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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국립중앙박물관] 전략가이자 발명가인 위대한 인간 '이순신' 재발견

시련과 위기를 넘어선 ‘인간 이순신’을 만나다 / 오늘의 우리에게 이순신은 무엇인가?
친필본 <<난중일기>> 포함 이순신 종가 유물 20 34점 첫 서울 전시

 전시명: 우리들의 이순신  위치: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 (면적 935, 282)  전시품: 친필본 <<난중일기>>, <<임진장초>>, 충무공 장검, <<징비록>>   258 369 *국보 6 15, 보물 39 43, 국가등록문화유산 6 9 *국내외 45개 기관(개인 포함); 국내 39, 일본 5, 스웨덴 1곳 출품  전시기간: 2025. 11. 28.()~2026. 3. 3.()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2025 11 28일부터 2026 3 3일까지 특별전시실 2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위인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의 기록 앞에서 오늘의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이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은 전쟁과 자신의 내면의 기록이자, 인간이 시련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전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을을 지지하는 응원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임진장초등 이순신이 직접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전쟁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시대가 만들어온 상징으로서의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순신은 불가능의 순간을 가능으로 만든 이름이다. 패배와 좌절, 압도적 위기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고뇌,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결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응시하며 말한다.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일어선 우리가 곧 이순신이다.” //

전쟁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을 만나는 전시, 이순신의 승리, 시련, 성찰, 사후의 기억까지 연속적 서사로 엮어 총 4부로 구성되다

1<철저한 대비, 그리고 승리> : 임진왜란 이전 이순신의 철저한 대비를 조명하고, 한산도대첩으로 이어지는 조선 수군의 전술 체계를 소개한다. 또한 한산도로 진을 옮기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진을 경영했던 지휘관 이순신의 모습을 살펴본다.

2<시련과 좌절의 바다를 넘어> : 백의종군, 칠천량 패배를 거쳐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이 12척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오히려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충무공행록)라고 언급하며 출전했던 명량대첩의 기적, 그리고 노량해전으로 이어지는 절망과 재기의 서사를 다룬다. 노량해역 출수 유물, 일본과 스웨덴에서 건너온 유물 등을 통해 이 과정이 어ᄄᅠᇂ게 전개되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3<바다의 끝에서 나를 돌아본다> : 노량해전에서 생을 마감한 이순신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돌아본다. 출생부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삶을 반추하며 전쟁 영웅 이전에 한 인간의 내면을 엿본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하늘과 같이 생각하며 어머니를 말할 때는 天只(천지)’라는 표현을 썼다.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했다. 이는 전쟁 중이라도 행복한 일이구나”(난중일기159411)라고 언급하고 있다. 항상 어머니의 안부를 걱정했고, 부인과 아들들에 대한 염려가 난중일기곳곳에 드러나 있다.

4<시대가 부른 이름> : 이순신 사후 조선, 근대, 현대에 걸쳐 이순신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시대가 필요로 한 이순신의 모습을 추적한다. 선조가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 이순신에 대해 물었을 때 이순신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능력과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훈이 있는 분이라고 했다((정조)어제이순신신도비).” ,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이 출품되는 최대 규모의 전시

이번 전시는 총 258369점의 전시품을 선보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이순신 전시이다. 무엇보다도 국보 6* 15점은 이순신의 사유와 결의, 전장의 생생한 기록을 그대로 전해준다.

* 이순신 친필본 <난중일기>, 이순신이 국왕에게 올린 장계를 후대에 베껴 쓴<임진장초>, 이순신이 보낸 편지를 묶은 <서간첩>, 이순신의 장검, 류성룡의 임진왜란 회고록 <징비록>, 조선 전기의 해안 방어와 수군 제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조선방역지도>

여기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보물 3943, 이충무공 유적보존 <성금대장> 등 국가등록문화유산 69점이 더해져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류를 포함하여 이순신 관련 기록물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임진왜란의 침략국 일본의 다이묘(大名)가 보관해온 유물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다치바나 무네시게 가문의 투구와 창, 금박장식투구, 그리고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소장해온 금채 <울산왜성전투도> 병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상화와 목상 등이 공개된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귀중한 자료다.

