관 캘린더에 소개된 작품조각설치 등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결정   
    *백남준 작고 10주기[여섯]

    [다중시간 Wrap around the Time 백남준 추모 10주기 특별展]2016_0129 2016_0703 The 10th Anniversary Remembrance Exhibition of Nam June Paik 월요일 휴관 . 
    유재원(언어학자, 신화학자, 한국 그리스학 연구소 회장)- 백남준 「삼원소」(2000), 「머리와 발(올림픽 스피드 업)」(연도미상)백남준은 예술가란 장난꾸러기이자 일종의 사기꾼이라고 본인 스스로가 말했듯이 자신이 상상한 모든 일을 장난기 어리게 구현하였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진지하고 속 깊은 새로운 예술 세계를 펼쳤다. 그는 시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음악의 특성인 싱크로나이즈를 파괴하거나 영상의 속도를 빠르게 하여 우리가 친숙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낯설게 한다. 



    비디오 편집을 통해 공간을 접어서 시간을 왜곡해 차원 변경을 시도하기도 하고, 레이저로 빛을 놀게 하여 무한하게 변하는 세계를 표현한 백남준의 작업...
    은, 상대성 원리와 양자역학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백남준이 고정된 정형의 형태보다는 순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목표라고 제시했듯 언어학자 유재원과 작가 유비호는 백남준의 이러한 예술관을 바탕으로 본 전시에서 천지창조 신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자 한다. 추천작가 : 유비호 Biho Ryu 


    비디오, 설치, 아카이빙,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현대 사회를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비호는 최근 여러 고전을 탐독하며 삶과 죽음, 실존에 대한 고민들을 작업에 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백남준의 작품 속에서 상대성 원리와 양자역학의 원리에 주목한 신화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유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세 면의 벽에는 원형, 사각형, 삼각형의 구조로 모니터를 배치하여 백남준의 「삼원소」를 오마주하고, 각각의 도형이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열두 대의 모니터에서 모두 다르게 재생된다. 


    현실(현존)계에서 순간 펼쳐지는 미적 환영을 탐색한 기록물인 이 작품은 현재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무의식의 세계로 이동하는 마음의 여정이다. 또한 의식이 지배적인 현실계와 무의식으로 충만한 환영계 사이에서 칠흑 같은 에레보스의 어둠과 고독의 시간계, 에로스의 친화력과 생명력이 작동하는 세계 사이에서 교신하는 파장을 만들어내는 리듬, 현존 세계와 상이한 세계를 상호 교환하여 지속적인 변화와 생성을 탄생시키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큐레이터 토크 Ⅰ 일시 : 2016년 3월 3일 목요일 오후 2시 장소 : 백남준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 강연자 : 장가 (크로노스 아트센터 디렉터), 장펠리, 왕유양 사진김용임 

    이영준(기계비평가,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부교수)- 백남준「자석 TV」(1965/1969)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지능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TV(방송)의 최대의 아이러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것이다. TV의 황금기가 시작되어 미국의 모든 가정에 TV의 현존이 위력을 떨치던 시기에, 백남준은 「자석 TV」를 통해 TV 시스템 대신 개별적인 기계로서의 TV 모니터에 말굽자석을 대서 시그널을 일그러트려 TV를 숭배하는 일반인들의 인식 시스템에 침입한다. 최소 수백만 바이트의 정보를 담고 있는 매체인 TV에 대해 정보라고는 N, S극의 2바이트 밖에 없는 단순하고 우직한 자석으로 정보매체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결국엔 우직한 쇳덩어리인 자석을 제외하고 TV 시그널뿐만 아니라 자석을 들고 있는 사람의 손, 손의 주인인 사람까지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자매체와 지능인간 사이에서 어떠한 교란도 통하지 않는 자석이야말로 궁극의 승리자이다

    [다중시간 Wrap around the Time] 2016년 1월 29(금)-2016년 6월 19일(일) 2016년 3월 3(목) ~ 2016년 7월 3일(일) 백남준아트센터 1, 2층 전시실 개막식 : 2016년 3월 3일(목) 오후 5시 (장소 : 1층 로비) <참여기획자> 그레고르 얀센, 김대식, 다카하시 미즈키, 마크 한센, 서진석, 서현석, 유재원, 이영준, 장가, 한유주, 홍성민(총 11명) <참여작가>: 김소라, 데이비드 헤인즈&조이스 힌터딩, 라파엘라 보겔, 백정기, 버블데크오토워시 샬롯놈, 빠키, 야마시로 다이스케, 에이.타이피트스(김태용, 류한길, 로위에), 왕유양, 우지노, 유비호, 이사벨라 페른케스, 장펠리, 카스텐 니콜라이(총 14명/팀)

    [백남준추모자료] 7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남준은 바로 나다>라고 말할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뒤집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모두가 열등감제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타고난 재능과 열정(신명)을 백분 발휘해 한국을 단번에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스키다이왕 단군


    Robot K-456 1964 오페라를 부르며 문화도 향유할 줄 아는 이런 인간로봇을 만든 사람은 확실히 천재급이다 

    백남준의 미소를 인류를 구한다 I



    백남준의 미소를 인류를 구한다 II


    1974년 시게코와 백남준 둘은 라이벌이고 동지이고 부부이고 등등 


    요셉 보이스는 예술사기꾼답게 늘 착용한 그의 모자와 그가 입었던 양복을 예술화했는데 백남준이 1990년 보이스를 위한 추모 굿판에서 입었던 그의 갓과 한복도 예술화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종이의 죽음을 상징한다

    백남준 푸가의 기법 Art of Fugue 1991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 역시 작품이 음악적이다  

    백남준 사이버 펑크 1994 

    사이버세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다


    이 사진은 언제 봐도 멋있네요 뒤에 백남준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백남준의 예술적 애인 Topless cellist 샬럿 무어먼 그 포즈가 멋지다 

    [백남준과 뒤샹은 여성의 옷을 벗기는 방식이 다르다]


    'He was a guiding light' 서양미술사는 여성의 옷을 벗기는 역사 그런데 뒤샹의 방식이 최고다

    [1분유머] 소유는 무한대 플러스이고 존재는 무한대 마이너스다 결국 마이너스가 플러스다.소통은 삶(생명)이고 불통은 죽음이다 기(氣)가 흩어지고 막힌 것이 죽음이고, 기(氣)가 모아지고 뚫린 것인 삶(생명)이다  


    백남준과 샬럿에게는 돈이란 그냥 종이일 뿐이다. 돈 나눠주는 퍼포먼스 화폐를 향해 앞뒤 안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을 조롱하는 것인가

    니체·푸코·요셉 보이스의 공통점은 계보학을 통해 왜곡된 근대화의 망상을 깨부수는 망치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백남준도 역시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현대작가로는 임민욱작가에 이런 부류에 속한다. 작고한 요셉 보이스는 지금 독일에서 최고의 문화대통령이다 백남준은 그보다 한 수 위지만 말이다.

    [추신] 지난번에 파리8대학에서 백남준을 오랫동안 강의해온 백남준 전문가 장·폴 파르지에와 갤러리현대에서 인터뷰했다 그의 말로는 백남준이 보이스보다 한 수 위란다- 백남준은 절칠한 친구인 '보이스 추모굿'을 벌렸다. 두 예술가의 차이는? "내가 볼 때 백남준과 보이스의 예술가투쟁에서 백남준이 이겼다. 왜냐하면 백남준은 마이너스 셔먼이고, 보이스는 플러스 셔먼인데 백남준이 더 파워풀했다
     백남준은 동서의 문제를 고민했지만 보이스는 서양의 문제만 고민했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한 수 위다


    The Automatic Message_국동완 3월 5일 부터 29일 까지

    Society With No Answer, 52x77cm, 종이에 색연필, 2015

    회광반조(回光返照)는 외부로 향하는 빛을 돌려 자신을 비춘다는 뜻으로, 화두(話頭)를 듣고 나서 좌선을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참선법인 불교의 간화선(看話禪)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것이 나의 드로잉 방법과 물리적으로 같은 구조라는 것은 드로잉을 시작하고 몇년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하는 드로잉을 참선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참선법(드로잉)은 다음과 같다. 화두(그리고 싶은 대상)를 프린트하여 유리에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올린 다음 유리 뒤에서 빛을 비춘다. 그러면 바닥의 이미지가 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그림의 바탕이 된다. 



    바탕 이미지의 형태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그 모양이나 뜻에서 연상되는 것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손이 그리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바탕과 연필이 접촉하는 종이 위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끊임없는 제안들 중 하나를 손이 낚아채는 순간은 매우 짜릿하다. 그렇게 선택된 하나의 선은 어떤 형상으로 귀결될 것을 손에게 다시한번 요구하고, 손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의식의 흐름에 손을 맡긴다거나 '그리는 손'과 '그리는 나'를 분리하려는 태도는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을 연상시키지만, 나의 드로잉은 그것을 따름과 동시에 비껴나간다. [...]


