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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불협화음의 하모니_동아시아작가 전

[아트선재센터 2가지 동아시아작가 전] 아트선재에서 2015 02.07-2015.03.29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bzuw - 동아시아 미니 비엔날레 같은 동아시아 작가전 

아트선재센터 입구 

[전시1] <히만 청(싱가포르 작가_절대 지루할 틈 없는 요즘> 아트선재2층 

히만 청, '낯선 이로부터의 이메일(자라)(Heman Chong,Emails From Strangers (Zara)' 캔버스에 아크릴, 뒷면에 사인 및 날짜 명기, 46×61×3.5cm 2015. 스펨작품은 안 보이고 "연기가 당신 눈에 들어간다"(양동이) 

자기 안녕, 좋은 하루 보내고 있기를! 내 이름은 자라이고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예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너도 괜찮기를? 내가 너를 당혹스럽게 하는 거라면 미안해. 그저 오늘의 ‘안녕’ 인사가 내일은 우정이 될 수도 있잖아. 우정이 곧 행복으로의 길이니까. 오늘 페이스북에서 네 프로필을 보고 너한테 관심이 생겼어. 네가 답장한다면 내 사진을 보내주고 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게. 내 마음을 담아, 자라 
이메일...zara3n@hotmail.com 

하민 청 이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스팸메일은 어느새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비타민제 등 간단한 상품을 구매하라는 광고부터 10억 달러를 상속받으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이르기까지, 스팸메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거짓과 기만을 기반으로 하는 이 같은 이메일은 읽는 이를 이 어두운 계략의 일부가 되도록 유혹한다. 히만 청은 자신이 받은 스팸메일 중 유독 센티멘털했던 것을 골라 관람객에게 이메일이 아닌 회화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작가 히만 청(가운데 남자) 

[히만 청 작가소개] 히만 청은 미술가이자 글을 쓰는 작가로, 개인과 사회가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대해 개념적으로 탐구하며 다양한 오브제와 이미지, 설치, 상황, 텍스트를 생산해낸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로테르담 현대미술 비트 드비드 센터(Witte de With Center for Contemporary Art) 및 홍콩의 스프링 워크샵(Spring Workshop)과 함께 ‘모더레이션(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컨퍼런스, 세 번의 전시와 레지던시, 단편소설집을 기획했다. 

끓는 점 Boiling Point 

2006년에는 레이프마그네 탕엔(Leif MagneTangen)과 함께 더블린의 프로젝트 아츠 센터(Project Arts Center)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하며 마크 아리엘월러(Mark Aerial Waller), 코스민코스티나스(Cosmin Costinas), 로즈마리 헤더(Rosemary Heather), 프란시스맥키(Francis McKee), 데이비드레인퍼트(David Reinfurt), 스티브러시튼(Steve Rushton) 등과 함께 공상과학소설 <필립(PHILIP)>을 공동 저술했다. 

히만 청 I '포러 효과(The Forer Effect)' 장소 특정적 벽 설치, 가변재료, 가변크기 2008 

위를 번역하면 이렇다
. "당신은 남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기를 바라면서도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성격에 몇 가지 단점이 있지만 그걸 충분히 보충할 만한 장점 역시 가지고 있다. 당신에겐 아직 충분히 계발하지 못한 잠재력이 상당하다. 겉으로 보기에 철두철미하고 절제된 듯 보이지만 당신은 사실 속으로 많은 걱정을 하며 불안해하곤 한다. 당신은 때때로 과연 옳은 결정을 하고 옳은 일을 한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당신은 제약에 갇히게 되면 절망한다" 

또한 스스로 자주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자부하여 만족스러운 증거가 함께 제시되지 않는 한 남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현명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당신은 외향적이고 상냥하고 사교적이지만 또 때로는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우며 내성적이기도 하다. 다소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포러 효과는 미국인 심리학자 버트람(R.포러)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일반적인 진술을 개개인이 자신에게 특별히 딱 맞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이 효과는 종교, 점성술, 필적학이나 각종 성격테스트에 대한 맹신을 설명하기도 한다. 히만 청의 이 효과는 포러 박사가 1948년에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심리테스트의 원문을 그대로 사용한다. 

포괄적 진술문(generic statement)은 사실상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내용임에도 각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을 위해 유일무이하게 작성된 내용이라 느끼도록 고안된 것이다. 히만 청은 이 텍스트를 사람의 발길이 많이 오가는 위치에 설치함으로써 여러 명을 동시에 맞이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위치에서조차 개개인을 개별적으로 호명하는 척 하는 이 진술문의 권위적인 목소리를 빌리고 있다. 

