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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90년 'Pre Bell Man'과 91년 '기마민족'

백남준의 1990년 'Pre Bell Man'과 1991년 '기마민족'과의 연관성에 대해 간단 소개하고자 한다.

백남준 'Pre Bell Man' 1990년

1990년 프랑크푸르트 미술관 거리에 이 커뮤니케이션 박물관(구 우편 박물관) 새로 건립되면서 이 박물관의 백남준에게 의뢰한 작품이다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커뮤니케이션박물관(통신박물관)' 소장품인 'Pre Bell Man(전화 발명가 벨 이전의 기마민족)''은 그 제목이 기막히다. 이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의 성격과 개념과도 너무나 잘 맞는다.

백남준 'Pre Bell Man' 1990년 DER PRE BELL MAN VOR DEM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 MSPT

<사진소스> https://www.paik-prebellman.de/

백남준은 전화 발명가 벨이 고안한 전화기만큼 빠른 속도를 갖춘 말을 탄 몽골계 유목민 전사을 영웅화하고 있다 현대에 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런 첨단의 통신장비를 갖춘 영웅적 인물이 아닌가라고 상상한 것 같다.

독일인들이 백남준의  이 전자기마상(1990년 작)은 노마드 전자시대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본다. 2012년 해체되어 이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었었다. 7년 간 작품을 재정비해 2019년 6월 6일에서 2020년 1월 19일까지 재전시하고 있다

백남준 '기마민족' 1991년 경주 우양미술관 소장품

독일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선 박물관 소장한 백남준의 1990년 작품 'Pre Bell Man'은, 경주 우양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1991년 작품 '기마민족'의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계열의 작품이다.

아래 '기마민족'은 백남준이 1991년 경주를 방문해서 영감을 받는 작품으로 백남준이 1990년 작 'Pre Bell Man' 작품을 완성한 후 이를 다시 업그레이드시켜 한국의 역사적 배경으로 재해석했다. 

이 주제는 첨단 통신과 정보 장비를 갖추고 날마다 끊임없이 새로 생산되는 정보와 지식을 칭기즈칸 시대 말처럼 그렇게 빠르게 소통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걸 은유한다그런데 21세기에 그런 나라가 바로 '코리아'라고 선언한 셈이다.

백남준  '기마민족' 1991년  경주 우양미술관 소장품

이 작품에는 백남준의 유명한 '탈영 토제 국주의'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이 개념은 앞으로의 시대는 영토가 큰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작은 영토라도 가장 빠른 통신과 소통능력을 갖추면 그 나라가 생산하는 수준 높은 지식과 정보와 자료를 전 세계에 유통 공급할 수 있다면 그런 나라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러니까 과거처럼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는 지적 제국주의로 군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은 인터넷과 소통의 속도를 몽골의 빠른 말과 대조시킨다. 하긴 몽골에 전 세계를 지배한 것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더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지금 시대는 슈퍼컴퓨터 혹은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전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21세기에 그럴 수 있는 나라는 코리아라는 메시지다. 한국을 21세기  지구촌의 ‘다크호스’로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백남준 1992년 'Pre Bell Man' 소장한 박물관 방문

위는 백남준이 1992년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선 박물관을 방문해 그의 작품(1990년 작) 앞에서 찍은 것이다. 그의 모습은 언제 자신감이 넘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 칭기즈탄'이라는 자부심에서 온 것이리라. 

위 작품과 관련된 뉴스가 있다. <Pre Bell Man의 귀환90년대 이후 이 작품을 박물관 입구에 쭉 했다가 중간 중간에 철거되기도 했다. 최근 7년 간 창고에 있었는데 드디어 2019년 6월 6일에서 2020년 1월 19일까지 다시 정비한 이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일종의 귀환 전(Die Rückkehr des Pre Bell Man)이다. 더 많은 정보는 보려면 아래 사이트를 참고.

