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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문화기행

[무용가 던컨] 내가 젤 좋아하는 미국 예술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예술가 이사도라 던컨 // 1927년 9월 14일, 위대한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이 파리의 몽마르르트 예술가 묘지에 묻혔다. 1902년부터 프랑스에 정착한 그녀는 춤에 혁명을 일으켰고, 투투와 포인트를 버리고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이전에는 맨발의 춤 상상할 수 없었다.

이사도라 던컨, 그녀는 미항(美港) 샌프란시스코(SF)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금융업자, 어머니는 음악 교사였다. 그녀는 4자녀 중 막내였고, 아버지의 던컨 은행 파산 후 일찍 가족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인, 예술 옹호자 그리고 카사노바였다. 그녀의 궁핍한 어린 시절 어머니는 휘트먼 시를 읽어 주었다. 그녀는 열 살 때 학교를 중퇴, 해변에서 나체로 춤을 추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궁핍해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녀는 시카고로 이사, 클래식 댄스를 공부했다 뉴욕으로가 극장 회사에 취직했다.그녀는 무관심과 몰이해, 궁핍을 견뎌내야 했다. 그녀는 예술가로써 고통과 비극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런던으로 그리고 파리에 정착했다.

그녀는 특히 그리스 조각의 자세들을 춤으로 고안, 맨발로 그리스식 가운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발레에서 기존의 기준을 파괴해 튀튀(Tutu, 발레용 스커트)나 토슈즈를 벗었다. 그녀의 춤은 고전을 벗어난 혁명의 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 마음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파도를 자연의 춤으로 보아 인공이 아닌 자연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녀는 즉흥이라지만 몸짓, 의상 등을 그려가며 준비했다.그녀는 무용 세계에 신선한 바람, ‘자유 무용(Free dance)’을 창시, 현대 무용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녀의 춤은 비난받았지만 비평가들에겐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녀의 춤은 파격! 젖가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는 춤의 자유정신 추구(발레에 대한 반발), 고대 그리스의 정신의 부활(건강미의 구현), 음악을 무용에 종속(음표가 아닌 느낀 감정)시켰다.그녀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라는 ‘There is no free mind without a free body’, 던커니즘(그녀uncanism)을 유행시켰다출처 : 덴탈아리랑(http://www.그녀entalarirang.com)

한국의 덩컨 최승희

덩컨에 의한 자유댄스는 현대 무용의 선구가 되었다.

그녀의 예술은 첫째로 자연스럽다는 것, 둘째로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것, 셋째로 음악을 무용에 종속시켰다는 것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녀의 무용에서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기교 제1주의의 고전 발레에 대한 반발이며, 자유 정신의 찬가(讚歌)였다. 그 결과는 그녀의 로맨틱한 정신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건강미에 대한 강렬한 사모(思慕)로서 나타났다. 그녀는 또한 기성의 음악곡을, 악보를 분석하거나 음표를 더듬거나 하는 일 없이 그 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감정적으로 정서깊게 무용으로 표현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쇼팽이나 브람스, 베토벤의 교향곡조차 자기 멋대로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기성적인 표현 기교를 답습하지 않았으며, 기법(技法) 그 자체, 표현 그 자체에도 창의를 주장하여, 그 결과로 무용예술을 개방하여 한정된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대중의 손으로 옮기는 길을 개척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후에 일어난 신무용 운동의 전부에 영향을 미치어 현대 무용의 어머니라고까지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