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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보물급 아모레퍼시픽 병풍 다 펼치니 10리가 더 되네

[조선, 병풍의 나라(Beyond Folding Screens)]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에서2018. 10. 3.(수)-12. 23.(일) 보물급 아모레퍼시픽 병풍 다 펼치면 10리가 더 되네" -스크린 형식의 TV 없는 시대 최고의 시각 매체로서 존재감을 발휘하다 고품격 19세기 후반 조선시대 병품 속에 담긴 당시 일상과 풍속 그리고 조선 후기 역사를 찾아가면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이다


<기자 간담회> 미술관 홈페이지: http://apma.amorepacific.com


[조선, 병풍의 나라(Beyond Folding Screens)] 2018.10.03(수)~12.23(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용산구 한강대로 100)에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전시 해설 : 'APMA 가이드' 무료다운 / 월요일 휴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 출품 작품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주요 소장품 포함 국내 10여개 기관 및 개인소장 병풍 76점과 액자 2점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전시 해설 : ‘APMA 가이드’ 무료 다운 주차 : 평일 (30분 기본무료+90분 할인권 증정 총 2시간) 문의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02-6040-2345 / museum@amorepacific.com /


조선, 병풍의 나라 전시포스터(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번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주요 소장품과 더불어 국내 10여 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약 80점의 다채롭고 풍성한 병풍을 선보인다. 궁중 그리고 민간에서 사용한 병풍까지, 다양한 병풍에 쓰인 재료와 기법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병풍이라는 형식이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병풍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의 작품을 비롯하여, 전통을 잇는 근대의 몇몇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기 위하여 기획되었다.”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승창 관장은 전했다.


<일월오봉도8폭병풍> 19세기~20세기초, 비단에 채색, 국립고궁박물관/<The Sun, Moon and Five Peaks>

일월오봉도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붉은 해, 하얀 달 및 물결과 소나무 등의 도상으로 구성된 그림이다. 의궤 등 조선시대 문헌기록에는 ‘오봉도(五峯圖)’, 또는 ‘오봉병(五峯屛)’이라는 명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국왕의 권위를 가장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그림으로, 실내외를 막론하고 임금이 자리하는 곳은 일월오봉도가 배경이 되었으며, 오로지 국왕만이 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월오봉도의 도상은 지배자의 복식을 장식하는 문양으로 중국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일, 월, 성신(星辰), 오악(五嶽) 등을 포함한 십이장(十二章) 또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 ‘천보(天保)’에 등장하는 군주의 덕성을 상징하고 보호하는 각종 자연물들과 관련이 있다. 일월오봉도는 궁궐의 가장 중요한 의례 공간인 정전(正殿)이나 임금의 평상시 집무 공간인 편전(便殿) 뿐 아니라 궁궐 밖에서 의례를 행하기 위해 임시로 조성되는 공간에도 국왕이 자리하는 곳에 반드시 설치되었다.

또한 돌아가신 왕의 시신과 신주(神主) 및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역시 일월오봉도 앞에 모셨으므로 일월오봉도는 국왕의 권위와 항상 함께하는 의장물로 기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궁궐에 전해져 온 여러 점의 일월오봉도가 소장되어 있는데, 도상과 화법은 동일하나 설치되는 장소에 따라 4폭・6폭・8폭 등의 접이식 병풍, 액자 형식의 그림을 별도의 받침대에 끼워 세우는 병풍(삽병 揷屛), 네 짝으로 구성된 창호(窓戶) 등 형태가 다양하다.

<TV극 같은 판타지 병풍 속에 담아 즐기다> 혹은 <TV 드라마가 없는 시대 최상의 파노라마>

<곽분양행락도 8폭병풍(부분화)> 19세기 비단에 채색 206*447cm


<기성도 8폭병풍> 19세기 156*416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품

<춘향전>을 TV 드라마처럼 병풍 형식의 스크린 화면에 풀다. 마치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해상군선도10폭병풍(Daoist Immortals Crossing the Sea)>19세기 말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해상군선도는 송원대 이후에 중국에서 확립된 화목(畵目)으로, 서왕모(西王母)의 요지연(瑤池宴)에 참석하러 가는 여덟 신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신선 그림에 출중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후의 신선 그림은 대체로 김홍도의 신선 그림을 모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병풍은 고종황제가 독일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이 병풍은 고종황제가 독일 마이어상사(世昌洋行)의 조선 지사장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 1855~1909)에게 하사한 것인데, 필치, 김홍도의 신선 그림 도상 활용도, 화풍을 보면 도화서에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이 회사인 '세창양행(Meyer&Co)' 공동창업주였다.

