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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덕수궁미술관] 박수근, "나무도 혈육처럼 그리다"

"박수근. 나목처럼 시대의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낸 화가" -박완서

박수근에게 나무도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이었다. 천지인, 물아일체의 최고경지를 도달하다. 그는 인간으로 신이 된 드문 사람이다. 그는 우주만물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으로 봤다.

박수근, "도마 위의 조기" 1952, 18*24.2cm, 하드보드에 유채, 개인소장 굴비마저도 그에게는 황홀한 오브제가 된다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1w4sb "박수근, 시대의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낸 '나목' 같은 화가" -박완서 

 

역대급 작품 수... 올 겨울 꼭 봐야 할 무료 전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www.ohmynews.com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공동주최하여 11월 11일부터 2022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드디어 국립에서 박수근 회고전을 여는군요>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위 그림 해설] 박수근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담임교사였던 오득영의 격려에 힘입어 그림을 지속할 수 있었다. 오득영은 박수근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그림 재료를 사주고 화가로서 경력을 쌓도록 지원해 주었다. 박수근은 자주 스승을 문안하고 그림을 선물했는데 <도마 위의 조기>도 그 가운데 하나. 조기는 예로부터 특별한 날에 밥상에 올리던 생선이므로, 이 그림에 그려진 조기의 의미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 같다. 이 그림은 1950년대 미군 부대의 종이박스로 사용되던 종이보드에 그려졌는데, 전쟁 후에 그림을 그릴 만한 물자가 부족했던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박수근 밀러부인에게 보낸 친필편지
박수근 밀러부인에게 보낸 편지 * 이 분은 당시 미국의 미술딜러로 박수근 작품을 반도화랑에서 구입하다. 외국인으로 누구보다 먼저 박수근 그림의 가치를 읽어냈군요.
 
레제 작품 모사
피카소 작품 모사
박수근 화가 데뷔 초기, 습작으로 '피카소'나 '레제'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일어판 미술수첩
박수근 51년 생애 31년은 식민시대, 20년은 분단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일본어는 능통했을 것이고 한국에는 없는 미술전문지 <미술수첩(일본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일본어 미술자료를 봤겠죠
 
 
박수근 신세계 PX에서 그림 그리던 시절의 사진. 박수근 맨 오른쪽인가
 
박완서와 박수근의 만남 이후 박수근은 1953년 국전에서 입선> 박완서씨가 6·25 당시 서울 신세계 미군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박수근은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뒤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박완서의 '나목'은 6·25 동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등장 인물들을 나목에 비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는 박수근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1950년 초 서울 신세계 미군PX 초상화 가게
"처음 내가 일한 곳은 요란한 수를 놓은 가운이나 파자마를 파는 매장이었는데 한 달도 안돼 같은 업주가 경영하는 초상화부로 가게 되었다. 초상화부에서는 다섯 명 정도의 궁기가 절절 흐르는 중년 남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업주는 그들을 훗두루 간판쟁이들이라고 얕잡고 있었다. 전쟁 전엔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수근 화백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딴 간판쟁이와 다른 점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염색한 미군 작업복은 매우 낡고 몸집에 비해 비좁았고 말이 없는 편이었다….
 
나에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어서 그림 주문이 거의 끊기다시피했다. 업주가 뭐라기 전에 화가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월급제였지만 그들은 작업량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 싻을 타 가게 되어 있었다…. 화가들이 나에게 갖은 불평을 다할 때도 그는 거의 동조하는 일이 없었다. 남보다 몸집은 크지만 무진 착해 보여서 소 같은 인상이었다. 착하고 말 수가 적은 사람이 자칫하면 어리석어 보이기가 십상인데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박수근의 생활과 성품이 어떠했는지를 그려 볼 수 있는 글이다. 박완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박수근과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는데 그 대목은 이렇다.
 
