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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사진가 임영균 찍은 사진 NYT 게재

사진저작권 임영균

<무명이었던 임영균사진가는 아래 사진(1983년)이 뉴욕 타임스에 소개되면서 이름이 나게 되었다> 1983년 뉴욕 스튜디오에서 임영균이 촬영한 ‘브라운관을 뒤집어쓴 백남준’. 값비싼 TV 여러 대를 한 번에 살 형편도, 스폰서를 구하기도 힘들었던 백남준은 벼룩시장에서 중고 TV를 구해 작업하곤 했다.

<임영균 작가 3년만에 백남준 집에 초대를 받다 뉴욕유학 초기를 돈이 없어공부보다 알바를 많이 했는데 그 식당에 같이 알바하는 이탈리아 학생이 한국에는 알바생만 있냐? 누구 유명한 예술가냐를 묻기에 '백남준'이라고 했더니 그는 일본사람 아니냐고 하기에 그때부터 열 받아 백남준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70년대 말 제가 뉴욕 유학을 준비하던 중 국내 일간지 문화면에서 백 선생님의 존재를 처음 알았죠. 엄숙한 피아노 연주회에서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어 관객들을 놀라게 한 경범죄로 뉴욕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관객들이 현장에서 주머니를 털어 벌금을 내주어 풀려났다는 기사였습니다. 과격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라는 기억으로 제게 남았죠. 그때부터 뉴욕에 가면 꼭 한번 뵙고 선생님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1980년 9월 유학생으로 뉴욕에 도착했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공부보다는 한국인 채소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았죠. 어느 날, 단골 식당의 주방에서 만난 이탈리아 아르바이트생이 한국 사람은 왜 채소 가게나 생선 가게에서만 일하고 예술가는 없 느냐는 말에 백남준이라는 유명한 예술가가 있다고 말했더니, 백남준은 일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예술가를 촬영해 소호에서 전시하고, 책으로 출판해 자랑스러운 한국인 예술가들을 알리겠다고. 당연히 첫 번째는 백남준 선생님이었고요. 1950년대에 한국을 떠나 한국 예술가들과 전혀 교류가 없던 선생님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는 것부터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의 인물 사진 수업에서 하비 스타인 교수가 촬영한 뉴욕 저명 예술가 시리즈에 백 선생님이 있는 걸 보고 교수님께 부탁해 전화번호를 얻었고요. 첫 번째 통화를 한 지 1년 후인 1982년, 선생님의 휘트니 회고전 전야제 때 저를 초대해주셨고 샬럿 무어먼과의 첼로 공연 등을 촬영할 수 있었죠. 그리고 1983년 초여름, 드디어 선생님의 스튜디오에 초대받게 된 겁니다.

‘브라운관을 뒤집어쓴 백남준’ 사진이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이후에는 선생님이 저를 자주 예술가 파티에 초대해주셨죠. 그때마다 제 작품을 휘트니 미술관장 등 미술계 인사들에게 소개해주셨고요. 선생님 기억나시죠? 저녁 10시만 되면 정기적으로 제게 전화를 거셨던 거. 처음엔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날마다 저녁 10시가 되면 인슐린 주사를 장시간 맞으면서 그 무료한 시간에 전화를 하셨던거더군요. 제가 일상적인 안부로 시게코는 잘 있냐고 물으면 “시게코는 폴과 영화 보러 갔다”고 하셨죠. 반대로 제가 저녁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면 의외로 시게코가 전화를 받으면서 “남준은 제인과 공연을 보러 갔다”고 하곤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