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베를린 K-456로봇] 'Unsinn du Siegst' 넌센스 당신이 승리자'
1965년 베를린 K-456로봇
West Berlin, Federal Republic of Germany (Western Germany). Title in German reads 'Unsinn du Siegst!'
Various shots of June Paik and Charlotte Moorman giving performance of action music in Berlin street and in a small club. It is referred to as nonsense! Woman makes various noises on cello while Asian man operates two hand made robots, small crowd looking on. A girl is American. In a small club she makes noises by using cello and breaking or hitting various objects. She breaks glass, talks, whistles, etc. People looking on. Man assisting her blows a balloon and another man pours water over his head. (Comb. F.G.)
Date found in the old record - 21/06/1965.
24시 전시를 끝내고 나오면서 백남준 샬럿 정장을 하고 K-456로봇 발명품을 선보이다.
[동영상자료] http://www.britishpathe.com/video/action-music-in-berlin
백남준 33살 샬럿은 31살인가요 정말 미남이고 예쁠 때 보여준 2인 퍼포먼스
기계공학이 세계최고인 독일에서 백남준 K-456로봇 발명품에 독일인들 놀라다
Robot Opera, 1965 Paik and Moorman trying in vain to perform in front of the Brandenburg Gate in Berlin, 1965. (Photo, Jürgen Müller-Schneck)
백남준이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취임하는 날 첫 수업 모습 참으로 독특하다
사진 삼성리움미술관
백남준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20세기 자동차시대는 가고 21세기 SNS 컴퓨터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다 1997년 독일 뮌스터의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됐던 이 작품은 쇠와 중력,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20세기 문명의 종말을 선언한 작품이다. 작품의 구성은 1924년형 윌리 자동차로부터 1959년형 뷰익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발전사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는 자동차 32대로 되어 있다
Nam June Paik «Baroque Laser»
백남준 베니스비엔날레 끝나고 2년 후 본격적으로 레이저작품을 발표했군요 마치 그의 몸이 불편하게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TV처럼 전자붓을 안으로 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 빛처럼 밖으로 흩어지게 하거나 쏘아올리는 방식을 사용하여 기존의 TV방식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겠지요 바로크형 건물에 레이저를 쏘는 방식이군요 그래서 제목이 1995년 독일 뮌스터에서 발표한 <바로크 레이저> Nam June Paik, «Baroque Laser», 1995 Photograph: Roman Mensing/artdoc.de http://www.artdoc.de © Nam June Paik Nam June Paik «Baroque Laser»
Two years after the «Sistine Chapel» at the Venice Biennial, Nam June Paik chooses to decorate with electronic images th...e choir of a baroque church near Münster in Germany. In collaboration with Horst Baumann, he uses tautened gauze to experiment with laser as a new projection technique for video, and expands the installation by means of video projection onto the vaulted roof. The basic images come from Paik's 'Merce on Merce', his video homage to the dancer Merce Cunningham. The sculptural quality of laser projection, and its manoeuvrability via mirrors, enable an apparently free and kaleidoscopic orchestration of the space. The inclusion of a closed-circuit image of a candle, and 17th- and 18th-century flute music, transform the installation into a gesamtkunstwerk in the baroque sense, with architecture, painting, sculpture and music making up an ideal ensemble. Rudolf Frieling
Copyright Nam June Paik. Photo: Ellen Labenski, New York
No artist had a greater influence in revealing the artistic potential lurking behind television's flickering facade than Nam June Paik. Commonly hailed as the father of video art, Paik reshaped perceptions of the electronic image through a prodigious output of manipulated TV sets, live performances, global television broadcasts, single-channel videos, and video installations. His career took him from Asia through Europe to the United States, and Paik's complex media-based art grew out of his early interests in electronics, as well as his foundations in performance and music.
Arriving in New York in the mid-1960s, he joined a new generation of artists that was altering the ways in which one interacts with the moving image. Paik became a prominent member of the Fluxus movement, whose principles included the transformation of quotidian actions—like the buttoning and unbuttoning of a coat, as seen in his video Button Happening (ca. 1965)—into art. Quickly emerging at the forefront of this movement, Paik also sought to involve the viewer as an active participant in his performances and installations, and he often introduced elements of surprise and the unfamiliar.
