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비가(悲歌)에 부친 시가(詩歌)
마돈나 Madonna 1894-1895 91×70.5cm
*세기말 악마주의 미학이 잘 반영되어 엄청난 파급효과를 준다.
섹시함(음탕함)에 신비함을 불같은 격정에 차분함까지 천의 얼굴을 가진 팜파탈(요부)의
전형이 된다. 무엇보다 그녀의 매력은 그 누구에 그 어느 곳에 묶어둘 수 없는 그 자유분방함에 있다.
뭉크의 그림에 시를 곁들이면 어떨까 싶네요.
사실 뭉크는 고흐와 다른 어떤 신비한 매력이 있어요.
어떤 수줍음 같은 애틋함 그런 북구인의 우수가 있어요.
여자를 너무 좋아했기에 너무나 무서워한 남자예요.
혹시 여자가 자신의 삶을 파멸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했죠.
그런 마음이 그에게 많은 사랑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게 한 것 같아요.
사실 한국 사람이 서양화가의 그림을 깊이 좋아하긴 힘든데
뭉크는 그렇지 않아요.
상당힌 친근감을 주고 좋아하게 되네요.
그처럼 여자를 순수하고 아름답게 사랑한 남자는 드물 것 같다.
다음날 아침 The Day After, 1894-5 115×152cm
이별 Separation II, 1900 125.5×190.5cm
* 두 연인은 사춘기 소년과 소녀 같다. 왜 서로는 깊이 사랑하는 것 같은데 서로 뜨겁게 포옹하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속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 애틋한 감정은 차고 넘치는데 그림 전체에서
그런 애절한 분위기가 넘치는데 서로 이별해야 하는가 감상자의 마음을 도려내고 있다.
이 세상에 남녀가 헤어져야 하는 애틋함 마음을 이렇게 절실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여자의 금발은 아직도 남자의 어깨위에 걸려있다. 남자는 헤어지고 싶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헤어져야 하는 사연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하는 자는 여인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기에
사랑과 죽음은 상호 깊은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너로 하여
말없이 떨고 있는
네 입술은
작은 사랑을 속삭이고 있소.
향긋한 네 눈빛은
잔잔한 호수 같은
내 혼을 오래오래 흔들고 있소.
눈부신 네 머릿결은
갈바람 사이에서 스쳐 와
내 탈난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소.
네 고운 미소로 하여
난 비로소
모나리자의 신비를 알게 되었소.
너로 하여 난 마침내
물길처럼 출렁이고 있소.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소.
1998.09.11
마주보기 Eye in Eye, 1894 136×110cm
*그림구조는 단순하고 남녀표정은 절절하다. 가운데 나무 한 구루가 둘을 갈라놓는 것 같다.
모든 물체에 검은 색이 조금씩 들어있다.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삶에 대한 애착도
배여있어 보인다. 남자는 마치 성직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박하고 품격도 풍기고 여자는 갖가지
컬러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울긋불긋한 무늬에 검은 원피스는 신령스럽다 못해 신비하게까지 보인다.
서로의 눈을 보고 있으나 뭔가 통하지 않고 언어의 통로가 막혀있는 것 같다. 뒷배경으로 집한 채는
안정된 결혼생활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너무나 멀게만 보인다. 극도로 절제되고 단순화된
대조미가 이렇게 아름답게 구성되고 연출되는 그림은 드물 것이다. 말할 수없는 아름다움을
분출시킨다. 마치 화산이 터질 때의 그런 다이내믹한 위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빨려들게 하고
압도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림 속 연인이 되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과거에
경험한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가 연상된다.
강가에 서면
강가에 서면
너는 나무가 되고
나는 바람이 되고
네가
내 귀를 간질이면
난 네 속삭임에 숨이 멎고
말없이 서 있는
너 나무여!
