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한반도 그림의 여신
'황금의 비' 1982년
천 경자는 한반도 그림의 여신이다.
그는 '낭만 없는 인생(현실)은 사막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사람은 현실만 가지고 살 수도 없고 이상만 가지고 살 수도 없다.
이것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
해외 스케치 기행 중 찍은 사진들
뚝 하면 일상을 훌훌 떠나 어딘가로 갈 수 있었고
거기에 가서 할 일이 있었던 천 화백은
분명 개인적으로 우여곡절과 한 서린 사연은 많았지만
화가로서는 그 자유와 특권을
마음껏 누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집시나 구도자의 모습을 한 천경자의 스케치 여행은
1969년 45세 때 여름 남태평양 꽃섬 타히티에서 시작되어
70세 되는 1994년 멕시코 여행으로 끝을 맺었다.
사반세기 동안 13번이나 해외여행을 한 셈이다.
그런 힘과 용기와 열정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반도 화가 중 이렇게 여행을 많이 한 작가는 드물 것이다.
'꽃무리' 1972 종이에 채색 195×135cm
천경자 그림의 특징은 무엇보다 환상적이다.
사막의 물처럼, 황무지에 피는 꽃처럼, 꿈과 이상이 없는 삶은
그에게는 죽음 그 자체인지 모른다.
자기애라는 방을 만들고
이 세상의 한과 슬픔과 외로움을
꽃과 새, 뱀과 나비 등으로 수놓듯 덮어버렸다.
'꽃무리'는 이런 작가의 심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경자전 전시장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 화랑 사이에 설치된 그의 사진과 그림들
그러나 그도
꽃과 새 그리고 사람과 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정말 마음이 허전할 때는 드물게 나무도 그렸다고 한다.
나무는 인고주의자이기에
인간의 정신적 고향이자 위안과 평안의 정령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천경자 체취가 묻어있는 소장품들과 뒤로 '길례 언니(1973)' '고(孤)' 등 대표작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창작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작업이 잘 될 때는 고독이라는 해방감과
바다 물결 같은 자유가 고맙지만,
작품이 잘 안 될 때는
흡사 성황당 고목에 걸린 한 서린 천 조각들이 날아오듯
심란한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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