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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30세기

[목포] 백남준 전시: '나의 예술적 고향' 리뷰

목포 백남준 전시: '나의 예술적 고향' 리뷰 -아트 저널리스트 김형순(KIM, Hyung-soon)

[1] 백남준 전시 '나의 예술적 고향(Nam June Paik, ‘My artistic Heimat’)'이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202157일부터 627일까지 열렸다. 서울 이태원에서 갤러리를 40여 년 운영해온 '백해영'관장이 주관했고, 독일통인 '김순주' 디렉터가 기획을 맡았다. 목포 순회전이었는데 서울 본전시보다 더 풍성하고 성공적이었다.

전시 포스터

이번 전시는 백해영 관장의 통 큰 기부와 목포시장 등의 협조로 가능했다. '신안 태평염전'과 한국 '파버카스텔(FaberCastell)'도 협찬했다. 개막식엔 '김종식' 목포시장, '전성규' 목포대교수, 8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활동한 '임영균' 교수도 참가했다. 임 교수는 인사말에서 백남준을 일본 작가로 알고 있는 미국인이 많아 충격을 받고 백남준을 사진 찍게 되었단다.

이번 목포전을 준비하는 데만 거의 1년 걸렸다. 작년 6월 서울 백남준전 이후,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백남준과 BTS' 전을 계획했으나 여의치 않아, 백해영관장을 포함해 우선 뜻이 맞는 회원들(백남준과 프렌즈)이 모여 백남준 공부를 시작했다. 6개월간 월요강좌 '40'을 마쳤다. 이걸 유튜브에 올렸고, 732쪽짜리 백남준자료집도 만들었다.

[2] 전시가 뭔가?라도 물어볼 때, 백남준은 "뭔가 일어나는 것(Something happens)"으로 봤다. 이번 전시는 작은 규모였지만 예상 밖으로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우선 '목포시립예술무용단의 특별공연'이 있었고, 이어서 '목포시립교향악단' 4중주 연주회도 열렸다.

또 이번 전시는 목포시장에게 정보화마인드들 유도했고, 목포시 시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곳 문화인사와 교류가 있었고, 전국에서 온 백남준 관련 인사와 대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도 얻었다. 전시에 연관해 김순주 기획자는 MBC에서 '백남준 특강'을 했고, 김형순 기자는 목포대에서 '백남준 강의'를 했다.

[3] 백남준의 63년 첫 전시개념은 '선불교'에서 왔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즉 시각(sight)과 청각(sound)이 하나' 되는 방식 즉 음악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음악이 되는 융복합 예술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음악의 전시(Exposition of Music)'가 되었고, 부제도 기존 서구미술판을 밀어낸다는 '추방(Expel)'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에서 'TV'가 어떻게 '인터넷'으로 발전해왔는지 알 수 있다. '63년 첫 전시에 TV가 등장했고, 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자초고속도로(혹은 인터넷)'로 업그레이드시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일방형''쌍방형'이 되는 소통방식의 전환은 가히 혁명적이다.

백남준은 시공을 넘어 최저비용으로 더 빠르고 더 쉽게 인류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세상을 염원했고, 그런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유토피아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4] 70년대 서구의 '성상'인 바이올린을 길에서 끌고 다니는 백남준 퍼포먼스도 이번에 선보였다. 백남준은 텃세를 부리는 '서구우월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독일의 미술사가 '헤르조겐라트(W.Herzogenrath)' 박사였다. 그는 백남준 의도를 알았다.

80년대 작품으로 파리, 뉴욕, 쾰른, 서울 등 방송 채널을 연결한 우주오페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90년대 작품으로 백남준이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찍은 에디션 사진도 전시장 벽면에 게시되었다.