    최초의 드로잉 바탕은 꿈에서 낚아챈 단어들이었다. 그때 나는 꿈이 무엇이든 던져주길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은, 꿈에서 깨어나도 초현실같은 일상이 화두를 쏟아내고, 나는 다시 눈을 감는 대신 현실을 마주한다. 다양한 화두들은 저마다의 속도와 강도로 내 안에 머무는데, 그 흔적은 그림에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오랫동안 은근하게 출몰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라던지 색상, 관계들은 또 다른 차원의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방향이 한바퀴 돌아 더 큰 힘으로 내게 돌아올 것임을 예감한다. _국동완 작가노트 중



    [정창섭전] 국제갤러리 3월27일까지



    [박현주기사의 기사중에서] 1927년 충북 청주 출신인 정창섭 화백은 2011년 타계했다. 국제갤러리가 '대표적인 단색화가이자 닥지를 차용한 추상회화의 대가'라고 밝혔지만, 정 화백의 생전은 '단색화'라는 용어가 정립되지 않은 때였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30여점이 걸렸다. 두둑한 닥지가 누렇게 변한 작품보다 1970년대 작품이 더 눈길을 끈다. 갤러리 1관에 전시된 작품으로 유족측이 판매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남준과 샬럿에게는 돈이란 그냥 종이일 뿐이다. 돈 나눠주는 퍼포먼스 화폐를 향해 앞뒤 안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을 조롱하는 것인가

    [김익영의 도자예술] 도자기의 조형적 현대화작업


    김익영 도자예술 단아하면서도 소탈하고 대범하다


    김익영(金益寧, Kim Yik-yung, 1935년)은 한국의 도자 예술가이다. 별호는 토전(土田, Toujunn)이다. 서울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의 알프레드 대학원에서 도자를 연구하고 돌아와서는 국립박물관 미술과에서 근무했다

    천년간에 한국백자 역사를 조망했을 때 20세기 후반은 전통의 단절이 있었던 20세기 전반의 도자를 재현하는 도자예술계의 흐름이 있었다. 김익영은 미국 뉴욕주립 알프레드 요업대학원을 수학한 뒤 귀국하여 국립박물관에서 3년간 전남 광주 충효동 무등산록의 요에서 출토된 각종 분청자를 정리하는 등 한국 도자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김익영의 작품은 최근 도예계의 제품으로서의 용도가 뚜렷해야한다는 주장과 용도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예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그 안에서 핵심원리를 추출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핑크아트페어] 서울 메리엇트호텔(강남터미널) 24층 2016.02.25-02.28


    [핑크아트페어] 서울 메리엇트호텔(강남터미널) 24층 2016.02.25-02.28 우연히 청담동에 있는 두 갤러리에 들리다



    [핑크아트페어] 서울 메리엇트호텔(강남터미널) 24층 2016.02.25-02.28 청담동 갤러리 두(gallery doo) 2409호 출품작 백중기 자작나무숲


    [핑크아트페어] 서울 메리엇트호텔(강남터미널) 24층 2016.02.25-02.28 2419호 구스갤러리 (Koo's gallery) 정현주작가 작품에 뒤에 보이네요 제가 이 작가의 도록 글을 쓴 인연이 있어 초대로 가게되다 뒤에 보이는 고동색 문화유산이 풍성한 터키에 가서 영감을 받은 색이라고 하네요 색채가 경쾌하고 고급스럽네요색면이 강물처럼 리듬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람들마음을 쓰다듬어주네요

    발터 벤야민 말하는 <아케이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소비문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사로잡죠. 여기서 쇼핑을 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인가요. 하지만 인간은 창조에서만 쓴맛(vanitas)을 안 보죠 쇼핑은 필수적이지만 여기에서는 만족이 없죠 그래서 예술작품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5억짜리 집에 산다면 집에 작품 하나를 걸면 집이 50억이 되고 10억에 작품을 걸면 100억이 되겠죠. 이것을 알면 작품을 많이 살 텐데 

    고급매장 디스플레이 수준이 상당하군요

    이종구
    이종구작가

    쌀포대와 몸빼와 플라스틱용품의 성화(聖化)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bit.ly/1La580

    이종구 작가의 역사적 현장성을 리얼하게 구현한 재료의 독창성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20-30분 간단히 대화를 나누다 작가 약력 및 경력 I 1954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8년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현재 중앙대예술대학 서양화학과 교수 수상 및 선정 I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2005년 '올해의 작가' 선정 1994 가나미술상, 가나아트 1983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중앙일보사) 1982년 중앙미술대전-특선(중앙일보사)

    작품 소장 I 고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문화체육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인천문화재단, 전북도립미술관,  청와대,  청주지방검찰청, 하나은행, 한국은행 등등 저서 I <땅의 정신 땅의 얼굴>, 한길아트, 2004

    [뉴욕미술기행1부_오마이뉴스기사] http://omn.kr/fsu9

    로드니 딕슨은 요즘 뉴욕에서 주목받은 미술거리 '윌리엄스버그'에서 멀지 않은 브루클린 '앵거트(Engert) 애비뉴'에 살고 있었다. 작업실이기도 한 그의 집에는 오토바이광답게 오토바이가 서너 대 있었다. 욕실 튜브도 없을 정도로 생활이 검소했고 부엌, 방 3개가 있었다. 영국 귀족 같은 그의 부인 '줄리엣 혼(J. Hone)'와 같이 사는데 그녀 역시 작가다.
    로드니 집에는 6월 4일 마침 하와이비엔날레 총감독 '베이사'가 하루 머물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맨해튼 시내를 안내할 테니 무조건 따라오란다. 그는 버스 타는 요령과 지하철 타는 방법 등을 일러준다. 뉴욕버스를 처음 타봤고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가 뉴욕지하철 한 달권도 구입했다. 내 신용카드로 넣으니 바로 결재가 된다.
    난 11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지하철을 처음 타봤는데 그야말로 철공소 그 자체였다. 굉음이 심해 귀를 막아야 한다. '유니언 스퀘어' 역을 지나 *맨해튼 중심가 *록펠러재단에서 가까운 한국식당 '돈의보감'으로 들어섰다. 맛이 궁금했는데 서울과 거의 같았다.

    [뉴욕미술기행 2부_오마이뉴스기사] http://omn.kr/fted
    백남준 자취 찾으러 뉴욕, 오길 잘했다
    [뉴욕미술기행 ②]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등 탐방 


    뉴욕 와서 백남준 발자취를 찾는데 처음엔 성과가 없었다. 백남준의 조수였던 '라파엘레 셜리'는 날 우선 백남준이 TV를 수리할 때 다니던 곳으로 안내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브루클린'미술관을 둘러봤지만 백남준 작품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휘트니' 미술관을 갔는데 거기서 백남준 작품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뉴욕 미술기행 ③_오마이뉴스기사] '독일미술관, 디자인미술관, 뉴뮤지엄, 프릭 컬렉션' 등 탐방
    http://omn.kr/hy2d


    뉴욕이 매력적인 건 세계문화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술관·박물관이 많고, 어떤 경우에는 일상을 축제로 바꿀 줄 아는 뉴요커가 많고, 다양한 문화를 융합해 예측불허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작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을 계속 주도하나 보다. 이번 3부에서도 뉴욕의 '독일미술관, 디자인미술관, 뉴뮤지엄' 등을 소개한다. - 기자 말
      

    [2015년 기획특별전 <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2015.12.12.~2016.04.10(17주간)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품 및 규모: 루벤스, 반다이크, 브뤼헐 등의 회화를 포함한, 리히텐슈타인 궁정의 소장품 중 조각, 공예, 가구, 태피스트리 등 약 120여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2015년 기획특별전의 일환으로 <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루벤스 컬렉션이자 유럽 최고의 왕립박물관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박물관의 소장품 약 120여점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공국은 현재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로, 오스트리아의 가장 오래된 귀족 가문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들이 수집했던 미술품은 유럽의 왕실 박물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르네상스에서부터 바로크, 근대 비더마이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수많은 명작들이 포함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리히텐슈타인박물관의 소장품 중 회화, 조각, 공예, 판화, 태피스트리 등 엄선된 작품 120여점이 선보이며, 루벤스와 반다이크, 브뤼헐 등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플랑드르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작가들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바로크 시대의 특별한 예술 세계를 다각도에서 비교, 조망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17세기 유럽 최고의 화가로 불리던 거장 피터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에 대한 다각적 조망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로 평가되는 루벤스는 실제로도 화가이자 외교관, 인문주의자, 교육자, 사업가로 현실의 삶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구현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아기 에리크토니우스의 발견’ 등 루벤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들이 처음으로 국내 관객을 찾는다. 장엄하고 화려한 종교화, 신화화 및 역사적 스토리를 간직한 유화스케치들, 루벤스가 직접 제작 지휘한 유명 태피스트리 연작인 ‘데키우스 무스’등 대표작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크게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1부에서는 루벤스 컬렉션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예술품 수집 역사를 재조명한다. <리히텐슈타인 궁정 문화와 수집의 역사>라는 주제 속에 르네상스시대부터 근대 비어마이어 시대에 이르는 리히텐슈타인의 걸작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며, 특히 거대한 큐브 형태로 재현된 ‘예술의 방(쿤스트캄머)’ 안에서 궁정 문화를 체험, 감상할 수 있다. 