'이 세상 끝까지(일시정지)' 퍼포먼스 모니터 DVD 2008 

이건 영화화면인데 전시가 시작되면 그 순간 멎어버린다. 괸객이 자기나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거나 상상해보라는 주문임에 틀림없다. 전시의 문을 여는 것은 작가이지만 그 전시를 마무리하는 것은 관객이라고 하는 백남준의 첫 전시에서 보여주는 그런 개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히만 청I '제작 기술(The Art Of Production)' 변형된 파운드 오브제(2007년 10월호 아트포럼) 26.8×13.4cm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Wilkinson Gallery 

잡지 <아트포럼> 월간 호에 개입한 작품. 2007년 10월호 <아트포럼>은 미술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를 ‘아트’라 명명하여 미술품 제작 과정의 역사를 추적하고자 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자신의 과거를 암시하는 제스쳐로서 작가는 당시의 잡지를 잘라내 하얀 좌대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마치 ‘아트’의 그리스어 어원을 추적이라도 하는 양 국문으로 <제작기술>로 번역되었다. ‘아트’에 대한 번역에서 생기는 ‘예술’과 ‘기술(technique)’ 간 이 틈새는 중년의 노련함에서 묻어나는 피로를 아우르고 있다. 

[전시2] <불협화음의 하모니> 아트선재1층 3층]
 

아트선재센터 3층 전시장 내부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시아를 통일된 공동체로 보는 만연된 가정과 피상적 오해를 동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한 섬세한 성찰과 작가 및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을 통해 아시아를 <다수의 렌즈와 관점으로 이해>하는 여정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진행형 프로젝트는 서울에서 첫 장을 열게 된다. 서울 전시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출신의 작가 12명의 작업을 통해 이들 국가의 정치적 기원과 문화적·이데올로기적·역사적 표현의 <차이와 불일치를 드러내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아시아에 대한 상상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전시와 함께 참여 큐레이터 및 작가와 학자의 좌담이 이어진다. -큐레이터 황젠헝, 가미야유키에, 김선정, 캐롤잉화루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투트)주최] 독일문화원은 독일연방공화국의 문화기관으로 90여개국가에서 139개 이상의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괴테센터, 문화단체, 자료실을 비롯하여 어학능력시험센터와 어학교육센터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통해 지난 60여년 간 독일을 찾는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첫 창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90개국이상에서 주요기관 및 인사과의 다년간에 걸친 순조로운 협력을 통해 독일에 대한 지속적인 신뢰를 구축해왔다. 동아시아지역 독일문화원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및 몽골에 지부를 두고 있다. 주한독일문화원은 서울을 기반으로 40여년 동안 활동해 왔으며, 2010년 이래 동아시아지역 대표문화원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구정아 작가 '당신이 하는 일을 당신은 왜 하는가(Why do you do what you do)' 108개의 링자석 설치 2015 

구정아는 1967년서울 출생으로, 주로 공간에 대한 개입에 관해 작업한다. 이러한 개입을 통한 작업의 가장 큰 목적은 공간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함이며, 작업의 형태는 건축적 요소, 다양한 드로잉, 소설, 시, 출판물, 설치, 조각, 도시공간에 대한 개입, 영화, 소리작업, 건축프로젝트를 포괄한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건축사무소 ‘레스코’와 협력해 스케이트파크 구조물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건축이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개인전 'Ousser'(이탈리아라라이아재단, 2014), 'Shining Living'(파리 이본램버트 온 페이퍼, 2014)을 열었고, 제14회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스 위스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저우자오 중국어는 언어가 아닙니다 존 핸슨 끼여들다 라이브 퍼포먼스 2015 

저우자오는 1989년 중국푸젠 성에서 태어났다.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을 졸업한뒤 2014년에는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현대미술 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캠든아트센터(2013), UCL미술관(2013), no.w.here 아트스페이스(2014), 차이니즈비주얼페스티벌(2014) 등 런던의 여러 공간에서 작업을 선보인바 있으며, 중국 헤지앙닝 미술관에서 열린《이중시각: 2014 해외체류중국여류작가초대전》에 참여했다. 2013년 런던의 아트파빌리온에서 열린 전시《The strange impression of seeing things for the first time》을 공동 기획하였으며, 같은 해슬레이드 미대에서 수여하는 베레니스 굿윈 퍼포먼스상을 수상했다. 

류딩(Liu Ding) '2013년의 칼 말스(Karl Marx in 2013)' 비디오 사진 각각 122×105cm 13분40초 2014 

류딩은 1976년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에서 태어났고, 현재 베이징에서작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류딩은 사물과 사건, 미술사담론, 역사화의 기반을 작업의 재료이자 비판적 성찰의 바탕으로 삼는다. 

그녀의 작업은 영국테이트모던, 터너 미술관, 아르놀피니 미술관을 비롯, 오스트리아 쿤스트할레 빈, 노르웨이 아스트룹피언리 현대미술관, 상파울루국립미술관, 독일 칼스루에센터포아트 앤드 미디어, 스위스 라스쿠아트센터, 이탈리아 산드레 토레레바우뎅고재단, 서울시립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러기지스토어 갤러리, 대만 타이베이시립미술관, 베이징 이베리아 현대미술센터, 광저우 광둥미술관에서 소개된 바 있다. 2012년 타이베이비엔날레,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중국관, 2008년 미디어시티서울, 2005년 제2회 광저우트리엔날레에 참여했으며, 2014년에는 뉴올리언스비엔날레와 상하이 비엔날레로부터 신작커미션을 받아 작품을 선보였다 

