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근전시행사소개

[서용선: 서베이전] "한국인 실존적 내면 '메타회화'로 형상화"

[작가 서용선 대규모 서베이 전시]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 Suh Yongsun: My Name is Red≫ 1, 2부 7월 15일 개막 / 3부 9월 15일 개막. 기간: 2023. 7. 15. (토) – 2023. 10. 22. (일) 2부: 블랙 전시 설치 장면, 제공: 아트선재센터  <작성 중>

구상을 그리더라도 추상 정신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현대화가 되기 힘들 것이다. -서용선
전시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 서용선

[서용선 화백(아트선재에서 내일부터 전시) 서울대 교수직을 미리 그만두고 노마드처럼 전 세계 도시를 다니면서 한국인의 얼굴을 그리다. 한국인의 일그러진 얼굴 분단국으로 고통당하는 모습 그 처절함과 외로움 고립감과 소외감을 가감 없이 그리고 그가 주는 그림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사유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뭔가 다시 생각을 일으키며 한국인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작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소박한 인간미에 우리가 매려되면서 동시의 그의 깊은 한국인 내면세계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그의 회화에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무한대로 끌리게 된다. 그는 그저 말 없이 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50년 그림을 그린 그의 여유가 최근 부르클린 그림에서는 더욱 우리를 즐겁게 한다. 붓질이 자유롭고 유연해 그 어디에서 얽매임이 없어 관객의 긴장된 마음을 은근슬쩍 풀어준다. 그의 불안과 긴장감을 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역으로 분주한 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에 뭔가 말할 수 없는 안심을 준다. 참 희안한 일이다. 회화란 그런 면에서 치유의 효능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1] 회화적 공간으로 새롭게 구축되는 반세기를 넘는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도전과 성취,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사, 연구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서베이 전시의 새로운 방법론 제시, 서사적이고 구상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초대 [2] 서용선 예술세계를 새로운 회화적 공간으로 전시를 통해서 구현 8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7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 삶과 도시, 삶과 정치, 삶과 자연을 주제로, 총 3부로 구성되는 대형전시 [3] 기획 김장언(아트선재센터 관장) 진행 최한나(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협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 매일유업㈜

[아트 선재 서용선 전 이런 방식의 디스플레이, 관객에게 리듬감과 운동감을 준다. 사방 팔방 돌면서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진다. 그림 속에 기어 들어가 그림 속 인물과 만나게 되고 돌려보고 옆으로 보고 뒤집어 보고 하는 재미가 있다. 이 작품은 근작으로 뉴욕 부르클린에서 그린 것이다. 원래 이 동네가 좀 시끄럽고 혼미하다.]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장언)는 오는 7월 15일부터 10월 22일까지 작가 서용선에 대한 연구조사전시,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을 개최한다. 서용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도시-역사’라는 3개의 항을 토대로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며, 이를 ‘물질-환경(자연)-신화’라는 3개의 항으로 확장하고, 세계사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동시대적 삶의 조건과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 서용선의 예술적 진화와 그 여정으로 관람객을 초대하며, 그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인간, 사회, 예술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서베이 전시로 서용선 회화 세계를 재검토하면서 그의 예술 세계를 기존 한국 근현대 회화사의 논리와 다른 맥락에 위치시키고자 기획되었다. 기존의 서용선 회화에 대한 평가는 형식적 장르적 주제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회화세계를 재구성하여,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예술의 의미를 ‘회화적 공간(pictorial space)’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적 공간’이란 서사적이고(the narrative) 구상적인(the figurative) 틀에서 벗어나, 형상적이고(the figural) 감각적인(the sensible) 세계를 의미한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내 이름은 빨강’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Benim Adım Kırmızı』(1998)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소설은 1591년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전통과 서구의 갈등이 회화와 화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시를 구성하는 소제목들 역시, 이 소설에서 도시, 정치, 예술을 설명하는 챕터인, ‘저는 금화올시다’, ‘내 이름은 블랙’, ‘나를 나비라 부른다’에서 따왔다.]