"어느 날 그가 화집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했다. 나는 속으로 '꼴값하고 있네, 옆구리에 화집낀다고 간판쟁이가 화가가 될 줄 아냐'하고 비웃었다. 순전히 폼으로만 화집을 끼고 나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화집을 펴 들고 나에게로 왔다. 얼굴에 띤 망설이는 듯 수줍은 듯한 미소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다. 마치 선생님에게 칭찬 받기를 갈망하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그가 어떤 그림 하나를 가리키며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가 그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내가 막돼 가는 모습을 그가 얼마나 연민에 찬 시선으로 지켜 보아 주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 후 그와 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박수근의 '행인' 1964년 아이를 업은 아낙네와 머릿짐을 이고 선 세명의 아낙네, 당시로는 너무나 평범한 풍경 그런데 박수근의 화폭에 들어오면서 과거, 현재, 미래 넘어서는 초시간적인 작품이 된다. 화폭이라는 공간이 순식간에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변하는 황홀한 순간(엑스터시)을 맞이하게 된다

박수근의 귀로 1962

박수근 '귀로' 1962년.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노을이 지면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설레는 총총걸음을 재촉한다. 보고 싶은 아이들과 그리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거룩하고 장엄하게 보인다. 흥분과 벅참과 함께 긴장감도 느껴진다. 힘들기는 해도 이런 게 사는 스릴이 아닌가. 자연스러운 색채를 내기 위해서 레이어가 20가지는 겹치는 것 같다.

박수근,절구질하는 여인 42*31cm 1960년대 작품.

아이를 업고 고단한 노동을 하는 한국 여성에 대한 오마주다. 60년대 대부분 남성들은 일자리가 없었다. 그런 보리고갯을 넘어서기 위해서 한국 여성은 산업화로 가는 과도기에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운 장본인들이었다.

노상의 사람들

구성미가 뛰어나다. 박수근이 추구한 소박한 가치의 위대함

<노상의 사람들>은 박수근이 그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넓은 대로변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여인,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광주리 앞에 앉아있는 상인,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은 박수근이 살았던 1950~60년대의 흔한 풍경일 것이다. 50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그림에 7명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엄마에게 안긴 아이를 제외하면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등을 보이고 있으며, 둥글게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에서도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인물들은 이목구비가 생략되어 있어서 이들의 감정을 살펴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서민의 일상생활을 그린 작품을 떠올리면서 기대하는 정겨움 대신, 인물들이 제각기 짊어지고 있을 고단함과 쓸쓸함이 먼저 다가온다.

"그가 보는 세상에 대한 모든 시선은 너무 따뜻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개최 -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이래 첫 박수근 개인전 [1] 한국적ㆍ토속적 미감 대표작가 박수근과 그의 시대를 재조명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 공개 [2] 박수근의 회화, 박완서의 소설, 한영수의 사진과 함께 전후 서울 풍경 조명 [3] 화집,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박수근의 그림 공부 자료 약 100여 점 11월 11일(목)~2022년 3월 1일(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개최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38㎝, 리움미술관

[위 그림 해설] 대개의 그림이 인물을 먼저 그리고 그 뒤의 배경으로 나무가 서 있는 것과 달리, 커다란 고목을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인물들을 그렸다. 검게 처리된 고목과 여인들이 입은 저고리의 색채를 대비시키면서, 죽은 나무에서 나는 새싹처럼 엄혹한 현실을 이겨내고 생활을 이어가는 생명력을 강조하였다.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한 구도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수근(1914-1965)은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같은 관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박수근은 창신동 집에서 명동 PX, 을지로의 반도화랑을 오가며 목도한 거리의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한영수 , "서울" 1956-1963 인화지에 젤라틴 실버프린트 , 40.3*50.3㎝ 한영수문화재단

[위 작품 해설] 한영수는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제대 후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급격히 변하는 사회상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미군 PX에서 카메라를 구입한 뒤 사진 잡지를 보며 사진 기술을 독학했다. 그리고 여유롭고 따스한 시선으로 서울 풍경을 담아냈다. 그는 특히 어린 아이들을 즐겨 촬영했는데, 궁핍한 환경에서도 구김살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동시대 서양미술의 흐름에도 관심을 가지며 공간, 형태, 질감, 색감 등의 회화요소를 가다듬어 나갔고, 자신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던한 회화 형식과 화법을 구축했다. 일체의 배경을 제거하고 간략한 직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칠게 표면을 마감한 그의 회화는 ‘조선시대 도자기’, ‘창호지’, ‘초가집의 흙벽’, ‘사찰의 돌조각’ 등을 연상시키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20종의 미술 교과서에서 박수근을 가르치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필수교육만으로도 박수근을 알고 그림도 익숙하다.

