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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30세기

[백남준] 20세기 끝과 30세기 시작을 연결한 예술가

서양이 자꾸 동양을 분리 시키려 하니까 백남준은 평생 동양과 서양의 다리를 놓고 하나로 연결시키려 했다. 인터넷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과거 실크로드를 전자화(전자 Super고속도로) 한 것이다. TV부처도 마찬가지다. 동양의 우수한 사상(부처)과 서양의 우수한 과학(TV)을 연결시킨 것이다.

백남준: 20세기와 21세기 천 년을 연결한 예술가 천년에 한번 나오기 힘든 예술가

[1] 노자,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남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물리학에서도) -사이버네틱스에서 1965년
soft 한 디지털이 hard 한 아날로그를 이긴다 뭐 그러 소리인가?

백남준 1961-1962

[2] 백남준의 말인데 처음 들어본다. 'Sound Collage' 기법인가? 백남준은 평생 변함없이 끊임없이 동양과 서양을 어떻게 만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데(bridge art) 모든 관심을 두었다. 여기서도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를 연결시키고 있다. 백남준은 돌아가기 1년 전에 이제 <상하이> 전시만 남았다고 했는데 결국 생전에 중국(상하이)에서 전시를 못했다.

[3] 1963년 백남준의 참여 tv는 존 케이지 prepared piano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백남준 강좌 새로 생겼군요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21세기 백남준》
- 1부 강연 (매주 금요일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공개)
https://www.youtube.com/watch?v=dMSqRFpkoEE 
10/15 김희영 〈백남준의 전자 TV: 통제된 시간에 대한 저항〉
10/22 성기완 〈악기 살해자 백남준에 관한 짧은 보고서〉
10/29 이수영 〈백남준, 시간, 고고학〉
11/05 이예승 〈Good morning Nam June Paik〉
11/12 김금미 〈백남준, 감응의 예술: 물결에서 전파로〉
11/19 이찬웅 〈백남준의 전자 이미지의 철학적 의미〉
- 2부 라운드테이블 (11월 26일 금요일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공개) 모더레이터: 김홍희 강연자: 김희영, 성기완, 이수영, 이예승, 김금미, 이찬웅 토론자: 이원곤, 박만우, 이영준, 장태순, 이수연

백남준 샌프란시스코 모마 전시 풍경 백남준전시회 2021년 5월 8일–10월 3일 4층
https://www.sfmoma.org/exhibition/nam-june-paik-2021/

샌프란시스코 모마 전시 TV 시슬리 성당
샌프란시스코 모마 전시 TV 시슬리 성당
샌프란시스코 모마 전시 TV 시슬리 성당
1961 20개 방을 위한 심포니

매혹적인 광경과 소리의 폭동, 백남준 은 예술, 음악, 공연 및 기술을 획기적인 방식으로 연결하고 여전히 예술, 대중문화,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선구적인 실험 예술가의 200점 이상의 작품을 모았다 진정한 세계 최초의 초국적 예술가 중 한 명인 백남준은 매스 미디어와 신기술의 중요성을 예견하고 인터넷 시대의 통신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1974년 '전자식 초고속도로'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작가 최초의 서해안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장르와 전통을 초월한 백남준의 협업적 접근 방식을 기념하는 동시에 작가의 혁신적이고 유쾌하며 근본적으로 급진적인 작업을 조명했다.

I think Nam June Paik is the greatest artist of the 20th century.

[1] 나는 생전에 백남준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프랑스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파리8대학에서 백남준 강의 20년 하다)를 서울(갤러리현대에서 만나 인터뷰)에서 만났을 때 백남준 체취가 났다. 꼭 백남준을 만난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백남준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의 어머니였다(C'est Ma Mère)"고 대답해 놀랐다. 백남준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백남준은 자신이 백남준 책을 낼 때 마치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서슴없이 말한다. 백남준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다라고 I think Nam June Paik is the greatest artist of the 20th century.