TV Garden, one of his seminal installations, illustrates Paik's profound grasp of technology's capacity for composition and the new aesthetic discourse that he helped to create. To enter the piece is to experience an uncanny fusion of the natural and the scientific, as hidden amid an undergrowth of live plants are video monitors of various sizes. All are playing the artist's 1973 collaboration with John J. Godfrey, Global Groove, which montages performers from around the world into a gyrating visual mix, and the videotape's sound track serves as musical and spoken counterpoint to the monitors' flickers of light. TV Garden set a new standard for immersive, site-specific video installations. Restaged for the artist's exhibition at the Guggenheim Museum in 2000, its influence can be seen decades later in ambient, room-sized installations by such artists as Gary Hill and Bill Viola.
For Paik, the artist should not be limited in seeking new forms of creative expression, but rather the potential for innovation must be continually reimagined. Just as Paik reconceived broadcast television in the 1960s and 1970s in order to “turn it inside out” and deliver a fresh take on this means of communication, Paik turned to laser technology as a novel type of sculptural and installation art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He continued to dismantle customary ways of seeing and expand the parameters of art making throughout his career. - Guggeinheim Museum
[source] http://www.guggenheim.org/new-york/collections/collection-online/artwork/9537
Curator Michael Mansfield working in the Paik Archive
백남준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작업실에 나온 7트럭의 쓰레기들은 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아카이브로 옮겨졌고 지금도 큐레이터 미술전문가들이 분류작업을 한다. 한국같았으면 정말 쓰레기통이 다 들어갔을지 모른다 백남준 아카이브 분류작업을 하는 미국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마이클 맨스필드
EK Your first large-scale telecommunication art event was Good Morning Mr. Orwell. Then came Bye Bye Mr. Kipling. Now it is Wrap Around the World. How does this third piece complement the others?
NJP The first work was not about communications between East and West, it was a link between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The second focused exactly on that; the link was between Kore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Now I want to create a link that involves the whole world. This i...s the main difference. The second difference is that we are working now more with popular arts than with high art performances. It is a big risk to create a live television show in such a large scale with high art only, because television is an entertainment medium and we have to be careful. We have to be a little conservative to minimize the risks of a transmission between several continents. I am not saying that we are not creating high art, but that we are creating a new high art with new materials. We are using these new materials to work with the temporal element of the popular arts, the rhythm, which is so important in video art. This is my last satellite show, but it is also the beginning of a larger satellite movement of the future.
피아노를 치면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이 움직이는 이미지로 보인다When he hit the piano one can't hear the sound but one can see woman's body as a moving image/Quand il a frappé le piano on ne peut pas entendre le son mais on peut voir le corps de la femme comme une image en mouvement
백남준 I '비디오 비너스(Video Venus)' 이 퍼포먼스는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서 1978년 6월3일-4일까지 이 대학교 조각가 여학생인 '자니스 거이(Janice Guy)'가 누드모델로 참여하여 이루어지다(Video Venus life performance starring Janice Guy) 사진저작권: 이보 데코빅(Ivo Dekovic) ⓒ Ivo Dekovic
천심연작_43×35cm*6, crayon on paper, 1998 인간의 연심은 천심이다 인간의 연애감정은 하늘이 내린 바로 신비하고 묘하게 아름다운 감정이다
백남준은 어떤 인물이었죠? 그의 대한 에피소드라도?