['해상군선도10폭병풍'에 대한 해설] 퉁소를 연주하고 있는 어린 소년은 한유(韓愈, 768~824)의 조카인 한상자이며, 관복을 입고 딱따기를 든 조국구와 가장 연로한 신선인 장과로 역시 화면의 왼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병풍은 고종황제가 독일 마이어상사(世昌洋行)의 조선 지사장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 1855~1909)에게 하사한 것인데, 필치, 김홍도의 신선 그림 도상 활용도, 화풍을 보면 도화서에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종은 독일로 돌아갈 때에 안전하게 귀환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병풍에 담아 독일로 귀국하는 볼터에게 선물하였다. 그 후 볼터는 그의 딸 마리온 볼터에게 이 병풍을 물려주었고 그녀는 다시 그의 딸 예거후버에게 이 병풍을 남겼다.

이 병풍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던 어머니 유언에 따라 예거후버 여사는 3대에 걸쳐 지켜온 한국의 문화재를 세상밖으로 내놓게 되었다. 2013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이 병풍은 1년 6개월 동안의 수리복원을 통하여 제작되었을 당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다. -미술관자료


<해상군선도10폭병(부분화)> 신선도에는 삼선도(三仙圖)와 삼성도(三星圖)도 보인다

화면은 오른쪽부터 수노인(壽老人), 황초평(黃初平), 삼선도(三仙圖), 자염도사(紫髥道士), 삼성도(三星圖),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曺國舅), 장과로(張果老)를 묘사했고 각각의 기물이나 복장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남극성을 의인화한 수노인은 주로 도복을 입고 사슴과 함께 등장하며 양치기 출신인 황초평은 신선이 된 후에도 양과 함께 나타난다.

동화자(東華子),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은 전진교(全眞敎)의 도통을 잇는 사승관계로 삼선도로 묶여 그려지는 주제이다. 대체로 종리권은 쌍상투를 틀고 옷을 풀어헤쳐 배를 내민채 부채를 들고 있으며 여동빈은 유건(儒巾)을 쓰고 도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해상군선도8폭병풍> 역동적으로 물결치는 구름인지 바람인지 강물인지 알 수 없는 곳을 날아다니다

<십장생도10폭병풍> 19세기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자연을 떠난 인간은 불행하다고 본 것인가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10가지 뽑아 한국인의 유토피아의 그려내는데 소재가 된다

<전이한철필어해도10폭병풍(Fish and Crab)>,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0호  그림에는 도미, 송어, 황복, 쏘가리, 병어, 대구, 잉어, 조기, 전복, 새우, 게, 메기, 숭어, 피라미, 총 14종의 어종이 등장한다. 한국인은 물고기를 모든 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어해도(魚蟹圖)는 한자 그대로는 ‘물고기와 게’만을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물고기 그림을 지칭한다. 약동하는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물고기는 다양한 기복적인 의미가 더해져 예부터 많이 그려졌다. 이 그림은 작가의 인장, 화기는 없지만 제발의 내용과 화풍을 통해 조선 말기의 화원화가 희원 이한철(1808~1893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서체의 제발에는 월주 이시랑이 윤부마의 구저를 사들여 그곳에 살다가 명화를 얻었는데 그것은 이한철이 그린 어해도 한 폭이며, 이는 지금(乙酉年, 1909)으로부터 3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이 제발을 쓴 사람은 성재 김태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이를 통해 1879년경 이한철이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에는 도미, 송어, 황복, 쏘가리, 병어, 대구, 잉어, 조기, 전복, 새우, 게, 메기, 숭어, 피라미, 총 14종의 어종이 등장한다.

물고기들은 대체로 윤곽선 위주의 구륵법을 사용하였고 비늘 하나하나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수묵의 농담 변화를 극대화한 암석을 화면 상하좌우에 모두 배치하여 가운데로 시선을 모은다. 이전의 어해도들이 소품으로 제작되었던 것과 달리 조선 말기 직업화가들에 의해 제작된 어해도는 기복호사의 장식성이 증가하는 19세기 화단의 경향을 반영하여 연폭의 대형 병풍으로 제작되었고, 이는 민화로도 저변화되었다. -미술관자료

<서수도8폭병풍> 19세기 204*540 호림미술관 소장품

<책가도8폭병풍>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채색 전체 133*350cm 화면 각 97.5*37cm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소장. 사람들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병풍 속에 그려 넣고 그것을 날마다 보며 즐기다

<금강산도10폭병풍(Geumgang Mountain)'> 19세기,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금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예로부터 불교와 도교의 성지로 여겨졌으며,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응집된 지상의 낙토(樂土)로 숭배되었다. 이 때문에 금강산은 옛부터 회화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금강산도는 이미 고려 때부터 그려졌다는 기록이 존재하며,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에 이르러서는 당시 유행하던 진경산수화, 여행문화와 맞물려 많은 수가 제작되었다.

