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전자초고속도로'로, 전 세계 웹 예측하다
Nam June Paik electronic superhigways predicted the worldwide web communication
<관련기사> https://angelsferrerballester.wordpress.com/2018/03/09/nam-june-paik-electronic-superhigways-predicted-the-worldwide-web-communication/
[1] 1960년대 백남준 전자아트, 초기 인터넷 아트 시도 [2] 1960년대 미국에서 초기 인터넷 군사용 태동기
[3] 1982년 5월 15일, 한국은 최초의 인터넷 시스템인 시스템 개발 네트워크(SDN) 운영 시작(South Korea's first Internet system, the System Development Network (SDN) began operation on 15 May 1982)
[4] 1992년 인터넷 협회(ISOC) 발족: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오픈 개발, 발전과 인터넷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국제 단체 [5] 1993년 백남준 인터넷을 '전자초고속도로'라는 제목으로 예술작품으로 바꾸다. 그래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 수상하다 <아래사진>
1993년 백남준 인터넷을 '전자초고속도로'라는 제목으로 예술화하다
[서론] 1963년-2013년 전자아트 50주년 폴란드 WRO 아트센터에서 백남준 전시
- 백남준의 첫 번째 음악의 박람회–전자 텔레비전
관객이 수동적 문화 소비자에 머물지 않게 하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문화 생산자가 되도록 유도하다. 그래서 참여 TV다. 백남준의 이 아이디어는 21세기 매스미디어로서의 인터랙티브와 멀티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예언하다. 백남준은 4대의 피아노, 기계 소리가 나는 오브제 및 몇 대의 레코드와 테이프, 13대 상호 연결된 TV 세트, 갤러리 입구에 걸려 있던 갓 도살된 소의 머리를 사용했다. TV가 기성품과 전자페인팅 도구로 사용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 학자와 비평가들은 백남준 작품이 뉴미디어를 도구, 표현 수단, 원료로 동시에 사용하는 예술작업에 창의적이고 획기적으로 처음 도입했다는 데 이의가 없다.
[1] 비디오아트는 정보(통신)아트다. 모든 예술이 가장 중시하는 게 바로 소통이다. 그런 면에서 소통을 가장 활성화시키고 그 기능에서 탁월함을 보인 게 바로 비디오아트다. 백남준의 소통은 인류(지구촌 개념)와 우주(위성통신아트)에 맞닿아있다. 그 이전 어떤 예술가보다 소통의 범위가 높고 넓고 깊다.
[1] 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바로 비빔밥의 융합정신이다. 백남준은 소프트웨어 시대에 한국은 비빔밥 같은 유연성과 통합성이 있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서구를 이기는 방식은 나라의 크기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드한 정치나 군사력보다는 소프트한 외교나 문화의 힘으로 그것이 대중문화이든 고급문화이든 상관이 없다. 백남준은 1960년대부터 이미 고급문화에서 한국 문화의 힘을 보여줬다. 백남준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중문화에서 BTS는 백남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63년 첫 전시 '음악의 전시', 10년 후 1973년 '글로벌 그루브' 발표>
BTS 뒤에는 50년 전에 백남준이 있었다. 미디어 통신기술, 예컨대 유튜브가 한몫 했다. 백남준이 만든 첫번째 유튜브는 바로 1973년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 전지구적으로 지구촌 사람들 모두 손을 잡고 한판 축제를 벌리자)다.
[1] 백남준 당시 BTS가 없어 영국 첨단 대중 예술가 David Bowie와 협업하다
[1] <백남준의 인터넷 개념은 13세기 몽골 역참제 개념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늘날 지구촌 개념은 교통과 정보통신 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13세기 오늘날 정보 통신 혁명에 견줄만한 시스템이 있었다. 몽골제국은 오늘날의 전자 통신 대신 말(馬)을 이용해 그물망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몽골제국은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세계로 통합시켰다. 몽골 전국에 역참이 1519곳에 이르렀고, 말(나귀) 5만여 마리, 소 9000마리, 배 6000척 수레 4,000량, 등을 대기해두었다.