량즈워(홍콩)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Leung Chi Wo, We still need to fight) LED조명, 에칭플렉시글라스, C-프린트, 가변크기(각 설치물30×40cm) 2010 

량즈워는1968년 홍콩에서 태어났으며 비영리미술공간인 파라사이트를 공동설립했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사진문화로 학위를 받았고, 1997년에는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미술학 석사를 취득했다. 모나쉬대학교, 호주국립대학교, 오스트리아 빈박물관지구 등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런던 로커비 갤러리(2012), 뉴욕ISCP(2013), 홍콩 런런쇼 크리에이티브 미디어센터(2014)에서개인전을 열었고, 마라케시비엔날레(2012),광저우트리엔날레(2012), 맨체스터비엔날레(2014)에서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홍콩시립대학교 창조미디어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천제런(대만) 제국의 국경 사진 

천제런은 1960년 대만 타오위안에서 태어나 현재 타이베이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제도밖의 언더그라운드 전시와 게릴라 스타일의 예술행동을 통해 냉전과 반공선전, 계엄령(1950-1987)으로 점철된 시대를 지배한 정치 메커니즘에 저항하려했다. 

계엄령 해제 뒤에는 8년간 예술 활동을 접었고, 1996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지역주민, 해고당한 노동자, 일용직노동자, 이주노동자, 대만사람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 청년실업자, 사회 활동가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들과 함께 자본가 소유의 공장들 점거하고 법적으로 폐쇄된 지역에 잠입, 버려진 재료를 취해 영상제작에 필요한 세트를 짓는데 썼다. 

천제런(대만) '제국의 국경_웨스턴 엔터프라이즈 주식회사' 35mm필름 사운드 싱글채널 2010 

이념의 희생자인 아버지를 엎고 가는 아들 그 주인공은 바로 작가다 

천제런은 신자유주의가 무시하는 동시대 현실과 인민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기위해 일련의 영상프로젝트에 착수했고, 자신이 "다시상상하기, 다시이야기하기, 다시쓰기, 다시연결하기"라고 부르는 전략을 쓴다. 


다카미네다다스(일본) I '다카미네다다스의 쿨 재팬' 전시도록 Tadasu Takamine, Exhibition Catalogue for Tadasu Takamine’s Cool Japan, 책, 87×59×2cm2013 

다카미네다다스는1968년 가고시마 현에서 출생으로 현재 아키타 현에 살며 활동 중이다.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옻칠을 배우던 중 퍼포먼스그룹 ‘덤타입’일원이 되었고, 졸업 후에는 기후현립 국제정보 과학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가 영상과 음향을 접목한 인터랙티브 설치와 미디어아트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인간신체가 지닌 표현력에 바탕을 둔 여러 퍼포먼스를 하고 있으며, 음악가와 협업하거나 무대제작을 이끄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다카미네 다다스(Tadasu Takamine) I '재팬 신드롬-베를린 버전(Japan Syndome-Berlin version' 비디오, 10분20초 2013 

최근 개인전 <Too Far to See>(요코하마미술관, 히로시마시립현대미술관, 기리시마야외미술관, 2011~2012),<다카미네다다스의 쿨 재팬>(아트타워미토, 2012)을 열었고, 2014년에는 독일학술교류처(DAAD)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일년 간 레지던시에 머물렀다. 2014년에는 베를린 헵벨암우퍼에서 열린 '저팬 신드롬―후쿠시마이후의 미술과 정치'에 참여했다. 저서로 <한국에서 온 연인>(카와데쇼보 출판사, 2008)이 있다. 

우창(Wu Tsang) 올바른 진술의 현상 Shape of a Right Statement HD 컬러 비디오 5분 2008 

우창은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퍼포머, 영화감독이다. 우창이 진행한 작업은 런던테이트모던,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취리히미그로스미술관, 뉴욕휘트니미술관과 뉴뮤지엄, 시카고현대미술관, LA미술관과 LA현대미술관에서 소개된 바 있다. 2012년에는 휘트니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1번째 장편영화<WILDNESS>(2012)는 뉴욕현대미술관의 다큐 포트나이트에서 소개되었고, 로스앤젤레스아웃페스트에서 다큐멘터리부문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감독한 단편영화 <YOU’RE DEAD TO ME>는 미국공영방송인PBS에서 최초로 상영되었으며, 이마젠재단에서 수여하는 2014 이마젠 최우수단편상을 받았다. 작가는 지금까지 크리에이티브캐피털, 록펠러재단, 컨템포러리아트 재단, 문화혁신센터, 티파니재단, 앤디워홀시각예술재단, 프레임라인, 아트매터스에서 기금을 수여했다. 

치바 마사야, '거북이의 삶 #4 당신은 저주받지 않았다'Masaya Chiba, Turtle’s Life #4 You are not haunted, 캔버스에 유화, 134.1×1x92.7cm 2013 

1980년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머무르며 활동 중이며, 2005년 다마 미술대학 유화전공을 졸업했다. 치바마사야는 협업프로젝트에서 구멍을 파내는 방식으로, 또한 지점토와 목재찌꺼기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서 육체적 행위의 결과인 장소와 사물을 만들어낸다. 