    [2부 <루벤스와 플랑드르의 거장들>에서는 플랑드르 파 루벤스, 반다이크, 요르단스의 걸작을 조망] 
    2부에서는 아기 에리크토니우스의 발견’등 루벤스의 대형 작품을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걸작들이 국내 최초로 전시된다. 또한, 루벤스 스튜디오의 일원이자, 유럽 미술사에 중요한 획을 남긴 안토니 반다이크와 야코프 요르단스의 걸작들이 소개된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플랑드르의 전통 위에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등 국제적 흐름을 수용한 ‘플랑드르 바로크’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루벤스와 동시대 활약했던 북부네덜란드, 이탈리아, 플랑드르 브뤼헐 일가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황금기를 맞이했던 17세기 네덜란드 작품들을 통해 플랑드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북부네덜란드 사회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장르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귀도 레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에 대한 소개와, 플랑드르 대표적 예술가 가문인 브뤼헐 일가의 작품들을 한 데 모아 독특한 영상과 함께 소개하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 4부에서는 회화가 아닌 태피스트리와 판화 등으로 만나는 루벤스 작품들과 루벤스의 영향이 담긴 모작을 통해 루벤스가 남긴 후대의 유산들을 살펴본다. 특히 루벤스의 생애를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을 제공하여, 거장 루벤스, 인간 루벤스의 다양한 면모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박물관 측은“대표적인 루벤스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리히텐슈타인 궁정의 최고 걸작들을 국내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루벤스가 활동했던 17세기 전후한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다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밝혔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유럽 예술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올 12월 12일부터 내년 4월 10일(일)까지 개최한다.

    [尹朝阳 인자오양 Yin Zhaoyang전] 더 페이지갤러리(THE PAGE GALLERY)에서 2015년12월8일부터 2016년 2월28일까지] 


    중국현대미술의 대표작가(尹朝阳)의 개인전 한산(寒山, Cold Mountain)을 선보인다 2011년 한국에서 두 번째전시를 맞게되는 인자오양은 중국전통미술의“산수(山水)”라는 새로운 주제를 선보였다. 이는 중국의 현대와 전통미술의 맥을 이을 자신만의 해결 방안과 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인자오양은 1970년 하남성남양에서 태어나 1996년 북경의 중앙미술대학에서 판화과를 졸업하였다. 현실주의적 기법과 비극적이고 영웅주의적인 색채로 알려진 중국당대미술의 대표적작가이며, 그의 작품 속에서는 20세기말 중국이 처한 폐쇄적사회구조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았고, 그의 거친 표현방식과 날카로운 색채는 국내외 많은예술인의 찬사를 받았다 

    [두산 아트스쿨 DOOSAN ART SCHOOL] 두산홈페이지 www.doosansartcenter.com

    김정희 서울미대교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고1때 불어와 독일어 한시간씩 배우고 고2때 독불 중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교육제도의 혜택으로 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3개국어를 한다. 그러니 3차원의 세계를 보고 미술사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서양미술이지만 이 서양미술을 우리의 문화역사에 접목시키는 것은 아직 과제이지만 말이다

    두산 아트 스쿨 참가자 모습

    [다다와 초현실주의] 1차대전과 미술
    -1916년 스위스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서 탄생한 다다 100주년 여러 행사가 있다
    [르몽드] www.lemonde.fr/arts/article/2016/02/19/la-suisse-enfin-gaga-de-dada_4868211_1655012.html

    Ce triptyque (1510-1516) représente "Le Chariot de foin", encadré du "Péché originel" et de "L'Enfer". MUSÉE NATIONAL DU PRADO, MADRID 이 그림이 초현실주의 그림의 원조가 된다 사진 프라도 미술관

    보슈는 나무 판넬에 그려진 3개의 그림이 서로 맞붙은 3연작화를 여러 점 그렸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세속적 쾌락의 동산'이다. 이 작품의 왼쪽 판넬에는 아담과 이브와 수많은 경이로운 동물을 담은 낙원을 묘사하며, 중간 판넬에는 다수의 벌거벗은 사람들과 거대한 과일 및 새를 담은 지상의 쾌락의 모습을 그리며, 오른쪽 판넬에는 다양한 종류의 죄인들을 향하여 공상의 징벌의 묘사를 그린 지옥의 모습을 담는다. 관람자가 볼 수 있는 외부 판넬이 닫힌 곳에, 그리사유 기법으로 신이 지구를 창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다 아래처럼 글씨를 떨어뜨려 나열하다. ACHA 아하 등등 특히 후고 발 Hugo Vall은 단어(word)가 없는 시(verse)를 쓰다 그 대신 사운드시(sound poem)를 쓰다 다다에서는 사운드를 시로 쓰다 네오다다 백남준은 사운드로 이미지(sound image)를 쓰다 바로 비디오아트다 

    다다는 잔혹한 세계전쟁 때문에 반이성일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에 반대 도덕적 미학적 사회적 가치 규범에 반대 우연과 부조리 역설을 중시하다. 전통미 거부 표현주의 거부 이성주의 정신주의 반대 미술을 위한 미술 반대 남성적인 것에 반대 사진과 비디오 등을 중시 의상에 관심이 높고 믿음에 대해서 부정하다 글씨를 떨어뜨려 나열하다

    <다다>로 말장난을 하면 모든 것은 아니다다/기존의 미술은 죽었다다/다다 죽었다다/의식무시 문법무시 예술을 위한 예술 무시 사회적 유기체와 권련관계무시/체제무시 반군국주의 반전주의 등등

    1916년 다다(Dada movement)가 태어난 장소가 바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다. [블로그참고내용] www.dadart.com/dadaism/dada/021-dada-zurich.html 
    초현실주의: 사물을 모두 다시(다르게) 보다 이성적 억압의 반항으로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모든 것을 성적인 메타포로 연상하다 사물을 용도로 보지 않으면 다 예술이 되는데 이것을 주로 성적 상징으로 표현하다.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페티시즘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의 예는 프로이트의 책에도 이미 언급되었고 가학적 피학적인 형태로 당시로는 상당히 도발적이었죠. Max Ernst, Man Ray와 같은 미술가들은 다다의 특성을 초현실주의와 결합. 취리히에서는 Hugo Ball, Richard Huelsenbeck, Hans(Jean)Arp, Tristan Tzara, Marcel Janco 등등 있다



    1차 세계대전 중 인구 6-7%가 죽은 나라도 있었다> 예술가들 이성에 대해서 안티를 걸다
    1차 세계대전과 미술 <아래사진> 다다의 아지트<카바레 볼테르> 1916년 2월 5일 병역을 기피하고 중립국인 스위스의 취리히로 넘어온 독일인 시인이자 철학자인 Hugo Ball의 독일인 시인이자 철학자인 Hugo Ball의 퍼포먼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시작되어 1918년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남. 기성 세계에 대한 반발로 독일의 많은 젊은이가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선 전쟁에 자원입대. 

    그러나 이 전쟁은 독가스, 전차, 비행선, 참호전 등으로 인간을 살인·기계화함. 유럽의 젊은이의 일부는 처음부터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의 한 형태임으로 보고 입영을 거부했지만, 자원입대했던 젊은이들도 전쟁의 실상을 보고 실망. 일부는 정신질환을 앓게 됨. 다다운동은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거부하며 등장.

    다다는 인간이 만든 기준을 주관성이라는 맥락에서 거부한 반면, 그뒤에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그것을 이성의 억압이라는 맥락에서 거부. 그외 많은 미술가들은 전쟁중과 후에 직접 전쟁의참상을 알리고전쟁에 반대하는활동을 함.

    <다다>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6년 취리히에서 시작되어 1923년까지 스위스(취리히), 독일(베를린, 쾰른, 하노버), 프랑스(파리), 미국(뉴욕)과 일본(도쿄) 등에서 서양미술사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진행된 예술 경향을 칭함.

    1916년 2월 5일 병역을 기피하고 중립국인 스위스의 취리히로 넘어온 독일인시인이자 철학자인 Hugo Ball이 Cabaret Voltaire를 염. 이곳은 시를 낭송하고 춤도 출 수 있던 곳으로, 유럽 여러나라에서 온 병역기피자들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집합장소가 됨.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사진 Villica-Caja in 1929. 다다(Dada Movement)에서 중요인물 나중에 초현실주의에 기울다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는 187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와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05년 인상주의 화풍으로 구성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일찍이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으나, 점차 야수파와 입체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피카비아는 1911년 입체주의의 한 분파인 황금 분할파(섹시옹 도르)에 참여했다. 그리고 퓌토 그룹을 통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등을 만나 이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12년에는 오르피즘으로 이행하여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형태를 분해해 특유의 반추상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피카비아는 이를 통해서 구체적인 형상 묘사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음악의 화음이나 춤의 율동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1913년 피카비아는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에 추상 작품들을 출품하여 호평을 얻었다. 이 전시를 통해 그는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으며, 이후 뒤샹, 만 레이(Man Ray)와 함께 뉴욕 다다이즘의 토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1915년에는 기계를 모티프로 한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국제적인 다다이즘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16년 바르셀로나로 옮겨 전위잡지 《391》을 창간하고, 1918년에는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와 만나 취리히 다다이즘을, 1919년에는 파리에서 다다이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후 왕성한 실험을 끝마친 다다의 구성요소들은 새롭게 떠오른 초현실주의 운동에 흡수되고 있었다. 결국 피카비아는 1921년 다다이즘과의 관계를 끊고,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1924년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잠시 전통적 구상회화로 회귀하기도 했으며, 1930년대에는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과 친한 친구로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피카비아는 고향인 파리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추상화를 그리고 시를 쓰다가 1953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에는 '우드니 Udnie'(1913), '나는 추억 속에서 나의 친애하는 우드니를 다시 만난다 I See Again in Memory My Dear Udnie'(1914), '지상에서 매우 보기 드문 그림 Very Rare Picture Upon the Earth'(1915), '여기, 이곳이 스티글리츠다 Ici, C'est Ici Stieglitz'(1915),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 Machine Turn Quickly'(1916~1918) 등이 있다.

