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의 북미 최초 대규모 개인전 《창발創紡 개최 전시제목: 《양혜규: 창발創發(Haegue Yang: Emergence)》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 에서 전시 일정: 2020년 10월 1일-2021년 1월 31일까지 웹사이트: https://ago.ca/exhibitions/haegue-yang-emergence
온타리오 미술관 소개 : 캐나다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토론토에 위치한 온타리오 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은 1900년 영국령 시기에 개관하였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미술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짜임새 있는 전시 기획은 물론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약 105,000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보유하며 북미 대표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2008년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진행한 증축 프로젝트(Transformation AGO) 이후 현대 건축물 명소로 주목받으며 연간 약 백만 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한다.
북미 주요 미술관 중 하나인 캐나다 토론토 소재의 온타리오 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 이하 AGO)은 작가 양혜규를 초대하여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10월 1일에 개막한 이번 전시는 《창발創紡이라는 제목 아래 1994년부터 현재까지 총 84점에 달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작업 여정을 조망한다. 《창발》은 지난 2002년 이후 캐나다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단체전과 비엔날레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어 온 양혜규의 작업을 비로소 북미의 관객들에게 총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양혜규의 작업에는 빨래 건조대, 옷걸이용 행거, 전구, 털실, 통조림, 방울 등의 비전통적인 재료들이 이용된다. 일상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일견 부수적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오브제, 재료 혹은 방법론은 시지각적으로 작업 전면에 등장한다. 작가의 가장 특징적인 재료로 널리 인식되어 있는 블라인드를 비롯한 일상적이며 현대적인 재료들은 자연과 인류 문화 및 역사의 다면적 층위와 연동하고, 이에 따라 작업 내에서 그 의미적, 형식적 진화를 거듭해왔다. 제목이 시사하듯 《창발》전은 하나의 비교적 평범한 주제 혹은 소재의 단위가 복합적인 형식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마침내 이주와 이동, 혼성 문화의 역사적, 동시대적 서사를 일깨우는 순간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창발의 순간이 연이어지는 양혜규의 작품 세계를 두루 살피고자 한다.
의뢰작과 신작: 평면 작업, 공감각적 설치작, 수행적 조각, 벽지 작업을 아우르는 84점 이상의 전시작은 대부분 미술관 5층에 위치한 비비안 & 데이비드 캠벨 현대미술센터(Vivian and David Campbell Centre for Contemporary Art)에 배치된다. 이와 함께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미술관이 작가에게 의뢰한 대형 블라인드 설치작 <직조된 흐름 – 평행선들의 합류(Woven Currents – Confluence of Parallels)>(2020)는 조이 & 토비 타넨바움 조각 아트리움(Joey and Toby Tanenbaum Sculpture Atrium)에, 벽지 작업 <지각地殼 파동 – 대황야를 위한 푸가(Tectonic Undulations – A Fugue for the Great Wilderness)>(2020)는 미술관의 남쪽 출입구 로비에 각각 자리 한다.
특히 <직조된 흐름 – 평행선들의 합류>의 경우, 여타 서구의 미술관과 달리 이누이트와 세네카 등의 토착 원주민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집해온 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에 영감 받은 작가가 《창발》전을 위해 새로 기획한 신작이다. 또한 작가는 서로 다른 시기에 건축 혹은 증축되어 여러 건물로 구성된 이 미술관의 다양한 공간 중에서도 미술관의 고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를 택하여 신작을 설치했다. 수차례의 보수· 확장을 거듭한 다층적 건축사는 <직조된 흐름 – 평행선들의 합류>가 은유하는 바를 담는 일종의 건축적 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업은 1613년 현재 뉴욕 업스테이트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하던 5개의 원주민 부족연맹(이로쿼이Iroquois 혹은 호데노소니Haudenosaunee)과 네덜란드 침략자 사이의 불간섭 조약을 상징하는 유물 ‘두 줄 왐펌 협약(Two Row Wampum Treaty)’에서 영감을 받았다. 흰색과 보랏빛을 띄는 조개로 만든 왐펌(조가비 구슬, 북미의 옛 원주민이 화폐 또는 장식으로 사용)이라는 비즈로 긴 평행선의 형태로 직조된 이 벨트는 우리에게는 오브제일 뿐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문서(조약)이었다. 물론 이 조약의 선량한 의도는 역사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작가는 ‘외부인’의 관점에서 특히 언어와 문자를 넘어 이 유물의 포괄적인 공생의 평화적 메시지가 담보하는 역사적 의미에 주목한다.