또한 석고, 돌, 직물, 드로잉, 사진등 다양한 일상적 재료를 활용해 구조물을 만들고 회화를 통해 이러한 일시적 풍경을 묘 사한다. 이러한 작업을 직접 만든 단순한 구조의 나무받침대에 진열해 새로운 공간을 생성하며, 회화와 보각의 총체적인 조화를 구현한다. 최근 작가는 '롯폰기 크로싱'(모리미술관, 2013),'사물의 아름다움'(에르미타주미술관, 2013~2014), 캘리포니아 태평양 트리엔날레(오렌지카운티미술관, 2013), 쿠니사키 아트프로젝트(2012), '겨울정원'(하라미술관, 2009) 등 일본안팎의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다나카고키(일본) '피아니스트 다섯이 한 번에 연주하는 피아노(첫 번째 시도)' Koki Tanaka, A Piano Played by 5 Pianists at Once (First Attempt), 협업 작업, 기록 영상, 57분 2012 

1975년 도치기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LA에서 머무르며 활동 중이다. 영상, 사진, 장소 특정적 설치에서 현장에 개입하는 프로젝트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으로 가장 단순한 일상적 활동에 잠재한 다양한 맥락을 시각화하고 드러낸다.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는 비일상적 상에 놓인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을 기록한다. 예를 들어, 미용사 아홉명이 한꺼번에 머리를 해주는 상황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으로 이런 점도 보여준다 

2013년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일본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었고, 국가관에 수여되는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타이베이비엔날레(2006), 광주비엔날레(2008), 요코하마트리엔날레(2011), 해머미술관의'메이드인LA'(2012), 캘리포니아태평양트리엔날레(오렌지카운티미술관, 2013) 등의 국제전시에 참여했으며, 2015년 도이체방크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다나카고키(일본) '피아니스트 다섯이 한 번에 연주하는 피아노(첫 번째 시도)' Koki Tanaka, A Piano Played by 5 Pianists at Once (First Attempt), 협업 작업, 기록 영상, 57분 2012 

위 작품제목의 이번 아트선재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두가 음악을 전공한 사람 5명이 같이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데 기막힌 하모니소리가 들린다. 아시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등의 나라가 이렇게 같이 모여 피아노를 치는데 하모니를 낼 수 있다면 성공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치나 경제로 이념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나 문화예술적 접근으로 충분히 가능함을 이번 선재아트전시에서는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어려운 전시를 시도한 것이다 독일문화원에서 2년전부터 기획하고 재정적 지원도 아까지 않았다 아래작품 다나카고키(일본) '피아니스트 다섯이 한 번에 연주하는 피아노(첫 번째 시도)' Koki Tanaka, A Piano Played by 5 Pianists at Once (First Attempt), 협업 작업, 기록 영상, 57분 2012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_팩토리의 지하' 비디오와 플랫폼설치 가변크기 2010-2015 
Nonsense Factory – Factory Basement 

이 작품 위에 올라가면 정말 우리가 얼마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런 와중에 오른쪽 영상을 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기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_팩토리의 지하' 현재 비디아와 플랫폼 설치 가변크기 2010-2015 

함양아는 서울대에서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뉴욕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부터2007년까지 암스테르담의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개인의 삶과 사회 체계를 그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어왔다. 작가는 조각, 퍼포먼스, 설치, 영상등 폭넓은 매체를 사용하며 지역적, 전지구적차원에서 국가와 국민의 복잡다단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형용사적삶 '넌센스팩토리'(아트선재센터,2010), 'Transit Life'(금호미술관, 2005), 'Dream… In Life'(인사미술공간, 2004) 등의 개인전을 통해 작업을 선보였고 네덜란드, 터키, 한국작가와 함께<be mobile in immobility>프로젝트를 조직해 이스탄불의 DEPO와 서울 토탈미술관에서2010, 2011년에 전시를 열기도 했다. <넌센스 팩토리>프로젝트는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작으로 소개된 바 있다. 

덩자오민, '타이페이 올림픽 2024' (가제)(스케치)Teng Chao-Ming, Taipei Olympics 2024(Working title) (Sketch), 아카이브용 종이 위에 디지털 프린트, 84×60m (4점) 2015 

덩자오민(대만) 덩자오민은 타이베이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작가로, MIT에서 미디어아트와 과학프로그램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주한 뒤 2012년에 타이베이로 활동지를 옮겼다. 뉴욕 퀸스미술관 비엔날레 '퀸스인터내셔널'(2012), 타이베이비엔날레 '픽션의 죽음과 삶'(2012), 오사카도지마 비엔날레'LittleWater'(2013), 'Romance of NG'(타이베이 TKG+ 갤러리, 2014), 'Therefore, X=X'(개인전, 타이베이 프로젝트 풀필아트스페이스, 2014), '포스트무브먼트: 카페 뮐러의 밤'(타이베이 KdMoFA, 2014)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현재'Stories Began Before We Arrived' 전시(타이베이TIBE, 2015년 2월 예정)와 밀라노GLUCK 50에서 커미션한 신작(2015년5월 공개예정)을 준비 중이다. 