19세기 이후 일반 회화에서는 쇠퇴하게 되는데, 이를 민화에서 계승하여 많은 금강산도가 그려졌다. 이는 금강산이 많은 사랑을 받았기도 했지만,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인식되면서 산악숭배와 신선신앙, 민간설화 등의 민간 신앙들과 결합하여 길상성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금강산도10폭병풍(Geumgang Mountain)'>(부분화)

자세히 보면 자연을 의인화해서 그리다 산수화에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동양에서는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자연을 통해서 사람을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자연을 사람모양으로 그리는 유머를 보인다

이 작품은 현재 남아 있는 민화 금강산도와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큰 화면이면서도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일반적인 민화들과 다르게 먹으로만 표현하였고 주요 지명만 붉은 색으로 썼는데, 이는 이 작품이 장식성이나 상징성을 보여주기보다는 금강산의 전경과 해설에 집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마면봉(馬面峰), 우두봉(牛頭峰)을 각각 말과 소의 형상으로 그려놓은 것이나 봉우리들을 사람처럼 표현한 것 등은 민화 금강산도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 주목된다. 금강산도가 일반회화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작품의 크기나 필력(筆力)이 상당하여 금강산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홍백매도8폭병풍(Plum Blossoms)>, 유숙(劉淑) 1868년,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물 제1199호

혜산(蕙山) 유숙(劉淑, 1827~1873)은 조선말기에 활동했던 화원화가이다. 1861년 철종(哲宗)의 어진(御眞) 제작에도 참여할 정도로 뛰어났던 화원으로,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도 활동하며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화면에는 우측 괴석 위에 있는 두 그루의 매화나무와 가지에 피어난 홍백의 꽃을 표현되었다. 나무줄기에는 곳곳에 녹색의 태점(苔點)을 찍어 그림의 장식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원래 매화 그림은 선비의 절개와 고고한 이상을 나타내는 사군자 주제 중 하나로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즐겨 그려졌다.

그러나 이 시기 매화 그림은 유숙의 매화도와 같이 병풍 형식의 장식성을 강조한 형태가 유행하게 된다. 이는 당시화단에 활발하게 유입되었던 청대 화풍의 영향 속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매화라는 주제가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들의 이상을 상징하는 것에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작품은 유숙이 남긴 거의 유일한 매화도 병풍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더욱 중요시된다. 화면 좌측 하단에 쓴 제시(題詩)는 명나라 예경(倪敬)의 '제고어사소장매화도 (題顧御史所藏梅花圖)'에서 따온 것이며, 뒤이어 1868년 11월 겨울비가 내리는 길상실(吉祥室)에서 그렸다는 제발이 있어 작품의 제작경위는 물론 분위기까지 파악할 수 있다.

<문자도 8폭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화면 75*41cm 개인소장. 여덟 문자에 담긴 희망의 찬가 삶의 지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다

<준이종정도10병풍> 19세말-20세기초 비단에 채색 화면 155*30cm 국립고궁미술관

매폭마다 5종류의 제례용 고동기가 그려져있다.후손에게 조상의 위엄과 권력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된 것이다 제기의 양옆에는 '자자손손영보영'이라는 글짜와 '만년미수자손무강' 등 자자손손 만수무강을 비는 글귀가 보인다.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Royal Banquet in the Imin Year during Emperor Gojong’s Reign)> 1902년,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 병풍은 1902년 11월에 진행된 조선의 마지막 궁중 연향(Royal Banquet)을 묘사한 그림이다. 덕수궁에서 열린 임인년(壬寅年)의 연향은 고종의 망육순(望六旬, 51세)과 즉위 40주년을 송축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의 존폐 기로에서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마지막 시도이기도 했다. 동일한 내용의 병풍이 국립고궁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8폭의 좌목(座目)으로 보아 이 작품은 진연청(進宴廳)에서 기록을 목적으로 만든 계병임을 알 수 있다. 화면은 오른쪽부터 군신(君臣)이 참여하는 외진연(內進宴), 왕실의 구성원이 중심이 되는 내진연(內進宴), 밤에 열렸던 야진연(夜進宴), 행사 다음날 황태자가 베풀었던 익일회작(翌日會酌)으로 11월 연향이 시간 순서대로 담겨져 있다.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Royal Banquet in the Imin Year during Emperor Gojong’s Reign)> 1902년,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외진연 화면에는 시대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데, 같은 해 대한제국의 정전(正殿)으로 완공된 중화전(中和殿)에 서양식 제복을 입고 도열한 신식군대와 태극기를 찾아볼 수 있다. 내진연 화면에는 명성황후의 부재로 고종과 황태자의 자리만 그려져 있으며, 야진연은 밤이라는 시간적인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곳곳에 호롱불과 유리등을 묘사하였다. 7폭은 황태자가 중심이 되는 다음날의 마무리 연향을 그린 것으로, 화면 중간에 검기무(劍器舞)를 추는 여령(女伶)들이 있다.