<백남준과 보이스의 차이> 보이스: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연결하려 하다. 백남준: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려고 했다. 결론 그래서 백남준이 한 수 위다 -프랑스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John Lennon, Yoko Ono, Nam June Paik and Shuya Abe, opening of the Paik exhibition, Galeria Bonino, New York, 23 November 1971 &copy; Tom Haar

[1] 오노요코는 남편이 죽은 후에 백남준에게 심적으로 크게 의존한 것 같다. 최근 오노오코의 고백에 의하면 그녀는 항상 자신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누군가 자신이 의존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남준이 죽었을 때 추모사에 1번이 요노요코였는데 그녀는 고인이 된 백남준에 대해서 "남준은 늘 자신을 지지하고 내 편을 들어주어 어려울 때마다 정신적으로 의지한 내 마음 속의 부처였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백남준이 죽은지 60일 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백남준을 위한 추모 performance를 자진해서 선보이기도 했다

오노요코와 백남준이 처음 만난 건 1963년 말이다. 플럭서스회원인 요코는 존케이지의 대변인으로 동경에 왔고 백남준은 독일에서 전자공학을 2년간 독학을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당시 일본이 전자기술이 최고이기에 동경에서 그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와 왔었던 것이다. 백남준과 여인들 중에 샬럿 무어먼과 오노요코 그리고 시게코 여사의 관계는 복잡 미묘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래는 1971년 사진 백남준 전시회에 참석한 오노 요코와 존 레논 그리고 전자기술자 아베 John Lennon, Yoko Ono, Nam June Paik and Shuya Abe, opening of the Paik exhibition, Galeria Bonino, New York, 23 November 1971 © Tom Haar

[1] [2017 NJPMH Workshop 백남준기념관 워크숍] 4회 <현대물리학과 백남준> 발표: 윤천실(물리학자) 토론: 백용성(철학자, 독립기획자) 공연: 노경애(안무가), 송명규(무용가), 조명희(무용가)

중력은 매우 약한 힘... 그러나 우주 스케일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주거대구조형성 / 역제곱의 법칙 우주공간의 3차원이기 때문 만일 5차원이라면 / 아래 사진에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계보도 볼 수 있군요. 고전물리학 : 역학과 전자기학 / 현대물리학 :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장자> 천하 편에는 “지대무외(至大無外)=마크로 코스모스”와 “지소무내(至小無內)=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말이 나온다. 지극히 큰 것, 곧 무한대에는 밖이 없고, 지극히 작은 것, 곧 무한소에는 안이 없다

Laura Baudis&rlm; @lbaudis @lbaudis Friendly Niels Bohr Robot, 1996 - by Nam June Paik at @smkmuseum

[1] 백남준 I '닐스 보어'(Niels Bohr) 보어는 덴마크의 유명한 물리학자,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 받다. 그의 아들도 노벨물리학상을 받다. 덴마크에 가장 유명한 3인 중 한 사람. 나머지 두 사람은 동화작가 안데르센 그리고 철학자 키르케고르) 1996 덴마크국립미술관 소장 Laura Baudis‏ @lbaudis @lbaudis Friendly Niels Bohr Robot, 1996 - by Nam June Paik at @smkmuseum #Copenhagen

18세기에 서양철학을 총정리한 사람은 칸트다. 동서양예술을 총정리한 사람은 백남준이다. 그래서 그는 총체예술가다. 그의 미술은 음악에서 나온다 비디오아트는 미술과 음악이 합쳐진 토탈 아트다. 여기서 미술과 음악을 합쳤다는 것은 단지 미술과 음악을 합친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장르를 다 합쳤다는 말이 되고, 모든 감각을 다 합쳤다는 말이 된다. 공감각 예술이 된다. 보들레르에서 나온 미학이다.

<백남준은 부처닮은 예술가인가?> 백남준의 대표작은 <TV부처>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해석이 다양한 작품도 없다. 백남준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가져온 것 같다. 백남준은 이걸 <순수매체비판>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 백남준의 주 특기는 동양과 서양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다리를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동양과 서양에 대한 선입감을 버리는 것이다. 서양우월주의 같은 것은 정말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부처'와 '생각하는 사람'을 서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도 있다. 동양의 부처와 서양의 생각하는 사람을 서로 보게 하는 작품도 있다. 나는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과학이 서로 만나야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해석은 이 작품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할 수 있다. 여기에 답은 없다. 모두가 이 작품의 주인으로 해석하면 그게 정답이 된다.

동시에 그는 그는 20세기와 21세기에 천 년 간격에 다리를 놓은 브리지 아트(Media Bridge art)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비디오 아트 전자아트 위성 아트 레이저 아트 등을 통해 인류보편적 문제인 세계 평화와 공존이라는 주제를 예술을 통해 구현하려고 했다. 21세기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의 기반을 잡아준 것이다. 그는 이렇게 20세기 회화 조각 설치 그리고 일상의 예술화(삶의 세계 Welt des Lebens 철학용어) 등 예술을 전혀 새롭게 해석해 전자 회화 전자 조각 디지털 통신기술로 성취한 인터넷 설치 미술과 인간의 취향과 삶의 재미를 구체화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세계예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맑스는 유물론 철학자 그러나 백남준은 유물론 예술가다 : 그에게 매체가 예술이다. TV를 오브제로 삼아 콜라주 하는 예술로 서양미술사에는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를 창안하다. 기존의 미술개념을 바꾸다. 물감에서 전자로 매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다시 말해 물감페인팅에서 전자페인팅으로 미술 천년의 축을 바꾸다) 새천년 21세기 예술의 혁명을 이루다.

