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남준은 신문중독자, 그래서 그는 시사 예술가 정보 예술가가 되었다. 지구촌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빠삭하게 안다. 시사를 모르면 역사도 모르고 서사도 이해할 수 없다. 백남준이 세기적 예술가가 된 이유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정성선생 지난번 만났을 때 하시는 말씀 뉴욕에서 작업할 때 아침마다 백남준 선생을 위해서 신문 사는 게 첫번째 일이었다고 하도 가니 신문가판대에 직원이 이 선생이 가면 벌써 미리 챙겨놓았다고 한다> 백남준은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자기가 만든 인터넷을 활용하다. 백남준은 시사 예술가이다 시대정신가 뭔지 항상 탐구하다. 그래서 그는 정보아티스트이고 미디어아티스트이다 아래 보니 완전 야행성...
-백남준은 인터넷 없는 시대에 세계신문을 통해서 인터넷을 봤다 물론 한국신문과 독일신문 슈피겔지도 같이 읽었죠 백남준은 뉴욕주식시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번은 백남준 월가 금융계 회장의 초대로 만난 적이 있는데 월가의 인사발령까지 다 알고 있어 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백남준이 가장 좋아한 한국의 역사문서는 삼국유사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국인의 판타지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대신 왕조사관인 삼국사기는 전혀 좋아할 수 없었죠 김훈과 도올과 인터뷰에서 그런 점을 밝히다
<2>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네트워킹하는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 나사의 우주 물리학자나 하버드대 미생물학교수 같은 과학자 뿐만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 등 2500명(이 숫자는 박만우 관장의 말)의 전문가와 끊임없이 줄기차게 (전화 등으로) 소통을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 세기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3> 한나라의 경제 순위는 언제나 쉽게 바뀔 수 있지만 문화 순위는 바뀌기 쉽지 않다. 우리 어휘에서 1만5천 단어는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백남준).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상품 수입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중국이 문화국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일본 문자가 다 중국한자에서 온 것이다 <위 사진 백남준 1주기에 독일 뒤셀도르프시에서 백남준에 대한 추모와 존경의 표시로 시내버스(tram)에 큰 사진을 붙이고 다니다>
베니스를 2번 다녀와서 이 사진을 보니 그 상황이 더 잘 이해가 된다 1966년 곤돌라 해프닝아트 여기서 백남준(34살) 샬럿 무어먼(32살)에게 물에 빠지라고 했는데 정말 빠졌고 그 해프닝 후에 피부병이 생겨 병원에 다녀야 어처구니가 없죠 그런 면에서 프로작가다 사진에 보면 사공이 검은 바지에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데 이게 곤돌라 뱃사공의 정장이다
'곤돌라 해프닝아트(GONDOLA HAPPENING)' 1966 미국간지 2년 후 베니스에서 연주여행 상당히 가난한 시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노숙도 하면서 생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백남준 결국 그녀를 물에 빠트려 연주하게 해 결국 병원에 가서 발진예방 주사를 맞아야 했다고 백남준이나 샬럿이나 철저한 프로작가다>
1966년 샬럿 무어먼과 나는 초대받지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게릴리식 공연을 가졌다 GONDOLA HAPPENING "이라는 전단지를 받고 수백 명의 관객 우리 기다렸다, 항상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마침내 우리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환호했다. 샬럿은 첫 번째 존 케이지 곡을 연주했다. 베니스 전체 도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16mm의 프로젝터 (임대용)를 빌릴 수 있었다 운하를 가로 질러 1 세기의 오래된 벽으로 영화가 투영되었다.
2번째 곡 생상을 연주하면서 운 좋게 우리는 방과 클래스 유레일 패스를 1등표를 얻어 하룻밤 더 머무를 수 있었다.. 내가 시킨대로 무어먼 운하에 뛰어 들었고, 10세기의 오염 된 물이 젖었다. 쇼가 끝난 후, 그녀는 발진티푸스 주사를 맞으러 의사에게 가야만했다. 병원신세를 진 것이다 쇼가 끝난 후 우리는 5달러만 남았다. 우리는 27년 뒤 1993년 1966년 우리의 해프닝을 다 아는 한 명의 목격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증인은 바로 빔 베렌(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관장)이다. "- 백남준
<4>이것도 또한 백남준만의 특이한 서구와 동양의 다리를 놓는 네트워킹 방식이다
<5>백남준의 카리스마는 바로 이런 데서 온다. 서구인들을 압도하는 서구인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그의 포퍼먼스는 몽골 혈통의 샤머니즘 문화 전통을 모르고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불가사의한 괴력에서 오는 것이다
<6>[백남준 퍼포먼스] 백남준 세계 미술계의 부처가 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부처 앞에서 어리광 피우는 것인가 아니면 백남준은 미디어 즉 매치메이커(match-maker)가 되어 부처와 TV를 동양와 서양을 네트워킹 시키려고 한 것인가 완전히 누워서 하는 명상이군요
<7>플럭서스의 난장판 유럽공연과 한국공연(performer 이불) 왜 난장판인가 이게 평화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나치츰의 일사불란함 이것은 전쟁이고 학살이다
<8>백남준 이 작품에는 요셉 보이스를 대한 깊은 우정과 그에 대한 애틋한 추모의 감정이 담겨 있다 보이스 작품 팩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백남준은 더 비싼 물론 중고품이지만 아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서 나왔나
<9>백남준이 평생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0>이 지점에서 백남준과 이우환은 만나고 있다. 자연과 문명의 만남 동양과 서양의 만남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만남 이 모든 만남을 우리는 한마디로 교감 혹은 상응 혹은 교신 소통 보들레르의 핵심적 미학인 correspondanc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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