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나비 타작마당
신진식 건국대 뉴미디어아트 연구소장
[2018 콜로키움: 백남준으로부터의 메시지] 언제: 2018년 11월 22일 오후 3-6아트센터 나비 타작마당 주최: 건대 뉴미디어아트연구소 후원: 아트센터 나비 어디서 TV 캔버스에 전자붓으로 움직이는 추상화를 그리다. <사회>민희정(미디어아트이론가) 인사말 신진식 건대 뉴미디어아트 연구소장과 이어 후원을 한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축사가 있었다.<최근 오마이뉴스 백남준관련뉴스> http://omn.kr/1d1nt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제1발표> CRT와 《음악의 전시》 이원곤[단국대 교수] / 질의 및 토론 황인 [미술비평가]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연구원] <제2발표> Jam으로서의 백남준의 작업 김금미 [아트 앤 아카이브 소장] / 질의 및 토론 홍가이[아트플랫폼아시아고문, 철학가, 미술비평가] 정용도[미술비평가]
-라인 강에는 입자와 파동 등 우주의 모든 소리(리듬)가 담겨 있다 –백남준
-우주 저편에 태초의 전자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백남준
단국대 이원곤 교수(오른쪽)
<제1발표> CRT와 《음악의 전시》 이원곤[단국대 교수] / 질의 및 토론 황인 [미술비평가]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연구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 영향을 준 사람(가설)으로 1960년대 후반 <1> 우디 바슐카부부 <2> 스테펜 벡 <3> <백남준은 최초 그래픽작품(52년), 벤 라포스키를 알았나 몰랐나? 그 영향은? 역시 이날 세미나의 하이라이트다. 상당한 실력을 갖춘 이원곤 교수다.
백남준은 최초 그래픽작품(52년), 벤 라포스키를 알았나 몰랐나? 그 영향은 있었는가? 이원곤 교수 과연 백남준이 그의 추상전자페인팅을 시작할 때 과연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라포스키의 이론(electronic abstrations 1953)을 접했을까 물었다.
과학자는 곧 이 새로운 기계장치를 사용, 자연현상의 보다 넓고 복잡한 구조와 변화를 매핑해 정확한 수학 용어로 자연을 기술할 수 있게 됐다. 자연의 형상과 법칙이 수학 언어를 통해 정리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얻은 새로운 시야와 함께 자연의 패턴과 형태를 다루고 표현하고 싶다는 지속적인 욕망이 발현된 것. 미국의 수학자이자 예술가인 벤 라포스키(Ben F.Laposky)는 이에 근거해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체계적 시도를 진행했다.
벤 라포스키(Ben F.Laposky) 작품(Oscillon 40번 오른쪽) 최초의 그래픽 아트 1952년
최초 그래픽아트, 벤 라포스키의 작품 ‘Oscillon 40’(1952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차 광범위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출력할 수 있는 기계가 발전했다. 사람의 손으로는 하기 힘들던 일이다.
과학자는 곧 이 새로운 기계장치를 사용, 자연현상의 보다 넓고 복잡한 구조와 변화를 매핑해 정확한 수학 용어로 자연을 기술할 수 있게 됐다. 자연의 형상과 법칙이 수학 언어를 통해 정리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얻은 새로운 시야와 함께 자연의 패턴과 형태를 다루고 표현하고 싶다는 지속적인 욕망이 발현된 것. 미국의 수학자이자 예술가인 벤 라포스키(Ben F.Laposky)는 이에 근거해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체계적 시도를 진행했다.
1950년대 초, 그는 자신이 개조한 음극선 오실로스코프의 원형 화면에서 출력된 아날로그의 파형 수천 개를 촬영했다. 촬영한 형상은 규칙이 있긴 했지만, 현실에선 볼 수 없을 것 같은 몽환적이고 비물질적인 반투명한 빛의 입체였다.
이는 전자와 에너지장의 변화, 그리고 이동이라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이자 철학자 헤르베르트 프랑케(Herbert W. Franke)가 말했듯, 라포스키의 연구는 전자 및 계산 기계로 그래픽을 생성한 첫 프로젝트였다.
이처럼 과학은 점차 시각적으로 변화했고, 과학실험 과정을 통해 수집한 시각적 정보의 미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었다. 확장된 전자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 또한 확장했고, 나아가 인간의 인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참고] http://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6157
발표자 이원곤교수 질의자 황인 평론가, 김남수 평론가
<공학도로서의 백남준>을 연구해온 황인(학부에서 공학전공) 선생의 절제 질문을 던지다. 백남준 아트의 핵심적 관점을 꿰뚫어보는 백남준 연구가 김남수 평론가의 질문도 이어졌다.
