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감정 속 삶의 절망과 환희 그리다] -프랜시스 베이컨 탐구
프랜시스 베이컨(1909년 10월 28일~1992년 4월 28일)은 실존적 내면에 깔린 비극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그리다. 행위 극단적이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그림은 이성적 논리의 관습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폭풍우 같은 붓놀림 유기체 같은 비정형의 형태로 드러난 공포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열락의 세계가 열린다
작업실 속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은 유명한 작가가 되고 나서 보다 큰 작업실에 이사했다. 거기서 30년 간 그 작업실을 한반도 청소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생기는 먼지를 활용해 작업을 하고도 했다. 먼지는 나름 사람처럼 서로 가까이 만나 뭉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거기서 파티를 연다. 베이컨은 주변이 깨끗하면 작업을 못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주변이 다 정리되어야 작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실 파괴가 창조의 어머니이듯 카오스가 없는 코스모스가 있을 수 있는가
작품 회화 1946년 198*132cm 뉴욕현대미술관. 분출하는 감정의 세계
BBC에서 만든 프랜시스 베이컨 화가의 일대기 1시간이 넘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rO5za0lSY&feature=player_embedded&fbclid=IwAR3FGxGAt9KRx05UrtCS3oLKyW28ypmUFGM2nx-Y4wCe-nJrxFJ6lG-GBYo F. 베이컨 그림 2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전 작품을 볼 수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동시대 작가인 루시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동시대 작가인 루시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는 몸을 그리는 화가인데 서로 절친이었다. 베이컨이 그린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 프로이트의 특징은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베이컨 모델을 한다가 참지를 못하고 뛰어나오다. 서로 체질이 다르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가끔 만나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린 루시안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이 좋아한 화가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벨라스케스, 푸생 그의 그림에 이 다섯 화가의 그림을 밑그림 한 작품이 많다.
과연 사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그릴 수 있을까. 베이컨 그걸 그렸다 그래서 천재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것인가? 사실 그는 2차세계대전 런던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시체에서 그 영감을 얻은 것인가. 그렇게 나온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그의 생애는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1차대전 2차대전을 다 겪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 그림 뒤에는 거장의 그림이 숨어 있다. 과연 누구인가? 바로 렘브란트다. 렘브란트는 사실 피카소보다 훨씬 더 위대한 화가다.
한국에서는 동성애가 합법이다. UN헌장에 성적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성서에서도 3번인가 동성애 언급이 나온다. 그런데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성서에 수천 번 이상 나온다. 메인 계명인 십계명에도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정치적 보수(?)교회는 거짓말하는 데 별 죄의식이 없다.
이 계명을 교회가 거의 지키지 않는다. 주일마다 설교로 거짓말을 한다. 부자가 복 받는다고. 성서에는 부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천국에 못 간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동성애만 물고 늘어진다. 그것은 히틀러가 유대인 차별을 할 때 써먹은 방식이다. 그렇다고 내가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베이컨의 애인 중 하나인 조지 다이어 George Dyer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성애자가였다. 그에게는 3명의 애인이 있었다. 애인이 중간에 죽는 바람에 파트너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베이컨이 살던 60년대 놀랍게 영국에서도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그래서 베이컨은 고생을 많이 했다,
베이컨이 그린 조지 다이어 George Dyer
앤디 워홀을 비롯한 팝 아티스트의 90%가 동성애자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런가? 예술가란 일반인보다 사랑의 범위가 더 넓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의 이런 성적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면 베이컨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
1933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년 10월 28일~1992년 4월 28 일)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아래 작품(십자가처형)으로 그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작품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중등 교육도 포기한 사람이다.
베이컨의 주제는 당연히 고깃덩어리다. 렘브란트의 전승을 기어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20세기 유럽을 전쟁으로 살육전횡 시대였다. 그것을 처절하게 경험한 베이컨을 그렇게 본 것인가. 베이컨은 삶을 지배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봤다. 그도 30년대 후반기 침체기가 있었다. 서구의 방식은 동양의 물아일체와는 다르게 투쟁적이고 극단적이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다. 피카소가 에로스(삶의 본능)가 강한 작가라면 베이컨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가 강한 작가이다. 그럼에도 베이컨은 매우 명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절망감을 미술사가들은 '명랑한 절망감'이라고 부른다. 베이컨은 어린 시절 카톨릭 분위기의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많이 당했다. 그에게는 당연히 자녀가 없다. 그는 나중에 그 비싼 많은 그림을 양자(바텐더) 에드워드에게 유산으로 모두 넘겨주었다. 그는 정말 베이컨의 작품을 사랑하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살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른 생명을 잡아먹고 사는 삶에 깃든 모든 공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 공포의 미학을 거론하다.
