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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서용선展] 교수시절, 미술 용어 빈약해 곤혹 치르다

[도시의 흔적] 서용선의 긋기 어디: HC Studio(강서구 공항동) 언제: 2021.11.17-12.31

<교수시절, 미술학술용어가 없어 곤혹을 치루었다고> 전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서용선 화백 그는 대학교수 시절 미술용어가 너무 빈약해 곤혹을 치웠다는 말을 한다. 우선 스케치에 해당하는 <소묘(일본에서 만든 조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것은 일본에서 만든 용어, 프랑스어로 (dessin 이 말을 이탈리아어 '데시뇨 dessigno'에서 왔다.

'HC Studio(강서구 공항동)' 어용선 작가 장면

이 말은 하나는 데생과 디자인(design) 이라는 2가지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고) 데생 일본인들이 쓰면서 한국사람도 쓰고 90년대부터 미국 유학생들이 많이 퍼지면서 '드로잉'이라는 말로 바뀌고 그러나 서용선 화백은 이에 해당하는 한국어가 없어 매우 고심했다고 한다.

서용선 작가 스튜디오

학문을 하려면 학술용어가 제대로 갖춰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최근에 도입한 용어가 바로 <긋기>. 순 우리말인데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된 소묘나 데생이나 드로잉에 해당하는 우리 학술용어가 없어 허전하단다.

<참고>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마저도 글(poetry)과 그림(painting)은 하나였다. 우리는 일본이 만든 '소묘(데생 혹은 드로잉)에 해당하는 우리 학술 용어가 없다. 그리나 우리 생활에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같은 어원으로 추측된다.

글이나 그림을 그리운 사람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왔다 더 나아가 글과 그림은 그림자와도 관련이 있다. 죽음을 생각할 때 글과 그림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서양어 image의 어원은 imago는 애도라는 뜻이다. 즉 그림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글과 그림 예술은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최근 소묘에 해당하는 말로 서용선 화백은 <긋기>를 들고나왔다

서용선 화백의 독자성

서양에는 미술이나 문학의 근간으로 그리스 비극을 중요한 주제로 삼는다 한국의 서용선은 미술을 통해서 한국 역사의 비극적 사건 예컨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과 단종복위운동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28년째 그리고 있다. 여기에 서용선 화백의 독자성이 있다>

[도시의 흔적] 서용선의 긋기 어디: HC Studio(강서구 공항동) 언제: 2021.11.17-12.31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은 그것이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시시각각 형상이 변하는 거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시간에 그 작품을 만나도 또 다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림 한 점에 담긴 무수히 많은 삶과 사람의 이야기들, 우리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요? HC STUDIO는 그림 한 점에 담긴 이 많은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 공간입니다. 첫 전시로 <서용선의 긋기 - 도시의 흔적>을 선보입니다.

드로잉은 흔히 본격적인 작품을 준비하는 밑그림, 스케치로 여겨지곤 합니다. 특히 서양중심의 예술사에서는 19세기 이전, 르네상스 회화라는 극히 일부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소실점 원근법을 구현하는 '설계도 처럼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술이 프로파간다성 재현에서 벗어나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가며 드로잉은 다른 위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자신의 드로잉을 아예 'Graphisme'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고, 플럭서스 예술가 딕 히긴스(Dick Higgins, 1938-1998)도 제스처를 중심으로 살린 드로잉을 선보였습니다.

이 경향을 가장 노골적이고 간단하게 드러낸 것은싸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 일 것입니다.

서용선의 긋기 그림에는 구조화된 화면 속 날 것의 인간이 들어있습니다. 지하철, 건물, 상점 등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인간의 효율적인 삶을 위해 마련된 것임에도 서용선은 그 안에 감춰진 계층화, 먼지처럼 부유하듯 떠다니는 인간 모습에 주목합니다.

작가는 인간을 통해 도시라는 유토피아의 허상과 실체를 드러내고, 이들이 익명과 몰개성적 형태들로 잊히지 않게 자신만의 시선과 선으로 호흡을 불어넣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서용선의 긋기 그림 (drawing)은 서용선 작가가 세계 곳곳의 도시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더듬어낸 흔적들, 그것을 가장 첫 몸짓인 '긋기'로 드러낸 그림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긋기'는 서구의 한정된 드로잉 개념을 벗어나며, 동양의 캘리그라피가 가진 의미를 곁들여 궁극적으로는 작가 개인의 고유한 표현을 탐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HC STUDIO는 그림 속에 담긴 작가의 삶, 관객의 삶, 사회의 모습, 시대의 정신. 그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기록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맺어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예술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합니다.