또한 <정왜기공도병>은 스웨덴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 소장하다가, 전반부는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Östasiatiska museet), 후반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각각 보관해오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나라에 나뉘어 있던 병풍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역사적 순간이 구현된다.

<<난중일기>>를 비롯한 이순신 종가 유물 2034점의 진본이 이렇게 한꺼번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일은 처음이다. 개인을 포함한 45개 처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이번 전시는,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전쟁의 기록,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 그리고 시대가 만든 상징을 동시에 조망한다.

영상과 체험, 음향이 결합된 몰입감 넘치는 역사전시 이번 전시는 기록 중심의 절제된 연출을 유지하되, 단순한 보여주기식 영상이 아니라 기록을 이해하기 위한 영상으로 구성하였다도입부의 실감 영상은 전쟁에 임하는 이순신의 결의를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전달한다.

두 번째 영상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무기 운용을 시각화해, 대형총통(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으로 대형 화살을 쏘아 상대의 배를 깨부수는 당파撞破, 이어 탄환과 화살을 비와 우박처럼 퍼붓고, 마지막으로 화약무기로 집중공격하는 분멸焚滅의 전술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 영상은 기록과 그림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한 정보 영상으로,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탁본>를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장면, <울산왜성전투도><정왜기공도병>에 묘사된 그림 풀이, <<난중일기>> 원문을 읽어볼 수 있는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번째 영상인 시민인터뷰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순신의 의미를 들어보며, 이순신이 동시대 속에서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필로그 영상 우리들의 이순신은 이순신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조선에서 현대, 그리고 세계로 확장되는 이순신의 기억을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콘텐츠 <오늘, 내 안의 이순신>은 관람자의 얼굴에 이순신이 느꼈을 감정의 단어를 입혀, 이순신의 내면을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또 관람객들의 오감 만족을 위해 음악 전문가들과 협업, 전시 공간 전체에 음향 설비를 갖추어 감정의 서사를 청각으로도 느끼게 하였다. 이순신이 활약했던 한산, 명량, 노량의 바다 소리를 전시 공간 전체에 정교하게 재배열하여(사운드 스케이프) 관람객에게 전시를 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붙임 포스터 및 주요 전시품

이순신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이 문서에서 시작된다 //

1643년 인조 21년 이순신에게 춤무라는 시회를 내린 교지(敎旨 :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 및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국왕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후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대 나를 구한 충신 특히 이순신을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현장이 추진되었다. 이 시호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이순신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이 문서에서 시작된다 // 1643년 인조 21년 이순신에게 춤무라는 시회를 내린 교지(敎旨 :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 및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국왕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후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대 나를 구한 충신 특히 이순신을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현장이 추진되었다. 이 시호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1이순신 원래 문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시대의 사명으로 무인의 길을 가다 / (20살까지 성리학 교양을 쌓다)과 무(20살 이후에는 무예를 갈고 닦다)에 다 능통했다 / 통합적 르네상스 인간이다 / 그는 시인(난중일기)이면서 발명가(거북선)였다 / 문과와 이과에 다 능통했다 / 하이테크 기술과 미디어 예술에 다 능통한 예술가인 백남준과 닮았다 //

이순신은 한 시대의 장수가 아니라, 민족의 혼이자 / 나라의 길을 비추는 영원한 이름이 되었다 / 또 이제는 세계 속 한국인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1<이순신 백의종군의 길> 옥에서 풀려나오다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알게 된다

"419일 맑았다. 일찍 나와 길에 올랐다. 어머니의 영연에 인사를 올리며 목놓아 소리치며 울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일찍 죽는 것만 못하구나(十九日己卯 早出登程 哭辭靈 天地安有如吾之事乎不如早死也) 이순신 <난중일기- 정유 419> 중에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죄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를 하고자 했으나 어버이도 역시 돌아가셨구나(至飲孝於親而親)" - 이충무공 전서 9권 부록에 기록

이순신은 억울한 누명으로 옥에 갇힌 지 28일 만인 41일 풀려나 두 번째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남쪽으로 가다가 아산에서 잠시 머물던 413, 이순신은 어머니가 여수에서 아산으로 배를 타고 오던 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이순신은 '<난중일기> 곳곳에서 비통한 마음, 서럽고 아픈 마음을 절절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백의종군으로 가던 길이라 어머니의 장례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길을 떠나야 했다.