    <올해가 다다선언한지 100주년 전 세계에서 기념행사가 유럽 미국 심지어 일본에서 행사가 있다고 한다> 다다-Hannah Hoch cut with knife독일의 지옥도(Hell) 같은 대혼란과 인간 말종의 모습을 그리다

    아폴리네르의 형상시 초현실주의 이죠. 그리고 자동기술법이 나오죠. 자동기술법이란 정신 사납게 글을 쓰는 것인데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을 무의식글쓰기인데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우선 반이성주의고 사고(합리적인 의식을 거부하고)와 검열을 전혀 받지 않는 방식을 말하죠.1919년 그는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과 필립 수포(Philippe Soupault)와함께 문학잡지 리테라튀르(Littérature) 발간. 취리히에서 온트리스 탄차라와도 교류하다 
    브르통은 1916년 낭트에서 만난 젊은 자크 바셰(Jacques Vaché)를 만나다. 그는무관심한 냉소주의와 반사회적인태도로기존의 모든 예술전통을 무시했고, 24세에 아편을 과용해 자살. 브르통은 자신이 랭보(Arthur Rimbaud), 자리(Jarry),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로트레몽(Lautréamont)의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빚진 사람은 바셰(Vaché)라고 말한다. 

    리테라튀르(Littérature)의 시인들은 그들의 사고를 검열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쓰는“자동주의쓰기”를 실험하면서 잡지에 꿈에 따라 쓴 글을 발표하다 
    브르통과 수포는 자동주의에 더 깊이 들어가 <자장기법(Champs magnétiques)>라는 방식으로 시를 발표. 이것은 로트레몽(Lautréamont)의 시, “말도로르의 노래(VI,3, 1869) “해부대위에 재봉틀과 우산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와 같은 시의 연상기법에 따른 것이다.

    ”브르통은 위의 선언서에서 “나는 겉보기에 그렇게도 대립적으로 보이는 꿈과 현실사이의 경계가 미래에는,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초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절대적인현실에서 용해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씀. 다다가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한 것과 달리 초현실주의는 비이성적인 것을 학문적,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하려 노력하여 프로이드의 심리분석학에 관심을 가지다. 

    초현실주의의 프로그램은 모든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의식을 거부하고 영감의 비합리적인 근원에만 의존함. 꿈, 무의식, 환각, 더 나아가서는 곤충들의 성생활, 원시인들의 민예품, 정신병자의 그림 등에 관심을 가지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동주의기법으로 불리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무의식의 받아쓰기, 또는 무의식으로의 여행과 같은 자동주의 기법 외에 로트레아몽의 시처럼 사물을 일상의 모습과 다른 방식으로 왜곡하다.

    다다-독일의 작가 Dix Otto 인간의 바닥을 보다 해골과 시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꼭 100년 전 헬조선이 아닌 Hell 독일(게르마니아)를 그리다  머릿속에 똥이 들어있는 부르주아를 그리다 요즘 말로 꼴통을 그리다 신부님을 술꾼으로 그리다 경찰국가의 면모를 그리다 사회의 기둥처럼 보이는 사람을 위선자로 그리다

    여기서부터는 초현실주의 아래작품 Max Ernest der Elephant celebes 1921 새와 여자의 혼돈 남성의 잔인함을 지적 <초현실주의>란 리얼리티(현실주의) 위에 있다. 그것이 더 리얼리티가 있다고 해서 초현실주의다 sur은 영어로 고치면 on이라는 뜻이다

    Hans Arp Collage dada-relief 다다 동양에서 말하는 손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 오랫동안 조금씩 변해온 것에 대한 동경 쉽게 말해 우리의 수석의 미학을 높이 평가하다. 의도성이 없에고 의식을 제로 포인트로 만드는 방식 자연형태를 살리는 불각(不覺)의 미

    칼 융이 말하는 <선험적 기억> 인간관계 밖에 있는 질서 경험하지 않은 선험의 관계 그래서 미국추상표현주의에서는 미국인과 관계없어 보이는 인디언 문화와 연결시키다.

    반전 뒤집기 이 작품을 많이 야하다 남녀의 그것을 합친 그림이다 데페이즈망(페이pays란 땅이라는 뜻) 명사 앞에 데(Des)가 붙이면 '해체' 혹은 '이동'의 뜻이다 부분을 떼어서 다른 곳에 붙이는 것이죠. 이쪽 땅을 파내어 저쪽을 옮겨서 붙인다는 뜻이고 일종의 콜라주인데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른 곳에 이사시키는 것이다


    카망베르 치즈가 녹은 것 같은 이 그림 여기에는 달리가 어려서 받은 성에 대한 억압과 그것으로 당한 공포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을 보면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페티시즘 적 요소가 많고 그리로 그냥 실제적으로 그런 것도 있다 초현실주의의 특징은 바로 성적 억압에 대한 반발이 가장 중요한 저항이었다 곤충도 역시 페티시즘이죠 물건을 용도로 보지 않으면 예술이 된다 그래서 물건은 모두 성기에 대한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대지란 용도로 보면 농사를 짓는 것이지만 용도를 바꾸면 여성의 성기가 된다

    [이미지의 배반] 르네 마그리트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여기는 파이트가 아니고 파이프의 그림일 뿐이다 [신즉물주의 新卽物主義Neue Sachlichkeit(독)] 맨낯의 가차없는 사실적 표현 마술적 사실주의라고도 한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개인의 내부로 침잠하려는 표현주의*와 엘리트주의적인 추상에 반대하고, 전후 혼란상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며, 사물 자체에 접근하여 객관적인 실재를 철저히 파악하려는 사실주의적인 특성을 지녔다. 1925년 만하임 쿤스트할레의 관장 하르트라우프Gustave Hartlaub가 ‘적극적이고 만질 수 있는 실재에 대한 충성을 지속해왔거나 되찾은 예술가들’의 <신즉물주의>전을 개최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명확하고 숨김없이 일상의 타락과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던 1920년대 초 베를린 미술, 문학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주로 뮌헨을 중심으로 형이상학적 경향의 전원풍으로 돌아간 카놀트Alexander Kanoldt와 슈림프Georg Schrimpf 등도 신즉물주의...자에 속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그로츠George Grosz(1893~1959), 딕스Otto Dix(1891~1969), 샤드Christian Schad(1884~1982) 및 베크만Max Beckmann(1884~1950)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딕스와 그로츠는 철저한 세밀묘사, 강한 색채와 과장된 캐리커처* 등의 방법으로 전쟁의 공포와 도시 사회의 퇴폐적인 면, 노동자들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병폐, 성(性)의 폭력적 측면 등을 가차없이 그려냈다. 이들의 조형정신은 다다*, 초현실주의*, 이탈리아의 형이상학적 회화*와 연관되며, 사실주의적이면서 환상적인 이들의 표현방법으로 인해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신즉물주의는 현실의 객관적인 기록과 초현실적인 환상의 양극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지상(技術至上), 기계숭배, 소외와 물상화 현상을 긍정하기 쉬운 일면도 지니고 있었다. 한편 건축이나 공예* 분야에서 역사적 양식의 단순한 모방을 떠나 합목적성, 실용성을 추구한 1920년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쓰기도 한다. 신즉물주의는 1930년대에 현실 비판적이고 사회적 병폐를 신랄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인해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찍혀 탄압을 받았다.

    [표현추상주의 이전의 미국미술]

    [American regionalism art] Grant Wood, "American Gothic," 1930, oil on beaver board, 30 3/4 x 25 3/4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Friends of American Art Collection

    [American regionalism art] John Steuart Curry, "The Old Folks Home (Mother and Father)," 1929, oil on canvas. Cincinnati Art Museum, The Edwin and Virginia Irwin Memorial

    More than a memorable image, "American Gothic" also marks an important moment in American art history, when Wood and others re-established the value of realist art following a wave of abstraction in the first quarter of the 20th century. By harking back to the history of American representational painting and connecting it to essentially American qualities, Wood and his peers also helped to preserve the genre for future generations. The painting's anticipated display in Cincinnati will provoke thoughtful discussion on the intersections of art and daily life and the contrasts between rural and urban America.

    미국작가 Philip Evergood 소셜 리얼리즘 Social Realism

    [American regionalism art] CHARLES DEMUTH 

    19세기 미국 풍경화가 토마스 콜, 숭고미와 관련된 그림이겠죠


    [독일 바우하우스 미술운동] 20세기 근대미술의 요람

    바우하우스

    bau란 building 건축이라는 뜻 1) 21세기에 맞는 교육을 준비 2) 구축주의 이상의끈을 놓지 않다 3) 교수라고 하지 않고 마이스터(도제방식)라고 부르다.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없다 4) 위대한 건축과 수공업의 완성 5) 공방과 예술, 순수예술과 응용예술, 예술과 기술, 구분하지 않다. 6) 기초과목 중심 춤 물리학 등도 배움 7) 총체예술(Gesamtkunstwerk) 20세기 전반기에는 바우하우스 20세기 후반기는 바우하우스 이어 플럭서스 [백남준의 계보학]: 바우하우스 경계 없애기 총체예술 축제를 가장 중시함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단체는 전반기 바우하우스이고 후반기는 플럭서스이고 20세기 미술사에서 전반기 가장 중요한 미술운동은 다다운동 그리고 후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오다다운동(백남준 보이스)이라고 볼 수도 있다

    1925-1926 Gropius Haus Bauhaus


    발터 아돌프 게오르크 그로피우스(독일어: Walter Adolph Georg Gropius, 1883년 5월 18일~1969년 7월 5일)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독일의 건축가이다. 근대 건축의 4대거장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의 한 명으로 여겨진다.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이며,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초대 교장을 맡았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며 인터내셔널 건축의 주창자다.