검기무는 민간에서 유행하던 검무가 궁중 연향에 편입된 것으로 1795년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 그림에 처음 등장하여 마지막 연향인 임인년 진연에까지 꾸준히 그려졌다. 이 병풍은 화면의 내용 외에도 당시의 병풍 장황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궁중 병풍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연화어락도10폭병풍> 19세기 후반 화면 90*271.5cm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연꽃과 물고기 그림

<화조역모도10폭병풍(Flowers, birds and animals)> 비단에 채색 19세기 후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요지연도8폭병풍(Immortal’s Feast on Yoji Pond)> 19세기 경기도박물관 유형문화재 제192호

서왕모(西王母)가 곤륜산에 위치한 요지(瑤池)에서 복숭아가 열리는 삼천년마다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벌인 잔치를 그린 그림이다. 8폭 전체를 한 화면으로 사용하여 요지연(瑤池宴)을 묘사하였다. 잔치에 초대된 인물은 『목천자전』에 서왕모와 짝으로 나오는 주목왕(周穆王)과 도교의 신선인 이철괴(李鐵拐), 여동빈(呂洞賓), 남채화(藍采和), 마고선녀(麻姑仙女), 수노인(壽老人) 등이다. 1, 2폭에는 소를 타고 오는 노자(老子)와 사슴을 타고 오는 소선공(蘇仙公)을 그렸고 3, 4폭에 복숭아가 열린 정원에 앉아있는 서왕모를 그렸다.

그 좌측 5, 6폭에는 서왕모를 마주한 주목왕이 천녀들의 연주와 춤을 감상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7, 8폭에는 잔치에 초대받은 여러 신선과 부처가 바다 물결 위에 표현되었다. 두루마리나 족자로 제작된 중국의 요지연도와 달리 조선의 요지연도는 병풍으로 많이 제작되었고, 인물의 구성도 중국 요지연도에 나오는 도교의 신선들 뿐 아니라 7폭 상단에 그려진 부처와 사천왕상과 같이 불교적 도상이 추가되는 조선적 특징이 드러난다.

요지연도는 복숭아, 곤륜산, 신선 등의 구성 요소로 인해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19세기 이후 궁궐혼례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금의 자리인 어좌를 장식한다거나 세자 책례후 관료들이 계병으로 제작하기도 한 예를 볼 때 단지 길상의 의미에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목포도도8풍병풍(Graphs)> 최석화 1886

<월하죽림도10폭병풍> 김규진 20세기초 비단에 수묵 153*384cm 화면 130*381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달빛 아래 대나무 숲은 그리고 정취가 넘치는 삶의 여유 즐기면서 초연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호렵도8폭 병풍> 말을 타고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병풍이다 용맹성이 잘 드러나다.

<기성도8폭병풍(평양 Pyongyang)>, 19세기, 종이에 채색,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6호 양각도, 능라도가 보인다

기성도(箕城圖)는 평양성 일대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은 그림이다. ‘기성’은 고대에 기자(箕子)가 평양에서 정전(井田)을 경영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평양의 별칭이다. 평양 도시의 성장, 회화식 지도의 발달, 실경산수화의 유행 등 18세기 사회의 변화된 분위기에 힘입어 제작이 성행하였다.

기성도는 평안감사 윤두수가 1590년에 간행한 『평양지』의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에 연원한다. 동쪽에서 서쪽을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장대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1-2폭에는 북성을, 3-5폭에는 내성, 즉 평양성의 중추가 되는 시가지를 담았다. 6폭에는 중성을, 7-8폭에는 기자 정전의 옛터로 전해지던 외성을 담았다. 중앙의 시가지는 대로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었고 선화당, 대동관 등 관서와 누정, 민가가 밀집되어 있다.

