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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독일 유학하면서 독일 대학들 뒤흔들다

백남준 그 언제 어디에서든 정말 못 말리는 '문화 칭기즈칸'이었다. 그 앞에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백남준이 뮌헨에 유학했을 때 공부한 대학이 정확하게 몰랐겠다. 바로 여기구나 Gallery of Nam Paik Geschwister-Scholl-Platz 1, 80539 München. Germany Nam June Paik studied at the 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under the guidance of the composer Thrasybulos Georgiades for a year.

그런데 이 대학은 캠퍼스가 아니고 여러 곳에 대학이 흩어져 있다는데 음악대학은 없는데 어디서 공부한 것인가 원래 작곡을 공부하려고 독일에 간 것이 아닌가. 드디어 찾았다. 예술사학과(Fakultät für Geschichts- und Kunstwissenschaften) 여기서 공부한 게 확실하다.

백남준 공부했던 뮌헨 대학 예술사학과 방문 2019년 5월

백남준 뮌헨대학교(the 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음악[예술] 사학과(Fakultät für Geschichts-und Kunstwissenschaften)를 1년간(1956/1957년) 다니면서 뭘 공부했는지 알아보자. 이에 대해서는 이영철 교수가 정리나 아주 훌륭한 자료가 있다 그 공부 내용이 독일 대학이라 그런지 정말 인문학적이다. 백남준 공부했던 뮌헨 대학 예술사학과 방문 2019년 5월 16일 방문하다.

위에서 보듯이 백남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부했다

[1] 유럽의 기독교 역사 [2] 유럽 철학 역사 [3] 독일의 교회음악 [4]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입문 과정 [5] 정신사로서의 예술사 [6] 독일 시인론: 횔덜린-노발리스-클라이스트 [7] 이탈리아 예술 건축 [8] 오스트리아 빈 고전음악 등이다. 

그리고 [9]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백남준이 좋아했을 과목은 <다성학 작곡> <빈 고전음악과 작곡 연습>이다. 대학교 1학년 과정 치고는 너무 수준이 높네요 이 대학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백남준의 지도교수인 '게오르기아데스(Thrasybulus Georgiades)'는 바로 작곡(빈 고전음악 작곡 연습)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독일에 유학 가서 처음 공부한 곳이 뮌헨대학교이다  독일에서 2번째로 오래된 도시고 대학 순위 1위이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자 42명을 배출한 독일 최고 대학인이다 그런데 왜 백남준은 왜  학교를 그만 둔 것이다. 이 대학이 너무나 보수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남준 역시 백남준이다. 그런데 이 대학을 발로 차 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파문을 일으키는 백남준, 바로 백남준스러운 퍼포먼스였다.

<추신> 이런 배경에는 또 백남준의 독일 유학과도 관련 있다. 그가 처음 공부한 뮌헨대는 노벨상을 42명 배출한 명문이었고, 그의 지도교수는 게오르기아데스(T. Georgiades)도 유명한 음악이론가였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 대학이 너무 보수적이라며 뛰쳐나왔다. 왜일까?

조가연(조선대)의 백남준 석사 논문을 보면, 백남준은 원래 쇤베르크의 제자인 안톤 베베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독일 음악계는 자신의 유파를 선택하면 다른 유파에 대한 관용이 떨어지는 경직성이 있다고 봐 여길 떠났다는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그래서 백남준은 이번에는 독일에서 가장 자유분방하다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옮겼다. 독일어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자유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때도 그의 지도교수 '포르트너' 그는 독일에서 꽤 유명한 작곡가였다.

백남준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그는 참으로 "보기 드문 비상한(extradordinary) 현상"이라고 말을 하면서 백남준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고백했다. 대신 그를 쾰른 방송국에 음악 관련 분야에서 일하도록 추천했다.

왜냐하면 어느 날 포르트너 교수가 백남준에게 작곡한 작품을 보여 달라고 하자, 백남준이 도끼를 가지고 가서 피아노를 부셔버리려고 하자 그만 당황한 것이다. 백남준에게는 그 피아노를 파괴하는 소리가 (우연적) 작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백남준이 생각하는 작곡과 음악의 범위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더 확장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쾰른 도시를 가로지는 전차버스

백남준은 학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서 독일 대학을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면서 공부하다. 졸업을 안 한 것 같은데 우선 <i> 뮌헨대학교 1년 공부 그러고 <ii>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2년 공부 그러고 나서 <iii> 쾰른대학교 철학과(1960년/1961년)에서 또 공부를 했다. 미학과 음악 작곡과 철학을 두로 섭렵했다.

백남준 쾰른 대학교에서 뭘 공부했는지 알아보자. 그는 쾰른대학 1960년도 가을 겨울 학기에 [1] 헤겔 [2] 니체와 서양 형이상학의 종언(폴크만 슐루크 교수) [3] 현대 20세기 철학 [4] 자연철학의 기초개념 [5] 철학적 인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61년 봄과 여름학기엔 [1] 13세기 철학적 논쟁 [2] 니체의 계보학인 서양 형이상학의 종언(고급과정)을 공부했다.

<이영철-김남수 평론가가 펴낸 백남준의 귀환(백남준아트센터 총서) 중에서 백남준 독일유학기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

'백남준의 귀환'에 나오는 백남준 독일유학기에 대한 평

이 세상에 독일대학을 발로 차는 예술가는 백남준 밖에 없는 것 같다. 그의 그런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하여간 백남준은 배포가 크고 베짱이 두둑한 사람이다. 몽골의 칭기즈칸의 기질을 가진 예술가다.

천재가 되는 지름길은 바로 메모하는 데 있다 백남준의 메모 창작 수첩이다*

[팁] 백남준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작품은 Good Morning Mr. Orwell (1984)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2탄인 Bye Bye Kipling (1986)와 제3탄인, Wrap Around the the World (1988)를 발표되기도 했다. 이것은 백남준이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궁여지책으로 우선 TV 방송국 채널과 채널을 연결하려고 한 것이다.

뉴욕, 파리, 쾰른, 서울 등등 그런데 다행히도 성공을 거둔다. 우리는 이것을 '위성 아트'라고 한다. 혹은 이 쇼를 음악연주로 보면서 우주 오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초기 인터넷의 시도이다. 그런데 1984년 이 작품을 태동시킨 것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남준이 6번째 카셀 도쿠멘타(Documenta)에서 위성 기술 실험을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와 더글라스 데이비스 (Douglas Davis)와 함께 생방송으로 공동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