서용선 전을 맞아 아트선재 김장언 관장의 기획의도는 기존과 것과 차별화된 개념을 찾으려 많이 애쓴 것 같다. 서화백의 그림을 서사적이고 구상적인 해석에서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초대하는 그림을 보면서 접근하고 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경우라면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정답은 아니고 좀 다르게 보려는 노력인 셈이다. 서용선 화백의 그림은 민중미술과 비민중미술 그것마저 뛰어넘는 제3의 회화 아니면 그만이 개성이 살아있는 메타 페인팅이 아닌가 싶다.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형상적(the figural)’은 장-프랑스와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그의 책, 『담론, 형상(Discours, figure)』(1971)에서 논의한 용어이다. 그는 언어와 담론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출현시키는 어떤 것으로 ‘형상적인 것’에 주목했다. 그에게 ‘형상(figure)’은 단순히 대상을 기술하고 묘사하며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이면서 한편 형식(form)을 갖지만, 기존의 의미체계를 가로지르며, 그 체계의 질서를 위반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의미를 다시 현시하는 것이다. 리오타르에게 예술의 위치는 형상의 내부와 외부에서 새로운 세계의 의미를 출현시키는 곳에 자리하며, 이 지점에서 예술의 급진성이 드러난다. 회화는 이러한 형상적인 것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은 다음과 같은 좌표 속에서 서용선 작업 세계의 새로운 공간을 출현시킨다. 한 축은 ‘도시-인간-역사(신화)-자연’이고 또 다른 축은 ‘선-면-형-색’으로 이루어지는 축이다. 전자는 서사적(이야기적) 세계의 축으로, 서사성과 구성성을 드러내며, 후자는 회화적(감각적) 세계의 축으로, 가시성과 심미성을 드러낸다. 이 좌표가 형성하는 공간 속에서 작가의 개별 작업들은 제작 시대와 개별 작업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재조합 된다. 윤리와 정치, 폭력과 파괴, 자유와 해방, 회복과 치유, 삶과 죽음은 이러한 좌표의 중요한 벡터이다. 그리고 벡터의 운동을 통해서 형성되는 새로운 3개의 공간을, ‘삶과 도시’, ‘삶과 정치’, ‘삶과 자연’으로 나누어 재구성했으며, 이 3개의 다른 공간이 이번 전시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번 전시는 서용선의 회화적 공간이 갖는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세계를 다르게 드러낸다.

[해설 과대한 경쟁 속 날마다 스트레스 받으면 간신히 살아가는 도시서민들 하루하루가 줄타기 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그런 면모가 보인다]

전시는3부로 구성된다. ‘1부: 골드’는 서용선 회화의 중요 공간인 도시를 다룬다. 작가는 8, 90년대 집중적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을 그렸다. 어린시절 한국 전쟁이 이후 폐허가 된 서울의 재건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던 작가는 8, 90년대 서울의 변화에 주목했다. 올드 서울인 사대문안과 그 변두리의 재건과 뉴 서울인 강남으로의 확장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서울이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장소로서 인식했다. 삶과 도시를 표상하는 ‘1부: 골드’는 서용선의 대표작인, <숙대 입구 07:00-09:00>(1991), <도시-차 안에서>(1989, 1991), <버스 속 사람들>(1992), <도심>(1997-2000) 등을 선보인다.

삶과 정치를 다루는 ‘2부: 블랙’은 서용선 회화의 중요 주제인 역사와 현재를 다룬다. <빨간 눈의 자화상>(2009)으로 시작하는 2부는 자화상이라는 장르를 통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인간을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정치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계유정난 등의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배열과 배치를 통해서 출현시키며, 한국의 근대화 및 산업화의 풍경을 그의 도시와 탄광촌 회화를 통해서 재배열한다. 그리고 정치와 역사가 야기한 갈등과 불신, 파괴와 폐허를 치유와 화해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한다.