네 등에 기대면
내 몸에 바람이 일고
산다는 건
꿈꾸며, 기다리며, 춤추는 것
강가에 서면
넌 푸른 나무이고
난 하얀 바람이고
우린 서로가 다르게
아름다워지고
어린 연인들처럼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되고
1992.07.22
내면의 목소리 The Voice, 1894-5 88×110cm
*숲속의 소녀 아니 숲의 정령이라 할 것이다. 표현주의 기법이라 해도 소녀의 눈은 섬뜩하다.
얼핏 보면 해골같아 보이고 선글라스를 낀 효과를 주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기말적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지만 여전히 상큼하고 매혹적이고 신비롭고 아름답다.
남자를 유혹하고 있는 눈빛이 이렇게 매혹적인데 뭉크는 이 여자도 남자를 파멸로 이끌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요즘 많이 유행하는 달콤살벌한 여자다. 뒷짐진 소녀는 알프스의 소녀를 연상시킨다. 앞은 어둡고 뒤는 밝고 이런 명암의 교차와 대조가 이 그림을 더욱 인상적이게 한다.
아름드리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 풍경은 기분이 유쾌하고 그 향기가 상쾌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산신령이 있듯이 서구의 숲에는 이렇게 귀여운 요정이 사나보다. 뒷면의 밝은 청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푸른 계통의 색채다. 우리 것보다 더 선명하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깊이 있는 우리의 쪽빛과는 다르다. 같은 색채라도 서구와 우리의 색감이 다른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뒤에 그려진 것이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어 죽겠다. 아마도 노르웨이여행을
다녀와야 그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다.
에로스와 프시케 Amor and Psyche, 1907 119.5×99cm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러브스토리. 신의 육체적 사랑(에로스)과 인간의 정신적 사랑(프시케)의 결합
완전한 사랑의 염원을 뜻하는가. 서로 피터지게 사랑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사랑을 평생에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으려 할지
마음먹을지 모른다. 남녀가 동시에 누드로 나오는 그림도 흔하지 않고 정신과 육체가 이렇게 하나로
일체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도 흔하지 않다.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내며 극적인 효과를 주어
그림은 더없이 아름답고 황홀하게 보인다. 사랑한다면 서로 어떤 의심도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있고,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다 진화시킬 수 있다는 해설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눈꽃보다 하얀 미소
30년만에 폭설이라니
그대에겐 처음 큰 눈인가
펑펑 쏟아지는 눈살에 겨워
씽씽 눈을 던지는 그대는
사춘기 소녀처럼 귀엽구나
원시가 된 서울을 통쾌해 하듯
뜻밖의 옛 애인을 만난 듯
그대 오늘, 활짝 웃었구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
어느 꽃보다 아름답구나
눈 덮인 가로수가
외론 도시의 혼불처럼 타오르듯
그대 미소는
나를 눈의 불로 태우는구나
출렁이는 숨결과
두근거리는 호흡을 멎게 한
그대 표정은
내 맘 속에 영원히 남아있구나
2001.2.15 30년만의 폭설 내리던 날
이별 Separation I, 1900 125.5×190.5cm
* 이 얼마나 극적인 상황인가! 신데렐라 같은 애인은 떠나가고 사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손에 피가 묻어 있다. 상황설정이 뭉크식의 독특한 연출이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리고
사내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여자의 얼굴은 과감하게 윤각이 생략되었는데 그래서 더욱더 신비롭다.
후광효과를 내는성모마리아 얼굴 같다. 날이 저물고 강물이 흐르고 사랑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절망의 정점에 도달하여 아픈 이별에 절규하는
연인들 모습이 슬프다 못해 숭고해보이기도한다. 천당에서 나와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은
심정이 어떨까 싶다.
사랑의 타고 남은 재 Ashes, 1894 120.5×141cm
*열애라는 우리대중가요 가사가 연상되는 이 작품은 사랑의 열정과 정념을 다 태우고 난 후의 휴유증인
그 재가 다시 사랑의 불꽃으로 되살아날지 아무도 예측할 없다는 비관적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 순간을 경험한 연인들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삶의 아름다운 과정과 추억으로써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살 수 없는 삶의 영양분이 되고 활력소가 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여자의 생의 3단계(일명 스핑크스) Woman in Three Stages, 1894 164×250cm
*흰옷 소녀와 검은옷 여인 그 사이에 삶의 환희를 상징하는 나체여인이 요염한 웃음을 던지고 있다.