그 길은 백성들이 겪는 전쟁의 고통을 직접 느끼고, 지형을 파악하고, 승리의 전략을 궁리하며 가는 길이었다. 권율의 도원수부에 도착한 이순신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직위가 없을 뿐이었지, 이순신은 통제사 시절처럼 전선의 상황을 파악하고 군량을 준비하며 군무에 힘썼다.

1<자료 국립진주박물관> 조선인의 코를 절취해 일본에 가지고 가면 훈장을 탄다

교토에는 이걸 수집해 놓은 <코무덤>이 있다 //

근데 정말 끔찍한 이야기 외할머니에게서 증언으로 들었다. / 1940년대 일본 강점기 말기에 한국인의 씨를 말린다고 해서 남자애가 태어나면 성기를 절취해 그것을 말려서 포로 만들어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 그런데 나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나 자료를 본 적은 없다1부산과 마산은 일본과 가깝다 / 대마도가 원래 한국 땅이다 / 그래서 일본풍이 있다 // 15925~9월까지 / 왜군의 육상 침입로 1차 옥포(57), 2차 사천(529), 3차 한산도(78), 4차 부산포(91)

부산진순절도

<부산진-순절도(Painting Depicting the Battle of Busanjin Fortress, the First Battle of the Imjin War)> 임진왜란 첫 전투인 부산진-전투를 그린 그림 / 부산함락 "9-11(이경)에 영남 우수사에게서 공문이 왔다. 부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함을 이길 길이 없었다" - 이순신 <난중일기> 임진년 416

1명량해전 승리요인 핵심 요소 정리 표 <용머리가 없는 작은 거북선인 판옥선 적절히 활용> <판옥선도 :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 그림>

1) 지형·조류 활용: 울돌목의 좁은 수로와 급한 물살, 조류 전환 시점을 이용해 대형 함대의 기동을 봉쇄 | 일본 함대 분산·혼란 유발
2) 일자진·협폭 전열: 해협 입구에서 전열을 좁게 펴고 선두부터 소수씩 상대 | 수적 우세 무력화, 각개 격파 유도
3) 판옥선·함포 중심: 전투 측면은 대포, 화전·총통, 충각전술 활용 | 백병전 유도를 피하고 중거리 화력전으로 우위 확보
4) 위장·심리전: 피난선을 전선처럼 배치해 예비 전력처럼 보이게 조성 | 적 전력 판단 혼선, 조선 수군의 실전력 과대 인식 유도
5) 사기·결사의 각오 고취: 통제사의 선두 지휘와 적절한 총공격 타이밍 | 열세 극복, 단시간 대승으로 연결


1"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若無湖南 是無國家)' - 이순신 명량해전에서
<호남은 159710월 임진왜란 때, 19805월 군사 독재에서 나라를 구하다>

1이순신장군 <명량대첩>에서 사용한 전술의 핵심 요소 // "만약 호남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
(若無湖南 是無國家)" - 이순신 명량해전에서" <전투 전 이순신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을 인용해, 후퇴 불가·결사의 각오를 병사들에게 심어 주어 극도의 열세 상황에서도 동요를 막았다>

명량대첩에서 사용된 전술의 핵심은 좁은 해협과 거센 물살(조류)을 이용해 일본 함대를 분산·혼란시키고, 소수 정예 판옥선의 화포전과 돌격 전술로 각개 격파한 데 있다. 또한 병력·함선 수의 열세를 피난선 위장, 지휘·사기 진작으로 보완해 실질 전력 격차를 줄인 것이 핵심 요소였다

1) 지형·조류 활용
명량 해협(울돌목)은 매우 좁고 물살이 빠르며 조류 방향이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바뀌는 곳으로, 이순신은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해 대규모 일본 함대가 전열을 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본 함대는 밀물·썰물 전환 시기에 소용돌이와 역류에 휘말려 기동과 회전이 어려워지고, 선두와 후미가 분리되면서 일제 돌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2) 전열 구성과 화포전
조선 수군은 해협 입구에 일자진 형태로 전열을 좁게 펼쳐, 앞에서부터 들어오는 일본 함선을 소수씩 맞이하는 형태로 전투를 유도했다. 판옥선의 견고한 선체와 다수의 측면 대포를 활용해 거리 유지 속에 함포 사격을 집중하고, 일본선이 가까이 접근하면 들이받기·충각(당파)과 화전, 총통 사격으로 격침했다

