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함께, 요강과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굿 -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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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당> 백남준과 제주,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06.15-08.31)
굿, 백남준 어린 시절의 '원경험'
굿은 백남준에게 모든 예술의 원류였다. 어린 시절 추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집안은 일 년에 한 번씩 음력 시월상달에 무당을 데려와 집안 사업 잘 풀어달라는 '재수굿'을 벌였다. 그때마다 애꾸 무당이 단골로 왔다. 음식을 차려 놓고 징과 북 치고 동네 사람들 다 모아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백남준은 어머니처럼 샤머니즘을 종교로 믿는 건 아니나, 여기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백남준 부인 시게코는 "그가 미친 듯 무대 위를 뛰어올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샬럿과 함께 공연하는 순간을 볼 때면 백남준은 영락없이 신기 들린 무당의 모습 그대로였다"라고 의 증언한다.
<2마당> 백남준과 제주,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06.15-08.31)
굿, 서구예술의 '종말선언'
"현대예술은 예술을 하지 않는 게 예술이다"라는 백남준의 말은 '서구식 방식의 예술은 끝났다'라는 뉘앙스다. 세계 예술의 규칙에 대해서도 "우리가 세계사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서구인이 독점한) 룰을 바꿔라"라고" 말했다. 백남준의 이런 비전은 '굿의 세계화' 선언으로 들린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첫 '전자 텔레비전-음악의 전시'에서 잘린 소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걸었다. 그것 굿이었다. 부제가 '추방(EXPEL), 뭘 추방했나? 터줏대감 같은 서양미술을 추방한 굿이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설치작품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 그런 정신이 담겨 있다.
또 30년 후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도 최고 미모의 이탈리아 여성을 북방 몽골족 일파인 '타타르' 로봇에게 재물을 바쳤다. 현장에서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바로 백남준의 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아트 마스터 대표다. 이번에 이 영상도 소개된다. 이 또한 굿이다. 서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판에서 한국 굿을 과시했다. 백남준은 이렇듯 모든 전시를 굿(퍼포먼스)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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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세상을 변혁하는 '혁명'
사람마다 굿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백남준에게 굿이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통(communication)이었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거지. 굿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세상의 시작이지!”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백남준은 한국의 샤머니즘에서 생자와 망자의 소통하는 우주와 화해하는 제의, 천지인이 하나라는 우주 만물의 원리, 거기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과 삶의 축제를 예술과 접목하는 것이었다. 물질에서 정신을, 죽음에서 생명을 끌어내는 동력이 있다고 봤다.
백남준의 "총체피아노" 1963. 서구미술의 종언을 상징하는 작품 같다
다른 면에서 굿이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모여 마을을 괴롭히는 공동악을 물리치고, 노동의 고단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삶을 재충전하여 정신적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창출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대동굿은 무엇보다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같이 노는 것이고, 끝에 음식은 다 나누어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자리다. 그러나 이런 마을 대동굿이 한국인을 단결시키다 보니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마치 미신인 것처럼 많이 왜곡되고 축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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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현대어로 바꾸면 '미디어'
'얼(정신)'이란 뜻이 담긴 굿은 결코 낡은 언어가 아니다. 현대어로 바꾸면 '미디어(media)'다. 지금이 인공지능시대라지만 고인돌이 생긴 선사시대나 고대시대보다 더 문명적이라 말하기 힘들다. 백남준은 "무릇 늑대의 세계에서 더한 진보한 것은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 미디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미디어란 쉽게 설명하면 부부 사이를 연결하는 '자식' 같은 역할이다. 백남준은 '미디어'란 중세기독교에서 왔다고 여겼다. 신과 인간을 매개시키는 '영매(靈媒, meditator)로 봤다. 쉽게 말해서 시공간과 우주와 인간을 뛰어넘는 중개자인 셈이다.
백남준에게 굿은 몽골, 미디어, 노마디즘, 실크로드, 전자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 [...] 몽골 사람들하고 우리하고 3천 년 전에 헤어졌지만"라고 말했다. 그는 의심 없이 몽골 선조를 믿었고 그들의 노마디즘 문화에 심취했다.