"노인들의 대화" 1962, 하드보드에 유채, 20.2*29.3㎝ 미국 미시간대학교미술관(University of Michigan Museum of Art, USA)

[위 작품 해설] 이 작품은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Joseph T. A. Lee, 1918 -2009)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조지프 리가 타계한 후 미시간대학교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그동안 이 작품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6년 박수근 전작도록 발간사업 때 실물이 확인되었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번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는 그간 ‘선한 화가’, ‘신실한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등의 수식어로만 제한되던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우선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戰後) 시대상에 주목하였고, 당시 화단의 파벌주의로 인한 냉대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불우한 화가였다는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박수근의 성취를 조망한다. 또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시행된 박수근전작도록 발간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수근의 활동을 소개한다.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미군부대는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Contemporary Korean Paintings)》(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참혹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고단한 이웃의 생활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을 통해 전후 1950-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기 위해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키워드를 제안하며,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된다.

"복숭아" 195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28*50㎝, 고려대학교박물관

[위 작품 해설] 박수근은 좀처럼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공간감을 배제한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반해, 이 그림에서는 다양한 색과 공간의 깊이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이례적인 작품이다. 팔각형의 목기에 비추는 햇빛과 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복숭아와 그릇의 음영과 질감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대신 배경은 거칠거칠한 질감을 더 강조해서 그렸는데, 요철을 강조하기 위해 작은 필선으로 격자무늬를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은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은 그가 다양한 미술 정보를 섭렵하며 화풍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노변의 행상>, 1956-1957년경, 캔버스에 유채, 31.5×41, 개인소장

"노변의 행상", 1956-1957 년경 캔버스에 유채 , 31.5*41㎝ 개인소장

[위 작품 해설] 이 그림은 실리아 짐머맨(Celia Zimmerman)이라는 미국인이 소장했던 것이다. 실리아 짐머맨은 무역회사 직원인 남편과 함께 1954년부터 2년 반 가량 한국에 체류하며 미술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반도화랑이 설립될 때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귀국 후, 한국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현대화가 Korean Artists(1957)를 펴냈고,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서 개최된 동서미술전 Art in Asia and the West(1957)에 자신이 소장한 한국미술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전시한다. 그리고 박수근의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박수근이 견뎌낸 참혹한 시대를 공감하고, 2부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새롭게 감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리움미술관

[위 작품 해설] 박수근은 한해 전에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나무>를 출품했는데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 김복순 여사가 작품이 도난당했으니 일본 경찰에 신고하라는 부인 김복순 여사에게, 박수근은 그림을 가져간 사람이 돈은 없고 작품은 탐이 나서 가져갔을 텐데, 작품이 도둑을 당한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말하며 흐뭇해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한국에서 다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을 위해 이 작품을 다시 제작했다. 화가이자 평론가인 정규는 고목이 서 있는 마을을 무대로 한 연극을 보는 듯하며, 그 이야기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고단한 살림살이 이야기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수근의 그림에서 고독하고도 따뜻한 인간상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정규의 이야기대로 박수근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데, 이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도 등장하는 작품이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근 박수근전작도록사업을 통해 조사된 유화 2점이 공개된다. 아울러,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따스한 시선과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박수근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는 여성과 나무이다. 그의 그림에서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 ‘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소개하며 이들이 박수근 작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는지 살펴본다.

박수근, "쉬고있는 여인" 1959, 캔버스에 유채, 65.1*53㎝, 개인소장

[위 작품 해설] 1959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3회 현대작가초대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1950년대 후반 박수근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반복하면서도 구도, 형태, 질감, 색상 등에서 그림의 형식을 다듬어 나갔다. 화면 전체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서 균질화된 요철을 만들고, 직선에 가까운 선으로 인물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인물을 꽉 차게 그리면서도 배경을 생략하여 구도의 조화를 꾀하였다. 이 그림은 서양의 유화 도구로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 당시 비평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한편,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작가의 가방(Artist Box)(가제)’교구재를 개발하여 전시가 종료되는 3월 1일부터 전국 중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번 교재는 미술교과 뿐만 아니라 타교과 연계 융복합 수업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될 것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협업하고 유족, 연구자, 소장자 및 여러 기관의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시대상과 화단의 토양을 재인식해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mmca.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