삶과 정치를 다루는 ‘2부: 블랙’은 그의 다양한 자화상 시리즈뿐만 아니라, <음모>(1988, 1990), <여자 • 분노>(1991), <사막의 밤-포로들>(2004), <철암>(2004), <낙화>(2006, 2007), <청령포 1, 2>(2007), <개사람 1>(2008), <폐허 1>(2018, 2019), <사가모어 힐>(2019), <'경'자바위>(2014) 등 작가의 주제별 회화 대표작들이 선보인다. 또한 서용선의 초기작인 <정치인>(1984)이 오래간만에 전시에 등장한다. 이 작업은 80년대 등장한 새로운 군사정부 아래서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직업인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업이다.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출현과 더불어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정치인들의 출현 속에서 의미심장하다.

9월 15일 개최될, ‘3부: 나-비’는 보편적 세계를 향한 작가의 의지와 예술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8점의 풍경화와 3점의 인물화 그리고 나무 조각들로 구성되는 ‘3부: 나-비’는 삶과 예술의 일치를 위한 작가의 탐구와 성찰을 드러낸다. 화가로서 작가 서용선에게 절대적 대상인 소나무에서부터 역사의 현장을 탐구하기 위해 방문하고 그려온 풍경들은 단순히 역사의 배경이 아니라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여기에 3명의 인물을 배치한다. 원형으로서 인간인 <이동-마고사람>(2010)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바라볼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원형으로서, <남자>(1997,1998), <김진희 1>(2009)이 그것이다. 그리고 작가로 대변되는 조각, <그림 그리는 사람>(1999, 2000)과 수행자로서 ‘부처의 제자’ 시리즈, 그리고 작가가 영원히 탐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서 <사람01>(2016)이 있다. 전시를 위한 이러한 새로운 구성은 삶과 예술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작가의 성찰적 태도를 드러낸다.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은 주제와 소재로 읽혀 온 서용선의 회화를 역사적 사건과 맥락, 시기와 시대를 가로지르고 재구성하여, 작가의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회화적 공간을 구축한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가 서용선 작품 7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논의의 한계를 넘어 서용선 회화세계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관람객은 서용선의 예술적 비전과 그 진화에 새롭게 몰입하고, 한국 미술계에 기여한 작가의 풍부하고 다양한 층위를 감상하게 될 것이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내 이름은 빨강’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Benim Adım Kırmızı』(1998)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소설은 1591년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전통과 서구의 갈등이 회화와 화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시를 구성하는 소제목들 역시, 이 소설에서 도시, 정치, 예술을 설명하는 챕터인, ‘저는 금화올시다’, ‘내 이름은 블랙’, ‘나를 나비라 부른다’에서 따왔다.

■ 작가 소개: 서용선 1951년 서울 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1979) 및 대학원 서양화과(1982)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86-2008) 및 명예교수(2016-현재) 역임. 서용선 화백전시 아트선재, 미술 본질인 추상 정신으로 그린 제3의 구상회화. 그의 붓질은 이제 치밀하지고 꼼꼼하지도 구성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을 넘어서는 여백과 축제와 리듬과 교감만이 있을 뿐이다. 관찰자로서의 화가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될 정도로 사람과 사물 도시와 문명을 꿰뚫어보고 있다. 그의 시선은 그의 심경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자연과 도시도 변하지만 작가의 심경과 관점도 변한다 그의 회화는 인간 내면의 심리 구조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누구보다 잘 표현한다