지난 3년간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해온 AGO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 아델리나 블라스(Adelina Vlas)는 ‘창발’의 개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개체가 홀로 이룰 수 없고 다만 하나의 공동체가 달성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해당 개념은 동시대의 분열된 사회에서 단합을 통한 변혁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집단 행동의 존재나 형성에서도 참조 가능한 ‘창발(emergence)’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탐구한다.” 그리고 “조망전(survey show)의 형식을 빌어 양혜규의 지난 25여 년 간의 작품 세계를 통합적으로 독해하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창발》전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는 ‘움직임(movement)’으로, 디아스포라적 경험에 기인한 신체적, 사회적, 감정적 이주에 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반영한다. 개인 경험의 감각적 풍부함에서 출발하는 그의 작업은 빛, 소리, 공기, 열, 향과 같은 무형의 요소들이 움직이는 요소들과 결합되어 감각을 다중적으로 자극시킨다. 이처럼 침투 가능하며 분산적 양상을 띠는 그의 작업 방식은 필연적으로 개인적 차이와 개인의 이주 경험을 내포하는 공동체 관념의 출현을 야기한다. 이에 관해 양혜규는 “공통성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의) 유대는 결속될 수 있다. 차이가 공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주요 출품작 소개: 다수의 초기작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기에 제작된 입체와 평면 작업을 망라하는 이번 전시에서 일부 주요작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먼저 1999년 작가의 학창시절 모교 슈테델슐레에서 전시된 이후 처음 재제작(reconstruction)되어 공개되는 <양혜규 아카이브 중 명작 선집(Anthology of Haegue Archives)>(1998)이 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제작된 소품들을 모아 배치한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아이러니컬한(모순적인) 자기-역사화를 통해 당시 작가의 자아와 감성을 엿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진열장이라는 형식적 어휘를 취하여 젊은 비서구 출신 작가로서 감상적이면서도 재치있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짧은 역사를 조명하는 이 작업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Non-Indépliables)>(2006-2010)은 빨래 건조대를 다양한 옷감으로 감싼 조각 연작이다. 건조대는 천이나 뜨개질로 덮여 고정됨으로써 접어서 집안 어딘가에 숨길 수 있는 본래의 기능을 유보당한다. 천/뜨개질은 빨래대의 뼈대에 근육과 살을 부여하고, 조명 등의 온기를 제공하면서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질적 주체로 변모한다. <살림(Sallim)>(2009)은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발표한 건축적 조각물이다.
이듬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이 작품은 소장품전을 제외하고는 이번에 처음 외부에 대여되어 공개된다. 당시 작가가 거주하던 베를린 집의 부엌을 동일한 크기/형태로 재현한 <살림>은 부엌이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지극히 사적이며 비대표적일 뿐만 아니라 불, 증기, 물 등의 감각들이 충만한 부엌 공간은 사회 활동과 생산을 위한 재충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양혜규가 주목하는 ‘가사성'은 ‘살림'을 단순히 ‘가사를 꾸리’는 행위로, ‘부엌'을 여성의 ‘노동 공간'으로 규정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모든 삶의 활동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장소성을 함의한다. 삶이 체계화되고 유지되듯, 부엌은 무엇인가 데워지고 향을 발산하며 수증기를 내뿜고 물이 흐르는 다감각적 공간인 것이다.