하단에는 대동강과 소나무숲이 길게 이어지며 양각도, 능라도가 보인다. 수묵과 담채, 진채를 적절히 사용하였으며 연분홍 복사꽃은 완연한 봄기운을 드러낸다. 강 위에는 70여 척의 행렬단이 장관을 이룬다. ‘상선(上船)’이라고 묵서한 정자선(亭子船)에는 평안감사가 탄 것으로 여겨지는데 장막 안에 놓여진 2개의 인궤(印櫃)를 통해 그 권위를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은 실존 인물의 행적을 그린 것은 아니며 정형화된 구성과 표현을 통해 19세기 화원화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감상화를 넘어 평양의 자연•인문지리적 정보까지 담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자수백수백복자10폭병풍> 19세기 비단에 자수 화겸 각 146*20cm 국립고궁박물관.

'수()'와 '복()'을 하나도 같지 않는 다른 서체로 변형하여 하나의 회화처럼 조형화한 작품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실험이라도 하듯이 기상천외한 서체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던한 서체도 많다.

병풍의 화풍에 한국인의 장쾌한 멋을 유감 없이 표출하다

<서수낙원도10폭병풍> 19세기 비단에 채색 167*357 개인소장 한국인의 유토피아 장쾌한 맛이 난다

<금니노안도6폭병풍(Geese and Reeds)> 19세기, 비단에 금니,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석연 양기훈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평양을 거점으로 활동한 화가로, 특히 노안도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 노안도는 노안(蘆雁)의 발음이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평안을 기원하는 길상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유행하게 된다. 이 작품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병풍으로, 원래 10폭이었으나 두 폭씩 이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장황(粧潢)한 것으로 생각된다. 화면 우측언덕 갈대 숲에는 줄지어선 기러기들이 낙하하는 기러기들을 응시하고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앉는 기러기들은 매 순간의 동작을 그려 넣어 마치 눈앞에서 착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병풍 왼편의 화제(畵題)에서도 이러한 기러기들의 움직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내려앉을 땐 파책(波磔)의 형세가 나오고(下時波勢出) 날아오를 때는 군진의 대형을 갖추네(起處陣形分)”라는 내용이다.

이 글은 당나라 소주(蘇州) 출신의 시인 고비웅(顧非熊, 796~854)이 쓴 5언 율시 「기러기[雁]」의 3, 4구이다. ‘파세(波勢)’는 영(永)자 필법의 제 8획 파책(波磔)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러기가 내려앉는 리드미컬한 모습을 서예의 파책 운필에 비유한 것이다. 화제 옆으로 ‘패상어인(浿上漁人) 석연 양기훈(石然 楊基薰)’이라는 자신의 호와 이름을 적고 ‘석연(石然)’, ‘양기훈인(楊基薰印)’을 새긴 인장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였다. 화려한 금니의 필치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영광풍경도10폭병풍> 안중식 1915년 비단에 수묵채색 화면 170*473 삼성미술관
안중식(安中植, 1861년 8월 28일 - 1919년 9월 10일)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화가로, 본관은 순흥, 호는 심전(心田)이다 도화서 출신인 그는 양천군수와 통진군수를 지냈으며, 1881년에 조석진과 함께 관비생으로 중국 유학을 다녔다. 이후 1911년에 조선서화미술회 회원이 되었으며, 1918년에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지냈다. 그는 산수와 인물, 화조를 잘 그렸으며, 시와 서예에도 능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산수'와 '군작도', '백악춘효도', '도원문진도', '성재수간도', '영광풍경' 등이 있다.

<곤여전도8풍병풍>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채색목판화 화면 155*405cm 서울역사박물관


한눈에 세상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는 세계 지도를 병풍이 담고 세계를 조만하다 한 시대를 읽다


김기창의 '해녀', 전남 목포 바닷가에서 1936년에 완성한 현대화된 병풍

작업하는 네 명의 해녀 모습을 서정적 붓질로 잡아낸 걸작이다. 운보는 이 그림을 준비하는 데 3~4개월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해녀를 스케치하기 위해 한겨울에 목포를 찾았고, 배경이 될 푸른 바다를 사실감 있게 잡아내기 위해 함흥 앞바다의 기암절벽에서 며칠 동안 눈을 맞으며 은거했다. 살아 숨쉬는 듯한 파도의 율동과 순진무구한 인간의 감성을 대조적으로 조율한 게 색다르게 다가온다. 이 그림은 작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시작가의 세 배에 달하는 3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2018 광주비엔날레> 경계 없는 세상에 도전하는 세계 작가들 다 모이다

[리뷰] '2018 광주비엔날레' 2018 11 11일까지 본전시관과 아시아문화전당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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