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네는 스위스 작가 자코메티와 절친 그리고 두 사람 사진 / 90년대 사보에 투고한 <장 주네> 글.
<善의 경계를 넘어 惡의 심연에서 성스러운 절대적 미를 캐어 낸 세속적 구도자 - 장 주네 (Jean Genet)> 장 주네(1910-1986)의 이름은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파란만장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문학 세계가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에 매료되었다.
20세기 프랑스 문학 이야기의 주인공 10인 중에 장 주네는 빼놓을 수 없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 취향과 편견일지도 모른다. 20세기 프랑스 문인 중 장 주네 말고도 행동적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 앙드레 말로나 물과 불의 시학 등으로 유명한 현대적 몽상가 가스통 바슈라르, 이오네스크와 함께 무의미의 언어로 세계 연극의 충격을 준 부조리극의 거장 사무엘 베케트가 있다.
그리고 철학 교수 출신이었지만 공장에 들어가 밑바닥 삶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불꽃의 삶을 살다 요절한 시몬 베이유, 그리고 전 생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온 운명과 싸우며 죽을 때까지 30살 연하의 남자와 사랑을 불태웠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기라성 같은 작가는 많다.
사실 그가 프랑스 문학사에서 크게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세계관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착란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려다 보다는 점이 다른 작가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연극 평론가 마틴 에스린 Martin Esslin은'부조리 연극 The Theatre of the Absurd'(1961)에서 장 주네를 사르트르, 카뮈, 이오네스코, 베케트, 핀터와 함께 무의미와 대화 단절 그리고 반항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부조리 연극 작가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주네는 분명 그들과는 좀 다르다.
범죄자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경험자인 주네는 차라리 중세기 학사 출신이면서도 범죄자의 대명사인 비용이나 사디즘의 창시자 사드, 세기말 반항적 작가 랭보, 베를렌느 등과 같이 저주받은 시인의 그 전통에 가장 충실한 자였고 그 행렬에 가장 최근 가입자였다.
20세기는 무의미와 부조리, 비이성과 반종교 시대다. 다시 말해서 모든 기성 가치관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시대다. 맑스의 반종교주의와 프로이드의 비합리주의가 그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다. 니체의 선언 “신은 죽었다” 라는 말처럼 신이 없는 시대 인간의 조건은 행동과 죽음으로써 자유와 영예를 얻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우상과 싸우는 일이 너무나 힘겨운 시대였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는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無에서 有를 창조해야 한다고 보았다. 역사의 순간 순간을 선택하며 그 선택의 대가인 책임과 행동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20세기는 세계 대전과 광기 혁명의 피 흘림으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이런 20세기의 와중에서 장 주네는 밑바닥적 삶의 리얼리티와 그것이 주는 참담한 진실을 표현하며 몸부림 친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였다.
평론가 테일러 J. R. Taylor는 주네를 “독창적 작가로 고독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프랑스 현대 문학을 헤쳐 가도 있다.” 라고 했고, 또 코 R.N. Coe는 장 주네의 비전'The Vision of Jean Genet'(1968) 저서에서 “주네의 관심은 인간 체험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체험이 지닌 의미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는 데 있다.”라고도 했다.
주네를 극구 찬양한 사르트르는 '聖 주네, 배우와 순교자' (1952)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는 이 저서에서 “주네는 상황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더욱 힘찬 신념에 사로잡혔고, 오늘날 삶이 부조리하면 할수록 내일까지 살아남는 것을 더욱 열망했으며, 현재의 어둠이 내일 동이 틀 것을 보증해 준다고 믿었다‘ 라고 쓰고 있다.
주네는 사회라는 감옥에 갇힌 인간의 모든 불능성을 보여 주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타인과 접촉과 그 징검 다리는 무참히 차단 당함을 폭로했으며, 우리 시대 신화 파괴와 함께 도덕적 사회를 거부했고, 언어의 전달 기능을 평가 절하하며, 모든 인격과 그 동기를 포기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라도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연보를 살피는 것은 필수적이다.
장 주네는 1910년 12월 19일 파리 빈민 구제국 소속의 의료원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난다. 생후 7개월만에 빈민 구제국에 넘겨져 양부모인 레니에 부부에 위탁 양육된다. 그의 양부모는 점잖고 선량한 사람으로 장 주네를 잘 보살폈다. 특히 그의 양어머니인 레니에 부인은 신앙심이 깊은 여성으로 주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1911년 9월에 알리니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랐다.