김소라(한국) '예측 불가한 종착점을 향한 한 점의 종잡을 수 없는 곡류운동' A complicated movement of one point to an indefinite destination, 종이, 액자 2015 

김소라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와 파리 국립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개인전으로 "Three Foot Walking"(코펜하겐 쿤스트할샤를로테보르그, 2013), "Abstract Walking"(아트선재센터, 2012), 김소라개인전(아뜰리에 에르메스, 2010) 등이 있고, "Once is Not Enough"(시청각, 2014), "누벨바그"(팔레 드 도쿄, 2013), "플레이타임"(문화역 서울 284, 2012), "불가능한풍경"(플라토, 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소라는 개념적 작업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사람들 속에 내재된 사회적 코드와 행동수칙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날카롭지만 재치 있는 예술적 관여를 통해 관계 맺기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볼 공간을 열어낸다. 


아트선재센터 1층 전시장 내부 모습 

이번 전시를 공동주최하는 주한 독일문화원의 '슈테판 드라이어' 원장(우)이 보인다 

요즘 독일에 엄청나게 문화투자를 하고 있다. 독일은 최근에 문화예술이 가장 많이 상승한 나라죠 이제 독일은 유럽에서 최고의 나라가 되고 있다 아시아작가 전시에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트선재에서 작은 비엔날레 같은 동아시아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독일문화원장이 참석해서 지원하고 식사도 문화의 투자가 시간은 걸리지만 그 이자가 가장 높다는 것을 하는 것인가요. 이제는 베를린으로 공부하러 갈 가요. 
아트선재에서 작은 비엔날레 같은 동아시아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독일문화원장이 참석해서 지원하고 식사까지 제공하네요. 문화의 투자가 시간은 걸리지만 그 이자가 가장 높다는 것을 하는 것인가요 이제는 베를린으로 공부하러... 

윤석남 I '너와 31_봄, 봄, 봄'(왼쪽)', '너와 25_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입니다' 복합매체 2013. 나무의 표정에 사람의 얼굴을 담아 독창적 초상화를 연출하다 

윤석남 선생님 이 작품 소장하고 싶은 정도로 너무 좋다. 21세기 형 미인도다. 마음을 살며시 스치고 간다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4tu8 

[미묘한 삼각관계_한중일 차세대 대표작가 3인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5.03.10-05.10 


한중일 그런데 한국은 분단국 항상 반쪽이죠 제대로 온쪽이 된 한국과 중일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서울시립미술관 기자간담회 한중일 만남은 미묘하고 까다로운수밖에 없죠 젇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화예술로는 얼마든지 서로 만나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분야죠 꼬인 한중일삼각관계 미술로 풀다 


오른쪽 일본작 가이즈미 메이로에게 그의 작품 가미가제에 대해서 질문하는 한국기자 시원한 대답을 못 들은 표정이다 


서적 도록 등으로 만든 설치미술 


중국작가 쉬전의 이번전시 대표작으로 우선 시각적으로 유쾌하다쉬 전_Xu Zhen 상아트 슈퍼마켓 2007/2014 설치 (계산장비, 카운터, 선반, 냉장고, 다수의 상품) 가변크기 메이드인 컴퍼니 제작 


한중일 미술사 이런 난해한 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중국작가 쉬전의 텍스트 아트 


한중일의 관계는 아래 작품 처럼 아슬아슬한 관계죠 


일본작가 고이즈미 메이로 금기인 가미가제 문제를 아주 미학적으로 빼어난 감각으로 풀다 


한국작가 양아치 비디오작품 한국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매우 메타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풍자적이고 시니컬한 방식으로 작가가 풀어낸 랩소디 같은 수준급 작품이다 


기자와 큐레이터 간 진지한 대화 소통을 향한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2014 신소장작품전 2부 세마 미디어 살롱]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015.3.10-5.17 

박윤경 I 관객이 내 그림을 완성하다(You complete me You complete me) variable size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canvas Hinge 2014 

작가는 고정된 회화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회화를 추구한다. 작가는 “새로운 곳에서 ‘회화 그 자체(painting itself)'에 대해 탐구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2차원 평면회화를 지탱하는 기본 요소로만 여겨지던 색채, 선, 붓질 등을 회화의 주체로 올려놓음으로써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회화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탐구의 과정을 증명한다. 

캔버스 천이나 종이만을 고집하던 전통적 회화는 실크, 쉬폰 천, 샤워커튼 등의 투명한 재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숨겨져 있던 회화의 뒷면을 관객에게 개방한다. 열린 회화 공간에는 작가가 선택한 색채와 붓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작가의 행위와 작품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한다. 현대미술이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도한지도 어느덧 반세기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미술에서 관객은 이방인이다. 