흰옷 소녀는 바다의 무한을 향해 걸아거고 있고 반면 검은 옷 여인은 삶의 어두운 그림자로 투영하는
죽음과 고통을 상징할 수도 있다. 왼쪽부터 여자 생애의 3단계, 탄생과 성장기와 전성기와 쓸쓸한 만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춤>이라는 그림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흰옷을 인생의 가능성과 기대감을 검은 옷은 잃어버린 과거를 회상하고 반추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하여튼 그 대조미는 뚜렷하고 강렬하다.
무당벌레의 꿈과 그 흔적들
- 황 신영 그림에 부쳐
무당벌레는 채색의 마술사로
검은 바다에 붉은 꽃을 피운다.
천 가지 만 가지 양태로
신비하고 황홀한 빛을 낸다.
착시와 착란의 설렘으로
스치는 울림에도 흔적을 내며
혼과 숨결을 가슴에 그득 품고
스치는 바람 사이로 무늬를 그린다.
따뜻한 생성과 차가운 존재가
축약과 입체, 대칭과 긴장 속에서
무한대의 세포를 분열시키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음양을 수놓는다.
혼과 넋이 무당벌레로 환생하니
내 체온도 순해지고, 네 살빛도 환해지고
삼라만상이 단순 통합되어
태초의 모습만 고스란히 남는다.
2004.05.25
우울 Melancholy, 1891 72×98cm
*인간은 사형언도와 함께 고독의언도를 받고 태어난다. 10~20대는 그 시기대로 30~40대는 그 시기대로 50~60대는 그 시기대로 고독이 있다. 고독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녀노소, 빈부와 나이차이도 관계없다. <고독이 있어 나는 외롭자 않다>는 샹송도 있지만 그런 경지에 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북구의 우울한 성격을 지닌 몽크는 사실 인간존재의 근본을 탐험하는 철학자를 닮아있다. 그는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의 팬이었고 그 때 <니체>라는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그림의 부제는 질투이다. 멀리 다정한 연인들 쳐다보며 갈등을 느끼는 사나이의 마음은 바로 뭉크 자신인지도 모르고 고독한 현대인의 또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삼각관계는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 그런 갈등과 번민이 붉은 빛이 아닌 노란 빛의 석양이 물든 바닷가에서 파묻혀서 우리에게 진정한 삶과 사랑이 뭔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The Day After, 1894-5 115×152cm
*뭉크의 초기의 대표작이다. 내가 뭉크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뭉크는 초기에
사회적 이념보다는 여자의 운명에 대한 통찰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여자가 되어
그 속으로 들어가 감정이입도 해보고 여자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한 것 같다. 늦은 밤까지 파티에서
과음을 하고 아침에 피곤해 일어나지 못하고 곤히 잠든 흐트러진 모습이긴 하나 전혀 추하지 않다.
오히려 욕망에 충싫한 그래서 탐욕스럽게 보이는 여성이 더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이유을 모르겠다. 하여튼 100년전에 이런 여성의 모습을 그림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획기적인 일이다.
아름다워 아프다
그대가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너무나 아프다. 2001.01.25
큐피드 Cupido, 1907 Pencil and oil on board 65×91cm
그의 자화상(자기성찰의 드라마) 몇 개
파리 유학 시절의 광인 뭉크
우울한 신사 뭉크 Self Portrait with Wine Bottle, 1906 110.5×120.5cm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뭉크 Self Portrait with Cigarette, 1895 110.5×85.5cm
북구의 멋쟁이 뭉크. 나이들수록 품격은 더 높아보이지만 한편 병색도 있어 보인다.
Self Portrait in Copenhagen, 1909 100×1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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