1916년 9월 초등학교에 입학 다른 아이들 보다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때부터 손버릇이 나쁜 아이였다. 그의 양부모는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는 사탕 과자 등 훔치는 일에서 돈으로 그리고 학교에 보관하는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벽의 범위는 넓어져 갔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숨기지도 않았다.
1919년 그의 친어머니가 유행성 독감으로 파리에서 사망한다. 1922년 4월 4일에는 그의 양아버지가 사망하고 그의 딸 베르트가 법적으로 주네의 위탁 양육자가 된다. 이 때 주네의 도벽이 중단된다. 1923년 초등 학교 졸업하게 되고 양가족과의 위탁 관계도 끝나게 된다. 위탁 관계가 끝나면 보통은 남자 아이들은 시골 선머슴으로 여자 아이들은 하녀로 가기가 일수지만 그는 머리가 명석해 작업 학교로 들어가는 특전을 얻기도 한다.
1924년 이 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그 학교를 탈출하고 만다. 그 이후 그는 더 이상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다. 1925년 4월 빈민 구제국 의해 장임 작곡가 르네 드 뷕세의 집의 안내자 겸 심부름꾼으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주네는 예술적 기질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의 詩作法도 이때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인의 서적들을 찢어 내거나 화장을 하고 밤새 돌아다니는 둥 별난 행동과 비록 소액이지만 주인의 돈을 유용 하는 등 주인의 눈에 나 6개월만에 쫓겨난다.
1926년 2월 결국 그는 청년의 집에 수용되지만 결국 탈출 무임 승차 부랑죄로 체포되어 수감되는 등 비행 청소년 선도 기관에 재수용되는 등 끝없는 탈출 사고가 이어지고 추위를 참지 못해 훔친 담요 한 장으로 절도죄는 더 추가된다. 이 때부터 그의 동성애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29년 3월1일 성인이 되기 전에 감화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군 입대를 자원하여 1936년 6월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2년 계약으로 시리아 배치 제대하고, 2년 계약으로 다시 입대하여 모로코에 배치되고, 또 3년 계약으로 국내 근무 또 4년 계약으로 강력한 보병 전투 부대 배치 등 군복에 계속하지만 결국 탈영하고 만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와 작품에 큰 영향을 주는 아랍 세계와 접하게 되고 중동 문제에 관심 몇몇 유명 문인들과 편지 교류를 하는 등 문학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6년 7월 위조 여권으로 프랑스 탈출, 1937년 7월 귀국할 때까지 1년간 유럽 각지를 방황 가는 곳마다 체포 즉시 추방되지만 체코에서만은 인권 단체의 도움으로 5개월간 체류하기도 한다. 이때 몇몇 유명한 외국 작가와도 인연을 맺는다. 특히 릴리 프링하임이라는 독일의 여성 정치인과 그에게서 프랑스 어를 배웠던 젊은 부인 블로흐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1937년 9월 파리의 한 백화점에서 손수건 한 다스를 훔치는 일에서부터 그의 길고 긴 범죄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재입대를 시도했다가 술 다섯 병을 훔친 협의로 체포 다시 석방하는 등 이런 생활이 1944년까지 8년간 계속된다. 그의 죄목은 주로 절도였으며 절도 품목은 옷감, 책 등 사소한 물건이었다.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리고 다니기도 하고 책을 파는 과정에서 알게 된 기자 젊은 작가를 통해서 문학적 재능과 식견이 높은 도둑으로 소문이 난다.
1942년 9월 책 절도죄로 프레슨 교도소에 복역 중 '사형수'라는 시를 써서 인쇄 기술이 있는 감방 동료의 도움으로 시집 출간하게 된다. 그의 최초의 문학 작품은 모리스 필로르주라는 사형수를 추모하여 썼으며 이 충격적 시는 1943년 당대의 최고 거장 장 콕도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고, 그는 그 후에도 계속 책을 훔치는 등 절도가 계속되자 그의 전과도 크고 해서 종신형에 처할 뻔했지만 콕도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넘긴다.