신미경 작가 작품 

비누로 만든 청화백자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질 수도 있죠 여기는 공간성과 함께 시간성이 들어간다 

황혜선 작가 작품 <끝없이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2005년 

투명성이라고 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아카이브 스토리 김달진과 미술자료전] 2015년 3월 12일-5월 31일까지 
-한국 아카이브의 아방가르드 김달진 관장 


상명여대 앞에 주변을 놀라게 변화시킬 문화지대로 만든 박물관이 하나 들어서다 참으로 축하를 보낼만한 일이다. 바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다 


새로 이전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사진 박물관 파사드 작년 11월 부터 리모델링 1달 반 김원선생님 재능기부로 무료로 건물 개념 비용은 4억 정도(후원금 등등) 대지구입비등등 10억은 은행융자 


당시 좌익 미술잡지 등 전시자료를 직접 꺼내서 그 안에 들어간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김달진 관장님 모습 미술자료를 수집하는 거와 함게 앞으로는 그 내용(content)에 대한 내용분석이 과제로 남게 되었다 

1940년대 후반 당시 미술지(조형예술지) 안에 나오는 운보의 그림 코베이에서 주로 구입 올드 북스 등에서 구입

김달진 관장님 미술자료을 설명할 때는 눈빛에 광채가 들어간다 

김구림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전찬승이 뉴욕에 있을 만든 폐품으로 모아서 하는 정크아트으로 만든 것으로 이 작품이 음악가 이창신이라는 분에게 기증되었는데 이창신 분과 김달진 친척관계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 전달받았다고 한다. 백지숙선생이 아르코 관장으로 있을 대 전찬승 재평가 전시를 시도했으나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전창승은 한국미술사의 행위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제가 미술자료는 일차적인 아날로그 자료에 많이 가지고 있는데 디지털화하고 싶은데 그래서 모든 시민들에게 박수근 이중섭 등 국민작가들의 미술자료 등을 공유하고 싶은데 정부적 차원에서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비엔나레 등 미술행사에는 수십억의 지원을 하면서 미술의 기초자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쉬움을 토로하다 


1972년 고3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972년이전에는 서양의 것만 수집하다가 1972년부터는 덕수궁에서 열린 아래 전시도록<1900-1960 한국근대미술 60년>을 보고 크게 감흥을 받아 한국미술자료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입장료가 20원이었다는 것과 당시 앞에 작품과 뒤에 차례 등의 틀린 부분을 빨간 볼펜으로 표시하는 등 미술자료연구가로써의 면모를 고3부터 보이다 


1988 백남준의 판화전 자료 


아카이브와 자료의 차이는 뭔가 아카이브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 그 특징이아고 설명하시네요. 1989년 당시 국립미술관 학예실장 유준상 선생이 백남준이 보내준 연하장인데 유준상 선생이 김달진 관장에게 그냥 가지라고 해서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남준이 당시 1992년 국립미술관장 이경성에게 준 사인아트작품 


박물관 옆 중국집 먼저 오신분들 가시고 남은 사람들 사진 거실에 그림 하나가 완전히 분위기를 살려준다 

[한겨레_노형석기자]
 큐레이터가 관리자가 되느냐 창조자가 되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 고흐·샤갈은 그만…‘동시대 미술’로 확 바꾼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서소문 미술관 본관에서는 2013년 고갱 전시를 끝으로 외부기획사의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가 끊기고 거의 모든 전시가 자체 기획전으로 채워진다. 기획전 절반 가까이를 ‘샤갈’, ‘고흐’ 등 거장 블록버스터 전시로 채워 학예직인 큐레이터들을 관리직으로 동원했던 구태가 싹 사라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산하 분관과 난지 레지던시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사진축제도 맡으며 가을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미술품 장터(아트페어)도 차릴 참이다. 연간 100억원대 예산과 28명의 학예인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규모다. 울림 깊은 전시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온다. ‘한계는 많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다’는 김 관장이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안적 미술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을 수 있을까. 
[사진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80281.html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획전]
 박현기 1942-2000만다라 작품과 함께 대공개 1천평 전시장에 1천여점 전시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박현기 1942-2000 만다라'을 연다. 


박현기는 국내에서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에 도입했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1984년에야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데 반해, 박현기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영상 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갔다. 그는 1942년 식민지 시대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이 되자 대구에 정착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함께 공부한 후 1970년대 초 대구로 낙향,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번 돈을 모니터와 카메라를 사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쏟아 부었다. 


1974년부터 시작된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요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일찍부터 국제적인 시야를 넓혔다.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1990년대 한국에서도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면서 박현기의 활동이 주목 받게 되었으며, 그는 1997년 이후 <만다라> 시리즈, <현현(顯現)> 시리즈 등 대표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각광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2000년 1월 숨을 거두었다. 