"[라파엘레] 백남준은 매우 지적(highly intelligent)이고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항상 동양과 서양, 과학과 종교와 예술을 큰 틀 안에서 연관시키는 사유를 한다. 그는 내가 만난 본 사람 중 가장 포괄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명상의 형태로 즐겼고, 레이저 빛 아래 어둠 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레이저조각을 몇 시간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른 조수도 그랬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특별했다. 그는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레이저작품을 응시했다. 그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은 바로 레이저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나 철학적 논제를 꺼낼 때였다. 그는 프린스 거리 "제리"라는 단골집에서 항상 점심을 즐겼는데 우리도 그와 함께 거의 매일 점심을 먹었다. 그는 동물이나 여성에 대해 매우 유쾌한 유머와 조크를 던져 우리를 즐겁게 했다. 내가 그와 함께 작업하는 동안 내내 그는 정말 과분할 정도로 나에게 친절했고 그의 장난기(playful mind)는 언제나 그의 단골메뉴였다
백남준 작품 중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라파엘레] 2010년 12월에 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본 '네온 부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백남준의 관심인 기술과 예술, 철학과 휴머니즘을 기가 막히게 결합한 수작 그 속에는 현대문명의 놀라운 하이테크와 보여주면서 부처와 같은 겸손한 마음도 보인다. 그리고 1961년 그의 초기 비디오 작품 '손과 얼굴' 그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초간편 작품이나 그 효과는 강력하다. 그리고 역시 백남준의 대표작 'TV부처' 사랑한다. 이 작품은 나에게 아직도 삶에 대해서 계속 묻게 하는 점이 좋다 그리고 '촛불' '정보초고속도로'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백남준 작품 명단에 포함된다. 그밖에 그의 여러 퍼포먼스와 인터렉티브 아트의 상징인 '랜덤 액세스'와 'TV첼로'도 사랑한다. 아래 네온부처 1992-1995
비디오아트는 시각예술이기는 하지만 거의 음악 즉 연주에 가깝다 백남준처럼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는 어떻게 보면 비디오아트를 차원높은 예술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의 예술을 visual music이다. 그런데 이번에 임흥순작가가 베니스에서 비디오부분에서 상을 받은 것을 보면 한국사람들이 이 분야에 소질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든 텔레비전은 항상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 항상 아름답게 변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변하기 때문인 것처럼. 내 텔레비전에서 질(quality)이란 말은 가치(value)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개성(character)을 의미한다. A와 B가 다르다는 것은 A가 B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빨간 사과가 필요하지만 가끔 빨간 입술도 필요하다." -백남준
이 말의 뜻을 제대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기존의 미학에 대한 가치를 뒤집는 말로 21세기는 개성과 차별성이 아름다움이나 어떤 가치기준보다 중요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백남준아트센터 처음 설계자인가요 예산이 부족 중간에 변경되었지요 Kirsten Schemel: Museum for Nam June Paik in Korea, 2003, main facade - view from the street, © Kirsten Schemel
"21세기 예술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가진게 너무 많아 살 게 없기에 이제 보는 소비를 창조하는 것이다"-이제 사람들 더 이상 살 거 없어! 다 있으니까. 이럴 때는 뭔가 볼 거를 만들어야 해. 그게 바로 예술이야" -백남준
루벤스 시대의 뛰어난 화가는 임금 얼굴을 잘 그리는 것이고 현대에 오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거지. 결국 예술은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겠지.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던져주는 것, 사람들에게 무언가 할 거리,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거야. 요즈음을 보라고. 우리 주위에 어디하나 부족한 게 있냐고. 21세기는 살 물건이 없는 시대야. 뭐든지 다 있거든. 그러니까 무언가 할 것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거야. 예술가는 욕망의 창조자가 돼야 하는 거지."
"컴퓨터문화가 점점 증대되면 인간의 할 일이 없어진다. 생산은 많아지는데, 소비는 한정된다. 여태까지는 이런 잉여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젠 전쟁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삶의 이기의 모든 것이 포화되어 버린다. 냉장고도 다 사버리고 ,자동차도 다 사버리고, 이제 이런 건 20년이면 끝난다. 피시도 얼마 못 가서 다 팔아먹고 새로 팔아먹기가 어렵게 된다. 무슨 지랄을 해 본들 인간의 소유는 한정이 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란 뭐냐? 폭력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소비를 조장시키는 일이다. 전쟁이나 공해로 연결되지 않는 인간의 소비를 돋아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의 임무는 어떻게 하면 소비를 창안하느냐? 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y1Eu1s9GE
2005년 7월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미술관에서 8월21일까지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인 ‘베를린에서 DMZ까지(From Berlin to DMZ)’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의 새 작품 ‘베를린에서 DMZ까지’가 전시돼 관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남북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대북선전용 스피커에 전기를 공급하던 전원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베를린 장벽의 영상(왼쪽)과 비무장지대의 영상을 담은 화면을 마주보도록 설치했다.
