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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문화기행

[목포아트투어] 붉은 동백 햇살이 빚은 '풍경'

[2021년 1월 20일 목포 방문] 문화예술의 지방화 한국이 선진화되는데 급선무 중 하나이다. 백해영 갤러리 지방 순회전 등 이곳 문화담당자와 긴밀한 대화와 협의 예정이다. 목포엔 시가 소지한 문화공간이 상당히 많다. 목포 관련 안내로 5곳 예비 전시장 순회 1)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목포 시립미술관) 2) 성옥기념관 3) 오거리 문화센터 4)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5) 아트센터 신선미술관

목포 항구 선착장

[하나]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목포 시립미술관) 목포시 유달로 116 061-270-8300

김암기 전시
김암기 작가의 겨울을 벗어나 봄으로 가는 풍경을 그린 작품

[둘] 성옥기념관 목포시 영산로 11 (061-244-2527)

[한영섭(Han Yeongseop) 1941년 평안남도 개천 출생. 자갈돌 위에 한지를 바르거나 구옥(舊屋)의 석가래,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 사용] 한영섭 작가는 거대한 크기의 한지회화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한지와 탁본의 화가’ 로 국내·해외에서 왕성한 활동 중에 있다. <작성 중>

사물의 표면 질감을 찍어내고 떠내는 일련의 작업 과정을 통해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된 전면 회화 양식의 화폭 위에 자연 속 깊이 내재된 운율을 표출하는데, 이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그만의 고집스러운 작업 방식이다. 그는 한지에 대한 실험 정신이 남다른데, 두꺼운 요철지를 써 새로운 한지의 질감을 살리는 방식을 고수한다.

한때는 자갈돌 위에 한지를 바르거나 구옥(舊屋)의 석가래,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수십년 간의 고민을 통해 그는 우리 한지가 지닌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이는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거대한 작품에서 뿜어내는 아우라와 시적 운율은 그의 일상 속에서 비롯된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 무심한 흙바닥 등 그가 관찰하고 품어낸 자연은 작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서 그가 찾아낸 세계는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인 것이다.

한영섭은 1941년 평남 개천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월남해 부산에서 4년,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1981년 이후로는 경기도 광주에 정착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광주에서 비로소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며 작품에 성숙미를 더했다. 그는 "광주는 산수가 아름답다. 어딜 가도 산이고 강이다.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기 좋다. 현재 내가 느끼고 숨 쉬는 땅으로 제 2의 고향"이라고 했다.

한영섭은 전통 소재인 한지 위에 자연을 담은 '한지와 탁본'의 대가다. 특히 자연 소재인 돌, 나뭇가지, 들깻잎, 옥수수 줄기 등을 사용한다. 식물의 표면 선들이 교차 반복되면서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오직 선으로만 구성된 그의 작품은 한국적 미의식을 표현한다.

그는 "초창기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한국적인 것을 연구해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대학 당시 경주에서 고청 윤경렬(1916~1999) 선생을 만났는데 그 분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본 틀을 잡을 수 있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한지를 택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림은 의미가 없었다. 한지는 접었다 펴도 원상복구가 가능하다. 수용성이 있어 그 대상의 형태에 맞게 움직여준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1980년대 국내에서 한지작가 붐이 일어났다가 거품이 빠진 후에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1987년부터 본격적인 한지작가의 길을 걸어온 그는 특히 거대한 캔버스에 수행한 작업물이 많다. 자연을 그대로 담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잘 팔리지 않는 그림들이지만, 그래도 그 작업 방식을 놓을 순 없다.

[한영섭 화가 소개] cm.asiae.co.kr/article/2016092910205283525

 

"동양화에 담긴 자연으로 한국의 美 알려"

동양화가 한영섭(75·사진)은 '해방 1세대 작가'로 꼽힌다. 운동선수로 치면 노장이지만 예술혼은 청년을 무색하게 한다. 29일부터는 안산시 경기도 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기전본색(畿甸本色

www.asiae.co.kr

[셋] 오거리 문화센터 목포시 유달로 116 (061-270-8300)

오거리문화센터는 구 동본원사였다. 동본원사는 목포에 들어선 일본 첫 불교사원으로 정식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이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1898년 4월에 세워졌으며 목포심상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목포 내에서 일본인 소학교로 최초ㆍ정식 운영되기도 했다.해방 이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목포중앙교회로 사용하게 되어 사찰이 교회가 되는 이색적인 약력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 1월 19일에 오거리문화센터로 개관하여 각종 문화행사 및 전시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점심] 목포 진동 횟집

목포 진동 횟집 점심 메뉴

목포 진동 횟집 입구

[넷]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목포시 삼학로92번길 68 (061-245-5660)

김대중 대통령 백남준과에 속하는 사람. 정보마인드가 강했다. 정보와 지식 강국을 열망하다. 새천년들어서자 국민컴퓨터 보급과 함께 인터넷 ADSL 망을 세계에서 제일 먼저 깔다. (ADSL 1998년 8월 시범 서비스 시작, 1999년 4월 사용 서비스 시작) ADSL 정보시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소통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다. 지금 전 세계가 민주주의에 대한 절망으로 고통을 당하지만 한국만이 민주주의를 본원하고 코로나 대비를 잘 하는 것을 바로 한글과 인터넷 때문이다. 가장 빠른 스마프폰으로 전 국민이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은 지식근로자(정보노동자) 바로 그 자체이다.

[다섯] 아트센터 신선미술관 목포시 평화로 14번길 13 (061-284-7887)

[유달산] 목포 전경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케이블 카

[여섯] '목포 문화원' 전라남도 목포 해안로249번길 34 (061-244-0044) 웹사이트

목포 문화원
전라남도와 폭포시

[강진] 정약용 유적(康津 丁若鏞 遺蹟)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해남] <전라도 사람들이 조선을 구하다>
이순신 명량 해전 율돌목 우수영 임진왜란 이곳만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 
이곳 호남 사람들 조선을 위기에서 구하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