    Oskar Schlemmer의 이 작품 triadic ballet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소개되었죠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 수업의 마무리 교수와 학생들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수업이 끝나죠

    바우하우스 마리안 브란트의 디자인 작품 Marianne Brandt 1926

    바우하우스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 
    바우하우스(Bauhaus): 1919년에 Weimar에 설립되어 1925년 Dessau로, 1932년에는 Berlin으로 옮겨졌다가, 1933년 4월 나치 경찰에 의핚 폐교하게 된 새로운 교육방식과 현대적 조형을 교육학 독일 국립미술연구소. 그 후 이 전통은 시카고의 The New Bauhaus로 이어짐.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지휘 아래 기존의 바이마르 미술학교와 1915년 해체된 한스 판 드 펠데(Hans van de Felde)의 예술공예학교의 섞여 조직이 결합하여 바이마르에 만들어짐. 1919년 프로그램에서 그로피우스는 “모든 미술의 궁극적읶 목적은 건축(Bau)이다”라고 씀

    [바우하우스 시기구분] <제1기(1919-1922)>: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Weimar <제2기(1923-25)> <제3기(1925-28)>: 1927 이후 교장: 핚네스 마이어(Hannes Meyer), Dessau <제4기(1928-30)> <제 5기(1930-33)>: 교장: 미스 반 데어 로헤(Ludwig Mies van der Rohe), 1932-33, Berlin/ 시카고의 바우하우스: 제1기부터 바우하우스 마이스터였던 Moholy Nagy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핚 후 시카고에 The New Bauhaus를 설립하여 시카고 디자인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다 나치가 등장하면서 1938년에 문을 닫음.

    바우하우스마이스터 선생들 The Bauhaus masters on the roof of the Bauhaus building in Dessau. From the left: Josef Albers, Hinnerk Scheper, Georg Muche, László Moholy-Nagy, Herbert Bayer, Joost Schmidt, Walter Gropius, Marcel Breuer, Vassily Kandinsky, Paul Klee, Lyonel Feininger, Gunta Stölzl and Oskar Schlemmer

    바우하우스에서는 “위대한 건축”을 중심으로 하여 수공업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미술과 건축을 환상적으로 종합핚 총체예술작품(Gesamtkunstwerk)을 위해 미술가들이 함께 봉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싞적-예술적읶 교육과 실용적-수공업적 교육을 결합시키고자 함.

    그로피우스는 공방과 연결된 교육을 강조. ...예술과 기술의 통일을 추구. 순수 미술과 응용미술의 구분 철폐. 학생이 자싞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게 마련된 준비과정 수업을 강조. 학생들은 공방에서 기술을 익히고 일정 시갂 공방에서 작업을 하여 부분적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게 했고 수공업회의소에서 도제와 마이스터 시험을 치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함.

    산업화의 영향으로 수공업의 중요성이 약화되어 가 1923년의 과제적 모토는 “미술과 기계-하나의 새로운 통일”이 됨. 설립 당시 사회주의-낭만주의적 유토피아 이상이 “완전한 건축”이라는 이상에 의해 포기됨

    [1921-1922년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


    Stundenplan Bauhaus Weimar für WS 1921/22] 개인주의 중시, 정신적, 신비주의적인 표현주의 경향(칸딘스키, 클레의 영향) [1] 예비과정(6개월) [2] 전문과정(3년)

    [1] 예비과정(6개월) 요하네스 이텐 등 재료와 도구에 대한 경험과 재구성을 통해 개인의 창조력을 계발시키고, 학생 자신의 특수한 능력을 평 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둠 [2] 전문과정(3년) 목공 - 발터 그로피우스(기능과 소재로부터 나온 형태의 단순성 추구→직선적인 가구) 금공-요하네스 이텐 → 모홀리 나기 도예-게르하르트 마크스(Gerhard Marcks) 개인적 감각표현 중시, 수공예적 요소 강함 목조·석조-오스카 슐렘머(Oskar Schlemmer) 
    조각은 그 자체뿐아니라 건축의 벽면으로 이용, 조형훈련의 일환으로 지도됨 직물-게오르그 무헤(Georg Muche) 양모로 만드는 회화로서 벽걸이, 가리개 등 판화·인쇄-리오넬 파이닝거 후에 그래픽 수업 추가 벽화-바실리 칸딘스키 스테인드 글라스-파울 클레


    바우하우스교육철학: "학과를 나누지 말자" 상호연결성을 중시©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바우하우스가 없으면 현대미술은 없다 공방과 예술, 순수예술과 응용예술, 예술과 기술, 구분하지 않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 좀머펠트 주택(Haus Sommerfeld) 

    http://www.ewin.co.kr/02-01.htm 발터 그로피우스와 아돌프 마이어가 1922년 베를린 다렘에 설계 전통적 향토양식의 통나무 주택, 내부에 목각이나 스테인드글라스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종합예술작품을 창조하려 시도하다



    [추상표현주의 시작은? 사회가 불안하고 심리상태가 모호할 때 추상충동이 생긴다] 사회가 어지러우면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내적 울림을 강조한다. -칸딘스키

    미국추상표현주의 이전에는 별 미술이 없었다. 1913년 아모리 쇼가 유럽의 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관문이었고 20년대부터 미국미술은 보수화되죠 그것이 바로 동네미술이라는 뜻이 담긴 지방주의미술(Regionalism or American Scene painting is an American realist modern art movement that was popular from 1920s through the 1950s in the United States)이 미국에서 유행했다

    미국미술의 특징은 항상 먼저 내세우는 것이 바로 넓은 땅덩어리다 그리고 자연의 메타포다 이런 점만자랑할수없기에 미술에관심을두기시작하고 미국미술의 발전의 기반이 되는 1929년에 모마(MoMA)와 1931년 휘트니미국미술관이 생겼다.

    히틀러 때문에 유럽의 시인 작가 작곡가 음악가 건축가 시인 미술가 과학자 등등 수천 명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백남준이 좋아한 쇤베르크도 미국으로 망명하죠. 발터 벤야민은 미국망명을 실패에 자살했고 그 중에서 시인 브레이트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독일로 돌아왔지만

    미국은 정말 유럽의 지식인 중에서 최고급 보물단지를 안방에 앉아서 다 얻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정치경제적 중심지가 되면서 미술에서 유럽을 따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면서 미국미술의 세계화에 힘쓴다. 여기에는 CIA가 전반적 기획을 했다. 그래서 냉전시대에 문화정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국의 프런티어 정신이 보인다. 인디언이 땅에 그림을 그리듯 바닥에 놓고 그림을 그리다 초기 아메리칸 인디언의 토템주의가 도입된다 그래서 미국적이다 유럽에서 나올 수 없는 그림이다 그림을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린다. 그림에 액션(action painting)이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이벤트 아트 퍼포먼스아트 해프닝 아트 사건의 미술 등에 큰 영감을 준다

    기하학적인 것이 아니다 all over그림은 중심이 없다. 선과 면의 경계가 없다 절대적 개성을 발휘하다. 그린 것이 아니다 뿌리다 무한대의 물량주의 이것은 바로 미국의 경재력을 상징한다. 아주 남성적인 카우보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주의 마초주의 뿌리는 미술은 남성의 정액을 상징한다. 넓은 땅과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특징이다 자유주의 선봉자 무의식적이고 초시간적이다
    이 그림을 보니까 뉴욕에 온 보람을 느꼈다 

    뉴욕을 밤에 도착해서 거대한 스케일의 반짝거리는 맨해튼야경을 보면 정말 거대한 폴락의 그림과 너무나 흡사하게 보인단다. 역시 폴락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출신의 미국미술애호가 도미니크 드 메닐라는 분이 있죠 그의 남편인 존과 함께 휴스턴에 마트 로스코 기념관을 만들었나요 1989년 미국 내셔널 메달을 받았군요 Strake and Jones Halls, designed by Philip Johnson, University of St. Thomas, Houston

    Houston 휴스턴 마크 로스코 경당 
    [그래프 미국국민총생산량 변화추이] 미국경제의 추이 1915-1918년 미국경제 최고의 최고, 1921년 최악, 1933년 최고의 최악, 1943년 2번째 최고, 1945년이후 2번째 최악, 1950-1951년 2번째 최고, 이 시기를 그래서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라고 한다. 그 이후 이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시기는 없었다. 미국은 이렇게 한국전쟁 때 전례가 없는 경제특수를 누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때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최고전성기였다 경제와미술은 관련성이 깊다

    미국미술과 유럽미술의 차이는 뭔가 미국미술은 유럽에서 보는 것과 같은 reproduce가 아니다 re-design이 아니다 analyse가 아니다 미국미술은 자신과 싸우는 하나의 투쟁이고 event이다. 어떻게 보면 멕시코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원시 벽화의 방식이다. 경기장의 투사와 같다. 측량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서부개척정신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무질서와 혼돈 속 뭔가를 추구한다. 모마에서 찍은 사진 
    [버넷 뉴만의 onement 1948]  Newman shared the Abstract Expressionists' interests in myth and the primitive unconscious, but the huge fields of color and trademark "zips" in his pictures set him apart from the gestural abstraction of many of his peers. The response to his mature work, even from friends, was muted when he first exhibited it. It was not until later in his career that he began to receive acclaim, and he would subsequently become a touchstone for both Minimalists and a second generation of Color Field painters. Commenting on one of Newman's exhibitions in 1959, critic Thomas B. Hess wrote, "he changed in about a year's time from an outcast or a crank into the father figure of two generations."