서용선 작가, 베를린 작업실(Berlin Studio) 2006.07.03

이번 첫 전시로 시작되는 여정에 뜻 있는 여러분도 함께 해주십시오. HC STUDIO Director 허유림

* HC STUDIO리씨갤러리 대표 이영희님의 공간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 HC STUDIO
개관 전시는 김민 님의 협력 기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용선 작가와의 대화 1부 드로잉 해보기 2부 드로잉 실기에 소감과 관련 이야기


서용선 작가 평설: 내가 만난 작가 중 수준 높은 이지적 향기를 풍긴다.

"아름다움이란 아주 부분적인 것이다.
"미술은 선사시대 원시인처럼 그렇게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용어를 개발하기 위해서 고고언어학이 필요하다.
"하나의 선은 작가에게는 숨이라 마찬가지다. 호흡하는 것이다.
"잘 보는 것은 어렵다. 사실 불가능하다. 다만 외부와의 차이와 관계가 중요하다.
"작품의 제목이 모두 Work 고유한 하나라는 메시지다.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면 망한다. 나에게 더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학술용어는 시대정신에서 잉태되는 것이다.
"자화상은 자기미화와의 부단한 싸움이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자화상에 자신의 창자까지 그려넣을 수 있어야 한다.
"자화상은 때로 근육 노화 증명서가 되기도 한다
"자화상은 여행 중 잠시 틈이 날 때 여유 생길 때 가장 그리기 좋은 미술양식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우주의 일부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서용선 화백과 대화 중에서

[추신] <글: 김동화 박사 정신과 전문의> 서용선 론 앞부분 2007. 과거와 현대의 만남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서울의 몇몇 화랑에서 열린 서용선의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은 강렬하고 충격적인 정서와 이지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관객을 압도하는 생생한 원색과, 기계적인 혹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선으로 도시와 도시인을 그린 작품들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서울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건물이나 지하철역 입구를 배경으로 서 있거나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색채의 강렬함과는 대조적으로 표정이나 움직임은 박제되어버린 듯한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대개 얼굴을 묘사할 때 거친 붓 터치나 다양한 색채는 인상적인 표정과 격렬한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화가는 같은 방법으로 밀랍 인형의 표정처럼 평면적이고 응결된 인상을 추출하고 있었다.

화면 속 인물의 얼굴은 진짜 얼굴이 아닌 어떤 캐릭터나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가면 같은 형상이었고, 영혼이 빠져나간 마네킹이나 로봇 같은 모습이었다. 개개인의 기호와 정체성이 상실되어 익명화된 사람들의 생기 없는 얼굴, 그 얼굴에서는 타인과 나누는 시선의 교차, 타인과의 미세한 정서적 교감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앞만 바라보고 서 있거나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는 화면 속 인물의 공통점은 서로 간에 교감이나 소통이 없다는 점이었다. 서로에게 소외되고 단절된 인물들의 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이 강렬하고 불온한 색채의 교직은 근대적 도시화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무의식적 불안과 심층적인 공포를 함의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타인과 단절된 욕망만을 실현하려는 무수한 음모의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자본을 향한 이기적 탐욕 때문에 친밀한 관계로부터 소외된 채, 사회를 유지하는 거대 메커니즘 속에서 기계적으로 유동했다.

이 연작에서 화면 속 인간의 배경인 빌딩이나 지하철, 고가도로 등을 묘사하는 주요한 특징은 직선화된 선 처리와 다양한 원색의 조합이다.

직선화된 선은 차가움과 냉정함, 그리고 기계적인 느낌을 표현한다. 원색은 팽창해가는 화려한 도시와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화면 속 원색의 느낌은 화려한 듯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음습하다.

사창가의 번쩍이는 홍등처럼 분칠한 도시의 현란한 풍경, 데드마스크를 쓴 듯 무표정한 인물들은 현대 사회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또 화가가 구사하는 굵고 거친 선조는 대상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실제의 인간이나 배경을 낯설게 함으로써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하나의 의미나 상징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효과는 '소외'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상징적 조작은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의 작품은 독법에 따라서는 영적인 의미로도 읽을 수 있는데, 네크로폴리스처럼 살풍경한 도시 속에서 영혼을 상실한 듯한 인간들의 표정은 가늠할 수 없는 실존적 비극과 비극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생의 절망까지 드러내고 있다.

화면 속에 자욱한 절망은 결국 사람은 구원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갈망을 암시하고 있다

[후반부] 소외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단종과 철암 [...] 그리고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마침내 화가가 선택한 것은 '실러'와 말대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야기된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예술 즉 '화업(畫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