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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그를 공부하다 보니, 안 배우는 게 없네

백남준을 공부하다보니 맑스도 좀 알아야 하고 삼국유사도 알아야 하고 영어도 알아야 하고 독어 프랑스도 알아야 하고 동서고금 철학자 사상가 알아야 하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 알아야 하고 유럽혁명사도 알아야 하고 전자에 기초상식도 알아야 하고 단군과 우랄알타이 몽골을 물론 페루까지 알아야 한다. 이래저래 공부를 자극한다.그의 사상과 예술의 광맥은 깊고넓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6개국을 하니 그는 6차원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바로 참여와 소통과 공유라는 가치다 백남준은 정보지식의 독점이 없는 그것이 공유되는 이상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 도구로 인터넷 상상력을 펼쳤고 그무엇보다 백남준 한반도 평화의 도구가 한국 정보 지식 인터넷 힘으로 작은 나라지만 전세계르 호령하기를 갈망했다 그것을 탈영토제국주의라고 했다 한국이 세계의 지적 제국주의 인류의 숙제를 풀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과학과 철학과 사상과 인류애를 발휘하기를 바랬다 20세기 유대인처럼 세계의 운명과 문명사에 이끌어가는 나라 되기를 그런데 지금 그런 기세가 보인다. 우리에게는 큰 장점이 있다. 바로 다른 나라를 강간하거나 괴롭힌 적이 없기에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누구에게나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 -소프트 맑스와 하드 백남준

아담스미스:자본주의 창시자, 칼 맑스:공산주의 창시자 궁극적으로는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가

[스미스와 맑스의 차이I] 영국인이고 독일인이다. 스미스는 독신자. 그러나 맑스는 6자녀 그러나 3명이 영양실조 원인으로 죽다. 스미스는 이기주의의 장치로 도덕을 강조, 맑스는 사회구성체 구조악을 봤다. 스미스는 3년 간 유럽 대륙여행, 맑스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3나라에서 추방. 결국 런던으로 가다. 대영도서관 모든 책을 다 읽다. 거기서 집필, 두 사람은 노동 가치를 재발견, 두 사람은 철학자로 경제학을 하다. 맑스는 1000년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받다.

맑스는 헤겔 변증법은 받아들였지만 절대정신은 거부하다. 포이에르바흐 유물론 받아들여 변증법 유물론 확립, 인간은 물질에 의해서 정신지배 받는다고 봤다. 맑스는 거의 굶어 죽을 경우가 많았지만, 독일 공장주 부호의 아들인 엥겔스(강남 좌파)가 평생 후원자가 되다. 책을 쓸 수 있게 했다. 미완성 원고는 엥겔스 마무리하다. 맑스는 돈은 없었지만 축제적 인간이고 시인이고 교감 즐기는 사람 하이네 등과도 친했다. 부자는 일을 안 할수록 더 부자, 가난한 더 일하는데 더 가난 원인 규명에 15년 걸렸다. 그걸 '잉여가치'라고 설명, 착취라는 말 발명하다. 자본론 때문에 자본주의 여러 번 그 위기에서 벗어나다. 역사의 아이러니.

<맑스와 스미스의 차이II> 개인의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이 되어야 하듯이, 아담 스미스(A. Smith 1723-1790 계몽기, 정치의 근대화와 과학의 눈부신 발전, 경제 빈부 차, 전쟁, 심각한 사회문제 대두 등 격변기였다)는 인간의 이기주의(그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봤다)가 사회적 도덕주의 혹은 윤리주의 잣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그의 저서 도덕감정[기준]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내에서 이기주의가 작동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자유방임주의는 우리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과 다르다고 해석되기도

아담 스미스는 독신으로 살았고 그가 명저를 쓴 것은 바로 독서(여기에는 물리학 생물학 등도 포함)와 여행(3년간 유럽대륙여행)과 토론(당대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절친) 때문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잉글랜드 출신이 아니고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그는 사람의 육체에 식량이 필요하듯이 그 사회의 육체에는 노동(그의 저서 '노동가치설'이 있다 후에 맑스에게 영향을 주다)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매우 중요한 경제 용어 창안: 보이지 않는 손, 분업, 국민총생산, 자유시장 등등 일부학자는 그가 부자 편이 아니었고 작은 정부를 반대했고 인간의 이기주의에 즉 사회적 도덕잣대가 필요하다고 주장 빈민의 대한 연민이 있었다고 부자는 1% 그들만을 편들 수 없었다고 공익과 학자로써 사회적 책임 보였다한다고.

