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백남준 말대로 "앞으로는 1인 트윗 시대"를 열어야 한다. 억만장자(Elon Musk)가 트윗을 장악했으니 사회적 소통을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Twitter is dead 억만장자 손에 넘어가다. 그는 말한다. "트윗에서 날 비판한 사람을 트윗 떠나지 마라".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트윗이 억만장자의 손에 넘어갔으니 소셜미디어 역할은 이제 끝이다. 2006년에 만든 소셜 네트워크를 인수하기 위해 440억 달러를 투자하다. The role of social media is over now that the world's most influential tweets are in the hands of billionaires
[르몽드사설] [르몽드 사설] 트위터에는 일론 머스크가 필요 없다 // 자유지상주의자로 추정되는 Tesla의 사장이었던 일론 머스크(참고, 440억 달러를 투자 트위터 인수), 절대적인 표현의 공간인 트워터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위협, 괴롭힘, 모든 종류의 선전 및 음모에 대한 문을 열 위험이 커진다.
1) 인종과 종교를 내세우는 근본주의 같은 신화론들이 현실 속에 어떻게 침투하는가?
어느 순간 권력을 장악하는 불합리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다
2) 작가는 유동성의 시대, 이미지의 새로운 가치를 “빈곤한 이미지”라는 용어를 통해 재정의한다
3) 순환주의는 동시대 예술과 이미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다.
4) 빅데이터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란 과연 누구인가? 묻는다.
5) 인공지능을 풍자한 “인공 우둔함”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성찰적으로 재사유할 것을 권유한다.
6)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명명되는 시대,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7) 영화감독 이자 작가로 수필 다큐멘터리와 텍스트의 재현에 대한 탈식민주의 비판과 페미니즘 비판을 다룬다.
8) 인터넷, 가상현실, 로봇 공학,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 자체를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성찰한다
<2021년에 그녀는 연방 공로 훈장을 거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년 뮌헨) 독일의 영화감독 이자 작가로 수필 다큐멘터리 와 텍스트의 재현에 대한 탈식민주의 비판과 페미니즘 비판 을 다룬다.
그녀의 작품은 영화와 순수예술,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넘나들며 움직인다. 예술 분야에서 평론가, 비평가,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미디어아트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영화는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제와 미술 전시회에서 상영된다.
그녀는 가장 최근 에 뮌스터(2017), 베니스 비엔날레(2015), 카셀(2007)도큐멘타 12에서 조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7년 아트 매거진 ArtReview 는 Steyerl을 연례 "Power100" 목록에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에 포함되다. 그녀는 또한 순위를 주도한 최초의 여성이자 공연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2019년에 히토 슈타이얼은 12,000유로가 수여되는 Käthe Kollwitz Prize를 수상했다. 2021년에 그녀는 연방 공로 훈장을 거부했다.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 서문
히토 슈타이얼은 디지털 기술,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상황이라는 오늘날 가장 첨예한 사회, 문화적 현상을 영상 작업과 저술 활동을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해오고 있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작가이다.
또한 예술, 철학,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미디어, 이미지, 기술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던지는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 뛰어난 비평가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현재 『이플럭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닌 필름 에세이 형식의 1990년대 초기 영상 작품에서부터 인터넷, 가상현실, 로봇 공학,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 자체를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성찰하는 최근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대표작 23점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의 부제 ‘데이터의 바다’는 슈타이얼의 논문 「데이터의 바다: 아포페니아와 패턴(오)인식」(2016) 에서 인용한 것으로, 오늘날 또 하나의 현실로 재편된 데이터 사회를 성찰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의 의도를 함축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조정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환하는 정보 및 이미지 생산과 이러한 데이터 재현 배후의 기술, 자본, 권력, 정치의 맥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최근 영상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그녀는 기술, 인간, 이미지, 예술을 둘러싼 폭넓은 사유와 성찰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2]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명명되는 시대,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3] 디지털 시각 체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4] 작가가 “빈곤한 이미지”라 명명한 저화질 디지털 이미지는 우리 삶의 양식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전시구성 및 주요작품 설명]
1. 데이터의 바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SNS에 업로드 하는 사진들은 빅데이터로 저장되고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 재조정되어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현실세계에서의 활동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디지털 기술 기반의 데이터 사회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히토 슈타이얼은 그의 책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2017)에서 오늘날 우리 삶의 표현들은 데이터의 흔적에 반영되어 있고 정보, 생명, 정치는 이를 관리하고 경작하고 채굴한다고 말한다.
또한 구글맵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오늘날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시각보다는 데이터를 해독하고 처리하는 패턴 인식에 달려있다고 언급한다.
한편으로 인공지능을 풍자한 “인공 우둔함”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성찰적으로 재사유할 것을 권유한다.
아울러 시뮬레이션 가상공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미술의 유형과 동시대 미술관에 대해서도 작가적 견해를 던진다.