김금미 소장
<제2발표> Jam으로서의 백남준의 작업 김금미 [아트 앤 아카이브 소장]
질의 및 토론 홍가이[아트플랫폼아시아고문, 철학가, 미술비평가] 정용도[미술비평가]
"현대예술은 예술 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 백남준. 그는 '무아트(non-art)'의 영역을 개척하다.
63년 백남준 독일에서 첫 전시(피아노4대와 TV13대)와 65년 백남준 뉴욕에서 첫 전시와 차이점이 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뉴욕 전시에는 샬럿 무어먼과 K로봇-456(일종의 오페라)이 참여는 독일 전시와 큰 차이로 보이다. 비결정성과 가변성, 무음악, 비미술, 잼, 즉흥성, 축제주의자, 실험음악공연 전파방해 받다. 즉흥연주 무예측성 등이 키워드다.
전 MIT교수였던 철학자 홍가이, 백남준 홍가이 70년대(?) 뉴욕에 같이 있을 때도 두 사람은 격렬한 토론이 있었고 홍가이 교수(1948- 사진왼쪽)가 항상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백남준은 이에 개의 치 않았다. 그는 이번 세미나에서도 백남준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계속 공격하고 줄기차게 비판했다.
과거에도 홍가이 교수는 1984년 백남준이 한 말 "예술은 사기다"에 대해 예술철학과 언어철학의 입장에서 비판해왔다그런데 그가 그럴 만한 자격은 충분하다. 그의 학문수준은 한국에서 최상급이다. 나도 공격을 받았다. 백남준 왈 "백남준을 만나면 백남준을 죽여라" 백남준은 자신이 신화화되는 것에 대해서 항상 경계했다. 백남준을 아무리 신랄하게 비판하고 죽인다고 해도 백남준은 여전히 백남준으로 살아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백남준 언어는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다. 그래서 비언어이다. 그런 언어는 독자들이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기 때문에 그래서 소통의 여백을 여는 수사학이 된다. 자신의 말만 독재자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거기에 들어와 자신의 말을 덧붙이고 펼치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언어이다.
백남준은 종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는 종이 대신에 모니터에 전자붓으로 그림을 그린 전자(영상)페인터였다.그런데 이 그림은 우연성이 작동하는 비정형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있다가도 바로 사라지는 기가 막힌 비미술(non-art)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백남준의 전자페인팅은 이렇게 다다익선이다.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모든 회화를 이 전자 페인팅에 안에 다 담을 수 있다. 기적과 같은 예술 장르다. 피카소, 르누아르, 재스퍼 존스, 칸딘스키, 폴록 등
백남준은 음악을 전공했기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다. 백남준 비디오 속 움직임을 매우 리드미컬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리듬을 타는 존재이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이 오는 것은 거기에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리듬은 인생 그 자체이다. 리듬(고저장단)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니 리듬보다는 파동이다. 거기에 색채와 향기가 더해지면 보들레르가 말하는 *<상응>가 온다. 백남준이 브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correspondence
백남준 전자추상화가다. 백남준은 모니터에 직직거리는 화이트 노이즈 화면을 볼 때 그의 예술적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홍가이는 나에게 소설을 쓴다고 했다. 맞다 나는 백남준가 유산으로 남긴 거대한 뿌리 같은 전자아트문화자본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인지 모른다.
백남준은 무소유적이고 무신론적인 공유주의자(Marxist)였기에 당연히 유물론자다. 그래서 매체에 대해서 누구보다 예민하다. 그가 TV에 그렇게 예민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총체예술가다. 이 세상의 물질 속에 담겨진 정신(아니무스 아니마스)까지도 내다보는 유물주의였던 것이다.
<종합토론> 사회: 김희영 [국민대교수, 서양미술사학회장]
백남준의 예술, 그의 아주 간단한 예술 원리는 바로 이런 파동에서 온다. 다시 말해서 극미립자의 파동을 느낄 때 오는 최고의 쾌락(jouissance)을 말한다. 백남준 이런 감격을 아래와 같은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눈부신 날 아름다운 라인강의 파도(파동)을 세어보라(On sunny days, count the waves of the Rhine!)
이처럼 과학은 점차 시각적으로 변화했고, 과학실험 과정을 통해 수집한 시각적 정보의 미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었다. 확장된 전자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 또한 확장했고, 나아가 인간의 인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백남준은 몸을 움직이면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예술이 된다. 그가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가 몸과 말로 남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끝없이 이어진다. 다다익선이다.