'보들레르 백남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아티스트' 보들레르 : 서구의 수천년 이분선인 선과 악의 구분을 허물다 그리고 백남준: 동양과 서양의 미술의 구분과 유화페인팅과 전자페인팅의 구분을 허물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천년의 축을 허물다. 두 사람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아티스트다. 산업화 시대, 공감각적 미학을 추구난 최초의 모던 시인이자 정보화 시대, 일체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장르를 종합한 시각예술가이다.

[] 백남준은 동료와 지인들이 열어준 그의 64회 축하생일에 누가 생일축하들 들려준다고 하니까 난 그 노래가 싫어 라고 말한다. 좀 다른 것 a little different 그의 예술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기존의 틀과 경계를 깨고 한 번도 없었던 것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그의 일관된 예술철학이었다. 백남준은 1960년대 유럽에 가서 모든 것을 다 우습게 봤지만 그에게도 큰 감동을 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중세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다. 그는 쾰른성당에서 이에 도취해 24시간 머문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보면 백남준은 미술에서 색과 형과 빛 중에서 빛에 꽂힌 것이다. 바로 <전자빛의 아름다움>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예술가다 전자아트 비디오아트 비디오아트가 탄생되었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의 남다른 관점 차별성 독창성이다 그것의 원류는 어디서 오는가 두말할 것이 없이 그가 어려서 많이 본 한국 전통굿판에서 본 현란한 색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광기와 색기(에로스), 무기(무당기)와 신기가 나는 작두와 같은 것에서 나는 번뜩이는 빛의 황홀경인지 모른다

[4] 일본인이 본 백남준 그의 동경대시절 숨은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 보다

백남준 1953년 일본에서 시브사와 미치코(步澤道子)와 첫 사랑이 있었다 동경대 불문과 학생과 같이 콘서트도 가고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었고 이 여학생의 오빠가 또한 일본에서 유명한 학자라고 하네요 일본에는 당시 천재로 통하는 야가와가 백남준과 같은 시대에 동경대에 다녔고 둘이 서로 많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동경대는 3학년이 되면 연구실(심도 있는 공부를 위해서)이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구스타프 르네 호케(Gustav René Hocke)는 1908년 3월 1일 - 1985년7월 14일) 독일 언론인, 문필가, 문화 역사가였다. 극단적 에로티시즘 미학자 "미궁으로서의 세계_매너리즘 미술(엽기예술에 가까운 비선형미술)」이게 그의 대표작이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독일문학자 타네무라에 의해 소개되다. 여기에 결합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1953년 백남준은 일본에서 같은 동경대 불문과 학생 시브사와 미치코(步澤道子)와 첫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똑똑하고 인형처럼 예쁜 여학생이었다. 수줍음을 잘 타는 백남준은 그녀 앞에 서면 얼굴을 붉어졌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끙끙 앓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 대학생으로는 살 수 없는 엄청나게 비싼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가 연주하는 버르토크 첼로연주회 티켓을 건넨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고 너무 비싼 표라 마음에 걸려 돌려주려고 했다. 그녀가 백남준의 주소를 알아내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백남준이 사는 곳은 동경에서도 최고급 주택가가 모여있는 부촌이라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백남준이 나왔고 부잣집 도련님답지 않게 옷차림은 허름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형들과 여기서 살았던 것이다.

그녀가 연주회에 못 간다고 하니까 백남준이 함께 가면 안 되겠냐고 애원하다시피 해 겨우 같이 가게 된다. 차도 같이 마시며 데이트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 애인에게 돌아갔고 백남준의 애틋한 첫사랑은 그렇게 끝나고 만다. 초대 백남준 아트센터 이영철 관장이 3년 전 일본 출장을 갔다가 그녀를 만났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 스마트한 미인이라고 기자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치원 동창인 이경희 여사와 백남준 선생의 인터뷰를 보면 백남준은 이 여사에게 독일에서 첫 전시 후 1964년 동경에서 첫 번째 퍼포먼스를 했는데 미치코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걸 깜박 잊어버려 끝난 다음에야 그 생각이 났다고 말했단다. 또한 뉴욕시절 백남준이 콜롬비아대 다니던 미치코의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미치코가 자기 얘기를 했다는 걸 들었다며 마치 영화이야기처럼 말했단다.