    모마가 피카소의 이 작품을 소장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다 

    Irving Sandler 어빙 샌들러 © Jonathan Gams, 2007

    Irving Sandler, the foremost critic on postwar American art, will speak at the School of Visual Arts on April 16 about his firsthand experiences with the key figures in the Abstract Expressionist movement. The lecture coincides with release of his new book, Abstract Expressionism and the American 프랑스출신의 미국미술애호가 도미니크 드 메닐라는 분이 있죠 그의 남편인 존과 함께 휴스턴에 마트 로스코 기념관을 만들었나요 1989년 미국 내셔널 메달을 받았군요 Strake and Jones Halls, designed by Philip Johnson, University of St. Thomas,

    Ce jardin appelé "Le jardin de l'île au pin" se situe dans le bâtiment des Grands Moulins, aux abords de la salle des conseils de l'Université et de la bibliothèque des études asiatiques.

    Cet événement se déroulera en présence de Vincent Berger, président de l’université Paris Diderot, de KIM Byung-Kook, président de la Korea Foundation et de S.E. PARK Heung-shin, ambassadeur de la République de Corée en France.

    [숨겨진 이야기] 60년대 내가 본 미국영화들 황홀했죠. 스펙터클하고 70미리 영화 정말 대단했죠. 그 판타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그런 중에 알랜 드롱이 나오는 <사무라이> 같은 영화는 나름 임페트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 규모나 예산이 너무 작죠. 그런데 사실 이렇게 멋진 영화들은 보이지 않게 미국 CIA의 자본이 흡수되어 기획한 것이 많다. 당시 냉전시대 구소련과 체재경쟁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성공을 거두다 미국이 인디언과 싸워서 이기면 열렬하게 박수를 치던 이런 오락영화도 사실은 이념영화였다 하여간 영화로 대성공인 셈이다 존 웨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면 속히 후련해지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미국보수주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대통령을 지낸 레이건 역시 미국영화인 협회회장출신이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세계적 미술이 되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색다른 추상표현주의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

    [코브라(CoBrA 1948~1951)그룹]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일어날 때 유럽에선 코브라운동 



    코펜하겐(Co), 브뤼셀(Br) 그리고 암스테르담(A)에서 온 합성어] 이번 전에서 주요작가인 욘(A. Jorn)은 덴마크, 아펠(K. Appel)과 뤼세베르트(Lucebert)은 네덜란드, 코르네유(G. Corneille)와 알레친스키(P. Alechinsky)는 벨기에 출신이다. 이 그룹명은 코펜하겐(Co), 브뤼셀(Br) 암스테르담(A)의 첫 자에서 따온 것이다. 철자가 공교롭게도 코브라 뱀과 같은데 실제로 전후에 독을 품고 유럽미술에 파고든다.

    이 중 아스거 욘(Asger Jorn 1914~1973)은 이 그룹의 정신적 지주이자 이론가이다. 그는 화가면서 시인이고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에 참가한 덴마크의 영웅이다. 그는 마르크시즘과 예술을 통합해 나이, 지위, 인종과 무관하게 모든 이에 의해, 모든 이를 위한 이론을 펼친다. 추상표현주의, 타시즘(얼룩, 반점 등을 쓰는 미술) 등에 많은 영향을 준다 

    [한국의 불교미술] The Three Jewels: Buddhist Art of Korea 삼성리움미술관 세 가지 보배:

    한국의 불교미술 The Three Jewels: Buddhist Art of Korea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La chambre claire) 사진론

    밝은 방(La chambre claire)은 카메라 암실(la chambre noire)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이 아닌 인간의 심리 속에서 벌어지는 사진의 존재에 대한 사색 노트다. 존재에 대한 사진의 명증성, 즉 사진의 대상이 거기 있었음, 그것이 존재했음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기 때문에 암실이 아닌 ‘밝은 방’이라고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사진의 코드화 될 수 없으나 우리를 ‘찌르는’ 능력을 스투디움(studium)과 구분되는 풍크툼(punctum)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사진은 문화가 각인된 분석 가능한 내용인 스투디움(studium)과, 스투디움을 방해하는 요소, 점처럼 폐부를 찌르는 우연하고도 설명하기 힘드는 이끌림의 요소인 풍크툼(punctum)을 담고 있다 
    [한불수교 130주년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The Family of the Invisibles) 2016. 4. 5(화)-2016. 5. 29(일)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 본관2,3층 & 일우 스페이스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프락 아키텐소장품전  사진, 영상, 설치 등서소문본관: 작가 90명 / 작품 145점일우스페이스: 작가 24명 / 작품 66점 신디 셔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제프 쿤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빅터 버긴, 소피 칼 등서울시립미술관, 일우재단, CNAP(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FRAC Aquitaine(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 ㈜대한항공, LVMH, ㈜웨스틴조선호텔포지움(2016.4.6.14:00) : 바르트 세우기/허물기 (de)constructing Barthes 위 바르트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이 있군요



    [뉴욕(New York)전_오치균전] 금호미술관에서

    오치균 작품 
    오치균다운 화풍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라 손맛은 대단하다 촉감의 미학이다  오치균 그가 유학했던 뉴욕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30여점이 걸렸다. 두둑한 닥지가 누렇게 변한 작품보다 1970년대 작품이 더 눈길을 끈다. 갤러리 1관에 전시된 작품으로 유족측이 판매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치균 단색화 풍의 뉴욕풍경화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금호미술관



    "작업하기전에 핸드크림을 많이 바른다"는 그는 "손으로 하는게 운명인 것 같다"며 반질반질한 손바닥을 보여줬다. 그의 색채는 어둡고 멜랑콜리하지만 유미적이고 시크하다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 역시 작품이 음악적이네요 1991 푸가의 기법 Art of Fugue 백남준 사이버 펑크 1994 사이버세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다 굿이란 원래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소통하고 만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백남준은 <보이스 추모굿>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나고 그의 모자를 써봄으로써 진정한 우정과 교감을 다시 시각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홍희 관장 인터뷰] "저의 비전은 포스트뮤지엄이지만 경영철학은 양손잡이 철학이이요 공무원의 안정성과 미술기획자의 혁신성..." http://www.theartro.kr/interview/interview.asp?idx=29

    김해주: 선생님께서 작업을 시작하신 1990년대는 한국 현대미술에 큰 변화가 있던 시기였죠. 그때부터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1993년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벌’을 본격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을까요?

    김홍희 : 외국 생활 13년 만인 1992년에 귀국을 했어요. 그간 해외 생활하면서 백남준 선생님을 통해 플럭서스를 알게 됐고, 덴마크 플럭서스 페스티벌에 함께 다니면서 관객 이상의 관객으로 참여했어요. 그때 플럭서스 작가들과 많이 친해졌고, 그 온도가 식기 전에 일을 벌이게 된 거죠.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1천만 원을 지원해주는 전시 기획 공모가 있었어요. 그리고 계원의 모체인 파라다이스 우경문화재단에서 4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지원 받았죠. 
    그렇게 예술의전당, 계원, 갤러리 현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벌이며 당시에는 없던 굿판을 벌인 거예요. 백 선생은 바빠서 서면으로만 참가하셨지만, “플럭서스는 무궁화 꽃”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셨어요. ‘플럭서스는 무궁화보다 질기다’는 의미였는데, 이것을 구호로 딕 히긴스, 앨리슨 놀즈, 존 핸드릭스 등 오리지널 멤버 15명이 참여했죠. 프로그램을 맡은 르네 블록까지요

    프랑스의 사치갤러리라고 하는 페로탱갤러리가 서울에도 생기는군요 
    http://artforum.com/news/id=58659


    사진 박현주기자 브라보 김구림 잔디에 그림을 그린다는 발상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좋은 전시란 우선 낯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미술은 관계를 고민하는 것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과 사물의 관계 속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사물은 변화하는 것이죠. 미분이 되고 적분도 되지요. 전시장 배선을 사물이 되어야 한다. 미술은 모든 것이 사물과 관련된 것이기에 1인칭을 어떻게 지우냐가 창작자의 숙제이고 경험자(감상자)도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죠. 

    자신을 낯설고 예외적 3인칭 끊임없이 반복하는 삶 그 속에서 깨달음 얻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올바른 미학이나 전시에 강박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추신] 전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행동을 위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전시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그것이 질문을 하다보면 그 질문이 발전하게 되는 것을 깨닫는다.  -이영철 큐레이터 

    [프랑스가 노벨문학상 챔피언(15개, 노벨상의 14%)인 것은 책사랑에서 올 것이다] 
    프랑스대통령도 왔는데 한국이 주빈국인데 한국 측에서 대사조차 오지 않았군요 파리도서전 2016 한국책 코너 황석영 등 한국작가 그리고 한국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적 체계를 갖춘 한글에 우수성에 대해서도 소개되고 있군요 전시장 천장에 걸린 한국작가들 프로필이 인상적이네요

    2016년 파리도서전에 참가한 소설가 한강 아래 프랑스어로 번역된 그녀의 소설 그녀의 주제는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 많다. 세계가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 세상의 다양한 폭력성에 대한 고발 때문인가요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마치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게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Han Kang est née en 1970 et a étudié la littérature à l'université. Elle est professeure au département de création littéraire au Seoul Institute of the Arts.