13세기 몽골 인터넷 역참제" 20세기 인터넷 통신방식이 초기 군사적 목적이었듯 13세기 몽골 역참제도도 초기에는 군사적 목적이었다./ 현재의 정보 통신 혁명을 주도하는 인터넷과 이동 통신은 바로 ‘선’이 아니라 ‘점’의 체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은 도로가 없는 초원과 사막을 바둑판처럼 잇는 점의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중앙집권 원리에 충실한 선(線)의 체계가 아니다. 매우 우연한 지방자치제다. 그래서 몽골제국의 역참제를 13세기 중세의 인터넷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몽골의 역참제의 기초는 칭기스칸에 의해 군사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 역참제는 물류시스템 구축을 통한 원활한 교역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물자가 흐르고 사람이 흐르고 정보가 흘렀다. 팍스 몽골리카 시대는 바로 이런 시스템이 있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정조 때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군사기밀 문서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발제(擺撥制) 도입됐다
13세기 초, 몽골제국이 만든 '초원고속도로'
몽골제국이 13세기 초, 세계를 지배한 건 가장 빠른 말로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칭기즈 칸'부터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까지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역참(驛站制)'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몽골 전국에 역참이 1519곳에 이르렀고, 말(나귀) 5만여 마리, 소 9000마리, 배 6000척 수레 4,000량, 등을 대기해두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네트워크를 창출했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실크로드를 왕래하는 상인의 증가는 물론이고 유럽의 선교사, 여행가들이 속속 동방세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세계지도가 나오고, 대 여행시대를 열리고, 세계사가 쓰였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백남준은 몽골제국이 이렇게 동서 교류의 통해 최초로 '지구촌'을 실현했고, 또한 시베리아에서 네팔, 한국, 라플라드(핀란드), 페루 등을 누비며 '초원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예술을 접근했기에 이렇게 '비저너리' 아티스트로서 내일을 멀리 내다보는 'TV(Tele 멀리, Vision 보다)전자아트'를 발명할 수 있었다.
1974년 백남준이 록펠러재단에 제안한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초고속도로)' 개념도 여기에 나온 것이다. 1993년 '전자초고속도로(부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라는 작품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다름 아닌 인터넷 개념의 예술화였다.
[2] <청주시립미술관>빛으로 그리는 신세계: 찬란하고 황홀하게/2021-09-17 ~ 2021-12-19 / 참여작가: 김윤철, 문준용, 박기원, 박진아, 백남준, 신봉철, 우제길, 이이남, 하동철 전시 장소:청주시립미술관 문의처/043-201-2650 홈페이지http://cmoa.cheongju.go.kr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2000), CRT TV 모니터 13대,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E-Moon〉, 1-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DVD,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박진아, <공원의 새밤 03>, 2019, 리넨에 유채, 130×185cm. 이이남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2019, LED TV 2대, 1-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3] 백남준 '역경(주역)' 1984: 우주의 변화에 관한 원리를 기술한 책
《역경》(易經)은 유학(儒學)에서 삼경 중 하나로 삼은 경전으로, 세계의 변화에 관한 원리를 기술한 책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주역(周易)》이라고도 한다. 한편 주나라 시대의 십익을 더해서 주역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역경은 순전히 64괘를 가리키기도 한다. 쓰여진 연대는 대략 동주 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도교에서도 이를 경전으로 삼은바 있고 또한 역사적으로 동서양 및 여러 분야에서 응용을 위해 이를 참고한바 있다. 주례에 의하면 삼역(三易)중 하나이다.