백선생은 생전에 남북관계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렇다. 가까운 예로 백씨는 2005년 작년에 6월부터 7월까지 남한 서울에서 남북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기원을 담은 신작 ‘베를린에서 DMZ까지’를 전시했다. 이 작품은 남북합의에 따라 수거한 대북선전용 확성기에 전기를 공급하던 전원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의 영상과 독일 베를린 장벽의 영상을 담은 두 대의 TV 화면을 마주보도록 설치한 것이다. 남북대치의 상징이었던 전원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베를린의 화해의 장면이 비무장지대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지난 2004년에는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의 미술가전’에 작품을 보내기도 했다.
"예술가에게 실수는 오히려 천재성을 증명해주는 계가가 된다" -백남준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실수는 언제나 나에게 행운들 가져다주었는데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는 백남준이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Nam June Paik likes a man with a universal humanity and global mind, like Coubertin(2004)
백남준은 지구촌 식구들을 향해 <뭐 뭐 좀 하자>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백작이다. 그 밑바탕에는 인류의 화합과 평화와 공존의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이런 유니버설한 인물을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소마에 있는 구베르탱 백작 전자로봇 네온 빛을 넣으면 이렇게 알록달록하게 변화나요. 작고 2년 전 작품 2004년 작
<추신>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백작 스포츠에 대한 철학은 좀 터무니없이 보인다. 스포츠는 참가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사실 올림픽은 전쟁대신 하는 것으로 전쟁 같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여간 스포츠의 룰을 통해 어느 나라가 평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기에 참으로 재미있다.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통해서 가능하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스포츠의 묘미다 하지만 요즘 스포츠는 상업화가 극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백남준은 <TV부처>, 〈TV침대>, 〈TV십자가>, 〈TV안경>. 'TV의 인간화'에 이어 급기야 〈TV브라>, 〈TV페니스>를 만들며 'TV의 신체화'에까지 도전하다
백남준 용인 민속촌에 전시된 작품 2002 작 <세기말 새천년> 20세기와 21세기,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하고 있군요 한국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있겠지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홍희 쌈지관장은 “한국의 전통사상이나 동양철학을 서구의 아방가르드 정신과 결합시켜 조형화한 것이 백남준 작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백남준이 1998년에 받은 일본 교토상] 그의 멘토인 존 케이지도 받았군요
1989 : John Cage (미국작곡가 1912 - 1992) 1990 : Renzo Piano (이탈리아 건축가, 1937) 1995 : Roy Lichtenstein (미국 팝아티스트, 1923 - 1997) 1998 : Nam June Paik (비디오아티스트, 1932) 2006 : Issey Miyake (백남준 친구인 패션디자이너 1938)
교토 상(일본어: 京都賞 )란 과학, 기술, 문화에 있어서 현저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제 상이다. 1984년 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에서 수여하고 있다. 수상 부문에는 첨단기술부문, 기초과학부문, 사상 예술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대상 원칙은 개인에 한정되어 있으며, 1998년 사상 예술부문에서 백남준이 수상한 바 있다. 수상자에게는 교토 상 메달과 증서, 부상 5천만엔이 주어진다. 또, 교토 상 주간이란 기간이 있어, 수상자는 고교 특별수업과 초중교생과의 교류사업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한 포럼 등 각종 교육 이벤트에 참여한다. 2002년
"폴 카라얀이 너무 지겹고 / 마리아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고 / 그래서 로봇 오페라 로봇 오페라... " -백남준 자작시 "Paul Karajan is too boring and Maria Callas is too loud, So I love the Robot Opera Robot Opera ..." - Paik's own verse/"Paul Karajan est trop ennuyeux et Maria Callas est trop criard, donc j'aime le Robot Opéra Robot Opéra ..." - propre vers de Paik
이 시에 대해서 김수경 시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독일이 그토록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오케스트라를 조롱하고 오페라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마리아 칼라스를 시끄럽다고 한 예술가는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을 일종의 마니페스트(선언)이다. 이렇게 백남준은 서양예술의중심무대에서 서양예술의 권위를 꼬집으며 아방가르드 실험을 주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시인은 한국 그 어떤 정보 속에서도 이런 놀라운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했다.