<맑스와 스미스의 차이III>아담스미스:자본주의 창시자, 칼 맑스:공산주의 창시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두 사람의 결론은 같다는데 정말 그런가. 사람들은 스미스와 맑스들 다 오해하고 있을 뿐이라고. 맑스는 <자본론>을 쓸 때 스미스의 <국부론>을 가장 많이 읽고 공부했다고. 동양 사상에서는 이것의 융합이 가능. 그래서 답이 나온다. 그런데 서양 사상에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음은 음이고 양은 영이 아니고 음이 양이고, 양이 음이기 때문 그래서 이것이 가능하다.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맑스(박사)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부자는 일을 덜 할수록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 되는(노동자는 일을 더 하는데도 더 가난한 사람이 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 원인을 찾고 그 대안을 내놓고 싶어 경제학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쓴 책이 바로 '자본론'이다. 맑스의 경제이론이 정치적 경제학이 되는 이유다. 맑스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 중 그의 책을 안 읽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말 그런가 아니겠죠. 그렇다면 진짜 코미디가 되는 것이다. 비판이란 상대방의 사상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아닌가. 사살 나도 맑스를 잘 모른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분단된 국가에서 맑스를 객관적으로 논하기가 매우 어렵다.

맑스는 왜 존경 받는가? 그건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 때문이다. 약자 중에서도 가장 큰 착취를 당하는 아동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가들은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해서 성인 남자를 쓰다가, 그것도 아까워서 성인 여성을 쓰다가, 그것도 아까워 나중에는 아동(어린이) 노동자를 썼던 것이다. 맑스는 고국인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쾰른 신문사 기자를 했는데 불온한 사상으로 신문 발행이 폐간 되었다. 조국에서 쫓겨나 자유의 도시 파리를 떠났고, 거기서도 추방되어 벨기에로 갔고, 거기서도 추방령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그는 독일국적마저 상실한다. 그래서 런던으로 갔다. 거기서 극빈한 생활을 하다 6명 자녀 중 3명이 굶어 죽었다. 그는 자신의(개인적) 가족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250년간 자본주의는 벌써 망했을 텐데 맑스의 '자본론'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 역사나 인생이나 사랑은 항상 역설에 의해서 이뤄진다. 자본주의에서 과거처럼 '자본론'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 사회주의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도달할 때마다 맑스의 '자본론'을 읽고 거기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그 위기 속에서 망하지 않았다. 결국 맑스는 자본주의를 망하게 하지 않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구의 사회주의는 맑스의 대한 오해라 망하고 만다.

우리가 백남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듯 서양에서 가장 존경받는 맑스를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백남준은 맑스를 제대로 이해했다. 두 사람의 천재는 시대를 넘어 서로 통했다. 백남준의 공유사상(인터넷 사상)과 맑스의 공산사상(인터컴 사상)은 맥을 같이 한다. 백남준은 레닌 등 공산주의 정치가들이 맑스를 오해했다고 보고 있다.

<추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문화) 맑시스트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백남준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가장 징표적 인물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결국 뒤죽박죽이 특징인데, 백남준은 가장 원시적인 주술적 예술과 첨단 기술 테크놀로지 예술의 뒤죽박죽이기에.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누구?] 예일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 사르트르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하버드 대학, 샌디에고의 캘리포니아 대학, 예일 대학 등을 거쳐 현재 산타크루즈의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미국의 현존하는 탁월한 비평가로 '사르트르', '언어의 감옥', '침략의 우화', '정치의 무의식',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등의 저서가 있음.