유라시아가 하나 되는 '우랄 알타이의 꿈'이라고 할까? 백남준은 1974년 '록펠러재단'의 예술기금을 받고 실크로드를 생각하면서 '인터넷'을 창안했다. 지구촌에 사는 인류의 평화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게 바로 굿의 정신이다. '주술과 기술과 예술'은 원래 한 뿌리다. 이를 더 '싸고·빠르고·손쉽게' 구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전 세계의 위성방송을 연결하는 테크놀로지 개념이 발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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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서양을 해체시키는 '노이즈'
백남준은 굿 정신에 디지털 시대에 순차 없이 무질서하게 접근하는 속성을 가진 컴퓨터 개념인 '랜덤액세스'를 접목했다. 이 뜻은 원래 기억 장치에 저장된 자료를 순차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동일한 시간 내에 임의의 장소를 찾아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전복자'와 유사한 개념이다.
백남준은 예술가를 해커처럼 예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서구 근대주의 무너뜨리는 교란자로 봤다. 어찌 보면 굿쟁이나 마찬가지다.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전환 국면의 요소가 다분하다.
"원래 예술이란 사기다. 속이고 속는 거다. 독재자가 대중을 속이니까 예술가는 사기꾼 독재자를 속이는 고등 사기꾼"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허위정보, 거짓(fake)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진실을 보기란 힘들다. "얼마만큼 생(生)이며 얼마만큼 연출이며 얼마만큼이 ‘사기’냐? 그건 아무도 모른다. 진리는 가면의 진리이다" 백남준의 초탈한 넋두리다.
진실은 연제나 역설 속에 있다. 서양인 중에서 '존 케이지'가 그랬다. 그래서 그는 화음보다 잡음을 음악으로 봤다. 백남준은 그런 점에서 영감을 받아 자유를 맛봤다. 그런 면에서. 서양의 '노이즈'와 샤머니즘의 소란한 난장은 닮았다. 기존 질서와 규칙을 넘어 시공간이 뒤죽박죽 된 것 같으나 어느 순간에 하나가 된다.
백남준은 서양의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사람을 좋아했다. 기존 음계를 전복시킨 작곡가인 '쇤베르크', 기존사회를 변혁하려는 '맑스', 계몽적 근대주의를 비판한 '푸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의 사고를 주장한 '레비-스트로스'를 좋아했다.
그가 스승인 존 케이지 넥타이 자르는 건 우상파괴 정신과 불교의 '단(斷)'의 철학을 연성시킨다. 또 백남준은 독일에서 관객을 무대에 올려놓고 샴푸를 붓고 머리를 감긴 건 일종의 '씻김굿'이다. 백남준은 평생 굿을 했다. 고급예술로 변질된 예술의 계급화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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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백남준 이를 독창적으로 '재해석'
백남준은 전통굿을 독창적으로 창조적으로 진화시키며 재해석했다. 그중 일부의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굿의 '세계화'다. 백남준은 1960년대 초에 독일에서 '괴짜들'에서 기절초풍할 몸짓으로 독일 관중의 배꼽을 뺐다. 이건 서양인이 보면 음악도 미술도 춤도 연극도 퍼포먼스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괴상망측한 스펙터클이었다. 이런 퍼포먼스로 서양 관객을 사로잡았다. 굿을 세계화한 단면이다.
70년대에는 세계 55개국에서 위성방송 '글로벌 그로브(전 지구적 놀이굿)'를 통해 한국의 부채춤과 굿을 소개했다. 80년대는 전 세계 방송을 연결하는 위성 오페라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의 춤과 함께 한국의 춤과 굿도 소개했다.
두 번째, 굿의 '인간화'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백남준이 1990년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생일날 삿갓을 쓰고 1986년에 작고한 독일 친구 '요셉 보이스'의 편린을 추모하는 진혼굿, 그 영혼을 잡은 '최재영' 선생의 사진도 이번에 선보인다. 생과 사, 동과 서를 넘어 우정을 다지고 영적으로 만나는 '접신굿'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인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세 번째, 굿의 '현대화'이다. 백남준의 굿은 그냥 굿이 아니고 선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포스트모던, 첨단과학의 정신을 다 합쳐진 '신문명굿'이다. 한국 굿판에 등장하는 갓이 서양의 중절모자와 나란히 놓이고, 악귀를 몰아내고 신을 부르는 신성한 도구인 '방울'이나 '칼·요강·놋그릇'을 서양의 '피아노'가 대신하고, 우리의 '청동거울'이 'TV(모니터)'와 절묘하게 만난다.
