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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사상가

[김지하] 살림과 생명 사상 펼친 시인, '극락왕생하소서'

I wish Kim Chi-Ha to rebirth in Paradise(고 김지하 시인, 극락왕생하소서!)

<1981년 김지하 세계시인상 받을 때 사진> Awards and honors: 1975 Lotus Prize for Literature, 1975 Nobel Peace Prize nominations in Peace and Literature(김지하 약관 34살에 1975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다), 1981 'Grand Poet Prize' at the International Poets' Conference. Bruno Chriski Human Rights Award, Chriski Human Rights Award Committee of Austria, 1981(1981년 국제시인협회가 주는 위대한 시인상 수상)

1981년 김지하 세계시인상 받을 때 사진

His pen-name is chiha (Underground) His works also cover the full gamut of religious thought and philosophy, from the Donghak, to the Catholic, Jeungsan, Avatamska(화엄경), Zen, and Maitraya(미래불 미륵불 사상) tradition. Awards and honors: 1975 Lotus Prize for Literature, 1975 Nobel Peace Prize nominations in Peace and Literature(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다), 1981 'Grand Poet Prize' at the International Poets' Conference. Bruno Chriski Human Rights Award, Chriski Human Rights Award Committee of Austria, 1981; Isan Literature Prize, 1993; honorary doctorate in literature, Sogang University, 1993.

김지하 '오적', 프랑스 세계적 철학자 사르트르의 추천으로 김지하 1976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가다. 사르트르는 그가 운영하는 철학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지에 그의 시 '오적' 전문을 실었다. 그래서 김지하는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최고 저항시인으로 유명해졌다.

"Cinq voleurs" de Chi-ha Kim(김지하) a été nominé pour le prix Nobel de littérature en 1976 sur la recommandation du célèbre philosophe français Jean-Paul Sartre(사르트르). Sartre a publié le texte intégral de son poème 'Cinq voleurs' dans 'Les Temps Modernes', un magazine de philosophie qu'il dirige. Ainsi, à partir de ce moment, Kim Chi-ha est devenu célèbre comme le plus grand poète de la résistance au monde.

1975년인가 내가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된 프랑스 사람(Claude Brun 동양 의학 전공)이 김지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시가 <르몽드> 1면에 크게 실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긴 말이 있다. "정치적 수준이 낮은 사회(나라)에서는 권위적 위계질서를 높이 평가한다(눈먼 권위주의에 맹종한다)" Une société dégradée respecte la hiérarchie autoritaire/A degraded society respects the authoritarian hierarchy 그에게서 68혁명 세대의 냄새가 났다.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김지하, 끝내 변절 오명은 벗지 못해

1년여 투병 끝에 원주 자택서 사망…향년 81반독재 투쟁하다 옥살이…훗날 ‘변절’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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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김지하, 끝내 변절 오명은 벗지 못해
1년여 투병 끝에 원주 자택서 사망향년 81반독재 투쟁하다 옥살이훗날 변절논란도

일찍이 고교 시절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공식 등단 전인 1963<목포문학>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던 김지하는 등단 이듬해인 1970년 말에 선연한 핏빛 서정으로 아우성치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한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나고 그와 관련해 수배되었던 그는 그해 4월에 체포되어 비상보통군법회의로부터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사형 구형 당시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김지하를 구명하기 위한 활동이 펼쳐지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노엄 촘스키 같은 지식인들이 김지하의 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서명하는 등 국제적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1975215, 형집행정지 처분으로 약 10개월 만에 출옥한다.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세월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아니면 둘 다 미쳤든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김지하의 출옥 소감이었다.출옥한 지 불과 열흘 뒤인 225~273회에 걸쳐 그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고행1974’에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하자 당국은 다시 그를 체포했고 기왕의 무기징역에 더해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다. 그로부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인 1980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그는 70년대의 남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이때 생명사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가 옥 안에 있는 동안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는 제3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스상 특별상을 김지하에게 주기로 결정했다.1982<황토>에 이은 두 번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대설 남> 1권이 출간되었지만 곧 판매금지되었다. <대설 남>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생명사상은 이후 이야기 모음 <>과 산문집 <남녘땅 뱃노래> 등으로 이어졌다. 1986년에는 생명사상과 민족 서정을 결합한 시집 <애린> 첫째권과 둘째권을 잇따라 내놓았고, 1988년에는 수운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을 펴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시집과 산문집을 부지런히 펴냈는데, 시집 <중심의 괴로움>(1994)<화개>(2002), 문학적 회고록 <흰 그늘의 길>(3, 2003) 등이 대표적이다.

김지하 '금관의 예수' 양희은 노래 김민기 곡 <종교 풍자>
예수가 가시면류관이 아니라 금관을 쓰고 제도 교회의 감옥에 갇히다

집에 김지하 초기 시집 '오적(독일어판 1981)' 하나 있다.