그 후 또 1년간의 복역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저명 문인들인 사르트르, 콕도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탄원서 덕분에 1949년 8월 특별 사면을 받는다. 이 때 주네 문학의 1기인 '도둑 일기'가 발표된다. 이때까지 발표한 주요 작품은 '꽃의 노트르담' '장미의 기적' '장례식' '브레스트의 캐럴'<소설> '장송곡' '노예선' '사랑의 노래' '퍼레이드' '쉬케의 어부'<시> '소년범'<방송극> '거울 부인' <발레> '엄중한 감시'와 '하녀'<연극> 등 많은 장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950년 이후 5년간은 주네 문학의 공백기였다. 이때 사르트르의 주네 문학 비평서 '聖 주네'(1952)가 발표되고, 1956년부터는 그의 문학 제2기로 희곡과 연극에 전념한 시기로 '발코니'(1956) '흑인들'(1958) '병풍들'(1961) 희곡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실'(1958) '렘브란트의 비밀'(1958) '곡예사'(1958) '렘브란트를 갈기갈기 찢어 변소에 던져 버린 뒤 남는 것'(1967) '...라는 이상한 단어' (1967) 등의 예술론도 발표된다.
1960년대는 그의 정치적 발언이 강해지는 연대다. 1968년 소르본 학생 운동에 참여했고, 정치적 성향의 글 발표하였다. 그 이전인 1962년부터 반전 운동, 남아공 인종 차별 반대 운동, 국내외 인권 운동에 적극 참고 미국의 흑인 운동에도 열렬한 옹호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1970년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기지를 방문 팔레스타인 주권 운동에 참여하며 그들의 최소한의 인권과 생존 운동에 적극 지지를 보내다. 1972년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른 '사랑에 빠진 포로'라는 유작을 남기기도 한다. 1986년 '사랑에 빠진 포로' 출판을 위해 파리로 오던 중 4월 14일날 밤 잭스 호텔에서 사망 그의 유언에 따라 모로코에 묻혔다.
그는 일단 사회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있다. 그가 사생아라는 점부터가 그렇지만 그는 이 사회와 세상을 윤리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사회의 질서와 체계가 다 낯설다. 그는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빵을 훔치는 것이고, 춥기 때문에 옷을 훔치는 것이고, 사랑의 대상이 없기에 동성애에 빠진 것이다.
그의 상황은 늘 최악의 상태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행한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최선은 즉 최악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의 악을 단지 나타내는 것뿐이다.
감옥 안에서 최선은 최악이 되고 최악은 최선이 된다. 거기에서 선의 보호는 악의 변호밖에 안된다. 그래서 그는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그는 부정에 대한 과도한 열기를 지니고 있으며 아무것에도 감탄하지 않는다. 문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속물주의의 후광을 벗겨 내는 데 주력한다. 최선의 상황에서 최선을 추구하듯 최악의 상태에서는 최악을 추구한다.
장 주네는 부조리한 성격이 너무나 흔한 기존 사회의 방법을 뒤집는다. 그에게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질서를 생각해 볼 수 없다. 장 주네의 존엄성은 바로 이런 악에 대한 정당한 요구다. 그러나 주네는 그것이 엄청난 고통과 감시 모든 이의 조롱과 괄시가 있음을 알지만 오히려 그는 그 고통과 비참함을 원하고 또 즐긴다고 까지 할 수 있다.
그에게 위선이 없는 선은 없으며 거부할 악은 없다. 그는 신비주의자가 신령한 황홀경에서 신과 만나는 것같이 그는 전적으로 비참한 상태에서 어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자학적 쾌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이것은 바로 온갖 추행과 추문'scandale'을 통해 신성함'sainteté'을 얻는 그의 독특한 구도 방법이다. 이 말을 달리 쓰면 프랑스어가 가지는 가장 아름다운 낱말 중 지고한 악'mal suprême'이라고 바꿀 수 있다.
장 주네의 독특한 사회 편견은 사실 숭고한 것이다. 장 주네 성스러움은 바로 이러한 비참함에서 온다. 그 길만이 만이 그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악의 체험을 그의 의식 속에서 존재시키는 왕도가 된다. 그는 말한다 “나는 괴물이다 폭풍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그의 최고의 코지코'cogito'이다.