[5] 그리고 메인 작품으로 전시장 중앙에 '난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가 전시되었다. 이런 제목은 "서구철학에 맹종하지 말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비트겐슈타인이 플라톤 이후에 서구에서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나의 비디오아트 시각언어를 서양의 언어철학의 틀에 맞출 수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방에 걸린 4대의 TV'동서남북과 춘하추동' 등 우주의 질서와 순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벽체에 7가지 무지갯빛을 닮은 색동이 전자빛과 만나 관객을 황홀하게 한다. 그 형태가 단순한데 그건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라 세밀하게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난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어!(I never read Wittgenstein)' 1998

[6] 그리고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호랑이 살아있다(Tiger lives 200045)'. 새천년인 2000년 첫날 발표한 것으로, 당시 87개국에 생중계되었다. 백남준은 한국인을 호랑이로 의인화하면서 "서구에 진출해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분단국의 처량한 신세를 청산하고 어엿한 통일국가로 나가야 한다"고 강한 멘트를 날렸다.

화려한 금수강산을 찬양한 '금강에 살으리랏다'와 분단된 철조망 태우는 영상도 불쑥 튀어나온다. 호랑이와 사자 대결에서 사자를 물리치는 한국 호랑이의 기상이 또한 가상하다. 요즘 BTS나 봉준호 영화를 보면 한국대중문화가 미국과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6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백남준은 금과옥조 같은 '유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20세기는 0,2% 인구인 유대인(Jewish)이 노벨상 22%를 받으면서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철학에서 이바지했듯, 21세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백남준의 유언이 요즘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언어를 언어라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언어가 아니다. - 노자><나는 2000년 간 서양언어철학 오류를 날려버렸다 - 버트런트 러셀의 '기술이론' 중에서>

백남준, '난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 없어!(I never read Wittgenstein)' 1998년 작. 2000년간 플라톤 서양철학을 지배해왔고 20세기 플라톤인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 역시 존재론의 오류(쓸 데 없는 말이 안 되는 말을 가지고 인류를 속여왔다)에 빠져 있다고 봤기에 백남준은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노자의 말로 충분하다. 색동의 언어, 비디오아트의 언어는 비트겐슈인의 언어를 훨씬 넘어선다.

"서양철학은 말도 안 되는 말(언어와 존재와 시간) 철학을 가지고 인간을 속여왔다. 주어는 없다" -도올. 아래 동영상 <아래> 위 목포에서 열린 백남준 특별전에 전시된 1998년 그의 작품

[7] 백남준은 시대정신을 중시했다. 그와 관련된 작품인 '한반도와 유럽이 그려진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emia to Korea)'를 보자. 여기서 백남준은 이미 60년 전에 '유라시아전성시대'를 예언했다. 백남준 스스로 보이스와 함께 유라시아 작가의 본을 보였다.

우리는 70년간 섬나라였다. 이제 그 멍에를 벗어나야 한다. 백남준이 주장한 유라시아 시대를 맞아 남행열차의 종착역인 목포에서 아침을 먹고 북한, 중국을 지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 그곳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세계미술품을 감상하면 어떨까 싶다.

[8] 백남준은 동료 플럭서스 친구들처럼 '지방자치 옹호자'였고, '문화 민주주의자'였다. 백남준 이번에 자신의 전시가 목포에서 열린 것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디지털 노마드시대, 변방은 없다"라고" 했다. "예술이 중심주의를 깨야 한다"라고" 말했다.

근대문화유산이 풍부한 목포는 예향으로 호남에서 품격 있는 문화도시다. 다만 백남준 같은 세계적인 작가를 만나지 못해 방황했다. 목포시민도 이번에 정보화시대 걸맞은 정보아트의 새로운 에너지를 받았기에 더 높은 문화적 자존심과 자신감을 되찾게 될 것이다.

백남준은 더 나아가 남의 나라 영토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이 최고급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그런 대중지성으로 전 세계에 공급한다면 그게 바로 '탈영토제국주의'가 된다고 봤다. 그러기에 인구수나 위치에 상관없이 목포시도 앞으로 그런 글로벌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