3) 위장·보조 전술
전선이 12~13척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후방에 피난선 수백 척을 늘어세워 원군 혹은 예비함대처럼 보이도록 하는 위장전술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일본 측은 조선 수군의 실제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 심리적·전술적 우위를 조성하는 효과가 있었다

4) 지휘와 사기 관리
전투 전 이순신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을 인용해, 후퇴 불가·결사의 각오를 병사들에게 심어 주어 극도의 열세 상황에서도 동요를 막았다. 장수·수군을 직접 독려하며 선두에서 교전하고, 적 기세가 꺾이는 순간 총공격을 명해 단시간에 적선 수십 척을 격파함으로써 전황을 완전히 뒤집었다

<핵심 요소 정리>

1) 지형·조류 활용 | 울돌목의 좁은 수로와 급한 물살, 조류 전환 시점을 이용해 대형 함대의 기동을 봉쇄 | 일본 함대 분산·혼란 유발2) 일자진·협폭 전열 | 해협 입구에서 전열을 좁게 펴고 선두부터 소수씩 상대 | 수적 우세 무력화, 각개 격파 유도
3) 판옥선·함포 중심 전투 | 견고한 판옥선과 측면 대포, 화전·총통, 충각전술 활용 | 백병전 유도를 피하고 중거리 화력전으로 우위 확보
4) 위장·심리전 | 피난선을 전선처럼 배치해 예비 전력처럼 보이게 조성 | 적 전력 판단 혼선, 조선 수군의 실전력 과대 인식 유도
5) 사기·지휘 | 결사의 각오 고취, 통제사의 선두 지휘와 적절한 총공격 타이밍 | 열세 극복, 단시간 대승으로 연결1<이순신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다의 속성과 물길의 파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십하고 있었다>

1 이순신 탁월한 전략가: 이순신은 바다의 지형, 조류, 적의 습성까지 철저히 분석해 전투를 설계한 실용적 전략가 / 울돌목의 엄청난 물살(흐름)을 이용한 <지형 기반 전술>의 극치.

2 정보전의 중요성 강조:
1) 첩보망을 촘촘히 운영해 일본군의 이동·심리·보급 상황을 철저히 파악하다
2) 조선 수군이 항상 준비되어 있도록 하다

3 도덕적 리더십:
1) 조선 조정 내부의 모함, 파직, 백의종군 등 수모를 당했지만, 국가와 백성을 위해 묵묵히 직무에 충실하다
2) 병사들에게 공평하고 엄격했으며,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다
3) 그래서 세계적 군사 역사에서 넬슨 제독과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순신은 백남준처럼 그의 탁월함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겼다'가 아니라 준비, 전략, 리더십, 도덕성, 심지어는 공학적 감각까지 갖춘 복합형 천재라는 점에 있다.

왜 이순신은 한국인에게 특별한가? 1) * 압도적 열세 속에서도 나라를 구한 인물이라는 상징성. 2) * 개인적 욕심보다 공동체를 선택한 도덕적 표상. 3) * 전쟁에 대한 공포와 혼란 속에서 국민의 정신적-심리적 지주로 존재.

1이순신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이끈 최고 명장으로, 한산도·명량·노량 해전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이다. 탁월한 전략·전술, 엄격하면서도 애민적인 인품,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전장을 지킨 충성심으로 한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장군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 기본 이력과 직위

이순신은 1545년 한성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한 뒤 함경도·전라도 등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임진왜란 직전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전라 좌수영의 수군을 재정비하고 군선·무기를 정비해 전쟁에 대비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옥포·사천·당포 등 초기 해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일본 수군의 북상을 차단했고, 1593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해 조선 수군 전체를 총지휘하게 되었다. 이후 왜란 내내 수군 작전을 총괄하며 일본의 보급로를 끊고 육군 작전을 지원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2) 주요 해전과 업적