58세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는 수많은 작품과 자료를 남겼다. 그의 사후 여러 차례 박현기를 재조명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2만 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자료가 처음으로 정리 완료되어 공개되는 전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1965년 학창 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의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선별, 전시된다. 또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을 총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그의 주요 작품을 재현(再現)해 냄으로써, 박현기의 ‘거의 모든 것’을 전시에 담아내었다.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비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매우 동양적인 정신의 바탕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초기 비디오 작업은 돌탑 사이에 돌을 찍은 영상 모니터를 끼워 넣은 것들이다. ‘그냥 돌’과 ‘모니터의 돌’은 서로 중첩되어,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의 구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치 하늘에 뜬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을 구별하지 못한 채, 강물의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을 남긴 이백(李白, 701-762)의 정신세계 같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전시실에서 2015.02.03-04.19까지 
[전시시간]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8:00 (2월) 3월부터는 19:00까지 매주 월요일(휴관) 
[박현주기자 관련뉴스] www.ajunews.com/view/20150204082113337 

콜비츠 I '차에 치인 아이(Run Over)' 1910, 에칭, 24.8*31.7c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소장 

"흑백 대비에서 오는 명암의 극적이라고 할까. 비극과 가난과 슬픔을 드러내는 데는 판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18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살려고 태어나게 했는데 죽음을 먼저 맛보다니요.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데 동의한다.나는 인간이 어쩔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 콜비츠.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콜비츠 전 서울 북서울 미술관 사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참으로 반가운 전시다 콜비츠는 
개인적 정서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를 그린 작가다. 그녀는년 이세상에서 오갈데 없는 사람들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 따뜻한 여성과 뜨거운 모성의 무한정 가슴으로 그림이라는 큰 그릇에  담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의 전시를 연다.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친, 초기부터 말년까지 총 56점의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출품작은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 소재한 사키마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이루어졌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9 석판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년 7월 8일-1945년 4월 22일)은 독일 화가,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불행한 사람, 특히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이를 그림, 에칭, 리소그래피, 목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기반하지만 후기 작품들은 표현주의적인 경향도 있다.참여미술의 선각자로도 불린 콜비츠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독일가내 노동전 포스터_1906년 독일산업전시회)' 1905-1906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 같은 얼굴 휑한 얼굴 누렇게 뜬 얼굴 당시 여성노동자의 얼굴이네요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0대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의 판화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초기에는 에칭과 석판화를 주로 제작했으며 후에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의 영향을 받아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쳐 총 275점의 판화를 제작했고 대부분 흑백판화였다. 콜비츠는 사회참여적인 수단인 판화를 선택하여 자기 체험적인 고백과 시대를 담은 예술을 펼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어머니들)' 1921 

전시는 결혼 후 더욱 심화된 콜비츠의 사회의식과 전쟁을 겪으며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로서의 발언에 주목한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여성적 시선이 더해져 당대의 현실과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은 콜비츠 특유의 작가정신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수행했다는 점은 콜비츠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그의 작가적 의지는 더욱 강화되었기에 전쟁은 콜비츠 작품을 살펴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케테 콜비츠 I 콜비츠의 자화상 1934 

직접 보면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리얼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정말 심장에 강력한 파문이 일어나고 예술의 힘이 느껴진 그의 그림은 민중미술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머니즘의 승리하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무료 한번 가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군으로 분류하였다. 먼저 사진갤러리1에서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아들의 전사라는 역사적,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세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기이다. 전쟁 전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작가는 반전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5 외 

콜비츠 그는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역사서보다 독일의 과도기 고난의 시점을 감동도 전율의 시각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도무지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판화형식이 아니면 고발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해 가는 인간의 위대함도 같이 보여준다 이 전시는 절대로 빼놓지 마세요 북서울 시립미술관이 있어 북서울은 행복한 지역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고요 하나의 미술관은 100개의 수력발전소보다 더 위력이 있는 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음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와 부녀자의 대비되는 표정은 전쟁 이후의 비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주요 연작인 ‹전쟁 War›(1921~1922)은 케테 콜비츠 작품의 백미로, 작가 개인이 어머니로서 전쟁을 겪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모성애를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시기의 작업들이다.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는 콜비츠가 겪은 아픔과 절규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다. 뚜렷한 흑백대비의 목판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살아남은 자)' 1923 

당시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던 시대였나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는군요 참혹한 인간수난시대특히 하층민 땅의 사람들 농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그들에게는 살아남기만 해도 대단한 시대가 있었다
 

브론즈 조각 작품 ‹피에타 Pietà›(1937~1938)의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어머니는 콜비츠의 후기 작품을 지배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절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쟁 이전의 여성들이 억압받고 투쟁하는 계층으로 등장했던 반면, 전쟁 시기의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강조한 작업들이 주류를 이룬다. 격동기를 거친 작가의 자화상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어머니의 모습이 거의 동일시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케테 콜비츠 I 전쟁 5 과부 1922-23 '지원병들 1921-23, 목판, 35*49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인간의 고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인간을 고통만큼 위대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고통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환희의 세계는 과연 가능한가요 

사진갤러리2의 전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케테 콜비츠의 초기 에칭, 석판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작가의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주요 연작과 초기 대표작들을 비롯하여 여성 노동자의 초상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게르미날 Germinal› (1891)을 시작으로 가난의 추방이나 질병 퇴치와 같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연작으로 제작하였다. ‹직조공 봉기 A Weavers’ Rebellion›(1893~1897)는 비참한 직조공들의 상황과 이로인한 새로운 투쟁을 소재로 한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의 연극 ‹직조공들Die Weber›(1893)에서 비롯되었다. 