Photo Ellen Labenski © SRGFNew York
광대한 불모지인가? 빠르게 변화하는 대지이다! -뉴욕타임즈 2000년 2월 1일 뉴욕타임스 신문기사 New York Times newspaper article: The world of NJ Paik(February 1, 2000 in Korean version) 백남준은 한국 태생의 전자 마법사로서, 진보적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독일에서 시작하였다. 끝없는 에너지와 창조에 대한 강박관념은 텔레비전을 백남준의 독창적인 창조물로 재탄생시켰다. 방송의 진부함을 떨쳐내고 전자광선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제 68세의 백남준은 정점을 지나왔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1982년 이후 미국에서의 첫 번째 회고전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백남준의 세계(The World of Nam June Paik)"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구겐하임의 영화와 미디어예술의 수석 큐레이터 John G. Hanhardt와 미디어예술의 어시스트 큐레이터인 Jon Ippolito에 의해 준비된 "백남준의 세계"는 1960년대 이후의 주요 비디오 작품들과 레이저 빔으로 시각적인 힘을 보여주는 최근의 작업을 포함하고 있다.
레이저 예술의 설치전문가 노만 발라드(Norman Ballard)의 협력으로 완성된 전시회의 주요 작품 "Modulation in Sync(2000)"는 관객들을 빛과 소리의 세계로 형성된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이끌어 간다. 작품의 주요 요소 중에는 두 개의 레이저 프로젝트는 매체로서 정의할 수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광경이 포함된다. 또 다른 작품인 "Jacob's Ladder(2000)"는 번쩍이는 레이저의 빛이 돔의 꼭대기에서 로툰다 바닥까지, 7층으로 이뤄진 공간을 Z형으로 폭포가 떨어지듯이 내려온다. 또 다른 작품인 "Sweet and Subline(2000)"은 구겐하임의 돔에 연속적으로 채색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낸다.
백남준은 2000년 구겐하임전시에서 이미 미술관 건물자체를 작품으로 만드는 하나의 관점을 새롭고 도입해 지금까지 구겐하임 전시중 건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구겐하임미술관은 전시하는데 그 난이도가 아주 높다
"그러나 백남준은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녹색의 레이저 광선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거울에 반사시키는 ‘야곱의 사다리’로 땅과 천장을 연결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바닥에는 100개의 TV모니터가 빛나고 있으며 천장에는 땅에서 쏘아올린 레이저가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미를 상징하는 원을 그려내고 있다. 이로써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된다. 백남준은 레이저가 “숭고하고도 달콤한 매체”라면서 그의 신작들이 “21세기도 더 재미있는 세계가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엄하면서도 위트가 가득한 이 작품은 통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미술전문지 아트뉴스 1월호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작품을 유기적으로 전시할 수 있게 해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감사한다”고 의미 있는 인사를 했다. 백남준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길에서 관객들을 선동하던 60, 70년대처럼 거칠진 않았지만 여전히 ‘과격’하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예술의 관념을 뒤집는다.