대표적인 전과로는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노량 해전이 꼽힌다. 한산도 해전에서는 학익진 전술을 활용해 왜선 대다수를 격파해 일본 수군의 제해권 장악 계획을 좌절시켰고, 이는 임진왜란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 계기였다

정유재란 때는 원균의 패전으로 수군이 거의 궤멸된 상황에서 다시 통제사로 기용되어, 남은 전선 12~13척으로 명량 해전에서 100척이 넘는 왜선을 격파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며 수군을 재건했다. 1598년 노량 해전에서는 후퇴하는 왜군을 추격하다가 전투 중 피격되어 전사했는데, 이 마지막 승리로 왜군의 철수를 재촉해 전쟁을 사실상 끝맺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 성품과 리더십

이순신은 청렴하고 원칙적인 인물로, 상관의 부당한 압력이나 권력자와의 유착을 거부해 모함과 탄핵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강한 정의감과 책임감을 지닌 인물로 전해진다. 병사들을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한편 공을 공정하게 나누고 병사와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하여, 부하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또한 전시에도 병영·함선 정비, 식량·군수품 자급 기반 마련 등 조직 운영과 경제 기반을 함께 챙겨, 장기간 전쟁 속에서도 전력을 유지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어머니와 친족을 극진히 모시고, 조카와 부하 가족까지 살핀 인자한 면모도 여러 기록과 일화로 전해진다

4) 역사적 평가

이순신은 임진왜란 기간 한 번도 해전에서 패하지 않은 장군으로, 20회가 넘는 해전 모두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양 해전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전술·지휘 능력 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해군 지휘관으로 평가되며, 특히 열세한 전력으로 대규모 함대를 격파한 사례는 군사사 연구에서 자주 언급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시호 충무(忠武)’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가장 존경받는 역사 인물 중 한 명으로 추앙되며, 각종 기념관·동상·사당(현충사 등)과 함께 교과서·문화 콘텐츠를 통해 널리 기억되고 있다.


1일본군과 치열한 해전 대포 쏘는 모습을 연출한 뉴미디어 영상. 조선군은 조총은 없었지만 다양한 종류의 <><총통>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1이순신의 가계도(연표) 아래 이종학 // 이순신 충무공파 후손 대표 // 이종학은 덕수 이씨 충무공파 13대손으로, 13대 종손이자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장

1사진/이순신의 가계도(연표) 아래 이종학 // 이순신 충무공파 후손 대표 // 이종학은 덕수 이씨 충무공파 13대손으로, 13대 종손이자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장/이순신 장검 / 1594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의장용 칼

1이순신 조카 이분이 전한 말 // '이분(李芬)'은 이순신 장군의 조카이자,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처음으로 쓴 사람

1임진왜란 당시 다양한 무기들 : 철퇴---장검-보검-쌍검-쌍수도-언월도-장패도-장척도1<백남준과 이순신> 과학자(첨단 기술의 극대화)이면서 발명가(거북선과 비디오-합성기) / 시적 감수성 넘치는 문필가(난중일기) - 백남준 빼어난 산문가 / 전 세계를 호령한 문화 칭기즈칸(백남준)-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위대한 제독(이순신) / 기상천외한 전략을 통해 위기의 시대를 긴 세계적 시야로 돌파한 전략가-서구미술 위기를 돌파한 비디오아티스트(위기를 창조적 기회 역전시키는 교란자)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영역의 인물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놀랍도록 깊게 통하는 핵심 정신 / 예술가와 장군의 비교는 단순 우연이 아니라, 한국이 낳은 전략적 사고의 두 거인” / 아래는 두 인물을 관통하는 공통점의 핵심이다.


이순신 장군을 깊이 존경한 백남준의 작품 두 거장을 비교해 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1) 위기 상황을 창조적 기회로 바꾸는 능력

이순신: 전선이 부족한 절망적 상황에서 *거북선*, *학익진*, *전술적 기만 전략*, *12척의 명량해전 승리* 등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해답을 창조했다. // 백남준: TV 해킹, 폐전자기기, 로봇, 레이저 등 예술 재료가 아니라는 것을 예술로 전환. 기술·매체가 가져오는 위기(산업화, 미디어 과잉)를 새로운 예술 혁신의 기회로 만들었다.