김지하의 키워드: 시김새(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이제 김지하 같은 천재는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시대에는 나올 수 없다. 시김새는 판소리 용어인데 시김은 '삭임', 삭인다는 뜻이다. 울분이, 슬픔이, 괴로움이 끓어오를 때 삭인다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김지하는 K팝 등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본다

시김새는 예술적 발효이다
. 삶의 고통(그늘)을 삭이고, 승화시켜 표출하는 과정이다. '흰 그늘' 미학과 분리되지 않는다. 또 발효하는 내용이 삶의 체험이라는 면에서 '삶과 예술'의 일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김새는 순환 과정이다. 다만 자신의 상처에 되돌아가 성찰할 때마다 더욱 큰 의미를 얻는 '창조적 확충'의 순환 과정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김지하 시집(독일어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edition suhrkamp)에서 책을 내다

김지하 시인(1941년생)70년대 민주 운동가들에게 영웅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는 1990년 이후는 거의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지병이 많았고 감옥에서 10여년 살면서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적 발작 등 고통을 받았다 그는 판소리를 현대화해 한국문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국 문인 중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라가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그의 석방 운동에 힘을 썼다.

Poet Kim Ji-ha(born in 1941) was a hero to the democracy activists in the 1970s, but since 1990 he has been living a nearly reclusive life. He suffered from many chronic diseases and suffered mental seizures while living in prison for 10 years. He modernized pansori and opened a new chapter in Korean literature. He is the first Korean poet to be nominated for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Jean-Paul Sartre of France, where he would have been imprisoned, was instrumental in his liberation campaign.

김지하, 한때 촛불과 한류의 전도사 역할도 했죠. 박정희의 최고의 적이었던 김지하, 그러나 박근혜와는 사이가 좋았다. 1985년 명동 가톨릭센터에서 김지하 강연 <살림굿>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는 원고 없이 말하는데 그걸 그대도 글로 옮기면 책이 되기에 충분했다. 여자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람 그래서 여자들이 하는 모든 일은 죽임의 반대인 살림이라고... 여자와 며느리는 그래서 신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Q] 선생님은 누구보다 고통을 많은 받으셨는데 그림이 고통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마술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예술은 다 치유 효과가 있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우선 기록성이고 그에 못지 않게 치유성 즉 의통(의술)의 제례가 행해지는 거야. 예술은 신성과 사실성이 같이 동반하는 거고. 알타미라 벽화 기록성이나 솟대의 신성 등 말이야."

[김지하와 인터뷰] "동학은 내 실천의 눈동자이고, 불교는 내 인식의 망막 정도는 되지
"나의 달마도는 그리는 게 아니라 갈기는 것"

[1] 최근 시집과 저서를 출간하시며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하시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
내가 너무 <동아시아> 일로 너무 무리해서 건강이 안 좋아. 좌골 신경통이 도져 다시 뜸을 뜨고 있어."

[2] 동학이나 전통 민중 사상을 현대화시키는데 놀라운 상상력을 보이셨는데.
"
동학은 내 실천의 눈동자이고, 불교는 내 인식의 망막 정도는 되지."

[3] 달마도가 선생님에게 하나의 참살이(웰빙)이 될 수 있을까요?
"
성격이 좀 다른 것 같아. 달마도는 일종의 자기 수련이고 그 과정이니까."

[4] 판소리 형식이 단순하지만 아주 화끈한 노래인데, 달마도도 굉장히 간결하면서 엄청난 힘이 넘쳐 보입니다.
"
당연히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내 그림은 스님들의 달마와는 달라.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은 화공이야. 직업 화가지. 내 달마도는 그의 달마도를 부수는 시도야. 일종의 해체지. 스님 앞에서 이런 말하거니 뭐하지만 감옥에서 100일 참선을 해 봤는데 갖가지 희로애락이 물결치지. 스님들은 참선을 통해 희로애락을 극대화하지만. 여기서 내 달마도는 중생의 수준에서 바라보는 거지. 도의 세계도 아니고. 장바닥의 희로애락은 아니지만 삶의 일상에 부대끼면서 사는 달마지."

[5] 기존의 달마도는 '문기'가 넘친다면 선생님의 달마도는 '신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
달마는 선승들의 정신 세계, 수련 방식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내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갈기는 것에 가깝지. 붓을 통해 기운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돌아오는 순환 말이야. 이렇게 땅(왼손은 아래로)과 하늘(오른손은 허공에 두고)과 인간(사람의 붓질)과 만나는 거지. 천지인 사상이야."

[6] 묵화나 문인화에는 왜 난이나 매화가 많죠? 치자나 동백꽃도 있는데요.
"
난초나 매화는 군자라고 하잖아. 난초는 성정이 고고하고 우아하고, 매화는 아주 맑고 깨끗하고 청초하단 말이야. 일종의 예언자지. 흰 눈 속에서 2월에 피잖아. 군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거든."