종종 서구 미술사의 특정한 지형에서 영감을 얻는 양혜규는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의 1922년작 <삼부작 발레(Triadic Ballet)>를 참조하여 <상자에 가둔 발레(Boxing Ballet)>(2013-2015)를 기획하게 된다. 바우하우스의 인체-공간의 관계에 대한 실험적 탐구와 슐레머의 기하학적 무대 의상을 재해석한 <상자에 가둔 발레>의 6점의 인체 전체는 놋쇠 방울로 뒤덮였다. 참조작은 무용극이라는 시간예술인데 반해 <상자에 가둔 발레>는 공간적 해석이며, 공예적 요소 즉 방울과 손잡이라는 일상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면모를 전면에 드러낸다. 이 의인화된 조각들은 공간을 무대 삼아 이곳에 분포하는 공기, 소리, 바닥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과 물리적/정서적으로 결합하며 관객들의 복합적인 감각 경험을 일깨운다.
한편 <솔 르윗 동차動車(Sol LeWitt Vehicles)>(2018)는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이 천착했던 입방체라는 구조에 기반한다. 알루미늄 구조물에 순백색의 블라인드가 입방체의 면면을 그려내는 이 설치 연작은 솔 르윗의 물리적, 개념적 구조를 증폭시킨 <솔 르윗 뒤집기>(2015-)라는 기존 작업에 손잡이를 잡고 움직일 수 있는 <의상 동차動車>(2011-)의 동적 요소를 더한 혼종 작업이다. 조각물 안에 들어가 조작하는 기존 <동차動車> 연작과는 달리 조각 외부에 달린 손잡이를 통해 움직일 수 있어 정확한 작동을 위해서는 다수의 협력이 필요한, 곧 집단적 수행성이 강조되는 작업이다.
조형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과 더불어 <비디오 삼부작>(2004-2006)이 상영된다. 비디오 에세이라 분류하는 이 작업에서 쉽게 특정하기 어려운 시간과 장소의 이미지들은 담담하고 반성적인 어조의 자기-독백적 내레이션과 포개어진다.
《창발》전과 연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규모의 모노드라마가 미술관 내 소극장(Jackman Hall)에서 소수 관중만을 위해 1회 상연될 예정이다. 작가는 이제껏 서울, 카셀, 멕시코, 홍콩 등지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명 단편소설에 바탕을 둔 모노드라마 <죽음에 이르는 병(The Malady of Death)>(2009-)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양혜규의 작업에서 뒤라스라는 문학작가가 종종 참조되어 왔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은 일종의 ‘인생작업’이라는 면에서 매우 고유한 지점을 형성한다. 평생 지속적으로 시도하고자 하는 진지한 의도성과 매번 개념적으로 다를 수 있는 변화무쌍한 성격 그리고 현지 배우, 즉 또 다른 인물과의 만남과 협업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창발》전은 양혜규라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좀 더 폭넓게 읽을 수 있는 총체적인 조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밖에도 전시에 맞춰 온타리오 미술관과 저명한 미국과 독일의 합작 출판사인 프레스텔(Prestel)이 공동 출판하는 전시 도록 『창발』이 출간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아델리나 블라스 외에도 두 명의 외부 필진-워싱턴 국립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린 쿡(Lynne Cooke)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이자 2016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예술감독이였던 백지숙-이 참여하여 도록의 밀도를 높일 예정이다.
작가 소개 :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과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온 그는 1994년 독일로 이주 후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모교인 슈테텔슐레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019년 영국의 현대미술지 ‘아트리뷰(ArtReview)’가 선정하는 <2019 파워 100>에서 36위를 기록, 2018년에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 《양혜규: 손잡이》(2020년 11월 15일까지)가 진행 중이다. 올 상반기부터 한 해 동안 예정되어 있던 주요 개인전들이 하반기로 연기됨에 따라 최근 개막한 온타리오 미술관 《양혜규: 창발創紡,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를 시작으로 필리핀 마닐라 현대미술디자인박물관 《우려의 원추(The Cone of Concern)》(10월 15일), 영국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s)》(10월 24일) 등이 순차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현재 양혜규의 작업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런던 테이트 컬렉션, 파리 퐁피두센터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 도록으로는 《양혜규: 선집 2006–2018. 외줄타기와 그것의 말 없는 그림자》(2019), 《도착 예정 시간(ETA) 1994–2018》(2018), 《VIP 학생회》(2017), 《동음이의어들의 가계》(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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