돌아가시기 1년 반전 2004 년 백남준 뉴욕 소호 자택에서 조카와 함께한 말년의 퍼포먼스에서 뭘 하고 싶냐고 물으니 동대문구 창신동에 가고 싶다 여기서 관객으로 동참한 <베치 부룬>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관장은 백남준을 500년 후에도 빛날 우리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했다 (그녀의 말 지금의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와 같이 백남준은 500년 뒤 예술사에 우뚝 솟아 있을 것이다)
”원래 예술이란 게 반이 사기입니다” -1984년 귀국 인터뷰에서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 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1962년 관객의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 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
-1995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 직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에서 찾는다. 세계 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 기능인데,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은 이 문제를 100년 전에 이미 해결해 놓았다” – 1999년 4월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백남준의 유머 100대신 1000] 백남준씨 2000년 10월 20일 문화의 날 금관문화훈장 수상 [뉴욕=신중돈 특파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68)씨가 1일(현지시간)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허리훈 뉴욕 총영사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白씨는 이날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좋은 상을 탈 줄 알았다면 '백' 씨 대신 '천' 씨 성을 타고나 오래오래 살면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면 좋았을 것" 이라며 조크를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중앙일보
[1분유머] 백남준이 독일과 미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서양인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큰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우선 첫 전시에서 피아노와 TV를 설치했는데 서구의 어떤 예술가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전시를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갑부의 아들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당시 독일에서 TV가격은 컬러는 없고 흑백이지만 집채는 아니더라고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는데 이것으로 전시를 한다는 것이 그들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비싼 피아노(독일중산층의 수준 있는 문화적 교양을 상징하는)를 다 때려 부쉈으니 아무리 새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걸어놓았으니 그 배짱이 대단하다. 웬만한 관객이 이런 전시를 소화하기는 힘들다 만약에 백남준이 서구에서 페인팅이나 조각과 같은 작품으로 첫 전시를 열었다면 100%실패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전시는 차별화원칙에 충실했다.
19세기 무신론자 보들레르처럼 신에 도전했다가 한방 맞는 백남준 그러나 그는 그 난관과 좌절도 다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 밀레니엄 전시 때 <야곱의 사다리>같은 작품을 통해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예술의 신(神)"으로 되돌아갔다. 신마자도 이 예술가의 열정을 어찌 통제할 수는 없었다
[서양과 다른 기상천외한 예술을 하려고 TV레이저 등장시키다] -백남준
"같이 시작한 화가들은 돈 많이 벌었지. 그들은 사유재산으로 일종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낸 것이거든. 1958년부터 컴퓨터, 레이더로도 예술에 응용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왕 하려면 기상천외한 것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서, 텔레비전 수상기를 시작하게 된 거지."
날 자꾸만 서양에서 다 배운 사람인 줄 아는데, 난 사실 내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거야.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에 한국 예술가들의 수준이 서유럽이나 일본의 아방가르드적 수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단 말이지. 난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도 이건우 선생한테서 유학 가기 이전에 다 배운 거구, 신재덕 선생이나 이건우 선생 같은 분이 가르쳐주신 수준이나 내가 김순남 선생을 사사한 수준이 내가 독일 가서 작곡가 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바탕을 다 만들어 주셨던 거야. 역사는 자꾸 단절적으로 보면 안 돼.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문화도 전통문화고 서양문화고 다 높은 수준으로 그대로 가지고 있었 거야. 난 그걸 흡수한 거야. 그리고 내가 내 속에 가지고 있었던 전통문화하고 서양의 아방가르드가 결국 비슷한 거라는 것을 나중에 발견한 것뿐이지."
서양의 엉터리작곡가를 청소하기 위해서 나는 엉터리 방식을 취하다-백남준
"음악공부를 진짜 제대로 해보자고 독일로 건너간 건데, 작곡가들이라는 게 모두 엉터리에요. 그러나 이미 인정받고 있는 음악가들은 너무나 까마득하고.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서려면 기존의 것을 따라만 해서는 안 되겠다. 무언가 주목을 끌 수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 하는 결론을 얻었지.
"아무래도 그 때 유행하던 전자음악을 보니까 한정된 전자음에는 내가 구하던 음이 없었지. 개인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간단한 전자음악을 하는데, 아무리해도 클라이막스에 도달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역시 즉흥적, 일회성 해프닝을 해야겠다는 것이야. 그래서 피아노 쓰러트리기를 한 것인데, 이것으로 평판이 나기 시작했지. 그 때가 26살이야" 이거 음악사에 남을 거야. 잘 하면 틀림없이 음악사에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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