백남준 - 낙서 <아래사진> 1992년 프랑크푸르트 미술거리에 있는 통신박물관(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에 세워진 자신의 작품 앞에서

그의 자신감
베니스비엔날레
칭기스칸의 후예라는 자부심
그는 멜빵 패션
언제나 작업이 가능한 복장
해맑은 미소
천진의 얼굴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그에게는 돈이 안보인다
권력을 말할 것도 없고
명예도 우습다
단지 창조하는 자의 기쁨만을 즐긴다
그의 눈빛에는 경쟁자가 없다
앞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는 랭보가 말하는 견자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있다. Voyant이다
3천년대를 내다보고 있다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3천년대가 종종 나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나는 불행하게도 그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함석헌이나 천산병은 봤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근처에서서라도 보는 영광을 누려야 했었는데
하여간 이 사진을 보니
오늘 나의 맥 빠진 기운이 조금은 나아진다
기분을 살려주는 멋진 작품이다
그는 정말 예술을
제대로 하는 보따리장사다
2014년

https://www.mfk-frankfurt.de/ausstellung-die-rueckkehr-des-pre-bell-man/?fbclid=IwAR069mODj-JjIApZyHBGCUwfVP2WSzMkcH5SfzgYN8hsohDeZv719XLY43c

 

Die Rückkehr des Pre Bell Man -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Nam June Paik und zeitgenössische Medienkunst aus der Sammlung von Kelterborn.

www.mfk-frankfurt.de

독일에서는 이 백남준 작품을 다시 복구 정비하는데 7년 간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작품이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선 박물관에서 2019년 6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전시된다.

이 복구 과정에서 독일에 전자아트 전문가들 특히 한국에도 여러 번 온 적이 있는 백남준 전문가 [1]불프 헤르조겐라트 Wulff Herzogenrath 박사(미술사가) 등이 참여했다. 그리고 [2]카트린 쥔더만 Katherine Sündermann와 [3]백남준 전문가 한나 헬링 Hanna B. Hölling 박사, [4]프란시스카 스토어 Franziska Stohr 박사 그리고 [5]디지털 아트 수집가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컬렉터 켈터보른 Mario von Kelterborn 등도 참가하다. 

백남준 Pre Bell Man(1990년작) 복원할 때 참가한 사람 중 빠진 사람이 있다 그는 [6]베른하르트 세레셰Bernhard Serexhe 박사 프랑스1950 년생> 한마디로 유럽에서 디지털아트와 뉴미디어아트 최고 권위자다

그는 사회학, 심리학, 교육 과학 및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University of Freiburg (DE)에서 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 그는 건축 및 문화 유산의 역사, 예술 및 미디어 이론에 대해 광범위하게 발표했다. 1995 년부터 유럽 의회의 미디어 정책 컨설턴트로 활동. 1994-1997 그는 ZKM의 미디어 박물관 큐레이터. Karlsruhe (DE), 1998-2005 그는 ZKM을 이끌었다. 2006 년부터 그는 ZKM의 수석 큐레이터. 미디어 박물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미술 아카데미 (1999), 베른 대학교 (2000-2001, 2008, CH), 바젤 대학교 (2001, CH), 카를 스루에 예술 대학 (2001), 카를루에 대학교 (2002-2006), 슈투트가르트 국립 예술 디자인 아카데미 (2011, DE) 등이있다. 2008 ~ 2012 년 그는 이스탄불 BILGI 대학 (TR)에서 미학과 미디어 이론 교수로 재직. 2010-2012 년 그는 EU자금을 지원을 받아 <디지털 아트 보존>의 창설자이자 리더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2017년 이곳을 방문했지만 이 작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볼 수 있다.

위는 백남준 작품을 복구하는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자료사진이다. 이 과정에서 미술 관계자들 복원이라는 뭔가에 대해 수많은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백남준 작품은 참 까다롭다. 백남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만 만들어놓고 이 세상을 떠났고 그 보전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전자 기마상인 '기마민족'을 우양미술관은 1991년 작이라고 하고 이용우 선생은 다른 년도로 적고 있어 한번 확인이 필요하다.

백남준 1990년 작 Pre Bell Man 보관하고 보전하고 관리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백남준 작품은 좋은 작품에 걸맞게 세심한 관리와 많은 손길이 필요하고 까다롭고 보전하고 유지하는데 비용도 많이 든다. 회화작품보다 천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