2013년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백남준 전시품 상들리에
2013년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은 백남준 첫 전시 50주년을 맞아 그의 특별전을 마련했다. 주제는 '아트와 테크놀로지', 이에 걸맞게 총 진행자 '팻 피셔(Pat Fishier)'는 백남준과 다빈치를 연관해 전시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백남준은 20세기의 다빈치이고, 다빈치는 16세기의 백남준이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과학의 예술화와 선견지명(visionary)이다. 이것이 서구(영국)에서 보는 백남준에 대한 평가 중 하나다. 16세기에 유화페인팅은 첨단의 하이테크였고 20세기에 TV페인팅은 또한 첨단의 하이테크였다.
<뒷풀이> 백남준 예술정신의 본질 "fun, fun, fun"
축제와 향연이다. 심포지엄이란 바로 향연을 말한다. 모든 공부의 끝이 축제가 되지 않으면 가짜다.
건국대 미디어아트 신준식교수
그는 20년 간 뉴욕(플렛 인스티튜드)에서 유학, 백남준과 함께 찍은 사람이 있다고 보여주네요. 그래서 한 컷 찍다. 지금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와 협업으로 AR(augmented reality)을 개발하고 있다. BR 시대는 지나갔다고... 교수 답게 말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잘 구사하다. AR이란 앞으로 의대에서 몸을 해부를 하지 않고 3D+ 방식으로 해부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백남준 기술자 이정성 선생 방문> "fun, fun, fun"
이정성 테크니션 사무실에 걸려 있는 백남준 작품 거북선
이정성 테크니션(한국 아트마스터 대표) 사무실 오늘 오전 방문 너무나 흥미로운 백남준 관련 이야기기대가 된다.
이정성 선생 왈, 백남준 함부르크 전시 때 일화다. 독일 토마스갤러리에서 열렸는데 관장인 토마스는 어느 날 이정성 선생에게 오늘 거처가 어디냐고 물으면서 호텔에 갈 거냐 아니면 우리 집에 가실래요 하더라고 그래서 당연히 호텔에 가겠다고 했겠죠. 여러 번 물어 보길래 그래도 계속 호텔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러니까 그 관장이 제안하는 말이 그럼 우선 우리 집에 가보고 나서 호텔로 갈 지를 결정하라고 그렇게 해서 관장 집을 방문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의 집은 5층짜리 대저택이었고 방의 하얀 벽에는 유명 작가가 직접 제작한 회화작품을 볼 수 있었다고5층에는 손님용 방이 5개가 있었는데, 3피스로 되어 있고 한 방은 호화스러운 침대가 있고 또 다른 방은 구석이 아니라 한 가운데 황금 욕조가 있었고 또 하나의 방은 TV 등을 볼 수 있는 간단한 생활공간 등 언제라도 집안의 출입에서 불편이 없도록 개인 열쇠도 주었다고.
정기용 사장과 백남준
그 집에는 소처럼 큰 개가 있었고 주인이 이정성 선생이 큰 손님이나 잘 모시라고 하니까 알아 들더란다. 물론 물면 곤란하겠죠. 그리고 그 개가 훈련이 잘 되어 이정성 선생 얼굴을 핥아 아침에 기상을 시킨다고 그리고 연일 가든파티가 열리고 먹을 것, 마실 것 등 없는 게 없는 거의 밤마다 파티를 연다고 거기에 참가한 백남준도 종종 보고 그리고 정원은 동물 천국 다람쥐 토끼 등과 같이 먹고 마시고 [...]
그런데 여기서 독일 부자가 한국 부자의 차이가 있다고 이들은 연일 호화판 생활을 열지만 일종의 배려겠죠. 서민들이 볼 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항상 파티는 다른 사람들이 잠든 시간 밤 11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연다고 계속 초대하기에 이정성 선생은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해야 하기에 2번 참석하고 그 이후는 거절했다고 한다.
백남준 전시를 외국에서 할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람은 첫째 기술자 이정성, 둘째 백남준의 큰 후원자 정기용사장(서울대 불문과졸업), 그리고 갤러리 현대 박명자 사장의 동생인 박영덕 관장 이 세상이 오프닝이 끝나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으로 술의 초과잉상태로 들어가는데 보통 5시까지 이어진단다. 다들 대단한 주당들이다. 그러나 백남준은 술을 못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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