장 주네에게 기존의 모든 것은 낯설다. 그는 최악의 상태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법칙들을 위반함으로 그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가치를 짓밟는다. 그는 삶을 온통 무화시키는 차가운 바람과 먼지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창작의 출발을 최선이라는 관점에 두었다면 그는 모든 창조의 출발을 최악에 두었다. 물론 장 주네 이전에 새로운 전율을 창조한 보들레르의 악의 미학도 있지만 장 주네는 더욱 더 적극적 악의 육체적 미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그가 숭고한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선을 통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데 있다. 그의 최악은 서서히 최선으로 변화되어 간다. 이것은 장 주네 문학의 기적 사건이다. 인간의 이성과 열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 중 하나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타락의 방법을 통해 구도의 길을 가는 원효나, 악의 시학을 통해 절대 미의 세계로 가는 보들레르나, 고행을 통해 희락을 얻는 부처나, 고난을 통해 생명을 얻는 예수나 다 같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은 존재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성자에 가까워진다. 그는 전혀 종교적 관념의 시계에서 동떨어져 있다. 그가 가슴 속에 결백함이라는 감정은 머물 수 곳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그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진리로 가는 길은 선이나 악이나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늘 보통 기존 사고들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혐오감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가 보여 준 여러 가지 비열함, 배반자와 도둑과 절도자와 남색가의 모습 등 도저히 사회 윤리로 용납 안되는 행동만을 일삼았다. 그는 거꾸로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시위인가 아니면 나 같은 사생아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경고인가! 하여튼 그의 행동을 남다르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그는 오물 같은 이 사회를 스스로가 오물이 되어 정화하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오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해 하고, 비참해 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가 만드는 범죄의 진정한 왕권은 악을 실행하는 데 있다. 배반 살인 절도 그리고 더러운 악을 향해서 미끄러지기에 바쁘다.
기존 개념의 절대선'souveraine'을 확실하게 유지시켜 주는 법칙들을 넘어서 죽음에의 무관심 속에서 일어나는 힘 그 신성한 것은 금지된 것, 격리된 것, 위험한 것에 가 닿는다. 그것이 깨지고 소멸할 때 일어나는 힘은 바로 장 주네의 에너지의 기원이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바로 성스러운 악'mal suprême'이라 한다.
성스러움의 길은 좁은 길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그 길에 빠져들면 그 길을 피하는 것은 거기에서 후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길에는 불행과 고통이 늘 따라 다닌다. 그는 그 고통만큼 그 불행만큼의 힘을 얻는다. 바로 그 힘에 의해서 그는 성스러워지는 것이다
장 주네는 이익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거부한다. 신성함을 거슬리는 선과 분명하게 대립하며 철저하게 악을 고집 한다 완벽한 악 그것이 바로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무제한적 위반의 막다른 골목 악인은 악을 행하고 악을 원한다. 그리고 그는 악에 대한 공포 속에서 죄악의 스릴을 발견한다
모든 법은 선하다는 것을 그는 거부한다. 그는 선은 불규칙성'irrégularité'이며 선 그 자체는 위선의 존재 지속성을 보장해 주는 수단일 뿐이다 라고 믿고 있다. 그 악에 대한 편애는 선의 위선에 대한 편견이다. 스스로 악이고자 했던 것은 그에게는 일종의 선일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악에 대한 선에 대한 집착할 뿐 선의 무화는 더 이상 아니다.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 독자와 저자의 대화는 늘 불통이다. 문학은 의사 소통이라고 하지만 의사 소통에 대한 주네의 무관심은 바로 위선적 의사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주네의 글은 허식적인 구절만큼이나 재미있지도 감각적이지 않고 차갑지만, 재치 넘치는 말들의 행렬은 없다. 그러나 그의 구절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난다. 그는 어떤 지식인도 따라갈 수 없는 그만의 언어, 악의 언어, 숭고한 악을 승화시킨 언어는 황홀하고 성스럽다.
그것은 때로는 너무 호화롭고 차갑기까지 느껴져 좋지 못한 맛을 내기도 한다. 그의 언어적 현란함은 루이 아라공 초기시에서 보는 그것을 연상시킨다. 막힘없는 말투와 독자의 저자에 대한 노예 근성을 파괴시킨다. 그의 언어적 변증법은 주객을 전도시킨다. 그의 타락의 미학은 참다운 진리의 터널로 가는 과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선과 함께 악과 더불어 살아 갈 뿐이다.
그는 중세 사회에서 소비 사회에 이르기까지 악의 실체를 파헤치며 진정한 의사 소통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불가해성 그리고 절대성을 선과 악을 포함시켜 그것을 넘어서려 했다. 배반된 적대성, 근친상간, 남색, 외설. 살인 행위에까지 그는 모든 신화와 타부와 토템에 도전한다. 그는 한 시대를 넘어 예언자적 면모와 함께 보다 인간적 사회의 면모를 제시했다. 그는 세속적 無償과 신비한 不可知 두 세계가 만나는 그 곳에서 그의 예술은 늘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의 삶과 문학은 너무나 독특하다. 선의 경계를 넘어 악의 심연에서 성스러운 절대적 미를 캐내는 세속적 구도자로 그의 문학적 힘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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