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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아트선재센터] '중세 근대 현대를 동시다발로 표현'

아트선재 센터,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 (2019.9.18-11.17) 기획 야콥 파브리시우스(쿤스트할오르후스 예술감독)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 덴마크예술재단, 주한덴마크대사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세 이해하면 30세기가 보여'<수정중>

현대는 전쟁에서 하이테크로 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원시적인 방법(목 조르기, 칼로 찌르기 등)을 사람을 죽이는 만행이 공존하는 시대다.

김해주 아트선재부관장 전시에 대한 개괄 설명을 하다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시간에 대한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기계와 외계인 이 뒤섞인 작품도 보인다.

전시 기획자: 현 덴마트 쿤스트할오르후스의 예술감독이자 내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된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DK, 1970)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덴마크 쿤스트할오르후스의 예술감독이자 덴마크예술재단의 덴마크 공공미술품커미션을 위한 시각예술기금위원회의 위원이다. 

파브리시우스는 스웨덴 말뫼 콘스트할과 코펜하겐의 쿤스트할 샤를로텐보르의 디렉터를 역임하며 수많은 국제 전시를 기획하고, 공공장소와 이색적인 공간에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파브리시우스는 또한 출판 프로젝트 포크 샐러드 프레스와 올드 뉴스의 설립자이다.  

롤프 노보트뉘 Rolf Nowotny (DK, 1978)롤프 노보트뉘의 조각, 드로잉, 페인팅 그리고 설치는 잃어버린 시간과 비인간 또는 포스트휴먼 조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특징인 의인화는, 조각의 몸체를 진화하기 전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의 존재 같은 아메바 혹은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 이후의 존재로 연상시킨다. 노보트뉘는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전시를 위해 세 개의 새로운 작업을 제작했다. 

버려진 할머니의 집의 모습을 담은 일련의 사이키델릭한 주석과 펠트 그림, 기이한 침대 헤드 설치, 마지막으로 수제작한 확대된 허구의 메탈 쥐며느리로 구성된다. 바위와 버려진 통나무 아래에서 발견되는 쥐며느리는 등각류 계열에 속하며 수 백만 년 전 석탄기 시대에 대량 서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사시대 동물을 확대함으로써 원시적이면서 미래적이고, 혹은 15세기 갑옷처럼 보이게 한다. 

선사시대를 알아야 30세기를 내다볼 수 있다중세기와 포스트 모더니즘은 닮았다 어떻게 하면 작품에 애매모호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함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국내외 20명의 작가전 그래서 전시제목이 비문이다. 읽기조차 힘들다. 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환상과 기괴함 그리고 디스토피아적 묘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서사를 펼치며, 총 10편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전시 중 네 번째 버전에 속한다.

최윤 (KR, 1989)최윤은 공공장소나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는 이미지를 포착, 수집, 변형하여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으로 구현한다. 한국 사회 속의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층위를 가지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내포하는 집단적 믿음의 상투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아트선재센터의 2층 입구를 위한 새로운 작업 <너와 나의 서울 중세>를 통해 작가는 서울에서 중세의 이미지가 어떻게 투영되는지 그려낸다. 작가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중세∙르네상스 검술 수련자들 및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근무하는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와 작업하였다. 

이들과 함께 무엇이 과연 중세 시대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는지 물음을 던지고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마찰에 집중한 작가는 또한 ‘너와 나의 서울(I∙SEOUL∙U)’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시를 홍보하는 모델 이미지로 작업을 진행했다. “다름의 공존과 연결”을 지향하며 2015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서울시 슬로건처럼, <너와 나의 서울 중세(I ∙ MEDIEVAL SEOUL ∙ U)>는 전시 안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한다. 관문을 지키는 입간판을 지나 벽을 돌아서면 중세 판타지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밤의 한강을 떠도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위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타임슬립을 하기 위해 강을 건널 것인지 묻는다. 

2층 올라가는 계단에 설치한 영상작품

오바르타시 Ovartaci (DK, 1894-1985)

바르타시는 ‘overtosse’(덴마크 어로 ‘바보들의 머리’라는 뜻)를 다시 쓴 것으로, 루이스 마르쿠센의 작가명이다. 덴마크의 아트 브뤼트 혹은 아웃사이더 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마르쿠센은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인해 1929년 덴마크 리스코브의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그 곳에서 56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을 오바르타시라 명명하고 수백 장의 드로잉과 조각을 포함한 독특한 작업들을 남겼다. 이 작업들은 환상적인 우주의 이중 페르소나와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사이의 변형과 전환으로 생겨난 포스트휴먼 캐릭터, 광기, 정신질환, 영적인 것과 소외된 몸에 대한 것이다. 오바르타시는 미래적인 기계, 동양의 미신, 부활과 미술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러한 주제들도 작업에 등장시킨다. 이 전시에서는 상상적 발명과 기계, 포스트휴먼, 소외된 몸을 주제로 하는 드로잉들을 주로 소개한다. 

