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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독일에서 양혜규 그의 정신 이어가다

1978-1979 백남준 대학에서 수업하는 모습

백남준과 양혜규가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은 독일에게도 큰 행운이다. 두 작가는 독일에서 교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46세에 교수가 되었고, 양혜규도 독일에서 46세에 교수가 되었다 그런가 아닌가 하여간 그렇다. 동서고금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양혜규의 프랑스 철학자와 문학가(영화작가)에 대한 공부는 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그렇다. 한 예일 뿐이다 두 작가는 그냥 공부가 아니라 시대의 정신을 통찰하고 이끌어가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유사하다. 양혜규는 독일에게 독특한 사상가로 통한다. 양혜규는 이런 점을 무중력이라는 말로 비유하고 있고 백남준은 이런 점을 기존의 음악과 예술을 무화시키는 무음악 혹은 무예술(a-art)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룩하려고 했다

양혜규는 "공간·지역 기반의 칸막이식, 통념적 의미를 넘어 무한 확장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이젠 디아스포라가 던지는 통합성까지도 주목해야 한다"라고 도재기 기자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관되게 독일 사회 등 서구 문명에 대해 예리하게 분석 비판해왔다. 백남준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작가로서 서양미술판을 뒤집어 장벽 없이 텃세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 사전에 연막을 깐 것이다 그들을 문화적으로 쳐들어간 최초의 극동(서구에서 쓰는 말)예술가 즉 일종의 문화칭기즈칸이다. 지금 우리가 유럽을 갈 때 아직도 편견이 많지만 백남준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액세스할 수 있게 되었다. 양혜규 작가도 백남준이 없었으면 독일에서 제대로 자리잡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한국은 백남준의 나라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