서용선 전을 맞아 아트선재 김장언 관장의 기획의도는 기존과 것과 차별화된 개념을 찾으려 많이 애쓴 것 같다. 서화백의 그림을 서사적이고 구상적인 해석에서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초대하는 그림을 보면서 접근하고 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경우라면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정답은 아니고 좀 다르게 보려는 노력인 셈이다. 서용선 화백의 그림은 민중미술과 비민중미술 그것마저 뛰어넘는 제3의 회화 아니면 그만이 개성이 살아있는 메타 페인팅이 아닌가 싶다. /고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형상적(the figural)’은 장-프랑스와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그의 책, 『담론, 형상(Discours, figure)』(1971)에서 논의한 용어이다. 그는 언어와 담론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출현시키는 어떤 것으로 ‘형상적인 것’에 주목했다. 그에게 ‘형상(figure)’은 단순히 대상을 기술하고 묘사하며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이면서 한편 형식(form)을 갖지만, 기존의 의미체계를 가로지르며, 그 체계의 질서를 위반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의미를 다시 현시하는 것이다. 리오타르에게 예술의 위치는 형상의 내부와 외부에서 새로운 세계의 의미를 출현시키는 곳에 자리하며, 이 지점에서 예술의 급진성이 드러난다. 회화는 이러한 형상적인 것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대표적 개인전으로 《서용선의 마고이야기, 우리 안의 여신을 찾아서》(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 서울, 2021), 《만첩산중(萬疊山中) 서용선회화》(여주미술관, 여주, 2021), 《통증·징후·증세: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아트센터화이트블럭, 파주, 2019),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아르코미술관, 서울, 2016), 《서용선의 도시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사이》(금호미술관 / 학고재갤러리, 서울, 2015),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고려대학교박물관, 서울, 2013), 《서용선 풍경, 오대산》(동산방화랑 / 리씨갤러리, 서울, 2012), 《시선의 정치》(학고재갤러리, 서울, 2011), 《서용선의 풍경화》(리씨갤러리, 서울, 2010), 《2009 올해의 작가 - 서용선》(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9), 《서용선》(철암역갤러리, 태백, 2006), 《미래의 기억》(일민미술관, 서울, 2004), 《서용선 1993-1999 노산군(단종)일지》(영월문화원, 영월, 1999), 《서용선 1987-1993, 노산군(단종)일기》(신세계갤러리, 서울, 1993), 《서용선》(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1989) 등이 있으며, 그룹전으로,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 1막–2막》 (아트선재센터, 서울, 2022), 《할아텍 철암그리기 20주년 기념전》(태백석탄박물관 기념전시실, 태백 / 목포문화예술회관, 목포, 2021),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부산현대미술관 외, 부산, 2020),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8), 《앉는 법》(인디프레스, 서울, 2016), 《바람을 흔들다: (역)사적 그림을 위하여》(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4), 《2013 평화미술 프로젝트 ‘백령도-525,600시간과의 인터뷰》(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3), 《Korean Painting Now》(국립타이완미술관, 타이중, 타이완, 2012), 《코리안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삼성미술관리움, 서울, 2011), 《신호탄》(기무사 강당 및 기무사내 부지(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2009), 《베를린에서 DMZ까지》(소마미술관, 서울, 2005), 제4회 광주비엔날레 《P_A_U_S_E, 프로젝트 3 집행유예》(5.18자유공원 내 헌병대 모형관 영창, 광주, 2002), 《제1회 철암그리기》(석탄박물관, 태백, 2001), 《한국미술 ‘97 인간 동물 기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7), 《도시와 미술》(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6), 《KOREAANSE SCHILDERKUNST NU》(Rijksmuseum Voor Volkenkunde(국립민족학박물관), 레이든, 네덜란드, 1996), 《’94 서울 문화읽기》(한원미술관, 서울, 1994), 《신형상 6인》(모란미술관, 남양주, 1990), 《현,상-그 변용과 가늠》(녹색갤러리, 서울, 1988), 《Seoul in Seoul》(오사카부립현대미술센터, 오사카, 일본, 1986), 《’82문제작가 작품전-평론가12인위촉선정》(서울미술관, 서울, 1983), 《서울’80 - Work with Photo 창립전》(공간미술관, 서울, 1980) 등이 있다.