그만큼 삶이 각박하다는 의미도 된다. 지금 수목으로 그리는 동양화로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그 잔혹함과 처절함을 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동양사람도 그런 강력한 표현이 필요하기에 서양의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인들은 이런 작품과 퍼포먼스(발악)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모른다. 데미안 허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베이컨은 술과 마약 등 무절제한 삶을 산 것 같지만 사실은 새벽형 인간으로 매우 성실한 일면이 있다. 그래서 세계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진지하고 집요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시대 최고의 철학자 들뢰즈는 베이컨을 최고의 작가로 칭송하다. 1960년대 전성기 색채와 구도 등 모든 면에서 베이컨 특유의 신경계에 직접 호소하는 작가(들뢰즈)라는 평가를 받다. 그래서 더 유명해졌다.
[베이컨이 탐지한 힘] <1> 격리의 힘: 아플라 속에 들어 있으며 윤곽 주위에서 둥글게 감싸질 때, 그리고 아플라를 형상 주위에 감돌게 할 때 보여진다. <2> 변형의 힘: 형상의 신체와 머리에 침범하여 머리가 얼굴을 뒤흔들거나 신체가 그 유기적 조직을 뒤흔들 때마다 드러난다 <3> 흩뜨리는 힘: 상이 지워져 아플라에 합쳐질 때 나타난다 <4> 놀랄 만한 에너지로 두 신체를 결합한다 <5> 결합과 분리의 힘(영원한 시간의 힘): 삼면화에서 나옴. 순수한 빛에 의하여 나타난다.
[삼면화에 존재할 세 개의 리듬] <1> 적극적 리듬: 증가적인 변화와 팽창 <2> 수동적 리듬: 감소적 변화나 제거 <3> 증인적 리듬: 그림에 참여(삼면화의 판들은 관찰자들 이거나 기도하는 자들 혹은 후견인을 내포한다. 삼면화를 움직임과 등가물로 만들고 음악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 삼면화란 기본 3박자의 분배가 될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나르시시즘의 최고였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었다. 에고를 극대화시키는 천재였다. 삶을 사랑할수록 죽음은 더 가까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넘어서도 있다. 그에게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삶이든 죽임이든 모든 것이 축제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평생 동안 그려낸 위대한 표현주의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추신] 프란시스 베이컨은 들뢰즈가 말하는 '기관 없는 신체(뭉개버린 신체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조차 나뉘지 않은 감각 덩어리)'를 그린 화가인지 모른다. 베이컨은 육체를 그릴 때 머리로 그리지 않고 바로 촉각으로 그리다(우리의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신경을 건드린다). 그래서 푸줏간 고깃덩어리로 보인다. 우리의 본능적인 감각을 건드린다.
그는 우상파괴자로 벨라스케스의 교황 그림을 수도 없이 재해석하고 해체시키며 그를 능가하려고 애썼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성과가 있었다.
이 시리즈 수도 없이 그렸다. 25년 동안 그의 캔버스는 경매에서 4천만 파운드를 정기적으로 초과했다. 역설적으로 그는 가장 성스런 화가가 되었다.
베이컨이 초기에 좋아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 바로 고흐였다. The Irish-born British painter Francis Bacon (1909-1992) is one of the many artists to be inspired by Van Gogh. He drew inspiration from the ‘severity’ of Van Gogh’s brushstrokes. The Painter on the Road to Tarascon was Bacon’s favourite work by Van Gogh, although he never saw it in real life; the painting was lost in World War II. Bacon only knew of the work through colour reproductions.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또한 영감을 준 화가는 바로 16세기 프랑스 미술을 처음으로 세계화시킨 ‘니콜라스 푸생’(1594~1665)이다.
그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유독 사랑하는 친구와 애인의 죽음을 여러 번 목격한다. 그의 그림이 가진 분위기가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자신의 내면을 명랑한 편이었다는 평가다. 정말 작품이 많다. 사실 그는 영국 출신이 아니고 아일랜드 출신이다.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프랑스어도 유창하다.
유럽의 삼면화 전통을 유지하면서 표현주의 계열의 뭉크와 비교되는 그의 그림을 우리 시대가 가장 비싼 작품이 될 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2013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삼면화(1969년 작) 1500억 원에 낙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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