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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임영균 사진가가 들려준 그의 이야기

임영균 사진가가 백남준과 가까이 지니면서 들은 이야기

“예술가도 과학자만큼 공부해야 한다. 항상 뉴욕타임스의 과학 세션을 공부한다”

<신문광 백남준 증권시세부터 과학기술까지 모든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는 Total information artist였다> 어느 날 제가 선생님께 “첨단 과학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물었더니 선생님은 “예술가도 과학자만큼 공부해야 한다. 항상 뉴욕타임스의 과학 세션을 공부한다” 라고 하셨죠. 늘 시대를 앞서가려던 백 선생님이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어느 수준까지 작품을 발전시켰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사진가 임영균

<나는 건반과 건반 사이에 존재하지 않은 음을 찾아다녔다 -백남준>

나는 20세기 초입을 살았지만 늘 ‘다음 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가 궁금했지. 늘 새로운 것, 뻔하지 않은 것, 넓은 것이 궁금해 헤매고 다닌 거야. 건반과 건반 사이에 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음을 찾다 보니 쇤베르크에 이르렀고(그는 쇤베르크 연구로 도쿄 대학 졸업 논문을 썼다), 전통악기에서 벗어나려고 고투하다 보니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다다랐지. 듣는 음악보다는 보고 듣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행위 음악’이란 걸 창안했고. 전자음악을 전자 비전으로 확장해보고 싶은 포부가 ‘비디오아트’라는 새 세상을 만들어낸거지. TV의 일방성을 극복하는 ‘대용 TV’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위성쇼를 감행했고.

“사람들은 내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그건 나의 무모함에 와 닿기 때문이라고 답하곤 했지. 모험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 왜 10대의 내가 쇤베르크에 관심을 보였는지 생각해보면, 그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로 소개되었기 때문이야. 왜 그의 ‘극단성’에 관심을 보였을까? 나의 몽골 유전자 때문이야. 선사시대에 우랄・알타이 쪽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 한국, 네팔, 라플란드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녔거든.

<백남준은 여러 나라 언어도 비빔밥을 만들어 사용하다> “안녕히 오세요” 이것은 백남준의 "안녕히 가세요"의 표현이다. 그는 자기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가끔 6개국를 뒤섞어 사용하는 이상한 언어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이것을 독일에서는 파이키시(Paikisch 백남준식 언어사용법)라고 한다

<문자의 시대는 지구 역사상 가장 짧다. 문자 이전의 소리와 형상의 시대가 있었고 오래 되었지> 지구 역사상 인류 역사는 정말 짧고, 그 인류 역사상 문자의 시대는 정말 짧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 문자를 가지고 인류를 논한다. 우리는 문자 이전의 소리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

[다다익선 세울 때 에피소드] 중앙홀에 1천 대가 넘는 TV 탑을 세우는 일이었으니까. 브라운관이라 엄청 무거운 TV를 쌓아 올리는 것도 일이었고,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 그 공간과 상생하는 조형적 가치를 만드는 거였어. 그 많은 TV를 쌓는 탑의 설계를 김원 건축가(대형)이 했어. 결국 바닥을 뚫고 지하 암반까지 기초공사를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