첫 번째 장인 ‘데이터의 바다’에서는 <태양의 공장>(2015), <깨진 창문들의 도시>(2018), <미션 완료: 벨란시지>(2019), <이것이 미래다>(2019), <소셜심>(2020),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2022)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인공지능, 머신 러닝, 알고리즘 등을 작품 형식과 내용의 지지대로 삼으면서 데이터 사회 다시 보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한다.
2.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
디지털 기술 기반 세상에서 우리는 안 보여질 수 있을까? 사적·공적 데이터가 수집·등록되고, 감시 카메라가 도처에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숨을 수 있을까? 빅데이터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란 과연 누구인가? 묻는다.
구글맵, 인공위성, 감시카메라, 드론, 항공지도 등의 장치를 통해 세상을 위에서 아래로 조망하게 된 시대, 세상과 인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그 이전 시기와 어떻게 다른가? 슈타이얼은 영상 설치 작품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에서 위와 같은 질문들을 이어간다.
<안 보여주기>에서 작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데이터 수집과 시각적 감시에 대항하여 안 보일 수 있는 방법과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디지털 시각장에서는 해상도가 가시성을 결정한다. 해상도를 통해 파악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보이지 않게 되고, 픽셀보다 작다면 카메라의 응시를 벗어나며 시각장에서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데이터로 필터링 되지 않으면 디지털 가시성의 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기계가 된다.
3.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인공지능, 알고리즘, 사물인터넷, 로봇 공학, 3D 시뮬레이션 등 오늘날의 첨단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을 위한 기술인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러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히토 슈타이얼은 우리가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웹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에 의해 내장되고, 감시받고, 조정당하고 심지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타워>, <Hell Yeah We Fuck Die> 등에서 작가는 기술 유토피아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술과 전쟁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암시하며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재편된 세계상을 재고한다.
한편, 슈타이얼은 ‘미술관은 전쟁터인가’라는 질문을 작품으로 전환하며 미술관이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힘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규정되는 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면세 미술>과 <경호원들>을 통해 작가는 미술관을 둘러싼 제도, 자본의 분배, 감시와 권력의 시선을 일깨우며 성전으로서의 미술관이 아닌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동된 장소로서 동시대 미술관의 위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4.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이동하고 자유로이 순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지구적 네트워크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 자본, 사물, 정보는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한다.
나아가 디지털 세상에서 주요한 정보와 가치는 이미지와 데이터로 떠돌아다닌다. 슈타이얼은 국가에서부터 사랑에 이르기까지, 공적 영역에서부터 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흘러가고 순환하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순환주의’로 명명한다.
<유동성과 액체성과 순환성>
전시 출품작 <유동성 주식회사>에서 ‘나는 유동성 주식회사이다. 우리의 혈관(신체)과 두 눈과 터치스크린(데이터)과 포트폴리오(직업)에 있다.’라고 한 언급은 ‘유동성’과 ‘액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이 시대의 순환주의가 우리의 신체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데이터 기반 사회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순환주의는 동시대 예술과 이미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다.
작가는 유동성의 시대, 이미지의 새로운 가치를 “빈곤한 이미지”라는 용어를 통해 재정의한다. 무수한 전송과 이동, 압축과 재포맷이라는 유동적 과정에서 재생산된 저화질의 이미지가 바로 작가가 말하는 “빈곤한 이미지”이다.
이는 “스크린의 추방된 자들”이지만, 물질성보다는 빠른 속도와 확산, 유통이 보다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디지털 시대 우리 삶의 단면을 비춘다.
5. 기록과 픽션
히토 슈타이얼은 자신의 글 「실 잣는 여인들: 기록과 픽션」(2008)에서 다큐멘터리에서도 구성과 자료, 가상과 현실, 신화와 창작이 계속 섞여 있음을 밝힌다.
현실에 대해 비로소 지각하게 되고 주어진 현실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픽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장 ‘기록과 픽션’에서는 작가의 첫 영화 작업 <독일과 정체성>에서부터 <비어 있는 중심>, <바벤하우젠>, <정상성 1‒X>, <11월> 등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 실험을 기록과 픽션, 진실과 허구의 맥락에서 보여준다.
동시에 현재 히토 슈타이얼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의 출발을 좇아간다.
슈타이얼은 이 시기 건설 현장, 축제와 시위 현장, 공동묘지 등을 직접 방문하는 참여적 수행성을 근간으로 영상을 제작하였다. 또한 인터뷰와 리서치, 아카이빙 등을 통해 역사학자나 문화비평가의 시선으로 현실을 기록하고 재해석하였다.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은 주로 유대인, 흑인, 이민자 등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목소리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반유대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 인종과 종교를 내세우는 근본주의 같은 신화론들이 현실 속에 침투하고, 어느 순간 권력을 장악하는 불합리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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