[출판] 전시와 연계된 출판물은 오는 8월 중순 발간될 예정이다. 서용선 회화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필자들의 연구논문과 작가 서용선의 발표 및 미발표 원고들로 구성된 이번 출판물은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과 더불어 서용선 회화 세계를 이해하는 폭넓은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필자 : 서용선, 신정훈, 우정아, 김장언

[특별 강연] •일시: 2023. 8. 3(목) 오후 4시–6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강연자: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 [작가와의 대화] •일시: 2023. 8. 25(금) 오후 4시–6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참석자: 서용선, 신정훈, 우정아, 김장언 [도슨트 안내] • 일정 : 2023년 7월 18일~10월 22일 (화–일 오후 3시, 5시) • 소요시간: 40분 • 비용: 무료 사전 예약 및 현장 예약 가능

[관람 안내] •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오후12시–7시 • 휴관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10,000 원(25세–64세) / 7,000원(19세–24세) / 5,000원(9세–18세)/스페이스1, 스페이스2, 더그라운드 통합권

주요 작품 소개

〈숙대 입구 07:00-09:00〉,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비닐 기법, 180×230cm.
[서울 지하철 서울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지하철이 많이 업그레이드되었지만 90년대만 해도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회의 공기 같은 서울 지하철 90년대 모습을 보여준다]

서용선의 도시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동선과 유사하게 연결된다. 작가로서의 생활과 대학 강사로서의 생활을 병행하면서 집, 작업실, 대학 사이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려나간다. 그는 강북에서 강남으로 연결되는 도시를 자신이 이용하는 버스와 지하철을 통해서 관찰한다. 교통수단의 창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거리에서 이동을 위해서 거리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90년대 서울의 확장과 더불어 도시인의 삶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각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청계천에서>(1989), <낙성대 입구, 좌회전>(1992), <총신대 입구>(1997) 등과 더불어 90년대 서울의 경관과 사람들을 표상하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도시-차 안에서〉, 1989, 1991, 캔버스에 유채, 230×180cm

작가의 도시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수단이다. 작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이라는 공간을 이동해 왔다. 미아리-정릉-숙대입구-총신대역-낙성대 등으로 이동하면서 작가는 도시의 변화와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본다는 행위는 작가에게 중요하다. 그것은 화가로서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이동 수단의 창은 도시를 바라보는 주요한 시각 장치가 된다. 한편 작가가 도시에서 주목하는 것은 광고판이다. 상업적인 광고판에서부터 정치 선전물들, 뉴스 전광판에 이르기까지 발화하는 도시로서 광고판은 도시의 황홀경이지만 한편으로 도시의 욕망과 갈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도시의 풍경을 하나의 허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돌파하고자 한다. <갈등>(1992)과 더불어 이 두 작업은 서용선 초기 도시 회화의 중요한 작업들이다.

〈빨간 눈의 자화상〉,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194cm. 골프존뉴딘홀딩스 소장.

[시대와 역사를 관찰하는 것이 직업인 화가 눈은 현실을 너무 직시하다 보니 거의 충혈되어 있다.]

서용선은 화가로서 훈련받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그가 미술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그린 그림도 자화상이다. 캔버스 앞에 당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자화상은 점차 세상을 응시하고, 대면하고, 좌절하며, 받아들이며, 또한 흥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은 격렬하게 그리는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은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며 새롭게 탄생한다. 이 작업은 언뜻 붉은 눈 때문에 괴물화되는 인간의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양한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붉은색이 작가에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색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붉은 눈’은 분노의 눈일 수도 있으며,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일 수도 있고,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눈일 수도 있다.

〈개사람 1〉, 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163×130cm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종종 거울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서 포즈를 취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작가는 종종 자신이 개인지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고 한다. <개사람>은 이러한 경험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고대 그리스의 견유주의(Cynicism)와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의미심장하다. 견유주의자들은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며 새로운 해방적 사유와 실천을 모색했다. 그들에게 개는 세계를 파악하고 깨트리고 돌파하는 하나의 가면이었다. 역사와 정치 그리고 동시대적 삶을 회화로 탐구하는 작가에게 ‘개-사람’의 출현은 근대성이 만들어 낸 파국을 냉소하지 않으면서 돌파하기 위한 중요한 실천적 변신이자 가면인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오른쪽)

〈젊은 죽음들〉, 1997, 캔버스에 유채, 163×130cm.〈낙화〉, 2006,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73×73cm.〈청령포 2〉, 2007, 하드보드에 아크릴릭, 54×77.5cm.〈청령포 1〉, 2007, 하드보드에 아크릴릭, 54×77.5cm.