[5] 백남준이 너무나 좋아한 존 케이지가 이런 64괘 주역 악보를 보고 작곡을 한 것인가요 뭔가 새로운 실험적 음악을 작곡을 하려고 시도한 거죠 백남준도 바로 그런 점 누구도 하지 않은 그런 무작위적 실험음악과 무위음악(기존의 음악을 없애야 새로운 음악이 나온다는 음악)을 좋아한 거죠 ㅋㅋㅋ 그래픽적으로도 참 아름답다

64괘

미국 LA 한국 문화원에서 만든 백남준 SF 회고전 영상.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 Rudolf Frieling(SF 미술관 미디어 아트 큐레이터), Andrea Nitsche-Krupp(SF 미술관 미디어 아트 어시스턴트 큐레이터)가 소개하며, 남준의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50년 경력의 작품 200여 점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백. 큐레이터는 또한 자신의 큐레이터 선택과 그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료집 https://www.youtube.com/watch?v=Mk_O8rYvtPM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백남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맑스를 능가하는 진짜 맑시스트가 되고 싶었나. 그는 그렇게 폭력 사용을 반대하다. 아무리 정당해도 폭력을 쓰면 망한다. 미국의 인디언 학살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은 인디언 학살을 통해 나라를 세우다 이것을 비판한 작품이 바로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 "나는 아메리카를 사랑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사랑한다" 여기서 아메리카는 미국의 인디언을 말한다.> 백남준 빈부 차를 없애기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다. 백남준 프랑스혁명 위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하는데 과연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다.

<백남준 전략: 서양에서 거의 모르는 나라인 한국의 미술가를 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미술전시장에 피아노가 들어오다니 그리고 TV는 또 무슨 궤략 혹은 궤휼(괴상한 이벤트)인가> 백남준 첫 전시에서 서양에서 보여주는 전시방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서양식 룰과 형식과 개념을 완전하게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혼을 빼놓고 정신을 못 차라게 했다. 예술 아니 전시의 목적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영국의 센세이션 전은 비교가 안 된다. 그는 서양미술판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다. 서양예술가들 맥없이 당한 것이다. 백남준 첫 전시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백남준의 첫 전시는 한 마디로 서양미술귀신추방굿이었다

Hall with pianos at the Expostion of Music_Electronic TV 1963 Photo by Manfred Leve

Hall with pianos at the Expostion of Music_Electronic TV 1963 Photo by Manfred Leve

백남준은 왜 첫 전시에서 '독일 바보학에 대한 연구(A study of German Idiotology)'를 들고 나왔나? 요즘 말로 좀비 연구인가? 작년에 좀비 세상을 풍자한 벨기에 국가관에서 선보인 '몬도 카네(Mondo Cane 개 같은 세상)' 가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 /

I have concluded that we do not have an ideology, we have an idiotology. Ideology is defined as: "A system of ideas and ideals, especially one that forms the basis of economic or political theory and policy.." According to Louis Althusser, ideology "can be described as a set of conscious and unconscious ideas that make up one's beliefs, goals, expectations, and motivations." Our current idiotology is based on belief in: the Capitalist system, the Male-dominant system, Wars forever, Progress based on debt, Failing to Feed people, Medicine that causes health problems, Education that constricts consciousness, Business that competes, Allowing 1% of the people to own everything, Destruction of the environment, Religions based on rules made up by humans, Monsanto et al.

[6] 백남준 아카이브 일곱 트럭분이 부인 시게코의 동의하에 켄 하쿠다주도로 스미소니언미술관에 기증했다. SAAM연구원들이 2년간 밤낮없이 분류하고 복고 손질을 해서 지난번 백남준 특별전에 일부 공개했다. 그의 수집품을 가히 만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 작품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관리보전유지하기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과 정성 TV구형모니터 구입하기 등 그러나 그 아이디어만큼은 누구도 추종할 수 없기에 미국에서도 그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지난 특별전에 복원 전시되었다. 스미소니언으로 간 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미국국립미술관이기에 모마나 메트로폴리탄보다 더 확실한 미술관이기에 한국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갈 수도 있는 아카이브다 ㅋㅋㅋ

[7] 5차원 사기 백남준의 첫 전시에서 선 보인 그의 기상천외한 상상력 입으로 음악을 먹고 마시고 듣고 보는 방식 기가 막히다. 그야말로 5차원 사기다. total art for all senses 모든 감각을 위한 종합예술이다. 서구인들 나자빠지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