케테 콜비츠 I '기도 하는 소녀' 에칭 1892 

기도하는 소녀 감동이다 위선적 종교행위와 처절한 경건성 서로 다르다
 

전시에는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봉기에 앞선 직조공들의 회의 장면을 담은 ‹협의 Conspiracy› (1898)가 전시된다. 또 다른 대표 연작인 ‹농민전쟁 Peasants' War›(1901~1908)은 ‹직조공 봉기›보다 적극적인 혁명 의지를 담고 있다. 1840년 출간된 침머만(Wilhelm Zimmermann, 1807~1878)의 «대농민전쟁사개설»을 읽고 재구성한 판화 연작으로, 농민전쟁(1522~1525)을 소재로 제작했으나 역사적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검은 안나(Black Anna)’라는 모티브를 빌어 농민 혁명을 조형화한 것이다. 혁명적인 주제로 가득한 그녀의 1차 세계대전 이전 작품들에는 의례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과 귀족 등의 지배계층 대신에 억압당하는 피지배계층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전쟁 6 어머니들)' 1922-1923 목판 

모성의 절대적 경지는 신성이 되는 것인가. 땅의 사람들(암아하레스)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오직 뜨거운 포옹과 절대적 신뢰 그리고 형제애적 끈적끈적한 연대뿐인가요 

더불어 사진갤러리2에는 전시개최 배경과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이 전시를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작품을 대여해준 일본 사키마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연표를 제시하였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농민전쟁 5 폭발)' 1903 

몸부림으로서 절규 같은 삶을극명하게 보여주다. 

콜비츠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드러내는 뜻깊은 이번 전시가 격동기의 삶과 당대의 이슈에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작가의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룬 현실 참여 정신이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행사] 일반인 대상 <전시와 만나다> , 어린이 대상 <어린이 겨울방학 교실> 운영 *신청: 홈페이지-교육 / 문의 T. 2124-5276 *부문/작품수 판화, 조각 / 총 56점 도슨트 시간 1일 1회 / 오후 2시 * SeMA 도슨팅앱과 소책자를 통해 작품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관람료 무료 주최 및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전시문의 김혜진(02-2124-5269)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展] 소마올림픽미술관에서 2015.01.25(일)-2015.05.10(일) 

감자 심은 사람들 

이번 전시는 밀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보스턴미술관이 4년여에 걸쳐 연구하고 기획한 것으로 2014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과 일본 전시에서 무려 100만 명이 관람하는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밀레의 대표작이자 보스턴미술관 4대 걸작으로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감자 심는 사람>, <추수 중에 휴식(룻과보아스)>,<양치기 소녀>를 선보인다 본 전시는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됩니다. '밀레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회는 목요일'마다 작품 설명이 있다. 

씨 뿌리는 사람, 1850년. 미술 박물관, 보스턴. 

1849년 밀레는 '추수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를 그려 국가에 기증하였다. 파리 살롱에서는 같은 해에 '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양치기'(Shepherdess Sitting at the Edge of the Forest)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매우 작은 유화작으로 이전까지 그가 그려왔던 미화되고 목가적인 주제에서 보다 더 사실적이고 화가 개성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같은 해 6월 그는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파리의 교외인 바르비종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농민 화가로서 전원생활의 정경을 그렸다. 그는 가난에 쪼들렸으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1850년 밀레는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상시에게서, 그에게 작품을 그려주는 대가로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그는 다른 구매 희망자를 위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해에 파리 살롱에서 밀레는 '이삭 줍는 사람들'(Haymakers)와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과 함께 걸작이라 평가되는 3개의 작품들 중에 가장 초기 작품인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를 전시하게 된다. 

1850년에서 53년까지 밀레는 그가 가장 중요시했으며 가장 오랫동안 작업하게 된 작품 '추수하는 사람의 휴식시간'(Harvesters Resting)을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나 푸생과 같은 그의 개인적인 영웅 화가들에게 필적하기 위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밀레의 그림 인생에 있어 농부들의 일상만을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보다 사회적인 상황 자체를 상징적인 기법으로 나타내는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이 작품은 밀레가 날짜를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며, 파리 살롱에서 1853년 2위에 해당하는 메달을 수여받으면서 공식적인 명예를 쌓도록 도와준 작품이었다. 

양치기 소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앳된 얼굴의 소녀가 오른손엔 꼬챙이를, 왼손엔 양털 뭉치를 든 채 어딘가를 보고 있다. 양털에서 실을 뽑다 잠시 쉬고 있는 걸까? 새하얀 앞치마엔 한낮의 햇빛이 반사돼 아름답게 일렁이고, 그녀의 발 아래로는 섬세하게 묘사된 풀과 민들레가 바람에 나부낀다. 

이 작품은 밀레의 그림 중 가장 큰 인물화로 꼽힌다. 그렇기에 실제 그림을 보면 중심에 자리한 소녀의 모습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또 재미난 탄생의 비밀을 가졌다. 밀레가 젊은 시절 그린 역사화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위에 물감을 덧발라 그렸다는 점이다. 이런 연관성으로 그림 속 소녀에게선 당시의 신 또는 왕에게나 주어졌을 영웅성마저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한국일보 

[사진출처] http://www.milletseoul.com/exhibit/piece.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