〈바다에 누워〉,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56.5×223cm.

작가에게 죽음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미아리 공동묘지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라기보다 공존하는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가 정치와 그 파국인 전쟁과 학살을 탐구하면서 죽음은 화가로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낙화>와 <청령포>는 단종과 관련된 작가의 역사화의 출발점이 되는 작업이다. 작가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강원도 영월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이 단종의 폐위와 죽음에 깊게 연관된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종이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고 시신이 유기된 장소가 청령포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는 강물 위로 시신이 떠 있는 듯한 환상을 느끼고,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단종과 계유정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젊은 죽음들>은 1996년 강릉 지역 무장 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반응으로써 그려진 작업이며, <바다에 누워>는 작가가 시애틀의 레돈도에 머물며 작업을 할 때, 침대에 누우면 수평으로 보이는 바다 수평선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시선이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자신의 시선과 신체가 무한한 바다 공간으로 확장되는 의식을 객관화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단절된 신체, 두상이 살아서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가 물 위에 떠다니는 그림은 작가의 2013년 작, <거창 사건>에서도 보여진다. 한국전쟁 당시 거창군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사건을 다룬 이 그림에서는 목이 없는 신체 3구와 강물에 흘러가는 3개의 두상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그릴 때, 유기된 시체의 형상을 종종 그린다. 죽음은 어떤 비장한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한편 죽음은 생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을 일깨워주었던 청령포에서의 기억과 수평선으로 신체가 분리되어 확장되는 레돈도에서의 경험은 죽음을 자각하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다. 작가는 단종의 무덤인 장릉이 점차 관광상품의 하나로 개발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묘한 존재이다. 죽음이 어느 순간엔가 놀이와 축제의 대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맞이하여야 할 운명이고 잊어야 할 고통인 것이다.”

〈정치인〉, 1984, 1986, 캔버스에 유채, 90×100cm

작가의 초기 작업인 이 그림에서 일군의 정치인들이 무기력하게 서 있다. 작가는 정치가 야기하는 폭력과 그 폭력이 야기하는 집단적 광기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그 희생자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작가에게 정치인의 의미는 복합적이다. 한국의 역동적인 현대사를 경험한 작가에게 정치인은 긍정적인 대상만은 아니며 자신들의 욕망에 의해서 한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문제적 대상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80년대의 특정한 정치적 사건을 언급하진 않지만, 당시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폭력의 어떤 징후를 드러낸다. 이 작업은 80년대 새로운 군사정부 아래서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직업인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출현과 더불어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화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이 작업은 의미심장하다. 이후로도 작가는 <뉴스와 사건>(1997−1998) 등의 그림을 통해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치적 상황과 변화에 대한 회화적 반응을 유지하며, 주요 정치인의 얼굴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린다.

〈사가모어 힐〉,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90.3×136.7cm

작가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은 개인에게도, 민족 공동체에도 트라우마이며 외부에 의해서 강제된 한국의 비극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으로 작가는 루스벨트, 태프트, 다로, 이 3명의 인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그리고 작가에게 루스벨트는 문제적 인물이 된다. 작가는 그를 탐구하기 위해서 그의 자택이 있는 사가모어 힐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그의 장례식 사진을 보게 된다. 루스벨트는 사가모어 힐에서 사망하고, 영스 기념 묘지에 묻혔다. 이 사진은 그의 관이 가족과 미국의 고위 인사들에 의해서 묘지로 이동하는 사진을 그린 것이다. 미완성으로 마무리된 듯한 이 그림에 대해서 작가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은 화가로서 그에 대한 나의 평가이다.”라고 말한다.