[4] 백남준의 변신인 로봇(개구장이 백남준 풍)과 미인작가도 잘 어울린다
[5]<백남준 스즈키(존 케이지에게 영향을 준)를 위선자라고 비판하다>
어떤 평론가는 이 곡이 연주된 후, “저것이 진정한 선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런 무작위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만든 존 케이지를 흠모했던 사람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29~1997)이었다. 존 케이지의 작품세계에 반한 백남준은 1958년에 그를 만났고 “1957년은 나에게 BC(Before Cage) 1년이다. 또한 기원후는 1993년(존 케이지가 타계한 이듬해)”이라고 할 만큼 존 케이지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존 케이지가 ‘장치된 피아노’를 고안해 낸 것처럼, 백남준은 건반을 연주하면 연결된 선을 통해 라디오가 켜지고, 헤어드라이기가 작동하는 ‘총체피아노’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 피아노 위에 여러 개의 브라운관이 배치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TV피아노’도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또한 1974년에는 TV를 시청하는 붓다의 모습을 다시 TV를 통하여 송출하는 ‘TV붓다’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쾰른미술관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에서는 백남준이 직접 법의를 걸치고 TV 앞에 앉기도 했다. 현재 용인시 백남준 아트센터에 전시되어있는 이 작품은 관객이 붓다가 바라보는 TV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 관객이 화면 속에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연성과 열려있음을 생각했던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연상시킨다.
스즈키 교수는 해외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870년 이시카와 현(石川縣) 가네자와(金澤)에서 태어난 스즈키 교수는 21세 때 동경으로 올라와 도쿄전문학교(現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우며 엔가쿠사(圓覺寺)의 임제종(臨濟宗) 승려 이마키타 코센(今北洪川) 지도하에 참선에 몰두했다. 스승 이마키타의 입적 후에는 그의 후계자 샤쿠 소엔(?宗演)의 밑에서 선을 수행했다. 그렇게 참선수행에 정진하던 스즈키 교수는 소엔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다이세쓰(大拙)라는 법명을 얻었다. 그의 본명은 원래 데이타로(貞太郞)였으나 이때부터 다이세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스즈키 교수의 스승 샤쿠 소엔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종교대회에 참가하는 등, 일본불교와 선사상을 서구에 알리는 데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소엔의 후원으로 스즈키 교수는 27세인 1897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주 라살시에 있는 오픈 코트 출판사(The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의 편집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이때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영어로 번역하고, <대승불교개론>을 출판해 일약 신진 불교학자로서 서구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09년, 12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39세의 나이로 귀국 했다. 그 해 10월 도쿄대학 강사와 학습원대학 강사가 됐고, 나중에 학습원대학 교수로 승진했다. 그 뒤 1921년 교토(京都)에 있는 오타니(大谷)대학 교수가 됐고, 영문지 <이스턴 붓디스트(The Eastern Buddhist)>를 창간, 불교사상을 해외에 소개했다. 1950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대ㆍ예일대ㆍ하버드대ㆍ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불교사상을 강연했다.
스즈키 교수는 1966년 96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왕성한 연구 활동을 통해 영문 저서 30여 권, 일본어 저서 120여 권을 남겼다. 유명한 저서로는 <선과 일본문화(Zen and Japanese Culture)>, 등이 있다.오늘날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이나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등 서양의 대표적 심리학자들이 불교 사상을 언급하는 저변에는 선불교를 서구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스즈키 다이세쓰 교수의 노력 때문이다. 특히 스즈키 교수는 융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폭넓게 학문 교류를 했고, 융의 초대로 동서양 연구자들이 모여 종교학ㆍ심층심리학ㆍ신비주의 등을 논의하는 에라노스(Eranos) 회의에 출석하기도 했다. 스즈키 교수의 영향을 받은 융은 “선은 서양 철학이 말하지 않는 것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융의 표현이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 서양 지식인들에게 선을 알리고 회자시켰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6] You say that capitalist globalisation has led to a ‘civilisational catastrophe’? 정치란 매우 낡은 언어이다. 이 세상을 정치적 이념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한계점에 도달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삶이다. 코뮌 같은 인류보편적인 삶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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