    Elle fait ses débuts littéraires comme poète en 1993, mais s’oriente rapidement vers le roman. Ses œuvres ont été reçues avec enthousiasme par les critiques et les lecteurs pour leur profonde exploration de la nature humaine à travers un style d'écriture délicat et puissant. Pour Han Kang, les idées socialement acceptées et la condition de l'être humain constituent une violence insupportable. Les personnages de Han Kang sont souvent prisonniers de leur passé et traversent la vie avec douleur et raffinement.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한강작가

    파리도서전 2016 주말에 20만명이 방문하다 3000명 작가 만날 수 있고 1200개 출판사와 함께 40개국 참가했고 800개의 미팅이 있다 특별한 문화를 가진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주빈국 이 기사에는 한국소설가 은희경과 한국시인 김혜순에 주목하고 있군요 다 여성이네요 문정희시인과 마종기시인도 소개하고있군요


    책 표지 사진 너무 멋지네요 소설내용은 좀 난해해 보이지만 모디아노 신작 장편소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내가 사건의 실상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 그림자만 보여줄 수 있을 뿐." -파트릭 모디아노 "에로스(성 에너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보장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적인 생명력을 함양하는 가장 결정적 발판이 된다" - 빌헬름 라이히(성 혁명에 관한 이론의 저자) [주] 여기서 에로스[생명의 본능]는 자본주의적 소비향략주의(말초적 쾌락주의)과는 반대의 개념으로 볼 수 있죠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도 파리도서전을 찾는다. 소설가 황석영(73)·이승우(57)·문정희(69)·오정희(69)·마종기(77), 한강(46), 청소년문학 김진경(63), 만화가 김정기(41) 등 30명이다. 작가 대담과 사인회, 낭송회를 하는 '프랑스국립도서센터(CNL) 연계 작가' 행사가 폐막일인 20일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다. -뉴시스

    "20년 가까이 투표도 안하던 정치 냉담자가 국회의원 후원회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라는 그의 자문에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지금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개인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상황 방치하면 전체주의 옵니다. 전체주의는 예술의 적입니다" -소설가 김영하 [김영하 누구?]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문학동네 작가상(1996), 현대문학상(1999), 이산문학상(2004), 동인문학상(2004), 황순원문학상(2004), 만해문학상(2007), 이상문학상(2012), 김유정문학상(2015)을 연이어 수상했고, 그의 작품은 미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네덜란드·터키 등 1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영화와 연극,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판과 <씨네21>에 칼럼을

    김수영의 이렇게 좋은 시가 있었다니 몰랐다 두고두고 읽고 또 읽어 음미해볼만한 시다 인간의 최대 실수는 바로 서두름에 있지 않은가 이 시에서도 그의 근심의 대상은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까지를 포괄한다. 한국의 낙후된 정치·사회적 조건이 언제나 그를 서두르게 했다. 그 형형한 눈에 너무 많은 누추한 것들이 보이니 괴로운 것이다. 오죽하면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가 될 것을 상상했겠는가. 서두르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자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35755.html 
    발터 벤야민은 "정치는 최악의 차악이다"라고 했던가. 함석헌 옹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군요. "정치란 덜 나쁜 놈을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몸이 다해 먹는다" -정운현 타임라인에서 

    파리도서전 2016 주빈국한국특집 <한국은 문학적으로 풍부한 나라>

    한국전문가 마르틴 프로스트 박사(한국남성과 결혼) 인터뷰 반면 아래사진을 한국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사진 2009년 서울대학교 대학도서관 대출에서 가장 비률이 높은 것은 바로 실용서라는 점도 꼬집고 있네요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갔을 때 한국의 권위적인 가부장제에 대해 놀랐다고 하네요 마르틴이 좋아하는 작가는 황석영 임철우 김애란 배수아 그리고 이성우 등등/그녀의 비학술저서로는 <우리 아이들은 동양인의 눈을 가졌어요> <퐁뇌프에서도 잠수교가 그립다>파리 7대학에 있는 한국정원 호랑이와 소나무 2011년 11월 15일 한국정원이 생기다 한국전문가 마르틴 프로스트 박사의 기여 Paris Diderot inaugure son jardin coréen, mardi 15 novembre 2011. Conçu et réalisé en partenariat avec la Korea Foundation, Paris Diderot inaugure son jardin coréen, mardi 15 novembre 2011. 
    모딜리아니 특별전 <내적 시선(The inner eye)> 프랑스 릴 현대미술관에서 6월 5일까지AMEDEO 


    MODIGLIANI.L'oeil intérieur EXPOSITION-ÉVÉNEMENT 27 FÉVRIER > 5 JUIN 2016 이 그림을 보니까 뉴욕에 온 보람을 느꼈다 뉴욕을 밤에 도착해서 거대한 스케일의 반짝거리는 맨해튼야경을 보면 정말 거대한 폴락의 그림과 너무나 흡사하게 보인단다. 역시 폴락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문화정책] 국가란 문화를 위해서 존재한다


    문화의 민주화 위는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이고 아래는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은 문화의 민주화를 위해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그 문턱을 낮추다  이렇게 하려면 우선 빵문제는 해결이 되어야겠죠  여기에 기본적 복지까지 해결되면 더 좋죠. 그러니까 나오는 말이  국가란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정책이다

    프랑스의 대통령 중 우파의 드골과 좌파의 미테랑  그들은 최고의 문화부 장관을 임명하다 드골은 앙드레 말로를 미테랑은 자크 랑을 앙드레 말로 첫 문화부장관으로  그의 문화정책은 최우선은 가능한 많은 프랑스인이  인류유산을 접촉(키스)하게 하는 것이다


    지방에 뿌리내린 문화 지방자치화  그것의 상징은 문화의 집 이걸 20세기의 성당(교회)이라고도 한다  어딜 가나 성당이 있듯이 어딜 가나 문화의 집이 있다는 소리 예산 중앙정부 50% 지방정부 50% 거기다 문화재 보전 법령 아카이브개념이 이때 나왔다  프랑스 영화 아카이브를 만든 것이다

    이번에는 자크 랑을 보자  미테랑 14년간 집권하다보니 장기플랜이 가능했다  자크 랑은 앙드레 말로와 다르게 문화의 고급화가 아니라  문화의 대중화에 힘쓰다:문화민주화:문화민주주의 즉 고급문화와 저급 혹은 대중문화의 장벽을 없애다  문화예산은 총국가예산에 1%끌어올리다


    전국민의 예술교육확장에 노력(문화혜택에서만은 불평등 최소화) 낮이 가장 긴 6월에 여름 <음악축제> 프로젝트 대 성공  문화접근법 지역에 4km(?)이내에 문화공간을 세우는 것 의무화 (앙드레 말로의 정신의 확장과 구현) 문화적 소외를 통해서 사회적 소외를 해소하다  문화적 다양성은 프랑스의 힘 외무부 총예산의 35% 문화예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15.12.19-2016.04.03 

    인터뷰 질문: 인상주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대답(이혜민큐레이터):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2015년 12월 19-2016년 4월 3일까지]



    The exhibition will be held at Hangaram Design Museum in Seoul Arts Center from December 19, 2015 to April 3, 2016. Impressionism is world’s most beloved art movement with the epithet ‘painting of light’

    The Hankook i Cultural Project Center (the former Hankook Ilbo Cultural Project Center) has dedicated to the expansion of art and culture of Korea by hosting world-class exhibitions of masterpiece starting from Chagall: Magician... of Color in 2004, Matisse and the Fauves(2005), Picasso(2006), Monet(2007), Van Gogh(2007-2008), Renoir(2009), Rodin(2010), Chagall(2011), Van Gogh in Paris(2012), Gauguin (2013) and to recent exhibition Modigliani (2015).As its thirteenth special exhibition, Hankook i Cultural Project Center proudly presents the exhibition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독일인상파

    titled Impressionist Landscape for the first time in Korea, featuring the collection of Wallraf-Richartz Museum in Germany. . As the firstrevolutionary artistic movement in modern art, Impressionism has opened a new chapter in the historyof art ever since the Renaissance. From whom and when did Impressionism has emerged? How did itdeveloped, changed and consequently has ended? By dividing the exhibition into concise composition,the exhibition is sought to help understanding on Impressionism for those all interested in art. The exhibition is a first presentation in Korea to feature Impressionism through a single genre, “landscape painting”


    르누아르 풍경화

    아슈 로주 Achille Lauge 강가산책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15.12.19-2016.04.03


    마네의 '아스파라가스' 여기서 보면 당시에는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아스파라가스를 마네는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대단한 것으로 그렸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정신이다 우리가 보기에 흔히 매우 하찮아 보이는 것을 아주 소중하고 고상한 것으로 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렸다는 것이 바로 마네의 현대정신이고 이것이 바로 현대회화의 혁명이다. 일상적인 것이 예술적이 되는 것이 일상과 예술의 구분이 없앤 것이다 프랑스의 식탁에서는 '아스파라가스'는 우리의 콩나물만큼 많이 흔하게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아직 콩나물을 회화의 주제로 삼지 않는가 다시 말해 이런 관점은 요셉 보이스가 한 유명한 말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와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회화에서의 프랑스 혁명이고 회화의 민주화를 상징한다 

    인상파는 왜 생겼을까 증기기관차의 발명 때문이다. 그래서 드디어 작업실이 아니라 외광파 즉 야외(On Air)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장소의 이동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인상파는 보댕이나 코로의 풍경화에서 기원한다. 더 멀리 가면 터너의 영향을 받았다 랭브란트 어둔 빛의 승리라고도 한다. 새로운 색상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다. 