〈피난민〉, 2012, 닥종이에 아크릴릭, 96×62.5cm.

작가에게 역사화는 중요한 장르이지만, 사진을 보고 그림을 제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작업은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기어오르며 평양에서 탈출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근거로 그린 것이다. 유엔군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탈환하고 평양을 점령하며 북진하고 있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해야 했다. 그들은 평양을 포기하면서,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대동강 철교를 폭파한다. 그러나 평양을 탈출하고자 했던 시민들은 끊어진 다리를 기어올라, 대동강을 건너고자 했다. 1950년 12월 추운 겨울, 사람들은 생사를 건, 생의 곡예를 벌였다. 맥스 데스포(Max Desfor)의 사진에 근거한 이 그림은 한국전쟁의 맥락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삶의 곡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밥먹기〉, 2003,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94×119.5cm

[ 밥짓기는 주로 여성들의 몫이다 남자들이 불가피하게 혼자일 때 밥짓기를 해야 하는데 이것처럼 남자에게 큰 인생공부는 없다. 밥 공부가 특히 남자에게는 많은 지혜를 얻게하는 지름길이 된다.]

이 작업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뉴욕 체류 기간 동안 작업과 일상을 스스로 진행하면서 매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인식했다고 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 제작된 이 그림은 단순히 밥 먹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하나로써 먹기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아버지-엄마의 이야기>(2008)의 아버지 역시 마루 밑에서 밥을 받는 모습을 그린 것임을 떠올려 본다면, 생존과 먹기의 문제는 삶을 유지하고 추동하게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화합〉, 2008, 캔버스에 유채, 220×360cm

[해설 사방팔방 서로 다르지만 하나가 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인가. 멀티 문화주의가 캐나다 국가 구호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다인종 속에 살 수 없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길은 개방과 관용 뿐이다 이런 이미지를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축전인 올림픽을 위한 전시에서 의뢰했던 회화이다. 파랑, 노랑, 검정, 초록, 빨강을 주조색으로 4명의 인물이 서로 팔을 앞으로 모으고 화합의 손을 내민다. 5명이 아니라 4명은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화합의 장면을 바라보는 붉은색의 두 인물이다. 화합은 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것이다. 정치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름 없는 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도를 표했던 작가에게 화합은 아름다운 결말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갈등이 은폐되고 또 다른 긴장을 촉발시킬 수 있는 임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경'자바위〉,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40.8×32cm

초록색 숲속 바위에 붉은색으로 ‘공경할 경(敬)’이 한문으로 쓰여진 그림이다. 작가는 《노산군 일지》 전을 준비하며, 영주시의 순흥 지역으로 답사를 떠난다. 순흥은 한국 성리학의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금성대군의 역모 및 그와 연관된 민간인들의 학살이 자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수양대군(세조)은 단종을 영월 청룡포에 유배 보내고, 단종을 지지했던 자신의 동생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유배 보냈으나,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 복위를 모의하자, 그 둘에게 사약을 내리고 순흥 지역의 관련된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지역을 역모의 고을로 낙인찍고 폐쇄했다. 당시 한국 유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서원 옆의 죽계천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10리나 떨어진 마을에 멈춰, 그 마을에 ‘피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정축지변’이라고 한다. ‘경’자 바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유학의 중요한 개념인 ‘경’자를 새겨 서원의 유생들이 수양을 정진하게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축지변에 죽어간 사람들의 억울한 원혼들이 밤마다 울어, 당시 풍기 군수 주세붕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경’자를 새기고, 그 위에 붉은색을 칠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학문과 삶에 대한 태도로서 ‘경’자와 정치로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을 위로하기 위한 ‘붉은색 경’자는 삶과 정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공경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붉은 글자, ‘경’을 다시 그린다. 그것은 치유와 화해 그리고 공존을 위한 자각이자 실천이다.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2011년> 

 

지하철에 비친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화

서용선의 '시선의 정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에서 4월 10일까지

www.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