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학자, 디터 다니엘스] 독일 아헨대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마르셀 뒤샹에 관한 논문 «뒤샹과 타자: 근대성에 있어 미술사적 영향의 준례»로 박사학위를 취득(1992) 독일에서 유명한 백남준 연구자. // <소논문> 텔레비전을 만지다: 마셜 매클루언, 존 케이지, 백남준의 참여 매체 Touching Television: Participation Media with Marshall McLuhan, John Cage and Nam June Paik 백남준은 Global Communication 매체인 '인터넷'을 미리 내다봤다는 결론이다.
매클루언 혹은 '맥루언'의 미디어 이론은 실상 기계에 대한 이론, 커뮤니케이션 혹은 정보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감각과 그것이 미디어와 맺는 다감각적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매클루언은 일찍이 그의 1964년 저서에서, 텔레비전 이미지는 “촉각의 확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1964). 그의 이러한 발언은 그 당시보다 오히려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같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가 쏟아져 나오는 최근의 상황에서 훨씬 더 이해가 가는 말이다. McLuhan’ media theory is much less a theory of machines, of communication or of information –but rather a theory of the senses and their multi–modal relationships to media. Way back in 1964 McLuhan maintains that the television image is an “expansion of the tactile sense”«Understanding media: extensions of man» 1964). This seems more understandable with today’ touch screen interfaces(smart phones, tablet computers) than in McLuhan’ time.
매클루언의 ‘촉각’의 강조는 의외로 그보다 앞서 나온 발터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6). 또한 매클루언과 벤야민은 예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태도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예술이 미래의 미디어와 사회의 발전에 대해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매클루언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일종의 ‘원격조기경보시스템’으로서, 기존 문화에 어떤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지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더욱 중요하게는 예술가들이 매클루언으로 부터 깊은 영감을 받는 이유이다.
His emphasis on the ‘tactile’ surprisingly links McLuhan back with Walter Benjamin's theory of media(«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1936). McLuhan and Benjamin also share an utopian appeal for art as anticipation of future developments in media and society. As McLuhan puts it: “Art at its most significant is a Distant Early Warning System that can always be relied on to tell the old culture what is beginning to happen to it.” This is what makes McLuhan so inspiring also for non–academic readers and – even more important – makes him inspiring for artist.
매클루언은 텔레비전이 여타 매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와 관계를 맺는 매체라고 주장한다: “텔레비전 이미지는 심층적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시키는 매체이다.” 이러한 논지는 매클루언의 미디어 이론을 1960년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실험과 연결시킬수 있는 지점이다. 1950년대 초부터 시작된 존 케이지의 라디오를 위한 작품들은 이후의 텔레비전 실험에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McLuhan argues that television engages the viewer in a different sense than any other media: “the television image ... is a medium, which includes all of our senses in an in–depth interaction.” This connects his media theory with the contemporary experiments of media artists in the 1960s. John Cage’ compositions for radios from the early 1950s are another important influence for television experiments to come.
백남준의 “참여 TV” 개념은 매클루언의 이론과는 별개로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시작되었다. 매클루언의 이론과 백남준의 개념에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또한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매클루언이 텔레비전 이미지의 인식에 있어 촉각성을 논한 것은 “상황이 어떠한가(how things are)”를 분석하는 것이다. 반면 TV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조작하고 또 이를 상호작용화한 백남준은 “앞으로 다가 올 상황things to come”을 제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역사상 이 시기는 분명 미디어 아트와 미디어 이론이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Nam June Paik’ concept of “participation TV”was developed independently from McLuhan in his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 in Wuppertal, Germany. in 1963. There are some similarities, but also important differences: McLuhan talks of the tactility of the TV image perception as an analysis of “ow things are” while Paik develops an (inter–active practice of TV image manipulation, offering a prospectus of “hings to come” Evidently at this moment in time, the art and the theory of media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1960년대 중반부터 백남준은 그의 이론과 작업 모두에 있어 매클루언의 이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매클루언을 존 케이지와 노버트 위너의 개념과 연결한다: “‘매체가 메시지다’라는 매클루언의 유명한 문장은 1940년대 이후부터 암암리에 커뮤니케이션 학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버트 위너는 메시지를 지닌 정보는 메시지가 없는 정보와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케이지의 말을 듣는 듯하다...”(백남준 «노버트 위너와 마셜 매클루언» 1967).
From the mid 1960s on, Paik in theory and in practice refers directly to McLuhan’ theory, and sets him in relation with the concepts of John Cage and Norbert Wiener: “McLuhan’ famous phrase “The medium is the message”also existed implicitly in the science of communication since the 1940s. Norbert Wiener wrote that the information, in which a message was sent, plays the same role as the information, in which a message is not sent. It sounds almost Cagean ...”Nam June Paik «Norbert Wiener and Marshall McLuhan» 1967)
백남준의 1968년 작 <케이지에 갇힌 매클루언>은 매클루언의 미디어 이론과 미디어 인격의 ‘재매개’라고 할 수 있다. 이 설치 작품에서 텔레비전을 만지는 것은 단순히 은유가 아니다. 백남준은 이 작업에서 “데이터 처리”와 참여 TV를 결합하여 미래의 인터렉티브 미디어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Nam June Paik’ installation <McLuhan Caged> from 1968 is a ‘re–ediation’of McLuhan’ media–theory and media–personality. Touching television is not only a metaphor in this installation, where Paik combines “data processing”and participation TV and gives a premonition of interactive media.
백남준은 또한 텔레비전 방송 작업도 여러 차례 수행했다. 그의 악명 높은 비디오테이프 <글로벌 그루브>(1973)는 전 세계 TV 채널을 빠르게 넘나들 수 있는 TV방송을, 위성TV가 나오기 한참 전에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이것은 지구상의 어떤 TV 채널도 쉽게 돌려 볼 수 있고 TV 가이드북은 맨해튼의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워질 미래 비디오 풍경의 맛보기다.” Nam June Paik has also worked extensively for broadcast television. His notorious videotape <Global Groove>(1973) is the simulation of world wide television zapping long before satellite TV made this possible: “This is a glimpse of a video landscape of tomorrow when you will be able to switch on any TV station on the earth and TV guides will be as fat as the Manhattan telephone book.”
<글로벌 그루브>를 위시하여 백남준이 그 후 전지구적 규모로 작업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손에 손잡고>(1988) 등 위성 TV 작품들은 매클루언의 “지구촌”개념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한 것이며, WWW 시대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내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Global Groove> and Nam June Paik’ later satellite TV work on a world wide scale(<Good Morning Mr. Orwell>(1984), <Wrap around the World>(1988)) can be seen as a critical ‘re–ediation’of McLuhan’ “global village” and as an anticipation of global communication in the age of the world wide web.
<글의 출처> https://m.blog.naver.com/sunonthetree/110137920462?fbclid=IwAR1Y7OYvo6jwI49hOri2g2fvLOoE7sq0Vx1WBHCpcL8WmqLm3ePrHRBwFoA
<관련동영상> 맨 오른쪽 남자가 'D. 다니엘스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QbtQTTRT0_4&fbclid=IwAR1tlo8AS2X-USAcJ6hLRTcm4iLpHa_o5i8KzO589vsT54mIKLTPlmoTV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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