네 번째, 굿의 '민주화'이다. 백남준은 굿과 전시에 관객 적극 참여시켰다. 첫 전시부터 관객을 전시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백남준은 그렇게 대중에게 성큼 다가갔다. 문턱 높았던 기존의 권위적인 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대신 관객을 문화 소비자 아니라 주체자로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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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5가지 통(通)의 '결정체'
이번 전시 <통>의 기획자 '송정희' 누보갤러리 관장이 뽑은 5가지 <신통('神통·身통·信통·伸통·新통')>이다. 그렇다. 하긴 백남준만 아니라 율곡 선생도 "국가의 흥망성쇠는 소통의 열림과 닫힘에 달렸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초대교회의 사도 문서에 보면 교회에서도 '신통(神通)' 사건이 일어났다. 그걸 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이라고 한다. 갑자기 서로 모르는 언어가 신도 간에 이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5감 조응'은 백남준의 '5차원 실험예술'과 통한다. 모든 분야에서 소통이 일어나야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신통이 일어나면 '영육·혼백·희비·생사·성속·귀천'같은 경계가 무너진다. 한국의 소통 계보학에는 '화쟁'과 '회통'을 발명한 원효가 최고 수준이다. 화쟁은 극한 다툼과 대립을 푸는 해법이고, 회통은 쌍방적으로(會) 통하는(通) 것이다. 원효는 당시 불교가 귀족화되어 대중과 멀어지자 그 벽을 허물고 거리에 나가 '무애가(無碍歌)'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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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비빔밥 같은 '총체예술'
백남준은 엉뚱하게 *"칸트의 음악을 케이지의 철학으로 접합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의 비디오 굿에는 선사시대부터 첨단 문명의 장르 '춤, 록, 무구, 탭댄스, 오페라, 콘서트, 미사곡, 인디언 나바호족 북소리, 오키나와 전통음악, 한국 무용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총체예술(Art for all senses)'이다.
또한,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 등 오감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완판이 된다. 생방송처럼 임의적이고 가변적이고 비위계적이다. 백남준 이런 총체 예술인 비디오아트를 누가 독점할 수 없는 모두의 공공재로 봤다. 그러므로 거기에 편향된 민족주의 경향은 들어갈 틈이 없다.
굿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카오스와 코스모스', '원시적 야생과 문명적 이기'의 경계가 없다. 동서문화의 '비빔밥'이다. 즉 '인터미디어'이다. 굿은 그릇이 커 이제는 AI, G챗트, NFT, 메타버스 등 다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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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오감을 맛보는 '황홀경'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속성을 "카타르시스, 순간의 환희, 모든 감각의 만족, 전인격 총체적 개입, 극도의 전자적 충동, 두뇌의 전기 자기 진동, 직접접촉예술, 전자와 생리학의 시뮬레이션,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초고속도로), 정신의 사이버네틱스, 인공신진대사, 다매체-다방향 상응(Correspondence)"이라 밝혔다. 그가 초감각적 쾌락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아래를 보면 그는 또한 축제주의자다. "예술은 페스티벌이지요, 쉽게 말하면 잔치예요.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쟁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어요. 나의 예술철학은 관념을 무너뜨리자는 거지요. [...] 획일성을 막기 위해 자유스러운 작업을 하죠.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1984년)"
굿은 황홀한 엑스터시에 이르게 하는 '접신술'로, '돈의 지배'보다는 '축제의 회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백남준은 마음보다 몸, 정신보다는 육체, 관념보다는 성애, 돈보다는 축제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나 현대철학자 '니체'의 후손이다.
무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아지경', 신명이 불러오는 '황홀경'과 접하다 보면 우리가 '만신'이 될 수도 있다. 샤머니즘은 삶을 긍정하는 종교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유교, 도교는 몇 번씩 망했으나 무속은 망한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생명을 소중히 모시는 여성성 때문이다.
<10마당>백남준과 제주,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06.15-08.31)
굿, 차세대 과제는 '전자화'
우리에게는 "강자에게 당한 약자의 ‘원(寃)을 푼다’는 '해원상생'이 있다. 20세기 '서양 현상학에서는 이를 '약자의 힘(La force des faibles)'이라 부른다. 이런 지혜는 무당의 원조인 '스키타이 단군'(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에게 벌써 있었다. 그의 건국이야기에는 두루 넓게 사랑하라는 '홍익인간'과 '경천애인'(몽골어로 '탱글리') 사상이 있다. 이게 바로 인류애의 반영하는 굿의 정신이 아닌가.
이제는 굿을 시대정신에 맞게 '전자화'하는 과제가 남았다. 백남준은 이를 '전자유토피아(Teletopia)'라고 했다. 그의 이런 아이디어로 1993년 드디어 '월드와이드웹(WWW)'이 상용화되었다. 지금도 이런 첨단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결론으로 이제는 백남준 전승에 따라 제2, 제3의 '상생적 인터넷 미디어 굿'도 새롭게 탄생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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