아니아라 오만 Aniara Omann (DK, 1987)아니아라 오만의 작업은 상호연결성과 개인성 사이의 역설과 경계에 대해 탐색한다. 수동으로 작동하는 특수효과와 소품 제작 등의 형식을 사용하며 조각, 비디오, 텍스트와 퍼포먼스로 작업을 전개하며 사이언스 픽션의 미학적 언어와 그것이 현재 인류의 상황을 반영할 가능성 등을 상상적 미래 또는 대안적 현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표현으로 그린다.  

<천 년 전의 나, 지금으로부터 천 년 후의 너>(2019) 와 <함께인 것보다 더 가까이>(2019)는 벽에 고정된 얼굴과 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지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에코-레진 그리고 조개와 해초 등 유기체를 실리콘 등과 혼합한 것들로 짧게 분절된 생체 시간의 요소를 뒤섞고 이는 복제의 서사로 엮이면서 이 얼굴은 미래에 대한 시각적 지시의 혼합물로 나타난다. 작업은 “바이오-퓨처리즘”의 한 버전을 제안하면서 유기적인과 비유기적인것, 지각적인 것과 비지각적인 것을 혼합한다. 사이보그나 동물 등 인류 이상의 것들의 결합체와 혼종을 상상하면서 작업은 인간중심주의를 흔들고 이를 환경의 연장체임을 시사한다.  

<최후의 화신>(2016)은 소품 제작 방식에서 그 재료와 방법을 가져와 만든 것이다. 실리콘으로 캐스팅한 인간의 두상은 마치 두 번째 피부처럼 등장하여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조용히, 기괴하게 움직인다. 관객들은 <최후의 화신>의 움직이는 다섯 개의 얼굴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쉼없이 움직이는 로봇 청소기는 우리가 주변에서 끊임없이 직면하는 침묵하는 권력과 통제, 감시를 연상시킨다. 

게르하르트 노르드스트롬 Gerhard Nordström (SE, 1925-2019) 

게르하르트 노르드스트롬은 권력의 남용과 환경의 오염에 대한 반대의 입장 및 사회적 불평등과 소비주의 사회의 결과에 대한 경고를 드러내 왔다. 1960년대 초부터 유화, 에칭 및 조각을 통해 정치적인 작업을 지속해온 노르드스트롬은 소위 전통적인 매체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동시대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어두운 사회에 대한 예리한 코멘트들을 쏟아낸다. 급격한 사회정치적 변화와 정보의 홍수, 대중매체의 이미지 과부화 시대에서 그의 작업은 공허함과 헐벗은 육체 그리고 텅 빈 풍경을 통해 세계 속 인간의 존재로 인해 생긴 오염과 불평등, 권력을 상기시킨다. 아트선재센터의 2층에는 1960년대 총탄과 수류탄으로 인한 상처를 보여주는 스웨덴 군대의 교본에 포함된 일련의 드로잉을, 3층에는 권력의 남용과 전쟁의 결과, 불평등과 갈등에 대해 말하는 일련의 에칭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미래, <연루된 자들>, 와이어, 실리콘 호스, 폴리우레탄, 글리세린, 펌프와 모터 및 혼합매, 300 x 180 x 380 cm, 2019

이미래 (KR, 1988)이미래의 새로운 조각 작업은 철, 실리콘, 오일, 천과 점토 등으로 만들어지고 로우-테크 키네틱과 아니마트로닉 기술로 작동한다. 작가는 거의 사람처럼, 혹은 외계 생물체처럼 등장하고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적 조각을 만드는데 이는 새로운 진화의 상태를 향해가는 삶의 초기 단계처럼 보인다. 

그것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너지고 움직이고 작동을 다시 하면서 영원히 부조리한 카타르시스의 상태와 무를 향한 움직임을 지속하는 듯이 보인다. 이 유기체 또는 기계는 그 미션에 반복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실패(또는 성공)한다. 그것은 언제나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자기 역할을 하는 기관(organ)의 우아함과 유사하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불경하고 매혹적이다. 

과거, 현재, 미래 뒤섞여 나타나는 기묘한 디스토피아, 중세적 이미지와 판타지, 신체에 엮인 기술 투영된 다채로운 작업 선보인다. /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요르겐센 Will Benedict & Steffen Jørgensen (US, 1978 / DK, 1981) 여

러 작품의 제작에 협업해 온 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은 최근작 <더 레스토랑>을 통해 여섯 파트로 구성된 우화를 만들었다. 일종의 시트콤인 이 작업은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불평등이 우리의 일상과 만나고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대사 과정과 만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더 레스토랑> 세계는 블랙 코미디라 볼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낙관주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의 주요한 포스트-휴먼 캐릭터인 반 인간, 반 달팽이 식료품 공급자 스네일리언은 자연 세계의 유연성을 가리킨다. 스네일리언은 이 세계가 제로섬 시스템이 아니라는 걸 상기시기며 종말론적 식분증 혹은 광란과 함께 사는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베네딕트와 요르겐센의 부조리하고 초현실적인 우화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의 신체 기관의 에너지와 운동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 결국 똥이 몸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스스로를 주장하려고 할 때 우리의 배설물은 되받아 친다 “네가 과연 책임자인 것 같아?” 라고. 베네딕트와 요르겐센은 이번 전시를 위해 <더 레스토랑>의 주인공 스네일리언의 실물 크기 마네킹 인형과 영상, 오디오, 혼합 재료로 구성된 새로운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