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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96년 쓰러진 후 97년 뮌스터에서 대박

<아래 사진> 김홍희 큐레이터가 백남준의 뉴욕 집을 방문해 함께 외출 중이다. 백남준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사진 저작권 천호선

자신하는 작업 이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백남준 그는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걱정과 배려는 전혀 없었다 사실 그는 당뇨 등이 심한 중환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국 새벽 5시까지 작업하는 방식 등 과로로 쓰러지고 만다. 1996년 3월 말에 호암상을 받기 위해서 뉴욕에서 서울로 가야 했고 다시 서울에서 뉴욕 등은 강행군이었다. 그의 체력으로는 좀 버거운 일정이었다. 무사히 뉴욕에 도착했지만 결국은 뉴욕 자택(소호 머스 스트리트 5층)에서 1996년 4월 9일 쓰러지고 만다. 뇌졸중이 온 것이다. 백남준 기독교 절기 4월 수난절과 부활절 기간에 쓰려졌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쓰러진 날이 예수가 되살아 난 부활절이니까 난 틀림없이 좋아질 거야.” 백남준 1996년 쓰러지고 2006년 타계하다 그 투병의 시간 10년 그의 생애 전성기다. 왜냐하면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0년 뉴욕 구겐하임 전 세계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는 그는 "I am happy happy"라고 하면서 흥얼거렸다고 한다.

백남준 1996년 쓰러지고 다음 해 재기한 작품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이다 독일관객을 열광시켰다. 50만 명 관객이 모여들다 백남준 이 작품 때문에 무명의 뭔 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대 미술 행사의 랭킹에 올려놓았다. 제목이 길다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부제: '모차르트 미사곡을 조용히 연주하라', 32대는 백남준이 탄생한 1932년에서 유래, 자동차의 종말을 위한 미사곡(?) 1989년 이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동생이 여기서 유학을 했기 때문, 당시 나는 작은 도시에 반하다. 이 도시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걸 몰랐죠 아래 건물은 바로 뮌스터 대학 본부 입구, 당시 송두율 교수가 여기 재직 중

[1997년 백남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 산업시대에서 정보사회로 급변하는 사회가 주제] <주제: 자동차(산업사회)는 가고 컴퓨터(정보사회)가 오다> 백남준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 시민들 냉담과 오해 속에서 1회 2회는 실패 그러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건 3회 1997년 백남준 출품작 '32대의 자동차'를 계기로 세계적인 미술행사가 전환한다. 30년 만에 관람객이 50만 명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1997년 백남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 산업시대에서 정보사회로 급변하는 사회가 주제] 작품명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시오>

그해 백남준은 10년마다 독일 북서부 뮌스터 베스트팔렌 미술관에서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에 초대받고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를 출품한다. 여기 32대는 백남준이 탄생한 1932년에서 유래한다. 부제는 '모차르트 미사곡을 조용히 연주하라', 자동차의 종말을 위한 미사곡이었나

김홍희 저서 <굿모닝 미스터 백>에 보면 백남준은 20세기 3가지 특징으로 '조직폭력, 미디어, 자동차 숭배'를 거론하면서 이를 풍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쇠와 중력 등 20세기 하드웨어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인터넷 SNS 등 21세기 소프트웨어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20세기 차 속도와 21세기 전자 초고속 속도는 그 게임에서 경쟁이 안 된다.

[시민들 냉담과 오해 속에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건 백남준 작품 '32대의 자동차'다 백남준 덕분에 전시기획자 30년 만에 성공]

백남준이 뮌스터 프로젝트에 1997년 출품한 작품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다 빈티지 자동차 32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카스퍼 쾨니히를 비롯한 기획자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기획, 그리고 이들의 추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사실상 크라우스 바우만과 카스퍼 쾨니히의 노력으로 1977년에 가까스로 ‘20세기 조각의 역사’ 전이 열리긴 했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었다. 심지어 일부 시민들의 항의와 방해로 전시작품 제작과 전시가 경찰의 보호 하에 이루어져야 했던 경우도 있었는가 하면, 이제는 뮌스터의 상징물이 된 크라스 올덴부르크 Cleas Oldenburg의 거대한 당구공들 Giant Poolbolls을 호수 물속에 처박으려는 대학생이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행사 때부터 시정부와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면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밖으로부터의 관심’이 시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면서 백남준의 초대작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시오 32 cars for the 20th century:play Mozart's Requiem quietly 가 전시되었던 1997년의 세 번째 프로젝트부터는 관람객이 50만 명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면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력이 근 30여 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물론 1977년부터 2007년까지 4회에 이르는 동안 카스퍼 쾨니히가 계속해서 예술감독직을 맡아 일관된 콘셉트로 추진해 나갈 수 있게끔, 그에게 한결같은 신뢰를 보여준 시정부와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신뢰는 다시금 이들이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시민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덕현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생산된 32대의 미국 올드카를 수집해 직선, 사각형, 원, 삼각형으로 배치하고 은색 에나멜페인트를 붓으로 칠한 후, 작가의 비디오 작품에 쓰이고 남은 유리 브라운관과 플라스틱 또는 나무 텔레비전 케이스 등을 무질서하게 집어넣었다. 이 자동차들은 20세기 전반의 기술 혁명 역사를, 자동차 내부에 설치된 물건들은 20세기 후반의 텔레비전 시대를 상징한다.

작가는 20세기 산업의 대표적 상징물인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한데 모아놓고 모차르트의 장송곡을 틀었다. 이 레퀴엠은 각 8대 자동차 그룹에 스피커를 2대씩 설치하여 가까이 갔을 때 들릴 정도의 음량으로 연주되었다.

뮌스터 중심가

In 1997, ten years after creating TV-Buddha für Enten (TV Buddha for Ducks), the Korean artist Nam June Paik installed 32 silver-varnished vintage cars on the forecourt of Münster’s city palace. In the period between sunset and close to midnight Wolfgang Amadeus Mozart’s final composition Requiem was to be played – so long, in fact, “until people complain about it”,1 as Paik’s instructions stated. With the vehicle bodies arranged in groups of eight it was possible to identify different geometric forms – a triangle, a circle, a parallelogram and a line

The artist’s choice of vintage cars dating back to the period between 1920 and 1950 was a reference to the history of technology. Besides addressing the cult of the car and the attendant consumerist ideology, Nam June Paik’s project was concerned with mediatisation, which he saw as a key aspect of the 20th century. Accordingly, looking in through the windscreens of the unroadworthy cars one caught sight of heaps of discarded televisions. This was Paik’s way of announcing the end of the video age and, simultaneously, of his preferred artistic medium.

Since Münster’s Schloss was the last palace to be built in Germany before the French Revolution, this constellation reflected the transition from aristocratic to civic, democratic society. Confronting this historic backdrop with the innovative forces of the car and media culture, which stand for the shift from industrial society to the information age, Paik highlighted the upheavals of the twentie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