    신인상은 과학적 색채기법 그래서 색채가 분석적이다. 이것은 오늘날 Dot Art의 기원이 된다 이때부터 인상파는 다국적이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 등에서도 나온다. 멀리 미국에서도 인상파가 등장한다. 인상파는 독일의 표현주의를 낳았고 프랑스에서는 야슈파와 나비파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카메라의 발명과 첨단의 기술이 튜브 물감이 나왔다. Portable인 것이다. 어둔 빛의 승리다.대조적인 contrast Impress가 중요해졌다. 



    150년전 인상파는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뭔가 새롭다는 것이리라. 본질적 인간을 건드리기에 그런 것인가 고흐의 파토스 주관적 감정을 강력한 색채로 표출시켰기 때문인가 열차으 이동속도만큼 박진감이 난다. 바로 속도감이 이것은 바로 근대를 상징하는 기의이자 기표이다 사진 왕진오기자

    인상파 후기 4인방 고갱 고호 세잔 쇠라 이들은 독일 표현주의와 다리파 출신 칸딘스키 클레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최근에 고갱이 고흐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인데요 고흐의 고뇌와 광기의 색채미학은 고갱의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미학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네요 쇠라의 점화는 그 파급력이 엄청났죠 모네와 고호 그리고 특히 추상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주면 20세기 미술에 뒤집어놓았죠








    [전인아 <색色, 동動>전] 갤러리Doo 12/12 (토)-12/29 (화) 서울 강남구 청담동 63-18 경원빌딩 지하1층 갤러리두(7호선 청담역 9번 출구)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b370



    기마민족과 관련된 신화적 요소가 강하고 회화의 강력한 움직임을 유발하는 요소가 다분하다. 또한 추상과 구상을 시각적 교란을 일으킬 정도로 교묘하게 뒤섞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객의 시선을 잡는다. 회화를 부조로 번역하는 색다른 시도가 돋보인다. 세포처럼 유동적으로 분열하는 운동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인아 작가에겐 태곳적 생명의 원형을 찾아가는 게 큰 주제이다. 이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매트릭스(Matrix)'다. 이 단어는 마테르(mater/mother, 자궁, 암컷, 모태)'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는 작가의 관심인 우주만물을 움직이게 하고 숨 쉬게 하는 기운생동과 그걸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추동력을 말한다.

    그는 자신이 즐겨 쓰는 맥트릭스 개념을 선사시대 여성의 이미지나 새나 말 같은 신화나 설화 속 동물의 이미지 등으로 그린다. 이번엔 고구려 '주몽'이 타던 말을 연상시키는 장승업이 그린 말 그림 '몽니(蒙泥)'와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신라의 '천마도'를 모티브로 해서 날렵하고 기백이 넘치는 말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추상적 구조 속에는 풍겨 나오는 신화와 설화적 요소가 스토리텔링을 유도한다 신화적 요소가 입체적 부조와 함께 너무 잘 어울린다 종이의 질감인가요 흡입력도 좋다 세상의 포용하는 넓은 품이 넉넉하다

    작품의 소재로 달을 좋아하는 작가의 경향이 보인다 현대판 월인천강지곡 백남준 말이 생각난다 비디오아트의 기원 셋째는 태양의 반사광인

    '달빛'에서 왔다. "눈부신 날, 라인 강의 물결을 세라"에서도 그 달빛을 볼 수 있다" 달빛이 몽골전승이기는 하지만 달빛은 햇빛보다 더 은은하여 21세기적이다 황홀하다 종교가 마음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몸이 없고, 믿음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사랑이 없듯 예술도 고요함(靜)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움직임(動)이 없다. 이를 종합해 보면 종교나 예술이나 결국 몸을 사랑으로 움직여야 소통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회화의 경우는 어떤가. 위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동양의 예술론은 '정중동(There is movement within stillness)' 결국 동(movement)을 위해서 정(stillness)이 있는데 반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으로 말해 그림에서 정(靜)은 출발점일뿐 그 종착지는 동(動)이다. 물론 거기에 관객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하면 더 좋다. 신화적 화풍 속에 바로 이런 회화적 실험을 추구하는 작가가 전인아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부조로 변형시키는 것을 즐겨 한다. https://neolook.com/archives/20151212b

    [작가 소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손녀로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민대에서 미대교수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쉬어 가는 코너>

    [1분철학_자크 랑시에르] -지배세력에 속하지 않아도 발언할 수 있는 무대 마련이 진정한 정치이자 민주주의다 -긴 안목 없는 직접민주주의는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이 창조성을 실현하는 제도와 교육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가 <불화>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개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몫 없는 이들의 몫”(part des sans parts)이라는 개념을 들겠다. 그는 이 개념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해 방식을 일신했으며, 진보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개념의 독창성은 몇 가지 측면에서 해명해볼 수 있다. 우선 이 개념은 민주주의와 정치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정치학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정치체제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곧 그것은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군주정이나 소수가 통치하는 귀족정과 달리, 모든 시민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다수 대중이 통치하는 체제로 이해되었다

    [1분유머] 한국은 중국어휘 2만5천개를 빌려서 사용하듯 영국은 영어어휘의 70%가 프랑스에서 왔기 때문에 역시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창조국가와 모방국가의 차이다. 우리가 이제는 모방국가에서 창조국가로 도약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마치 요즘 프랑스도 영어어휘를 가져다 쓰듯이 말이다

    [미술에서 알레고리적 해석] 알레고리개념이 잘 안들어온다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 I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알레고리(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 패널에 유채 1545년경런던 내셔널갤러리소장

    [결국, 그림 속 알레고리를 조합해보면 이렇다. 사랑(큐피드)은 육체적 아름다움(비너스)을 탐닉하는 욕구를 지니게 되는데, 육체적 쾌락 뒤에는, 변덕(소녀)과 기만(가면), 질투(노파)가 순수한 사랑(비둘기)을 망각(뒷머리 없는 여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노인)의 장막이 걷히면 사랑 속에 숨어있던 진실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운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쾌락, 기만, 질투, 망각으로 순수한 사랑이 퇴색되고, 결국에는 사랑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는 셈이다.] 


    [질문: 고교에서 왜 철학을 배워야 하나?<프랑스 고교에서 철학이 제1과목> 대답: 공해와 같은 것이 그렇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총체적 문제들이다. 철학은 바로 총체적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 나중에 행정 관료가 되어 국가행정에 대한 방안을 모색할 때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미셸 세르

    독서 -서경덕의 시 
    큰 뜻을 가슴에 품고 글을 읽으니 讀書當日志經綸 독서당일지경륜 
    가난의 쓰라림도 오히려 즐겁도다 歲暮還甘顔氏貧 세모환감안씨빈
    부귀는 혼탁하니 어찌 손댈 것인가 富貴有爭難下手 부귀유쟁난하수
    임자 없는 자연에 몸을 안기리라. 林泉無禁可安身 임천무금가안신

    광기, 섹슈얼리티, 병원, 교도소 등 역사, 철학을 넘어서는 지식의 고고학자 푸코 그는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법과 진실을 향한 용기를 주문한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의 전당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거리의 투사로 비밀과 개방 타협과 투쟁 금욕과 쾌락등 뒤섞인 복잡한 사상가 그가 펼치는 10명의 프랑스철학자 이야기 등도 소개된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하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김대중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머니의 아들도 아니고 나는 누구도 아니고 나는 나이고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주 속에 고독한 별빛이고 나는 내 인생을 시작하는 자이고 내 인생을 성공시킬 수도 있고 실패하게 만들 수 있는 자이고 나는 누구도 모독할 수 없는 지존의 하나밖에 없는 존엄함이다

    추억에 빠지면 죽은 거야 추억은 나의 원수 그걸 현대화해야지 만인보는 그런 거야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불러낸 거야 나는 시대의 증인이 아니야 나는 그냥 시대의 종이야  나는 처녀야 -고은

    "시인에게 진정한 꿈은 가장 절실한 현실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고은

    [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시는 술이다. 프랑스의 속담에도 와인 속에 진리가 있다고 했다. 신혼부부가 합궁을 하기 전에 왜 합환주(合歡酒)를 마시겠는가? 서로의 환희와 기쁨을 권하는 것이 아닌가. 불의 발견만큼 술의 발견은 인류문명사에서 최고로 가치있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의례이고 거룩한 제사이다. 삶은 술 속에서 황홀함을 맛보고 황송함을 느낀다. 세계 정상이 왜 세계평화문서에 합의하고 나서 최고의 술을 마시겠는가. 
    시란 심장의 뉴스다 누구나 심장을 가지고 있기에 다 시인이 될 수 있다. - 고은

    정치는 본질적으로 졸렬하다. 좋은 정치 대안 정치 위대한 정치는 없다. 정치는 차악의 최악이다. 정치가 그나마 좋아지려면 문화가 개입하고 관여하고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는 해야 한다. 최악의 인물이 선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은

    [1분유머] 나의 취향을 보면 천박한 자본주의적 시선(관점)에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많이 묻어(절어) 있다. 모든 기준이 거기에 맞춰있다. 이런 것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습속)>라고 부른다. 정말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사회환경(미디어)의 폭력성에 완전하게 노출되어 있다  / "네 머릿속에 컴퓨터를 집어넣으려 말고 사막을 집어넣어라" -들뢰즈-요셉 보이스는 예술사기꾼답게 늘 착용한 그의 모자와 그가 입었던 양복을 예술화했는데 백남준이 1990년 보이스를 위한 추모 굿판에서 입었던 그의 갓과 한복도 예술화할 필요가 있다.-오치균 단색화 풍의 뉴욕풍경화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서려 있네요 금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