[7] 선생님 시 세계도 그렇지만 달마 그림도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는데, 선생님의 아우라라고 할까요?
"
너무 과찬이야. '아우라'는 독일어고 영어로는 '오라'라고 하지. 신성이나 초월성을 말해. 여기서 달마는 자기 수련이야. 자아상이라고 할 수 있지. 번민하는 중생들의 내면 풍경. 뭐랄까 익살, 천진, 우울, 허전함, 쓸쓸함 등등."

[8] '풍자냐 자살이냐' 평론에서 보면 일그러짐(Fratze 찌푸린 얼굴, 추한 형상)과 그로테스크한 것에서 한국적 미학을 적용하시는 것 같은데 이번 달마도에도 그런가요?
"
당연히 그렇지. 원래 우리 민족의 그림 전통이 그런 면이 있어. 비꼬면서 돌리고 흔들어 주고 코믹하게 엮어 나가지. 너무 반듯하거나 각지면 싫어하니까."

[9] 선생님은 누구보다 고통을 많은 받으셨는데 그림이 고통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마술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예술은 다 치유 효과가 있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우선 기록성이고 그에 못지 않게 치유성 즉 의통(의술)의 제례가 행해지는 거야. 예술은 신성과 사실성이 같이 동반하는 거고. 알타미라 벽화 기록성이나 솟대의 신성 등 말이야."

[10] 장일순 선생도 시화에는 대가인데 혹시 그분의 영향을 받으셨는지
"물론이지. 난 그분한테 배웠어. 선생님의 권유로 25년 전 감옥에 막 나와서 시작했지. 마음이 시끌시끌해서 난초를 하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심신의 안정을 찾아보려고 시도했었지."

 

[11] 혹시 추사 김정희 선생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요?
"
추사는 내가 깊이 존경하고 많이 심취하는 인물이야. 굉장히 높은 세계에 사신 최고의 지성인이지만, 민족적 민중적 관점을 놓치지 않고 살았어. 중국 통인데 고조선 화살촉을 찾아다니시고, 골짜기에서 버려진 진흥왕 순수비 조각을 발굴하는 등 말이야. 과천에서 살 때는 동네 사람들과 두부를 구워 먹으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지. 그만한 천재 예술가는 없어. 그런 대가가 대중적이고 민중적이기가 힘든데 말이야. 동아시아 모든 난초 그림을 다 갖다 놓아도 추사 하나 못 따라가지. 비교가 안 돼. 나머지는 다 그렇고 그래. 중국 정소나 대원군, 민영익도 흉내 못하지."

[12] 그림 제목에 '리비도'가 등장하는데 혹시 정신분석학 세계에 관심이 계신지요?
"
물론 많지. 난 정신분석 상담을 오래 받았어. 융의 분석심리학도 많이 공부했고."

[13] 진정한 사회는 섹슈얼리티가 있는 사회라고도 하는데?
"
꼭 그런 것이 아닌데, 과학적 이성과 종교적 영성이라는 것이 감정적이고 색정적 세계 안에 깃들어 있어야 온전해지는 거야. 진정한 사회변혁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접근해서 안 되고, 문화 예술적인 접근이 필요해. 감성이나 미학적 상상력이나 몸과 욕망의 접근하는 것 말이야." / 김형순 기자

김지하가 그린, 달마 같지 않은 달마도 [인사동 주말 산책(16)] '지는 꽃 피는 마음' 김지하 달마전, 13일까지

 

김지하가 그린, 달마 같지 않은 달마도

[인사동 주말 산책(16)] '지는 꽃 피는 마음' 김지하 달마전,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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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1973년김수환 추기경 주례 결혼(위 사진) 당시 '김지하'는 도피 생활 중

사진 매일경제

[사진은 말한다] 시인 김지하 석방되던 날, 1975215. 박경리 여사가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또다시 5년을 더 옥살이 하다.

김지하 19807년간 감옥생활에서 풀려나다(아래사진)

<김지하는 좌파, 우파, 운동권, 비운동권 틀 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인류와 문명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학적 세계관 혹은 화엄 불교의 통합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는 시대의 예언가이자 사상가였다> 아래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시인론>이다

"나는 시인입니다. 시인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가난한 이웃들의 저주받은 생의 한복판에 서서 그들과 똑같이 고통받고 신음하며 또 그것을 표현하고, 그 고통과 신음의 원인들을 찾아 방황하고, 그 고통을 없애며, 미래의 축복받은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고, 그 품의 열매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선사함으로써 가난한 이웃들을 희망과 결합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된 시인을 민중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에 시인이 혁명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서이며, 때문에 그 혁명은 이 세상에서 전혀 새로운 창조적인 혁명에 대한 몽상의 단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꿈꾸는 혁명적 사상의 몽상에 대해 판단하려면, 때묻은 이데올로기의 논리나 형식적인 법정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의 자율적인 운동법칙과 직결시켜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