2) 도구를 이해하고, 도구를 재발명한 사람들

이순신: 배의 특성, 조류·지형, 화포 구조를 정확히 이해한 도구의 장인’. 기존 무기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해전 방식을 발명했다. // 백남준: 비디오, TV, 인공위성, 레이저라는 기술의 물성을 깊이 이해하고 그 기술 자체의 개념을 뒤흔들며 매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무기를 다루든, 기계를 다루든 도구를 단순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도구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한 자라는 점이 닮았다.

3) 세계적 시야를 가진 전략가

이순신 : 단순히 조선의 방어가 아니라, 일본·명과 얽힌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고려하며 전쟁을 수행. 전략적 사고가 지역을 넘어섰다 // 백남준 : 활동 무대는 독일미국일본한국, 완전히 글로벌. 그의 예술은 초국가적 네트워크 사상(글로벌 브레인)을 형성했다. 둘 다 지역에 갇히지 않은 세계 전략가였다

4) 스스로를 소모해 시대를 연 사람, 둘 모두 육체와 정신을 소모하며 자기 생애를 거의 제물처럼 사용했다. * 이순신: 임진왜란 7년 동안 극한의 고통 속에서 전선을 지켜낸 전쟁 영웅 // * 백남준: 매일 18시간 작업, 평생 자금난과 병을 견디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기 몸을 불살랐다는 점이 닮음.

5) 요약: 백남준 × 이순신의 공통점 5줄 정리
1. 위기를 발명으로 바꾸는 천재적 전략가 2. 도구를 단순 사용이 아니라 재발명 한 사람 3. 지역을 넘어선 국제적/글로벌 관점 4. 기술·전쟁 너머 공동체 중심 사고 5. 자기 생애를 소명에 바친 견고한 실행가


1수군조련도병 / 조선후기 수군의 훈련(Naval Military Training) 모습을 그린 그림 // 조선 후기 경상 전라 충청 3군 수군이 '통제영'에 모여 합동 후련을 하는 모습을 그린 병풍이다. '판옥선''거북선'500여 대가 보인다 // 아래 그린 한산도 대첩(1592): 1 ‘학익진(학이 날개 펼친 형세)’으로 일본 수군을 대파. 2. 동아시아 해전사에서 손꼽히는 결정적 승리. 3.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전쟁 양상을 뒤바꾼 전투.

1<찢어진 하늘 꿰매고, 흐른 태양을 맑게 씻어준 장군,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온 위대한 장군이다> 명나라 장수 '진린'이 본 이순신 장군을 조선의 왕 정조에게 이렇게 말하다 /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조선은 연합군으로 왜군을 막아냈다.1하늘이 낸 영웅 그러나 시인이었다.

<아래,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 '손천왜성'을 공격하고 '노량해전'을 벌이는 조명연합국>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 일본군을 정벌한 공적을 기념하는 내용 그림 / 일본 19세기 추정 종이에 채색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아래,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향하는 명의 육군과 바다를 건너는 명의 수군>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 일본군을 정벌한 공적을 기념하는 내용 그림 / 일본 19세기 추정 종이에 채색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를 위한 배움공간

어린이 관람객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탐색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실 밖 역사의 길로 이어지는 배움 공간 <감각으로 만나는 우리들의 이순신>에서는 전시 경험을 개인의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다색판화엽서 제작 활동과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섯 가지 영상으로 감상하는 디지털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촉각·청각·시각을 활용한 다감각 체험물이 있어 모두를 위한 접근성을 고려했다. 영웅이기 전에 한 사람이었던 이순신, 그의 마음을 따라 걸어보는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관람권으로 배움 공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한편 겨울방학 기간에는 어린이·가족 대상 교육 프로그램 3종도 운영한다. 어린이 해설사 과정인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순신 이야기’, 해전 전술과 신호 암호 학습을 통해 전시실을 탐험하는 출격! 암호를 풀어라’, 전시 기반의 퀴즈와 해설로 진행되는 어린이 골든벨, 종을 울려라가 마련된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교육 플랫폼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개막 후 일주일인 11 28()부터 12 4()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이순신 장군 서거일인 12 16()에도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