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뒤샹에 와서 더 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막혀 버린 현대미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TV의 도입이다. 백남준은 TV를 TV로 보지 않고 악기로 봤다. 즉 음악으로 본 것이다. 그가 음악 전공자이기에 그런 이점을 살려 현대미술의 음악적 시간의 요소를 도입하다. 현대미술에 사운드 아트를 개입함으로써 장르 간의 경계를 해체시킨 것이다. 현대미술의 범위를 더 확장시킨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바로 18세기 서구에서 현대시를 창안한 보들레르의 '조응론(Correspondence)' 즉 '공감각 융합(빛깔과 소리와 향기의 융합 color and sound[resonance] and fragrance)미학'에 근거한 것이다.
<백남준 1980년 후반부터 가족 로봇 시리즈를 만들었다. 부친과 모친 그리고 삼촌과 숙모 모델로 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1980년 후반부터 TV에서 터미네이터(Terminator 1986년 작품) 같은 로봇이 인류를 전멸시키는 황량한 미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은 인간과 기술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 손자와 손녀, 할머니와 할아버지, 숙모와 삼촌 같은 한국의 '대가족'을 묘사하는 일련의 로봇 제품군(1986)[아래]을 만들었다>
[이용우 평론가 해설] 백남준의 '로봇 가족(Robot Family) 80년해 후반 90년대까지 작품'은 종래의 공격적이고 전위적이던 그의 작업방식으로부터 놀이와 화해, 해학을 선사해 준 비디오 아트의 결정체이다. 백남준의 가족구조 또는 3대가 늘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한국의 가족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국 전통 사회의 혈연구조와 뿌리의식에 공동체의식과 관련이 있다. 로봇 가족은 후에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 연결되어 보다 폭넓은 외연의 문제로 발전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1990년대에 들어 더욱 다양하고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의인화된 로봇 조각을 통해 통로로 넓혀가고 있다.
독일에서 백남준은 동양음악과 종교연구에 대한 케이지의 제안을 받아 1963년 첫 전시를 마치고 나서 도쿄로 여행 했다. 사실 그보다 큰 동기는 더 많은 전자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백남준은 동경에서 운좋게 미국인보다 2년 전에 트랜지스터 발명가인 <우치다 히데오>와 전자 엔지니어 슈야 아베를 만났다. 백남준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첫 로봇 작품인 K-456 (1964)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적 배경을 베이스로 만든 이 로봇은 K-456의 B- 플랫 메이저인 Mozart의 피아노 협주곡 18번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이 로봇 K-456(모차르트 쾨헬 456에서 왔다)은 청중에게 인간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여 충격을 주다. 모차르트 오페라 노래도 부른다. 이 로봇은 똥도 싼다 그걸 콩으로 배설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결론은 전자 로봇의 인간화 작업이다.
<백남준의 유머감각> 백남준, 트랜지스터 텔레비전, 2005. 빈티지 트랜지스터 텔레비전의 영구 오일 마커 및 아크릴 페인트, 31.8 x 24.1 x 40.6 Nam June Paik Estate © 벤 블랙웰 2006년 백남준 타계하기 1년 전 작품. 힘이 없으니까 이런 장난기 작품을 선보이다.
위 사진 백남준 | 현대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문화기행(Culture Trip) 시리즈 중> 아래 1983년 12월 8일 뉴욕 키친 갤러리(전위 아트를 주로 하는 갤러리)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 발표 전 프레젠테이션(사전홍보행사) © 1983 Lorenzo Bi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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